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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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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김승현
(대구 오리온스)

신기성
(원주 TG삼보)

현주엽
(부산 KTF)

김주성
(원주 TG삼보)

서장훈
(서울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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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현주엽(玄周燁 / Yeop-Ju Hyun)

생년월일

1975년 7월 27일 (45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출신학교

서울도성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본관

연주 현씨

종교

불교

배우자

아내 박상현 (2007년-현재)

자녀

아들 현준희 (2008년생)
아들 현준욱 (2010년생)

포지션

파워 포워드

신체조건

195cm[1] / 139kg[2]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1번 (SK)

소속구단

청주 SK 나이츠 (1998~1999)
광주/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1999~2001)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KTF 매직윙스 (2003~2005)
창원 LG 세이커스 (2005~2009)

국가대표 경력

올림픽 1회 (1996)
FIBA 세계선수권 2회 (1994[3],1998)
아시안 게임 3회 (1994, 1998, 2002)
FIBA 아시아선수권 4회 (1995~1999, 2005)

해설자

MBC SPORTS+ (2014~2017)

지도자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 (2017~2020)

수상 경력

94-95 농구대잔치 신인상
농구대잔치 MVP 1회 (02)
농구대잔치 베스트 5 2회 (95, 97)
KBL 베스트 5 1회 (05)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7 리야드 ABC 우승[4]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1. 개요
2. 선수 생활
2.1. 기록
3. 플레이 스타일
4. 은퇴 이후
4.1. 해설위원 활동
4.2. 예능 프로그램 출연
4.3. 창원 LG의 감독으로
4.3.1. 2017 - 18 시즌
4.3.2. 2018 - 19 시즌
4.3.3. 2019 - 20 시즌
5. 사건 사고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였고 前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

전성기 때는 한국의 찰스 바클리로 불렸고, KBL에서 포인트 포워드라는 포지션을 정립한 사나이. 하지만 부상과 불운으로 인해 제 기량을 다 펴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다. 별명은 매직 히포.

2. 선수 생활

[image]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어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포워드 이승현

어머니는 국가대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 농구선수인 홍성화. 정작 현주엽은 이 사실을 처음 농구에 입문한 중학교 1학년 때 알았다고 한다. 즉, 농구선수의 피를 타고는 났지만 시작은 늦은 편. 거기다 당시에는 살이 많이 쪘던 상태라 휘문중학교 1, 2학년때는 존재감 없이 팀내에서 연습만 하고 있었다. 이때 현주엽과 같이 구석에서 연습만 하던 1년 선배가 바로 위장 전학야구를 하다가 농구로 갓 전향한 서장훈이었다. 이 둘은 농구선수로 기본기를 다지고 폭풍성장하면서 동시에 잠재력이 폭발했고 휘문고는 무적이 되었다. 서장훈이 졸업한 후에도 현주엽은 휘문고를 혼자 이끌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두 사람이 절친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선수로서 서로 간의 라이벌 의식은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대의 현주엽 영입 과정은 정말 간단했다. "너, 연세대 가면 서장훈 그늘에 가린다." 이 말 한 마디에 현주엽은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고,[5] 이후 둘은 대학 시절 내내 치열하게 격돌했다. 그러나 승자는 간발의 차이로 항상 우승을 차지했던 서장훈이었다. 서장훈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등과 호흡을 맞추어서[6] 2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에 성공하지만, 현주엽과 전희철, 양희승, 신기성, 김병철이 포진한 고려대는 끝내 농구대잔치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다.[7]

[image]

류제국??

문제가 된 것은 1998년. 1997년 한국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드래프트 원칙이 세워졌는데, 1993년 입학인 서장훈은 1년 유학이라는 공백기[8]가 있는 관계로 졸업 시기는 같았지만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계약할 수 있었고, 현주엽은 드래프트 제도에 묶여 자기 마음대로 팀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주엽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결국은 제도에 수긍하고 그를 지명한 청주 SK 나이츠에 입단하여 서장훈과 같은 팀이 되었다. 그러나 드래프트 현장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대학 무대를 평정한 슈퍼루키 2명을 동시에 보유하게 된 SK 나이츠는 단숨에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되었지만, 정작 시즌이 시작되고 보니 두 사람의 시너지 효과는 제로였다. 개인 스탯만 놓고 보면 현주엽이나 서장훈 모두 평균득점 20점을 상회할 정도로 준수했지만, 둘의 호흡 자체는 생각만큼 맞지 않았고 팀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다.[9] 휘문고 때 검증되었던 서-현 조합이 왜 실패했을까? 이는 현주엽이 휘문고 시절과 달리 대학 진학 후 빅맨으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휘문중-고시절 현주엽은 고려대 시절에 비해 가벼운 몸이었고 진짜 윤대협의 재림처럼 전천후 스윙맨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센터였던 서장훈과 활동범위가 겹치지 않았던 것이다.

고려대학교 진학 후엔 팀 사정상 몸을 불리고 센터로 전향하게 된다. 당시 현주엽 입학 전까지 고려대에는 연세대서장훈을 막을 빅맨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198cm의 전희철은 원래 현주엽과 비슷한 타입의 전천후 포워드에 몸싸움이 약해서 서장훈과의 매치업이 안됐고, 당시 고려대 최장신이었던 2m의 유학생 박재헌은 부상 등을 이유로 많이 출장을 못했다. 이 때문에 키는 (서장훈에 비해서) 작지만 힘과 투쟁심을 갖췄고, 골밑 플레이가 가능했던 현주엽이 서장훈과 매치업하는 빅맨으로 낙점된 것이다.[10] 때문에 현주엽은 대학 시절 4년 동안 센터가 되었고, 프로에서 재결합했을 땐 이미 둘의 포지션, 레인지가 완전히 겹쳐버렸다.[11]

