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역대 FIFA 월드컵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bottom:-0px"

1회

2회

3회

4회

5회


1930 우루과이


1934 이탈리아


1938 프랑스


1950 브라질


1954 스위스

6회

7회

8회

9회

10회


1958 스웨덴


1962 칠레


1966 잉글랜드


1970 멕시코


1974 서독

11회

12회

13회

14회

15회


1978 아르헨티나


1982 스페인


1986 멕시코


1990 이탈리아


1994 미국

16회

17회

18회

19회

20회


1998 프랑스

/
2002 한국/일본


2006 독일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 브라질

21회

22회

23회

24회

25회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미정


미정


미정

}}}}}} ||

1966 FIFA World Cup England™

대회기간

1966년 7월 11일 ~ 7월 30일

개최국

잉글랜드

공인구

산티아고(Santiago)

참가국

16개국

우승국

잉글랜드

준우승국

서독

3위국

포르투갈

4위국

소련

이전 대회

1962 FIFA 월드컵 칠레

다음 대회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1. 개괄
2. 지역예선
3. 본선
3.1. 조별리그
3.2. 토너먼트
4. 결과
5. 이야기거리

1. 개괄

공식 포스터.

1966년에 개최된 8번째 FIFA 월드컵이다. 1966년 7월 11일 부터 1966년 7월 30일까지 16개 국가가 잉글랜드의 8개 경기장에서 32경기를 치뤘다.

1960년 6월 이탈리아 로마 총회에서 개최지가 결정되었는데, 잉글랜드는 서독을 7표차로 제치고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했다. 초기 월드컵때 정통성도 없는 것들이 깝ㄴㄴ 우리 같은 축구종가는 그런 데 안 나감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 1950년부터의 계속된 월드컵 본선의 잔혹사로 잉글랜드도 더 이상 과거의 아집에 얽매이지 않고 있었다는 반증이며, 동시에 자국에서 개최를 해서라도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뜻이었다.

이 대회에서 유명한 것은 이탈리아의 광탈과 북한의 돌풍, 포르투갈의 흑표범, 그리고 결승전에서 나온 희대의 오심이다. 그밖에 펠레의 저주가 시작된 대회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월드컵의 의미가 높아지면서 지역예선 참가국이 크게 늘었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지역예선 조편성에서 최초로 4팀 1개조를 편성해야 했다.[1] 또 개최국 잉글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영국 홈네이션 3개 축구협회는 모조리 지역예선에서 광탈당했다.[2]

2. 지역예선

잉글랜드는 개최국 자동진출권, 브라질은 지난대회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이번대회 자동진출권을 얻었다.

