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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의 수상 및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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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1997
(선수)

2003
(선수)

2009
(감독)

2011
(감독)


[image]

원주 DB 프로미 영구결번

No. 9 허재






1999-2000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강동희
(부산 기아)

조성원
(대전 현대)

허재
(원주 삼보)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서장훈
(청주 SK)



}}} ||

원주 DB 프로미 No.9

이름

허재 (許載)

생년월일

1965년 9월 28일 (54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춘천시

종교

개신교

출신학교

상명초등학교
용산중학교
용산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체육교육과[1]

가족관계

배우자 이미수, 장남 허웅, 차남 허훈

포지션

슈팅 가드[2]

신체사이즈

188.3cm, 87.3kg, BMI 24.6 [3]

실업입단

1988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입단

소속팀

기아자동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88~1998)
원주 나래 블루버드/TG삼보 엑서스 (1998~2004)

국가대표팀[4]

올림픽 2회 출전 (1988, 1996)
FIBA 세계선수권 3회 출전 (1986,1990,1994)
아시안게임 3회 출전 (1986,1990,1994)
ABC 선수권 6회 출전 (1985[5]~1991, 1995, 1999[6])

지도자

전주 KCC 이지스 감독 (2005~2015)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2018)

수상내역

<선수>
1984 아시아 청소년 농구대회 우승[7]
1984-85 농구대잔치 신인상
농구대잔치 MVP 2회 (1992, 1995)
농구대잔치 베스트 5 9회 (1986~87,1989~1990,1992~1996)[8]
농구대잔치 우승 7회 (1989~1993, 1995~1996)
KBL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97, 2003)
KBL 플레이오프 MVP (1998)[9]
KBL Best 5 (2000)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동메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ABC 선수권 준우승 6회 (85,87,89,91,95,99)[10]
FIBA ABC MVP (1995)
<감독>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2회(2009, 2011)
<방송인>
2019 SBS 연예대상 SBS 챌린저상

병역

병역특례[11]

소속사

디모스트엔터테인먼트

SNS

[image]

1. 개요
2. 기록
2.1. 농구대잔치 시절 성적
2.2. KBL 기록
3. 생애
4. 사건사고 및 논란
5. 성격
6. 방송활동
7. 광고
8. 기타
9.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및 농구감독이자 현재는 방송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 슈팅 가드였지만, 국가대표에선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대학 시절에는 센터도 소화했다.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를 논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언급된 선수였으며 한국의 마이클 조던 위치에 있었던 선수. 농구대통령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2. 기록

2.1. 농구대잔치 시절 성적[12]

연도

경기 수

총 득점

평균 득점

총 리바운드

평균 리바운드

총 어시스트

평균 어시스트

총 3점슛

평균 3점슛

1984

중앙대학교

18

432

24.00

144

8.00

112

6.22

룰 부재

룰 부재

1985

13

266

20.26

85

6.53

40

3.07

22

1.69

1986

23

555

24.13

171

7.43

85

3.69

91

3.95

1987

중앙대학교 대회 불참

1988

기아자동차

20

505

25.25

161

8.05

58

2.90

59

2.95

1989

19

508

26.73

127

6.68

68

3.57

77

4.05

1990

20

508

25.40

130

6.50

60

3.00

69

3.45

1991

21

469

22.22

112

5.33

71

3.38

56

2.66

1992

23

614

26.69

165

7.17

74

3.21

83

3.60

1993

17

510

30.00

111

6.52

49

2.88

76

4.47

1994

20

471

23.55

94

4.70

62

3.10

52

2.60

1995

21

514

24.47

128

6.09

79

3.76

65

3.09

2.2. KBL 기록

항목 참조

3. 생애

[image]   자세한 내용은 허재/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사건사고 및 논란

[image]   자세한 내용은 허재/사건사고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성격

중국 기자 : "왜 한국 선수들은 중국 국가가 나오는데 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습니까?"

허재 :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 18 진짜 짜증 나게!

통역사 : He said no comment(대답하지 않겠습니다)

허재 : "말 같지도 않은(중략)"

마지막에 허재 감독이 퇴장하자 마자 중국 기자들이 허재 감독에게 야유를 한다.

