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난다

1. 개요
2. 역사적인 현실
2.1. 조선 이전
2.2. 일제강점기
2.3. 광복 이후 격동기
2.4. 고도 성장기
3.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
4. 개천에서 용났다는 인물들의 실상
5. 금수저와 흙수저의 갭
6. 신분이 고착화될 경우
7. 장학금으로 개천용 길들이기
8. 유전자 결정론자들의 시각과 비판
8.1. 유전자 결정론
8.2. 비판
9. 유사 표현
10. 기타
11. 해당 인물 목록
11.1. 현실
11.2. 가상
12. 같이보기

1975년 17회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이다. 총원 60명 중 59명이 대졸이고 노무현 한 명만 고졸이다.[1]

1. 개요

self-made millionaire / rise-from-humble-beginnings[2] / rags-to-riches[3] / intragenerational mobility[4] / 자수성가 自手成家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이 매우 열악한 사람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업적을 이루거나 매우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하는 경우를 이르는 속담이다. 행운을 맞아 갑자기 지위가 상승한 경우와는 다른 경우로, 물론 어느 정도 이 따라야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엄청난 노력으로 자수성가했다는 것이 전제가 되기에 100% 행운으로 성공한 경우는 이 속담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속담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성공하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머리와 보통 사람의 것을 뛰어넘는 끝없는 노력으로 멋지게 성공하여 주위의 인정을 받는다. 주로 가난하여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인물들이 스스로 열심히 독학하여 결국에 성공하는 경우에 이 속담이 쓰이는데, 공부 말고도 폴 포츠수잔 보일, 그리고 슈퍼스타 K2의 허각처럼 가지고 있는 재능에 비해 그것을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되는 경우에도 쓰일 수 있다.

신분상승이 어려운 현실을 가지고 사다리를 걷어찼네 마네하는데 사회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주요 레파토리가 이것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과거에도 굉장히 힘들었고 현대사회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거의 드문 일이다.

2. 역사적인 현실

2.1. 조선 이전

才不借於寒微.

인재는 가난하고 지체 낮은 집안에서 빌려오지(등용하지) 않는다.[5]

윤기(尹愭, 1741~1826)[6]

신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던 조선 후기까지는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있어도 신분이 미천해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아무 말 없이 자기 분수대로 살아야 했던 비운의 인물들이 많았다. 가끔 운좋게 인재를 보는 눈이 뛰어난 높은 신분의 사람을 만나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양반들의 차별과 자신들의 처지에 울분을 터뜨리고 다녔지만 이런 사람들은 백이면 백 서얼이나 중인이었고 아예 밑바닥의 사람들보다는 처지가 좋은 경우가 많았다.

사실 조선시대 이전에도 간혹 개천에서 용난 사례로 언급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장보고이의민처럼 혼란한 시대를 잘 탄 경우가 많고 그 외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돈이 없었을 뿐, 출신은 괜찮은 경우가 많았다. 가난해서 평민과 비슷하게 보인 셈이다. 그리고 양반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양반에 대한 집착이 지금보다 더 심해서 그 이너서클에 온전히 끼려고 별짓을 다했다. 명백하게 양반이면 별거 없어도 양반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혼인을 맺으려 하거나 자신의 집안마저 버리고 돈을 주고라도 양반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하는 사람들이 조선 후기가 되면 슬금슬금 늘어난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물론 실제로 족보 주작에 의하면 가짜 양반들이 상당히 증가하였지만 다들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족보 주작에 의하면 30~40%에서 최대 70%까지 양반이나 1910년 민적법 시행 이전 조사에 따르면 고작 1.9% 비율이다. 일제의 조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런 현상과 별개로 양반이 뭐 별거인가라는 식으로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었다.

조선초 관료 숫자는 조선 인구 추계에 따라 변동되지만, 아무리 많아도 인구 대비 0.1% 정도에 불과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양반 숫자를 파악하자면 많아야 1% ~ 2% 정도이다.[7] 500년 동안 문과는 고작 14,607명을 뽑았다. 심지어 합격자에 기존 양반들도 많아서 새로 진입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조선시대 인구는 대략 500만 ~ 1000만이다. 사실 명문가를 노린 족보 위조도 분명 있었으나 이만강처럼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명문가를 기피했다. 한미한 가문을 노려야 본래부터 양반인 것처럼 행세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원소 같은 케이스처럼 가문의 세도가 워낙 대단하여 천한 출신이 드러난다고 해도 과연 불이익인지 미묘한 경우가 있었지만 말이 많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명문가를 기피하였다.

오히려 사학자 송준호는 조선 후기 이런식으로 양반의 수가 급증했다는 주장을 최초로 제기한 일본 역사학자 시가타 히로시의 대구호적 근거인 조선 후기 양반제 붕괴론를 명확하게 반박하였다. 송준호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 '모칭유학'이라고 하여 호적에 유학이라고 칭하는 것이 행정상 가능했으며 웬만한 사람은 다 유학으로 직역에 기재되었지만 이것이 그 사람이 양반임을 뜻하지는 않았다. '유학' 중에 양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학이 준양반이나 하층 양반을 가리키는 말인 것도 아니었다. 명문세족에 속해도 과거출신자나 전·현직 관리가 아닌 사람들, 그리고 어떤 품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호적이나 향안에 '유학'이라고 쓰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또한 부를 축적한 농민이나 상민이 돈을 주고 양반신분을 살 수 있었다는 납속책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정부는 전란시에 군량미를 마련하거나 혹은 기근이 들었을 때 구휼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혹은 기타 이유로 정부의 재정난이 심각할 때 곡식을 바치는 부유한 백성들에게는 명예관직을 수여하는 임명장인 공명첩을 발행하였다. 그러나 납속을 통해서 가선대부니 통정대부와 같은 품계를 받은 '납속품관' 중에는 역시 명예직이라 실제로는 양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유한 사람이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이 되는 것도 당시의 사회구조에서는 불가능했다. 당시 사회에서 양반들은 대체로 여러 세대에 걸쳐 집성촌이라는 한 곳에 살아가기 때문에 서로의 집안 내력을 훤히 알게 된다. 또한 인간관계가 지연, 혈연결혼으로 맺어지는 척연으로 겹겹이 얽혀져 있고 보학이 발달해서 족보 위조가 설 자리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위조해봤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신분 상승의 효과가 없었다. 양반들이 잘 모르는 한미한 양반 가문으로 주작하거나 양반 가문에 의해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을 제외하면 신분세탁에 성공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양반이 몰락했다고 바로 평민이나 천민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 이승만처럼 본인은 망했어도 다른 집안사람들은 그 지위를 유지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양반이었던 이순신도 백의종군하여 보군으로서 군역을 살았지만 양반 취급을 받았다. 애초에 자기들끼리 친인척 관계이러면 솔직히 다들 인간적으로 마구 하대하기 힘들다.도 많고 추락했더라도 상대적으로 환경이 더 나은만큼 다시 올라오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다. 사실 추락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양반 취급 못받으면 엄청난 모욕을 느끼기도 했다.

조선 왕조 사회 때의 당시 사료를 통해 연구한 성취와 귀속에 의하면 조선 때도 문과 합격자를 배출한 750개 가문 중에서 36개 가문이 합격자의 53%를 차지하였으며 1789년 당시 전 인구의 2%를 차지하던 서울에서 43%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양반이 아닌 사람들도 양반의 양인 첩이나 노비 첩의 자식인 서얼로 양반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8]

몰락 양반 출신의 경우에도[10][11] 집안 대대로 책들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벼슬에 나가지 않아도 기본적인 소양, 교육열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과거 몰락 양반들도 몰락했어도 평민들이나 천민들과 다르게 문맹이 아니거나 한글만이 아니라 한문 혹은 신학문까지 능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재산이나 인맥 등에서 더 유리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과거[12]를 분석해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 출신지와 거주지, 친인척 관계 등이 불명확한 방목을 조사하여 해당 집안의 족보와 문집, 실록, 읍지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찾아 일일이 확인작업을 해 조선시대 지배 엘리트 인명록을 완성한 조선시대 문과백서[13]에 의하면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일부 씨족이 독점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만4607명 중 200명 이상 급제자를 배출한 씨족만 12 씨족으로 전주 李씨가 844명으로 으뜸을 차지했고, 다음이 안동 權씨(358명), 파평 尹씨(338명), 남양 洪씨(322명), 안동 金씨(309명), 청주 韓씨(275명), 밀양 朴씨(258명), 광산 金씨 253명, 연안 李씨(243명), 여흥 閔씨(234명) 순으로 적지 않은 숫자였다. 당연히 200명 이상만 있는 것도 아니고 100명 이상 배출한 가문들도 있다. 주로 혈연으로 무장한 양반이란 지위는 엄청나게 폐쇄적으로 제대로 된 양반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만이 아니라 가문[14], 족보 등 통과해야 하는 필터도 많았다.[15] 일부 학자들은 임진왜란 이후 신분질서가 문란해져 하층민들이 돈을 주고 족보를 사서 양반으로 신분상승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자료를 봐도 이런 가설을 사실이라고 뒷받침하는 근거는 딱히 없다고 한다.[16]

그래서 동학농민운동 때도 양반이 지도자 노릇을 하였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도 몰락 양반 출신이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백수라해도 서당같은 마을교육을 이들이 주도하기도 하고 지역 원로인 경우가 많아 무시하기 힘들었다.

2.2. 일제강점기

기존 지배세력들이 몰락하고 신분에 대격동이 있을것같은 일제강점기도 실은 조선의 구체제에 속했던 자들이 새로운 지배층이었던 일본제국에 충성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했다. 일본에서 귀족 작위를 받거나 한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 아니면 양반들이었다. 그냥 일본인에 비해 절대적 쪽수가 적었을 뿐이지 조선인들 중에서 이시기에 출세한 사람들의 비율은 조선시대 지배층이 압도적이었다.

반면 당시의 반체제 세력이었던 독립운동가는 양반이 적었다. 미디어, 특히 각색된 영상물들의 영향으로 양반들이 독립 운동을 활발하게 했다는 편견이 있지만, 고위직들만 양반 비율이 높고 대부분은 천한 사람들이었다. #

일본군, 헌병, 경찰이 조사한 의병장 및 부장 430명 중 직업과 신분이 분명한 사람이 255명으로, 255명 중에서 유생·양반이 64명(25%), 농업이 49명(19%), 士兵이 35명(14%), 무직 및 火賊이 30명(12%)으로 되어 있으며, 기타 포군(13명), 광부(12명), 主事·서기(9명), 장교(7명), 군수·면장(6명), 상인의 순으로 되어 있다. 또한 1908년에 귀순하거나 투항한 의병장 및 부장 28명 중 8명(28%)이 양반 출신이고 나머지 21명(72%)이 평민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의병의 경우에는 2,198명 중 양반이 겨우 57명(2.7%)인데 비하여 평민이 2,141명(97.3%)이다.

그나마 독립운동을 벌인 양반들도 대다수가 지방 출신[17]이었지, 원래 기득권이던 중앙의 고위 양반들은 왕족들을 포함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어 실질적으로 거의 전부가 일제에 나라를 팔아넘기는 조약을 체결하고 조선귀족이 되었다. 참고로 이 조선귀족들과 양반들은 일제의 요청에 의해 수탈에도 적극 협조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사실상 친일조선왕조 시즌2였던 셈이다.

반일을 외치며 일본을 견제하던 양반들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한일합병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태세를 전환하였다. 친청, 친러, 친미 등에 상관없이 조선 조정에 있던 자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친일파가 되었다. 일본군에 대한 반감으로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지만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맨 앞에서 앞장을 서 반일인 사람들을 색출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은 양반들 밑에 있던 조선인들이었다.

이완용, 송병준 등 매국노들은 각기 무리를 짓고 친일 충성 경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1910년 강제 병합이 완성되자 이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각종 은사금과 부동산 등은 물론 조선귀족 지위까지 받았다. 왕실 종친 박영효는 28만 원, 이완용은 15만 원, 박제순은 10만 원의 은사금을 받았다. 일제 망할 때까지 그들이 일제로부터 받은 사례들 중에는 본래 다른 조선인들의 것을 수탈한 것들도 많았다.

사실 좋은 가문이 아닌 한미하더라도 어쨋든 양반의 반열에 끼는 당시 환경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학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조선인 일본군 또는 만주군 장교들을 보면 당장 아버지부터가 양반 역적이 되어 몰락 이었던 박정희나 본래 위세 있던 몰락한 양반 집안인 홍사익 등은 취학률이 높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치고는 절대 다수인 사람들과 다르게 학력이 좋았다. 1910년에는 초등학교 취학률도 4% 가량에 불과한 때였다.

2.3. 광복 이후 격동기

억울한 일이지만 광복 후에 친일파 척결을 제대로 하지 않고 넘어가서 수탈당한 사람들의 재산권은 인정되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의 것을 수탈한 양반출신이 대다수였던 고위 친일파들의 재산권은 인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 현실에서도 독립유공자들이 돌아오니 친일파들이 다시 반공으로 돌아가 버티고 있어 할 수 있는 게 없는 경우도 많았다. #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 및 "무조건 힘센 놈들(양반 및 일본 등.)한테 붙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의 격동기에도 성공한 사람들은 실제로 가문을 보면 생각보다 순수한 개천용 출신은 별로 없었고 사실 대게 양반 출신들이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승만같은 사람들은 원래부터 하류계급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혈통으로만 보자면 조선왕조와 관련이 있을 정도로 개천용도 아니었다. 그외에도 김구, 김규식 윤보선, 장면 같은 사람들은 명문가든 아니던 어쨋든 양반 이상의 계급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문의 사람들은 아무리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혁파되고 일제강점기까지 거쳤다고는 하나 양반가라면 조건이 최대로 안좋은 몰락 양반[18]이라 해도 집안 환경상 인물들부터가 생각하는 바나, 의지력, 가치관 같은 게 평범한 평민들과 비슷하다고 보기는 힘든 부분이 많다.

독립 후에도 문맹률이 80%로 상당히 높았다. 출처 양반들 입장에서 보자면 가문이몰락해서 불우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이 일본어는 커녕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인간들이 대다수라 절대 다수의 경우는 경쟁은커녕 게임도 안 되는 셈이다.[19] 심지어 초반에는 문맹에서 벗어나는 기준조차도 높지 않았다. 당시에는 자신의 이름을 읽고 쓰며 1에서 10까지 수를 읽고 쓸 수 있으면 문맹에서 벗어났다고 판정했다고 한다. 출처

조선의 구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린 6.25전쟁으로 실제 이 시기에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혼란시기를 틈타서 체제 전복으로 생긴 빈자리에 들어간 거지 이게 용처럼 승천한 것도 아니다.

봉건적 유교사회의 기반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을 받은 시점부터 한계를 드러내어 구성원들이 이탈하면서 몰락하는 중이었고. 한국에서 유교 사회가 빠르게 붕괴된 이유는 6.25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일제강점기[20]와 더불어 6.25전쟁이다. 6.25전쟁 이전에는 조선의 본래 전통적 사회는 아니었지만 전근대적인 사회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다.

서울대학교의 이만갑 교수는 한국 농촌의 사회구조 등의 연구에서 경기도 마을들의 사회, 경제, 문화 실태를 조사하였는데, 주민들의 사회 관계를 규정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양반인가 상민인가라는 신분이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신분을 예민하게 의식하였다고 한다. 양반들은 천민들을 멸시하였으며, 양반과 천민이 대등하게 관계를 맺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 공산군은 양반들에게 종속된 사람들을 동원하여 양반들을 학살하곤 했다. 물론 반대로 양반들이 학살한 적도 많았다. 사실 일제보다는 전쟁의 역할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에서는 어린 양반 소년이 천민인 노인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지만 전쟁 이후로는 많이 사라진다. 전쟁 직후에는 서로 학살을 해서 그런지 양반과 천민이 서로 적대적인 분위기를 가진 곳들도 있었다. 즉, 공산군에 의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적의 입장으로 전환되어 영향을 미친 것. 이런 사례들은 어떻게 보면 천민들이 전쟁 직후까지도 양반들의 영향을 받고 있긴 했다는 뜻이다.

사실 양반들의 자산과 그 권리는 6.25 후에도 생각보다 멀쩡했다. 공산주의 시절 러시아나 몽골[21] 등처럼 귀족들을 망하게 한 것도 아닌데, 양반들이 딱히 몰락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도 북한에 있던 양반들만 망했다.

2.4. 고도 성장기

그리고 실질적으로 개천에서 용난다는 사례가 가능했던 시기라고 꼽는 50~90년대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도 중고등학교 평준화 이전인 63학년도에 서울 시내 명문중 신입생을 도심지 명문 초등학교 출신들이 독식하기도 했으며 당시는 경기중에 입학하면 경기고를 거쳐 거기서 절반 정도 혹은 그 이상이 서울대를 가던 시절이었는데, 63년도 경기중 신입생 423명 중 237명이 서울시내 7대 명문초등학교 출신이었다.

어쨌든 일제강점기와 6 25 전쟁 이후 차차 신분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교육의 힘을 깨닫게 되면서 없는 집 부모도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들을 교육을 시키게 된 덕분에 개천 출신(?) 용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전후인 1960년~70년대에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시골에서 상경해서 공장 일이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고 남는 시간에는 틈틈이 공부만 한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뒤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과 달리 그 시절에는 대학만 들어가도 대단한 성공이었다. 물론 이것도 당시 흙수저들 입장에서 성공이지 절대 대학만 졸업[22]했다고 자동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고위 공무원들도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부귀영화[23]를 달성하기 어려워서 금수저들에게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를 약속하기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90487

학벌과 공부 실력은 오히려 지금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편견 혹은 희망사항(?)과 다르게 세력가들 위주라 대부분 학자들에 대한 대우[24]도 그리 좋지 못하였다. 고려대만 해도 감히 도전했다고 철저하게 털렸다.[25] 군인들도 면제율이 높고 자원병(수기사 수색대 등)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서 전투력과 별개로 상대적으로 더 시민의 군대가 아니었다. 설명하자면 성향이 이상하거나 출신이 안 좋은 사람들[26]을 정예 부대[27]에 배치하지 않거나 그대로 집에 보내서 군대에 그런 사람들을 옹호할 사람들이 더 없었다. 정부에 항의하여 시위하던 사람들이 군인(특히 정예면)들이 나타나면 다 도망치는 이유가 있었다.[28]

정주영 같은 경우 소 한 마리만으로 자수성가가 가능했다는 말도 약간 시대상을 감안하지 못한 말인데, 당시에는 그게 전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예로 소 한 마리 가격이 지금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생각보다 큰 돈이었다. 정주영이 소를 팔아서 얻은 돈이 70원이었는데, 통계청 근거 # 에 따르자면 1940년대 22.68圓은 현재가치로 152,347원이고 이걸 환과 원으로 바꾸어 계산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비록 당시 후진국이라서 전세계에서의 절대적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안에서는 창업하기에 부족한 돈이 아니었다. 지금도 후진국에서 꽤 큰돈이라는 수준이 선진국 사람들이 보기에 절대적인 돈의 크기가 그리 대단한 레벨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나라 안에서는 다르며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을 수 있다. 그리고 정주영은 학벌 역시도 초졸이라고는 해도 당시는 보통학교[29] 취학률이 4% 남짓했으므로 그는 4%안에 드는 사람이었다.