  • 유럽 1조 : 불가리아, 벨기에, 이스라엘
아시아의 강호로 대접받은 이스라엘이 정치적 이유로 AFC에서 쫓겨나 본격적으로 유럽예선을 치룬 첫 대회이나, 아시아와 유럽의 실력차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아시아 최강으로 1964년 제3회 AFC 아시안컵을 우승한 이스라엘은 유럽 지역에선 1조에서 1득점 12실점 4전 전패로 광탈한다.(…) 괜히 FIFA가 아시아 티켓 갖고 장난질친게 아니라는 이야기. 벨기에와 불가리아는 서로 1승1패로 동률을 이뤄, 이탈리아에서의 중립경기에서 불가리아가 승리했다.
  • 유럽 2조 : 서독, 스웨덴, 키프로스
서독이 홈에서 스웨덴과 비겨 위태위태했지만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며 본선에 진출했다. 키프로스는 이때나 요즘이나 승점자판기.(…)
  • 유럽 3조 : 프랑스, 노르웨이, 유고슬라비아, 룩셈부르크
전 대회 4강에 빛나는 유고슬라비아와 전전대회 4강을 거둔 프랑스의 맞대결 모드. 룩셈부르크는 역시나 승점자판기 모드였고, 승기를 거둔 나라는 프랑스였다. 노르웨이에 한번 지긴 했지만 나머지 5경기를 모두 이기며 손쉽게 본선에 진출했다.
  • 유럽 4조 : 포르투갈,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터키
전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둔 체코슬로바키아의 진출이 유력해보였으나 예선 6경기 9득점 중 혼자 7골을 넣은 포르투갈의 검은표범 에우제비우의 맹활약 속에 포르투갈이 사상 첫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혼자서 터키와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 원정경기에서 결승골, 체코 원정경기에서 결승골, 루마니아와의 홈경기에서 결승골과 쐐기골을 다 넣었으니 체코나 루마니아 입장에선 답이 없었다. 마지막 두 경기에서 에우제비우가 침묵하고 체코와 비기고 루마니아에 패하긴 했지만 이미 본선진출이 확정된 뒤라 상관없었다.
  • 유럽 5조 : 스위스, 북아일랜드, 네덜란드, 알바니아
스위스, 북아일랜드, 네덜란드의 각축전이었는데 네덜란드가 스위스와 북아일랜드에 1번도 이기지 못하면서 스위스와 북아일랜드의 양파전으로 전개되었다. 경기가 모두 끝난 스위스가 4승1무1패, 승점자판기 알바니아와의 1경기가 남은 북아일랜드가 3승1무1패로, 당연히 스위스-북아일랜드 플레이오프를 예상했는데, 그때까지 5전 전패를 달리던 알바니아가 북아일랜드에 빽태클을 걸며 무재배.(…) 스위스가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 유럽 6조 : 헝가리, 동독, 오스트리아
역사적, 문화적으로 인접했던 중부유럽 더비. 셋 모두 만만찮은 전력을 지녔지만 대부분의 예측대로 헝가리가 3승1무라는 우월한 성적으로 매직 마자르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리며 본선에 진출했다. 동독은 하필 헝가리와 만나는 바람에 첫 월드컵 진출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 유럽 7조 : 소련, 웨일스, 그리스, 덴마크
위대한 GK 레프 야신을 앞세운 소련에게 적수가 없었던 1강 3약 구도. 그 누구도 소련의 진출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두의 기대에 걸맞게 경기당 평균 1실점만 하며 5승1패로 본선에 진출했다. 사실 그 1패도 본선진출이 확정된 이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경기였다.
  • 유럽 8조 :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폴란드, 핀란드
2강1중1약 구도에서 1중 폴란드는 1약 핀란드에 1패를 떠안으며 광탈했다. 그리고 2강 중 스코틀랜드는 바로 그 1중 폴란드에게 홈에서 패하는 바람에 역시 탈락.(…) 스코틀랜드와 1승1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대신 나머지 4경기에서 3승1무를 거둔 이탈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 유럽 9조 : 스페인, 아일랜드, 시리아
스페인의 우세가 점쳐지던 조. 시리아는 이때까지만 해도 유럽축구협회 소속이었는데, 아프리카 티켓 배분 문제에 대한 항의에 동조하여 기권했다. 이에 스페인-아일랜드간 홈&어웨이 경기만 치뤄졌는데 아일랜드가 의외로 선전한 덕에 1승1패 동률이 되어 프랑스 파리에서 최종전을 진행, 스페인이 진출했다.
  • 남미 1조 : 우루과이, 페루, 베네수엘라
유럽의 헝가리, 소련처럼 우루과이에 극히 유리했던 조이다. 기대에 걸맞게 우루과이는 손쉽게 4전 전승을 거두며 본선에 진출했다. 페루는 2승 2패였고, 베네수엘라는 남미예선의 승점자판기 신세라…
  • 남미 2조 :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전 대회 개최국에 4강 버프를 받은 칠레, 마찬가지로 전 대회 예선탈락은 했지만 레흐 야신을 상대로 4골을 퍼부었던 콜롬비아의 맞대결이 궁금했던 조였다. 하지만 콜롬비아가 1승3패로 부진한 속에, 칠레가 콜롬비아의 유일한 1승을 조공해주며 2승1무1패, 에콰도르는 콜롬비아에 2승을 거두며 역시 2승1무1패로 동률이 되어 페루에서 최종 플레이오프 끝에 칠레가 본선에 진출했다. 이때가 에콰도르가 월드컵 본선에 가장 근접했던 때로, 에콰도르는 이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기 위해 무려 36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 남미 3조 :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남미 1조의 우루과이처럼 아르헨티나에게도 역시 적수는 없었다. 예상대로 아르헨티나가 3승1무로 본선에 진출했다.
  • 북중미 : 멕시코,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총 9개국이 참가, 1차라운드 각 조 1위 멕시코, 코스타리카, 자메이카가 결선라운드를 치뤘고 멕시코가 3승1무의 압도적 전력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 : 북한,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FIFA는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 3대륙을 하나로 묶어서 티켓 1장을 주고 지역예선을 치루도록 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참가신청을 낸 총 15개국이 모조리 기권해 버렸다. 아프리카 국가지만 AFC&OFC와 같이 지역예선을 치루도록 배정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정치적 이유[3]로 참가를 금지당했다.결국 북한, 한국, 호주간 조별리그의 승자가 아시아-아프리카 최종라운드를 생략하고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한국은 명목상으로 월드컵에 출전할 시 아마추어 자격을 잃을까봐 불참했다고 했지만, 당시 깡패모드였던 북한 축구국대와 괜히 붙었다가 깨질까봐 무서워서 예선라운드 개최국이 일본에서 캄보디아로 변경 된 걸 핑계로 기권하고 KFA는 벌금 5,000달러를 FIFA에 낸다.귀중한 외화가결국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북한-호주간 경기에서 북한이 6:1, 3:1이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듯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사상 첫 본선에 진출한다.여담이지만 북한은 이 월드컵에서 본선에 올라서 우승후보 이탈리아마저 격침시키는 대박을 터뜨렸으나 포르투갈 상대로 3-0으로 앞서다가 절대 역전당하지 않을 거라며 방심했다가 에우제비오 한 명에게 4골을 얻어맞은 끝에 3-5로 패했고 먼 훗날 포르투갈을 다시 만나서는아예 0-7로 믹서기에 갈려버렸다. 그렇게 북한 때려잡는 기계인 포르투갈을 대한민국이 이 월드컵으로부터 36년 후 쳐잡아버렸다.

