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돌이

1. 탄약을 관리하는 병의 별칭
2. 정치적 은어
2.1. 추후 행보
2.2. 낙선자

1. 탄약을 관리하는 병의 별칭

탄약관리병을 말한다. 탄약검사병도 포함되기도 한다.

2. 정치적 은어

탄핵 + 돌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탄핵 역풍을 타고 얼떨결에 당선된 열린우리당 초선 정치신인 국회의원들을 가리켜 (주로 낮추어) 부르던 별칭. 당시 탄핵 역풍으로 인한 국민들의 반 한나라당 정서는 고정 지지층이던 중장년층까지 흔들릴 정도로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한나라당에 입혔고, 이로 인해 스윙보트 지역은 한나라당 후보들이 거의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의 강한 지지를 받았고 거기다 난닝구 항목에서 알 수 있듯 이시기 열린우리당은 분당으로 인한 구 민주계+호남계 중진들의 대거 이탈로 세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공천문턱을 어느정도 낮췄고, 이로 인해 예전 같으면 당내경선에서 탈락할 비주류계 혹은 정치 신인들이 대거 공천을 받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특징은 계파색이 없던 486세대 학생 운동권 이력을 지닌 정치신인들이 많았고,[1]이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486세대 정치인들이 대거 입문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수가 간신히 넘는 15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는데, 이 중 초선의원의 수가 정확히 108명이라 108번뇌라고 자조하기도.

노회찬 국회의원은 이런 탄돌이를 빗대 모 TV토론에서 "열린우리당은 길 가다가 지갑 주웠다"고 복권 당첨된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실 열린우리당 안티측에선 멸칭으로 쓰이던 표현이었는데, 다만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봉주 전 국회의원 같은 경우는 본인의 저서에서 스스로를 "탄돌이"라 지칭했고 그 표현을 꺼리지 않고 즐긴다고 썼다. 고로 일부에선 애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으론 참여정부를 말아먹은 주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당론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놀아나는 통에 국회선진화법도 없어 과반수의 의미가 강했던 열린우리당은 121석밖에 없던 한나라당에게 휘말리며 법안통과를 번번히 실패하며 국정동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도 비슷한 비칭이 존재한다. 다음 선거인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도권 지역구의 한나라당 후보들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고, 이 열풍을 타고 당선된 수도권의 한나라당 초선 의원을 가리켜 타운돌이라는 비칭이 생겼다.[2][3]

2.1. 추후 행보

17대 임기 종료 이후 탄돌이들의 행보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김형주[4](서울 광진 을), 이상락[5](경기 성남 중원, 임기중 의원직 상실), 우제항[6](경기 평택 갑), 선병렬[7](대전 동), 서재관[8](충북 제천/단양), 우제창[9](경기 용인 처인), 장향숙[10](비례대표) 등이다. 이들은 이후 여러 선거에 출마하여 재기를 노리기도 하지만 공천을 받지도 못하거나 공천을 받더라도 장렬히 낙선만 거듭(...)하였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대부분은 비정치인 출신이라 임기 종료 후 자신들의 본업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
오시덕(충남 공주/연기, 임기중 의원직 상실), 박상돈(충남 천안 을), 강길부(울산 울주), 조경태(부산 사하 을) 등이 대표적이다. 오시덕은 제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소속 공주시장으로[11], 강길부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울주군 국회의원 4선 째[12], 조경태 역시 자유한국당 소속 4선이다. 박상돈은 자유선진당에 입당한 후 재선에 성공하나, 이후 충남도지사 선거와 천안시장 선거에서 안희정구본영에게 각각 패하여 야인이 되었다. 이들 중 가장 전향이 늦은 것은 조경태로 2016년에서야 새누리당으로 갈아탔다.
최성(경기 고양 덕양 을), 제종길(경기 안산 단원 을), 복기왕(충남 아산, 임기중 의원직 상실), 김맹곤(경남 김해 갑, 임기중 의원직 상실), 이시종(충북 충주), 이광재(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2011년 도지사직 상실), 권선택(대전 중, 2017년 시장직 상실), 양승조(천안 갑)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통합민주당은 18대 총선에서 참패하였고 이렇게 낙마한 수많은 탄돌이들은 다음 총선을 기다리는 대신 시기적으로 가까운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턴한다.[13][14] 최성은 고양시장, 복기왕은 아산시장에 당선되어 2016년 현재 재선까지 성공했다. 최 시장은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 당내 경선에 출마하면서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정치적 무게감을 더했으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선 직전에 컷오프되었다. 김맹곤도 김해시장 재선을 하긴 했는데 뇌물을 먹고 시장직을 박탈당했다.(...) 양승조의 경우는 같은 지역구에서 18대, 19대 국회의원을, 신설된 천안병에서 2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18년에 치뤄진 7회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지사로 당선되었다.다만, 이시종과 이광재는 케이스가 조금 다른 경우. 둘 다 18대 총선에서도 무난히 재선하였고 이를 발판으로 보다 더 큰 자리인 해당 지역의 광역단체장에 도전한 것이다. 애시당초 이시종민선 3선 충주시장 출신이라 기반이 탄탄했고 이광재참여정부 핵심 인사라 다른 탄돌이들과 정치적 입지가 달랐다. 다만 이 후 서로 엇갈리는데 이광재는 이후 강원지사직을 상실한 반면 이시종은 재선에도 성공했으며 3연임까지 하고 정치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려는 듯하다.
의외로 많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경우 18대 때 궤멸당했다가 19대 때 대거 원내에 복귀하였고, 호남권은 대부분 무난하게 살아남았다.[15] 충청, 제주권은 17대 총선으로 입성한 탄돌이들이 악착같이 지역 기반을 갈고 닦아 튼튼히 하여 그걸 밑천으로 20대까지 주욱 당선되어 4선 중진까지 성장한 케이스도 많다. 18대 때 살아남은 소수의 수도권 의원들도 마찬가지. 박영선(비례대표→서울 구로 을), 최재성(경기 남양주 갑→서울 송파 을), 조정식(경기 시흥 을), 안민석(경기 오산), 이상민(대전 유성-유성 을), 변재일(충북 청원-청주 청원구), 오제세(충북 청주 흥덕 갑-서원구), 강창일(제주 제주 갑), 김진표(경기 수원 영통-정→무)[16], 양승조(충남 천안시 갑→병)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상민은 18대때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19대 때 민주당으로 복귀한 케이스. 이들은 대체로 3-4선으로서 20대 국회내 민주당의 핵심중진으로 통한다. 17대에 첫 당선된 이후 18대에 낙선한 뒤 19대와 20대에 당선되어 복귀한 케이스도 있는데, 우상호(서울 서대문 갑), 우원식(서울 노원 을), 노웅래(서울 마포 갑), 민병두(비례대표→서울 동대문 을), 김현미(비례대표→경기 고양 일산서구-고양 정), 김태년(경기 성남 수정), 정성호(경기 양주), 이인영(서울 구로 갑)이 대표적.[17][18] 그리고 이들 중 3선에 성공한 우상호, 우원식, 이인영은 집권당+원내1당[19]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을 얻어 자신들의 정치적 중량감을 제고했다.[20]

