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모바일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image]   2020 시즌에 대한 내용은 K리그/2020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축구 리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구분

명칭

단계

대회명

남자

프로

K리그

1부 리그

K리그1

2부 리그

K리그2

R리그

2군 리그

R리그 중부

R리그 남부

세미프로

3부 리그

내셔널리그

아마추어

4부 리그

K3리그 어드밴스

5부 리그

K3리그 베이직

동호인

디비전리그

(창설 예정)

디비전5리그

6부 리그

디비전6리그

7부 리그

디비전7리그

U-23

U리그

대학 리그

U리그

여자

세미프로

WK리그

1부 리그

WK리그

유소년

아마추어

K리그 주니어

U-18

K리그 주니어
(U-18 리그)

U-17

K리그 주니어
(U-17 리그)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U-18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고등 리그)

U-15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중등 리그)

U-12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초등 리그)

동호인

아이리그

U-18

아이리그 고등부
(U-18 리그)

U-15

아이리그 중등부
(U-15 리그)

U-12

아이리그 초등부
(U-12 리그)

U-10

아이리그 초등부
(U-10 리그)

U-8

아이리그 초등부
(U-8 리그)

}}}||

[image]

정식 명칭

한글: K리그

영문: K League

종목

축구

리그
창설

K리그1

1983년 5월 8일(37주년)

K리그2

2013년 3월 16일(07주년)

국가

[image] 대한민국

리그 주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권오갑(2013년~현재)

최근
우승팀

K리그1

[image] 전북 현대 모터스(2019)

K리그2

[image] 광주 FC(2019)

최다
우승팀

K리그1

[image] 성남 FC, [image] 전북 현대 모터스(7회)

K리그2

[image] 상주 상무(2회)

AFC 리그 랭킹

5위 #

공식 웹 사이트

[image] 홈페이지
[image] 데이터 포털
[image] 통합 스토어[1]
[image]
[image]
[image]
[image]

1. 개요
1.1. 명칭에 대해서
1.2. 리그 역사 개략
1.2.1. 리그 출범 초기 (~1983년)
1.2.2. 새로운 변화 (1984년 ~ 1993년)
1.2.3. 리그의 1차 확장기 (1994년 ~ 2001년)
1.2.4. CU @ K리그와 리그의 2차 확장기 (2002년 ~ 2010년)
1.2.5. 승부조작, 승강제 그리고 반등 (2011년 ~ 현재)
2. 참가 구단의 변동
3. 참가 구단 연혁
4. 참가 구단 (2020 시즌)
5. 상금 규모
6. 우승 트로피
7. 리그 패치
8. 공인구
9. 시즌별 일람
10. 리그 연혁
10.1. 역대 K리그1 우승팀
10.2. K리그1 우승 횟수
10.3. 역대 K리그2 우승팀
10.4. K리그2 우승 횟수
10.5. 역대 승강팀
11. K리그 시상식
12. 스폰서 연혁
12.1. 역대 스폰서
12.2. 역대 스폰서 엠블럼
13. 특색
14. 여담
15. 더비 매치
16. 서포터즈
17. 외국인 선수
18. 유소년
19. 다른 주요 대회 및 경기
19.1. FA컵
19.2. 리그컵
19.3. 2군 리그
19.4. 올스타전
20. 홍보 대사
21. 문제점
22. 관련 문서
22.1. 대한민국 축구
22.2. 규정
22.3. 역사
22.4. 관련 프로그램
23. 둘러보기

1. 개요

2020 시즌 K리그1 - 공식 인트로 영상

TIME TO PLAY THE GAME

한국 축구의 힘[2]

K리그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산하의 대한민국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다. 1983년 슈퍼리그[3]라는 명칭으로 출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까지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가 가장 많은 리그[4]이기도 하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K리그를 아시아 최초의 프로축구 리그로 보도하기도 하였지만, # AFC에서는 1908년에 출범한 홍콩 1부 리그를 아시아 최초의 프로축구 리그로 간주하고 있다.#[5]

본디 단일 리그였으나, 2012년 승강제를 도입하고 2013년 2부 리그를 창설하면서, 1부 리그 K리그1과 2부 리그 K리그2의 2개 디비전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넓은 의미의 K리그는 두 개의 리그를 포괄하여, 한국 프로축구 리그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더 넓은 의미의 K리그는, K리그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약칭이기 때문에,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한국 프로축구 리그를 망라한 한국 프로축구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K리그의 포맷은 스코티시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 (SPFL)와 유사하며[6], 춘추제로 운영되고 있다.

1983년 한국기독교선교원, 대한석유공사 등 2개 프로 구단과 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 등 3개 실업 구단의 총 5개 구단 체제로 출범하였다. 참가 구단 변동 내역은 이어지는 해당 문단을 참고. 이후 긴 세월 동안 변동을 거쳐 2020년 현재 1부 12개 구단, 2부 10개 구단으로 총 22개 구단이 참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프로 리그가 시행되는 종목 중 가장 많은 수의 구단을 보유하고 있다. 참가 구단은 시민구단 11팀, 기업구단 10팀, 군팀 1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팀은 국군체육부대 산하의 상주 상무다. 참가 구단이 많아 한국에서 어느 종목이든 프로스포츠팀이 있으면서 프로축구단만 없는 도시는 고양시(남자농구단 고양 오리온스)와 의정부시(남자배구단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 뿐이다.[7]

1.1. 명칭에 대해서

1.2. 리그 역사 개략

1.2.1. 리그 출범 초기 (~1983년)

실업축구로 진행되던 한국의 성인 축구리그는, 최순영신동아그룹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프로화의 닻을 올리게 된다. 최 회장의 공약 중 하나가 바로 축구의 프로화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실업 리그를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나누고 승강제를 도입하려는 노력이 1975년에도 있었고 1980년에도 있었지만, 둘 다 실업팀들의 반발로 실패한 적이 있었다.

또한 당시 전두환 정권의 3S정책에 힙입은 바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두환 대통령이 축구광이란 점이 가장 큰 배경이었다. 1981년 5월 청와대 비서관들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고자 프로 스포츠를 만들기로 계획했고, 6월에 실업야구 롯데 감독 박영길과 최순영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청와대로 불려갔다. 최 회장은 축구의 프로화 계획에 대해 물어보자, "축구는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고 확신을 갖고 말했다. 반면 야구 측 박영길 감독은 1976년 재미사업가 홍윤희가 주도해 만든 야구의 프로화 청사진이 이미 있다고 어필했다. 청와대는 프로화 종목을 정해둔 것이 아니었고, 어느 쪽이든 구체적인 실현 가능한 계획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호출한 것이었다. 여기서 축구계는 경기장 시설 투자 등 프로화 비용으로 139억 원을 국비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야구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요 인물이었던 이호헌/이용일이 정부 지원 없이[10] 프로화가 가능하다고 보고했다. 결국 청와대는 축구가 아닌 야구를 먼저 프로화 하기로 결정한다.[11]

전두환은 프로축구 출범에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두환은 1981년 4월 30일에 새마을 성금 기탁 기업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에게 할렐루야 팀이 있으니 나무아미타불 팀을 만들어보시라는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느닷없이 유공의 프로축구 팀 창단 검토가 등장한다.

1981년 10월 대한축구협회 최순영 회장은 기존의 할렐루야 팀에다가 1982년 3개 팀을 추가해 총 4개 팀으로, 다시 1983년 4개 팀을 추가해 총 8개 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12] 그러나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1983년 2월, 슈퍼리그 창설위원회가 대한축구협회 산하에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장애물이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 프로팀 초청 건이었다. 국가대표팀과 브라질 프로팀의 초청 경기를 통해 축구 열기를 지핀다는 계획은 참신했지만, 당시 지방 각 시도의 협회 지부는 "프로야구 때문에 관객유치가 곤란하다. 적자를 내면서까지 대회를 유치할 수는 없다"며 반대했다. 뿐만 아니라 프로화에 대해 오히려 실업팀이나 프로팀마저 슈퍼리그에 제각각의 이유를 대며 딴지를 거는 통에 협회는 내부싸움까지 겹쳐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신한 것은 그해 개최된 대통령배로, 협회는 첫 개막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72경기 동안 20만 명의 관중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주택은행한일은행 그리고 현대가 슈퍼리그 참가를 요청해 올 정도로 프로축구 출범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었다.

1.2.2. 새로운 변화 (1984년 ~ 1993년)

전년도의 성공적인 흥행과 함께 운영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들이 대거 참가하는 데 힘입어, 1984 시즌에 참가팀이 8팀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한국기독교선교원, 대한석유공사, 포항제철, 대우, 럭키금성, 현대 등 6개 프로 구단과 국민은행, 한일은행 등 2개 실업 구단의 참가가 결정되었다. 상금도 대폭 늘어, 1억 4천만 원이 늘어난 3억 원으로 결정되었다. 우승팀은 1억원, 2위팀은 7,500만 원, 3위팀은 5,000만 원 정도였다.[13] 특히 선수단에 있어서도 조영증, 허정무와 같은 해외 선수들의 국내 복귀와 외국인 선수 영입 등이 이어지면서 그 질과 양이 대폭 개선되었다. 또한 관중을 불러오기 위한 경품 제공량도 원년의 1억 3천만 원에서 3억 5천만 원 가량으로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한편 리그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외래어 사용이 심하다는 정부 지적에 따라 「슈퍼리그」라는 명칭 대신 「축구대제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체육부가 지시하였다. 이로 인해 공식 명칭은 「축구대제전」으로 변경되었지만, 매체나 대중들 사이에선 「슈퍼리그」나 「축구대제전」이라는 두 개의 명칭이 병용되었다.

1985 시즌에는 리그 확대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시즌 중이던 할렐루야 독수리에서 7월 18일 이수정 단장이 선수단을 불러놓고 해체 의사를 밝힘으로써 3차 리그 참가를 포기했다. 또 아마추어로 전환할 선수만 받아서 새롭게 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히면서, 프로축구계에 충격을 안겼다. 특히 구단주인 최순영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은 "선교에 방해만 된다"고 말하며 할렐루야 독수리에 대한 해체 입장을 밝혔다. 할렐루야의 해체가 리그에 미친 충격은 대단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프로축구에 있어 할렐루야의 해체는 다른 축구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최순영 대한축구협회장에게 협회장 직 사임을 요구할 정도로 축구계는 격앙되어 있었다. 이런 와중에 최순영 협회장은 오락가락하며 의사를 번복하다 결국 해체 의사를 다시 밝혔고, 결국 할렐루야는 해체되고 말았다.