3. 본선

3.1. 조별리그

조별 리그

1조

잉글랜드

우루과이

멕시코

프랑스

2조

서독

아르헨티나

스페인

스위스

3조

포르투갈

헝가리

브라질

불가리아

4조

소련

북한

이탈리아

칠레

1조에서는 홈팀 잉글랜드가 우루과이에게만 0:0으로 비기고 멕시코와 프랑스에 2:0 완승을 거두며 2승 1무 조 1위로 8강에 진출, 월드컵을 개최한 보람을 맛보았다.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도 프랑스에 2:1로 승리하고 멕시코에 비기며 1승 2무 조 2위로 8강에 합류했다. 조 최약체였던 멕시코는 우루과이, 프랑스와 비기고 잉글랜드에 석패하며 선전했지만, 2무 1패 조 3위로 첫 2라운드 진출은 또 다시 실패했다. 프랑스는 예선에서 유고슬라비아를 완파한 강력함은 온데간데 없었고, 약체였던 멕시코와 비겼을 뿐 잉글랜드, 우루과이에 연이어 패배하면서 1무 2패 조 최하위로 쓸쓸히 짐을 쌌다. 그리고 이 결과를 먼 훗날 또다시 재현하게 되는데... 그러고보니 세 번 다 우루과이랑 같은 조였네?

2조에서는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사이좋게 2승 1무를 거두었고, 골득실에서 앞선 서독이 조 1위로, 아르헨티나가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첫 경기에서 서독이 스위스를 5:0으로 관광보낸게 조 1위를 결정지은 계기였다. 마지막 서독과의 경기를 남겨두고 1승1패였던 스페인은 서독에 이기면 막판 역전 8강이 가능했고 실제로 전반 23분 선취골을 넣었으나 금방 동점골을 허용하며 가능성의 희박해지는가 싶더니 후반 39분 역전골까지 얻어맞으며 탈락했다. 헝가리 최고의 축구선수인 페렌츠 푸시카시,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유럽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디 스테파노 등 전설의 선수들을 영입하며 최고의 성적을 노렸던 스페인은 전 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1승 2패, 조 3위를 거두며 쓸쓸히 짐을 싸야했고, 마찬가지로 스위스도 2연속 같은 기록을 세웠다. 3연패에 대회 최하위....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94년 미국대회에 출전하기까지 무려 28년간 월드컵 무대에서 침묵해야 했다. 잠깐 눈물좀 닦고 디스테파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원래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격돌했는데 아르헨티나가 3골을 넣고 아르헨티나에게 1-2로 패해?? 여러모로 황당했다.