추미애 변호사처럼 사시를 통과하고도 자신은 개천용이 아니라고 여긴 사람들도 있었으며 과거에는 공부만으로 성공했다는 식의 발언은 어떻게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아직도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짜로 맞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가난에 시달리고 있어도 과거보단 부유하게 되었다고 나름대로의 관점에 따라서 자신은 자수성가 및 성공했다고 여기기도 하고 사실 이들에게는 이 정도면 개천에서 용은 아니더라도 성공했다고 봐도 좋다.

'개천에서 용난다.' 신화의 60~70년대에도 그 수는 매우 드물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을 대표하는 이른바 3대 고시등을 통해 개천에서 용이 배출되어 왔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속설에 불과하다. 그 때도 3대 고시는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공부량을 요구했기 때문에 수년동안 이것만 준비해도 합격이 되는 건 좋은 집안의 사람들이었고 합격자의 총원도 얼마되지않아 유의미한 신분이동의 통로가 아니었다.

더구나 현재는 법으로 막았지만 성장기 때는 정부나 기업에서 배경을 요구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사람들이 대놓고 당신의 출신을 물었던 시절이다. 사실 박정희 정부 때는 국가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적 정책을 운영하던 지주와 자본가들의 시대라 특히 빨갱이나 범죄자 등과 관련된 출신이 안 좋은 평범한 흙수저들[30]에게는 정상적인 방법[31]으로는 지금보다도 더 희망이 없었을 수도 있다. 행정자치부, kb국민은행 등[32]의 자료를 살펴도 그렇다. 박정희 정부 시절은 불로소득이 생산소득을 2.5배로 능가하였으며 토지 총액이 국내총생산의 12배에 달하여 기득권 사람들이 경멸하는 사람들은 기회를 얻기가 더 힘들었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그렇게까지 심한 차이[33]는 나지 않는다.

3.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

21세기 들어서는 주경야독식으로 공부해서 합격하는 경우는 그동안 누적된 사례 발전으로 인해 더 어려워졌다.

사법고시의 경우 그 동안 쌓인 판례의 양이 더 늘어나서 공부할 양이 더욱 늘었고, 행정고시와 외무고시는 관료제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과 개선의 역사가 고시의 문제 내용에 반영되며 더욱 복잡해졌다. 여기에 더해 적잖은 수험비용과 엄청난 기회비용에 더해 수험에 적합한 두뇌 또한 요구했다. 상세한 것은 사법시험/존치 논란 문서 참조.

그런데 그나마도 사법시험은 신규 진입할 수 있는 인원 수가 점점 줄어들다가 2017년 12월 31일부터 없어졌기 때문에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에 진학해야 된다. 다만 제도상 애매한 중산층에게는 확실히 불리한 제도일지 모르나, 진짜 저소득층에게는 유리한 면도 있다. 6분위 이하 저소득층은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고, 3분위 이하는 대부분 전액 장학금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에 진입하기 전에도 비용이 드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값비싼 사교육의 등장으로 인해 빈곤층 자녀가 독학으로 부유층 자녀를 제치거나 따라잡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으며, 수시학종의 비중이 늘어나 소위 스펙 경쟁 시대가 되면서 공부만 잘한다고 대학을 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여유가 있는 집 자식들이 '개천'의 상황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은 상황이다.

예체능 분야의 경우에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과거보다 어렵다.[34][35] 과거에는 능력이 되면 일단 진입해서 경쟁하던 시절이었지만, 요즘은 가수 되려면 큰 돈 내고 트레이닝도 받아야 하고 미용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진입하기 전에도 상당한 돈이 들 수밖에 없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더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과거와 달리 별다른 조건없이 인디 작품을 유통시켜 주는 플랫폼들도 생겨났기 때문에 혼자서 홍보만 잘 할 수 있다면 희망을 가져볼 수는 있다. 예시로 광고 수익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튜브, 일부 웹소설 플랫폼 등을 들 수 있다. 요즘에는 배우가 되는 건 가수가 되보다 훨씬 어렵다. 과거에는 배우가 되려면 연기력을 갈고 닦고 비주얼만 받쳐주면 대성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아이돌 먼저 거쳐야 하기 때문에 20살이 넘어서 연예계에 진출할 길은 거의 막힌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아이돌이 우후죽순마냥 양산형으로 마구 쏟아지는 판국에 일반인이 배우의 길로 들어서기란 어지간한 기반이 없이는 매우 힘들게 변모하고 말았다.

사실 이는 사회가 고도화되고 안정되고 있는 이상 개천용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 소위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를 체감한 사람들은 대체로 1980년대까지 활발했던 산업화와 변화의 시대를 겪은 이들이 많다. 외환위기 이후의 세대들은 더이상 한국이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전후 시대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미개척의 분야가 많았고, 솔직히 말해서 돈으로만 보자면 다들 개천 신세였다. 쉽게 예를 들자면, '소 한 마리 값을 훔쳐나와 창업했다'라는 일화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옛날 시대 농가에서 소 한 마리 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현재로 따지면 아버지 정년퇴직한 퇴직금을 훔쳐 달아나거나 아버지 노후에 피시방이라도 차려보려고 집 담보 대출받은 돈을 들고 튄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어쨌든 현재는 이미 잘 짜여진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용'이 되려면 이미 다른 '용'들의 자리를 밀어내는 큰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이므로 자연히 '용'이 나오기는 힘들어진다.

요즘에는 갑질, 금수저, 달관 세대, 흙수저, 88만원 세대, 86세대, 86세대 책임론, N포세대, 헬조선,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 노력충, 낙하산 인사, 허니문푸어, 꼰대 등등 신조어가 수도 없이 터져 나오면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해방 직후~1990년대까지는 한국 사회에 '개천'이 훨씬 많았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큰 강이 이미 뚜렷하게 흘러가고 있어 여기서 용이 나오기 훨씬 쉬워진 셈이다. 쉽게 말해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가 미치는 영향이 옛날에 비해 훨씬 커졌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신조어는 진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성공하기가 힘들어서 나오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따지기 좋아한다는 그 일본인들보다도 학벌, 경력, 성적, 나이 등을 더 따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벌이 좋지 않거나 경력이 단절되거나 하는 실패(?)가 미치는 영향이 성공에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그럭저럭 중견기업 이상의 비정규직은 정직원 기준이 대략적으로 대졸에 학점 3.5 이상이면 정직원 도전 기회가 2번 정도 주어지는데 이거에 실패하면 일반적으로 남은 기간에 상관없이 망한다고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가서 재도전할 기회 거의 없다. 다른 사업이나 투자도 실패한다면 계층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계층 이동은 원하는 계층 사람들보다 빨라야 입성 가능하다. 즉 현재의 대한민국은 먹고 살 수는 있는데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셈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이기고 성공하는 사람들도 항상 존재하기는 존재한다.

좀 딱딱하게 말하자면, 한국 사회 내에 관료제적 조직이 이미 확고하게 짜여져 있는 이상 이를 순식간에 거슬러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나오기 쉽지 않은 법이다. 그렇다고 관료제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구조적인 안정성을 보장하는 대신에 사회의 역동성은 희생된다고 볼 수 있겠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실은 예전에도 별반 다름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악물고 '노력'하여 성공하는 "용"들은 계속 나오고 있어서 실상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어쩌면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36] 왜냐하면 위에도 적혀있는 소판돈 가지고 상경해서는 집의 돈을 '훔쳐서' 인 것으로 이 '소'라는 재산이 지금이나 헐값이지 보릿고개에 굶기를 예사로 하던 예전 시절엔 정말 큰 재산이었으며 지금으로 치면 아버지 명퇴하고 장사라도 해보려고 하는 퇴직금이나 집 담보대출금을 들고 가출해서 사업을 시작한 셈으로 소판돈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패륜 사실 옛날에는 농사나 지으라고 아예 학교도 안 보내는 집부터가 쌔고 쌨었다. 즉 중학교를 다니는 상황조차 허용되는 집이 많지 않았다는 얘기로 옛날 시절에 고학력인 사람 중에 친일파 집안 출신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라. 당시에 학업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던 것과 80%가 대학을 가는 지금 세대에 비유했을 때 그 80%에 속해있다는 게 별다른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진로의 다양화보단 그저 대학만 가라는 식의 교육과 방침의 한계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나 사교육 탓에 대한 말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개천에서 용 나더라는 '그'시절엔 잘 사는 집이 아닌 경우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중학교 이상을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때에 비해 적어졌다고 한다면 사교육의 폐해라고 다 몰아붙이기엔 복합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밀도가 심할 정도로 높다. 그런데 그 원인이 전후 세대86세대의 과잉출생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1950년 1월 1일부터 1969년 12월 31일까지 출생한 사람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서 대한민국 인구 전체의 절반 수준이 이 단 두 세대에 몰빵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 세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2020년대까지는 이들의 본의 아닌 방해로 인해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 상황은 시간이 타개해줄 문제로 1970년 생이 만 70살이 되는 2040년이면 자동으로 해결된다. 그때쯤 되면 전후 세대86세대는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을래야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계속 용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의무교육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교육이 판치는 지금 빈곤층 자녀들은 아무래도 부유층이나 중산층 자녀들보다는 더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때문에 정부, 그리고 특히 교육 부서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고 정권마다 나름대로 제도 개편을 시도하는 듯하지만 어째 성공적이었다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노무현 정권기의 수능 등급제는 대체로 대차게 욕 먹고 실패했던 교육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수능 절대평가 논의도 비판을 받고 1년 유예된 상태이다. 수능을 날려버리면 저소득층들과 애매한 서민층은 명문대에 진학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교육 정책은 확실히 그만큼 민감하고 어려운 사안이긴 하다.

정보화 사회가 시작되면서 인터넷 강의 등 지역과 계층 간의 격차를 보다 축소시키는 도구들이 등장했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그렇게난 '용'들이 죄다 서울로 가는 인서울, 서울 공화국 현상이 뚜렷해졌다. 쉽게 말해 개천에서 난 용들이 개천을 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도 이것대로 문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문서로.

대한민국은 이미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사회가 안정화되어 계층간 이동이 어려운 단계에 진입하여 현재는 개천에서 용 비슷한 걸로라도 올라오려고 치면 개천 안에서 가로막아 뱀이나 이무기에서 막혀버리는 사회가 되었다. 그만큼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하늘에 빈 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구멍들을 다 차지해 버린것이다. 결국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2018년 이후 출산율 0명대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유명 양반 가문들[37]을 보면 부자들도 꽤 많고 친인척들이 도와줘서 가난하지는 않은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빠지자 통계적으로 계층 이동이 더 어려워진 것처럼 나타난 착시 현상도 있다. 오히려 사회가 더 개방적이 되고 새로운 수단들이 등장하여 과거보다 계층 이동이 더 쉬운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긴 있다.

4. 개천에서 용났다는 인물들의 실상

애초에 시대적 흐름을 어느 정도 읽고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어 어렸을 적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성공 과정을 엄밀히 분석하면 다리 좀 건너면 실질적인 도움까지 주는 이너서클 비슷한 모임 같은 게 있어서 자본이나 인재를 모으는 것이 진짜 가난한 집안 출신들에 비해서 유리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도 집안으로 치면 혈통적으로 관련이 있었거나 서로 아는 사이인 부자들이 꽤 많다. 심지어 윌튼 가 같은 경우 아예 500대, 1000대 부자에 들어가는 같은 집안 사람들이 꽤 있다.[38]

엄격하게 역사를 살피면 고대나 현대나 완전한 극빈자가 정점을 찍어본 사례는 극히 드물다. 사실 칭기즈 칸이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스티브 잡스처럼 별로 대단한 게 없어 보여도 최소한 조상이나 부모가 평균 이상은 해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극빈자에 속한다고 볼 수 없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먼저 칭기즈 칸은 아버지가 죽은 후 고생한 삶이 부각돼서 그렇지 아버지부터가 부족장이고 그의 씨족은 칸을 배출 할수있는 권리를 가진 혈통이다. 한편 코르넬리우스 씨족 자체는 고대 로마의 전체 집정관 중 40%를 차지했을 정도의 최고 명문이지만 정작 술라 본인의 가문은 몰락하여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어렸을 때 창녀의 돈을 받아 공부하기도 했다.[39] 물론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후에는 자신의 혈통빨을 제대로 받았다. 참고로 코르넬리우스는 씨족의 이름이고 술라가 가문의 이름이다.

실제로 과거 역사만 봐도 이순신, 항우, 리처드 1세 등등 뛰어난 사람들의 출신이 진짜 흙수저였던 사람들에 비하여 상당히 결과가 좋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심지어 현재에도 빌 게이츠, 스티브 워즈니악, 워렌 버핏, 제프 딘 등등 세계 최고를 달성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워렌 버핏, 제프 딘, 스티브 워즈니악처럼 정규 엘리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성공하는 모습은 거의 나루토를 보는 수준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마지막 학벌은 좋지만 처음 학벌은 그다지였고 중퇴와 편입 등이 많았다.

이런 케이스는 알고 보니 사람 자체가 그냥 개사기적이었던 것이 많다. 이게 농담이 아니라 이런 케이스 중에는 심지어 이공계에서도 선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그들과 진짜 가까운 사이인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그들을 대단하게 생각한 사람들 역시 많았다.[40] 대부분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보다는 후진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부자, 혈통 등등 출신부터가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 자기 출신을 뛰어넘어 더 큰 부자가 되거나 더 뛰어난 업적을 이루는 걸 자수성가로 평가하는 사례가 흔하다. 예를 들어서, 대학을 중퇴하고 낮은 시급이나 받는 쓰레기 청소부나 하다 자수성가했다는 미국의 웨인 후이젠가 조차 본래 혈통은 네덜란드계 금수저 출신으로 이미 할아버지부터가 쓰레기 사업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쓰레기 사업하다가 망해도 가문이 있어서 그런 것들이 없는 흙수저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를 수 있다. 심지어 그가 자신을 흔한 흙수저들과 같은 족속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차이가 너무 명백하게 있었다. 외국도 흙수저들은 가문의 역사고 뭐고 없다. 알려지지 않은 미국 400년 계급사를 참고하자면 미국 금수저들도 그런 출신의 흙수저들을 대놓고 멸시하던 시절도 있었다. 더구나 평등한 조건의 교육을 보장하는 북유럽 국가들조차 사회경제적 위치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과학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편이다. # 미국의 위인들도 서민 출신이라고 나온 라이트 형제나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처럼 서민 출신이 아니라 부르주아 출신들이 은근 있다. 가난하다고 서민 출신으로 보면 웨인 후이젠가도 서민 출신이고 학력이 안 좋다고 서민으로 보면 J.P 모건도 서민 출신이다. 그리고 대대로 군대에 종사한 유럽 귀족 출신들이 근대화 이후에도 일반 서민들에 비해서 군인[41]으로서 능한 것처럼 본래 상공업자였던 부르주아들도 산업자본가들답게 대대로 상공업에 능한 사람들이 많았다. 귀족 출신들도 장군은 흔하지 않았으나 병사로서도 능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부르주아 출신들도 거대 자본가들이나 CEO처럼 높은 위치는 드물었으나 보통 상공업자들로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도 그들은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거나 짧게 받아도 바로 병사나 상공업자로 투입이 가능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건 농부인 부모님에게 농사일을 전수받으면 따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처럼 할 수 있거나 능한 것과 같다. 농부 출신인 사람들은 농사에 관하여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하여 농부 출신이면 유리까지는 몰라도 절대 불리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보다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후진국 사람이 선진국 사람보다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격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남을 따라해서 성공하기 힘든 것도 그런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오해나 잘못된 정보 때문에 애초에 출발선부터가 달랐던 사람들의 경로를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은데, 그런 경우 어떤 지점부터는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을 수 있다.

5. 금수저와 흙수저의 갭

지금도 상류층인 사람들과 하류층의 차이가 본질적으로는 별로 없거나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는 이걸 쉽게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차이만 지원이나 특혜 등을 제공하여 제거하면 진짜 흙수저들도 쉽게 계층이동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 과거의 예상과 다르게 출신 좋은 사람들의 저력이 만만하지 않아서 개천 문제가 발생한다. 개천과 별로 차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출신이 좋으면 그게 돈이든 재능이든 아니면 환경이든 기회든 뭐든 이미 있거나 생기게 될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실제로 출신이 남들보다 좋으면 무엇이든 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42] 물론 출신이 좋아도 키가 작거나 돈이 없거나 머리가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조건이 전부 다 좋지 않기가 매우 힘들다. 오히려 환경이나 부모 같은 문제조차 평균 이상으로 평범한 사람보다 앞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사실 출신 좋은 사람들의 배경을 조사해 보면 그들이 결국은 일반인들을 이기고 위에 서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니까 일반인들보다 더 실패하는 상류층 사람들이 비정상인 셈이다.

게다가 더욱더 슬픈 현실은 가면 갈수록 돈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있다는 점. 20~30년 전만 해도 못생기거나 키가 작거나 무식[43]한 건 어쩔 수 없고 재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무제한의 자금이 있다면 성형수술, 사지연장술(비록 리스크가 있지만), 대치동이라는 21세기 첨단 의학기술과 사교육 기법을 활용해서 어느 정도는 뜯어고칠 수 있다. 비록 오징어가 연예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평범한 훈남이 되는 건 가능하며, 키 역시 난쟁이가 190cm 거인이 될 수는 없어도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종아리가 5~6cm 길어지는 정도는 가능하며, 수능 7~9등급 돌대가리에 학습 의지가 없다 한들 수능 1등급이 되는 건 불가능해도 수능 3등급 정도는 될 수 있다. 돈을 무제한적으로 퍼부을 수 있는 상류층이라면. 이러니 일반인보다 더 실패하는 상류층이 이상해 보이는 건 당연한 것...

사실 의외로 유서 깊은 집안들만 오랜 기간 동안 번영하지 그렇지 못한 집안들은 성공해도 생각보다 빨리 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유서 깊은 집안들도 망하기도 하고 새롭게 탄생하기도 하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6. 신분이 고착화될 경우

계급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개천용(남녀 무관)들이 주류 사회로 진입할 길이 제도적 혹은 실질적으로 막혀 있으면 결국 그 체제를 전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앙시앵 레짐을 타파하기 위한 제3계급 출신 부르주아들이 주축이 되었으며, 중국 역대 왕조를 붕괴시킨 장본인들도 지배층들의 폭압이 한계치를 넘은시점에 다 갈아엎어버리자고 잃어선 개천용 출신들의 하류층 농민 반란이 많았다. 진시황의 폭정에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찮가지다 하며 일어선 진승오광이나 황건적, 홍건적, 이자성, 홍건적, 태평천국이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계급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선진국, 개도국을 막론하고 벌어지고 있는데 개선에 실패하게 된다면 결국 체제가 전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개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서민층은 절망에 빠져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끝났을 것이며, 여기에 자신의 능력이 아닌 혈통 때문에 새로운 지배집단 진입이 안 된다는 걸 아는 신흥세력 역시 지배층 고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외로 기득권이 스스로 체제를 전복시킬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현 기득권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신흥(?) 세력[44]으로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서 된 사람들도 많고 실제로 자유지상주의[45][46][47]의 아나코 캐피탈리즘 같은 것들은 서민층보다는 기득권에서 더 많이 지지하는 중이다. 단적으로 대한민국의 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최근까지도 주식보다 부동산의 수익률이 훨씬 높았으나 # 어리석게도 책이나 남들이 지껄이는 주장만 믿고 주식의 수익률이 부동산보다 높은 줄 아는 사람들도 널렸다. 이런 사람들이 기득권보다 실력이 낫다고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언더도그마, 권악징선 등을 참고하면 약자도 강자보다 능력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우수하지 못하다.[48][49][50] n번방 사건에서 잡힌 사람들은 물론 피해자들도 약자들이지만 가해자들 역시 걸리거나 잡히지 않은 일부를 제외하면 약자들이었다. 그리고 n번방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조치도 없었던 사람들의 구성원도 서민들이 절대 다수다. 심지어 오르비 같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사이트들까지 퍼져서 본 사람들 숫자도 꽤 많았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많은 사람들이 무능하거나 의지가 없었다.[51]

기득권에도 물론 운빨로 오른 사람이나 어이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자유주의 경쟁이 지속됨에 따라 점점 더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52][53] 다만 서민층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다. 처음부터 뭐라도 가진 게 많고 흙수저가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길 근거는 없다.[54] 실제로도 그들도 어떤 부분에서 기존 체제의 법적, 정책적 억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사람들도 많다.