1986 시즌은 리그의 운영과 신인 충원에 있어 굵직한 사건이 일어난 해였다. 우선 실업 구단과 프로 구단이 참가하던 ‘축구대제전’과 별도로 프로 구단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를 신설하여 리그를 2개 운영했다. 축구대제전은 지난해 우승팀인 럭키금성 황소를 비롯해 대우 로얄즈, 포항제철 아톰즈, 현대 호랑이, 유공 코끼리 등 5개 프로 구단과 한일은행 축구단 1개 실업 구단이 참가했다. 그리고 춘계 리그와 추계 리그로 나누어 각각 30경기씩 60경기를 치렀고, 각 리그 우승팀이 챔피언 결정전을 가져 최종 우승팀을 가렸다. 5개 프로 구단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는 연고지를 순회하며 경기를 가졌다.[14] 한편, 김종부[15]를 둘러싼 각 구단의 스카우트 파동도 일어났다.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우와 이적 결정권자인 모교 고려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대의 싸움으로 인해 김종부는 무적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한다. 결국은 김종부는 제3의 구단 포항제철로 가게 된다.[16]

1987 시즌에는 대한축구협회에서 프로축구위원회가 발족하여 독립적으로 대회 운영에 관한 사무를 주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실업 구단과 프로 구단 둘 다 참가 가능했던 '축구대제전'을 프로 구단만 참가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꾸면서, 리그 명칭을 '축구대제전'에서 '한국프로축구대회'로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한일은행 축구단이 리그에서 제외되어 5개 프로 구단만의 진정한 프로 리그가 시작되었다. 또한 대회 운영 방식이 리그의 숙원이었던 단일 리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었으며, 입장 수입을 홈 팀의 구단이 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수에 대한 연봉 지급도 기본급과 수당으로 나누고, 출전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여러가지 변화가 많았다. 특히 연고지 정착을 위해 대우 로얄즈는 홈 시즌권을 도입했고, 나머지 구단들도 연고지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6년 프로 구단만 참가하는 리그를 만들기 위해 신설했던 '프로축구선수권대회'는 기존 리그가 프로 구단만 참가하는 리그로 변하게 되자, 1987년 자연스럽게 폐지되어 1986 시즌 한 시즌만 열리고 사라졌다.

1988 시즌에는 전 시즌까지 행해졌던 주말 2연전을 선수 보호 차원에서 폐지하고 1경기만 치르도록 변경하여 경기 수가 작년보다 줄어들었다. 한편, 88 서울 올림픽도 있고 하여 프로축구도 그 바람을 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잔디 보호를 명목으로 서울 등 올림픽이 치러질 경기장에서 리그 경기를 치르지 못하도록 지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리그 경기를 제주, 청주 등 중소도시들만 순회한 까닭에 관중 동원력은 좋지 못했고, 평균관중 3~5,000여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17]

1989 시즌에는 일화 천마의 리그 참가로 6개 구단 체제가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한 시즌 동안 소화해야 할 경기 수가 늘어났다. 4강 신화의 주역인 박종환을 감독으로 선임한 일화는 연고지를 서울로 하였으며, 홈 경기는 동대문운동장을 주 경기장으로 하되 잠실에서도 경기를 하였다.

1990 시즌에는 도시 지역 연고지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각 구단들이 광역 연고에서 도시 연고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2군 리그가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대우 로얄즈동독의 프랑크 엥겔 감독을 선임하며 최초의 외국인 감독을 탄생시켰고, 일화 천마사리체프를 데려오며 최초의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였다.[18]

1991 시즌에는 럭키금성 황소가 모기업의 사명 변경에 따라, 사원투표를 통해 LG 치타스로 구단명을 변경하였다. 또한 유공 코끼리는 작년에 이미 광역에서 도시로 연고지를 이전한 다른 구단들에 이어 인천/경기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리그 일정 또한 기존 6라운드에서 8라운드로 늘어나 팀당 40경기를 소화하게 됐다.

1992 시즌에는 '아디다스컵'이라는 이름으로 리그컵이 최초로 신설되었다. 아디다스컵은 6월 3일 개막하여 격주로 수요일마다 경기를 가졌다. 6개 구단이 2라운드 풀 리그를 치른 뒤 1위와 2위가 홈 앤 어웨이로 결승전을 가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초대 우승은 일화 천마가 가져갔다. 리그컵의 신설로 인해 리그는 다시 6라운드 30경기 체제로 복귀하게 되었다.

1993 시즌에는 무승부 제도를 없애고, K리그 역사 최초로 승부차기 제도를 도입했다. 승부차기 제도는 경기가 동점으로 끝났을 경우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리는 제도였는데,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팀은 승점 2점, 패배한 팀은 무승부 승점과 같은 승점 1점을 얻었다. 다만 이 승부차기 제도에서 0점 승부차기[19]가 2번이나 나왔고, 경기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짐에 따라 승부차기 제도는 한 시즌만에 사라졌다. K리그 역사에 자주 등장했다 사라지는 승부차기 제도의 첫 등장이었다.

1.2.3. 리그의 1차 확장기 (1994년 ~ 2001년)

1994 시즌 5년만에 제 7구단인 전북 버팔로가 호남 연고 첫 구단으로 창단되어 리그에 첫 참가했다. 또한 주류 회사인 하이트가 K리그 사상 첫 타이틀스폰서로 계약해 하이트배 코리안리그로 대회가 명명되었다. 전북 버팔로는 기존 6개 구단과 달리 대기업의 지원 없이 중소기업과 유니폼 공급업체 푸마의 지원금으로만 재정기반을 두고 있어 사실 첫 참가 시도였던 1992년에도 참가가 한번 보류되었던 팀이었다. 심지어 1993년에는 리그 참가 승인을 받고도 리그에 참여하지 못하는 등 꼬이기까지 했는데 그 유명한 신인 선수들의 드래프트 지명 거부사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 당시에 완산에 지명을 받고도 입단을 거부한 선수 중 가장 유망주가 바로 황선홍. 결국 타 팀들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겨우 교통정리는 되었으나 이 때문에 선수 등록 시기를 놓쳐 1993시즌에 참가하지 못했다. 1년 후 기존 연고인 완산 대신 전라북도 광역 연고를 선택하고 겨우 참가했기에 신생팀에 대한 우려는 그 어느때보다 컸다고 할 수 있다. 우려대로 이 팀은 리그 진행 내내 최악의 재정난에 시달리며 독보적인 최하위를 기록, 결국 시즌이 끝나고 해체한다. 심지어 94년 9월 이후로는 연맹이 남은 기간동안 구단을 직접 운영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어야만 하며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자세한 내용은 전북 버팔로 문서 참고. 리그는 30라운드 단일리그 3-1-0 승점제로 환원해서 운영되었고, 월드컵 이후 고정운을 유럽 오퍼를 거절하면서 지켜낸 일화 천마가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무패행진을 달리며 리그를 제패해 연속우승에 성공했다.

1995 시즌에는 8개 구단 체제로 리그가 더 확장되었다. 해체된 전북 버팔로의 선수단을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현양에서 인수하여 전북 다이노스로 재창단하고, 전라남도를 연고로 하는 전남 드래곤즈도 창단되어 리그에 참가했다. 포항제철 아톰즈는 제철을 빼고 포항 아톰즈로 구단명을 바꿨다. 리그의 방식도 크게 바뀌었는데 10년만에 다시 전-후기리그로 운영되어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리그가 운영된 시즌이다. 전기리그 우승팀 일화 천마와 후기리그 우승팀 포항 아톰즈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나 2무승부로 중립지역 플레이오프까지 치르는 초접전 끝에 가레스이상윤의 골든골로 일화 천마가 전무후무한 리그 3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전남 드래곤즈노상래는 프로리그 데뷔 1년차만에 15골로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96 시즌은 리그의 확장 뿐 아니라 대대적인 변화가 많았던 시즌이다. 먼저 구단 표기법이 달라져 연고지를 구단명에 필수적으로 맨 앞에 기재하게끔 바뀌었다. 또한 수원시를 연고로 하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95년 12월 창단해 이 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프로축구연맹의 최대 흑역사라고 볼 수 있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이 시즌에 시행되어 기존 서울시 연고 세팀인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가 각각 천안 일화 천마, 안양 LG 치타스, 부천 유공으로 반강제적으로 연고이전을 당한다. 자세한 경과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문서 참고. 또한 전임 심판제의 실시, 외국인 골키퍼 제한정책이 이때 처음 등장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리그에선 전기리그 우승팀 울산 현대와 창단 1년만에 후기리그를 우승한 파란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어 1승 1패에 종합전적 3:2로 울산이 리그 첫 우승을 차지한다.

1997 시즌 제 10구단인 대전 시티즌이 사상 최초로 기업 연합체의 컨소시엄 형태로 창단되어 리그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국내 프로스포츠 리그 처음으로 두자릿수 구단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리그로 올라서게 되었다. 또한 기존의 아디다스에 이어 프로스펙스가 추가 후원사로 들어오며 프로스펙스컵과 기존 아디다스컵의 두 개의 리그컵이 생겨 정규리그 경기가 18경기로 간소화되었다. 창단 3년차인 전남 드래곤즈가 리그와 아디다스컵을 준우승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부산 대우 로얄즈가 정규리그와 두 개의 리그컵을 모두 석권하는 미친 성과를 올리며 1997 시즌을 말 그대로 지배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했다. 신생팀 대전 시티즌도 신인왕 신진원을 배출하고 중위권에 안착하는 등 리그에 성공적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1998 시즌 월드컵을 맞아 정규리그 일정은 월드컵 이후인 7월로 미뤄졌다. 대신 월드컵 이전엔 아디다스컵과 필립모리스코리아컵[20]이 개최되었다. 또한 무승부가 다시한번 폐지되고 연장전과 승부차기가 도입되어 끝장승부를 보게끔 룰이 수정되었고, 정규리그는 단일리그 대신 18라운드 리그 이후 4위까지 진출하는 프로야구식 계단식 포스트시즌을 추가해 리그 흥행을 더 늘리려는 시도를 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기대 이하의 성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돌아오며 리그 흥행에 악영향이 염려된다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이후 개막한 정규리그에선 오히려 포항의 이동국, 부산의 안정환, 수원의 고종수로 대표되는 스타들의 등장으로 폭발적인 흥행이 지속되었다. 이 시기를 K리그의 르네상스라고 표현한다. 디펜딩 챔피언 부산이 리그컵을 하나 따냈지만 정규리그에선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정규리그 우승팀인 수원이 플레이오프에서 김병지의 그 유명한 헤딩골로 올라온 울산을 챔피언결정전에서 1승 1무로 누르고 창단 3년만에 리그를 제패했다.

1999 시즌엔 리그가 흥행의 정점을 찍게 된다. 총 275만 관중을 기록하며 최다 관중수를 경신했다. 굵직한 국제대회가 많지 않은 해로 정규리그의 비중이 늘어난 해다. 99 대한화재컵이 단기 토너먼트로 규모가 축소된 반면 리그는 기존 18라운드에서 27라운드 및 4강 포스트시즌 체제로 늘어났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무승부 대신 연장전과 승부차기가 진행되었으며 리그 참가 팀의 변동은 없었다. 당시 IMF 관리체제로 국가 경제가 많이 힘들어지면서 가장 직격탄을 맞은 부산 대우 로얄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준PO와 PO를 연이어 통과하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다. 반면 리그 강자로 우뚝 선 수원은 2개의 리그컵과 정규리그까지 모두 우승하며 최강 전력을 과시하며 여유롭게 챔결에서 진출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샤샤신의 손 사건이 터지면서 혈전 끝에 수원이 승리하며 프로 대회 4관왕[21]의 위업을 달성한다. 서정원의 이적 파동과 최용수의 잉글랜드 진출 무산 등 이적 관련해서 이슈가 많았던 시즌이다.

