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

1. 개요
2. 배경
3. 과정
3.1. 이유
3.2. 추태
3.3. 변호
4. 결과
5. 여담
6. 같이보기

기다리래. 6835톤 배가 뒤집히는 동안, 뒤집힌 배가 선수 일부분만 남기고 가라앉는 동안, 기다리라는 방송만 되풀이하고 선장과 선원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꼼짝 말고 기다리래. 해경은 침몰하는 배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고 급히 구조하러 온 UDT 대원들과 민간 잠수사들을 막고 있지만, 텔레비전은 열심히 구조하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기다리래. 오지 않는 구조대를 기다리다 지친 컴컴한 바닷물이 먼저 밀려들어 울음과 비명을 틀어막고 발버둥을 옥죄어도, 벗겨지는 손톱과 부러지는 손가락들이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잡아당겨도, 질문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래. 바닷물이 카카오톡을 삼키고, 기다리래를 삼키고, 기다리래를 친 손가락을 삼켜도, 아직 사망이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래. 엄마 아빠가 발 동동 구르며 울부짖어도, 구조된 교감 선생님이 터지는 가슴에다 목을 매어도, 유언비어에 절대로 속지 말고 안내 방송에만 귀 기울이며 기다리래. 죽음이 퉁퉁 불어 옷을 찢고 터져 나와도, 얼굴이 부풀어 흐물흐물해져도, 학생증엔 앳된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손아귀에 그 얼굴을 꼭 쥐고서 기다리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맹골수도 물속에서 기다리래.

김기택, <기다리래>[원주](<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2] 수록)

1. 개요

세월호 참사 때 선원이 한 말이자, 이후에 당시 대학생이었던 용혜인이 시작한 사회 운동의 이름. 대한민국의 당시 사회상을 풍자한 말이기도 하다.

2. 배경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천재지변도 아니며 완전한 불가항력도 아니었다.[3] 이 사고는 직무유기 등으로 빚어진 엄연한 인재였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었던 참사였다. 당시 배가 침몰한다는 사실을 맨 처음 최덕하 군[4]이 신고하여 구조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172명이라도 구조할 수 있었지만, 선장 및 선원들의 지시가 제대로 되어있었기만 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다.

3. 과정

당시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1시간 35분이나 남아 있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때 제대로 된 탈출 명령을 내렸다면, 승객 전원이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한다. 박형주 가천대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8시 50분에 이준석 선장이 퇴선을 명령하면 5분 만에 전원 해상탈출이 가능했다. 4층까지 침수가 진행된 9시 50분에도 퇴선 명령만 있었다면 전원 탈출에 6분 17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의 수온은 12.6도였다. 구명보트에 타지 않고 맨몸이라도,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으면 최대 6시간까지 버틸 수 있는 온도다. 그러나...

주변 어민: 사람이 나와야 뭐 건질 거 아니어요 다 나왔어 안 나왔냐요 몇 백 명 실었다한디 막 사람이 어여 나와야된디 뭐 사람이 안 나와요 사람이 왜 안 나오냐고 아이, 지금 저 물속에 다 반은 반도 넘게 잼겼것소. 배가 반 들어갔는디 반 더 들어갔는디 물속에 지금 선실에 다 갇혀있지.

진도 VTS: 지금 말씀하시는 국 어디십니까?

주변 어민: 현장이라고 사고현장

진도 VTS: 사고 현장에 그 승객들이 안 나와있습니까? 바다로 혹시 이탈한 사람들 없습니까?

주변 어민: 와 있어. 옆에 와 있는데 헬기로만 구조하고 사람이 안 따라와

주변 어민 2: 배가 좌현으로 넘어가는데 사람이 왜 안 나오지

주변 어민: 사람 몇 명 구하고 말겄소. 저, 형님. 저저, 나올 수가 없지 저렇게 되면. 다 들어갔는디 완전 잠수했는디 어디로 해서 나오겄어. 배가 다 들어갔는디 사람들이 지금 하나도 안 나오고 있어. 지금. 사람이 나와야지 지미 씨발 배가 다 들어가부렀는디 사람이 뭐 사백 명인디 뭐 사람 몇명 나오도 않고 어찌라고. 못 나오고 있은께 깝깝하네. 배는 다 들어갔구만. 이제 저기서 어쩌케, 저 뭐냐 ○○○ 짤러갔고 들어가가지고 구조해내기 전에는 틀렸재.