3조는 이번 대회 최고의 이변이 일어난 조였다. 지난 대회 부상으로 1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여전히 골 넣는 기계였고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펠레, 그리고 펠레를 뒷받침하는 가린샤가 버티는 브라질은 월드컵 3연패를 목표로 왔고, 첫 경기 불가리아전에서 펠레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었으나 불가리아 수비수들의 거친 수비로 펠레가 부상을 입어 다음 경기에 결장했다. 결국 그게 원인이 되어 2차전 헝가리전에서 충격적인 1:3 패배를 당한 브라질은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펠레까지 출전시키며 포르투갈을 상대했으나 펠레는 부상에서 회복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포르투갈 수비수의 태클로 다시 부상을 입어 활약하지 못했고, 오히려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가 날아다니며 두 골을 기록, 브라질은 1:3으로 패하며 디펜딩 챔피언 1라운드 탈락의 굴욕을 맛보았다. 결국 3조에서는 3승의 포르투갈(조 1위), 2승 1패의 헝가리(조 2위)가 8강에 진출했다. 특히 포르투갈의 경우 월드컵 첫 진출에 3전전승 8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아무리 에우제비오라는 전설의 선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고, 역시나 8강에서 이변의 팀이었던 북한을 누르고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발휘한다. 다만 이 때를 반짝으로 다음 대회 지역예선에서는 최하위로 광탈했고, 이후 1989/1991 세계청소년대회 2연패와 유로2000 4강에 진출하기 전까지 포르투갈은 심각한 침체기를 겪는다.

4조에선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로 손꼽히던 소련이 3전 전승으로 손쉽게 8강에 진출했다. 야신은 월드컵 본선에서 지난 대회의 굴욕을 씻으려는 듯 놀라운 선방을 연달아 보여주며 3경기 1실점을 기록, 상대팀 공격수들을 좌절시켰다. 한편 북한은 2차전 칠레와의 경기에서 전반 패널티 실점으로 패색이 짙다가 박승진이 후반 43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죽다 살아났고, 칠레는 승점자판기로 생각한 북한에 비기면서 8강행에 먹구름이 끼었다. 그리고 3차전 이탈리아전, 이탈리아는 전반 34분, 주장 불가렐리가 박승진에게 태클을 걸다 도리어 지가 부상을 당하며 퇴장해 10명으로 플레이하는 악조건에 놓였고[4] 결국, 전반 42분에 박두익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0 : 1로 패하며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5] 북한-이탈리아전 다음날 열린 소련과 칠레의 마지막 경기에서 칠레도 이기기만 하면 북한과 GAv를 비교해볼 여지가 있었으나 소련의 벽은 높아 결국 패배. 4조에서는 소련과 북한이 8강에 진출했는데 특히 북한의 8강은 단순히 아시아 최초의 2라운드 진출이 아닌, 유럽/남미가 독식하던 본선 2라운드에 최초로 비유럽/미주팀이 올라가는 사건이었다.[6]

3.2. 토너먼트

8강 제1경기 포르투갈 vs 북한은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가 쓰기로 예약된 호텔을 대신 쓰며 푹 쉰 북한은 초반부터 포르투갈을 강력히 몰아붙였고, 전반 1분만에 터진 박승진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전반 22분 리동운의 추가골, 25분 양성국의 사실상의 쐐기골로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다들 생각했으나 포르투갈에는 흑표범 에우제비오가 버티고 있었다. 조별리그 3골로 부진(?)했던 에우제비오는 전반 27분 첫 골을 시작으로 전반 43분 페널티 추격골, 후반 11분의 동점골, 후반 14분의 페널티 역전골로 북한을 멘붕시켰다. 북한은 에우제비오를 제대로 막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페널티킥을 두 차례나 헌납했고 끝내 역전을 허용, 후반 35분 쐐기골까지 터지며 경기는 포르투갈의 5:3 대역전승으로 끝났다. 이스탄불 그 이상의 역전극이라 봐도 무방