2000 시즌 리그는 정점을 찍고 내려와 분위기는 다소 침체된 상황에서 리그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는 등 호재도 있었다. 저번 시즌과 동일한 제도로 리그가 진행되었고 천안 일화 천마는 연고지 천안시의 외면과 열악한 인프라를 문제삼아 성남시로 연고를 이전하며 성남 일화 천마가 되었고, 경기도에만 4개 구단이 위치하게 되며 이들간의 라이벌리가 더 팽창하였다. 특히 서정원 이적 파동을 겪은 안양 LG 치타스수원 삼성 블루윙즈간의 경기가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하면서 리그 최대의 흥행카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팀내 최고의 스타 안정환이 유럽으로 진출했고, 정신적 지주 김주성이 은퇴, 모기업 대우그룹마저 재정난으로 인해 현대산업개발에 팀을 매각한 부산은 저조한 성적으로 6위로 리그를 마치면서 기나긴 암흑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디펜딩 챔피언 수원 삼성 블루윙즈 또한 부진끝에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작년 리그 꼴찌 안양이 조광래 감독 2년차에 안드레최용수를 앞세워 리그 우승까지 달성하며 반전을 만들어냈다. 정규리그도 2위 부천과 17점 차에 챔피언 결정전까지 1승 + 1승부차기승으로 완승하며 완벽하게 리그를 제패했다.

2001 시즌에는 다시 리그 흥행이 올라오면서 230만 관중을 기록, 2번째로 200만 관중 달성에 성공한다. 3시즌 동안 유지되었던 연장전과 승부차기가 사라지고 다시 3-1-0의 전통적인 승점체계가 도입되었다. 또한 포스트시즌 없이 27라운드 단일리그로 리그가 운영되었다. 리그컵 또한 2개에서 1개로 줄어 아디다스컵만 치러졌다.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드디어 K리그에도 전용구장 시대가 열렸고, 기존의 포항 스틸야드와 더불어 수원 월드컵 경기장, 울산 문수 경기장이 등장했다. 부천 또한 5년간의 목동 생활을 마치고 리모델링된 부천 종합운동장으로 홈 구장을 바꾸게 되어 구단들의 관중수용력이 눈에띄게 좋아졌다. 리그도 마지막까지 우승 향방이 알 수없게 전개되었는데 안양과 수원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남이 연고지 이전 이후 첫 우승으로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했다. 송종국이 부산에서 데뷔하며 신인상을 수상한 시즌이다.

1.2.4. CU @ K리그와 리그의 2차 확장기 (2002년 ~ 2010년)

2002 시즌 대망의 홈에서 하는 월드컵이 시작되는 해로 과거의 운영보다도 더 극단적으로 리그가 변경운영되었다. 과거에도 전반기는 리그컵, 후반기는 정규리그로 나뉘어 운영되었지만, 이 시즌에는 아예 정규리그를 7월로 미뤄 11월 말에 끝내는 약 5개월짜리 초단기 압축 일정으로 리그가 운영되었기 때문. 이렇게 조직력을 맞출 시간을 번 국가대표팀은 다행히 역대급 경기력으로 4강 신화를 이뤄내 2002 시즌은 5개월만에 257만 관중을 동원하는 초대박을 치게 된다. 대학생 신분으로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이천수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프로 데뷔시즌을 보냈고, 베스트 11, 도움왕, 신인왕을 연거푸 석권하며 리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월드컵을 치르느라 월드컵 스타들은 대부분 체력적인 문제에 부딪히며 각 소속팀의 전력에 100퍼센트 도움이 되진 못했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대표팀에 한 명도 차출되지 않은 성남 일화가 리그컵과 K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프로축구연맹도 대표팀 선수 차출에 따른 페널티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즌 한정으로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7명으로 파격적으로 늘려주는 조치를 취했다. 월드컵 후광을 등에 업고 리그는 관중 대박을 쳤지만, 누구도 이 시기를 르네상스로 표현하지 않는데, 서울, 대구, 광주 등 대도시에 팀이 없는 기형적인 리그와, 서포터즈들의 도가 지나친 폭력적 응원, 신규 유입 관중들을 위한 서비스 전무 등으로 물이 들어오는데 노를 젓지 못하며 리그 후반기에는 관중수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2003 시즌부터 월드컵 경기장의 사후 활용의 방안으로 대구 FC광주 상무 불사조가 창단되어 리그는 12팀 체제로 확장되었다. 특히 18년 만의 군 팀의 등장으로 선수들의 병역 문제 해결에 숨통이 트이게 되었고, 당시 월드컵 최종엔트리 탈락과 아시안게임 우승 실패로 병역을 해결해야 했던 이동국이 광주 상무에 입대하여 뛰게 되었다. 리그 방식은 단일리그라는 큰 틀은 유지했지만, 4라운드 44경기 체제로 늘어났다. 따라서 두터운 선수층 확보가 리그 우승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시즌. 리그 외국인 선수들은 월드컵의 후광과 당시 좋지 않았던 브라질의 경제상황이 맞물려 역대급으로 외국인 선수들의 커리어가 좋았는데, 무려 브라질 국가대표 경력이 있던 도도, 나드손, 따바레즈가 각각 울산, 수원, 포항으로 이적해왔고, 브라질 1부리그 스타 공격수였던 마그노또한 전북의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데뷔했다. 성남 일화가 당시 K리그 역대 최다 승점인 91점으로 2위 울산을 크게 앞지르며 우승했고, 성남으로 이적한 김도훈이 28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김도훈[28골], 마그노[27골], 도도[27골]가 벌인 득점왕 경쟁은 가히 역대급. 신생팀 대구 FC는 과거의 빠따명감독 박종환이 초대 감독에 올랐으나 11위에 그쳤다. 다행히 꼴찌는 면했는데 이 시즌 부천 SK22경기 연속 무승의 대기록(...)을 세우며 독보적인 최하위를 마크했기 때문. 광주 상무 불사조는 10위로 마감했다. 대전 시티즌김은중, 이관우, 최은성등을 앞세워 선전하며 축구도시 대전의 슬로건을 내걸게 되는 시즌이다.

2004 시즌 리그 13번째 팀 인천 유나이티드가 처음으로 참가했다. 리그의 홀수 팀 구성, 그리고 여름에 열리는 아테네 올림픽 등으로 인해 리그 방식은 또 한번 바뀌는데 과거의 전-후기 리그와 통합성적으로 4강 플레이오프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또한 올림픽 브레이크 기간에는 2003년 쉬어갔던 리그컵 1라운드 풀리그 방식으로 부활되어 치러졌다. 또한 과거 서울공동화정책으로 안양으로 옮겨간 안양 LG가 2003시즌이 끝나고 기습적으로 서울 연고이전을 발표하며 안양 팬들을 모함한 축구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FC 서울로 명칭을 바꾼다. 이는 지금까지도 FC 서울이 리그에서 가장 안티팬이 많은 원인이 되고 있다. 전기리그는 포항이, 후기리그는 수원이 우승하였고, 이 두팀을 제외한 통합성적 1, 2위인 울산과 전남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리그 우승팀들에게 어드밴티지를 주기 위해 4강 플레이오프는 리그 우승팀의 홈에서 단판으로 치뤄졌으며 결국 포항과 수원이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으로 수원 삼성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당시 포항의 김병지와 수원의 이운재의 승부차기 맞대결이 많은 축구팬들에겐 명장면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신생팀 인천은 전기리그 꼴찌에 그쳤지만 후기리그에서 만회하며 통합성적으로는 꼴찌 탈출에 성공했다. 반면 부천이 2년 연속 통합 순위 꼴찌를 마크하였다.

2005 시즌 K리그는 오랫만에 큰 관심을 받게 되는데 바로 대형신인 박주영의 등장 덕분이었다. 박주영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며 FC 서울에서 데뷔한 그는 12골로 득점 2위에 오르며 신인상을 거머쥔다. 전년도와 같은 전-후기 리그 + 4강 플레이오프 체제였으며, 부산 아이콘스가 모기업이 바뀌고 처음으로 전기리그 우승을 거머쥐는 깜짝 성과를 이뤄냈다. 후기리그는 전통의 강호 성남이 우승했고, 통합 순위 1위 인천과 2위 울산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 2년만에 통합 성적 1위를 달성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또한 플레이오프에서 부산마저 꺾으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비록 울산에게 종합전적 3-6으로 패배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 과정이 후에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축구팬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라리가에서 복귀하며 리그 후반기만 뛴 이천수가 후반기와 챔피언결정전을 지배했고, 이로 인해 울산 현대가 2번째 리그 우승에 성공한다.

2006 시즌 14번째 구단 경남 FC가 탄생했다. 또한 부천 SK가 제주도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지금의 제주 유나이티드로 명칭을 변경해 또다시 큰 논란이 일었다. 이로 인해 그 유명한 패륜드립이 창조되었고, 지금도 일부 팬들은 서울과 제주의 멸칭으로써 사용하기도 한다. 월드컵이 있는 해이기 때문에 월드컵 브레이크에 리그컵이 진행되었고, 전-후기 리그와 4강 플레이오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전기리그를 성남이 압도적으로 우승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고, 월드컵 해설에서 무언가를 보고 오신 차범근 감독의 수원이 부진했던 전기와 달리 후기에서 우승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통합순위로 올라온 포항과 서울을 각각 누르고 두 팀이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나 성남이 2연승으로 우승하며 7회 우승의 대업을 달성했다. 김학범 성남 감독은 차경복 감독 이후 성남에 첫 우승을 안기며 명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07 시즌 연맹이 다시한번 리그 운영제도를 바꾼다. 3년간 유지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아온 전-후기리그 제도를 버리고[24] 2라운드 단일리그 + 6강 플레이오프라는 새로운 제도로 리그가 운영되었다. 이 제도는 승강제 시행 직전인 2011년까지 운영되며 나름 장수했다. 리그컵 또한 몰아서 진행하는 방식이 아닌 유럽식으로 시즌 중간중간 같이 치러지는 방식으로 변경되어 구단들은 대회 운영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다. 이 시즌에 첫 단일 경기 5만명 관중 입장 경기가 나왔는데, 서울과 성남이 상암에서 맞붙은 경기가 55397명이 입장하며 서울 연고지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FC 서울은 이날 욕을 먹으면서도 서울 연고이전을 감행한 이유를 보여주었다. 창단 2년차 경남 FC가 외국인 선수 까보레뽀뽀의 활약으로 무려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대전 시티즌 또한 시민구단 전환 이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장 이변은 5위 포항 스틸러스업셋 쇼였는데 4위 경남, 3위 울산, 2위 수원을 연이어 잡아내며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 정규 1위인 성남까지 2연승으로 잡으며 우승을 하는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이때 포항 감독 세르지오 파리아스스틸러스 웨이 혁명적인 리그 전술로 각광받았고 15년만의 리그 우승을 일궈낸다.

2008 시즌에는 전년도 포맷을 유지한 채 리그가 진행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있어 중간에 휴식기가 존재했고, 포항의 우승으로 상위팀에 너무 메리트가 없다고 비판받은 포스트시즌 일정은 하위팀에게 보다 타이트하게 짜여지며 약간의 보완 과정을 거쳤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의 차기 시즌 참가팀 확대로 리그 우승팀 뿐 아니라 2위, 3위에게도 출전권이 주어지게 되며 순위싸움의 동기부여가 더 강해졌다. 2006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전북 현대가 처음으로 이 시즌 6위로 마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준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한다. 시즌 내내 수원과 서울의 선두다툼이 매우 치열했고, 이 두팀은 결국 챔피언결정전에도 올라 수원이 1승 1무로 앞서며 우승한다. 당시 수원과 서울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공중파 TV 중계 시청률은 지금까지도 K리그 공중파 최고 시청률 기록으로 깨지지 않고 있다.