덕분에 이 둘을 조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안준호 감독은 중간에 잘렸고, 새로 부임한 최인선 감독은 이 둘을 조화시키겠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평균 20득점 가깝게 올리는 선수지만, 어차피 외국인 선수도 있는 상황에서 역할이 중복된다고 보고, 현주엽을 트레이드 카드로 쓴 것. 당시 단장은 이인표였고, 스타가 필요했던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에서 현주엽을 원했고, 그렇게 1999년 12월 24일, 일명 '크리스마스 이브의 빅딜'을 통해 조상현과 현금을 얹어 골드뱅크는 현주엽을 영입했다.[12]

골드뱅크에서 팀의 에이스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이 때 처음으로 어시스트에 눈을 떠서 평균 어시스트가 거의 포인트 가드에 맞먹는 7.6개, 5.0개를 기록할 정도. 만능 포워드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그도 신체 강건한 남자로 군대는 피해갈 수 없었다. 당시 신체검사에서 196cm가 넘으면 군면제였지만, 공식 프로필과 달리 실제 신장은 이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13] 가면 가는 거라서 수긍하고 갔나 싶었는데, 문제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가 금메달을 딴 것이다! 당시 상무 소속으로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현주엽은 4Q 막판 동점 슛을 성공시키면서 맹활약하며 한국 남자 농구가 20년만의 아시안 게임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군 복무중인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바로 병역특례를 적용하여 전역시키는 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상무에 남아 군복무를 마쳐야 했다.

전역 후에는 코리아텐더로 돌아가서 KTF에 인수된 뒤에도 역시 '포인트 포워드'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 때부터 이미 현주엽의 무릎 상태는 좋지 않아 이미 연골이 닳아버린 상황이었고, 외국인 선수들과 부대껴야 하는 4번 자리에서 투쟁할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시스트에 주력하는 포인트포워드는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정쩡함이었다. 그리고 현주엽은 불행히도 점차 어정쩡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FA로 풀리기 직전인 2004-05 시즌 평균 14.2득점, 어시스트 7.8개를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PO에서도 평균 23점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어시스트와 PO 활약에 주목했지 점점 줄어드는 평균 득점에는 주목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런 활약으로 현주엽의 FA 가치는 높아졌고, 이를 주목한 것은 포워드에 환장하던 신선우 감독이었다. 즉시 FA로 질러서 현주엽을 영입했는데, 결국 무릎이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젊은 때처럼 힘과 탄력으로 외국인 선수들과 맞짱을 뜰 수도 없었고, 패스에 주력하기에는 그의 무릎 역시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냉정하게 말해 LG에서 먹튀로 전락했다. 보상 선수로 KTF로 간 송영진알에서 껍질을 깨면서 성장한 것에 비하면 LG의 손해.

그래도 LG의 전력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팀에 있던 첫 해를 빼고 나머지 3년 동안 모두 PO에 올랐다. 가장 전력이 좋았던 것은 2006-07 시즌. 그러나 이 해 KTF와의 4강 PO에서 폭행 사태로 외국인 선수 퍼비스 파스코가 영구제명되면서 졸지에 외국인 선수 한 명만으로 경기를 치른 LG는 결국 패하고 만다. 현주엽의 프로 선수 커리어 동안 가장 챔피언결정전에 가까웠던 순간이 이때였다. 이후 현주엽은 은퇴할 때까지 프로와 아마가 함께 뛰던 시절의 농구대잔치[14]와 KBL을 통틀어서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은퇴했다.

무릎이 좋지 않던 현주엽은 2009년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재활 도중 결국 선수 생활을 포기한다. 그래서 2009년 6월 24일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화려했던 현주엽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끝맺음이 너무도 허망했다. 그래도 아시안게임에서 국가 대표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얻은 게 현주엽에게는 선수로서 누린 최고의 영광이자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2.1. 기록

정규시즌

시즌

경기수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FG%

3P%

FT%

9

397

13.27

4.13

5.21

1.03

0.16

2.66

48.25

32.97

67.43

플레이오프

시즌

경기수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FG%

3P%

FT%

4

10

12.10

3.50

2.80

0.40

0.20

2.60

48.94

38.89

66.67

3. 플레이 스타일

젊었을 땐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득점, 리바운드에 영리하게 어시스트를 만들어 내는 능력 또한 일품이었다. 그 덩치에 점프력과 스피드가 좋은 편이라 파워포워드 포지션 내에서도 탑클래스급으로 자기매김했다. 대학에 와서 골밑 플레이어로 자리잡다보니 체중이 많이 늘었고, 운동능력이 다소 줄긴 했지만, 무릎부상을 당하기 이전에는 '한국의 찰스 바클리'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현주엽의 주된 공격옵션은 스핀무브에 이은 돌파, 혹은 점프슛이었다. 힘과 드리블을 바탕으로 골밑까지 파고든 뒤, 스핀무브를 통해 수비를 따돌리고 손쉽게 득점을 올리곤 했다. 특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결승전에서 이런 플레이로 대한민국을 살렸다. 야오밍, 리우유동의 높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중국 수비를 완전히 흔들었고, 마침내 역전을 이끌어냈다.

