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

독일인 (서게르만족)

스웨덴인 (북게르만족)

1. 개요
2. 스테레오타입
3. 게르만족 위주의 국가, 지역
3.1. 게르만족 관련 인물
4. 로마 제국 말기의 게르만족 인물들
5. 관련 문서

1. 개요

인도유럽어족 중에 게르만어파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총칭하며 오늘날의 스웨덴인, 덴마크인, 노르웨이인, 아이슬란드인, 잉글랜드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등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사실 사용 언어와 인종을 기준으로 비교적 넓게 나뉜 민족 개념은 'nation'보다는 'ethnic group'에 가까우며, 백년전쟁 이후 통일 국가와 절대왕정 체제를 이룩한 프랑스와 달리 작은 소국가로 분열이 이어졌던 독일게르만어파를 기준으로 'ethnic group' 개념으로서의 게르만 민족을 내세우며 민족 국가의 틀을 잡는데 이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이들이 역사를 거치며 섞여서 다양한 민족으로 호칭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서 '게르만'이라고 하면 주로 4세기의 민족대이동 이전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게르마니아[1]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원시 게르만 민족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부족은 원시 씨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최근의 연구 성과는 같은 부족으로 묶인 집단도 굉장히 다원화된 구성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부족의 이름은 주로 정치적인 주도권을 지닌 소수 집단에 의해 정해지는 편이었다.

스테레오타입상의 외모는 금발벽안이지만 정작 이러한 특징은 북게르만족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특징이며 서게르만족 계통의 사람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2] 애초에 게르만족이라는 것이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동일한 씨족 집단이 아니기에 모든 게르만인이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오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체로 이 어파에 속한 국가들의 경우 체격이 큰 편이다.[3]

'German'이라는 영어 표기 때문에 '독일 민족'과 같은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와 구분하기 위해 영어로 게르만족은 Germanic이라 부른다.


기원전 750년 부터 기원후 1년 사이 게르만족의 이동

독일 지역이 이들의 주 영역이었다는 인식이 있으나 실제 게르만족은 전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내려왔다. 기원전 700년 경만 해도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와 유틀란드 반도에서만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후 조금씩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였으나 로마와 카르타고가 한창 치고 받을 시점인 기원전 3세기 경에도 게르마니아의 대부분은 켈트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유틀란드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튜튼족)이 갈리아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를 공격하였으나 기원전 102 ~ 101년에 사이에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섬멸되었다.


기원후 1년 경 게르만어의 분포
파랑: 북게르만어
빨강: 북해 게르만어
주황: 저지 프랑크어
노랑: 고지 독일어
초록: 동게르만어

로마인들은 이들을 라인 강도나우 강 경계 밖으로 묶어두거나 제국의 동쪽 국경을 라인 강에서 엘베 강으로 넓혀 게르만족을 지배하려고 하는 시도를 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아르미니우스가 9년에 게르만족의 연합을 구성하고 봉기하여 로마에 항전하였으며 로마의 국경은 라인강으로 후퇴하게 된다.

3세기에는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고트족, 프랑크족, 알레마니족[4]이 로마를 공격하여 로마는 게르만족을 지배하려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게르만족과 로마 사이에 조심스러운 교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게르만족의 생김새는 당시 유럽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로마인들과 별차이가 없었으므로 곧이어 게르만족은 로마 사회로 조심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게르만족의 범위는 굉장히 넓고 그 속에 많은 민족들이 분류되어 있었으므로 로마는 일부 게르만족과는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다른 일부 게르만족과는 동맹을 맺는 식의 정책을 쓰며 게르만족을 다루었다.

4세기에 들어설 무렵엔 게르만족과 로마 사이에 상당한 교류가 진척되어 용병으로 당시 이미 상당히 와해되어버린 로마의 국방제도를 메워주기도 하고, 로마 농민들이 경작을 포기한 변경지대에 대신 이주하여 그 땅을 경작하고 세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4세기 후반, 동방에서 갑자기 훈족이 나타나자 난리가 나버렸다. 갑자기 동쪽에서 훈족이 나타나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연맹왕국 비스무리한 것까지 형성하면서 게르만족 중 가장 잘나가던 동고트족을 휙 밀어버리자 이들이 서진하면서 주변의 여타 게르만족들을 도미노 쓰러뜨리듯 밀어버렸고, 그 결과 일어난 것이 이른바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로인해 로마의 영토와 유럽, 아프리카 각지에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반달족, 서고트족, 동고트족, 부르군트족, 프랑크족, 앵글로색슨족, 노르만족 등이 각자의 왕국을 세우게 된다.