주변 어민 2: 넘어가분다. 넘어가부러여. 넘어가부러.

진도 VTS: 선장님, 선장님. 그 사항에 대해서 사진으로 사진으로 쫌 찍어주십시오.

주변 어민: 알았소

가까이 가지마 배 들어가분다. 들어가부러. 손쓸 길 없이 쏙 들어가. 배 들어가분다 뒤에서부터 들어가분께 가까이 가지 말라고.

진도 VTS: 진도 코스탈 VTS 페신저쉽 페신저쉽 세월 나우 싱킹

(해석: 여기는 진도 관제 센터, 여객선 세월 지금 침몰 중)

주변 어민: 사람 몇 명 구하도 못하고 저 큰 배가 쏙 물에 잠수해버리네요. 음마,음마. 이거 큰일 났구만 이거. 더 이상 안 가라앉겄소 완정히 들어가겄소요. 아, 니미 들어가부러, 들어가부러. 사람이 안 나와부네. 이거 뭐 다 죽게 생겼..

사람 거 헬기로 몇 명 구하고 나머지 싹 들어갔어. 요거 어치케 살아나오겄어요. 아이고메. 죽겄구만, 에이고. 순식간에 아이, 요 구조도 못하고 들어가고만 잉. 배가 기울어 있으면 구명조끼 입혀서 딱 사람을 빠쳐머려야지, 물로다가. 선장이 뭐하는 것이여. 옴마옴마 다 죽고 한 사람도 못 구하네. 들어가분다. 들어가부러. 니에미 씨벌년 사람도 못 구하니. 진짜 오메. 사람 몇 명 구하고 말았겄소. 이거 환장해 죽겄네. 들어가분다. 들어가부로 에이 니미 씨발. 한 사람도 구조..., 옴마옴마

한 오백 명 죽어, 오백 명. 몇명 구하고 다 죽네. 들어가부러, 들어가부러

10:07 - 10:26 사이 세월호 침몰현장 주변 어민 교신 음성. 배 밖으로 나와야 구조를 하든 어쩌든 행동을 하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말 하나 때문에 몇 백 명이 배째로 수장되는 걸 손쓸 방법이 없어서 그저 지켜만 보면서 한탄하는 모습이다.

당시 세월호의 선원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정말이지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3등 항해사는 우느라 사고 경위를 선장에게 설명하지도 못했고, 기관장은 가타부타 뛰쳐나가 버렸다. 선장 이준석은 몇 마디 지시를 엉겁결에 던진 것을 끝으로 조타실 뒤편 해도대 옆에 멍하니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선장이 이런 상황이면 다음 서열인 1등 항해사, 2등 항해사라도 선장이 사리 판단을 하게끔 보좌하든지 아니면 선장을 대신해 지휘를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출처:]

결국 그들은 모조리 오히려 앞장서서 도망쳤다. 선장 이하 기관부와 조타실 선원들도 마찬가지로, 승객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일찌감치 배를 이탈했다. 그리고 배에 남은 여객부 승무원인 강혜성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으면서, 안내 방송을 통해 그 유명한 "승객 여러분은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가만히 계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바로 옆에 있던 승객들이 그거 말고 나가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와 설득을 하기도 했으나 그는 끝끝내 방송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

만약 승객들이 "배가 침몰되는데 빠져나가야지, 안에만 있다가 죽으란 거냐" 등의 판단을 내리고, 구조대의 접근이 용이한 바깥쪽으로 이동했다면 좋았겠지만, 승객들은 선원들이 전문가이니 그들의 말이 옳을 것이라 믿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만 살겠다고 제멋대로 먼저 행동했다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무서웠지만 가만히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어, 가만히 있어야지. 왜냐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희보다 그 사람들이 더 잘 알 거잖아요.-생존자 증언