포스트업에 이은 골밑 득점도 큰 무기였다. 서장훈, 김주성을 앞에 두고도 힘으로 뒤지지 않으며 볼을 우겨넣는 장면은 흔히 볼 수 있었다. 대학시절에는 3점슛을 많이 던지지는 않았지만, 워낙 중거리 점프슛이 좋았던 선수라 쉽게 슈팅거리를 넓혀나갔고, 프로 진출 이후에는 주된 공격옵션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현주엽의 진가는 득점이 아닌 게임리딩능력에 있었다. 워낙 드리블이 좋고, 패싱 센스가 좋아 종종 포인트 포워드로 기용되었다. 2004-2005 시즌 KTF시절은 포인트 포워드로서 그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 순간이었다. 당시 KTF는 무게감 있는 포인트가드가 없이 정락영, 이홍수가 가드 역할을 번갈아 맡고 있었고, 외국인 선수들을 잘 살릴 수 있는 리더가 필요했다. 이 때 현주엽이 중요한 순간에 게임리딩을 주로 맡았다. 이 시즌에 기록한 평균 7.8개의 어시스트는 리그 전체 2위였다. 무릎부상과 포지션 확립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더 오랫동안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재능이 오래 가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

4. 은퇴 이후

선수 생활 당시에도 여러 염문이 많았다. 연예인과 염문 자체는 상관없는데, 이게 자기 관리 소홀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자세한 이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검색창에 현주엽을 치면 알아서 알게 된다. 어쨌든 결혼이 또래보다 좀 늦은 편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가 은퇴하기 전에도 결혼은 못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팬들도 있었다.

일반인과 2007년에 결혼했다.[15]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내외에도 어수선했던 고려대 농구부 감독 취임설이 돌기도 했으나 일선 지도자에는 딱히 마음을 두지 않은 듯.[16] 2010년 7월 스포츠의학, 재활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아마도 자신의 부상과 재활 실패가 정말로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문제는 은퇴하고 모아둔 돈을 펀드 매니저에게 모두 맡겼다가 이걸 다 날려먹는 피해를 본 것. 그리고 이 때 날아간 돈이 무려 17억이다. 결국 주변과 연락도 모두 끊어지고, 대외 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두문불출 그 사이 열린 OB 연고전이나, KBL 15주년 기념 올스타에 모두 선정되었지만 전부 다 불참했다. 이 일 관련해서 소송이 진행된 바 있는데, 이는 아래 사건사고 항목 참조.

4.1. 해설위원 활동

[image]

만두를 좋아할 것 같다

데가와 테츠로도 닮았다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2014-15 시즌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의 해설자로 복귀했다. 은퇴 이후로 처음으로 농구계에 발을 내딛게 된 것. 데뷔 무대는 2014년 9월 17일 열린 신인 드래프트 중계였다. 이후 10월 11일 개막전에서 모비스와 LG의 경기에 해설로서 한명재와 호흡을 맞췄는데, 첫 방송경기 해설이라 그런지 몰라도 재앙급의 해설을 쏟아내며 욕먹었다. 경기보는 눈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해설자임에도 도무지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한명재 캐스터가 중계 도중 "현주엽 위원님, 말씀이 너무 없으신 거 아니에요?"[17]라고 토로할 정도. 그러나 방송국에게 극딜을 당했는지 이후 몇 경기를 치르면서 점차 입이 터지기 시작했고 날이 갈 수록 부정적인 평가는 자연스레 사라지기 시작했다. MC용검정용검 캐스터와 주로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현역 해설자 중 현주엽이 최고다"라는 여론도 많이 생길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중계 도중 포인트 포워드(?)로 전향한 일화도 이야기를 해 줬는데 기량저하로 인해 득점하면서 팀을 캐리할 능력이 떨어져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그 탄력으로 서장훈과 함께 무한도전에도 출연하였고 석주일과 함께 2015년 설날 특집 아육대 농구 해설로도 출연하였다. 2015년 2월 20일 SKKT의 경기를 서장훈[18], 정용검 캐스터와 3명이서 중계하며 다채로운 썰들을 풀었다.[19]

2014-15 시즌 당시에는 샤킬 오닐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인 Shaqtin' A Fool의 KBL판으로 보이는 현주엽의 보너스원샷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2015-16 시즌에도 MBC스포츠플러스 프로농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정용검-현주엽 콤비는 해설 내용면으로나 예능감으로나 호평을 받고 있는데, 특히 오심이나 플라핑에 있어서 속시원한 해설을 많이 해주는 편. 중계석 바로 정면에서 본 장면에 대해 멀리서 있던 심판이 어처구니없는 콜을 주자 "그게 보이나 봐요... 전 안 보이는데"라며 극딜을 놓았다. 선수의 세세한 습관 등을 잡아내는 눈썰미도 보여주는 중.

2015년 12월 2일 동부 홈경기에서 정용검이 댄스타임에 피자를 따내기 위해 춤을 추면서, 현주엽에게도 춤을 추라고 강요하자 몸을 움찔움찔하더니 정용검을 혼내려 들었다. 결국 따낸 피자를 현주엽이 가져가자 정용검이 자기가 딴 피잔데 왜 현주엽해설이 먹냐고 궁시렁. 그리고 그 피자는 이어진 작전타임 시간에 현주엽이 먹었다(...). 피자용검

그 뒤에 KCC 홈경기에서는 치킨도 받았다. 동영상 치어리더가 귀엽다

LG 감독으로 선임된 후인 2017년 4월 26일 챔피언결정전 3차전 중계방송 하프타임 때 작별 인사를 했다.