8강 제2경기, 힐즈브러에서 펼쳐진 서독 vs 우루과이는 브라질이 광탈한 상황에서 서독이 강력한 우승후보임을 만천하에 과시하며 남미 전통의 강호 우루과이를 4:0으로 처참하게 뭉개버리며 4강에 합류했다.

8강 제3경기 소련 vs 헝가리도 소련이 헝가리에 2:1 승리를 거두며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보이며 순항했다.

8강 제4경기 잉글랜드 vs 아르헨티나는 후반 33분 허스트의 결승골로 승리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을 전반전 35분만에 퇴장시켜 버리는 희대의 막장짓 속에 이뤄진 승리라 빛이 바랬다. 주심은 라틴이 '언어 폭력'을 사용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서독 국적의 주심은 스페인어를 할 줄도 몰랐다(...). 격분한 라틴은 스페인어를 통역할 사람을 불러달라며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농성했지만[7] 잉글랜드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항의하는 라틴을 경기장 밖으로 강제로 끌고 나갔다. 잉글랜드-아르헨티나의 악연은 포클랜드 전쟁 이전인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8][9] 여담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만 해도 미흡하고 자의적이었던 경고, 퇴장 관련 룰이 정비되어서 다음 대회인 1970 월드컵부터는 옐로우 카드레드 카드 제도가 최초로 도입되었다. 그런데도 훗날 아르헨티나는 2002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에게 또 심판 때문에 졌다. 경기장이 일본이고 일본 사람들이 데이비드 베컴 빠돌이인 데다가 마이클 오웬이 심판을 잘 속여서 얻은 패널티킥으로 잉글랜드가 승리한 탓에 경기장이 한국이었더라면 되려 아르헨티나가 압승을 거두었다는 게 정설이다.

4강 제1경기에서는 서독 vs 소련. 서독은 소련에게 대회 첫 멀티실점을 안겼다. 야신은 예선 3경기 1실점, 8강 1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0.5실점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서독의 막강한 공격력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야신이라서 2골로 막은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막판 분전으로 후반 43분 추격골이 터졌으나 너무 늦었다.

4강 제2경기 잉글랜드 vs 포르투갈 경기에선 바비 찰튼이 전반 30분과 후반 35분 결승골과 쐐기골을 터트리며 승리했다. 에우제비오는 잉글랜드 수비수들의 육탄방어에 내내 고전하다 후반 37분 겨우 패널티골로 한골을 만회하여 뒤늦게 시동을 걸었으나 이후 잉글랜드는 우주방어 모드로 돌입했고 결국 골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3/4위전 포르투갈 vs 소련은 포르투갈의 2:1 승리로 끝났다.

대망의 결승전. 웸블리 스타디움에 98,000여 명의 관중이 결집하여 일방적으로 잉글랜드를 응원하는 가운데 잉글랜드 vs 서독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2~30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전쟁까지 벌여온 전통의 앙숙인데다, 서독은 대망의 월드컵 2회 우승을, 잉글랜드는 그동안 구겨져온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위해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전반 12분 서독이 선제골을 넣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불과 6분 뒤, 잉글랜드의 허스트가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33분 마틴 피터가 역전골에 성공하며 잉글랜드가 2:1로 앞서나가자 웸블리 스타디움은 축제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서독이 아니었으니, 후반 44분 볼프강 웨버가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고 경기는 연장전까지 갔다.

