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특급시

북한 광역행정구역

직할시

평양직할시

특별시

남포특별시

라선특별시

특급시

개성특급시

특별행정구

신의주특별행정구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양강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황해북도의 시, 군

개성특급시

사리원시

송림시

개풍군

곡산군

금천군

린산군

봉산군

상원군

서흥군

수안군

신계군

신평군

연산군

연탄군

은파군

장풍군

중화군

토산군

평산군

황주군

장단군

승호구역

자남산에서 고속도로를 향해 내려다 본 2016년 개성 시내의 허름한 풍경.

자남산에서 내려다본 개성시가. 한옥 보존지구의 모습이다. 뭔가 무협 영화 속 사파 본거지 같다

開城特級市 / Kaesŏng

개성특급시
開城特級市 / Kaesŏng

[1]

국가

북한

면적

179㎢

광역시도

황해북도

행정구역

27동 9리

시간대

UTC+8:30

1. 개요
2. 지리
3. 역사
4. 교육기관
5. 인문
5.1. 개성상인(송상)
5.2. 풍속
6. 만약 개성시가 한국 영토였다면?
7. 북한에서의 위상
8. 관광
8.1. 명승지
9.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10. 개성 출신 실존/가상 인물

1. 개요

북한 황해북도 남쪽 끝에 있는 도시. 남쪽은 바로 휴전선을 경계로 남한의 경기도 파주시가 있다.[2]

중세 500여년간 고려 왕조수도였으며, 당시에는 개경(開京)이라 불렸다. 과거 소나무가 많아 송악(松岳/松嶽) 또는 송도(松都)라는 별칭이 있다.[3] 참고로 개성이 1930년 개성부로 개성군에서 분리되기전 까지는 개성군 송도면으로 개성군의 중심지였다. 아무튼 이래저래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근교의 옛 수도인 톨레도거리위상이나 모두 비슷하다.

현재 인구는 30~35만 명(2008년 통계)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것은 근교의 농촌지대의 인구를 합친 숫자로, 시가지 인구는 15만~19.2만 명(2008년 통계) 정도로 추정된다. 남한의 구리시와 비슷하다. 과거 개경의 면적은 25~30㎢로 추정되며, 1950년 당시에는 17개 동에 면적은 82㎢였다.

남한과 인접한 도시라는 점에서 2천년대 햇볕정책 당시 개성관광(2007~2008)이 시행되고 개성공단도 설치되었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고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서 중지되었다.

2018년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에 의하면, 향후 남북간 대사관 역할을 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소재지로 예정되어있다.

2. 지리

개성은 북쪽에는 송악산, 서쪽은 오공산(蜈蚣山, 지네산), 남쪽에는 용수산(용백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성 지형이다. 따라서 같은 분지도시로 유명한 대구광역시와 마찬가지로 겨울에는 추위가, 여름에는 더위가 심하다. 아울러 서울보다는 추위가 심한 편이다. 시내 중앙에는 서울의 남산처럼 자남산(子男山)이라는 언덕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은 그 자리에 김일성동상이 세워져 있다.

주변에 송악산으로 대표되는 험준한 산맥이 있고, 한강과 하구에서 만나는 예성강임진강 사이에 있어서 거의 ""과 같은 지리적 위상을 지녔다. 지도. 때문에 평양직할시보단 못해도 상당히 수비하기 좋은 곳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란이 있을 땐 단골로 털리는 장소였다.(...)

교통 측면에서는 경의선 철도가 지나며, 분단에 따라 개성역이 사실상 평부선[4]의 종점이 되었다. 개성역 외에 손하역이 있다. 또한 개성은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의 종점이다. 신의주시서울특별시, 목포시로 가는 1번 국도, 개성을 출발하여 옹진군으로 가는 50번 국도가 지난다.

3. 역사

개성특급시/역사 문서 참조.

4. 교육기관

1950년 당시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개성중학교[5][6], 개성여자중학교, 송도중학교, 호수돈여학교, 정화여학교, 개성사범학교, 개성상업학교가 있었다. 초등 교육기관으로는 송도국민학교, 명덕국민학교, 만월국민학교[7], 선죽국민학교, 동현국민학교, 중경국민학교, 남산국민학교 등이 있었다.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부설 생약연구소(현. 천연물과학연구소)가 목청전 건물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6.25 전쟁 이후 일부 교육기관들은 남한으로 내려와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대전광역시호수돈여자중학교호수돈여자고등학교도 개성시에 있던 것이었으며, 인천광역시송도중학교송도고등학교 역시 한영서원에서 출발했던 유서깊은 개성지역의 교육기관이었다. 또 서울특별시정화여자중학교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 또한 개성 정화여학교가 그 전신이다. 심지어 경인교육대학교 역시 원래 송도사범학교에서 출범했으니, 짧은 시간이나마 대한민국에 소속되어서 그런지 개성의 흔적은 우리 주변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위키백과에 보면 대한민국 시절까지 존재하던 옛 학교들이나 흔적들을 더욱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다.