4.2. 예능 프로그램 출연

2015년 2월 21일, 무한도전 설특집 무도큰잔치에도 서장훈과 함께 출연. 처음에는 서장훈에게 댄스 신고식 안 하는 방법 좀 알려달라는 등, 영 어색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베개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슈퍼 파워라고 답하며 슈퍼 파워란 별명을 얻었다.[20] 그 뒤부터 배우 박혁권과 함께 예능 늦둥이로 맹활약하며 큰 웃음을 자아냈다. 베개 싸움 중 여자인 박슬기를 상대하게 되자, 여자라 어떻게 공격하냐고 공격하지 못하자, 유재석이 현주엽이 지면 팀이 진다는 소리를 듣자 바로 공격을 하더니 이미지를 생각했는지 나가라면서 박슬기를 그대로 한 손으로 내팽개쳤다!!! 그렇게 이미지는 이미 하늘나라로... 다행이 이 장면에서 현주엽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 할까?? 게다가 서장훈을 일반인 잡듯이 때려잡고[21][22] 단체전에서는 혼자서 5명을 이긴 박혁권을 어렵게 쓰러뜨리고는 그 역시 5명을 이기며 승승장구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정준하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이 때를 두고 크게 지친 상황. 김영철의 이상한 로고송[23] 때문에 힘이 빠지기도 했으나 어케 버텨내고는 이기는가 했으나, 정준하눈치 없게 이겨버렸다. 덕분에 새로운 영웅을 기대한 사람들을 매우 허무하게 만들었다.[24] 다만 저런 것들과는 별개로 전체적으로 볼 때는 예능 프로그램 특유의 분위기를 낯설어하며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그리 잘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5년 4월 14일과 4월 21일에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했으며, 동년 5월 tvN 예능 프로그램 '촉촉한 오빠들'에도 출연. 이후 7월 26일 런닝맨 영웅전에 출연했다. 동년 9월부터 10월까지 정글의 법칙 니카라과 편에도 출연했고, KBS의 추석특집 예능 프로그램 '네 멋대로 해라'에도 출연. 동년 11월부터는 자녀들과 함께 MBC 예능 위대한 유산에 출연 중이었다. 12월부터는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부르면 갑니다, 머슴아들개밥 주는 남자에 출연했다. 머슴아들은 16화를 끝으로 폐지되었고, 개밥 주는 남자는 15화에서 하차. 또한 위대한 유산도 2016년 초봄에 없어졌다. 이 외에도 MBN 엄지의 제왕에도 패널로 출연했으며, tvN 수요미식회에도 간간이 출연했다.

2016년 5월 14일에 KBS 배틀 트립에 출연해서 하하, 김승현과 함께 슬램덩크 성지순례를 콘셉트으로 여행했는데, 여행 내내 슬램덩크 번역본 완전판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실제 배경과 비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걸 보고 다들 능력자들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능력자들은 폐지됐다.

2016년 6월과 7월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 MLT-30MLT-31에서 김구라 방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2017년 4월~5월 원나잇 푸드트립- 먹방레이스에 출연하여 매회 신기록을 수립했다. 최종 도장 51개, 여권 2개.

2019년 4월 28일에 KBS2의 설 파일럿으로 방송되었던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가 정규편성됨에 따라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첫 회에는 본인 대신 김종규, 강병현이 출연했다.

농구 감독의 생활을 잘 보여주며 호평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포츠계 특유의 위계문화 역시 보여주는 바람에 욕도 먹는 중. 뭐 그런거 보여주라고 하는 프로기는 한데... 욕 먹는 이유는 눈치가 없어서... 또한 김종규를 자주 갈궜는데, 결국 김종규팀을 이적해 본의 아니게 자기 때문에 간 것처럼 되어버렸다. 최근엔 특유의 먹방도 선보이는 중. 하필 이 프로그램 방영 직전 하승진유튜브에서 나온 내용과 딱 맞는 방송 분량이 나와버려 현주엽의 이미지는 졸지에 꼰대, 적폐, 인간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물론 현주엽 본인이야 농구계 인기 회복을 위해서 나오고서 욕 먹는다고 억울할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시기가 너무 절묘해서 운이 나빴다고 할 수밖에... 애초에 거절했으면 그나마 욕은 덜 먹었겠지. 농구계나 창원 LG야 선수들 인지도 올라가고 인기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현주엽 개인에게는 인생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해당 프로에서 현재 그가 가장 인기가 많고, 반응도 좋기에 시즌 전까지 방송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듯 하다. 일단 시즌 중인 현재는 잠정 하차 상태.

4.3. 창원 LG의 감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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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4일 서울 잠실 야구장[25]에서의 감독 취임식에서 김종규, 조성민, 기승호와 함께.

김진 전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해 감독직이 공석이던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기사 코치 경험이 전혀 없이 감독을 맡은 터라 팬들은 잘할 지 반신반의하는 중. 이 분처럼만 하지 않으면..[26]

2017년 4월 27일 김영만, 박재헌, 강혁을 코치진으로 합류시켰다. 기사

4.3.1. 2017 - 18 시즌

일단 개막전은 자신의 상무 시절 스승이었던 추일승 감독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데뷔 첫 승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5경기를 치른 결과 3승 2패로 괜찮기는 하였는데... 201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 픽을 얻었지만, 지난 시즌 조성민김영환 트레이드 당시 KT에 넘겨준 1라운드 지명권 양도로 인해 KT가 1, 2번픽을 모두 먹으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제스처를 보여줘 팬들에게 웃음을 줬다. LG 현주엽 감독 '먼저 가야겠다'

그러다가 10월 29일 전자랜드 전 이후 부진한 조쉬 파월을 제임스 켈리로 결국 교체하기로 했다.[27] 전반전 20득점을 기록했던 조성민을 승부처 전혀 투입하지 않는다던가, 부상에서 일찍 돌아온 김종규를 37분 기용하는 등 여러 가지로 초보 감독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경기 중 선수에 대한 지시도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도 주는 등 초보 감독으로 프로농구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한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다만 그럼에도 정성우, 정창영, 박인태 등의 식스맨을 키워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전임 감독보다는 훨씬 낫다는 의견이 많은 편. 전임자가 얼마나 답이 없었으면... 하지만 지금은 그 전임자보다도 더 답이 없다.