2009 시즌 리그는 첫 타이틀 스폰서를 유치한 1994년 이후 최초로 스폰서 유치에 실패하며 그냥 K리그로만 명명되었다.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를 하나의 대회로 브랜딩 시키는 전략으로 K리그 챔피언십이라 명명하고 현대자동차의 스폰서 조인계약으로 소나타 K리그 챔피언십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15번째 팀 강원 FC가 창단되었고, 당시 2부리그격으로 기능했던 한국 내셔널리그 탑 선수들을 주축으로 영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팀 영입기조로 인해 늦깎이로 리그에 데뷔한 김영후는 13골을 잡아내면서 최고령 신인왕에 등극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 6심제가 도입되고 Man Of the Match를 선정하는 소소한 변화가 생겼으며, 세뇰 귀네슈, 세르지오 파리아스, 일리야 페트코비치 등 그 어느때보다 외국인 감독이 많았던 시즌이기도 했다. 리그 4위로 올라온 성남이 5위 인천, 6위 전남, 2위 포항을 연이어 이기는 업셋을 또 보여주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나 리그 1위를 차지한 전북이 성남을 1승 1무로 잠재우고 역사상 첫 K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미들즈브러성남 일화에서 연거푸 실패하며 아무도 부활할꺼라 믿지 않았던 이동국이 득점왕을 차지하며 기적적으로 부활해 리그 우승까지 경험한 사건이다.

2010 시즌 현대자동차의 스폰서로 소나타 K리그 2010이라는 명칭으로 다시금 타이틀 스폰서 유치에 성공한다. 실제 경기 시간을 늘려보자는 추지의 5분 더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교체선수 인원이 6명에서 7명으로 늘어나는 등 소소한 변화가 생겼다. 박경훈 감독의 지휘와 유망주 구자철의 맹활약으로 제주 유나이티드가 2위를 차지하며 연고 이전 이후 처음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디펜딩 챔피언 전북을 꺾고 1위 서울과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2000 시즌 챔피언 결정전의 리턴 매치이자 연고이전을 경험한 두 팀의 경기라 좋은 쪽, 나쁜 쪽으로 모두 화제가 되었고, 서울에서 벌어진 2차전엔 56000명이 운집하기도 했다. 서울이 1승 1무로 이기며 10년만에 다시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신인 유병수가 22골이나 잡아내며 득점왕을 차지했고, 윤빛가람조광래 감독과 환상의 호흡을 발휘하며 경남의 리그 중반 선두싸움에 기여한 결과 신인상을 수상한다. 이 두 선수는 나란히 2011 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뽑힌다.

1.2.5. 승부조작, 승강제 그리고 반등 (2011년 ~ 현재)

2011 시즌 K리그 16번째 구단 광주 FC가 창단하였다. 과거 광주 상무의 광주광역시 연고 조건이었던 향후 시민구단 전환에 따라 탄생한 팀으로 자연스럽게 상무는 새 연고지인 상주시에 둥지를 틀어 상주 상무로 재탄생했다. 남아공 월드컵의 선전과 2011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재밌는 축구로 축구의 인기가 올라갔고, 이로 인해 K리그 또한 많은 스폰서를 확보하는 등 호기롭게 시즌 초반을 진행했다. 그러나 5월 6일 전 인천 선수 윤기원이 차량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또한 차량에서 현금이 발견되는 등 수상한 정황이 발견되며 작년부터 떠돌기 시작했던 승부조작의 루머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의혹이 커지자 프로축구연맹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5월 21일 현역 선수 2명이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줄줄이 선수들이 구속되가면서 의혹이 현실로 닥쳐왔다. 1차로 4명 구속, 11명 영구제명, 2차로 40명 영구제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K리그는 올라가던 인기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 중 상주 상무는 줄줄히 선수들이 구속되고 감독까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아 감독이 억울함을 표출하며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등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구단이었다. 승부조작의 요인으로는 저임금 선수들의 금전에 눈이 먼 행태, 상무 팀 선수들의 낮은 군인월봉의 한계 등이 꼽히며 특히 주로 리그컵에서 이런 조작 경기가 많았다는 것은 안 그래도 권위가 추락한 리그컵이 결국 차기시즌 폐지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더 세부적인 사항은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문서 참고. 이렇게 되면서 몇몇 팀은 중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고, 특히 군팀인 상주 상무는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어 수비수가 골키퍼를 보게 되는 등 웃지못할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이런 악재 속에서 전북이 K리그 2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K리그 강팀 반열에 올랐음을 알렸다.

2012 시즌 K리그는 다음시즌 리그 출범 30주년을 기념하고 작년의 승부조작의 악재를 돌파하기 위해 전격적인 승강제 도입을 발표한다. 과거 실업축구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와의 연계를 통한 승강제를 추진했다 무산된 전력으로 인해, 이번에는 K리그 자체적인 2부리그를 따로 만들어 그 안에서 승강이 이루어지게 하는 형식으로 승강제를 모델링했다. 승강제는 예상대로 기존 구단들의 반대에 부딫혔는데 특히 시민구단들은 2부리그로 떨어질 경우 구단의 존립 자체가 위협된다며 극구 반대하기도 했다가 결국 도입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주 상무를 성적과 관계없이 차기 시즌 2부리그 강등을 결정한 안은 유지되어 이에 반발한 상주 상무가 시즌 중반 스플릿 라운드부터 리그를 보이콧하며 리그는 파행운영되었다.우여곡절 끝에 첫 안이었던 2012시즌 4팀 강등안 대신 절충안으로 2012시즌 2팀, 2013시즌 2.5팀 강등으로 승강제 도입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강등팀을 가리기 위해 기존의 6강 플레이오프제는 폐지되었고,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단일리그 + 스플릿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한시적으로 정규 30라운드 + 스플릿 14라운드로 44라운드 리그제가 되어 우승팀 FC 서울은 리그 최다 승점기록을 96점으로 늘리며 경신했고, 득점왕인 데얀 또한 31골로 역대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득점왕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승강제 도입 첫 해 예상대로 광주, 강원, 대전 등의 시민구단들이 하위 스플릿에 떨어져 리그 잔류싸움을 벌였고, 15위를 최종적으로 광주가 차지해 차기시즌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또한 리그 관중수에 공짜표 등의 이른바 뻥튀기 관중이 많이 반영되어있다는 지적에 대한 대응으로 실관중 집계를 처음 도입한 시즌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리그 평균관중이 1만명 이하로 확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2013 시즌 K리그 1부리그는 K리그 클래식, K리그 2부리그는 K리그 챌린지로 첫 출범하였다. 새롭게 구성된 2부리그에는 강등된 상주 상무, 광주 FC와 신생팀 FC 안양, 한국 내셔널리그에서 건너온 수원 FC, 고양 Hi FC, 충주 험멜, 2군리그인 R리그에만 객원으로 참가하던 경찰 축구단K3 챌린저스리그에서 참가한 부천 FC 1995까지 총 8팀으로 첫 시즌을 치루게 되었다. 특히 군팀인 상주와 경찰 축구단이 한 리그에 속하게 되면서 이른바 군경더비가 탄생하였다. 축구선수들의 병역 해결의 길이 넓어진 순기능이 있지만 경찰 축구단이 연고지를 구하지 못하며 한 시즌을 통으로 원정경기만 치르는 등 준비되지 않은 팀을 억지로 참여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K리그 챌린지는 팀 수가 아직 적은 관계로 5바퀴 도는 풀리그로 총 35라운드, K리그 클래식은 지난 시즌에 이어 정규 2바퀴 26경기 + 스플릿 12경기로 운영되며 팀당 38경기 체제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시즌에도 상위권 - 기업구단, 하위권 - 시민구단의 공식은 대체로 맞아들어갔고 14위 대전과 13위 대구가 다이렉트 강등, 12위 강원은 챌린지 초대 우승팀인 상주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처음 치르게 되었다. 클래식 상위 스플릿에선 동해안 더비를 구성하는 라이벌 포항과 울산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고, 지지만 않으면 우승하던 울산에게 후반 추가시간 골을 넣은 포항이 극적인 역전우승을 차지한다. 승강 PO에선 상주가 도합 4-2로 승리하며 첫 승격팀으로 기록되었다. 선수들의 연봉이 공개되는 첫 시즌이기도 했다. 투명한 구단 운영을 유도해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었으나 이후 국내 선수들의 연봉수준이 전 세계에 오픈되어 일본과 중국으로 리그 스타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가게 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2014 시즌은 K리그 클래식 12팀 - K리그 챌린지 10팀의 현 체제가 완성된 첫 시즌이다. 클래식은 정규리그 33라운드 + 스플릿 라운드 5라운드로 총 38경기, 챌린지는 정규리그 4바퀴 라운드로 팀당 36경기를 치른다. 또한 챌린지에 플레이오프가 도입되어 3위와 4위가 3위의 홈에서 준플레이오프를, 2위와 준PO 승자가 2위의 홈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뤄 승강PO에 진출할 팀을 가리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특히 준PO와 PO가 홈&어웨이가 아닌 단판으로 치뤄지고 무승부로 90분 경기를 마무리할 경우 정규리그 순위가 높은 팀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는 규정이 도입되면서 리그 순위에 확실한 메리트를 부여하였다. 시즌 전 일화의 경영 표기로 해체 위기에 놓였던 명문 구단 성남 일화가 다행히 성남시에서 인수를 하며 시민구단 성남 FC로 재탄생했다. 초반 박종환 감독의 구식 지도로 촉발된 선수단과의 마찰과 구타 스캔들 등으로 어수선하게 시작했으나, 리그는 8위로 마감했지만 FA컵에서 우승하는 깜짝 성과를 거두며 차기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또한 챌린지의 경찰 축구단안산시에 연고를 구하면서 안산 경찰청으로 참가해 정상적인 승격 조건을 갖춘 팀이 되었다. 클래식에선 전북이 우승을 차지했고 승격팀 상주가 다이렉트 강등되었다 챌린지에선 강등팀 대전이 조진호 감독과 아드리아노를 앞세워 우승하며 1년만에 승격에 성공했고, 플레이오프에선 4위 광주가 3위 강원, 2위 안산을 연이어 물리치고 승강 PO에서 클래식 11위 경남마저 누르며 극적인 승격을 달성한다. 이 때부터 당시 남기일 감독대행이 명장으로 주목받게 된다.