2.2. 낙선자

물론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고도 낙선했으나 이후 국회 등원에 성공한 후보들도 있다. 정호준[23] (서울 중), 김진애 (서울 용산→비례대표), 박재호 (부산 남 을), 최인호 (부산 해운대·기장 갑→부산 사하 갑), 신동근 (인천 서·강화을→인천 서 을), 신창현 (경기 의왕·과천), 박정 (경기 파주→경기 파주 을), 김현권 (경북 군위·의성·청송→비례대표), 김두관[24](경남 남해·하동→경기 김포 갑→경남 양산 을)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최인호와 김두관은 지역구를 변경했으며, 정호준, 신동근, 박정은 같은 지역이나 지역구가 개편되었다. 김진애, 김현권은 지역구 대신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1. [1] 당시 열린우리당의 세력규합 축은 친노중 정동영계,손학규계,정세균계등이 중심이고, 일부 김근태계 정도가 추가된다. 다만 탄돌이들은 당선 이후 당직 활동에 끌려다니면서 이들 계보에 분류상 되어있을 뿐 이들을 통해 정계에 데뷔한 정치 신인이 다수로 계파색은 정동영,손학규,정세균의 당내 위상 하락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이런 탄돌이들 절대 다수는 박스떼기로 알려진 2007년 경선등 당내 주요 계파갈등에 마치 조폭 말단처럼 강제 동원되어 계파 수장의 지시에 따라 끌려다닌 흑역사가 각자 다 있다.
  2. [2] 타운돌이의 원조는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재직 당시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북가좌동 일대에 가재울뉴타운을 유치하여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랜기간 보수정당의 험지였던 서대문구 을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던 정두언이다.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했던 이 선거에서 탄핵 역풍을 뚫고 보수정당의 험지 서대문구 을에서 그가 당선된 것은 그 당시만 해도 한나라당의 아성이던 부산 사하구 을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조경태 못지않게 화제가 되었다.
  3. [3] 이후 용산 참사가 일어나고 수도권의 지방의회와 지방자치장 자리들이 대거 진보진영으로 넘어가면서 뉴타운 사업의 추진 동력이 약해지는 바람에 이들의 인기는 서서히 약해졌으며 결국 이들 중 대부분은 19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들 중 20대 국회에서 활동 중인 의원은 김선동, 김성태, 김용태, 정양석 등 뿐이다.
  4. [4] 18대에선 돌아온 터줏대감에 밀려서 공천심사에서 탈락했고, 이후 박원순의 권유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았다가 2014년에 알선수뢰를 저지른 것이 밝혀지며 구속당했다. 실형이 끝난 지금은 야인이다. 자세한 건 이 링크를 참조.
  5. [5] 19대에선 김미희에게 밀려 탈락했고, 이후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에 도전했으나 역시 탈락했다.
  6. [6] 18대에서 원유철에게 밀려 낙선했고, 이후 알선수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2013년 사면, 복권되고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 당시 현직 평택시장이던 김선기에게 공천에서 밀리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가 선거 4일전 김선기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에서 사퇴하였다.
  7. [7] 19대에서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뒤 안철수와 계속 뜻을 같이하며 활동해왔다. 20대에선 국민의당 후보로 야권 단일화까지 파토내며(...) 재선에 도전했으나 장렬하게 낙선했다.
  8. [8] 18대 불출마 후 19대에서 다시 출마했으나 큰 차이로 낙선한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9. [9] 이 부류에 속한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18대 총선에서도 생환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 한때 자신의 수족이었던 새누리당 이우현에 밀려 낙선. 이후 시의원 선거와 관련된 비리 혐의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아 정계에서 발을 떼고 형기가 끝난 후 사업가로 직업을 바꿨다.