그러나 이후 본격적인 순위 싸움이 시작되는 2라운드에 접어들면서 DTD 테크를 타는 등 여러 문제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주엽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도 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한창 순위 싸움하는 와중에 연패를 거듭하며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쳐지면서 플레이오프 가시권인 6위 싸움에서도 점점 멀어지자 LG 팬들에게 돌주엽이라며 신나게 까이고 있는 것은 덤. 지나가던 KT 팬 : 그래도 니네가 우리보단 낫잖아... LG 팬 : 니네는 픽이라도 좋고, 감독만 짜르면 되지만 우린 미래도 없어.

더불어서, 무한 고려대 사랑을 보여준다. 특히 정창영에 대한 사랑이 매우 심한데, 정창영조성민의 역할이 바뀐 듯 하다.

이유야 어찌됐건 전임 감독이 조성민이라는 카드를 남겨 놓고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정창영만 자꾸 쓰면서 꼬이게 만들고 있다.

옆동네 농구팀 감독이 워낙에 까이고 있기에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현주엽의 1년차는 사실상 실패로 굳어져 가고 있다.[28][29]

2017-18시즌 LG는 심하면 모 금지어 감독이 감독하던 시절이던 17승 37패보다도 더 최악의 상황이 연출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일부 LG 팬들 중에서는 전임자를 재평가하자는 의견도 조금씩 있다. 김진은 저것보다 더 독한 상황에서 못해도 20승은 했었거든...

kt와의 시즌 마지막 낙동강 더비에서는 91:59로 32점차 대패를 하는 굴욕을 남겼다. 이쯤 되면 조동현보다도 더 문제가 많은 듯.[30]

6라운드 원주 DB전 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 모 금지어 감독의 한 시즌 17승과 동률을 이루긴 했다. 어차피 도찐개찐.

결국 LG는 그나마 간간히 지키던 8위마저도 끝끝내 지키지 못하고 9위로 당해 시즌을 마치고 말았다.[31] LG 역대 최악의 감독인 박종천17승 37패 타이 기록을 세운 것은 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바닥을 깔아주고 있는 kt를 제외하면 이 순위는 사실상 꼴찌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아가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했던 LG였기에 농구의 인기가 드높은 창원시는 2001년 54라운드제 이후 최소관중까지 찍고 말았다. 그러니까 박종천 시절의 심하게 부진하던 때랑 김진의 탱킹 때보다도 사람들이 안 왔다는 거다.(...)[32][33]

거기다 현주엽은 팬 서비스에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코치나 선수들은 경기에 져도 팬 서비스는 잘 해준다는 얘기가 나오는 반면, 현주엽은 싸인이나 사진 찍는 것도 피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간간히 나오고 있다. 이는 비단 LG 팬들 뿐만 아니라 타 팀 팬들에게도 이런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 때의 시행착오가 약이 된 것인지, 다음 시즌에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이는데...[34][35]

4.3.2. 2018 - 19 시즌

시즌 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MBC 남자 농구 해설위원으로 해설을 맡았다.

6강을 목표로 그 이상을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즌 개막 후 KCC와 DB에게 패했지만 전자랜드전 홈 개막을 시작으로 1라운드에 5승을 찍으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절대 1강 현대모비스에게도 2점차 패배로 선방하는 등 지난 시즌보다는 그래도 좀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시즌 외국인 농사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확실하게 KBL에서 검증이 된 제임스 메이스를 장신 외국인으로 발빠르게 재영입하면서 팀의 중심을 잡았고 단신 외국인 선수로 새로 뽑은 조쉬 그레이가 성공적으로 팀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난 시즌의 실패를 통해 배운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이고 있다. 2라운드까지 진행된 11월 15일 현재는 9승 6패를 기록하면서 공동 2위로 그럴대로 선방하는 중. 특히 제임스 메이스는 경기당 평균 득점 1위를 기록하면서 현주엽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포스트시즌만 간다면 금지어에서 해제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2015-16 시즌의 서울 삼성 썬더스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선수와 토종 빅맨의 트윈 타워가 골밑을 거의 파괴하는 수준인데도 외곽슛을 전담해 줄 수 있는 선수의 비율이 상당히 떨어져서 외곽슛 시도 자체를 거의 못 가져가고 있다. 어쩌다가 많은 수를 시도해도 성공률이 떨어질 정도. 그 때문에 2라운드 부산 kt 소닉붐과의 경기에서는 40분 동안 단 9개 시도에 머무르는 사이 상대에게 외곽슛을 크게 헌납하는 것으로 치명적인 역전패를 당하면서 이것만큼은 확실히 보완해야 할 숙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농구영신 패배를 이후로 2019년부터 점차 연패가 늘어나고 또 다시 플레이오프에 가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다. 특히 몇 년간 고질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팀 3점슛 성공률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건 덤. 여기에 제임스 메이스의 탐욕도 제어를 못하면서 커리어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로 연승을 쓰면서 다시 5할 승률을 회복하고 순위를 다시 5위까지 끌어올렸고, 이후 3위까지 상승하면서 위기를 딛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큰 실수만 안하면 포스트시즌은 무난하게 진출시킬 수 있을 듯. 결국 3월 10일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지난 시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위기도 분명히 있었지만 6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한 것, 그리고 본인의 손으로 결정한 외국인 선수 농사까지도 단 한 번의 교체없이 결국 모두 성공하면서 적어도 지난 시즌의 실패는 어느 정도 만회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 시즌의 실패를 딛고 정규시즌 3위를 확정지으며 단일 시즌 홈 최다승을 기록한 것은 덤. 감독으로 첫 플레이오프를 맞이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6강에서 낙동강 라이벌 부산 kt 소닉붐에 5차전까지 간 명승부 끝에 3승 2패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전자랜드에 3패로 패하면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해 4강에 만족해야 했다.