5. 인문

5.1. 개성상인(송상)

고려왕조가 멸망한 후, 아예 조선왕조 시대에는 벼슬하는 것도 싫어했는지, 조선왕조 내내 개성은 양반 관료보다는 상인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들 덕분에 조선의 상업이 그나마 발전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어쨌든 개성 송상(松商)은 한강한성의 시전을 본거지로 한 경강(京江)상인들과 양대 상인 세력으로 대립했다. 덕분에 개성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대신 상업의 거점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도 물산이 모이는 곳치고는 문화가 융성하지 않은 곳은 없었으니, 서경덕 같은 문사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개성상인들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개성에서 나고 자란 분들의 증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독한 상인들은 일부러 배가 고파도 음식을 덜 먹을 요량으로 쉬어 버린 떡만 값싸게 사서 쉰 떡으로 요기를 때우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쉰 떡은 값이 쌀 뿐 아니라 복통을 유발해서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어 돈이 두 배로 절약되곤 했다니.(...) 그리고 개성에선 거름으로 쓴다며 각 가정의 를 돈 주고 수거해 가곤 했는데, 가끔 물에 타서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찍어서 맛을 보고 사갔다고 한다.(...) 혹자는 조선의 유태인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성상인들이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덕목은 신용과 정성이었다. 특히 남에게 돈을 과도하게 꾸어서 사업을 할 경우 차후 신용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 되도록이면 남에게서 돈을 꾸지 않는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했다. 이는 개성상인의 후예로 알려진 현대의 기업가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

개성상인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알려진 대한민국의 기업으로는 OCI아모레퍼시픽 등이 손꼽힌다. OCI아모레퍼시픽을 각각 창업한 故 송암 이회림 OCI 창업주와 故 장원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는 모두 개성 출신이다. 이회림 창업주는 실제 고향도 개성이었으며[8] 평안도 출신인 서성환 창업주는 개성에서 내려와 사업을 했던 어머니로부터 사업을 배워 개성에서 사업을 시작해 훗날 남한에서 사업을 번창시킨 이들로 유명하다. 이 덕에 현재도 OCI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5.2. 풍속

분단되기 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전통적인 식문화가 매우 훌륭했다고 전해진다. 전통 사회에서 식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선 산물이 풍부하고 풍류 문화가 잘 발달해야 하는데, 개성 또한 발달된 상업을 바탕으로 이러한 기반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데 고려의 궁중 음식이 기본이 되었다고 한다. 개성 음식 중 유명한 것으로는 개성 쌈김치, 조랭이떡국[9], 개성편수, 개성약과 등이 있다. 개성(및 그 이북지역)에선 설날만두를 먹었다. 본래 이남지역에서는 만두를 먹지 않다가 개성 요리가 남하하면서 만두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개성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풍속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우선 개성 사람들은 매우 폐쇄적으로 다른 지역에 나가 사는 것을 꺼리고, 다른 지역에서 개성에 와서 사는 사람도 꺼렸다. 심지어 바깥으로 시집장가를 가도 언젠가는 반드시 개성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개성 사람들을 불렀던 별명으로는 개성 깍쟁이가 있다. 서울 사람도 개성 사람과 마찬가지로 깍쟁이라고 불렀다. 물론 지금 서울 사람들은 옛날 깍쟁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랑 다르다.

6. 만약 개성시가 한국 영토였다면?

개성은 서울에서 78㎞,[10] 개성과 휴전선간의 거리는 판문점에서 겨우 12km밖에 안 된다. 그래서 1951년 이후 조금만 더 북진을 했으면 개성을 탈환할 수도 있었다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국군 대대가 개성까지 진출은 했다. 다만 휴전협상 밑밥을 깔기 위해 철수. 안습. 개성 지역은 모두 미수복 경기도 권역이라 할 수 있는데, 전 경기도 지역을 다 수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므로 아까운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개성의 서부전선 방면 휴전선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개성의 감제고지인 송악산예성강까지 획득하여야 할 것이었으므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송악산 일대까지 해서 개성시 전역을 완전히 회복하였다면 군사적으로 해주시와 황해도까지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한편, 만약 대한민국령으로 남았다면 개성은 대한민국의 이름난 도시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 또한 심히 아까운 일이다.[11] 대체로 통일이 되면 각주처럼 수원시급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12][13]