2015 시즌 K리그 전체 23번째 구단인 서울 이랜드가 창단해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수원 삼성 이후 19년만에 기업구단이 등장했고 연고지도 무려 서울이라 창단 작업 자체가 축구팬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특히 과거 국가대표팀의 홈 구장으로 쓰였던 서울 올림픽 주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정하고 여기에 가변석을 세워 운영하는 등의 파격적인 시도로 단숨에 서울 이랜드는 리그 문화를 선도하는 팀으로 꼽히게 된다. 따라서 챌린지는 11팀으로 운영되어 팀당 40경기로 경기수가 늘어났다. 클래식에서는 처음으로 기업구단인 부산 아이파크가 11위로 승강 PO로 떨어지며 강등의 위험에 봉착했고, 대전 시티즌은 승격 1년만에 강등되며 여전히 1부와 2부 사이의 격차가 꽤 크다는 것을 입증했다. 반면 같이 승격한 광주는 잔류에 성공해 승격 시즌 첫 잔류팀으로 기록되었다. 상위 스플릿에선 전북이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챌린지에선 강등팀 상주가 우승하며 다시 클래식으로 승격했고, 신생팀 서울 이랜드가 4위에 올라 2위 대구, 3위 수원FC과 플레이오프 티켓을 두고 경쟁했다. 그 결과 수원 FC가 승강 PO에 진출해 부산마저 제압하고 내셔널리그 출신 팀으론 처음으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는데 성공했다. 대구는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조나탄을 득점왕으로 배출했다. 한편 챌린지 구단 경남 FC는 구단 사장인 안종복씨의 심판 매수 혐의가 발각되며 차기 시즌 승점 10점 감점 징계를 받게 되었다.

2016 시즌 K리그에 31년만에 동남아시아 선수인 르언쑤언쯔엉인천 유나이티드에 임대이적하면서 등장했다. K리그 구단이 마케팅적 시도를 위해 선수를 영입한 거의 첫 사례로 시즌 4경기 출장에 그쳤으나 베트남에 K리그 인천 경기 중계권이 팔리는 등 성과도 만들어냈다. 전북 현대가 3년 연속 우승을 목표로 하며 33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는 등 일방적인 우승이 점쳐졌으나, 9월 30일 2013년 시즌에 저지른 심판매수 혐의가 발각되면서 승점 9점이 감점되어 큰 차이로 뒤쳐진 2위 FC 서울과의 우승레이스가 갑자기 치열해졌고, 결국 마지막 라운드에서 서울이 전북을 꺾고 역전우승을 하는 일이 생겼다. 리딩 구단으로써 전북의 승부조작 혐의는 큰 충격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혐칭으로써 전북을 괴롭히는 흑역사가 되었다. 승격팀 수원 FC는 한계를 보이며 다이렉트 강등되었고, 전반기 선두권 경쟁까지 하던 성남 FC가 끝없는 부진끝에 11위로 승강 PO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챌린지에선 다음 시즌 재창단이 예정되어 있던 안산 무궁화가 우승하는 바람에 승격 자격이 2위로 넘어가 대구 FC가 승격권을 물려받았고, 3위부터 5위까지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시즌이 되었다. 4위 강원이 5위 부산, 3위 부천을 연거푸 꺾고 승강 PO에 올라갔으며 이 기세로 클래식 11위 성남마저 누르고 1부리그 복귀에 성공한다. 이 시즌부터 K리그가 KBS 공중파 중계 계약을 맺어 한달에 2경기씩 의무적으로 KBS 중계 송출을 하게 되었다. 한편 K리그 챌린지에서 성적도, 흥행도 부족했던 두 구단인 고양 자이크로충주 험멜이 각각 운영난과 재정난을 이유로 해체하면서 졸지에 K리그 챌린지 팀 수는 줄어들 처지에 놓였다.

2017 시즌 리그 스폰서가 현재의 KEB 하나은행으로 바뀌었다. 승격팀 강원 FC가 사상 최초로 승격 시즌 상위 스플릿에 진출했고, 같이 올라온 상주 상무는 또 11위에 그치며 다시 강등의 위기에 빠졌다. 3년간 버틴 광주가 최하위로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상위 스플릿에서는 지난 시즌 징계로 AFC 챔피언스리그마저 박탈된 전북이 리그에만 집중한 결과 비교적 손쉽게 우승했으며 제주가 7년만에 리그 준우승을 달성한다. 챌린지는 2개 구단이 해체되었지만 다행히 안산 그리너스가 창단되며 10개 구단 체제로 어느 정도 리그 파이를 지켜냈다. 자연히 안산 무궁화는 연고지를 옮겨 아산 무궁화로 재창단되었다. 김종부 감독의 경남 FC말컹을 앞세워 압도적으로 리그를 우승하며 1부리그로 복귀를 확정지었으며 2위 부산은 리그 2위로는 처음으로 승강 PO 진출에 성공해 상주와 맞대결을 벌였다. 승강 PO에서 상주와 부산은 1승 1패씩 주고받아 처음으로 승부차기까지 실시했고, 여기서 상주가 5-4로 승리하며 K리그 클래식 11위팀으론 첫 잔류에 성공했다.

2018 시즌 승강제 출범과 함께 도입했던 리그 명칭인 클래식, 챌린지 대신에 직관성을 높이기 위해 K리그 1, K리그 2로 명칭을 변경했다. 다만 2018시즌 한정해서 두 명칭은 혼용되었다. K리그 1 승격팀인 경남 FC가 지난 시즌 강원이 승격팀 최고순위인 6위를 뛰어넘어 무려 준우승을 차지하며 승격팀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다. 반면 리그의 중견 강호였던 전남 드래곤즈가 최하위로 사상 첫 강등의 쓴잔을 들이켰고, 2년 전 챔피언 FC 서울은 11위로 승강플레이오프에 가는 등 여러모로 이변이 많았던 시즌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국가대표팀의 반전의 성적으로 인해 최악이던 리그 인기가 급반등하는 호재를 맞이했고, 말컹의 1부리그 폭격,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예른 안데르센인천 유나이티드 사령탑 부임 등 많은 이슈들이 겹치며 오랫만에 K리그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다. 전북이 리그 2연패에 성공하며 승부조작의 후유증을 완전히 털어버린 시즌이기도 했다. K리그 2에서는 아산 무궁화가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지만, 시즌 도중 구단 선수단의 모체인 경찰이 의경 폐지를 검토하게 되면서 더이상 축구선수들의 의경 입대로 인한 선수수급이 불가능하게 되자 승격권이 박탈되었다. 따라서 리그 2위인 성남 FC가 다이렉트 승격권을 물려받았고, 3위부터 5위까지 플레이오프에 진출, 3위 부산이 다시한번 승강 PO에 진출했다. 부산과 서울의 승강 PO에서 서울이 1승 1무로 생존에 성공해 부산은 승강 PO 3회 진출, 3회 탈락의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2019 시즌 K리그 1의 스플릿 라운드가 파이널 라운드로 명칭이 변경되어 파이널 A, 파이널 B로 기존 상, 하위 스플릿 그룹의 새 명칭이 되었다. K리그 2의 아산 무궁화가 전격적으로 일반인 신분의 축구선수를 영입하며 사상 초유의 군경-시민 혼합구단의 형태로 리그에 계속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승격권은 박탈되었다. 2019년 9월 마지막 의경 기수인 이명주, 주세종이 전역하면서 아산은 완전한 시민구단으로 전환, 다음 시즌 참가를 위해 지자체를 꾸준히 설득했고, 결국 2020시즌부터 충남 아산 FC로 재창단되어 계속 리그에 남게 되었다. 지난 시즌 FA컵을 우승하면서 사상 첫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게 된 대구 FC가 홈 구장을 신축 전용구장인 DGB대구은행파크로 옮기면서 일약 리그의 최고 흥행팀으로 거듭나게 되어 1만석 내외의 전용구장이 리그의 새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리그 1에선 14년만의 우승을 노리던 울산 현대포항 스틸러스와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대패를 하고 말아 전북 현대가 골득실 차로 역전우승을 달성, 성남 FC와 함께 7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기록 타이를 기록한다. 반면 기업구단 제주 유나이티드는 창단 첫 강등을 당했고 전 시즌 준우승의 경남 FC 또한 11위로 처져 승강 PO로 가게되었다. 리그 2에서는 광주 FC가 첫 우승을 하며 4년만에 리그 1으로 복귀했고, K리그 2 원년 참가 구단 중 유일하게 플레이오프에도 가지 못했던 FC 안양이 3위로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러나 2위 부산이 또 다시 승강 PO에 진출하며 경남과 맞붙었다. 승강 PO에서 부산이 드디어 승격에 성공하면서 경남은 전 시즌 리그 준우승 팀이 강등되는 사례를 만들었다.

2020 시즌 사상 첫 2월 29일 윤일 개막을 계획하였지만 전 지구적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리그가 2개월이나 연기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행히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방역을 펼치며 무관중으로나마 리그 재개가 가능하게 되었고, 리그 방식은 같으나 경기수가 1부리그, 2부리그 모두 27경기로 줄어 개막하게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유럽리그가 재개 불가능한 상황에서 K리그 개막 소식에 세계 여러 스포츠 방송국에서 K리그 중계권을 사가는 현상이 나타나며 K리그는 올 시즌부터 영국 BBC, 독일 스포츠디지털 등 전 세계 37개국에 중계되는 국제적인 리그로 그 주목도가 매우 높아졌다. 리그 팀의 변동도 많았는데 리그 2의 대전 시티즌하나은행에게 매각되며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다시 기업구단이 되었고, 아산 무궁화 또한 완전한 시민구단인 충남 아산 FC로 거듭났다. 또한 상주 상무의 연고지 계약 만료가 2020년으로 다음 시즌 재창단과 연고이전이 불가피해 상주 상무는 리그 성적에 관계없이 2부리그 자동 강등이 예정되어있다. 즉, 상주시의 자체적인 신생 시민구단과 상무 부대가 새롭게 연고를 구해 창단하는 구단으로 2개의 구단이 2021시즌 2부리그에 참여하게 될 예정인 것이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재유행으로 리그가 다시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에 대비해 리그 1은 22경기, 리그 2는 18경기를 치뤄야 정상적인 시즌 진행으로 인정하는 기준을 마련, 이 기준에 못미친 리그 진행상황에선 우승, 승격, 강등이 상주 상무를 제외하곤 시행되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경우에 따라서 차기 시즌 K리그 1이 11팀이 될 수도 있으며 승강 플레이오프 또한 치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계획이다. 상주 상무가 최하위를 차지할 경우에만 K리그 1 11위 팀이 K리그 2 플레이오프 승자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2. 참가 구단의 변동

연도

팀명

구단 형태

연고지

비고

1983

할렐루야 독수리

프로/종교구단[25]

강원/충남/충북

최초의 프로축구팀. 1986년 실업 리그 행. 1998년 해체됐다.

유공 코끼리

프로/기업구단

서울/인천/경기

유공 코끼리(1983~1995년)부천 유공(부천)(1996년)부천 SK(부천)(1997~2005년)제주 유나이티드(제주)(2006년~현재)

대우 로얄즈

실업/기업구단

부산/경남

대우 로얄즈(1983~1995년)부산 대우 로얄즈(부산)(1996~1999년)부산 아이콘스(부산)(2000~2004년)[26]부산 아이파크(부산)(2005년~현재)

포항제철 돌핀스

실업/기업구단

대구/경북

포항제철 돌핀스(1983~1984년)포항제철 아톰즈(1985~1994년)포항 아톰즈(포항)(1995~1996년)포항 스틸러스(포항)(1997년~현재)

국민은행 까치

실업/기업구단

전북/전남

1985년 실업 리그 행. 1997년 해체됐다.[27]

1984

럭키금성 황소

프로/기업구단

충남/충북

럭키금성 황소(1984~1990년)LG 치타스(1991~1995년)안양 LG 치타스(안양)(1996~2003년)FC 서울(서울)(2004년~현재)[28]

현대 호랑이

프로/기업구단

인천/경기

현대 호랑이(1984~1995년)울산 현대 호랑이(울산)(1996~2008년)울산 현대(울산)(2009년~현재)

한일은행 축구단

실업/기업구단

없음

실업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29] 1987년 실업 리그 행. 1997년 해체됐다.