사실 세월호는 너무나도 순식간에 급속도로 기울어져, 모든 사람이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희생 학생들이 찍은 영상을 보면 대구 지하철 참사 이야기를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6] 그러나 무려 13번이나 반복된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세요'라는 방송이, 피해자들의 탈출 의지를 결정적으로 꺾어놓은 것이다. 더 복장터지는 것은 이 문제의 방송을 한 장본인, 여객부 담당 선원 강혜성[7]이 선장, 항해사 등과 달리 승객들을 두고 도망가지 않고 배에 끝까지 있다가 운 좋게 구조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참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고 참사 피해자들에게는 화인처럼 새겨졌을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가만히 있으라'라는 명령의 부당함은 어른들의 말만 믿고 기다린 '착한 바보', 착한 학생의 이미지와 함께 유통되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은 어린 희생자의 이미지. 같은 지시에 따랐던 일반인 희생자를 우리는 '착한 바보'라 부르진 않았다. 그나저나 정말 학생들은 가만히 있었던가. 누군가는 의심했고, 누군가는 가만히 있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가만히 있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까봐 그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세월호참사는 피해자들이 가만히 있었기에 당한 사고가 아니라, 저마다 살아내려는 삶의 의지와 도전을 짓밟은 선장과 선원, 나아가 정부가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생존자 및 사망자 형제자매 구술증언록,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중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승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운 좋은 소수만 탈출할 수 있었을 뿐, 결국 총 476명의 탑승자 중 3분의 2가 넘는 304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끝내 배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바닷물 속에서 숨지고 말았다.

3.1. 이유

대형 사고가 발생했거나, 사고가 예상되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 이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일단 가만히 있으라." 하는 케이스는 세월호 이외에도 존재한다. 9.11 테러에서도 이런 식의 대응이 있었고[8], 삼풍백화점도 마찬가지였다. 통제자들이 기다리라 해놓고 도망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이렇게 통제자들이 많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 내버려두고 도망치는 것에는 여러 원인이 존재한다. 일단 사고가 발생했을 시 혼선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은 어느 기관에서든 마찬가지인 매뉴얼이다. 따라서 사고가 해프닝으로 끝날 경우 혼선에 따른 2차적인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며, 만약 정말로 사고가 일어났어도 '메뉴얼을 준수했다' 는 최소한의 변명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준석 선장의 경우 그딴 변명으로 무마할 정도가 아니지만 말이다.

세월호는 매우 급속도로 기울어져(그 원인은 ▷화물 과적, 고박 불량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 등이다) 복원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만약 이준석 선장이 승객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했더라면, 배의 침몰은 막을 수 없었겠지만 승객들 모두가 조끼를 입고 구명 보트를 탄 채 바다 밖에 나와 있다가, 구조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준석을 포함한 선원들이 한 교신내역을 보면, 그들은 배가 침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구조의무가 있었다는 것도.

그러나 그들은 승객들을 내팽개쳤다. 게다가 선원들에게서 사고 소식을 들은 청해진해운사 역시 승객들을 대피 및 탈출시키라고 지시하기는커녕, TV 뉴스만 바라보면서 사람들 목숨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부정하게 과적한 화물들에 대한 서류를 조작하는 게 제일 우선이었다.[9]

그래도 해경들이라도 구조를 했다면 희생자 수라도 줄일 수 있었겠지만, 도저히 구조를 했다고 볼 수 없는, 구조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나 다름없는 방만한 구조 작업으로 결국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퇴선 명령을 했다면, 해경이 단 한 번만이라도 객실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갔다면, 항공구조사가 깨진 유리창 사이로 로프만 설치했다면, 대다수 승객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걸 안 했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101분 동안 선원, 해경, 항공구조사 그 누구도 "퇴선"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혹 항목에도 알 수 있듯 여전히 세월호 좌초에 대한 음모론이 돌아다니고, 피해자 가족들이 5년이 지난 지금도 2기 특조위와 선조위를 만들고 직접 직책을 맡아 진상규명에 힘쓰는 이유이다.

3.2. 추태

이준석 선장 일행은 방송으로 승객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로 승객들을 안심시킨 뒤 구조선이 오자 자기들만 살겠다고 황급히 옮겨 탔고 사진까지 찍혔는데, 이때의 모습이 얼마나 가관이었냐면 하필 팬티 차림으로 구조선에 옮겨 타려고 했다.