로마는 여러 모로 이들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먹히지 않은 게, 로마도 인력 부족이라서 이들이라도 받아들여 머릿수를 채워야 했던 안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족째로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전사를 군에 편입시켜 계속 인력을 충원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적, 물적 자원은 동로마 지역이 풍부한데 그 지역은 절반 이상이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대치 전선에 그게 투입되어야 하는지라(....). 이때 로마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이 게르만족이기 때문에 이들을 막지 않았다는 것은 전형적인 편견이라 하겠다. 실제로는 스틸리코 등의 게르만 혈통의 로마인들은 라틴계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해가며 분투하기도 했다.

사치와 퇴폐에 빠진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용병들을 쓰게 되어 차츰 군사력이 저하되어 기강이 빠져 결국 망했다는 것은, "기존의 해석"인 동시에 틀린 해석이다. "최근의 재평가"가 아니다. 수십 년 된 얘기가 최근의 재평가인가?

로마군의 중추를 형성했던 게르만족들은 적어도 4세기까진 대부분 어디까지나 "로마 시민"으로서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던 상비군이었고, 게르만족 출신 병사들과 장교들은 전반적으로 로마에 대단한 충성을 바쳤다. 용병이 정말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건 로마 제국의 재정이 엄청나게 취약해져 로마군 중 부족 단위로 편제되어 싸우는 단위들이 많아져 버렸기 때문이지, 게르만족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제국에 인력을 공급해주고 제국을 경모했던 게르만족이 아니었더라면, 제국의 서부 경계는 이미 3세기에 붕괴했을 것이 분명하다.[5]

또한, 라틴족으로 구성된 군단병들이 라틴족에서 게르만족으로 변화되면서 엄격한 기강과 국가에 충성을 보이는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는 건 "전통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냥 "틀린 얘기"다. 군단병의 구성 다수가 "이탈리아인"이 아니게 된 시기는 이미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부족 단위로 고용되는 게르만족이 무시할 수 없게 통제 불가능이 되는 건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이후에서부터 일이다.

후기 로마군의 전술 변화는 게르만족이 로마군의 주력취급을 받으면서 로마인들 특유의 편제에 따른 세심한 전술적 움직임을 보이기가 어려운 게 결코 아니라, 역으로 "로마군 특유의 편제에 따른 세심한 전술적 움직임"을 게르만족이 보여줬고, 이에 대한 대응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게르만족이 야만적이고 무식해서가 아니다.

사치에 퇴폐에 빠져 서로마가 게르만족 용병들을 쓰다가 무너졌다는 것은 건전하지 못한 신화로, 역사와는 무관한 얘기다.

고대 로마 시절에 쓰여진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재미있는 게르만의 풍습이 하나 나오는데, 전사의 키와 힘이 동정을 유지하는 기간에 비례해서 커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 잃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기도 했고, 성경험이 늦을수록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겼다.[6] 그들 사이에서는 가장 오래 동정을 지킨 자가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 토이토부르크 승리의 비결 대마법사, 대현자 무적의 동자공 연성

중세가 끝나고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독일 북부,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서유럽 북부, 북유럽의 게르만 국가들이 각각 개신교 교파들을 국교 혹은 그에 준하는 문화적 기반으로 삼게 되었고[7] 이후에도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게 되면서 (북부)게르만족 = 개신교라는 인식도 생기게 되었다.[8] 한편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독일의 바이에른 주, 벨기에, 스위스의 아펜첼이너로덴 주 같은 경우 국왕이나 영주가 종교개혁 세력과 반목한 역사적 이유 등으로 인해 가톨릭이 주류인 편이다. 물론 현재는 유럽의 전체적인 추세가 그렇듯 무종교인들이 대다수라지만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구별이 가능한데, 가톨릭 지역에서는 십자고상이나 성상들을 교회 바깥에서도 볼 수 있지만 루터교 지역에서는 볼 수 없다는 점 등이 그렇다.

2. 스테레오타입

영화 등으로 게르만족은 일반적으로 야만인들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도 농경을 중시하는 정주민족이긴 매한가지였다. 다만 기후적, 토양적 요인 탓에 목축과 사냥의 비중이 로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건 사실이다.

개인차가 있긴 하나, 한국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대체로 질서나 원리 원칙을 크게 강조하는 등 합리적인 걸 좋아하고,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널리 퍼졌다. 결벽증이 심해서 항상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도 있다.[9]

종교적으로 오스트리아, 독일 남부(바이에른 등 非프로이센), 스위스, 벨기에 등지에서는 가톨릭이 주류이며, 그 밖의 나라에서는 개신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 교파는 북유럽 일대의 루터교영국성공회, 감리교가 있으며 이 중 영국계 개신교단들인 성공회 등은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아시아오세아니아에도 진출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도 교세가 크다.