1985

상무 축구단

군팀

없음

실업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1986년 실업 리그 행. 2003년부터 광주나 상주 등 지자체와 연고 협약을 맺으며 K리그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1989

일화 천마

기업구단[30]

서울

일화 천마(1989~1995년)천안 일화 천마(천안)(1996~1999년)성남 일화 천마(성남)(2000~2013년)성남 FC(성남)(2014년~현재)[31]

1994

전북 버팔로[32]

기업구단

전북

호남 최초의 축구단[33]. 경영 악화로 선수단이 전북 다이노스에 인수되면서 1994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1995

전남 드래곤즈

기업구단

전남

포항제철의 두 번째 구단.

전북 다이노스[34]

기업구단

전북

전북 다이노스(전북)(1995~1996년)전북 현대 다이노스(전북)(1997~1999년)전북 현대 모터스(전북)(2000년~현재)

1996

수원 삼성 블루윙즈

기업구단

수원

1997

대전 시티즌

기업구단

대전

대전 시티즌(대전)(1997~2019년)[35]대전 하나 시티즌(대전)(2020년~현재)[36][37]

2003

광주 상무 불사조

군팀

광주

광주가 신규 구단을 창단하려다가 어려워지자 상무 축구단과 연고 협약을 맺으며 광주를 연고지로 창단하게 됐다. 2010 시즌을 끝으로 광주와 연고 협약이 종료되고, 상무 축구단이 상주와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광주 상무 불사조는 해체됐다.

대구 FC

시민구단

대구

최초의 시민구단

2004

인천 유나이티드

시민구단

인천

2006

경남 FC

도민구단

경남

2009

강원 FC

도민구단

강원

2011

광주 FC

시민구단

광주

상무 축구단이 상주와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상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광주 상무 불사조가 해체되면서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되었다.

상주 상무 피닉스

군팀

상주

상주 상무 피닉스(2011~2012년)상주 상무(2013년~현재)
광주 상무 불사조의 상무 축구단이 상주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새로 창단되었다.[38]

2013

경찰 축구단

경찰팀

없음

경찰 축구단(2013년)[39]안산 경찰청 축구단(안산)(2014~2015년)[40]안산 무궁화(안산)(2016년)
2016 시즌을 끝으로 안산과 연고 협약이 종료되고, 경찰 축구단이 아산과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안산 무궁화는 해체됐다.

고양 Hi

종교구단

고양

고양 Hi(고양)(2013~2015년)[41]고양 자이크로(고양)(2016년)[42]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하며 참가하게 되었다.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부천 FC 1995

시민구단

부천

K3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하며 참가하게 되었다.

수원 FC

시민구단

수원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하며 참가하게 되었다.

충주 험멜

기업구단

충주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하며 참가하게 되었다.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FC 안양

시민구단

안양

2015

서울 이랜드

기업구단

서울

2017

안산 그리너스

시민구단

안산

경찰 축구단이 아산과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아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안산 무궁화가 해체되면서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되었다.

아산 무궁화

경찰팀

아산

안산 무궁화의 경찰 축구단이 아산으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새로 창단되었다.[43] 2019 시즌을 끝으로 경찰 축구단이 해체되면서 아산 무궁화도 함께 해체됐다.

2020

충남 아산 FC

시민구단

아산

아산 무궁화가 해체되면서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되었다.

3. 참가 구단 연혁

시즌

클럽 수

비고

1

2

1983

5

5

슈퍼리그 창설
할렐루야 독수리 참가
유공 코끼리 참가
대우 로얄즈 참가
포항제철 돌핀스 참가
국민은행 까치 참가

1984

8

8

럭키금성 황소 참가
현대 호랑이 참가
한일은행 축구단 참가

1985

8

8

국민은행 까치 탈퇴
상무 축구단 참가

1986

6

6

할렐루야 독수리 탈퇴
상무 축구단 탈퇴

1987

5

5

한일은행 축구단 탈퇴

1989

6

6

일화 천마 참가

1994

7

7

전북 버팔로 참가

1995

8

8

전북 버팔로 해체
전남 드래곤즈 참가
전북 다이노스 참가

1996

9

9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참가

1997

10

10

대전 시티즌 참가

2003

12

12

광주 상무 불사조 참가
대구 FC 참가

2004

13

13

인천 유나이티드 참가

2006

14

14

경남 FC 참가

2009

15

15

강원 FC 참가

2011

16

16

광주 상무 불사조 해체
상주 상무 피닉스 참가
광주 FC 참가

2013

14

8

22

K리그 챌린지 창설
K리그 클래식에서 K리그 챌린지로 2개 구단 강등
K리그 챌린지에 6개 구단 참가
경찰 축구단 참가
고양 Hi 참가
부천 FC 1995 참가
수원 FC 참가
충주 험멜 참가
FC 안양 참가

2014

12

10

22

K리그 클래식에서 K리그 챌린지로 2개 구단 강등

2015

12

11

23

K리그 챌린지에 서울 이랜드 참가

2017

12

10

22

안산 무궁화 해체
고양 자이크로 해체
충주 험멜 해체
K리그 챌린지에 아산 무궁화 참가
K리그 챌린지에 안산 그리너스 참가

2020

12

10

22

아산 무궁화 해체
K리그2에 충남 아산 FC 참가

4. 참가 구단 (2020 시즌)

엠블럼

구단

연고지

리그 참가

주 경기장

K리그1 2020

[image]

강원 FC

강원도(춘천시)

2009

춘천송암레포츠타운

[image]

광주 FC

광주광역시

2011

광주월드컵경기장

[image]

대구 FC

대구광역시

2003

DGB대구은행 파크

[image]

부산 아이파크

부산광역시

1983

구덕운동장

[image]

상주 상무

상주시

2011

상주시민운동장

[image]

FC 서울

서울특별시

1984

서울월드컵경기장

[image]

성남 FC

성남시

1989

탄천종합운동장

[image]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시

1996

수원월드컵경기장

[image]

울산 현대

울산광역시

1984

울산문수축구경기장

[image]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광역시

2004

인천축구전용경기장

[image]

전북 현대 모터스

전라북도(전주시)

1995

전주월드컵경기장

[image]

포항 스틸러스

포항시

1983

포항스틸야드

K리그2 2020

[image]

경남 FC

경상남도(창원시)

2006

창원축구센터

[image]

대전 하나 시티즌

대전광역시

1997

대전월드컵경기장

[image]

부천 FC 1995

부천시

2013

부천종합운동장

[image]

서울 이랜드

서울특별시

2015

서울올림픽주경기장

[image]

수원 FC

수원시

2013

수원종합운동장

[image]

충남 아산 FC

아산시

2020

이순신종합운동장

[image]

안산 그리너스

안산시

2017

안산와~스타디움

[image]

FC 안양

안양시

2013

안양종합운동장

[image]

전남 드래곤즈

전라남도(광양시)

1995

광양축구전용구장

[image]

제주 유나이티드

제주특별자치도(서귀포시)

1983

제주월드컵경기장

5. 상금 규모

리그

분류

부문

상금

비고

K리그1 2019

단체상

우승

5억 원

준우승

2억 원

페어 플레이

1000만 원

페어 플레이 점수를 산정하여 가장 점수가 높은 팀에게 수여한다.

개인상

득점왕

500만 원

[44]

도움왕

300만 원

K리그2 2019

단체상

우승

1억 원

개인상

득점왕

300만 원

[45]

도움왕

150만 원

6. 우승 트로피

[image]

K리그1 우승 트로피

[image]

K리그2 우승 트로피

7. 리그 패치

K리그 챔피언 패치

K리그1 패치

K리그2 패치

[image]

[image]

[image]

[image]   역대 리그 패치에 대한 내용은 K리그/패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8. 공인구

9. 시즌별 일람

K리그 시즌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K리그1 시즌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K리그2 시즌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시즌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10. 리그 연혁

10.1. 역대 K리그1 우승팀

연도

우승팀

준우승팀

리그 방식

1983

할렐루야 독수리

대우 로얄즈

단일 리그

1984

대우 로얄즈

유공 코끼리

전후기 리그/
챔피언 결정전

1985

럭키금성 황소

포항제철 아톰즈

단일 리그

1986

포항제철 아톰즈

럭키금성 황소

전후기 리그/
챔피언 결정전

1987

대우 로얄즈

포항제철 아톰즈

단일 리그

1988

포항제철 아톰즈

현대 호랑이

1989

유공 코끼리

럭키금성 황소

1990

럭키금성 황소

대우 로얄즈

1991

대우 로얄즈

현대 호랑이

1992

포항제철 아톰즈

일화 천마

1993

일화 천마

LG 치타스

1994

일화 천마

유공 코끼리

1995

일화 천마

포항 아톰즈

전후기 리그/
챔피언 결정전

1996

울산 현대 호랑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7

부산 대우 로얄즈

전남 드래곤즈

단일 리그

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호랑이

단일 리그/
4강 플레이오프

1999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산 대우 로얄즈

2000

안양 LG 치타스

부천 SK

2001

성남 일화 천마

안양 LG 치타스

단일 리그

2002

성남 일화 천마

울산 현대 호랑이

2003

성남 일화 천마

울산 현대 호랑이

20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포항 스틸러스

전후기 리그/
4강 플레이오프

2005

울산 현대 호랑이

인천 유나이티드

2006

성남 일화 천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 천마

단일 리그/
6강 플레이오프

2008

수원 삼성 블루윙즈

FC 서울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성남 일화 천마

2010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2011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2012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단일 리그/
스플릿

2013

포항 스틸러스

울산 현대

2014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5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2017

전북 현대 모터스

제주 유나이티드

2018

전북 현대 모터스

경남 FC

2019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10.2. K리그1 우승 횟수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성남 FC

7

3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2006

1992, 2007,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7

2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12, 2016

FC 서울

6

5

1985, 1990, 2000, 2010, 2012,
2016

1986, 1989, 1993, 2001, 2008

포항 스틸러스

5

4

1986, 1988, 1992, 2007, 2013

1985, 1987, 1995, 20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4

4

1998, 1999, 2004, 2008

1996, 2006, 2014, 2015

부산 아이파크

4

3

1984, 1987, 1991, 1997

1983, 1990, 1999

울산 현대

2

8

1996, 2005

1988, 1991, 1998, 2002, 2003,
2011, 2013, 2019

제주 유나이티드

1

5

1989

1984, 1994, 2000, 2010, 2017

할렐루야 독수리

1

0

1983

-

전남 드래곤즈

0

1

-

1997

인천 유나이티드

0

1

-

2005

경남 FC

0

1

-

2018

10.3. 역대 K리그2 우승팀

연도

우승팀

준우승팀

리그 방식

2013

상주 상무

경찰 축구단

단일 리그

2014

대전 시티즌

광주 FC

단일 리그/
승격 플레이오프

2015

상주 상무

수원 FC

2016

안산 무궁화

대구 FC

2017

경남 FC

부산 아이파크

2018

아산 무궁화

성남 FC

2019

광주 FC

부산 아이파크

10.4. K리그2 우승 횟수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상주 상무

2

0

2013, 2015

-

안산 무궁화

1

1

2016

2013

광주 FC

1

1

2019

2014

대전 하나 시티즌

1

0

2014

-

경남 FC

1

0

2017

-

아산 무궁화

1

0

2018

-

부산 아이파크

0

2

-

2017, 2019

수원 FC

0

1

-

2015

대구 FC

0

1

-

2016

성남 FC

0

1

-

2018

10.5. 역대 승강팀

연도

승격팀

강등팀

2012

-

광주 FC
상주 상무 피닉스

2013

상주 상무

강원 FC
대구 FC
대전 시티즌

2014

대전 시티즌
광주 FC

경남 FC
상주 상무

2015

상주 상무
수원 FC

부산 아이파크
대전 시티즌

2016

대구 FC
강원 FC

성남 FC
수원 FC

2017

경남 FC

광주 FC

2018

성남 FC

전남 드래곤즈

2019

광주 FC
부산 아이파크

제주 유나이티드
경남 FC

2020

상주 상무

[image]   자동 승강을 제외한 역대 승강전 결과에 대한 내용은 K리그/승강 플레이오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1. K리그 시상식

[image]   자세한 내용은 K리그 대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스폰서 연혁

12.1. 역대 스폰서

연도

스폰서

대회 명칭

후원 금액

1994

하이트맥주

하이트배 코리안리그

4억 원

1995

1996

삼성물산

라피도컵 프로축구대회

?

