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배향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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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 가문 출신 배향공신

최승로 가문

문정공 최승로

충의공 최숙

순공공 최제안

기타 가문

광빈공 최량

절의공 최항

현종의 옹립공신
최항

시호

절의공(節義公)

작위

청하현 개국자(淸河縣 開國子)

본관

경주 최씨

이름

항(沆)

내융(內融)

생몰연도

971 ~ 1024.06

1. 개요
2. 상세
3. 기타

1. 개요

고려왕조 현종 원문대왕 대의 문신. 경주 최씨 문벌귀족 출신이며 태조가 중용했던 최언위의 친손자이다. 성종, 목종, 현종 세 군주를 섬긴 당대의 중신이다. 이름이 무신정권최항과 발음부터 한자까지 완전히 일치한다.

2. 상세

경주 최씨는 옛 왕조 신라의 6두품 출신 호족 가문이다. 수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타 가문과 인연을 맺어 최고의 문벌귀족 가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최항은 이런 가문 출신으로 성종 대의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가문 좋고 실력도 좋은 인재를 발탁한 성종은 그를 중용했고, 성종의 후계자인 목종도 최항을 크게 신임하여 이부시랑(吏部侍郞)[1] 중추원사(中樞院使)[2]까지 임명했다.

목종이 정권을 잃고 실각 위기에 처했을 때, 목종이 점 찍은 후계자 현종을 데려오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최항이었다. 최항은 채충순, 고영기, 유충정 등과 함께 숨어살던 대량원군을 데려오는데 성공했지만, 누군가의 쿠데타로 정권이 옮겨진다. 분노한 최항은 강조에게 고금에 이러한 일이 있었냐며 면전에 비난했다.

이후 고려에 중흥의 기회를 가져온 현종에게 중서문하성 서열 3위인 참지정사를 거쳐 중서문하성의 차관인 수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守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까지 임명되었다. 동시에 자작으로 임명되어 청하현을 봉지로 받고, 수정공신호를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관직에 마음이 없던 최항은 표문을 올려 퇴직을 요청했고, 자신의 본관에 있는 황룡사 9층 목탑 수리에 전력을 다하고 자신의 집을 사찰로 바치는 등 불교에 큰 관심을 보였다.[3]

1024년 6월, 최항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고려의 유학자였으며 불교 신자였고, 조정의 2인자 자리까지 올랐지만 반부패, 청렴함을 유지해 집은 초라하고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현종은 그의 죽음을 슬퍼해 유가족에게 곡식, 비단 등을 하사하려 했지만 최항의 아들은 아버지가 유언으로 받지 못하게 했다며 받지 않았다. 청백리 인생을 산 최항은 큰 존경을 받아 시호를 받고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후 정광(正匡)[4], 시중(侍中)[5], 수태사(守太師)겸 중서령(中書令)에 계속 추증되어 후대의 우대를 받았다.

3. 기타

현종조 사관(史館)국가기록원 관료
고려 7대사적 편찬자

감수국사(監修國史)사관 장관

이부상서(吏部尙書) - 참지정사(叅知政事) 최항

수국사(修國史)사관 차관

예부상서(禮部尙書) 김심언

수찬관(修撰官)

시어사(侍御史) 황주량

우습유(右拾遺) 최충

예부시랑(禮部侍郞) 주저

내사사인(內史舍人) 윤징고


  1. [1] 이부의 차관. 이부는 인사 담당 부서이다.
  2. [2] 중서문하성과 더불어 최고 정부기관인 중추원의 장관.
  3. [3] 불교를 무척 싫어했던 조선왕조는 말년의 최항을 고려사 열전에서 비난했다.
  4. [4] 4품 1등위 향직 품계.
  5. [5] 중서문하성 문하시중의 전임격 직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