# 흙수저들 눈으로 보면 무능하고 착취적인 적폐(?)들은 진짜 그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도 많다. 굳이 예를 들자면, 어떤 인간들은 막장 부모/유형에 있는 인간들처럼 내로남불이나 변명이 심하지만 양반 같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막장인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도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는 식[55]으로 변명하고 정신승리나 하지만 양반들은 그런 변명 자체를 하지 않는다. 간단한 이유로, 양반인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은 다수가 하찮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변명 자체가 내심 금지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런 짓도 안 한다. 우리나라에는 양반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56]이 인구 대비로 보면 굉장히 많은데, 그들의 과거를 조사하면 남들처럼, 남들보다 미개하게 산 사람들이 훨씬 적고 인생에서 미개하게 보낸 시간도 적다. 양반 출신들은 남들을 하찮게 생각해서 발생하는 갑질과 차별[57] 정도를 제외하면 매우 이상한 짓거리를 하다 물의를 일으키거나 잡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양반 의식이나 집안 등을 유지하고 있는 상류층 사람들이 너절하고 하찮은 범죄로 털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될 정도다. [58] 양반 출신들은 남들을 하찮게 생각해서 발생하는 갑질과 차별[59] 정도를 제외하면 매우 이상한 짓거리를 하다 물의를 일으키거나 잡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양반 의식이나 집안 등을 유지하고 있는 상류층 사람들이 너절하고 하찮은 범죄로 털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될 정도다.

혹자는 대한민국이 개천 흙수저 출신들을 막는다고는 하나 요즘 세계 추세가 흙수저 개천 출신들이 밀리는 편이다. 포브스 100대 부자에도 중국처럼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개천 흙수저 출신들이 거의 없다. 더구나 중국은 정상적인 상류층들이 처음부터 없어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2016년 기준)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연이은 내전이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빠른 세력 확장도 종교적 광신성과 더불어 출세길이 막힌 신흥세력들의 가입이 큰 역할을 했다. 이라크 시아파 기득권층에게 밀려나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된 수니파들 중에서 양심을 포기한 일부가 ISIL에 가담한 것이다.

7. 장학금으로 개천용 길들이기

현대에 들어 사회가 투명해지자 과거처럼 뇌물을 쓰는게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지배층들은 한 가지 꼼수를 생각해 내는데 바로 장학금이라는 것이다. 이미 현직에 있는 사법부 판사들을 '뇌물'로 구워삶는 게 안 된다면, 그 뇌물을 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의 형태로 줘서 자기들 편을 들어줄 판사로 키우는 것이다.

특히 이 방법은 장학금을 줘야 될 만큼 경제력이 문제가 되는 가난한 학생, 다시 말해 개천 출신일수록 더더욱 효과가 강하며, 나름대로 개천 출신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도 강하기 때문에 현재 지배층 사이에서 매우 선호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그 외에도 대기업들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계획할 때 그걸 실행에 옮길 임직원을 뽑거나, 특정 국가의 타국에 대한 외교적 견제 정책으로써 자국에게 우호적인 성향을 가진 거물 인재를 키울 때도 사용된다.

8. 유전자 결정론자들의 시각과 비판

8.1. 유전자 결정론

유전자 결정론자들은 유전자가 개천에 용이 나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과거에는 지능이 우수한 사람들이 개천에 많았지만, 지금은 그 부모세대에서 기본적으로 개천정도는 아닐 만큼 성공했기에 개천에 용 후보들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개천용으로 여겨지는 칭기즈 칸이나 스티브 잡스처럼 조상이나 부모가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졌지만 불우한 사정으로 개천으로 떨어졌다가 능력을 꽃피워 용이 된 사람이 많다.

확실히 스포츠 스타 정도를 제외한 개천 드래곤들을 보면 부모가 뭔가 특출난 면이 있었지만 게으름이나 술병, 시대적 상황에 따라 좌절되는 바람에 본인도 흙수저가 된 케이스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스탈린의 술주정뱅이 아버지 조차도 그 시골에서 몇개 언어를 능숙히 했을 정도로 비범한 면이 있었다. 즉 머리는 좋으나 양아치로 산 경우.

이런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개천용만을 특별히 지원하는 정책은 불필요하다고 보지만, 의무교육 지원이나 사교육 규제 등 혹시 존재할지 모르는 개천용이 있다면 개천용이 그 기회를 펼치기에 유리하게 만드는 정책들에 대해 개천용 지원이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보편적 복지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개천용의 기회를 보장하고 다른 용들이 많이 탄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견해를 갖는 경우가 많다.

8.2. 비판

그런데 부모나 가문이 잘난것도 사실 환경의 일부로 볼 수있다. 사실 대대로 잘난 가문을 분석하면 분명 그들은 잘난 부모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환경도 다른 집에 비해 상당히 나았다. 학구적이고 교육열이 높은 부모와 막장부모 아래의 자식을 생각해보면 된다. 양반층에서 잘난 인물이 나온것은 그들의 유전자가 대대손손 훌륭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대대손손 훌륭해서이다. 근대에도 이회창가문이나 장하준가문 같은 명문가를 보면 어려웠던 한국 근현대사에 가난한 문맹 부모 밑에서 기초교육도 못받고 넝마주이를 하며 보릿고개넘기는게 제일 목표였던 대다수의 보통 장삼이사 가문들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유복한 환경이었다.[60]

그리고 부모가 잘난것이 대대손손 물려지기만 한다면 세상에 망하는 왕조나 재벌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느왕조던 창업군주나 창업주는 입지전적의 인물들이지만 망할때의 군주나 오너는 형편없는 인물인 경우가 많다. 성군이나 뛰어난 경영자의 자식이 대대손손 그 기질이 계속 나와만 준다면 참 좋은 것이겠으나 그렇지 않고 암군이나 폭군, 무능한 재벌3세가 나온다는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왕실이나 재벌은 교육환경은 부침없이 좋은데도 말이다. 유전자는 어느정도 윗세대의 것을 타고 나는 것이지만 그대로 똑같이 내려가는것이 아닌 조합되어 형성되는 것이라 꼭 같으리라는 법이 없고 타고난 유전자를 극복하거나 잘 활용못 할수도 있고 각각 개인의 인생경험에 따라 가치관등 성격이 결정되는 부분도 크다. 그러므로 절대적인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을 과거 우생학적 사고방식을 담고 있어 사회진화론과 같은 사상으로 이어질수 있어 위험하고 과학적으로도 사실이 아님은 열등한 유전자를 없애고 우수한 유전자의 형질을 보존하자는 T-4 프로그램등의 여러 우생학 프로젝트들이 실상 생물학적으로 뻘짓들이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틀렸음은 역사가 증명했다.

9. 유사 표현

  • 비슷한 속담으로 '개천에서 용나고 미꾸라지가 용된다'가 있다.
  • 일본에도 비슷한 뜻의 표현으로 "鳶が鷹を生む"(솔개가 매를 낳다)라는 것이 있다.
  •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라는 표현도 있다. 입지전(立志傳)은 이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입신출세한 사람들의 전기를 의미하는 말.
  • 한자성어 중에서는 용문(龍門)에서 물고기가 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다고 하여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 등용문이라는 성어는 개천에서 용날 기회, 혹은 그런 사람을 뽑는 대회, 학교 등의 뜻으로 쓰인다. (예시: 슈퍼스타K는 가수의 꿈을 가진 일반인들의 등용문이다.)
  • 견부호자의 일부 사례 또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과 통한다. 굳이 일부 사례라 한 이유는, 행보는 막장이더라도 사회적 지위는 그래도 나름대로 갖춘 견부들이 있기 때문. 대표적인 게 암군, 폭군 아버지.
  • 이에 반대되는 말로 개천에서 용난 놈 만나면 개천으로 끌려들어간다가 있다. 쉽게 말하면 '크게 성공한 사람을 만났는데, 성공한 사람처럼 되려고 그 사람이 다닌 학교나 학원을 다닌다'는 의미다.

10. 기타

  • 이 문서의 의미를 모티프 삼아서 만든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장르 소설이 존재한다.

11. 해당 인물 목록

※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기재함

11.1. 현실

※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거나, 조직의 말단에서 최고 수장까지 올랐거나, 불리한 스펙을 극복한 사람만 기재한다. 다만, 시작점 자체가 말단에서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사실상 보장되어 있는 의사, 검사, 군대의 간부 같은 경우는 제외. 한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코르시카의 듣보잡 귀족 가문 출신임에도 전 유럽을 뒤흔든 풍운아가 되었으므로, 여기에 기재될 자격은 충분하다.