연장 전반 6분, 잉글랜드의 맹공 속에 제프 허스트의 슛이 독일 골포스트 상단을 맞고 지면에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심판은 이를 득점으로 인정했고, 서독은 격분하여 맹렬하게 항의를 했으나 심판은 항의를 묵살했다. 경기는 3:2 잉글랜드의 리드로 흘러갔다. 여담으로, 잉글랜드의 축구팬들과 독일의 축구팬들은, 당시 결승전의 득점이 "골이냐? 아니냐?"로 현재까지 싸우고 있다고 한다. 이에 독일에서는, "그 위치에서는 어떻게 슛을 시도해도 튀어나온 공이 골라인을 넘어가지 않는다."라는 논문까지 나왔다.[10] 그리고, 독일 역시 44년 후, 프랭크 램파드의 골대를 맞고 들어간 골이 무효처리가 되면서 앙갚음을 했다. 당연히 명백한 오심이었기 때문이다. 뿌린대로 거둔다

문제의 득점장면 영상.

줄리메컵을 든 바비 무어.

결국 이 골로 서독은 추격의지를 상실해버렸고, 제프 허스트의 추가골까지 나오며[11] 경기는 4:2로 종료.잉글랜드는 안방에서 첫 월드컵 우승으로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지켰고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제프 허스트는 월드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한 유일한 선수라는 타이틀을 아직까지도 지키고 있다. 여담으로, 제프 허스트 본인은 마지막 쐐기골은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러 관중석에다 슛을 한 것이 골인이 되었다고 한다.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A