4.3.3. 2019 - 20 시즌

팀의 주축이었던 김종규와의 갈등으로 인해 김종규가 DB로 떠나게 되었다. 여기에 협상 과정을 녹취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현주엽과 LG 프런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19 - 20 시즌이 벌써부터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희재, 박병우, 김동량 등을 FA로 영입하였고, 김종규의 보상 선수로 서민수까지 데려오면서 잇몸농구 선언을 했는데, 과연 이번 시즌에 버논 맥클린캐디 라렌과 국내 선수들의 조화가 잘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국내 골밑 득점원들의 활약이 중요해졌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를 통해서 시즌을 준비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한데 그 시기 하승진이 유튜브에서 농구계 내부 문제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영상이 올라오고 1주일 후의 방영분에서 현주엽 본인이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농구팬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36][37]

그리고 시즌 초반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벌써부터 사퇴설이 뜨고있다.

2019년 10월 16일 창원실내체육관 고양 오리온스전 시즌 6번째 경기 외국인 선수 한명이 빠진 가운데 74:61로 승리해 드디어 첫승을 했다. 다만 맥클린의 과제를 떠남기게 되었다

2019년 10월 27일 경기를 끝으로 맥클린을 퇴출 시키고 마이크 해리스를 영입했다.

2019년 10월 28일 직전 시즌 3위를 차지해 지명 확률이 5%였지만 신인 드래프트 추첨식에서 1순위 지명을 할 수 있는 기적이 만들어졌다.

이후 탈꼴찌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9위에 머물고 있었으며, 2020년 1월 15일에 마이크 해리스 대신 라킴 샌더스를 영입했지만 득점한 경기와 무득점 경기가 거의 비슷했고, 마이크 해리스가 그리울 정도로 공격과 수비 모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서민수의 합류, 라렌과 국내 선수들의 분전으로 4승 5패로 그나마 성적은 좋아졌다.

이후 연맹에서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3월 24일, 시즌 종료를 공식 선언하면서 LG의 시즌 최종 성적은 9위로 굳혀졌다. 시즌 종료와 동시에 3년 계약이 종료되어 재계약 검토 단계에 돌입하던 도중 4월 9일 현주엽 감독 본인이 사의(정확히는 계약 만료 후 재계약 포기)를 표명함에 따라 구단 측에서 이를 수용해 결별했다. 사임 소식이 들리자마자 커뮤니티에서는 본업으로 돌아오라고 난리(...)가 아니다. LG에서 거둔 성적은 3시즌간 정규리그 150경기 63승 87패 0.420로 1시즌로 치면 21승 29패의 전적이다. 라운드 평균 3.5승 6.5패을 기록한 셈이다. 역대 7명의 감독 중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감독 역임을 했던 박종천 감독 이후 2번째로 안 좋은 성적이고, 3년 이상 감독을 했던 감독 중에서는 최악의 성적이다.

5. 사건 사고

6. 여담

6.1. 대식가

예능에 출연하면서 새로운 식신 먹방 요정 타이틀을 얻었다. 특히나 화제가 되었던 건 그가 쌈싸먹는 모습. 일반 사람들은 보통 손바닥에 쌈거리(상추, 깻잎)를 놓고 고기나 다른 것을 놓아 돌돌말아 먹는데 반해, 현주엽은 쌈거리를 입에 반쯤 물고 그 안으로 바로 고기를 집어넣는다. 본인 말로는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나중에는 여러 방송에서 몇몇 걸그룹 멤버들이 이 방법이 간편하다고 따라하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데뷔 시즌인 17-18 시즌에는 감독 때려치우고 먹방이나 찍으라는 비아냥을 들었다가 18-19 시즌에 평가를 뒤바꿔서 이런 비아냥은 줄어들었다. 19-20 시즌 다시 부진해지며 후술할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보여진 먹방의 여파도 컸는지 지금은 아예 재능낭비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나오고있다.

원나잇 푸드트립에서도 1박 2일동안 40인분이 넘는(!) 음식을 먹고 거의 끝판왕 급 기록을 세우며 우승.[39] 햄버거는 최소 8개는 먹는다고 한다.

이 속성 때문인지 18-19 시즌에서는 중간 광고시간에[40] 나가는 썸네일이 KBL 먹방이라며 LG 외의 KBL 나머지 팀들의 로고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도 엄청난 먹방을 보여주고 있다. 김종규 이적 전 갔던 회전 초밥집에서 50접시를 먹는가 하면, 용병을 구하러 유럽에 갔는데, 말 그대로 먹고만 왔다... 반나절만에 만 칼로리 섭취는 기본에 먹는데 돈 쓸려고 기사 안 쓰고 자신이 직접 장거리 운전까지 했다. 같이 간 채성우 통역도 무시무시한 먹방을 보여줬다. 여기에 단것은 안 좋아한다면서 먹는마카롱은 무려 3개를 한입에 먹는 저력을 보여줬다.마카롱 3점슛 19-20시즌에 합류한 신입선수 3이 프로그램에서 신입선수와의 첫 식사자리를 가졌을 당시 선수들은 고문에 가까운 정도로 먹는데도 혼자 태평한 모습을 보였으며 선물로 가져온 마카롱을 그 자리에서 전부 먹어치우는 저력을 보여줬다(...). 또한 선수단 산악훈련 후 막국수 역시 네 젓가락만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모습까지 등장하여 시청자들을 충공깽에 빠뜨리기도 했다.

미국에 외국인 스카우트를 간 모습이 그려졌을 당시에는 그나마 아이들에게서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 작은 스테이크도 한 접시만, 햄버거나 핫도그 등등을 한 개씩만 먹는 나름 소식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얼마 못가 채성우 통역사가 숙소에서 몰래 라면을 먹던 걸 적발하곤 다시 라면을 입에 대곤 과자까지도 뺏어먹었다. 당일 녹화가 끝난 이후 회식 자리를 갔는데 현주엽의 생일회식인데 원희룡 지사가 제주에서 공수해온 흑우와 제작진이 준비한 마카롱 케이크도 가감없이 먹는 모습을 보였다.