1997

1998

현대중공업

현대컵 K-리그

?

1999

현대증권

바이코리아컵 K-리그

15억 원

2000

삼성전자

삼성디지털 K-리그

18억 원

2001

포스코

포스코 K-리그

20억 원

2002

삼성전자

삼성 파브 K-리그

27억 원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

35억 8천만 원

2004

32억 원

2005

34억 원

2006

2007

33억 원

2008

2009

없음[47][48]

K-리그

없음

2010

현대자동차

쏘나타 K리그

23억 원

2011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 K리그

30억 원

2012

35억 원
(추정)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2014

2015

2016

2017

하나은행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

35억 원

2018

KEB하나은행 K리그1
KEB하나은행 K리그2

2019

하나원큐[49] K리그1
하나원큐 K리그2

2020

12.2. 역대 스폰서 엠블럼

연도

대회 명칭

스폰서 엠블럼

1994~
1995

하이트배 코리안리그

[image]

1996~
1997

라피도컵 프로축구대회

[image]

1998

현대컵 K-리그

[image]

1999

바이코리아컵 K-리그

[image]

2000

삼성디지털 K-리그

[image]

2001

포스코 K-리그

[image]

2002

삼성 파브 K-리그

[image]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

[image]

2004

[image]

2005

[image]

2006

[image]

2007

[image]

2008

[image]

2009

K-리그

2010

쏘나타 K리그

[image]

2011~
2012

현대오일뱅크 K리그

[image]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image]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image]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image]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image]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image]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image]

2016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image]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image]

2017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image]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

[image]

2018

KEB하나은행 K리그1

[image]

KEB하나은행 K리그2

[image]

2019

하나원큐 K리그1

[image]

하나원큐 K리그2

[image]

2020

하나원큐 K리그1

[image]

하나원큐 K리그2

[image]

13. 특색

14. 여담

15. 더비 매치

[image]   자세한 내용은 더비 매치/대한민국/축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6. 서포터즈

[image]   자세한 내용은 서포터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7. 외국인 선수

18. 유소년

구단

U-15

U-18

강원 FC

주문진중학교

강릉제일고등학교

경남 FC

군북중학교

진주고등학교

광주 FC

광주광덕중학교

광주금호고등학교

대구 FC

율원중학교

현풍고등학교

대전 하나 시티즌

유성중학교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부산 아이파크

부산낙동중학교

개성고등학교

부천 FC 1995

부천 FC 1995 U-15

부천 FC 1995 U-18

상주 상무

함창중학교

용운고등학교

FC 서울

서울오산중학교

서울오산고등학교

서울 이랜드

서울 이랜드 U-15

서울 이랜드 U-18

성남 FC

풍생중학교

풍생고등학교

수원 FC

수원 FC U-15

수원 FC U-18

수원 삼성 블루윙즈

매탄중학교

매탄고등학교

안산 그리너스

안산 그리너스 U-15

안산 그리너스 U-18

FC 안양

경기안양중학교

안양공업고등학교

울산 현대

울산현대중학교

울산현대고등학교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광성중학교

인천대건고등학교

전남 드래곤즈

광양제철중학교

광양제철고등학교

전북 현대 모터스

김제금산중학교

전주영생고등학교

제주 유나이티드

제주중학교

제주 유나이티드 U-18

충남 아산 FC

충남 아산 FC U-15

충남 아산 FC U-18

포항 스틸러스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

[image]   유소년 리그에 대한 내용은 K리그 주니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9. 다른 주요 대회 및 경기

19.1. FA컵

[image]   자세한 내용은 대한축구협회 FA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2. 리그컵

[image]   자세한 내용은 K리그 리그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3. 2군 리그

[image]   자세한 내용은 R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 올스타전

[image]   자세한 내용은 K리그 올스타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 홍보 대사

연도

이름

직업

2005년

클론

가수

2006년

노브레인

가수

2012년

안정환

前 축구선수

2013년

정준호

배우

2013년

신태용, 유상철, 이운재, 송종국

前 축구선수

2014년

윤두준

가수

2015년

로보카 폴리

애니메이션 캐릭터

2015년

윤두준

가수

2016년

박재정

가수

2016년

김병지, 김태영

前 축구선수

2017년

박재정, 러블리즈

가수

2018년

감스트

인터넷 방송 BJ

2019년[65]

강은비, 감스트[66], 릴카, 박문성, 이주헌

인터넷 방송 BJ

21. 문제점

[image]   자세한 내용은 K리그/문제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관련 문서

22.1. 대한민국 축구

22.2. 규정

22.3. 역사

22.4. 관련 프로그램

23. 둘러보기

[image]
2018 시즌 참가 구단

{{{#!wiki style="color: #ee3224;"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7px"

[image]

[image]

[image]

[image]

강원 FC

경남 FC

대구 FC

상주 상무

[image]

[image]

[image]

[image]

FC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인천 유나이티드

[image]

[image]

[image]

[image]

전남 드래곤즈

전북 현대 모터스

제주 유나이티드

포항 스틸러스

K리그2 구단

사라진 구단

}}}}}}

}}}||

[image]
2018 시즌 참가 구단

{{{#!wiki style="color: #0067ac;"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7px"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광주 FC