다만 개성은 시가지 주변 평지가 넓지 않아서 현대적인 큰 도시를 만들기가 어렵다. 개성 이전에 수도였던 경주시나, 남한 도시 중에서 개발 가능한 평지가 좁기로 손꼽히는 부산광역시도 개성과 비교한다면 땅이 훨씬 넓을 정도다. 그나마 동남쪽에 현 시가지보다도 좁은 수준의 평지가 있었는데 여기에 들어선 게 바로 개성공업지구. 평양개성고속도로 북쪽에 계획된 약 1천만평 규모의 3단계 확장부지도 평지는 절반도 안되고 죄다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형태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틈만 나면 천도할 생각을 했을 정도로 워낙 협소하다는 디메리트 때문에 관광지로서는 몰라도 대도시로서 그리 큰 발전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만약에 통일 후 어떻게든 개성을 키우겠다면 성남시의 구시가지처럼 산을 다 깎아서 도시를 확장하거나, 개성의 구시가지를 놔두고 산들을 지나 개풍군, 장단군 쯤에 개성과 연계된 신도시를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신개성?

7. 북한에서의 위상

분단 이후, 본래 남한 지역에 속해있었다는 문제, 사실상 현대의 수도권이라고 봐도 될 법한 서울과의 거리, 북한의 입장에서는 최전방 근처에 위치한 도시라는 이유 등으로 굉장히 나쁜 지역에 속한다고 한다. 경기도와 바로 접하고 있다보니 이산가족도 많은 편.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북한에서의 "출신성분"이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때문에 조선로동당 입당이나 군인의 승진 등에도 영향을 끼쳐 군인들로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최전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생긴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져 군인들에게도 굉장한 선호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우선 개성공단이 있던 자리가 본래 군사적 최요충지로 포 부대가 잔뜩 배치되어 있었으나 개성공단이 들어오면서 포 부대가 전부 송악산 뒤로 옮겨가는 바람에 최전방이라는 긴장감도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거기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식적인 월급은 어차피 북한 당국에서 가로챈 다음 북한돈이나 물자로 대체해서, 그나마도 다 떼어먹고 주기 때문에 얼마 안 되지만 월급을 안 받아도 따로 나오는 간식이나 빼돌리는 물품들[14]만 장마당에 내다팔아도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살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군인들의 결혼상대로도 최고라고 한다.

또한, 개성공단이 들어오면서 개성 시내 지역에 상수도 시설이 깔리면서 인기도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제대로된 상수도망을 갖춘 도시라고 해봐야 평양이나 남포, 청진 등과 같은 극히 일부의 대도시에 불과하고, 이런 곳도 수도 시설이 노후화되어 제대로된 급수가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개성은 개성공단이 설치되면서 상수도 시설을 새로 설치했고, 용수가 풍부하여 급수 제한 없이 마음껏 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15].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 이후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휴전선과 가깝지만 탈북자들이 굉장히 적은 지역인데, 당연하지만 휴전선 근처는 전부 지뢰밭에 경비가 삼엄해서 탈출하기가 너무 어렵고, 그렇다고 중국 쪽 국경까지 가자니 출신성분이 나쁜 지역으로 낙인 찍혀 외부로 여행허가를 받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직할시에서 해제되고 황해북도 관할의 특급시가 된 지금은 법적 지위가 많이 애매해진 상황.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도 개성 차량 번호판을 유지하는 등 그 특수한 지위를 알음알음 용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사 남포시 역시 평남에 흡수된 이후에도 꽤 특수한 지위를 누리긴 했다. 창원시·수원시: 보고 배워라 좀 그리고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접경의 중추지로서 발전의 가능성이 다시 엿보이고 있다.개성공단이 재개업할까?

하지만 위에서 보듯 결과적으로 이런 인문적 풍토와 지리적 배경(삼면이 물), 역사적 배경(접경지역)이 도시를 확고한 "섬"으로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 주체교 사이비집단의 마수에 들어간 탓에 결국 도시의 위상 역시 대폭 떨어진 꼴이 되었다.

8. 관광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 이후 2007~2008년 잠깐 시행됐으나, 얼마 못가 2008년 박왕자 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중단되어 한국인이 공식적으로 관광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개성관광 문서 참조.

8.1. 명승지

옛 고려의 수도로 남한의 경주시서울특별시 못지않게 명승고적이 많다. 2000년대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았을 때는 금강산 관광과 함께 개성 관광이 있기도 했지만 박왕자 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중단됐다. 명승의 대부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됐다.