유독 프로에서 마카롱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데, 1개를 한 입에 먹지 않으면 못 배워먹은 짓을 한다며 꼰대 비아냥을 하기도 하며 선수단 회식에서는 본인은 먹지는 않았으나 그걸 선수단에게 하나씩 돌려 한입에 파도타기를 시키기도 했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당뇨 전단계 판정을 받고 식사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목숨 걸고 먹방을 하는 셈이다. 그 나이에 고기와 단 음식만 주야장천 먹어대는 식습관으로 병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심영순한테 매주 까인다

7. 관련 문서


  1. [1] 실제 신장은 192~3cm 정도라고 한다. 대체로 농구선수들은 농구화를 신고 잰 키를 공식 프로필로 발표한다.
  2. [2] 제일 많이 나갔을 때는 140kg을 훌쩍 넘는다고 하였다. 대학 신입생 시절, 그리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2004-2005시즌에는 90kg 초반이었다.
  3. [3] 고려대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4. [4] 대회에는 참가했으나 출국직전 연습경기에서 코뼈가 부러져 정작 대회는 거의 뛰지 못했다.
  5. [5] 여기에는 박한 감독의 정성도 한 몫을 했는데, 현주엽의 집에 찾아가서 자고 가기까지 하면서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6. [6] 이 시절 식스맨으로 뛰었던 게 김훈석주일이다.
  7. [7] 일각에선 연세대최희암고려대박한 감독, 둘의 작전 능력 차이가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8. [8] 엄밀히 말해서는 실업팀 삼성전자와의 경기에서 당한 테러에 가까운 수비 때문에 다친 부상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휴식기에 더 가깝다.
  9. [9] 물론 여기에는 외국인 선수였던 토니 러틀랜드와 숀 재미슨(당초 선발했던 마이크 무어가 시즌 전 부상을 당해 교체로 온 선수)의 부진도 크게 작용했다.
  10. [10] 그 때문에 휘문고 시절보다 불어난 몸으로 인해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갖게 된다.
  11. [11] 더구나 한국프로농구에서 빅맨의 역할은 주로 용병이 맡는다. 당시 SK에도 숀 재미슨이라는 빅맨이 있었다. 한 팀에 주전급 빅맨이 3명이나 되었던 것.
  12. [12] 이 트레이드로 청주 SK 나이츠는 2000년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팀의 첫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이후에 서장훈, 조상현과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13. [13] 현주엽의 실제 키는 192~193cm 사이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농구선수의 공식 프로필 신장은 대부분 농구화를 신고 측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프로필로는 196cm가 넘던 상당수 농구선수들이 줄줄이 국군체육부대로 입대했다. 가장 압권인 것은 공식 프로필로는 198cm인데 신체검사에서 195.8cm가 나와서 입대하게 된 전희철이다.
  14. [14] 엄밀한 의미의 농구대잔치 대회로는 2001-02 대회에서 상무의 우승으로 정상을 밟기는 했다.
  15. [15] 현주엽이 겪은 사기 사건 등으로 자신이 이혼한 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고생을 많이 시켜서 그저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16. [16] 2014년 10월 이영미 기자와 회견에서 밝힌 바로는 고려대 농구부 관계자가 집으로 찾아왔으나 아직은 지도자로 나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17. [17] 이때 현주엽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 "제가 원래 말수가 없어서요.." 그리고 이어지는 한명재 캐스터의 침묵...
  18. [18] 무도큰잔치 녹화를 하며 함께 해설하자고 제의해 일일해설로 불렀다.
  19. [19] 이날 경기에서 어이없는 턴 오버가 여러 차례 속출하는 등 경기퀄리티(?) 자체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많은 팬들은 경기는 크게 신경 안쓰고 해설진 3명이서 풀어내는 썰을 즐기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날 해설은 전설로 남았다
  20. [20] 사실은 말하기 전에 하하가 먼저 언질을 했다. 슈퍼파워라 이야기 하라고... 참고로 서장훈은 인내심, 협동심이라 답하다 유재석에게 퇴짜만 맞았다.
  21. [21] 단순 베개 싸움만이 아니었다. 서장훈이 무릎 연골이 안 좋다며 변명하며 약한 모습을 보이자 현주엽은 도가니탕 몇 그릇 먹으면 바로 나아진다며 서장훈을 역관광했고 그리고 서장훈은 도가니탕 먹어야겠다며 바로 수긍했다 그리고 서장훈이 목장훈의 대명사인 목 부상으로 또 약한 모습을 보이자 그냥 있으면 바로 나아진다며 또 한 번 서장훈을 역관광시켰다. 사실상 현주엽의 맹활약 속에는 서장훈의 희생이 매우 크게 돋보였다.
  22. [22] 정형돈은 현역 시절에도 몸싸움에서 서장훈이 현주엽에게 많이 졌다고 이야기해 서장훈을 도발했는데... 서장훈이 좋을대로 생각하라며 삐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현주엽의 미래???? 여담이지만 서장훈은 예능에서 망가진 몸을 이용해 종종 웃겨왔는데, 그가 실제로 부상과 오랜 선수 생활로 몸이 만신창이가 된 걸 생각하면 "안 좋은 몸을 갖고 투덜대다 데꿀멍하는" 걸 아예 기믹으로 잡은 듯 하다. 역시 연예인.
  23. [23] 아이러니하게도 김영철이 이 날 무도에서 가장 웃긴 순간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의 무도 출연을 비교해도 그가 이만큼 웃긴 적이 없었다!!!
  24. [24] 사실 무도는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서장훈이 무도에서 웃겨야 산다 특집으로 나왔을 때. 엉덩이 때리기로 승부를 낼때, 서장훈이 내리 3명을 탈락시키고, 결승전에서 노홍철 vs 서장훈의 엉짝 대결이 나올때 승승장구하던 서장훈을 노홍철이 눈치없게 이겨버렸다. 그때는 그냥 개그로 나왔지만, 노홍철과 정준하의 차이인지...