대전 시티즌

부산 아이파크

부천 FC 1995

서울 이랜드 FC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성남 FC

수원 FC

아산 무궁화

안산 그리너스 FC

FC 안양

K리그1 구단

사라진 구단

}}}}}}

}}}||


  1. [1] 아직은 유니폼만 있고 K리그1 소속 수원 삼성, 인천 유나이티드, 전북 현대, FC 서울의 유니폼은 판매하지 않는다. K리그2는 모두 판매한다.
  2. [2] JTBC GOLF&SPORTS의 중계 슬로건.
  3. [3] 당시 표기는 수퍼리그로, 현행 외래어표기법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4. [4] 통산 11회 우승으로 1위. 2위는 7회 우승의 J리그.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기록 문서 참조.
  5. [5] 하지만 홍콩 1부 리그는 2014년부터 최상위 리그 지위를 잃었다.
  6. [6] SPFL은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 스코티시 챔피언십 - 스코티시 리그 1 - 스코티시 리그 2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위 리그인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는 12팀이 3라운드 로빈으로 정규 라운드 33라운드를 치른 뒤, 상위 6팀과 하위 6팀으로 나뉘어 스플릿 라운드 5라운드를 치른다. 스플릿 라운드 후 최종 1위가 우승을 차지하고, 최종 12위가 2부 리그로 자동 강등된다. 2부 리그인 스코티시 챔피언십에서는 10팀이 2라운드 로빈으로 정규 라운드 18라운드를 치른다. 최종 1위가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 자동 승격되고, 최종 10위가 3부 리그로 자동 강등된다. 그리고 최종 2~4위는 4위부터 시작하는 1, 2차전 플레이오프를 통해 최후의 승리 팀이 1부 리그 최종 11위 팀과 1, 2차전 승강전을 갖는다. 승강전 최종 승리 팀은 1부 리그로 가고, 패배 팀은 2부 리그로 간다. 3부와 4부 리그도 2부 리그와 리그 방식이 유사하다.
  7. [7] 참고로 고양시에는 시민축구단인 고양 시티즌 FC가 있다. 의정부시에도 시민축구단인 FC 의정부가 있었지만, 2018 시즌을 끝으로 해체됐다.
  8. [8] 당시 표기는 수퍼리그로, 현행 외래어표기법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9. [9] 터키 프로축구 리그의 명칭은 2000-01 시즌까지는 'TFF 1. 리그'였다가 2001-02 시즌부터 리그 체계를 개편하면서 1부 리그를 '쉬페르리그'로 개칭하고 'TFF 1. 리그'라는 이름은 2부 리그로 넘겼다.
  10. [10] 정부 돈을 안 들이는 방법은 당연히 단 하나, 기업들이 돈을 내게 하는 것이다. 이호헌과 이용일은 기업들의 투자와 관련해, 융자 혜택을 주고 야구장 입장세도 수 년간 면제해 주는 등의 방식을 제안했다.
  11. [11] 그럼 축구도 이런 방식을 제안했으면 됐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이미 지역별로 어느 기업을 영입할지 플랜B까지 모두 짜서 제출했다. 그런 야구조차 인천/경기와 호남 연고 기업 영입에 한참 어려움을 겪다가 간신히 삼미와 해태로 구색을 맞췄을 지경인데, 축구는 아예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도저히 견적이 안 나왔다. 실제로 프로축구는 출범 이후 무려 10년간 호남 연고 구단 하나를 창단 못해서 빌빌대다가 결국 KBO의 쌍방울 레이더스 저리가라 수준의 빈곤 구단이던 전북 버팔로를 거쳐 현대 호랑이포항제철 아톰즈의 위성 구단으로 취급되던 전북 다이노스전남 드래곤즈로 갈음해야 했다.
  12. [12] 매일경제 1981년 10월 29일 기사
  13. [13] 2019년 K리그1 우승 상금이 5억 원이다. 1984년의 우승 상금이 엄청난 건지. 2019년의 우승 상금이 짠 건지...
  14. [14] 원래 이번 시즌부터 홈 앤드 어웨이의 지역 연고에 기반한 리그를 실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체육부는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명목 하에 반대 의사를 표했으며, 경품으로 관중을 유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인터뷰까지 했다.
  15. [15]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4강 신화라는 눈부신 활약을 펼친, 전 경남 FC 감독
  16. [16] 대우는 이미 김종부의 작은 형을 구단 경리담당으로 임명하고, 과거 2년간 김종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족까지 접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이었다. 현대도 만만치 않아서, 김종부의 모교인 고려대에 3억 원의 시설 투자를 약속했고, 고려대 측에서도 김종부에게 현대로 갈 것을 권유했다. 김종부는 대우로 가고 싶은 의사를 여러 번 드러냈으나, 대우로 가기 위해서는 학교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에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현대는 김종부와의 가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며 법정 싸움으로 옮겨가겠다는 자세를 취했고, 김종부가 대우와 현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겪자 여론 또한 악화되어 갔다. 결국 체육부가 나서서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고려대가 김종부의 축구협회 등록 선수에서의 제명을 요구하고, 축구협회가 김종부를 월드컵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충격적인 일로 이어졌다. 결국 축구계가 나서서 김종부 구명운동을 벌였고, 김종부는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여 득점도 거뒀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우와 현대는 한 치도 물러섬 없이 김종부를 두고 계속 싸움을 벌였고, 이 와중에 상처 받는 것은 선수 뿐이었다. 월드컵 이후로도 계속된 싸움은 현대의 팀 해체 위협과 축구계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김종부는 대우도 현대도 아닌 포항으로 리그 데뷔를 하게 됐다.
  17. [17] 흥행이 실패하자 각 구단과 언론들은 여러가지 흥행 방안을 내놓았는데, 결론은 역시 연고 정착이었다. 선수를 연고지별로 선발한다든가 연고지 내 학교를 프로 구단이 순회하며 교육한다든가 지금과 비슷한 결론이었다.
  18. [18] 카카오에서 제작하는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도 이 사건은 “한국 축구에서 골키퍼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으로 언급되었다. 사리체프를 시작으로 외국인 골키퍼들이 대거 영입되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리그와 각 구단에서 외국인 골키퍼 영입금지를 규정화 했기 때문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김병지 vs 이운재로 시작되는 라이벌 골키퍼 구도가 굳혀졌고, 서동명, 김용대, 신화용이라는 수준급 골키퍼들이 발굴 육성되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현우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권순태, 김승규, 김진현 등 다수의 골키퍼들이 J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외국인 골키퍼 영입 제한을 걸지 않은 일본이 수준급 골키퍼의 부재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선견지명이었다고 평가받는다.
  19. [19] 즉, 승부차기에서 한 골도 못 넣은 것이다!
  20. [20] 스폰서가 필립모리스 코리아로 변경
  21. [21] 슈퍼컵, 아디다스컵, 대한화재컵, K리그
  22. [28골] 22.1
  23. [27골] 23.1 23.2
  24. [24] 전기리그 우승팀이 후반기 급속한 동기부여 저하로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25. [25] 신동아그룹의 최순영 회장에 의해 창단되었다. 선교 목적의 구단이었기 때문에 신동아그룹 산하가 아닌 한국기독교선교원 산하에 구단이 창단되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이 만들고 지원했기 때문에 기업구단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26. [26] 2000년, 대우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구단을 현대산업개발에서 인수했다.
  27. [27] 이후, 2000년에 재창단하였고 실업 리그 전통의 강자로 군림하다가 2012년 해체됐다. 2006년 내셔널리그 1위 팀이었던 국민은행을 K리그로 승격시키려 하자 승격을 거부해 파문이 일었다.
  28. [28] 2005년,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리되면서 운영사가 LG그룹에서 GS그룹으로 바뀌었다.
  29. [29] 당시 부족했던 슈퍼리그(현 K리그) 참가 팀 수를 늘리기 위해 실업 리그 우승팀을 참가시켰다. 그 바람에 실업 리그는 유야무야 되어버리고 말았다.
  30. [30] 통일교의 교주 문선명에 의해 창단되었다. 일화가 공식적인 운영사였기 때문에 기업구단으로 분류되지만, 일화 자체가 통일교 산하의 기업이기 때문에 종교구단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구단 내에 종교에 대한 강요는 없었다고 한다.
  31. [31] 2012년, 구단 창단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큰 관심과 투자를 해 왔던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고인이 되면서 통일교로부터의 지원이 줄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 통일교가 구단 매각 의사를 밝히며 인수 의향을 가진 기업을 물색했다. 하지만 인수 의향을 가진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고, 구단 인수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던 성남시에서 인수를 결정하면서 2014년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32. [32] 1993년 창단 후, 완산 푸마→완산 제우 엑스터→전북 엑스터 등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최종적으로 이름을 전북 버팔로로 바꾸고 리그에 참가했다.
  33. [33] 프로 리그 창설 당시 국민은행이 호남을 연고지로 했으나, 이는 명목 상의 연고지였을 뿐 당시 리그가 전국 9개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연고지 개념이 없었다.
  34. [34] 전북 다이노스가 전북 버팔로의 선수단을 인수한 것일 뿐 전북 버팔로의 전체 자산을 인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북 다이노스가 전북 버팔로의 역사를 승계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북 버팔로와 전북 다이노스는 서로 다른 구단으로 분류된다. 프로야구의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의 관계와 같다.
  35. [35] 1997년, 대전/충남 연고기업인 계룡건설,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이 컨소시엄 형태로 대전 시티즌에 출자하여 기업구단으로 창단되었다. 그러나 1998년 IMF 경제위기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기업들 중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이 파산하였고, 계룡건설만 홀로 남아 지원을 계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구단 운영에 재정적 한계를 절감한 계룡건설이 구단 운영 포기를 선언하였다. 결국 2006년, 대전광역시에서 구단을 인수하면서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36. [36] 2020년, 구단이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면서 다시 기업구단으로 전환되었다.
  37. [37] 새로운 대전 하나 시티즌과 기존 대전 시티즌이 별도의 법인이기 때문에 구단 역사가 승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은 금융회사이기 때문에 비금융회사인 대전 시티즌 법인의 지분을 취득할 수 없다. 이는 금산분리 정책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나금융그룹은 대전 시티즌 인수 과정에서 유권해석을 얻어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대전 시티즌 법인의 자산을 인수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새로운 법인이라 하더라도 대전 시티즌 법인과 계약을 통해 영업권과 영업자산을 양도받았으며, 기존 대전 시티즌 법인은 청산되었기 때문에 대전 하나 시티즌이 대전 시티즌의 역사를 승계한다고 보아야 한다.
  38. [38] 군경팀이 연고지를 이전할 경우, 별개 구단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신생 구단으로 분류된다.
  39. [39] 연고지 없이 전 경기를 원정 경기로 치르며 리그에 참가했다.
  40. [40] 안산과 연고 협약을 맺으며, 안산을 연고지로 정하게 됐다.
  41. [41] Hi는 할렐루야 임마누엘의 약자다. 할렐루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할렐루야 독수리와는 별개의 구단이다.
  42. [42] 스포츠 용품 제작업체인 자이크로와 명명권 계약 하면서 바뀐 이름으로, 운영사가 바뀐 것은 아니다.
  43. [43] 군경팀이 연고지를 이전할 경우, 별개 구단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신생 구단으로 분류된다.
  44. [44]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
  45. [45]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
  46. [46] 전북, 수원, 서울 세 구단이 아직도 K리그 부동의 3대장으로 꼽히는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들 기업 외에 아챔 홍보 효과라는 게 유의미한 구단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의 모기업인 GS도 아시아 홍보 효과 볼만한 사업 부문이라는 게 홈쇼핑 정도라 매우 애매하다.
  47. [47] 정규 라운드에서는 스폰서가 없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스폰서가 됐다.
  48. [48] 스폰서가 없어진 이유로, 2008년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너무 오래 스폰서를 한다는 이유로 태클이 들어와서 삼성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다는 풍문이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은 2005년에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2009년에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은 이유로 꼽기에는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2008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인해, 삼성전자가 스포츠 후원을 대폭 축소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보는 게 더 설득력 있다. 그 방증으로, KBO 리그도 당시 스폰서였던 마구마구의 후원 금액이 전년도보다 적어지는 일이 있었다.
  49. [49] 하나은행의 스마트 뱅킹 서비스.
  50. [50] 할렐루야 독수리는 강원/충남/충북, 유공 코끼리는 서울/인천/경기, 포항제철 돌핀스는 대구/경북, 대우 로얄즈는 부산/경남, 국민은행 까치는 전북/전남을 연고지로 할당 받았다.
  51. [51] 사실 K리그가 KBO 리그보다 먼저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1981년 5월에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민정서와 여가선용을 위한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 스포츠 창설 지시가 떨어졌다. 청와대 비서관은 야구협회와 축구협회에 프로화 검토를 의뢰하게 되었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운동장 야간조명 설치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반면, 대한야구협회 전무를 지낸 이용일과 운영부장 출신 이호헌이 가세하여 수립한 야구 프로화 계획서에서는 정부의 지원금 한 푼 없이도(=대기업을 등쳐먹으면 된다) 프로화가 가능하다는 골자의 내용으로 보고하여 청와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청와대는 우선 프로야구부터 출범시키기로 결정하였고, 프로축구는 프로야구 후순위로 밀리게 됐다.
  52. [52] 여담으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이용일과 함께 프로야구리그를 준비했던 이진희 MBC 사장이 한국프로야구 준비 보고서를 전두환에게 제출하자 전두환이 깜짝 놀랐다. 이진희 사장이 "각하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묻자, 전두환 曰 "뭐야, 야구야? 난 축구인줄 알았지."라고 했다고 한다.
  53. [53] 창단 의향을 가진 기업이 없으니, 지방자치단체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구단 운영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기업들이 프로 구단 창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자체가 구단을 운영하는 데 사용하는 돈은 지방세나 국세 교부금 등 결국 남의 돈인데 반해, 기업이 사용하는 돈은 결국 자기 돈이기 때문이다.
  54. [54] 단, 여기에는 특정 선수나 클럽에 대한 애정 혹은 관심을 가질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 인터넷으로 봐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애초에 상업 서비스인 K리그를 동네 조기축구, 학교 체육대회에 비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부터가 논란 거리가 될 수 있다.
  55. [55] 가는 선수들도 K리그에서 가기보다는 현지에서 기회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경우다.
  56. [56] 그리고 이 장면은 201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UCL 통산 6,000호 골이 터졌는데 그 골이 바로 세르히오 라모스의 자책골이었던 것.
  57. [57] 지금처럼 예능에서 맹활약하기 전.
  58. [58]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01-02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와 2002 시즌 대한축구협회 FA컵에서 우승하였다. 하지만 더블은 두 개의 주요 대회에서 동일 시즌에 우승을 달성하는 것이 성립 요건인데, AFC 챔피언스 리그의 2001-02 시즌은 K리그1이나 대한축구협회 FA컵의 2001 시즌에 해당되는 시즌이기 때문에 더블에 해당되지 않는다.
  59. [59] 2013 시즌 포항이 달성한 더블은 외국인 선수 없이 오직 한국인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으로 이뤄낸 것이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
  60. [60] K리그 최초의 태국 선수이자 동남아시아 선수로서, 당시엔 아시아 쿼터 제도나 동남아시아 쿼터 제도가 있었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활약은 더욱 특기해 볼 만 하다.
  61. [61] 북한 출신을 내국인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 헌법 상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북한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62. [62] 데닐손이 동료 골키퍼가 후반전 경기 중 부상당하자 임시로 골키퍼를 본 적이 있다.
  63. [63]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 등
  64. [64] 외국인 3명 + AFC 가맹국 국적 선수 1명 + AFF 가맹국 국적 선수 1명
  65. [65] 아프리카TV와 상호업무협약(MOU)을 체결하여 릴카와 강은비는 K리그 스타터, 박문성과 이주헌은 K리그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었으며, 감스트는 2018년에 이어 2년 연속 홍보 대사로 K리그와 함께하게 되었다.
  66. [66] 나락즈 성희롱 발언 사건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분류

CC BY-NC-SA 2.0 KR(일반 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