  • 강민 -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 유리 공장에서 일했는데 유리공장에서의 작업과 프로게이머 생활로 극도로 시력이 악화되어 특수한 렌즈를 껴야할 정도로 시력이 나빴고 이것때문에 공익 근무를 하게 되었다. 프로게이머 시절 몽상가이자 삼대토스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으며 프로토스 중 유일하게 양대리그 우승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되었다. 은퇴 이후에는 게임해설가가 되었고 재테크도 잘하여 건물을 몇 채 소유한 건물주가 되었다.
  • 강성태 - 경상북도 문경시(前 점촌시)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특별시로 전학왔는데 시골 촌놈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고 당시에는 힘도 없고 공부도 별로 못해서 따돌림을 받았다. 원래는 공부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준으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아니었고 고교 입학시험 점수는 전교 꼴찌에 가까웠고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시험에 전교 380명 중 307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엄청나게 노력해서 2001학년도 수능[61]에서 만점에서 고작 4점 모자란 점수인 396점을 받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62]에 합격하였다. 그후 교육봉사 활동을 통해 멘토링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공신닷컴의 대표이자 공신이 되었다.
  • 강영우 -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였고, 중학생 때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결국 시력을 잃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몇 년 후에 누나까지 죽었다. 이러자 남은 동생들을 육아할 형편이 안 되어, 결국 둘 중 한 명은 친척 집으로, 다른 한 명은 고아원으로 보내게 되면서 혼자가 된다. 그럼에도 온갖 노력 끝에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국제로터리 재단으로부터 장학생으로 뽑혔고, 엄청난 노력으로 한국인 최초로 장애인이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강용석 -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전통적이면서 전형적인 사례.
  • 강호동 - 다만 강호동은 씨름 선수였을 때도 잘 나갔다.
  • 갤러거 형제 -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 가정폭력범 아버지 밑에서 힘겹게 살았었고, 어머니의 이혼으로 아버지로부터 벗어난 후에도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온갖 사고를 치다가 퇴학당했다. 특히 형인 노엘은 가정폭력에 심하게 시달렸어서 한동안 언어장애로 고생하기도 했고, 성인이 되서도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를 피해 숨어버린 적도 있다. 이 때 노엘을 찾아온 아버지를 쫒아낸 것은 다름아닌 동생인 리암인데, 형들보다 덜 시달렸다지만 이쪽도 아버지의 기분이 나쁜 날이면 속절없이 맞았다.
  • 궁예 - 한국사 판 주원장. 비록 결말은 좋지 못했으나 한국사 통틀어서 이만한 인물도 없다. 다만 신라왕실의 후예라는 설이 있지만 그 설이 사실이라도 왕족으로서 덕을 보기는 커녕 그로 인해 숱한 어려움을 겪었으니 논외. 천애고아로서 떠돌이 중에서 지존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주원장 케이스와 유사하다.
  • 권보아 - 아버지가 정치인이 된다며 선거로 돈을 날려서 압류된 집 앞에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가 부진할 때 보아 덕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으니 SM의 중흥공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 권혁빈 - 스마일게이트의 창업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인물이지만 재산이 7조이건희, 이재용, 서경배 다음가는 인물로[63] 재산만으로 따지면 최태원, 신동빈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데 따지면 국내 5대기업 총수 2명을 합친 재산보다 더 많다는 얘기다.[64]
  • 기황후 - 공녀로 끌려갔다가 차를 따르는 시중을 드는 궁녀에서 혜종의 아들을 낳은 것을 계기로 황제의 정실부인이 되었고 뛰어난 정치력으로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황후의 자리에 오른 후 조국인 고려에는 기씨 집안을 이용해 내정간섭을 하거나 공물을 착취하는 민폐만 끼치면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의 케이스가 되었다.
  • 김기덕
  • 김규환 - 자유한국당 소속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강원도 평창군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퇴했고 그 후로도 1990년 전문대에 들어갈때까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쥐약을 먹고 자살하려 했지만 여동생이 막아 포기한 직후에 신문지에 대우중공업의 구인광고를 보고 창원으로 갔다. 입사한 뒤에 청소부로 시작하여 1992년에 국가명장이 되었고 그의 인생스토리는 MBC 성공시대에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다.
  • 김대중 -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으로, 후임자인 노무현과 함께 단 둘뿐인 고졸 출신 대통령이다. 다만 건대 합격을 했으니 무조건 고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긴 하다. 물론 그래도 이 항목에 들어갈만한 인물인건 확실하다.
  • - 본래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마저 여의자, 어머니와 누나들과 함께 쓰레기더미에서 고철을 골라내 파는 부업으로 생계 유지를 했다고 하며, 오늘날에 이르러서 자신이 무너진 집안을 다시 일으켰던 셈이다. 그러나 세 번이나 음주운전을 저질러 몰락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자신이 다시 일으킨 집안의 명예에 자신이 먹칠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 김동연 - 원래 유복한 가정이었으나, 11세 때 아버지가 타계하고 가세가 기울자 소년 가장 역할을 하면서 온갖 잡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한국신탁은행(現 하나은행)에 입사했으며 국제대학(現 서경대학교) 법과대학 야간학부에 진학한 후 주경야독으로 독하게 공부하여 입법고시행정고시 동시합격하고 여러 직책들을 거친 뒤 19대 문재인 정부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 김두관 - 영화 이장과 군수의 등장인물인 노대규 군수의 실제 모델이며 동네 이장에서 출발해서 군수와 도지사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 김두한
  • 김만덕 - 조선 후기 제주도 양인의 집에서 태어났으나 12살 때 부모님을 여의면서 생계를 위해 기생이 되기도했으며 양인 신분으로 돌아온 뒤 장사를 시작해 뛰어난 사업수완 능력으로 부호로 떠올랐고 다른 객주들의 시기로 투옥되었다가 지역 주민들의 상소로 풀려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1795년에[65] 태풍이 제주도를 강타하면서 가뜩이나 식량 생산이 저조했던 도내 농사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자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본토에서 쌀 500섬을 사와 도민의 구호에 써달라고 관가에 헌납하였고 수많은 도민을 살린 구휼 사업으로 훗날 제주도에는 그녀를 기리는 의녀 만덕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유교 사회와 남존여비, 기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부호로 성공한 조선시대 여인의 대표적인 사례.
  • 김병만 - 공사판 막노동, 배관공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해봤으며 심지어는 손이 잘릴뻔한 적도 있고 추락사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이미 크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험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 김병관 -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웹젠의 이사장과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 김성태 -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가 KT에 입사하여 노동조합 간부를 역임하고 한국노총 사무총장도 지냈으며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비례대표 서울시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2008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강서구 을에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한 후 19대, 20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어 3선에 성공, 2017년 12월 12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 김수영
  • 김승우
  • 김승현(배우)
  • 김영광 -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고 어린 나이에 여러 알바를 경험했다고 한다.
  • 김우중 - 한때는 신문사 지국에서 신문배달원을 했지만 대우그룹을 설립하고 나서 재벌이 된 후로는 권위주의적, 지나친 방만 경영으로 비판을 받아왔고, 결국에는 대우그룹을 1999년에 망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 김자연 - 처음에는 긍정적인 의미였지만, 단 한번의 실수로 망했다.
  • 김제동
  • 김해영
  • 견훤 - 아버지인 아자개가 지방 호족이었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말단 군관으로 출발해 후백제의 스스로의 힘으로 건국 군주가 되었다. 그 후백제를 스스로 멸망시키는 등 말년이 비극적이긴 했지만, 일단 자수성가에는 확실히 속하는 인물.
  • 나리미야 히로키 - 부모가 이혼 후 어머니와 남동생과 살다가 중3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고교 진학을 포기한 채 프리터로 살다가 중졸인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찾다가 발견한 게 바로 배우.
  • 나카무라 신스케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이 육사에 입학한 것은 아버지가 코르시카 섬의 지방 귀족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66] 프랑스 혁명에서 공을 세워서 통령 자리에 오르고,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까지 했다.
  • 나플라
  • 네이마르
  • 노라조
  • 노래하는 민이
  • 노무현 - 지독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고졸 출신으로 울산에서 막노동을 하며 공부를 병행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67] 그 뒤에는 세금과 관련된 변호사로 일하면서 판사를 역임했다가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을 변호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김영삼의 권유로 정계입문을 했고 동구(부산)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5공 비리 청문회로 상승세를 탔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민주당 당적으로 영남 지역의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수많은 낙선을 거듭해 결국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사법시험=개천에서 용나는 시험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68] 하지만 부인 권양숙 여사와 형 노건평의 뇌물수수 사건에 휘말려 2009년 뒷산에서 자살하여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 니콜 셰르징거 - 인터뷰 중 "우리 집은 별로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어머니가 내가 가수되는 걸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니키 미나즈 -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으로 할머니와 같이 생활하다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나 가난했던 가정형편과 마약중독에 알코올중독이었던 아버지[69]로 인해 불행한 일생을 보내게 된다. 이후 라구아디아예술학교에 진학하면서 래퍼의 꿈을 키워갔고, 뉴욕 퀸즈를 중심으로 점차 인지도를 얻어가면서 현재 The queen of rap이라는 여성 래퍼로써 최고의 명칭으로 불리게 됐다.[70][71]
  • 니키타 흐루쇼프 - 무학의 문맹 광부 출신으로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던 인물.
  • 다나카 가쿠에이
  • 대니얼 브라이언
  • 대니 추
  • 대도서관
  • 데미 로바토 - 한부모 가정에서 어머니, 언니와 셋이서 살았다. 이후 새아버지와 재혼하면서 여동생 매디슨이 태어나 5명. 12세 때 아역배우로 데뷔하고 이로 인해 겪은 학교폭력도 극복하고 성공한 아역 출신 연예인이 됐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무려 아시가루 출신으로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다. 오다 가문에 들어 온 이후에는 한낱 시종이었다가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 입신출세했다. 오늘날로 따지면 하루하루 벌어 먹기 힘든 빈민이 우연한 기회에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 집안에 고용되었다가 고용인과의 인연으로 이등병으로 입영, 이후 국방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된 셈이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입신출세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
  • 도원결의 , 조운 - 관우는 황건의 난 이전의 생애가 불명확한 인물이며 심지어 죄를 져 도망쳐 다녔다는 설도 있다. 장비는 유주 지방의 상인 집안 출신이란 것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유비는 몰락황족의 후예로 오로지 그것 밖에 없는 인물.[72] 황족 신분이 그에게 도움이 된 건 그가 출세한 이후의 이야기다. 조운은 상산 출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공손찬 휘하의 일개 객장이었다. 이들은 이후 각기 황제, 대장군 직위, 관우는 사후 신격까지 얻어 현재까지도 동아시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 도파: 방송 도중에 어린시절 가난했음을 암시하는 말을 자주 하며 학비와 돈을 벌기 위해 대리게임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어머니가 빌딩에 투자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 등애 - 삼국시대(중국)에서 농사꾼 출신으로 구품중정제로 승진한 케이스다. 최후는 좋지 않았지만, 자손 중에 비록 천 몇 백 년 후이긴 하나 주석이 나왔다.
  • 디디에 드록바, 즐라트코 자호비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안드리 셰브첸코, 조지 웨아, 사무엘 에투, 차범근 등 축구 약소국 출신 축구영웅들.
  • 디에고 마라도나
  • 디오클레티아누스
  • 라니아 왕비 - 팔레스타인 난민의 딸로 태어났으나 경영학과 금융학을 공부하여 뛰어난 인재가 되었고 이후 압둘라 국왕과 만나 결혼해 요르단의 왕비가 되었다.
  • 라자 나잉골란 - 한부모 가정에서 4남 1녀[73] 중 막내로 태어나 아주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 래리 버드 - 인디애나 깡촌 프렌치 릭의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장작패기 등 집안일을 돕고,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후유증으로 PTSD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놀 거리라곤 그저 농구밖에 없었는데 그 농구를 기가 막히게 잘해서 NBA 역사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명성, 그리고 부까지 얻었다.[74]
  • 레흐 바웬사 - 노동자에서 노벨평화상, 폴란드 대통령까지 이르렀다. 다만 대통령으로서는 평가가 좋지 못했다.
  •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 - 홀어머니 슬하의 7형제 중 넷째였으며 할머니가 주로 돌봤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 브라질 대통령으로 이 사람도 오바마 못지 않은 배경의 정치인이었다. 빈민으로 태어나서 젊었을 때 공장 노동자로 손가락이 잘리는 재해를 당하고 아내를 산업현장에서 생긴 암으로 잃은 뒤, 이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여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 허나 부정부패 스캔들로 다 까먹었다.
  • 루피
  • 루카 모드리치 - 크로아티아 전쟁 난민 출신
  • 루카스 토레이라 - 축구선수가 되고 나서도 차 주유비가 없어 고생했다고 한다.
  • 리즈머리 -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의 저자. 어렸을 때 부모가 마약중독자였으며 15살에 가출해서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의 길을 걸었지만 어머니의 죽음과 여러 이유로 대학교에 입학하는것으로 목표를 정한 뒤, 결국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 리오넬 메시 - 가난한 집안에다 본인이 큰 병마를 갖고 태어났음에도 실력으로 극복해냈고 축구선수로서 대성했다.
  • 리처드 휘팅턴 - 고아에서 시장이 된 케이스.
  • 리카르도 라틀리프 - 버지니아 빈민가인 셸 로드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이 일명 헬(hell) 로드 라고 부를 정도로 궁핍하고 험난한 곳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홀어머니를 위해서 육상을 시작했다. 이후 농구로 종목을 바꾼뒤 NCAA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NBA 드래프트에도 참가했지만 지명을 받지 못 하고 KBL로 왔는데, 처음에는 첫 프로 무대다 보니 힘든 모습들이 있었지만 그후 점차 리그에 적응, 결국 KBL 최고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후에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포르투갈의 가난한 가정에서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두고 있어 힘들게 생활했으나 축구를 통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현역 생활을 했으며, 발롱도르를 5번이나 수상했다. 추가로, 호날두가 스포르팅 리스본에서의 유소년 시절에, 훈련에 지각을 해서 리어카를 끌고 쓰레기를 청소하는 벌을 받았는데 그 리어카에는 페라리라고 쓰인 낙서가 있었다. 그걸 본 친구들이 "부릉부릉"거리며 호날두를 놀렸는데, 그때 호날두는 '내가 언젠가는 진짜 페라리를 몰고 다녀야지.'라는 결심을 했고, 결국...
  • 르브론 제임스 - 어린 시절 아버지 없이 자라서 집안사정이 매우 어려웠고, 전학도 12번이나 했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현재는 NBA 최고의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 마리오 시갈리 -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꼴랑 트럭 1대만 갖고 건설 사업을 시작해서 맨몸으로 굴러가며 일을 해 결국 부동산 재벌이 되었다.
  • 마빈 게이
  • 마빈 해글러
  • 마쓰시타 고노스케 -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으나, 마쓰시타 전기를 세워 이후 내쇼날, 파나소닉 브랜드를 만들어낸 경영의 신이 되었다.
  • 마츠자카 케이코 -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배를 타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탄광, 공장 등지에서 막노동일을 하던 재일 한국인 출신의 가난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몸을 팔며 성매매를 하던 매춘부 출신이었지만 정작 딸은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부모와는 달리[75] 1970, 80년대 당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일본 연예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여배우로 성장해 일본 국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 마우로 이카르디 - 아버지의 취업난에 아르헨티나에서 카나리아 제도로 이민왔다가 아버지의 강요로 축구를 시작했다.
  • 마윈 -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 그룹의 창립자로, 중국 기업인으로서는 드물게도 정경유착에 기대지 않고 순수하게 자력으로 성장해서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들어낸 케이스다.
  • 마이클 블룸버그 - 중산층 출신이었고 증권사에서도 해고되는 삶을 지냈지만 퇴직금으로 세운 블룸버그 L.P 설립이후 현재 오리지널 금수저 출신 도널드 트럼프보다도 자산이 8배 가량 앞서는 자수성가형 금수저가 되었다.
  • 마이클 잭슨 - 가난한 흑인 집안에서 태어나 인종 장벽을 뛰어넘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 마테오 코바치치 - 오스트리아로 피난한 크로아티아인 난민 부부에게서 태어났다.
  • 마티아스 베시노 - 축구선수 아버지를 뒀으나 청소년기에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3개의 직업을 가지며 힘들게 3남매를 키워냈다.
  • 머독
  • 모하메드 하디드 - 하디드 3남매의 아버지로 이스라엘군에게 모든 걸 다 뺏긴 팔레스타인 난민의 몸으로 미국에서 으리으리한 저택들을 여러 채 갖고 있는 부동산 재벌이 됐다. 당장 하디드 일가가 살고 있는 저택들을 검색해 보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 미국 대통령앤드루 잭슨, 밀러드 필모어,[76] 에이브러햄 링컨, 앤드루 존슨,[77] 율리시스 S. 그랜트, 제임스 가필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78] 버락 후세인 오바마[79]
  • 미로슬라프 클로제 - 폴란드 출신으로 태어나자마자 프랑스로 이주하여 거기서 7년간 유년시절을 보내고, 독일에서도 어릴 때 독일어가 서툴러 고생했던 클로제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야 축구를 시작했고 그나마도 목공일을 병행하며 독일 7부리그인 블라우바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탓에 축구 선수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19세에 5부리그 FC 홈부르크로 이적, 한시즌 만인 1999년 3부리그인 카이저슬라우테른 2군로 이적을 한다. 이후 2000/01 시즌에 분데스리가에 처음 데뷔를 하고,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5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 순위 2위에 조국의 준우승을 이끈다. 그 이후에도 분데스리가 득점왕, 2006 독일 월드컵 3위 및 득점왕, 2010 남아공 월드컵 3위,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에 이어 월드컵 통산 개인 최다골인 16골을 넣으며 7부리그에서 어느 순간 월드컵을 정복한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게 되었다.
  • 미천왕 - 고려 현종의 대선배이다.
  • 문재인 - 문재인의 부모는 실향민(월남자)이었고 흥남 철수로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메르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피난을 왔다. 학비도 제대로 못내면서 궁핍하게 살았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사법고시를 차석으로 합격했고[80] 인권변호사를 하다가 참여정부에 들어서 민정수석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고 부산 사상구에서 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를 거쳐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매니 파퀴아오
  • 바실리오스 1세
  • 박나래
  • 박명수 - 본인이 개그 소재로 써먹기 때문에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지방 소도시인 군산시의 서민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공병 주으러 다녔던 것부터 당구장 아르바이트까지 산전수전 다 경험한 인간승리자다. 이 당시의 군산시는 정말이지, 어지간한 시골보다 못 했던 도시다. 심지어, 허경환아는 형님에서 증언했듯이, 매우 오랫동안 무명이었다고 한다.
  • 박서양 - 일개 백정 출신으로서 제중원의 의학 교습생으로 들어가 한국사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고, 그대로 독립운동에 투신해서 독립운동가로서 여생을 보냈다.[81][82]
  • 박성춘 - 위의 박서양의 아버지.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에서 연설을 하는 등, 천민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했고, 아들이 의사 겸 독립운동가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같은 노력을 기울여서 은행가로 자수성가했다.
  • 박승현 -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로 근이영양증 투병중임에도 장재호, 박준, 김성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다.
  • 박정희 - 아버지 박성빈은 처가.. 그러니까 박정희 외가의 소작농이었고, 형 박무희는 장택상 집 소작농이자 머슴이었다.[83] 거부인 처가(육영수의 집안) 덕을 전혀 안 본 것도 아니지만, 나중 일. 단, 그의 집안은 본래 양반 출신이나 아버지(박성빈)가 동학농민운동으로 반란을 일으켜서 역적이 되어 망했다. 근데 어떻게 보면 일반 천민들의 경우에는 역적짓으로 집안에서도 쫓겨난 상황이면 완전히 인생이 망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박성빈은 처가의 도움을 얻어 먹고는 살았던 것이라 아버지 때부터 다를 수도 있다. 사실 몰락해서 그렇지 박정희 혈통 자체는 나름 준수한 편이었다.
  • 박지성 - 외동아들이었는데 키도 작고 왜소한 체형 때문에 주위에서 걱정하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온갖 보양식까지 먹어가며 키워서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 박찬호 - 여타 스포츠 선수들처럼 어린 시절에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편이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당시 초특급 유망주로 알려진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후 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MLB 리거이자 MLB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투수가 되었다.
  • 박초아 - 20대 초반에 가세가 기울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나 다행히 이 때 돈을 많이 벌어둬 연습생 때 용돈은 이걸로 썼다.
  • 박태준 - 가난한 농부의 아들 출신. 한국전쟁 직후 군인의 길을 걷고 제대 후 정부 관료가 되어서 많은 공을 세워서 '별명'이 철강왕이었다. 포스코를 설립한 창업주이기도 하다.
  • 베키 지 - 차고에서 생활하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연예인의 길을 택했다.
  • 반기문 - 빈가 농민으로 태어났으나, 학업에 열중하고 정치를 열심히 하여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 원래는 가난한 노동자였으나 낙하산 타는 취미를 가졌던 데다가 아버지가 전쟁 영웅이었다는 이유로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 백선행 - 평안도 출신.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되어 불우한 삶을 살다가 복숭아 씨앗 장사를 시작으로 돼지치기 등 온갖 장사를 해가며 돈을 벌었고, 만달산 일대의 땅을 모두 사들여 시멘트 공장 부지로 되팔면서 갑부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교육사업은 물론이고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대한독립의 숨은 공로자가 되었다.