  25. [25]창원이 아닌 서울에서였냐면, 잠실 야구장에 LG 스포츠의 사무실이 있기 때문이다. LG 트윈스LG 세이커스 두 팀이 입주해 있다.
  26. [26] 근데 문경은은 애런빨과 SKBL이라는 온갖 비아냥을 다 견뎌내고 17~18 시즌 우승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27. [27] 여담으로, 트라이아웃 당시 파월에 대한 평가는 '신인 감독이면 뽑겠다'였다고 한다.
  28. [28] 외국인 교체를 늦게 한다거나... 부상인 선수를 조귀 복기 시킨다거나... 기타 등등.
  29. [29] 근데 어떤 경우에는 조동현이 엄청 까여서 현주엽이 묻혔지 조동현이 성적 잘 나오거나 아예 감독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동현보다 더 까였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30. [30] 농구 갤러리들의 증언에 의하면 전술 공부도 많이 하는 등 조동현을 무작정 졸장으로 몰고 가기엔 무리라는 의견이 많은 편이란다. 이쯤되면 조동현은 농구판 이 분에 해당될지도... 4쿼터만 되면 선수들 긴장감이 마실 나가서...
  31. [31] 시즌 막판에 같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오리온에게 101:74로 대패를 하면서 결국 9위로 추락했다. 근데 8위나 9위나 솔직히 도찐개찐 아닌가?
  32. [32] 17~18 시즌 누적 관중이 8만 5천명에 달했는데 이는 박종천 시절에도 겨우 10만을 넘겼었고 김진이 탱킹했을 때 역시 10만을 넘겼다. 전 시즌 9만 6천명이나 오면서 거의 10만에 가까웠는데 현주엽호 첫 해의 관중은 팀의 최저관중 2위이다.
  33. [33] 사실 LG의 최근 관중 감소 요인이 내적으로는 LG의 경기력 문제나 마케팅 문제로 관중이 감소되는 점도 있지만 외적으로도 문제가 되는게 박종천 시절이나 그 이전의 이충희-김태환 시절과 박종천의 후임자 신선우때는 창원시에 마땅히 놀만한 곳이 없었고 프로스포츠도 2006년에 경남 FC가 창단하기 전까지는 창원시의 유일한 프로 스포츠단이었다. 그래서 LG 세이커스가 창원시민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지만 2010년대에 들어올 쯤 창원시가 마산, 진해와 통합하고 SNS 서비스가 발달되자 창원시의 다른 휴양지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2013년에는 NC 다이노스가 창단했고 창단 2년차에 가을야구를 가는가 하면 2016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그 시기 농구는 개막을 하는데 LG 입장에서는 그 시즌에 하필 부진하면서 관중동원이 제대로 먹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34. [34] 그러나 18~19 시즌때도 팬서비스가 좋지 못한 모습은 여전히 보이고 있다. 다만 누구랑은 다르게 희소성 드립을 치지는 않는 편.
  35. [35] 참고로 감독 부임한 이후로 선수들과 버스를 같이 타고 가지 않고 본인 혼자 따로 나와서 밴을 타고 간다.
  36. [36] 사실 이것은 대다수 대한민국 스포츠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농구뿐만 아니라 야구, 축구, 배구 등등 모두 그렇다. 지나친 혹사, 아파도 뛰라는 지시, 감독과 선수와의 지나친 상하관계 및 인격모독 등등. 다만 한국 농구계의 특성상 선수 풀이 넓지 않아서 에이스 선수들의 출전시간 조정 문제는 고쳐지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혹사 문제가 그나마 덜했던 이상범 감독만 해도 디온테 버튼의 출전 시간 조정에선 자유롭지 못했고, 그 유재학도 혹사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정도이니.
  37. [37] 다만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산악훈련 그 자체가 문제가 많다는 선입견은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에서만 유독 산악 훈련이 문제점으로 많이 지적되는데, 산악 훈련, 정확히는 힐 러닝도 정해진 트레이닝 파트와 프로그램을 짜서 정해진 포장 코스에서 시행을 하면 하체 근력과 지구력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되기 때문. NBA 선수들이 코트만 줄곧 뛰어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다수인데 그 르브론 제임스도 근지구력 향상을 위해 비시즌에 정해진 코스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힐 러닝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즉 국내에서는 힐 러닝에 대한 노하우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면서 무식하게 비포장이 된 산길을 뛰어다니는 것이 문제이지, 힐 러닝 자체를 문제점으로 짚는 것은 틀렸다는 이야기. 타 종목의 사례지만, 정 이해가 되지 않으면 축구의 윤정환 감독이 사간 도스 감독 시절에 체력 훈련을 어떻게 시켰는지 참고하도록 하자. 이런 형태로 체계화가 된 산악 훈련이 대한민국 농구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포장된 산악길만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데 무릎이 남아날 리가... 대한민국 농구계뿐만 아니라 대다수 체육업계 현장에 체계화된 프로그램의 트레이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단 앞에서 얘기한 산악훈련의 문제점은 현재는 많이 고쳐졌고 좀더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는 구단이 많다니까 인식을 바꿀 필요도 있다. 정작 그 산악 힐러닝, 크로스 컨트리 훈련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전창진도 초창기 김주성을 빼고는 선수들을 강훈으로 무지막지하게 혹사시켰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없으니.
  38. [38] 제럴드 워커는 표본이 너무 적은 관계로 빼도 무방하긴 하다.
  39. [39] 심지어 촬영 끝나고도 더 먹었다고 한다.
  40. [40] 엠스플 중계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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