  • 만월대 - 옛 고려 왕궁.
  • 개성남대문 - 시가지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내성(內城)의 남대문이기 때문이다. 개성 나성의 남쪽 문은 고남문(古南門).
  • 관덕정 - 자남산에 있는 정자.
  • 성균관 - 조선시대 이후로는 향교이고, 간판만 성균관일 뿐이었다.
  • 개성유수영 - 고려 성균관 부지 내로 건물 이전.
  • 숭양서원 - 정몽주의 제사를 지내는 서원.
  • 선죽교 - 정몽주가 죽임을 당한 곳으로 유명한 곳.
  • 표충사 - 선죽교 옆에 있으며 정몽주의 충절을 기념하는 비각.
  • 목청전 - 태조 이성계의 옛 집.
  • 경덕궁 터 - 태조 이성계의 옛집으로, 개경으로 잠시 환도했을 당시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터만 남았다.
  • 안화사 - 송악산 기슭의 절.
  • 보제사
  • 고려왕릉 - 현 개풍군에 있는 왕릉도 많다.

9.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미수복 경기도의 하위행정구역 (이북5도위원회)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

1950년 당시 기준 17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수창동(壽昌洞): 이름은 고려의 별궁이자 조선 초기에는 조선의 궁궐로도 쓰였던 수창궁에서 유래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야마토마치(大和町, 대화정)라 불렸다. 시청을 비롯해 관공서가 밀집해 있었으며, 개성 제일의 번화가였다.
  • 동흥동(東興洞)
  • 서흥동(西興洞)
  • 남안동(南安洞)
  • 북안동(北安洞)
  • 선죽동(善竹洞):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가 있는 곳. 동네 이름도 선죽교에서 따왔다.
  • 자남동(子男洞)
  • 용산동(龍山洞)
  • 관훈동(冠訓洞)
  • 동현동(銅峴洞)
  • 손하동(孫河洞)
  • 고려동(高麗洞): 이름 그대로 고려에서 따온 동네 이름.
  • 만월동(滿月洞): 고려의 정궁인 만월대가 있는 곳. 동네 이름도 만월대에서 따왔다.
  • 태평동(太平洞): 개성역 소재지.
  • 사직동(社稷洞)
  • 운학동(雲鶴洞)
  • 덕암동(德巖洞)

이북 5도청에서는 북부, 서부, 남부, 동부 4명의 명예동장을 임명하고 있다.

10. 개성 출신 실존/가상 인물

11. 남북통일 이후

통일 후에는 엄청나게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선 서울과의 거리가 가깝다보니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살고있는 탈북자들이 이북에 살고있는 가족들을 지척에 두고 싶어해서 살게 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탈북자들의 가족들 뿐 아니라 북한주민들 중 남한지역을 동경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접근성이 좋은 개성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꽤 될지도 모른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경기도에 속했던 지역이니만큼, 수도권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훗날 통일 직후 이북 지역이었던 곳으로는 제일 먼저 재건 및 개발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게다가 대기업들이 이북지역간의 연락소를 세울 확률이 높으며, 무엇보다 판문점 선언 이후 개성공단이 맨 먼저 재가동될 것이 분명하다. 새로 가동될 개성공단에서 생산될 상품들이 무엇보다 북한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판매될것이어서 말그대로 북한 주민들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개성공단 근로자들과 더불어 상당수 북한주민들이 취업을 희망할 전망이라 개성공단이 통일 후 재가동되면 당장 근로자들이 거주하는 주택 및 숙소의 수요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공업단지로 재구성될 확률도 높다.

더구나 지리적인 조건으로 인해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역으로 떠오를 곳[17]이라 그야말로 상전벽해급 발전을 이룰 지역이다. 또한 사리원시와 함께 치열한 경쟁을 할 지역이 될 곳이다. 심지어 통일 한국의 수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개성 특유의 역사 관광 콘텐츠도 있다. 한옥 보존 지구를 비롯한 선죽교, 만월대 등 고려 왕궁 유적 등의 사적들이 나타내듯이 500년 고려 왕조의 수도란 역사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남한에서 이 개성과 맞먹는 역사성을 가진 곳은 조선의 수도 서울과 신라의 수도 경주 정도뿐이다. ??? : 우리는 왜? 남북 분단 상황에서도 이미 개성관광을 시행했던 선례가 있는데, 아예 통일이 되어서 이 역사 분야를 개발한다면 그 잠재성은 대단할 것이다. ??? : 위키니트 동무, 왜 나는 빼먹었시요?