  • 백종원 - 부유한 집안이긴 했으나 그도 한때는 사업에 실패해 막대한 빚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자력으로 다 갚았다.
  • 베니토 무솔리니 - 나쁜 의미에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다.
  • 블라디미르 푸틴 - 전쟁 후 가난하고 힘겹게 살던 부부가 겨우 얻은 자식이었지만, 차르나 다름없는 자리에 올랐다.
  • 블랙넛
  • - 집안이 말도 못하게 가난하여 유명 가수가 되여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연습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 비와이 - 독실한 신자인 만큼 성서에 나오는 이 구절을 많이 랩에서 사용하는데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미비한 만큼 창대하다는 것을 믿지 언제나...
  • 사담 후세인
  • 샘 킴
  • 서인국 - 어머니가 자기를 가졌을 때 통닭이 먹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가 통닭 반 마리를 사서 드신 후 뼈도 버리기 아까워 사골로 우려먹었을 만큼[84]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슈퍼스타K 오디션에 합격하고 우승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가수 겸 배우로 크게 성공하였다.
  • 석륵 - 중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노예 출신 창업황제.
  • 선예
  • 선미 -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 속에서 상경하여 JYP 오디션 합격 후 원더걸스의 멤버가 되었다.
  • 설인귀
  • 김세정 : 부모님이 이혼해서 오직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자라났지만[85], 현재는 아이돌 최초 데뷔연도 음원 음악방송 1위 가수가 되었고 연기자로는 지상파 미니 시리즈 여주인공으로 데뷔 후 KBS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연예인이 되었다. 예능 역시 지상파 3사를 비롯 JTBC와 tvN 예능 프로그램 중 출현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찾기 어려울 정도. 이 분야에서도 SBS 연예대상에서 수상까지 했다. 참고로 꽃길만 걷자 라는 단어가 대중들에게 많이 쓰여진 계기가 세정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였다.
  • 셀레나 고메즈 - 부모가 고교생의 나이에 사고쳐서 셀레나를 낳았고 재정난을 겪다 그녀가 5세 때 갈라섰다. 셀레나의 어머니는 3개의 직업을 가지며 그녀를 힘들게 키웠으며 지금도 셀레나는 어머니께 가장 감사한다.
  • 성완종 - 지역 유지 출신이고 사후 동생이 국회의원이 된 것으로 보아 여기 어울리는지는 의문이긴 하다.
  • 소성진 - 원래 아이돌 매니저를 하던 사람으로 기획사 하나를 차려서 걸그룹 하나를 차려서 운영했더니 망했다. 그냥 망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업계에서 매장당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이후 빌린 돈으로 다시 걸그룹 하나를 다시 차렸는데 이건 초대박이 났다.
  • 손견 - 당대에는 매관매직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군공만으로 이런저런 높은 관직들을 따냈다.[86]
  • 송창식
  • 스가 요시히데 - 일본 정치계의 드문 자수성가형이다. 아키타현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해 공장에서 일하며 대학을 다니는 주경야독을 해 법학과 학위를 받은 후, 정치인의 비서부터 시작해 정계에 발을 들여 장관이 됐다.
  • 스다 아카리 - 별다른 푸쉬를 받지 못했으나 오로지 팬사인회로 팬들의 호감을 쌓은 것을 통해 총선거에서 카미에 들어 선발이 됐다. 이를 책으로 써내기도.
  • 스즈키 나오미치 -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으며 대학 갈 돈이 없어 공무원이 되어 주경야독을 했다. 홋카이도 유바리시에서 공무원으로 시작해 시장까지 지낸 후 홋카이도 도지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코로나19에 재빠르게 대처하여 일본 국내 호감도가 높아져 일본 정치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 수잔 보일 - 오디션 보기 전까지는 그냥 일반인에 불과했지만 오디션을 통해 대성공을 한 인생역전의 주인공. 그 후 연애와 결혼까지 하였다.
  • 스카티 피펜 - 이 인물도 어린 시절 집안이 아주 굉장히 찢어지게가난했고, 고등학교 때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한 NCAA가 아닌 NAIA라는 인지도 낮은 대학 리그에서 플레이를 하였기 때문에 대학 시절 초기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실력과 피지컬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당시 시카고 불스의 단장이었던 제리 크라우스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시카고 불스에 드래프트되었지만 당시 크라우스 단장의 이런 결정에 대해 의아해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불스에서 피펜은 90년대 왕조를 이루는 주축으로 성장했다.
  • 스티브 잡스 - 문제아, 입양아였지만 남다른 창의력을 뽐냈던 천재. 다만 대학원생 커플의 아이었던 등 유전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었다.
  • 신격호 - 빈농 가정출신, 어렸을때 불우한 환경 시달려서 일본 가서 ''으로 시작해서 롯데그룹 성장을 해냈다. 다만 부유했다는 증언도 있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1999030502141 주민들은 신씨가 당시 큰 부자는 아니었으나 머슴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살림이 넉넉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 신동엽
  • 실베스터 스탤론 - 가난한 백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집이 가난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으며 단역 배우를 전전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으나 록키람보라는 두 마스코트를 통해서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로 떠올랐다.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 한 때는 유람선 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적도 있었다. 이탈리아판 이명박.
  • 아돌프 히틀러 - 좋은 의미 쪽으로 용은 아니지만 용과 같은 위치로 자수성가한 것은 맞다. 게다가, 독일 출신도 아닌 오스트리아 출신에 땅딸막한 사람이고 집안 배경도 영 아니었고 상병 출신의 일개 나부랭이었다. 오죽하면 파펜 등 여러 사람들이 우습게 알고 있었을까? 독일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히틀러를 정치 뜨내기 정도로 무시하고 있었다. 나치가 망하기 직전까지도, 귀족 출신이 많은 장군들은 그를 보헤미아의 상병 등으로 부르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군소정당의 일개 졸부 선동가 출신임에도 출신이 더 나은 자신들을 지휘하고 국가 최고직에 오른 것이 탐탁찮기 때문이었다. 다만 히틀러는 혈통, 국적 출신이 안 좋던 거지,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다. 아주 부유하였으나 본인이 사치스럽게 살다 다 날려버린 케이스다.
  • 아카츠카 후지오 - 10살 때 아버지가 소련군에 연행돼 잡혀간 상황에서 남은 가족들과 같이 만주로부터 일본으로 자력 귀향했는데 그때까지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남동생이 입양되어 형제 수가 줄어드는 등 무척 힘겨운 나날을 보냈고, 초등학생 & 중학생 생활을 겪은 나라 현과 니가타 현에서 일가가 만주에서 돌아왔다며 적잖은 차별을 겪은 것과 더불어 집단괴롭힘을 당한 적도 있었다. 또한 니가타 현으로 이사할 때까지[87] 어머니가 일하는 직장의 급료로 남은 형제들과 간신히 먹고살았을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으나 1956년 만화가 데뷔를 시작으로, 몇년 뒤 개그 인기 만화가의 자리에 오르면서 일본 전역에서 유명세를 얻었고 나아가 일본 만화계에 막대한 영향을 남겼다.
  • 안소희 - 아버지가 집배원이었다고 한다. 이혼 후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 안정환 - 어린 시절 굶주림이 몸에 배어 있어서, 현재도 절대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 안토니오 카사노 - 아버지 없이 축구선수로 성공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성공하고 나서야 아들이 보고 싶다며 돌아왔으나 아들은 단칼에 거절.
  • 안톤 체호프 - 문학사상 매우 드문 하류계층 출신. 농노의 자식이 펜 하나로 레프 톨스토이[88]와 같은 반열에 오른 인간승리.
  • 알폰소 데이비스 - 가나의 난민 캠프에서 라이베리아 출신의 부모님에게 태어났으며, 5살 때 캐나다로 망명해 2017년이 되어서야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시민권을 딴 당일에 국가대표 상비군에 등록되었다. 이후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캐나다 국가대표팀 최연소 데뷔 및 득점 기록을 세우며 캐나다 축구의 유일무이한 희망으로 성장하고 있다. 클럽 커리어는 더 흠좀무한데, 우선 USL 최연소 데뷔는 물론이요, MLS 데뷔 최연소 2위,[89] 그리고 MLS 역사상 최고 이젹료 등 온갖 기록을 세우다 무려 유럽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 두 시즌 만에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먹어버렸다.[90]
  • 야마시타 토모히사 -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살면서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정한 게 아이돌.
  • 양학선
  • 양진호 - 갑질 논란으로 유명해진 그 양진호 맞다. 양진호에 대해서 말하는 인터뷰에서 소위 금수저 출신이 아니라 자수성가로 부를 쌓은 사업가라고 언급이 되었고 여기에서 나온 프라이드가 극대화 되어서 갑질을 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 여자친구 - 3대 기획사가 아닌 중소규모 쏘스뮤직 소속이었다. 처음에는 이 회사에서 GLAM이라는 걸그룹을 냈으나 시원하게 망했고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 멤버 중 다희가 괜히 이병헌을 잘못 건드려서 GLAM을 해체하게 만들었고 여자친구 데뷔조 역시 계속 탈퇴하는 상황이 계속되어 진짜 쥐어짜서 정은비를 데려와 겨우 6명을 맞춰서 데뷔했다. 이 정도면 그냥 무명도 아니고 인지도 자체가 개박살난 무명인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달려서'로 초대박을 치고 난 이후 TWICE와 더불어 대한민국 걸그룹 양대산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에드워드 존 스미스 - 낮은 계층 출신으로 화이트 스타 라인사에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선장으로 발탁되어 침몰 당시, 승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 에디슨 - 애초에 청각장애인이었다는 것부터가... 게다가 신문도 팔고, 화부로 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 에미넴 - 일단 태어난 곳만 해도 미국 최악의 범죄도시 디트로이트이며, 친부는 그가 생후 6개월때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으며, 친모는 마약중독자에다가 아동학대자였으며, 학창시절에는 왕따를 당하고 언더 시절에도 차별까지 받은 전형적인 화이트 트래시였지만, 오로지 힙합만으로 성공한 미국 최고의 가수. 어린시절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딸이랑 엄청 자주 놀아준다고 한다.
  • 그리고 에미넴 외에도 투팍, 릴 웨인, 노트리어스 B.I.G, 트래비스 스캇, 나스, 제이지, 닥터 드레 등등 수많은 걸출한 실력과 인지도를 보유한 래퍼들이 자수성가형인 경우가 많다.
  • 오프라 윈프리 - 아주 찢어지게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사촌 오빠랑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차별을 겪고 방황하기도 했다고.
  • 왕평 - 이민족 출신에 문맹에다 고아인 하급 군관이였지만 한중에서 투항한 후 주인을 잘 만나 촉한 후기 최고의 명장 중 하나가 되었다.
  • 요아힘 뢰프 - 선수시절에는 백업 멤버로도 신통치 않아 1부, 2부리그 팀을 오가는 저니맨 생활을 하던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전차군단의 감독을 맡아 강팀으로 만들고, 독일통일 후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 요시프 브로즈 티토 - 크로아티아의 가난한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나치독일군에게 맞서 빨치산 활동을 펼치며 나치 패망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초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 욜란다 판 덴 헤릭 - 상술한 모하메드 하디드의 전 부인이자 하디드 3남매의 어머니로, 이쪽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16세 때 모델이 되어 돈을 많이 벌었으나 모하메드 때문에 묻혔다(...).
  • 원소 - 후한 말기 최고의 금수저 명문가였던 원씨 집안 출신이라서 귀공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어머니가 노비인 얼자라서 별로 의미는 없었고[91], 결국 그는 집안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로 맨주먹에서 일어서야 했다. 당대의 인물들 중에서 진짜로 집안 빽으로 출세한 사람은 친구이자 훗날의 정적인 조조[92][93]와 이복동생이자 원씨 가문의 적자였던 원술이었다.
  • 월트 디즈니 - 방세 낼 돈이 없어 셋방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
  • 유노윤호 - SM 연습생 시절에 생활비를 버느라고 제설 알바를 포함한 여러 알바를 전전했는데 이러고도 돈이 부족해서 한동안 노숙을 한 적이 있었다.
  • 유스티누스 1세와 조카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시민 - 역사교사인 아버지, 구멍가게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대륜중학교,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녹화사업으로 군대에 징집되는 고초를 겪기도 하지만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해찬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의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처음 정계에 입문하였고 2003년 4월, 16대 국회의원 고양덕양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재선에 성공하고 참여정부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지금은 유투버로 전업
  • 유방 - 시골 촌놈에서 황제까지 갔으며 중국 한족의 정체성이 된 인물
  • 유유(송무제)
  • 유자광 - 간신이라는 평과 풍운아라는 평이 현재까지도 갈리지만, 서얼,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노비인 얼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적자인 형들의 견제를 받고, 하위 관직인 갑사에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인해 관직에 나선지 3개월 만에 정 5품이 되었고, 예종남이의 역모를 고발해 1등공신이 되고, 연산군 밑에서는 무오사화와 같은 굵직한 사건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였고, 말년에 중종을 옹립하였으나 결국 그 동안의 행적 덕분에 탄핵을 받고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94] 행적만 놓고 보면 단순히 줄타기만 하며 임금의 개로 살아간 인물 같지만 이러한 일을 하며 얼자 출신으로 고위직에 오른 것 또한 능력이라 볼 수 있다.
  • 유재석 - 무명 개그맨 시절부터 10년을 견뎌냈고 현재 최고의 MC로 자리 잡았다. 동료 박수홍의 말에 의하면, 굉장히 가난했던 시절을 보냈었다고 한다.이런 유재석을 괴롭히고 폭행까지 했던 양 모 씨는 제대로 몰락했다 유재석을 아꼈던 서 모 씨도 몰락했다는 게 함정
  • 이경규 - 어찌나 아주 찢어지게 가난했는지 출퇴근할 차비가 없어서 전농동에서 영등포까지 걸어다니다가 결국 선배 코미디언 강석이 이경규를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시켜준 일화도 있다.
  • 이국종 -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유공자인 국가유공자 유족집안에서 태어나 동사무소에서 밀가루를 배급받았고 지병으로 축농증을 앓았기 때문에 국가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의료복지카드로 병원을 다녔는데 병원 입장에서 돈이 안 됐기 때문인지 진료를 거부당한 적도 많았고, 또 집 근처에 큰 병원이 없어서 먼 길을 걸어 여러 군데를 다녀야만 했다.[95] 처음에는 해군사관학교 생도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대신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였고 중증외상분야에서 노력하여 전국 거점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이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2012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이국종법[96]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중증 외상 분야의 외과의사로서 한국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 이대호
  • 이명박 - 본래는 일본에서 한 사업 덕분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귀국 과정에서 재산을 잃어 극빈층으로 자라났다. 선생님의 설득이 없었다면 상고 조차 진학하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해 어릴 적에는 술지게미로 배를 때웠고 뻥튀기 장사를 하면서 주경야독을 했다고 한다. 집안의 도움도 안 받고 군사독재정권 당시 기준으로 취직이나 승진에 불리한 민주화 운동가 출신+말단 평사원이라는 한계를 딛고,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그룹의 계열사 사장까지 올랐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개천에서 용난 건 맞다. 현대에 입사한 후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사장단에 합류했고 정계에 진출해 재선 국회의원, 서울특별시장에 이어 대통령까지 당선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가 성공하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한다. 다만 이명박도 논란이 있기는 있다.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7653/2 이명박의 형인 이상득은 과거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형제의 아버지가 동지상업고등학교 재단의 이사라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내용과는 달리 아버지 덕분에 3형제가 동지상고를 나온 것으로 되어있으며 집안 사람들이 순수 자수성가[97]라고 보기에는 지위에 따른 특권이나 인맥도 자주 이용한다. 흙수저가 아닌 사람이 흙수저처럼 사기를 쳤거나 망했더라도 아직 저력이 남아있었을 수 있다. 심지어 자서전이나 영상 기록물을 참고하면 기관지의 심각한 문제로 군면제를 받은 이후 섬유공장에 취직하고 정주영 회장과 밤새 술 마시기를 하고 다니면서 완치(...)가 되었다고 한다. 잠을 정복한 초인적인 모습도 있으나 몇몇 증거에 의하면 거짓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자서전 내용[98]이 모두 거짓은 아니고 당시 남자들처럼 허세가 좀 있을 수 있다.
  • 이상민(룰라) - 정상과 밑바닥을 모두 경험한 산증인. 현재는 열심히 빚을 갚으면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신용카드도 만들었다고. 이수근은 이 신용카드 한도가 만원이라고 깠다. 당연히 장난이다.
  • 이상혁 - # 기초 생활 수급자로 태어나서 학교도 중퇴하고 프로게임계에 빠졌으나, 현재는 실력과 명성은 물론이오, 연봉에 있어서도 그 누구도 남부럽지 않을만큼 최고 정점에 올랐다.
  • 이시언
  • 이선 - 가난한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을 딛고, 서울예대에 입학하여 1992년 KBS 성우극회의 KBS 공채 성우 23기로 입사하는데 성공하였고, 성우로 데뷔한 이후에는 세일러 플루토, 신쿠, 뽀로로, 존 코너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외국 영화의 캐릭터들을 연기하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성우가 되었다.
  • 이영표 - 당시 최고의 기대주로 평가받았던 양현정박진섭에 가려져서 덜 주목을 받았고, 무엇보다 U-17, U-20, U-23 코스를 차례대로 밟는 엘리트 코스마저도 경험하지 못한 선수였다. 하지만 2000년에 허정무 감독에 의해 성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고 이후 K리그 안양 LG 치타스 소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계속 알리더니 결국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4강 신화를 이끄는 주역 멤버가 되고 그 이후에도 PSV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2004-05 UCL 4강 진출을 비롯해 크게 활약하고 그 다음 토트넘 핫스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같은 유럽 명문클럽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등 동시기 박지성 다음으로 가장 성공적인 클럽, 국가대표 커리어를 쌓은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
  • 이오시프 스탈린 - 조지아 깡촌의[99] 술주정뱅이 아들로 태어나 은행강도로 지냈으나 초강대국 소련서기장에 등극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권력을 쥔 개인이 되었던[100]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독재자로서의 악명이 워낙 자자하고 유명하기도 그쪽으로 더 유명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언급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단순히 개인의 성공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홍무제와도 충분히 비벼볼만한 역대급 사례다.
  • 이은석 - 일말의 애정도 주지 않고 폭언과 학대만 일삼는 막장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작은 키로 학교에서까지 왕따였던, 가정폭력학교폭력의 피해자임에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으나.. 그 뒤에도 계속되는 부모의 냉대와 군대 왕따까지 겪은 후 끝내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여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남은 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있다. 존속살해만 아니었으면 본 문서의 훌륭한 예시라 할 수 있기에 더더욱 안타까운 사례.
  • 이의민
  • 이인제 - 충청남도 논산군의 가난한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서울특별시로 상경, 경복고등학교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 졸업 이후 유신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수사기관에 불려가 모진 고초를 겪고[101] 군에 녹화사업으로 징집되어 육군 병장으로 전역 후 1979년 제2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어 3년간 재직하였다.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동 운동을 하다가 김영삼의 소개로 1987년 정계에 입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11번의 선거활동을 하는 동안 총 16번이나 당적을 바꾸는 등 정당을 이리저리 옮겨다닌 경력으로 피닉제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 이재명 - 초등학교까지만 다니고 공장에 취업했다가 갖은 산업재해[102] 당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 2번을 치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정계에 진출하면서 성남시장에 올랐고 현재는 경기도지사가 되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차기대권주자로 언급되기도 하는 사람이다. 법원의 이재명 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에 따라 도지사직 당선 무효가 될 수도 있다.