3.3. 변호

물론 그도 사람이기에 살고는 싶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 대한 의지 및 열망이 강력하고, 죽음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살고자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가 도망치고자 한 것은 이해가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장은 단순한 완장이 아니다. 선장은 어떠한 배에서 왕이다. 총체적으로 선박을 책임지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것은 군함, 설령 함대 사령관이 타는 기함에서도 바뀌지 않는다. 사령관은 전투나 항해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함장에게 명령을 내릴 뿐이다.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은 함장이다. 따라서 유사시에 승객들을 안전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설령 위험에 빠진 승객들을 버리고 혼자 빠져 나가 법적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경고 방송이나, 탈출에 대한 노력 등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다면 양형을 통해 감형 받을 수도 있었다. 여론도 어느 정도 아쉬움과 분노는 있을 지라도, 이해와 동정을 구할 여지를 만들 수라도 있던 것이다. 최소한 메뉴얼이라도 준수했다면 위에서 말한 대로 "난 메뉴얼대로 한 것뿐이다." 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수동으로 문을 열 줄 몰라 우왕좌왕하던 승객들을 위해 최대한 문을 열어주며 돌아다니다 그 이상 구조활동을 하다간 자신의 목숨이 잃게 될 상황에 다다라서야 탈출한 1070호차의 기관사는 이해와 동정과 함께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문을 열어줘서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으면 들었지 별다른 비난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준석과 그 이하 선원들-조타수 조준기, 1등항해사 강원식, 2등항해사 김영호, 당직이자 3등항해사 박한결, 기관장 박기호 등은 모두 사고지언정한 조치는 일절 없이 부리나케 도망쳤으니 그에 대한 비판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더욱이 이준석은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승객들을 피해 은밀하게 움직여서 탈출을 시도했고,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간다는 것이 정신 없어서 팬티 차림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장면에 있어서 대놓고 변명의 여지가 필요 없는 상황이다.

4. 결과

잠수해서 겨우 빠져나온 마지막 탈출자 박준혁 군의 사진이다.

안내 한 번만 제대로 해줬어도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을 상황이었으니,[10] 승객들이 뒤통수 맞은 격이 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었다. 즉 충분히 일어나지 않을 참사가 선장 하나 잘못 만나서 대참사가 되어버린 격이다.

이준석 선장에게는 이후의 재판에서 살인죄가 인정, 적용됨에 따라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사형이 선고되었다 해도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실질적인 사형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최소 종신형으로 살게 될 듯하다.[11]

이준석 문서의 재판 과정 문단에서 언급되다시피, 본인은 반성할 기미 같은 건 없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12] 설령 징역형을 선고 받고 형량을 채우고 풀려 나온다고 해도 남은 평생을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살게 되거나, 평생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살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있고.[13]

5. 여담

여담으로 세월호 침몰사고가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와 딱 하루 차이나는데 끝까지 배에 남아 최후를 맞이한 타이타닉 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와 대조되어 더 욕을 먹었다.

한국사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를 비롯해 사건 사고가 일어났을 때 책임자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여 일이 커진 사건 사고는 매우 많다. 6.25 전쟁 당시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로 대표되는 국민 기만 행각과[14]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경우이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은 없었지만 대피조차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비슷한 류에 속한다. 2016년 경주 지진 당시에는 야간 자습을 하던 학교들 중 몇몇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가만히 있으라고 학생들을 통제하여 논란이 되었다. 학생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밖으로 도망쳤다. 2번은 안 속는다[15]

이 때문에 안 좋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거부반응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보는 시각이 있다. 위의 경주 지진과 비슷한 사례로, 2017년 1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 정차한 열차에 화재가 발생하자, 객실에서 앉아 대기해달라는 1차 안내방송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은 비상스위치로 문을 직접 열고 대피했다. 약 2분 후에야 비로소 대피하라는 2차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당시 승객들의 반응을 비롯한 여론은 왜 가만히 대기하라는 방송이 나왔냐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16]정말로 아무 일 없으면 방송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걸 명심하자

다만 가만히 있으라는 것 자체는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 조치이다.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질서를 유지해 대피시키는 것은 아무런 조치 없이 난잡하게 대피시키는 것보다 훨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이는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증명한 바 있다.[17] 세월호 사건의 문제는 가만히 있으라고 진정만 시켜놓고 대피를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참사가 발생하면서 진정책이 거의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불응하여 발생할 또 다른 피해[18]의 여지가 생겼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결국 이준석 등 세월호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으로 세월호 승객들 대부분을 희생시킨 걸로 모자라, 불순한 의도 없이 정말로 안전을 위해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이 통하지 않게 하여 또다른 위험요소를 만들어낸 셈이다.