8강 1경기
잉글랜드 1:0 아르헨티나

E

4강 1경기
잉글랜드 2:1 포르투갈

G

결승
잉글랜드 4:2 서독

B

8강 2경기
포르투갈 5:3 북한

-

C

8강 3경기
서독 4:0 우루과이

F

4강 2경기
서독 2:1 소련

D

8강 4경기
소련 2:1 헝가리

H

3/4위전
포르투갈 2:1 소련

1966 FIFA 월드컵 우승


잉글랜드

첫 번째 우승

4. 결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잉글랜드

6

5

1

0

11

3

+8

11

우승

2

서독

6

4

1

1

15

6

+9

9

준우승

3

포르투갈

6

5

0

1

17

8

+9

10

3위

4

소련

6

4

0

2

10

6

+4

8

4위

5

아르헨티나

4

2

1

1

4

2

+2

5

8강

6

헝가리

4

2

0

2

8

7

+1

5

8강

7

우루과이

4

1

2

1

2

5

-3

5

8강

8

북한

4

1

1

2

5

9

-4

3

8강

9

이탈리아

3

1

0

2

2

2

0

2

1라운드

10

스페인

3

1

0

2

4

5

-1

2

1라운드

11

브라질

3

1

0

2

4

6

-2

2

1라운드

12

멕시코

3

0

2

1

1

3

-2

1

1라운드

13

칠레

3

0

1

2

2

5

-3

1

1라운드

13

프랑스

3

0

1

2

2

5

-3

1

1라운드

15

불가리아

3

0

0

3

1

8

-7

0

1라운드

16

스위스

3

0

0

3

1

9

-8

0

1라운드

5. 이야기거리

  • 잉글랜드는 홈 어드밴티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선 전 경기는 물론 자국이 치른 8강, 4강, 결승전을 모두 같은 경기장(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뤘다. 웸블리 스타디움은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경기장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수용인원도 10만 명에 달하는 구장이었다.
  • 2014년 대회까지 마친 현재도 빨간 유니폼을 입은 팀이 우승을 거둔 유일한 대회이다. 이후 빨간색을 팀컬러로 쓰는 스페인이 우승했으나, 당시 스페인이 입었던 유니폼은 남색 세컨드 유니폼이다.
  • 잉글랜드는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퇴장당했으며, 결승에서 만난 서독을 상대로는 슈팅한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골인으로 인정해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월드컵때는 독일과 16강에서 다시 맞붙었는데 이 상황이 오히려 역전되어 정당하게 넣은 골이 노골로 판정되었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때의 한을 확실하게 풀어버린 셈.
  • 펠레는 잉글랜드에 입국하면서 "우리는 우승을 하기 위해 왔으며, 줄 리메는 브라질의 영광을 지켜줄 것이다"라 하였으나 현실은 1라운드 광탈. 물론 상대팀의 거친 수비로 인한 펠레의 부상이 있긴 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펠레의 저주의 시초라고 한다. 참고로 이 시기가 바로 다름아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으며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으로부터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12년동안 브라질이 우승못한 월드컵은 이 대회가 유일했다.
  • 북한이 무서워서 지역예선에서 기권한 한국은 타도 북한을 외치며 중앙정보부가 직접 양지라는 축구팀을 창단하여 관리, 운영하였으나 북한과는 한 번도 경기를 치루지 못하고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실각하면서 해체되었다.
  • 비유럽/미주팀 최초로 본선 2라운드 진출의 쾌거를 올린 북한도 이후 내부사정으로 축구 국가대표팀을 후원한 당 간부가 숙청되는 것을 계기로 수십년동안 해외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이 기간동안 북한 축구는 세계축구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버렸다.
  • 북한은 체격조건이 월등한 유럽팀들을 상대하기 위해 사다리 전법을 고안했다고 흔히 잘못 알려져 있다. 한 명의 상대방 선수를 여러 명이 둘러싸고서 시간차 점프로 공을 뺏는 것으로, 딱히 전술이라 말하기도 뭣한 것이다. 현대 압박축구에서 흔히 말하는 특정 지역에서 '상대보다 수적 우위를 갖는' 방법론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다리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요즘 축구게임이나 실축에서 헬리캠으로 촬영한 탑뷰 시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볼을 받을 한 선수를 사방에서 네 명이 에워싸면 자연 위에서 봤을 때 사다리 모양이 나온다. 참 쉽죠? 흔히 아래 사진이 '사다리 전법'을 이용한 헤딩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사다리 전법은 일반적인 공격, 미드필더, 수비진 삼선을 기준으로 4-4-2 같은 포메이션이 아니라, 선을 단 두개만 둔 5-5 혹은 4-6 같은 극단적인 포메이션 전술을 뜻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운 좋게도 동료 선수들을 이용하여 시간차 점프하는 것처럼 사진이 찍혔을 뿐, 이것이 사다리 전법은 아니다.

1966년 당시 북한의 사다리 전법.