  • 이지영(강사) - 인터넷 강의 분야 한정으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 이창하 -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막노동, 잡다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 뒤 러브하우스 등에 출연하면서 스타 건축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 위연 - 연의에서 그냥 무장이지만, 정사에서는 사졸 출신에서 정서대장군[103], 한중 태수로 승진했다.
  • 정주영 - 기업신화의 표본이자 한국 고도성장의 산증인으로 통천소학교만 나와 한국 최고의 재벌 총수가 되었다. 시대의 운도 따라줬지만 본인의 능력도 출중한 인물로 학벌같은 경우에도 나중에는 경희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에서 이공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였다. 정규 교육도 마음만 먹으면 받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 생각과 다르게 명문대에 이공계 학위면 명예 학위라도 그냥 주지 않는다. 심사도 당연히 진짜 초졸 수준이면 통과할 수 없다. 받은 사람들 숫자도 생각보다 상당히 적으며 그 기준도 나름 이해할 수 있다.[104] 정주영도 정주영 공법에 대해 논의하던 때에 관련 이론들을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본인이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해서 실행했고 성공시켰다. 정주영 공법에 대해서도 본인이 한 역할이 매우 커서 기술진은 주로 유조선 침몰에나 조력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전략 전술을 정주영이 맡고 나머지는 그 전략 전술대로 총포나 쏘는 신세였다.
  • 장동민
  •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 장보고
  • 장승수 -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저자로 본래 아버지가 영어를 열심히 하고 미국군 장병들과 친분을 쌓아 온갖 선물들을 받아 부자가 되었으나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해버려 기초수급생활자가 되었다. 그러나 막노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96학번으로 수석 합격을 하고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 장연
  • 장영실 - 동래부 관기의 아들이었으나, 재주를 안타깝게 여긴 사또의 천거를 거쳐 세종에 의해 발탁되어, 온갖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공밀레
  • 장윤정 - 집안이 궁핍해서 대학교 시절 난방비가 없어서 헤어 드라이어로 이불을 데워서 겨울을 지낼 만금 아주 어렵게 살았다.[105] 기획사에 들어가서도 음반을 낼 돈이 없어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단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어머나'를 발매한 것을 계기로 트로트계의 여왕이 되었다.
  • 장진둥 - 쑤닝 그룹의 창립자. 사범대학을 나와 평범한 회사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시작한 에어컨 대리점이 중국판 하이마트까지 되었다.
  • 장훈 - 태어나기 전 가족이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 한국인으로 어렸을 때 트럭 사고로 오른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고[106]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는 3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 장훈은 오른손 장애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몇 배, 몇십 배로 피터지는 노력으로 3,000안타 - 500홈런을 기록하여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었다. 극성 장훈 팬들은 지금이라도 트럭 운전수를 잡아서 효수를 해야한다는 섬뜩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손 장애가 없었더라면, 대체 무슨 기록을 세웠을 지 가늠 조차 안 되기 때문이다.
  • 저스디스
  • 저스틴 비버 - 홀어머니가 2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을 키웠다고 한다. 가난함과 인성이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예시
  • 정봉
  • 정은지 - 노동자의 딸이 시대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이면서 잘 알려진 배우가 되었다.
  • 정주영 - 초졸 출신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 막노동으로 시작해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현대그룹을 창업한 사람이다.
  • 정충신
  • 정현석 - 학사장교출신으로 준장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 정세균 - 전라북도 진안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생때는 고교 매점에서 빵팔면서 공부를 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하였고 쌍용그룹에 입사하여 상무이사까지 올라갔다. 이후 15대 총선 때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총선마다 승승장구하여 6선의원을 거쳐 20대 국회 국회의장, 문재인 정부국무총리 자리에 올라갔다.
  • 정운호 - 논란이 많았던 인물이지만 젊은 시절 노점을 하며 전전긍긍하다 27세에 화장품 대리점을 열어 이후 승승장구하여 더 페이스 샵을 창업 2년만에 매출 1500억원을 넘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이후 LG 생건, 해지펀드 등에 주식을 넘긴 후 또다시 네이처 리퍼블릭을 창업 매출 25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또다시 키워낸다.
  • 정우성 - 모든 연예인들의 연예인, 얼굴 깡패라는 별명이 있으며 연예인들도 정우성을 처음 보고 "와 연예인이다"하고 놀랐다고 할 정도지만, 중학교 졸업이 현재 최종학력의 전부이고 안 해 본 알바가 없다.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했냐 하면 한쪽 벽이 없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정도였다.
  • 제니퍼 로페즈
  • 제러미 마이클 보더 - 간부사관 출신으로 미 해군참모총장에 올랐다.
  • 제이미 바디 - 원래는 8부리그에서 공장일까지 병형하여 낮은 주급을 받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던 선수였지만 이후 계속해서 성장하여 1부리그인 EPL 소속 선수가 되고, 또한 레스터 시티 FC의 15-16 시즌 기적적인 리그 우승을 이끌며 EPL의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등극하는 것과 동시에 바디 본인은 FWA 올해의 선수까지 수상한다.
  • 조앤 롤링 - 이혼 이후 홀로 주당 15,000원의 생활보조금으로 아이를 키우다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인생 역전을 이뤄냈다.
  • 조유리 - 중학교 무렵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자신이 전공으로 했던 피아노도 끊어야 했고, 아이돌 데뷔를 위한 연습생 활동에도 지원을 생각도 못할 정도였음에도, 2018년 10월 IZ*ONE으로 데뷔에 성공했다.
  • 조제 알도
  • 조코 위도도
  • 존 메이저 - 서커스 단원의 아들로 태어나 16세라는 이른 나이에 학교를 나와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활동하던 정치판에서 열심히 활동한 결과 결국 총리도 되고 기사 작위도 받았다.
  • 존 켈리 - 그레이스 켈리의 아버지. 딸은 미인의 정석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여배우였고 이후 모나코 왕비가 된다.
  • 주병진
  • 주원장 - 이 분야의 끝판왕격인 인물. 거지+고아에서 황제에 올라 몽골족의 치하에 있던 중국을 재통일하고 명나라를 세운 인물로 1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107] 갖은 고초를 겪었다고 전해진다.[108] 이후 곽자흥 휘하의 홍건적으로 난에 참가했다가[109] 곽자흥이 죽은 후 조직을 이어받아 두목이 되었으며 파양호 전투로 한족들을 규합하고 명나라를 세운 후 원나라를 몽골 초원으로 몰아내어 중국을 통일했다. 그리고 더불어서 그의 외조부는 남송 최후의 전투인 애산 전투의 생존자이기도 하다.[110]
  • 주앙 미란다 -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집안의 가장이던 맏형이 사고사한 이후 매우 어려운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프로 축구선수가 되어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열심히 노력해 들어가기 정말 힘들다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고, 형, 누나들의 집을 모두 사 주고 빚까지 갚아줬다.
  • 주제 무리뉴 - 선수 시절에는 그저그런 기량과 부상으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이후 체육 교사, 통역관 등의 밑바닥 일부터 시작한 결과, 현재는 축구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자 유럽 축구의 현재진행형 레전드 감독이 되었다.
  • 주태 - 원래 양쯔강을 오가던 해적이었으나 손책에게 귀순한 이후 손권의 충신으로서 맹활약을 하며 일산까지 쓰는 영예를 안는다.
  • 중국 현대사 역대 지도자들중 장제스, 마오쩌둥, 후진타오, 시진핑[111]
  • 지우베르투 시우바 -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어린 시절에는 목수, 막일꾼, 사탕공장 등을 전전했고 그 때문에 축구를 그만둘 뻔한 적도 있었다. 프로 무대에 처음 데뷔한 것도 축구 선수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무려 22세였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카 미네이루에서 입단한 이후 2002 한일 월드컵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을 하면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게 되고, 이후 2002년에 EPL의 명문팀인 아스날 FC에 입단하면서 주전 미드필더로 2003/04 시즌 팀의 EPL 무패우승을 이끄는 활약을 펼친다. 실로 이런 시우바의 커리어 성공에 시우바 본인도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까지 하였다.
  • 지미 버틀러
  • 찬미(AOA)
  • 찰스 바클리
  • 찰스 브론슨 - 리투아니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광산 노동자로 어렵게 살다가 단역 배우로 데뷔하여 초창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알랭 들롱의 눈에 띄어 유럽에서 잠시 활동하면서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서야 액션 배우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 최성봉 - 3살부터 고아원에서 생활했고, 대전에서 껌팔이로 살다가 검정고시로 예고에 입학하여 성악을 공부했지만, 제대로 된 레슨을 받지 못하다가 2011년 오디션 프로그램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해서 국내외에서 "한국의 폴포츠/수잔보일"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준우승자가 되었다.
  • 최재형 - 위의 박성춘, 박서양 부자와 같은 케이스. 이 사람도 백정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딛고 대자본가이자, 독립운동가로 대성했다.
  • 칭기스 칸 - 주원장와 더불어 세계사의 대표적인 개천 드래곤 중 한명. 아버지 예수게이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한 바람에 부족 전체가 개발살나면서 노예로 팔려가거나, 부인을 NTR 당하기도 하였으며[112], 친한 친구인 자무카와의 사이가 틀어져 버리는 안습한 일을 연속으로 당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간신히 부족을 재건하고 전 몽골을 통일한 것도 모자라서 몽골을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성장시켰다.
  • 카디자 윌리엄스 - 유명한 하버드대 졸업한 노숙소녀. 졸업생 대표로 나와 했던 말에 의하면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14세에 쓰레기 더미에서 자신을 낳았고 노숙인 쉼터를 전전하며 살았다. 쓰레기 더미에 있던 신문지를 보며 글을 익혔고 학교에 새벽 4시에 갔다가 밤 11시에 왔단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며 각종 기관들로부터 장학금을 타내 하버드대에 입학 후 졸업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노숙자로 보지 않는다는 말로 끝맺었다.
  • 카림 벤제마 - 이민자들 많이 사는 빈민가 출신으로 자기 빼고 모든 또래들이 모두 범죄자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돕다가 자기 경력까지 말아먹었다.
  • 카밀라 카베요 - 히스패닉 1.5세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장학금이 꼭 필요했다고 한다. 애초에 부모가 자신들은 카밀라를 대학 보낼 돈이 없으니 꼭 대학 가고 싶으면 장학금 타서 가라고 했다고.그러나 스트레스 풀려고 불렀던 노래 실력이 너무 커져 오디션에 나왔고 가수로 데뷔해 초대박을 쳤으며 가족들의 돈 걱정은 없어졌다.
  • 케빈 하트
  • 케샤
  • 키드밀리
  • 킬리앙 음바페 -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 크리스 프랫 - 지금이야 월드스타이지만 힘든 시절에는 노숙까지 했었다고한다.
  • 태진아 - 속리산 자락의 산간 벽지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14살에 상경하여 무려 37가지 직업을 거치다가 1973년 작곡가 서승일에게 발탁되어 가수로 데뷔했다. 한때 흑역사로 인해 방송활동이 정지당하며 미국 이민을 가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고, 음악교육조차 받지 못해 작곡을 하면 입으로 불러주고 다른 사람이 악보로 옮기는 등 힘겹게 가수생활을 하여 이제 한국 트로트계의 거장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가히 개천용의 사례로 충분하다.
  • 토도르 지프코프 - 옆나라 유고슬라비아 티토와 비슷하게 가난한 농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113]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군에 대항하는 빨치산 운동을 벌이며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불가리아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 티에리 앙리 - 어린 시절 출생지가 빈민가 지역이라 환경이 좋지 않았고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 태평천국초기 멤버였던 홍수전.동왕 양수청.익왕 석달개.남왕 풍운산.서왕 소조귀[114]- 홍수전은 과거에서 3번이나 낙방하였지만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어서 황제가 되었고, 양수청.풍운산.소조귀는 숯쟁이었고 석달개는 객가출신 이었으나 전부 왕의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115]
  • 태평천국 운동 당시 상군 장수였던 이속빈.2차 강남대영 부원수 장국량- 이속빈은 연탄장수 출신이었고 장국량은 수적출신으로 태평천국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116] [117]
  • 펠레
  • 폴 포츠 - 폰팔이에서 최고의 팝페라 가수가 된 인생역전의 신화. 수잔 보일과 함께 갓 탤런트 프로그램 최고의 전성기까지 이루어내며, 여럿을 살린 인물.
  • 프랑크 리베리 - 올랭피크 마르세유 전까지는 본인의 과격한 성격과 얼굴에 있는 흉터로 '문제아'로 찍혀 3부 리그까지 가는 고생을 겪었지만 이후 2006 FIFA 독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주목받는 선수가 되고 이후 FC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여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최초 트레블의 일등공신이 되는 등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 프랭크 샴락
  • 플로이드 메이웨더
  • 핏불(가수) -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16세 때 마약을 해서 집에서 쫓겨나 강제 독립했다.
  • 하페즈 알 아사드 - 현재 시리아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로 가난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나 자력으로 사관학교를 입학, 졸업해 군 장교, 국방장관으로 승승장구하며 나중에는 시리아의 대통령이 되었다.
  • 하비에르 사네티 - 어린 시절 학업에 축구에 아버지 벽돌공 돕기까지 3개의 직업을 가지며 살았다.
  • 하시모토 나나미 - 대학 때 부모가 지원을 안 해 줘서 정말 궁핍하게 살다가 상술한 안정환처럼 끼니라도 해결하자는 심보로 아이돌에 도전했다.
  • 하시모토 도루 - 비록 그놈의 극우 성향때문에 논란이 되고는 있으나, 일단 개인사만 보면 부라쿠민[118]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변호사로 대성한 사람이었다.
  • 하진 - 본래 돼지잡던 백정이었으나 누나가 궁녀가 되고 이후 환관들의 마음에 들어 대장군이 되었다. 다만 역시 끝은...
  • 한고제번쾌, 주발, 하후영 등의 전한 개국 공신들 - 그나마 소하는 하급관리였지만, 한고제는 패현의 일개 정장이자 백수건달에 지나지 않았고, 번쾌와 주발 등은 개백정이나 악사, 마부같은 사회적 지위가 극히 낮은 사람들이었다.
  • 허각 - 환풍기 수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오디션에 합격하고, 최종 우승까지 한 인생의 승리자.
  • 허준
  • 현종 - 광개토대왕, 세종대왕과 함께 한국사 최고명군[119][120] 한국사 최초이자 마지막 사생아 고아 군주였다. 원래는 권신 강조바지사장에 불과했으나, 그가 거란군의 기습에 패하고 붙잡힌 뒤에 항복을 거부하다가 처형당하자, 진짜 황제가 되었다. 그의 앞에는 거란과의 전쟁의 수행과 무너진 왕권의 회복이라는 무거운 과업이 존재하였지만 마치 숙명인 것처럼 불가능한 일들을 결국 성공시키고 한국사 최고의 리즈시절을 연 성군이자 고려 황실의 중시조으로 거듭났다.
  • 형독
  • 호나우두
  • 호세 페르난데스(1992) - 야구계 네이마르 소리를 들었지만 선박 음주운전으로 죽으면서 죄다 날려먹고 자기 애인은 혼전과부 만든 데다 자기 딸을 유복녀 만들어서 다 날려먹었다.
  • 혼다 히토미 - 시골 출신으로 지방 리포터나 하면서 AKB내에서도 거의 존재가 없다가, 일약 주목받는 타국 걸그룹의 멤버로 도약하였다. 지역신문에 기사까지 났을 정도면 여기에 부합한다.
  • 홍준표 - 영남 지방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병명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최고 명문 경북고를 포기하고 3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영남고를 택한 것이 일생의 컴플렉스로 남았을 정도.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여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슬롯머신 사건 등을 통해 스타검사로 떠올라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이후 4선 국회의원과 한나라당원내대표, 당 대표를 지내고 경상남도 도지사를 두 차례 역임했으며, 19대 대선 후보까지 오른 사람이다. 자유한국당의 초대 당 대표까지 찍었다. 지금은 유투버로 전업
  • 홍진기 - 일제강점기 시절 가난한 채소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공부를 아주 잘하여 경성제국대학으로 진학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으로서 승승장구하였다. 후에 중앙일보를 창간하여 회장을 지내는 등 이병철과 함께 회사를 대한민국 3대 신문사의 하나로 성장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자녀들(특히, 홍석현.)도 능력이 뛰어났으며, 혼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정치, 경제, 법조, 언론계 등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과 인척들은 사회 주류이자 기득권으로서 21세기 현 대한민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황교안 - 대학에 입학하기 3개월 전 부친이 고물상을 하다 사고사로 사망했을 정도로 가정형편이 참담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검사가 되여 검사장, 굴지의 대형 로펌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을 거쳐 법무장관에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시점부터 19대 대통령 선거까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내며 타고난 관운을 과시했다.
  • 황선홍 - 사실 황선홍의 대표적인 별명인 "황새"라는 별명이 가난하던 어린 시절 약점이었던 체격을 만회하기 위해서 물배를 채워서 뒤뚱거리던 모습을 보고 다른 동료들이 황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황선홍은 청소년 대표팀 경력도 전무했을 정도로 무명의 대학선수였고 1988년 11월 7일에 이회택 감독이 대표팀에 발탁했을 당시 큰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시대의 스트라이커가 되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의 4강 신화에 일조했고, J리그 득점왕, 은퇴 후에는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라는 사례의 훌륭한 반례가 되었다.
  • 황치열 - 본인이 밝혔듯이, 정말 가난한 상황에서 어렵게 어렵게 가수 생활을 이어나갔고, 인피니트 보컬트레이닝을 해주면서 가수 꿈을 키워갔다.
  • 황효진 - 처음에는 노는대학TV와 아프리카TV에서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하다가 2012년 신발팜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드라마, 예능을 이용한 간접광고와 스포츠 스폰서, 유명 연예인을 홍보모델로 쓰는 과감한 노이즈 마케팅을 시도한 결과, 신발팜은 스베누라는 브랜드로 이름을 바꾸면서 개인쇼핑몰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점포를 열게 되었다. 빈손으로 시작해 신발브랜드의 사장이 된 과정을 통해 YTN 사이언스조선일보 등에서 성공신화를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5년 스베누 사태로 빛이 바래 버렸다.
  • 황희
  • T-Pain - 예명 뜻이 고향 탈라하시에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을 담은 얘기라고 한다.
  • B1A4 - WM엔터테인먼트의 개국공신.
  • BOBBY
  • Dok2 -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서, 한동안 컨테이너 박스에서 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12살때부터 힙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가 방송으로 자기 재력을 자랑해도, 금수저 집안 출신이 아니라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이므로, 별로 비판받지도 않는다.
  • 주이 - 경기도 양평에서 와서 크다고는 볼 수 없는 MLD엔터테인먼트(당시 더블킥 컴퍼니)에 들어가 모모랜드로 데뷔했으나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외모 때문에 비아냥을 많이 들었고 그룹 내 위상도 별로였으나 이를 역이용하여 원래 푸쉬멤버 낸시도 못해낸 단독광고 2개를 따내며 모모랜드를 세상에 알렸으며 낸시와 함께 더블센터가 되었다.