6. 방송활동

[image]

[image]
[image]

7. 광고

8. 기타

[image]

[image]

[image]

9. 관련 문서


  1. [1] 원래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고 한다.#
  2. [2] 1~5번 포지션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3. [3] 뭉쳐야 찬다 건강검진에서 밝혀짐
  4. [4] 총 15년간 국가대표로 거의 매년 활약하다가 중간중간 빠진 연도가 있는데, 1993년 자카르타 아시아선수권 때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자격정지(;;), 1997~98년 대회들 역시 유명한 "애틀란타 올림픽 음주파동"으로 인한 자격정지로 빠졌다.
  5. [5] 허재의 국가대표팀 첫 선발은 중앙대 1학년이던 1984년 타이완 존스컵(지금까지도 매년 열리고 있는 그 대회) 대표팀이었다. 본 항목에는 메이저 대회 경력만 기술하므로 1985년 콸라룸푸르 아시아선수권가 첫 머리에 올랐다.
  6. [6] 34세이던 1999 후쿠오카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중국에 패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 출전권을 놓쳤고, 강동희와 함께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7. [7] 이로 병역특례를 받아 성인이 되기 전에 병역문제부터 해결했다.그 당시라 선수권대회로 특례를 받은 거지 현재는 선수권대회나 연령별 대회 우승은 특례대상이 아니다.
  8. [8] 중앙대 2학년 때부터 KBL 출범직전인 1996-97 농구대잔치까지 거의 빠짐없이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중간중간 베스트 5에 누락된 사유도 다양한데, 허재가 4학년이던 1987-88 농구대잔치에는 중앙대가 아예 불참했고 1990-91 농구대잔치에서는 결승 2차전에서의 허재 vs.임달식/김성욱 간 폭력사태로 인해 베스트 5는 물론 MVP마저 날아갔었다. KBL 출범전 마지막 농구대잔치인 1996-97 농구대잔치 때는 바로 직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음주파동으로 인한 징계로 출전을 못했다. 참 파란만장했다;;
  9. [9] 역대 유일 준우승팀 MVP.
  10. [10] 공교롭게도 허재가 출전한 모든 ABC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징계로 각각 참가하지 못한 1993 자카르타 ABC에서는 대표팀이 3위, 1997 ABC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6번의 준우승 중 5번의 결승상대가 중국이었다. (1985 대회만 필리핀)
  11. [11] 상무에 기록이 없고 현역이든 어디든 입대했다는 말이 없어 뭘로 병역을 해결했는지 확실하지 않았으나, 1984년에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 우승으로 병역특례를 받았다고 뭉찬에서 밝혔다.여담으로 훈련소는 6주 갔다왔다고 한다.
  12. [12]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13. [13] 농구 모르는 사람들은 욱허재라고 많이 불렀다고. 사실 농구에 있어서 굉장히 불같고 승부욕이 세서 그렇지 꽤 시원시원한 성격이고, 뒤끝이 없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툴툴거리면서도 은근 챙겨주는 면도 있다. 딱, 이경규나 박명수의 거친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14. [14] 부친상, 강동희 감독의 제명 등등
  15. [15] 뭉찬에서 꼰대 이미지는 컨셉상 이만기가 다 가져가고 있다곤 하지만 거기에서도 허재의 역할은 생떼 혹은 휘둘리기다.
  16. [16] 야구나 농구는 흡연자들이 많아 팬 서비스로 맞담을 하는 선수나 감독들도 많다. 단 축구는 아무래도 맞담 팬서비스를 기대하긴 힘들다.
  17. [17] 사실 운동선수라서 자기 분야 선수들과는 친하지만 타분야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문외한이다 보니 그런 측면이 많다. 서장훈은 이와 반대로 인맥이 넓다. 석주일도 그렇고.
  18. [18] 참고로 이 때 중국 기자들이 허재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경기 전 중국 국가가 나올 때 한국 선수들은 왜 중국 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나 같은 희대의 개소리들이었다.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의 기자들이 K리그의 감독들에게 이런 식의 개드립같은 질문 공세가 심해지자 이 발언이 다시 재조명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외적으로도 개소리를 뱉어내는 사람들이 생기면 "허재 감독 데리고 와라!"며 유행어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19. [19] 하지만 실제로 중국기자의 질문은 정확하게는 ' 스포츠 경기전에 선수들은 상대방 국가가 나올때에도 엄숙함을 유지하고 있어주는게 예의이고 국제관례라고 알고있는데 그 당시 대한민국 선수들은 어떻게 하고있었는지 아시나요' 정도로 번역할수있다. ''중국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나'라는 질문은 한적이 없다. 동영상편집자가 중국인기자의 잘못으로 몰아갈려고 의도적인 번역을 하였는지 단순히 중국어를 잘 몰라서 실수를 한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오역임은 확실하다.