6. 같이보기


  1. [원주] 1.1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 방송은 안 나와요." 세월호가 물 속에 가라앉은 지난 16일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서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송됐다. 오전 9시 30분 해경 구조정이 도착하고도 약 50분 뒤다.(『연합뉴스』, 2014. 4 .28)
  2. [2] 참사 100일(2014년 7월 24일)을 기해 나온 추모시집.
  3. [3] 사실 구조자들이 아무리 신속하게 작업을 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을 구조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책임감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지만 책임감과 능력은 별개라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4. [4] 그러나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5. [출처:] 5.1 <세월호를 기록하다>
  6. [6] 1997년생인 학생들이 아직 유치원생일 때 일어난 일이었지만,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잘 알았던 듯.
  7. [7] <세월호, 그날의 기록>에서 실명 공개
  8. [8] 다만 9.11 때는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할 거라고 절대 상상을 못했으며, WTC가 큰 건물이니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착각도 있었다. 비행기 충돌 이후 바로 무너진 게 아니라 약 1시간가량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물에서 떨어지는 잔해나 심지어는 사람에 맞아 크게 다칠 수도 있기에 아마 그 상황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무엇보다도 차후 대피령을 내릴 수 있었던 방송실이 2차 충돌로 사라져 버려서 의도적으로 건물 내 인원들을 버렸다기에는 무리가 있다.
  9. [9] 출처: <세월호, 그날의 기록>. 참고로 청해진해운 대표이사도 사법처리되었다. 징역 7년.
  10. [10] 그러면 선장이 튀어도 승객들이 알아서 "아 여기에 있다간 우리 다 죽겠구나!" 라는 심정으로 너도나도 알아서 탈출했을 것이다. 물론 이때도 사람들이 죽을 가능성은 크다. 탈출하다가 다쳐서 못 나올 수도 있고 운이 나빠 빠져나오지 못한다든가 빠져나왔지만 수영을 못한다든가 하면 말짱 꽝. 하지만 방송 하나만 했다면 수백명이나 배 안에 갇힌 채 죽을 리는 없다. 바보라도 선장이-아니 선원 중 누구라도 좋으니 지금 배가 가라앉고 있으니 빨리 나오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나올 테니까.
  11. [11]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사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형 폐지 국가인가 싶은데, 우리나라는 분명한 사형제 국가다. 다만 하도 오랫동안 사형이 이뤄지지 않아서 국제 인권 단체인 엠네스티에서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을 뿐이다.
  12. [12] 나중에 이준석이 반성한답시고 옥중에서 쓴 편지조차 이준석 본인의 정신적 고통을 강요하는 등 전형적인 거짓반성에 가까운 내용이라서 대차게 까였다.
  13. [13] 당장에 사건 후 세월호 피해자들을 오뎅에 빗대는 망언을 했던 인간은 친구들이 절교하고 방송계에서도 퇴출되고 직장에서도 해고되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선장쯤 되는 인물이면 더 큰일도 당할 수 있다.
  14. [14] 이 경우엔 그래 놓고 서울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부역자로 처벌하는 희대의 병크를 저질렀지만, 반대로 1.4 후퇴 때는 교훈으로 삼았는지 후퇴 한 달 전 대피 명령을 내렸다.
  15. [15] 물론 본진 중이라면 책상 밑에 숨는 게 최선이다. 만일 진도 6이상쯤 되면 천장이 무너질 수 있어 어설프게 탈출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떨어지는 구조물에 머리를 맞아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지진 시 인명피해는 건물이 무너지는 경우보다 떨어지는 구조물 등에 머리를 맞아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으므로 탈출은 지진이 잠시라도 멈추었을 때 해야 한다. 애초에 부실 없이 지어지고 이전에 지진이 없었던 콘크리트 건축물은 세계 역사에 길이 남는 역대급 강진이 아닌 이상, 설령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지진 후에 취약해져 철거 대상이 될 뿐) 지진이 일어나는 당시에 흔적도 없이 한 번에 폭삭 무너지기 힘들다. 하지만 천장이나 건물 내 구조물 등의 낙하는 비교적 낮은 규모 이상의 지진에서도 모든 건물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기에 이런 것에 맞아서 생기는 인명 피해가 훨씬 큰 것이다.
  16. [16] 다만 열차가 역에 정차해있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절대로 반대편 선로로 대피하면 안된다. 만약 반대편 열차가 승객들이 반대편 선로로 대피한것을 경고받지 못하고 그대로 역에 진입하는 순간...
  17. [17] 중구난방으로 탈출하면 탈출하는 와중에 다치거나 압사하는 위험이 뒤따른다. 하지만 질서정연하게 탈출하면 그럴 위험이 줄어든다. 물론 무턱대고 가만히 있으라보다는 바로 질서정연하게 대피시키는 게 안전하다.
  18. [18] 대피 과정에서 발생할 압사 및 구출 지연, 만일의 폭력 사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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