결론적으로 남한의 자본이 유입될 최초의 북한 도시가 될 것이다. 대신 부동산은 헬게이트 절대로 농담이나 헛소리가 아니다. 당장 남북통일이 발생하는 것과 동시에 남한의 자본과 개발이 먼저 투입될 지역이기 때문에 주거용, 상업용 부지로 사용될 토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개성공단이 재건되면서 취업 희망자들이 북한 전역에서 모여들어 이들이 이주하게 되면 이들이 거주할 주택지나 아파트 건설까지 고려해야하고, 세터민들의 직계 가족들, 대기업 파견직원들을 위한 숙소와 사무실, 여기에 부설될 교통및 편의시설까지...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아닌 헬 그 자체가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수도권 전철이 여기까지 들어올 건 확실하다.


  1. [1] 엄밀히 말하면 개성특급시는 현재 황해북도 관할이기 때문에 광역행정구역으로 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분단 이후 상당 기간 동안 개성직할시라는 광역행정구역으로 있었고, 특급시 자체가 흔치 않을 뿐더러, 남포특별시라선특별시처럼 다시 광역행정구역으로 부활할 가능성도 높아서 나무위키에는 광역행정구역에 기재해 둔다.
  2. [2] 원래는 동쪽은 장단군, 서, 남, 북쪽은 개풍군. 1960~70년대 장단군이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파주시, 연천군에 임시 편입되었기 때문에 개성시와 파주시가 일단은 맞붙어 있게 되었다.
  3. [3] 송(松)이 소나무가 아니라, 고려의 수도로서 수도를 의미하는 서울(솔)의 음차였다고 보기도 한다. 이는 궁예의 수도 철원(鐵原, 쇠벌, 서라벌)도 마찬가지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동음이의어) 항목 참조.
  4. [4] 남한에 남은 서울역~도라산역 구간을 제외한 경의선의 북한 구간을 평양역을 기점으로 반으로 나누어 북쪽을 평의선, 남쪽을 평부선으로 나눈 것이다. 평양역~부산역이라는 의미로 서울역을 지나가는 흔한 중간역 1로 치는 것이다.
  5. [5] 1951년까지는 고등학교가 없었고 중학교 6년제였다.
  6. [6] 부산에도 같은 명칭을 가진 학교가 있다. 다만 이쪽은 부산상업고등학교가 인문계로 전환되면서 교명이 바뀐 학교이며, 한자가 다르다.(開城과 開成)
  7. [7] 1907년 개교하여 개성 최고(最古)의 초등학교다. 전원주도 이 곳 출신.
  8. [8] 장학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회림 창업주는 개성 출신이라는 인연을 앞세워 1975년 당시 시가 1억원(!!!) 상당의 주식을 송도중·고등학교에 헌납하며 학교 재단인 학교법인 송도학원의 이사를 맡았고 1982년에는 결국 학교재단을 통째로 인수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현재까지도 송도학원은 OCI가 운영하고 있다.
  9. [9] 조랭이떡은 눈사람 모양으로 생긴 떡인데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에 대한 증오심을 피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가래떡의 목부분을 나무칼로 짓눌러서 눈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이성계의 목을 졸라버리겠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ㅎㄷㄷ
  10. [10] 직선거리로는 58km으로, 평택시 송탄 및 이천과의 거리와 비슷하다.
  11. [11] 다만 개성이 수복되었더라도 대북전선의 최전방이기 때문에 관광을 겸한 중견급 군사-역사도시로 머물게 될 확률이 높다.
  12. [12] 김경진의 전쟁소설 데프콘에서는 통일한국이 수원과 개성에 수방사를 놓고 각각 경기 남북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언급이 있긴 하다.
  13. [13] 통일 이후 수원시 급의 위상을 가진 도시가 될 것이라는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닌 게, 정조 대에 개성, 화성, 남한산성, 강화를 유수부(留守府)로 지정하여 한양의 외곽을 담당하는 주요 군사도시로 지정한 역사가 있어 대략 수원과 개성의 위상이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수원이 서울, 인천과 삼각으로 수도권의 주요 공업지역으로 성장한 현대사를 생각해 볼 때 개성공단 및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 향후 통일한국의 행정중심지 및 공업배후지가 될 개성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얘기이다.
  14. [14] 김일성 어록 등 두꺼운 책에 구멍을 파서 넣어가지고 나오거나, 내복 공장 같은 경우 내복을 몰래 빼돌려서 껴입고 나온다고.
  15. [15]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상수도 요금이나 상수도 이용상에 제한이 없다.
  16. [16] 실향민이다.
  17. [17] 우선 남북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이점에, 향후 NLL지역의 긴장이 완화된다면 황해한강-임진강-예성강이 만나는 해상교통 요지로 대중국 무역의 중요지역으로도 떠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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