  10. [10] 여성 장애인 비례대표로 화제가 된 그 인물 맞다. 하지만 이 분은 19대에서 부산 금정구에 출마했으나 금정구의 터줏대감인 김세연에게 더블스코어 차이로 낙선했고, 이루 공천로비에 연루되며 징역형을 선고 받음으로써 사실상 정계에서 아웃되었다.
  11. [11] 4년 후 제7회 지방선거에도 자유한국당 공주시장 후보로 출마하나 이때는 더불어민주당 김정섭 후보에게 패배해 낙선했다.
  12. [12] 국정농단 사태 당시에 바른정당으로 나가있다가 돌아오기도 했으며,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지 반년 후에 지방선거 공천권 문제로 당 지도부와 다투다가 결국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추진하고 있으나 친문 세력의 반발 등으로 인해 계속 미뤄지는 중.
  13. [13] 단, 권선택은 18대에도 자유선진당 공천을 받아서 당선됐다. 19대 때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하나 새누리당강창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 이후 민주당에 돌아온 뒤 2014년에 대전시장이 되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7년 11월에 시장직을 상실했다. 그리고 제종길은 2014년에 안산시장이 됐다.
  14. [14] 이시종, 이광재는 2008년에 통합민주당 공천 받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만, 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15. [15] 단, 20대 때는 잔류한 3선 의원들의 경우 국민의당 돌풍, 컷오프 등으로 인해 대거 낙천, 낙선했으며 국민의당으로 넘어간 의원들은 4선 고지를 밟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2017년 국민의당 원내대표인 광주 광산 갑의 김동철 의원, 전남 여수 을의 주승용 의원이 있다.
  16. [16] 원래 지역구는 경기 수원 영통(이후 수원 정으로 개편)이나, 2014년 지선 당시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도지사 선거에 낙선에 정치 생명이 불투명해졌으나, 본인의 지역구인 수원 정에 박광온 전 MBC 기자가 당선되었고, 이후 2016년 영통구 일부(영통2동, 태장동)와 권선구 일부(세류1동, 세류2동, 세류3동, 권선1동, 권선2동, 곡선동)로 구성된 신설 지역구 수원시 무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부활한다.
  17. [17] 단, 우상호는 탄돌이라고 보기 미묘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상호는 이미 16대때 새천년민주당 중진 김상현을 제치고 서대문 갑에 공천된 경력자기 때문. 16대때는 낙선했고, 17대 탄핵 역풍을 타고 들어온 초선의원이라 시각에 따라 탄돌이로 분류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18. [18] 이인영 역시 16대 때 첫 공천을 받고 낙선했다가 17대에 당선된 케이스. 사실 우상호, 이인영은 원래 6월항쟁 당시 연세대-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이름을 날린 386의 대표주자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19. [19] 다만 우상호는 원내대표 당시 탄핵정국 시기라 야당 원내대표였다.
  20. [20] 우상호-우원식과 이인영 사이에는 역시 3선인(18~20대) 홍영표가 원내대표를 맡았다.
  21. [21] 여담으로 둘 다 시흥-군포 지역에서 의원을 역임한 고 제정구 의원의 보좌진 출신이라 사적으로도 친하다. 탄돌이는 아니지만 20대 총선에서 당의 사지인 대구 수성 갑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당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김부겸 의원도 제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고 군포시에서 3선(16대~18대, 19대부터 대구 수성 갑에 출마하나 첫 선거는 낙선)을 지냈다.
  22. [22] 오히려 당이 총선 국면 때 정 의원의 컷오프 하나로 지지도가 5%나 하락하는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23. [23] 다만 정호준은 20대 총선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한 지상욱에 패해 낙선했다.
  24. [24] 물론 이분은 경남도지사에도 당선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