11.2. 가상

12. 같이보기


  1. [1] 그리고 그 고졸은 훗날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김능환 전 대법관, 차한성 전 대법관, 안상수 전 창원시장, 안대희 전 대법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유명한 고위급 인사가 잔뜩 있는 걸 알 수 있다.
  2. [2]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출세함"
  3. [3] 직역하면 "넝마에서 부자로"
  4. [4] 학계 용어. 한 세대 내에서 사회적 계층의 이동이 발생한다는 의미로 말 그대로 어릴 때에는 이 계층이었다가 나이가 들고 나서는 저 계층이 되었다는 의미다. 물론 mobility이므로 꼭 출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출세로 의미를 한정해서 쓰는 경우가 있다.
  5. [5] '인재는 다른 시대에서 빌려오지 않는다(才不借於異代)'라는 중국 속어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중국 속어의 출전은 명나라 상로(商輅, 1414~1486)의 〈정무소(政務疏)〉이다.
  6. [6] 이 사람은 20년동안을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으로 지내다 50대에 미관말직하나를 겨우 얻고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는 능력이 아닌 쇠락한 남인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이 때는 세도정치 기간으로 권문세가가 아니면 출세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른 글에서도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많은 편.
  7. [7] 물론 인척이나 음서, 대가(과거나 음서 등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신분 유지를 위한 품계 제공) 등도 있어서 최대로 치면 이보다 증가하긴 할 것이다. 잡다한 것들까지 포함하면 최대 5%이며 중인들까지 치면 10%까지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고려 귀족이나 양반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양반과 비슷한 지위(대가 등이 가능한 정3품까지는 오른 사람들도 꽤 있긴 있었다.)에 있던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 중인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나 중인 자체가 법적으로는 없는 신분으로 사회적으로는 양반들한테 무시당하던 출신이 꽤 좋은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지칭했다.
  8. [8] 참고로 조선의 왕위 계승의 법칙은 첩은 물론 서자도 왕위계승서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집안계승문제로 싸움내지 말라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중에서 수신제가를 그렇게 강조한 것.
  9. [9] 법에 따르면 4대. 그러나 오히려 학력으로 뽑으니까 독점은 고려보다 심화되었다. 34개 가문의 관원과 재상 배출 비율이 약 24%와 57%로 고려와 비교해 대폭 증가했다. 덕분에 과거를 잘 통과하지 못한 고려 귀족들은 재력과 혼인을 통해서 지위를 유지하려고 발악했다.
  10. [10] 조선이 고려보다 개방적이기는 해서 오랜 기간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한 가문은 양반 자격이 취소되었다.[9] 고려시대 같이 귀족가문이 정해져있고 혈연으로 고귀한 신분이 결정되는 방식은 아니었고 각각 개개인이 공부해서 과거에 합격해야 한자리 얻는것이지 가만히 있는다고 음서로 한자리 떨어지고 공음전 받아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체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그냥 백수였고 이렇게 과거가 중요하다보니 양반이라면 평생 붙을 때까지 시험을 치는수 밖엔 없었다. 만약에 몇대가 모두 합격 못하면 그 집안은 대대손손 장수생으로 과거만 보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다 양반은 일하는것도 천하게 여겨 몇대가 과거 합격 못하면 결국 경제적으로나 법적 신분적으로나 몰락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씨족은 분화해서 확대대기 마련이고 벼슬자리는 한정적이니 몰락 양반도 많이 나왔다.
  11. [11] 고려가 조선에 비해 유동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제주도처럼 작은 지방까지 세습하여 지배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다시 일어선 가문에는 고려 시절 세습 귀족 가문들도 있는데, 조선 때는 과거 덕분에 쇠퇴하여 조선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다. 다만 캘리포니아주립대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장인 던컨 교수에 의하면 고려와 조선의 지배층은 동일성이 높다.
  12. [12] 심지어 관료 숫자가 별로 없음에도 과거만이 아니라 음서 출신이나 세도가 출신도 적지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과거 출신을 우대했다고 하지만 안동 김씨 같은 사례를 보면 실질적으로는 병풍이나 찬밥 대우를 할 수도 있었다.
  13. [13] 하버드 교수 와그너와 송준호 교수의 연구가 반영되었다.
  14. [14] 예를 들어, 비양반이라도 옛날 귀족 출신 가문(이런저런 이유로 천한 신분으로 떨어진 가문들도 있었다.)인 게 훨씬 유리하였다.
  15. [15] 물론 혈연 다음으로 학문을 중요하게 여겨 예외도 없지는 않았다. 현재 남은 양반가에도 일부는 귀한 신분이 아닌 조상이 근본이다.
  16. [16] 실제로 문맹률이나 당시 양반 통계 등을 고려하면 양반들 숫자는 많지 않다.
  17. [17] 다만 지방 양반들도 친일파들이 적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민보군은 일본군과 손을 잡고 동학농민군을 학살했다.
  18. [18] 몰락 양반의 후손이 1960, 70년대에 영세농 신분으로 문맹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문교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19. [19] 1930년대를 보자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한글을 할 줄 아는 사람들보다 훨씬 적었다. # 아예 한글을 모르고 일본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문맹률은 여전히 약 80%다.
  20. [20] 일제도 이러한 면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기여를 한 부분이 있다. 물론 선의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21. [21] 예를 들어, 외몽골보르지긴(칭기즈 칸 가문)부터가 공산주의자들이 외몽골에 있던 보르지긴 사람들을 멸문시킨 후 나중에 성씨 신청할 때 일반인들이 고른 성씨에 불과하다. 보르지긴은 내몽골에 있던 방계 가문만 그나마 살아남았다고 한다.
  22. [22] 사실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들 비율부터 증가하였지만 부유한 사람들 학력은 오히려 최근에 상승하고 있다. 1% 부자의 경우 최근까지는 학력이 낮은 사람도 있지만 추세로 보면 머지않아 고졸 이하로는 거의 사라질 확률이 높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1/03/173368/ 삼성을 보면 학벌을 넘어 풍채나 심지어 건강(이병철만 해도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진작 죽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까지 점점 좋아지는 추세다. 물론 역시 학벌 서울대 찍은 현대나 다른 가족기업 사람들도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314250 500대 기업 CEO들을 살피면 옛날 세대가 퇴장하면서 앞으로는 명문고의 위상이 사라지고 대학 중심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3. [23] 사법고시 같은 것들은 늦게 합격하면 연마다 인생 소득의 2~3%를 까먹으며 광고 같은 것들처럼 명예(?)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실물처럼 구체적인 게 필요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학자들 입장에서도 치명적이다. 괜히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대졸을 포기하고 R&D 등에 시간을 더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게 아니다. 일반인들이면 몰라도 제대로 된 수준에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는 성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면 부정부패나 역겨운 짓거리들을 할 가능성이 있다.
  24. [24] 정부 등의 승진도 조직 내부의 평가나 공부 실력보다 줄타기가 더 중요했다. 지금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올리기 위해 공작을 벌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유신사무관 등을 대놓고 올렸다. 검사들조차 세력가들에게 숙이고 다녔으며 제왕적 경영을 한다고 비판받는 현재의 오너 가문들도 과장 좀 하면 과거에는 진짜 봉건 군주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25. [25] 그래서 입결이 망한 적도 있다.
  26. [26] 좋은 집안이 아닌데 빨갱이, 범죄자 등이 친인척이면 불이익을 받았다.
  27. [27] 과거 사람들이 부대를 따지던 이유다.
  28. [28] 당시 군대에는 심지어 현역이 아닌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29. [29] 물론 초등학교라 들어가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배경(집안 좋으면 집안에서 도와주거나 그냥 보내주기도 했다.)이나 돈이 문제였지.
  30. [30]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시대였다. 난세라 기득권 사람들이 자신들을 따르는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대가를 지급했다. 물론 요즘도 기득권 사람들에게 기회를 얻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긴 하다.
  31. [31] 미개한 시절이라 사이비 등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32. [32] https://books.google.co.kr/books?id=ggtRCgAAQBAJ&pg=PT160&lpg=PT160&dq=&source=bl&ots=Sjb9WNKtjf&sig=ACfU3U24YYY5LOYc6e0YfPaobedldkm3yg&hl=ko&sa=X&ved=2ahUKEwj917SxuK7oAhVJBKYKHfgIDLI4FBDoATAIegQIChAB#v=onepage&q=%20%20&f=false
  33. [33] 지금도 상대적으로 소수가 부동산 대부분을 다 가지고 있지만 과거에 선택받은 현재의 중산층들에게까지 많이 풀려서 꽤 다수다. 크게 잡으면 대충 30%까지는 그 혜택을 얻어서 나머지 사람들 전부를 능가한다.
  34. [34] 다만 과거에는 체육을 제외하고는 딴따라라고 무시하기도 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왜색이라 하여 만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다음의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kj.d_0020_0060_0060 한정된 종류를 제외하고 대부분 예능을 저질 문화로 취급하고 만화 검열제 등으로 탄압과 박해를 가했다. 사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상류층들이 체육을 제외한 예능에 대해 요즘처럼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겉으로도 엄청 많았다. 그나마 호의적인 사람들조차 대부분 돈 때문이었다.
  35. [35] 더구나 과거에는 기득권에 한문에 능한 옛날 양반 출신들이 많아서 그런지 한자도 지금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져서 한자가 장벽으로 작용하는 사례도 많아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더 꿈도 희망도 없었을 수 있다.
  36. [36] 옛날에는 민주적 선거마저도 돈을 뿌리거나 깡패를 고용하고 심지어 인맥을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도 아예 없지는 않지만 시골에서는 아예 대놓고 뽑아주면 마을에 돈을 기부하거나 친인척들한테 부탁하여 공사 등을 따오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37. [37] 소수의 상류층 컷을 기준으로 보면 인구가 의외로 적지는 않다. 제대로 된 양반들만 1.9%나 있었으니.
  38. [38]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기업들을 견제했던 미국도 실제로는 최근까지 가족기업들이 GDP 대부분(64%로 2%만 더 찍으면 나머지의 2배가 된다.)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다. # 유럽도 발렌베리 가문 등이 경제계의 정복전쟁을 하기도 했다. 발렌베리 가문도 EBS의 망상과는 전혀 다른 가문으로 복지에 대한 대가로 경제적 지배권을 인정받은 미친 가문이다. 삼성 가문이 발렌베리 가문을 본받고자 한다면서 조 단위 증여를 받고 세금을 적게 내고 이런 행보를 보이는 이유도 야심이 있어서 그럴 수 있다.
  39. [39] 석유왕인 존 D. 록펠러도 가문만큼은 매우 좋았다. 아버지가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라 도움을 거부해서 중산층으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미국에 정착한 그들의 조상은 출발부터 지주였다.
  40. [40] 물론 의외로 너무 가까운 사이라 뛰어남을 모르는 경우도 있기도 했다. BNF도 가족은 취직이나 하라고 난리다.
  41. [41] 뛰어난 장군들은 물론 전투기 조종사 같은 것들도 많이 배출했다.
  42. [42] 출처 사실 조선 왕족들도 찾아보면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간이라도 특혜를 받긴 받았다. 당연히 망한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보면 일반인들에 비해 불리하진 않았다. 그리고 조상들 땅을 정부에서 찾아주는 서비스도 있는데, 당연히 출신 좋은 사람들이 훨씬 유리하다.
  43. [43] 다만 과거에도 성공하거나 부유한 사람들은 비정규적인 독학을 하거나 나중에라도 정규 교육을 받아서 학력을 올린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그런 사람들은 학력이 멈춘 사람들과는 일반적으로 차이가 있다.
  44. [44] 자유기업원 등에서 참고하는 미제스 연구소 사람들 99%가 자유지상주의에서도 극단적인 부류인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다. https://www.lewrockwell.com/2010/09/walter-e-block/abolish-the-state-and-all-its-works/ 이런 사람들이 아직 우습게 보여도 무신론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https://web.archive.org/web/20140301051125/http://www.stephenjaygould.org/ctrl/news/file002.html
  45. [45] 자유를 중시하지 않는 후진국들을 보면 기득권 자체가 진짜로 무능하고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많다. 그들은 부유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부를 이룰만큼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성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뭐라도 이룬 것도 없다. 차라리 도박에 참가한 사람들의 돈을 얻은 로또 당첨자가 그들보다 더 정당하다. 심지어 후진국 기득권은 무능한 주제에 자신들의 태생, 혈통(백두혈통 등 현실은 고작 천한 묘지기 혈통이다.)부터가 위대, 우월하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며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많다.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기생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런 기생충들이 생기기 힘들다.
  46. [46] 자유주의 국가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사기를 치거나 운빨이 터진 게 아니라면 진짜 실력이 있거나 성실한 사람들이 다수다. 물론 선천적인 조건들이 선진적이라 상대적으로 쉽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남들이 허접한 인간들만 있지는 않아서 정말 자격이 부족한 사람들은 순위에서 곧 내려오게 된다.
  47. [47] 합리적으로 살면 자유가 사람을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트레이딩으로 젊은 나이에도 수백 억을 모으고 결국 세계최고 부자가 된 워렌 버핏처럼 보통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목표를 가진 게 아니라면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40318.990011442453348 이런 일이 실제로도 가능하며 오히려 자유는 개인하고도 형제와 같은 사이인만큼 노태권처럼 세상이 몰라줘도 자유가 알아준다.
  48. [48] 물론 그렇다고 강자들도 전부 도덕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삼성만 봐도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일반인들은 하면 안 되는 증여나 감시, 탄압도 한다.
  49. [49] 서민들의 꿈이자 영화 등에서 그런 강자들을 응징하는 공무원들도 이런 실태가 옛날부터 많았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03220479i
  50. [50] 사실 흙수저들 입장에서 보면 중산층인 사람들도 자수성가에서 제외해야 할 수도 있다. 중산층 역시 통계적으로 보면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곡의 벽 수준인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중산층만 해도 말로는 너도 나도 서민이라 주장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실제로는 자식들에게 상속할 부를 세율 한도까지 꽉꽉 다 채우는 것은 기본이고 훨씬 초과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어떻게든 세금 폭탄을 피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식들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재산을 쌓는 사람들 많다.
  51. [51] vpn 등을 사용해도 허점이 많아서 잡을 마음만 있으면 잡기 쉽다. https://quasarzone.co.kr/bbs/board.php?bo_table=qb_tip&wr_id=13658 실제로 최근 경찰이 vpn처럼 허접한 방식만 믿던 불법적인 사람들을 털기도 했다.
  52. [52] n번방 같은 범죄만 봐도 대부분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약자들인데 그 결과로 인하여 자유주의에서는 뭔가 대단한 게 없으면 정석적인 기회가 다 사라져서 위로 갈 수 없을 확률이 높다. 자유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올라가서 저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성공하는 게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야 올라갈 수 있고 심지어 뻘짓거리를 하면 바로 그 대가가 따른다.
  53. [53] 주식 같은 금융업은 기회가 개방적이지만 더 많이 먹느냐 덜 먹느냐의 차이지 이익을 얻는 근본 원리 중 하나가 일단 관계자들에게 무조건 이익인 도박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금융업자들이 아니면 가능성이 낮다. 실제로 증권 거래 같은 것들로 부자가 된 거부들은 대부분 금융업자들이다.
  54. [54] 사실 가진 게 없는 흙수저들에 비해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볼 여지가 많다. 최고의 무술가가 후계자에게 상속한다면 최고의 무술을 전수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물론 최고의 무술도 시간이 지나면 최고가 아닐 수도 있고 후계자의 재능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최고 무술가의 후계자를 허접한 무술가의 후계자보다 우수하게 볼 이유는 충분하다. J.P 모건도 딱히 대단한 스펙이 없었지만 왕조라 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가문의 후계자였기 때문에 검증되기도 전부터 우습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 실제로도 전혀 우스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 제시 리버모어가 존경하는 인물에다 미국 최강의 실력자이자 어쩌면 당시 유럽까지 넘어 세계최강의 실력자였다. 물론 제시 리버모어에게 기술적으로 패배하기는했지만 그래도 종합적으로 보면 우위라는 평이 많다.
  55. [55] 남들도 우리처럼 미개하거나 이상한 짓거리를 한다.
  56. [56] 양반 지주이자 중앙관직에 진출한 사람드도 있는 삼성 집안에서만 나온 그룹도 적지 않으며 심지어 공무원들도 꽤 많다.
  57. [57] 물론 양반에도 이상한 인간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양반들만 피해도 이상한 인간들을 거의 다 피할 수 있다.
  58. [58] 애인이나 뭔가 아주 좋지 않은 상태가 아니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부자는 몰라도 가난은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흙수저들은 한심한 자멸도 흔히 일어난다.
  59. [59] 물론 양반에도 이상한 인간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양반들만 피해도 이상한 인간들을 거의 다 피할 수 있다.
  60. [60] 더구나 그때는 국민들의 격차가 지금보다 극심했고 문맹만 떼어도 소수에 들고 중등교육 마치는 사람이 드물던 옛날에는 오히려 저런 좋은 환경의 가문들 출신이 교수, 법조인, 관료등 좋은자리를경쟁자 없이 무혈입성하기 딱 좋은 시기였다. 그냥 미국 나가서 학위장사하는 대학 학위만 따도 국내 교수자리는 따논 당상인 시절이 쌍팔년도였다. 물론 행정고시나 사법고시같은 시험은 정말 몇 명 안뽑아 환경빨만 가지고는 안된다 해도 그것보다는 눈높이를 낯추거나 다른 방향으로 틀면 사회의 주류에 들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컸다. 실제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가 이점 때문에 비판 받았다. 그러므로 개천에서 용나는 과거가 사실은 노력이나 능력보다 환경이 지금보다 더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도 있다.
  61. [61] 이때는 만점자가 66명이 나온 시험으로 심한 물수능이라는 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어에서만 4점밖에 깎이지 않은 강성태의 실력이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이게 어느 정도로 쉽냐면, 수능 만점자 1명이 서울대학교 특차에서 탈락했을 정도이다.
  62. [62] 그런데 이게 문제가 자기가 꿈이 있어서 가려고 한 게 아닌 요즘 어느 학과가 좋냐라고 물어보고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학교를 잘릴 뻔했으나 군대 전역 후 다시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퇴학을 면했다고. 이로 인해 강성태 멘토링에서는 "자기 진로를 생각하며 공부하라"고 누누이 말한다.
  63. [63] 그나마도 이재용은 근소한 차이로 따라잡았다.
  64. [64] 물론 기업규모 등 종합적인 사회적 영향력이나 권력은 신동빈이나 최태원이 더 강하겠다.
  65. [65] 이 해가 간지로 갑인년인데 제주 속담에 "갭인년 숭년에두 먹당 남은 게 물이여(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게 물이었다=갑인년 흉년에도 물 없어서 고생한 적은 없었다)."라는 속담이 남아 있을 정도. 여기서 말하는 갑인년이 바로 만덕 당시의 갑인년 흉년이다.
  66. [66] 물론 당시 힘있는 본토 귀족의 자제들이 주로 다니던 프랑스 사관학교에서 나폴레옹은 촌뜨기나 다름없었다.
  67. [67] 참고로 이 사법시험은 밑의 홍준표도 번번하게 몇번씩이나 떨어질정도로 매우 어려웠다.
  68. [68] 그러나 정작 본인은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도입을 주장하여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를 차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세한 것은 사법시험/존치 논란 항목으로.
  69. [69] 미나즈의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방화를 저지른 적도 있다.
  70. [70] 인터뷰 등에서 가난했을 시절에 대한 답변을 할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상당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71. [71] 니키 자신이 노력으로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아직 학생인 팬들에게 공부 열심히하고 커리어를 쌓으라는 조언을 자주 해준다.최근에는 트위터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의 장학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72. [72] 당시에는 후한 황족의 수가 만 명이 넘을 정도라서 황족이라는 신분이 희소성이 없는 관계로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정사에서도 유비가 황족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이견 없이 소개되고 있지만,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고귀한 신분을 타고났음에도 글공부와 돗자리 장사꾼 생활을 병행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던 하류인생이었을 정도다.
  73. [73] 쌍둥이 누나 리아나
  74. [74] 지금은 웬만한 주전급은 1년 연봉이 쉽게 넘어가지만, 버드가 뛸 당시는 백만불도 어마어마한 연봉이었다. 여기서 버드는 NBA 최초로 총액이 천만불 이상의 장기계약을 따낸 인물이다.
  75. [75] 두 사람이 결혼하고 마츠자카를 출산했을 당시 마츠자카의 집안은 가난하긴 했지만 극빈층의 신분에서 어느 정도 탈피한 상황이었다.
  76. [76] 재단사 출신이다.
  77. [77] 밀러드 필모어와 같은 재단사 출신인데, 정치인으로서는 무능해도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퇴임 후에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선량한 인품의 필모어와는 달리, 이 사람은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그래서 그의 무능함과 인종차별적 성향, 남부에 대한 무분별한 비호, 국회와의 알력 싸움 등으로 인해 빡친 상원과 하원이 그를 탄핵시키고자 했고, 덕분에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할 뻔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78. [78] 우범지대에서 태어나 자란 흙수저 출신의 사람이 고작 30살의 나이로 검찰총장으로 영전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개천에서 용났다고 할 수 있는데, 클린턴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어 미국의 리즈시절을 이끌었다.
  79. [79] 그냥 흙수저도 아니고 하와이 깡촌 출신 + 흑인이라는 엄청나게 불리한 핸디캡을 뚫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흑산도에서 사는 흙수저 아들이 대통령이 된 셈이다.
  80. [80] 정작 본인은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 역할을 하였던 사법고시 존치를 반대하고 로스쿨 도입을 찬성하여 비난을 받았다.
  81. [81] 참고로 박서양과 동명이인인 사람이 동시대에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친일반민족행위자다(...).
  82. [82] 여담으로 이 사람의 아버지가 독립협회의 회원으로서 만민공동회에서 연설을 한 박성춘이었다.
  83. [83] 박정희가 지주나 부자에 대한 반감을 보였다던지 자신의 책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쓴 시 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덧붙여 박정희와 장택상은 서로 껄끄럽게 여겼다 한다.