  • 잉글랜드는 이 대회 이후 2017년 현재까지 월드컵 우승은 커녕 결승전에도 못가고 있다.(…) 심지어 4강에 든 적이 1990년 월드컵 한번뿐이다. 그래서 잉글랜드가 월드컵을 우승하려면 다시 한 번 월드컵을 개최해야한다는 이야기가….
  • 영국은 한국전쟁때 UN군의 일원이었기에 북한은 당연히 영국의 적성국가였다. 소련, 헝가리 등 다른 공산권 국가야 공식적으로는 일반 수교국에 불과했으니 이들이 참여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던 것. 더군다나 남북한의 정통성 문제 때문에 영국은 아예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영국은 한국 정부에 미리 비정치적 국제 스포츠 행사에 북한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며, 절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사전 양해를 구했다. 대한민국 : 괜찮아, 우린 누구처럼 쪼잔하게 안 굴어. 쪼잔하게 군 거 맞아. 영국이 무시해서 그랫지[12] 뿐만 아니라 본선진출 16개국의 국기로 만들기로 한 기념우표를 역시 북한 국기 문제로 다른 도안으로 바꿨다. 사실 대회의 특성상 자국 국기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북한 국가가 연주되는 꼴을 막기 위해 개막전과 결승전을 제외한 경기에서 국가 연주를 하지 않았다.북한이 결승갔으면 어쩌려고?
  • 대회 기간 중 런던 국회의사당에 전시중이던 줄리메 컵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적 망신을 당한 영국 경찰은 즉시 이잡듯이 줄리메 컵 수색에 나섰는데, 엉뚱하게도 개가 줄리메 컵을 들고 왔다. 이 개는 주인이 훔쳐 집 뒷마당에 묻어놓은 줄리메 컵을 도로 파서 들고다니다가 발견된 것.충견은 안되고 경찰견하면 될듯
  • 본래 참가국 국기로 도안하기로 한 기념우표가 북한 문제로 축구경기 장면 도안으로 바뀌었는데 발매 이후 살펴보니, 모두 다 반칙 장면들로 판명이 나 영국은 또 망신을 당해야 했다.
  • 펠레, 에우제비우 등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들이 나온 대회였으나 이들에 대한 거친 수비와 파올, 그리고 이에 대한 불복 등 많은 문제가 지적되었다. 결국 다음 대회에서부터 카드 개념이 생겨나기에 이른다.
  • 북한 대표팀 선수들이 귀국한 이후, 선수들[13]과 코치진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카더라가 많이 나돌고 있다. 그 이유도 선수 중 일부가 영국의 사창가에 다녀 온게 발각당해서 그렇다느니, 혹은 북한의 정치적 숙청에 선수진들이 휘말렸다느니 등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이 제작한 북한의 8강 진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천리마축구단'에서 생존해 있는 선수들을 감독이 만날 수 있었고, 이 중 일부는 북한의 고위층 인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거나 혹은 선수진 중 일부 사람들이 다른 이유로 고난을 겪은 것이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 [1] 기존 유럽예선에도 4팀 1개조가 없던 것은 아니나, 그 유이한 경우는 모두 1950, 54년 대회의 영국 홈네이션만 따로 모아둔 조다.
  2. [2] 모두 조 2위로 탈락하였다.
  3. [3] 아파르트헤이트로 대표되는 인종차별정책
  4. [4] 이 대회까지 선수 교체 제도가 없었다. 즉, 출장한 선수는 무조건 90분 풀타임을 다 뛰어야 했고 부상을 당해서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그 선수가 빠진 상태로 계속 치러야 했다.
  5. [5] 더욱 더 안습한 일은, 당시 이탈리아 선수단은 분노한 자국 팬들의 보복이 두려워 일부러 늦은 새벽시간을 이용해 귀국했으나,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성난 축구팬들에게 썩은 토마토 세례를 맞는 굴욕을 당해야했다.
  6. [6] 비유럽/남미팀 중 가장 꾸준히 월드컵을 밟은 멕시코도 이때까지 본선 2라운드는 꿈도 못꾸고 있었다. 초대 대회에서 미국이 4강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선수가 스코틀랜드 프로리그에서 뛰어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이라는 비아냥을 받았었다. 사실상 비유럽/비남미 팀에서는 38년 쿠바 이후 두번째라 봐도 무방하다.
  7. [7] 이 때 영국 여왕의 이동경로인 레드카펫 위에 드러누우면서 영국인들의 국민정서를 자극했다.
  8. [8] 그리고 20년뒤, 아르헨티나는 이를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심으로 되갚아 준다. 그런데 2002년에 잉글랜드는 이걸 또 오웬의 시뮬레이션 페널티로 복수한다 메시가 신의 손 한번 더 해
  9. [9] 오웬의 시뮬레이션 패널티에 대해서는 베컴이 해명한 게 있는데 "우린 솔직히 너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우리에게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을 줬다. 이따위 짓거리, 진심으로 하기 싫었으나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거였다. 이걸 패하면 우린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까지 느꼈었다."였다.
  10. [10] 그러나 1995년, 영국의 옥스포드대 정밀측정학과의 앤드루 지셔만, 이언 레이드 두 박사는 29년전의 잉글랜드와 서독의 결승전에서 터진 제프 허스트의 연장전 첫 골을 첨단계측 방식으로 정밀측정한 결과, 공이 골라인을 완벽하게 넘어서지 않은 것으로 나와 득점으로 인정 될 수 없는 오심이 분명하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11. [11] 이 골도 논란의 소지가 골이다. 허스트가 마지막 골을 득점하기 전 한 쪽 구석에서 관중들이 난입했다. 당시 BBC의 케네스 월스턴홀름 해설가의 해설도 압권인데 다음과 같다: "그리고 허스트가 접근합니다. 그가 성공했습니다... 몇 사람이 경기장에 난입하는데, 그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군요. 이제 끝났습니다! 4번째 골입니다!" (And here comes Hurst. He's got... some people are on the pitch, they think it's all over. It is now! It's four!)
  12. [12]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030500329208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03-05&officeId=00032&pageNo=8&printNo=6272&publishType=00020
  13. [13] 대표적 인물로 요덕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알려진 박승진이 있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