  20. [20] 챔피언 결정전 도중 갈비뼈 골절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뛰어 결국 끝나고 나서 통증과 기쁨을 못 이겨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눈물을 흘렸다는 에피소드가 은근히 존재한다.
  21. [21] 허재, 전창진은 유독 작전타임에서의 불같은 성격이 나온다. 그 유명한 불낙이 대표적.
  22. [22] 당시 촬영장소는 원주 삼보 엑서스의 옛 홈구장이었던 치악체육관이었는데,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경기 영상을 사용했다.
  23. [23] 안정환과는 비교도 안되게 경력이 화려하다.
  24. [24] 방송을 보면 훈련 안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지만, 나름 노력하는 모습도 많고, 정작 감독 말은 제일 잘 듣는다. 대표적으로 욕하지 말라니까 진짜 욕을 안 하고 재활 치료 도중에 술자리 제안을 여러 차례 거부한 것.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정작 훈련 이해도는 가장 높아서 가장 바르게 훈련을 소화해낸다.사실 농구와 축구는 다른 점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전술은 비슷하기에 훈련 이해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25. [25] 여기서 진지한 인생관과 자신의 주 종목 농구에 대한 깊은 애정, 뭉쳐야 찬다에서 보여주는 잦은 추태에 대한 반성 등이 잘 나와 있으니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26. [26] 97 원년 기아, 02~03 TG, 08~09/10~11 KCC
  27. [27] 선술되어있듯 허재는 코치를 거치지 않았다(...). 물론, 선수시설 준코치 정도의 위상은 가지고 있었지만.
  28. [28] 광주광역시 바닥에서 선동열이 술로 제대로 한가닥 했는지라, 어느 정도냐면 허재랑 술을 4차째 마시고 문을 연 술집이 없자, 한 술집 셔터를 두들기며 "나 선동열이오."하니 주인이 환영을 하며 셔터를 다시 올렸다고 한다.
  29. [29] 당연히 거짓말일 수 밖에 없는것이 농구대잔치는 겨울에 한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엔 야구시즌과 농구시즌이 겹칠 수도 있지만 선동열은 KBL 출범 이전인 1996년에 일본으로 진출했다. 선동열과 선동열의 고려대학교 동기인 정삼흠이 선발맞대결 전날 술을 퍼마시다가 정삼흠은 7이닝 5실점했는데 선동열은 완봉승을 거둔 일화가 와전되어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30. [30] 단, 박중훈은 재수하여 입학하였으므로 대학교 기준으로는 허재가 박중훈의 1년 선배이다.
  31. [31] 물리면 일곱 걸음안에 죽는다는 독사라 칠점사라는 별명이 붙었다.물론 요즘은 못 먹는다고.닭 또한 1일 보약이라며 당시 백숙이 나왔을때 정말 좋아했다.
  32. [32] 아이러니 하게도 허재의 두 아들들은 후에 연세대학교에 진학한다.
  33. [33] 그러나 최근 들어서 특히 국가대표에서 허훈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허웅은 그래도 동생보다는 조금 더 많은걸 보여줘서 평가가 뒤집히고 있다.
  34. [34] 허훈은 이미 소년체전 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을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고. 물론 허웅도 허훈만큼은 아니더라도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어서 연세대에서 팀의 득점원으로 활약,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었지만 허웅은 본격적인 농구를 조금 늦게 시작한 탓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허훈에 비해선 조금 늦은 나이였던 편이다.
  35. [35] 임종도 못 지켰다고 한다.자식이 부모 임종을 못 지키는건 최악의 불효 중 하나라 죄스러운 마음까지 섞여 미친듯이 울었다고.
  36. [36] 연금점수는 아시안 게임 은 2개로 4점,동 1개 1점으로 총 5점인데 연금 수령조건인 20점에 미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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