  84. [84]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이게 생소한 이야기지만, 그 이전 70-80년대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는 통닭을 먹고 난 뼈로 닭곰탕을 끓여 한 끼 더 먹는 건 서민 가정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시대적 차이에 따른 이유가 있다. 80년대 이전에는 닭을 더 키워서 잡았기 때문에 통닭이 지금보다 더 커서, 닭 한 마리분 뼈로 한 가족이 국을 해 먹을 분량이 되었다. 양계 기술 발전으로 대량 생산이 되고 출시 시기가 빨라져 닭 크기가 작아지면서 남은 뼈로 탕을 끓여봐야 양이 안 나와 그럴 이유가 없어진 것이 큰 이유다. 즉 반 마리로 탕을 해 먹은 서인국 집은 아주 정말로 지지리도 가난했던 것.
  85. [85] 중3 이후에는 아버지와도 연락하고 있다고 한다.
  86. [86] 다만, 순수 군공만이 있는게 아닌 약간 뇌물을 쓰긴 했다. 근데 그래도 어쨌든 손견의 군공은 무시받을순 없다.
  87. [87] 자세한 건 아카츠카 후지오의 생애 문단으로.
  88. [88] 백작이고 엄청난 자산가 집안 출신이다. 톨스토이가 젊었을 때만 해도 체호프 같은 인간과는 절대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89. [89] 1위는 프레디 아두. 참고로 이 분도 가나에서 태어났다. 다만 아두는 커리어라고 해봐야 벤피카에 자리도 제대로 못 잡고 임대만 떠돌다가 지금은 아예 무적 상태로 추락해버려서 데이비스랑 비교 자체가 실례이다.
  90. [90] 참고로 이 친구는 레프트백이 주 포지션이 아님에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원래는 윙어였는데 스피드도 좋고 수비가담도 성실히 해서 풀백으로 몇 번 출전시켰는데 포텐이 제대로 터져버린 것.
  91. [91] 집안 빽 덕분에 생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으나, 그것 뿐이었다.
  92. [92]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후한 말의 레전드급 환관인 조등의 양자였다. 조조는 세간의 깊은 존경의 대상이었던 양할아버지의 후광 덕택에 어렵지 않게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
  93. [93] 조조헌제의 보호자가 되기 전까지 조조의 세력은 원소군의 산하 군벌이었다.
  94. [94] 유자광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적이 많은 인물이었다.
  95. [95] 이런 주변 환경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픈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96. [96]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라 부과된 과태료의 20%(약 1,600억 원)를 2017년까지 사용해 전국에 16개의 중증외상센터를 건립하게 된다.
  97. [97] 이명박 자서전 기준으로
  98. [98] 이명박 본인이 증명한 것들도 있다. 지만원도 이명박 출생과 관련해서 허위사실 유포로 개털렸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7/11/03/2007110300008.html https://ohaeng.tistory.com/218
  99. [99] 사실상 홀로 그를 키워낸 스탈린의 어머니는 스탈린이 당시 차르나 다름없던 서기장이 되었는데도 서기장이 뭔지 몰랐을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둡던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었다.
  100. [100] 적어도 2017년까지는 전제군주나 독재자가 집권한 국가 중 소련보다 강대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소련에서도 가장 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는 레닌보다는 스탈린이었다. 미래에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스탈린보다 강한 권력을 쥐었던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101. [101] 바로 이때 사법시험을 치려는 결심을 했다.
  102. [102] 그때 프레스기에 왼쪽 팔이 끼어들어가 그대로 눌리는 사고로 장애 등급 판정과 병역면제를 받았고 왼쪽 팔이 비틀리게 되었다.
  103. [103] 촉에서 대장군은 제갈량이 겸임중이었으므로 사실상 정서대장군이 최고사령관이었다.
  104. [104] 예를 들어서 박근혜의 경우도 카이스트, 파리 제6대학교대학원 이학 명예박사를 받았는데, 논란이 있지만 일단 겉으로는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출신에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105. [105] 이때 학자금을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부모가 진 부채 때문에 자신도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알았고, 당시 은행직원이 모니터를 돌려서 신용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 상태에서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6. [106] 가족들이 일본어를 할 줄 몰라 치료비 조차 배상 받지 못 했고 파출소 등을 통해서 트럭 운전수를 잡아달라 부탁했지만 조선인이 어디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고 쫓아내며 경찰은 수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07. [107] 무덤을 지을 땅은 커녕 관짝도 없어서 낡은 거적데기로 둘둘 말아서 매장했다고 한다.
  108. [108] 목동 일을 하다 배고파서 친구들과 송아지를 잡아먹었다가 소 주인에게 죽도록 얻어맞았다거나, 탁발승(절에서 식량을 모으기 위해 집집마다 공양을 다니는 승려)으로 전국을 떠돌아 다닌 일화가 유명하다.
  109. [109] 난에 참가한 사연도 재밌는게 처음에 난에 가담하려고 곽자흥을 찾아갔다가 곽자흥과 그 무리들이 첩자처럼 생겼다며 죽이려 했던 것을 곽자흥의 양녀가 청원하여 목숨을 건지고 휘하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살려준 여인은 훗날 그와 혼인하여 황후가 된다.
  110. [110] 남송 측 참가 인원이 20만명이나 되었던데다(남송의 인구는 약 5천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주원장의 집안은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정말 그지 깽깽이 집안이었기에(...)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111. [111] 아버지 시중쉰이 원로였지만 문화대혁명으로 나락에 떨어진 뒤 자수성가한 파란만장한 인물이다.
  112. [112] 칭기스 칸의 큰아들 주치는 이때 부인을 겁탈한 메르키트족의 장수의 생물학적인 아들인데, 부인에 대한 사랑과 사생아 취급받을 지도 모르는 큰아들에 대한 애정으로 자기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지극 정성으로 키웠다.
  113. [113] 다만 초등학교 정도 밖에 진학하지 못 했던 티토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과 다르게 이 쪽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진학하였다.
  114. [114] 북왕 위창휘는 지역부자였다.
  115. [115] 소조귀는 전사. 양수청은 천경사변 으로 사망.
  116. [116] 이속빈은 삼하진 전투에서 사망. 장국량은 강남대영 전투에서 후퇴하던중 전사하였다.
  117. [117] 출처: 굽시니스트-본격 한중일 세계사 만화.
  118. [118] 일본의 전통적인 천민 계층이다.
  119. [119] 적국에게 멸망하거나, 속국이 될 뻔했던 나라를 구한 것은 물론, 이전보다 더욱 융성하게 만든 군주는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다. 물론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끈 현종처럼 선조도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없냐는 주장이 있지만, 왕위도 나름 안정적으로 받은 것에다가 선조 특유의 졸렬함을 생각하면 현종을 모욕한 것이다.
  120. [120] 사실 선조는 전쟁과 군사적 막작인 녹둔도 처리만 없었어도 조선 명군 탑 5안에 들만한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다. 선조의 성격권력중시,의심병자과 조선 시스템(특유의 무인 천시,붕당간 경쟁 과열과열시킨 원인 중 하나가 선조란건 넘어가자,전쟁 경험 미비),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엄청난 역시너지를 일으켜서 평가가 바닥까지 내려간거지, 실제로 전쟁 끝난 뒤에는 광해군 흔들기나 원균 띄우기, 이순신 밟기를 제외하면 전후 복구등에 열중하는 등 기득권과 호흡 맞추기는 잘했다. 하지만, 또 다른 기득권인 재야 선비들로 이루어진 의병장들을 잡아들이는 등에서도 평가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
  121. [121] 사라 케리건과 비슷하다.
  122. [122] 평민 출신의 일개 기사에서 단 기간에 한 나라의 국왕까지 오른 케이스. 히로인들의 영향이 컸지만 왕이 된 후로도 정치를 잘했다.
  123. [123] 일개 평민 얼음장수였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공주를 만나고 그녀의 언니를 구출한다. 그리고 그 공으로 왕실 전담(...) 얼음장수가 되고 공주와 연애를 한다. 2탄에서는 엄청난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데 자세한 건 거대한 스포일러이기에 해당 항목을 참조.
  124. [124] 최하위권이었으나 고등학교 선배이자 변호사인 강석호를 만난 것을 계기로 지옥공부반인 천하대특별반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한민국 최고 대학인 천하대학교에 합격한다. 반대로 같이 천하대특별반에 들어간 홍찬두는 아버지가 기업고위임원인 금수저로 뛰어난 수능 성적에도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입학을 포기하였다.
  125. [125]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머리 하나만 믿고 공부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법무법인 태백을 설립하고 국내 최대의 로펌으로 성장시켰고 이후에는 국정농단을 할 정도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어 전횡을 일삼는다.
  126. [126] 혈통빨 눈깔빨 캐릭터가 넘치는 만화에서 드물게 자기만의 노력으로 성장한 캐릭터다.물론 츠나데의 도움을 받긴하였으나 사쿠라의 재능과 노력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열심히 노력한끝에 츠나데와 맞먹는 의료닌자로 성장했다.그리고 의료인술 뿐만이아니고 지능도 굉장히 높으며 환술과 분석력 체술 모두 뛰어나다.
  127. [127] 악역끼와 노랭이 기질이 강하긴 하지만 그 자신은 기운 옷을 입고 지낼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128. [128] 약간 사정이 다르다. 재능이 없는 평범한 인간에서 노력이나 힘을 들이지 않고 세계관 최강의 재능을 얻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굉장히 파멸적이었다.
  129. [129] 건달의 아들로 자라 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여 자력으로 서울대학교에 입학, 이후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검찰이 되었다.
  130. [130] 명동 부동산 재벌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지세광이 아버지를 죽이고 재산을 모두 차지하자 빈털터리에 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복화술의 후원 하에 검사가 되었다.
  131. [131] 두 캐릭터 모두 설정상으론 완전한 신분세탁을 이뤘지만 성능이 그 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132. [132] 4부 앨리시제이션의 언더월드에서 천애고아로 로그인되었지만 출중한 검술을 바탕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기어 올라가서 언더월드 최고 통치자인 어드미니스트레이터를 쓰러뜨리고 다크테러토리의 황제 벡터도 격파하고는 4황제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통일제국의 성왕으로 200년간 군림했다.
  133. [133] 최하급 귀족의 딸로 태어났지만 정합기사가 되었고 키리토와 함께 어드미니스트레이터를 쓰러뜨리고 다크테러토리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수백년이 지나도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134. [134] 빈농의 아들이었지만 키리토의 도움을 받아 검술연습을 해 귀족들이 주류를 이루는 제립 검술학원에 입학했다.
  135. [135] 테러맨시점인 어린 시절에는 빚더미에 안겨있었고 돈 때문에 사이비 종교에게 사기를 당하는 등 힘들게 살아왔지만 부활남시점인 청년 시절에는 대기업의 이사자리까지 올라와 있었으며 5000만원의 수표를 차예린에게 줄 정도로 큰 돈을 만지게 되었다.
  136. [136] 타투인의 일개 노예부터 시작해 시스 로드 겸 은하제국의 2인자로 등극했다.
  137. [137]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그는 코렐리아 행성의 빈민촌에서 부모를 진즉에 잃고 캡틴 프록시마가 이끄는 범죄 조직에 몸담았다. 이후 제국군에서 개고생하고 나와서, 제국을 상대로 한 범죄 행위를 전전했다. 이후 루크 스카이워커의 인연으로 레아 오르가나를 만나게 되고 눈이 맞아 결혼하고 출세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식 복은 없던지 벤 솔로가 다크사이드가 되고 결국 깨어난 포스 기준으로 아들한테 죽는다.
  138. [138]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개 해병에서 테란 최고의 세력을 자랑하는 자치령군을 이끄는 사령관까지.
  139. [139] 소상인 아들이었다. 레이너 특공대 함장에 이후 테란 자치령의 제독까지, 레이너 사임 이후엔 후임 총사령관이 되었다. 특이하게도 이 세계관 테란 캐릭터는 안좋은 시절이 하나쯤 있는데 맷 호너는 악랄한 용병대장을 아내로 맞은거 뺴고는 안좋은 시절이 없다.
  140. [140] 이 인물은 인간으로서 성공한 게 아니다(…). 아니 진짜 이 되었다고나 할까.
  141. [141] 떳떳한 직업을 가진 인물은 확실히 아니지만, 슬럼가에 태어나 빈곤하게 살다가 유령 요원에서 악령 지도자까지 된 사이오닉 능력자.
  142. [142] 원래는 칼라이 계급의 차원장인이었으나 뫼비우스 특전대 건에서 매우 큰 활약을 보여주었기에 신관으로부터 기사단이 될 자격을 받았다. 물론 프로토스의 계급 체계는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로서 카락스가 기사단이 된 것이라 원래 낮은 지위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간 게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공허의 유산 초반부를 보면 그는 전투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아 아이어에서 저그가 오는데도 대응 한 번도 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르타니스에게 도움받아 아둔의 창에 탑승한 이후 여러 임무에서 큰 공을 세웠고 결국 기사단이 되어 다른 기사단원들과 함께 전투에 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일반적인 자수성가와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143. [143] 원래 하급 숭배자 출신이다. 지위가 낮은 자들은 전쟁 혹은 군주와 승천자의 제물이 되는 등의 이유로 죽어나가는 탈다림 사회에서 권모술수 하나만으로 최고 권력자인 군주가 되었고, 실제 능력치도 유저들이 경악할 수준이다. 사실 탈다림은 그럴 수밖에 없는데 탈다림은 철저한 실력(+정치력) 위주 사회라 능력없는 놈은 가차없이 죽는 사회다.
  144. [144] 세탁소집 아들로 태어나 '식구들 득실거리고 할아버지가 불끄라고 소리지르는' 환경 속에서 공부에 올인해 서울법대 학/석/박사에 사법고시 수석, 최연소 부,차장 검사를 지냈고 장인의 선거에 무리하게 개입하다 옷을 벗었지만 그 후로 명문대 로스쿨 교수가 되었다.
  145. [145] 화성제국에서는 경멸받으며 최하층민으로 대우받는 지구인 출신이지만 후에 자츠바움 백작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자츠바움 사후에는 백작 작위를 상속해 주전파의 수장으로서 전쟁을 지휘한다. 또한 마랄시안 백작과의 결투에서 승리해 그의 모든 재산을 양도받고 아세일럼 공주와의 약혼을 선언해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커진다.
  146. [146] 화성제국의 최하위 신분인 제3계층 출신이나 자츠바움의 군대에 입대하고 '슬레인 경'의 전속부관으로서 충성을 바치고 슬레인이 백작이 된 후에는 백작의 부관이 되었다가 기사 작위를 받는다.
  147. [147] 전쟁 중에 사병으로 징집되었으나 뛰어난 군공을 세워 상부의 인정을 받아 사관학교를 건너뛰고 소위로 특별임관되었고 최종화에서는 영관급으로 진급했으며 전쟁영웅으로 대접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릴 것으로 보인다.
  148. [148] 사자 캐릭터. 어린 시절에 인명 피해를 야기한 아버지 때문에 가족 전체가 인간에게 산 채로 붙잡힌 이복형제 아판데를 제외하고 몰살당해 혼자 살아남는다. 이후 악착같이 살아남는데 성공해 헤어진 형제와도 재회하고 알파가 되어 자신의 프라이드를 갖게 되지만...
  149. [149] 과거 빈민가 출신의 떠돌이 기사에서 마침내는 기사의 정점인 킹스가드 사령관이 되었다.
  150. [150] 빈민 출신으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전투조종사가 되어 제 2차 대륙 전쟁을 성공적으로 종결시킨 조종사들 중 하나가 되었다.
  151. [151] 원래는 소년교도소 잡부 출신이였지만 사업을 시작해 결국엔 회장자리에 오르고 만다.
  152. [152] 범죄 조직의 일개 조직원에서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레스토랑의 사장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격투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은 덤.
  153. [153] 물론 작중 자수성가한 인물이 한 둘이 아니긴 하지만 오로치는 모티브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보이며 그가 몰락시킨 코즈키 오뎅악질금수저여서 더더욱 부각된다.
  154. [154] 모멘트 폭주 사건으로 부모를 잃고 폐허가 된 새틀라이트에서 자랐으며, 네오 도미노시티에서 수용소에 끌려가 전과자로 낙인찍혔으나, 다크 시그너를 쓰러뜨리는 조건으로 새틀라이트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설할 것을 약속받고 새틀라이트에 대한 차별을 종식시켰으며, Z-one을 쓰러뜨린 후에는 공학박사로서 신형 모멘트 시스템을 구축하여 파멸의 미래를 예방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155. [155] 포츈 컵 결승전에서 유세이에게 패배하고 네오도미노시티에서 증오하던 새틀라이트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져 인기도가 바닥을 쳤지만 팀 파이브디즈 활동을 하면서 인기를 다시 회복했고, 미래에는 전세계를 제패한 듀얼 킹이 되었다.
  156. [156] 유년시절을 유세이, 잭과 마찬가지로 새틀라이트에서 고아로 자랐으며, 로버트 피어슨이 죽기 직전에 건네준 블랙 페더 하나만으로 잭의 낭비벽을 땜빵하기 위해 배달일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다 했으며, 모든 사태가 종결된 시점에서는 고속도로 순찰대에 채용되었고, 이후 전세계 팀 라이딩 듀얼 리그를 제패했다.
  157. [157] 수입이 불안정한 서커스단에서 자랐고, 악당이긴 했어도 치안유지국에서도 갖은 고생 끝에 자력으로 차안유지국 차관까지 올랐으며, 장관이 사망한 이후 장관 권한대행 일을 수행하고 아크 크레이들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치안유지국에 끝까지 남아 시민들을 대피시킨 공적 등을 인정받아 네오도미노시티 초대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158. [158] 본디 최하층 귀족인 제국기사였으며 집안이 가난했다.
  159. [159] 할아버지가 친구의 사업을 도우려고 연대보증을 섰다가 그만 쫄딱 망해 집안에서 쫓겨났다. 이후 조부를 따라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했다.
  160. [160] 귀족 출신이지만 사실상 이름만 귀족인 빈곤한 하급귀족 태생.
  161. [161] 일개 사병에서 시작해 원수까지 진급했다.
  162. [162] 아버지 양 타이롱은 부유한 상인이었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뒤 상속과 그에 따른 세금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고액을 지불하고 수집했던 수많은 미술품들이 모두 1디나르의 가치조차 없는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아버지 소유의 회사조차 담보로 잡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양 웬리는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163. [163] 임페리얼 시티의 일개 하찮은 죄수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데이드릭 프린스까지 등극했다.
  164. [164] 아버지가 서리늑대 부족의 족장 듀로탄이긴 하지만 스랄은 어릴 때 부모가 살해당했고 노예로 키워지며 오크 사회와는 단절되어 살았다. 애초에 호드 부족들은 패배 이후 상당히 약화되어 간신히 연명하는 신세였기에 탈출 후에야 '듀로탄의 아들'이라 불리며 대우받은 것 빼곤 거의 없고, 자력으로 오크와 트롤, 타우렌을 구하고 포용하여 호드를 지금의 호드를 만들어내는 위업을 달성했다.
  165. [165] 스톰레이지 형제와 티란데 모두 평민 출신이다. 말퓨리온은 대드루이드가 되었고 티란데는 엘룬의 대여사제이자 나이트 엘프의 지도자이다. 일리단은 여러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끝내 모험가들과 함께 살게라스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166. [166] 오크와 오우거의 혼혈인 모그나탈이라 방랑하며 여기저기서 잡종이라 무시받지만, 뛰어난 무예를 펼쳐 스랄을 도와 많은 활약을 했고 호드의 용사로 불리게 된다.
  167. [167] 굉장히 인성이 나쁘고 포악한 악인이지만, 어릴 때 장군이었던 아버지가 기밀을 유출하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 뒤 얼라이언스 군에 들어간 뒤엔 어릴 때 아버지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역적의 아들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며 멸시받으면서도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공을 세우고 상당한 용맹을 보여 던홀드 요새 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술과 향락에 빠진 뒤엔 유능한 지휘관에서 호색한에 악인이 되어버린다.
  168. [168] 아싸였지만 지금은 인싸이며, 그를 좋아하는 여캐들도 꽤 있다.
  169. [169] 아버지는 복숭아 농장을 하다 실패했고 어머니는 파출부를 하며 남의 집 보석들을 슬쩍(...) 해와 팔았다고 한다. 너무 가난해서 아버지가 술로 세상을 떳을 때 묘비도 장만을 못해 자신이 대학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세워드렸다고한다. 갑부인 처가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25살의 나이에 최연소 하원 입성기록을 세우고 원내부총무,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에 골인했다.
  170. [170] 원래는 가난한 상인의 딸이었는데, 심지어 도적에게 당해 고아가 되었지만 재능에 각성하고 마일과 만나면서 세계관 인류 중 최상위급인 마술사 헌터가 되었다.
  171. [171] 빈농의 아들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에는 검사로 임용되었고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서이지만 승승장구해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172. [172] 이태준의 형으로 잘나가는 검사인 동생의 덕을 보기는 하였으나 세진자동차 중역이 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오션캐피탈 사장으로 중용된다.
  173. [173] 아버지가 병원비의 부담으로 4년 장학금을 주는 지방대로 갈정도로 집안이 가난했으나 사법고시에 합격하고서 검사가 된 후에는 이태준의 복심이 되어 지방대 출신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며 검찰의 핵심요직인 대검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으로서 조강재가 구속된 후에는 반부패장 권한대행까지 한다.
  174. [174] 이태준의 측근이었던 만큼 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나 분명히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간 용이다.
  175. [175] 둘다 환골탈태 콘셉트의 포켓몬이다.
  176. [176] 리자몽,초염몽,차오꿀은 전 주인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갖고 있으며 어흥염은 자신을 아껴주던 바랜드가 죽음을 맞이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리자몽과 초염몽은 각각 그 시리즈의 지우의 에이스 포켓몬으로 등극 했으며 차오꿀과 어흥염 역시 그 시리즈의 지우의 파티에서 준 에이스 역할을 했다.
  177. [177]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명문 집안의 자제들인 것과는 다르게 아네트는 평범한 집안 출신의 자녀로 판도라에 입단하였고, 거기서도 귀족 집안의 아가씨 출신 판도라 학생들에게 대부분 멸시 당하지만(사실 처음에는 아네트가 이들과는 어울렸으나 도리 파넬이라는 멸시당하던 동기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아네트도 그녀들에게 멸시당하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아네트 맥밀란 항목 참조.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웨스트 제네틱스의 3학년 순위 4위에 위치하는 것과 동시에 광견(狂犬)이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178. [178] 사실 아네트의 작품 내 대표적인 별명인 광견(狂犬)을 얻게 된 사연도 다른 명문집안 아가씨 출신들의 동기생은 다 도망치고 자신과 같이 멸시당하던 학생인 도리 파넬과 단 둘이서 야전캠프 훈련 중에 산사태를 막다가 결국 도리가 사망하게되면서 평소 자신의 집안과 도리와 어울려 다니는 것에 대한 멸시와 같이 아네트의 분노를 불러 일으켜 결국 아네트가 봄 카니발에서 그 도망친 아가씨들을 도륙하면서 광견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아네트는 말 그대로 광기에 찬 성격이 정착되고 만다.
  179. [179] 매우 가난한 철거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명석한 두뇌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공격적인 투자와 목적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대담함 덕에 부동산 시행사 에덴의 대표, 성진그룹 계열사 사장을 거쳐서 그룹 회장실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최서윤의 계략, 자신의 무모한 투자, 과거의 범죄사실 등에 발목이 잡혀 몰락한다.
  180. [180] 조선 연산군 시대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에 살다가 출가하여 갖가지 도술활동을 부리며 의적 활동을 하다가 훗날 조선땅을 떠나 율도국(오늘의 오키나와)을 세운다.
  181. [181] 평범한 중류층 가정의 자녀에서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여왕의 직속 수제자가 된 것을 시작해서 나중엔 왕족인 공주로 승격된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작품 최종화에선 아예 자신의 스승이었던 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일국의 최고지도자가 된다.
  182. [182] 고블린 중에서도 최약체 수준으로 태어났지만 나중에는 그린스킨의 신인 고크와 모크 중 모크에게 점지된 인물로 꼽힐 정도이다.
  183. [183] 클랜랫 출신의 릭투스 클랜 2인자로, 클랜랫은 최하층인 스케이븐슬레이브보다 처우가 조금 나은 정도의 처지이다.
  184. [184] 일개 노예부터 시작해 다크 엘다의 최고 지배자까지 등극했다. 본작에서 보기 드문 개천용의 대표격 예시.
  185. [185] 반면 같은 고향 출신에 동기격인 아라무스는 상류층 자제였다. 즉 금수저.
  186. [186] 아직 승천하지 못하고 기약없이 날아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개천에 머물러 있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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