먼나라 이웃나라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라틴계 민족들에 비해 게르만계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부계 사회 성향이 강한 편이었고 이로 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중세시대의 상속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살리카법이다. 다만 현대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부계사회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편이다. 출산율의 경우, 과거에는 남동유럽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1960년대 이후로는 피임약이 빠르게 보급되고[10] 기독교적 가치관이 많이 축소되면서 애들을 잘 안 낳는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만화에서도 이러한 1970년대의 시대상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2010년대에는 크레디트 스위스나 OECD의 조사 결과 때문에 받는 소득은 평등하지만 쌓아놓은 자산을 보면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한 나라들이란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독일과 스웨덴.

3. 게르만족 위주의 국가, 지역

3.1. 게르만족 관련 인물

4. 로마 제국 말기의 게르만족 인물들

5. 관련 문서


  1. [1] 지금의 독일 지역과 얼추 비슷하다.
  2. [2]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은 갈색 머리가 더 많다.
  3. [3] 남성의 경우 네덜란드의 평균 신장은 183cm,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3국의 평균신장은 181cm. 체중도 상당해서 남성 평균 체중이 80kg이 넘으며. 여성도 평균 167~170cm에 평균 체중이 60kg대 중후반 정도로 큼직하다. 하지만 잉글랜드 남성 평균신장은 177cm으로 프랑스와 비슷하다.
  4. [4] 이는 프랑스에서 독일을 칭하는 알마뉴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5. [5] 애초에 게르만족이 없으면 제국의 서부 경계가 위험할 이유 따윈 없었을 거라는 얘긴 근거가 없다. 모든 게르만족들이 로마제국에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로마제국에 우호적인 부족들도 많았다. 후기에 게르만족들의 침입을 격퇴하는데 자국내 게르만족의 공이 매우 컸다.
  6. [6] 진지하게 부연하자면, 유전이나 섭식상의 이유로 2차 성징이 빨리 나오면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동정을 지키는 것 내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과 힘 또는 집단이 높이 평가하는 성질을 습득하는 것이 관계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동서 고금을 통해 찾기 어렵지 않다.
  7. [7] 독일 북부와 북유럽은 루터교회, 잉글랜드성공회, 네덜란드스위스개혁교회
  8. [8] 사실 유럽에서 20세기 초까지 개신교가 우세했던 지역에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헝가리 동부 등 게르만족이 아닌 지역도 포함되긴 한다.
  9. [9] 단,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는 비교적 적당주의라는 이미지가 있다.
  10. [10] 사실 꼭 1960년대에 처음생긴 현상은 아니고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의 혼란상이 이어지며 출산율이 크게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한동안 출산율이 크게 반등하다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
  11. [11] 생물학적으로 유전자가 단절됐다는 얘기는 아니고, 동고트족은 이탈리아에, 서고트족은 에스파냐에, 반달족은 이탈리아와 (결과적으로)아랍에 동화되었다. 여기서 한마디, 한국사람들은 인종과 민족을 빈번하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인종은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깊고 민족이라 함은 같은 문화(언어, "의.식.주."의 생활양식, 풍속 등등)를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뜻이 강하다. 거기에 더해서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 추구라든지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민족의 중요한 요소이다. 즉, 민족이 가진 기존의 문화를 내버리고 다른 문화권에 동화되어버리면서 기존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민족은 사라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거란족과 같은 테크를 탔다. 하지만 거란은 거란의 후예로 추정되는 민족이라도 있지만 동게르만은... 부르군트는 프랑크/프랑스에 합병당한 후에도 부르고뉴 공국으로 오랫동안 정체성을 유지하였으나 나폴레옹과 히틀러라는 재앙적 인물들에 의해 쓸려나갔으며 랑고바르드족은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한 후 역시 이탈리아에 동화되었다.
  12. [12] 흔히 게르만족 하면 떠오르는 국가.
  13. [13] 앵글로색슨족도 게르만족에 포함된다. 그 외에도 스코틀랜드에도 바이킹이 정착한 사례도 있다.
  14. [14] 엄밀히 말해서 다민족 국가이긴 한데 게르만족이 전체 인구 민족들 중 가장 많다. 미네소타, 위스콘신, 노스다코타 등 북서부 내륙은 북유럽계도 많은 편.
  15. [15] 전통적으로는 동게르만족으로 분류되어왔으나 이들의 언어는 서게르만어파인 고지 독일어와 같은 계열이다.
  16. [16] 프랑스라는 국명 자체가 프랑크족에서 유래했지만 현대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라틴족(남부)이나 켈트족(북부) 정체성이 더 강하다.
  17. [17] 1930년대까지 네덜란드어가 통용되던 마을이었다.
  18. [18] 노르만족으로도 불리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노르만족은 프랑스화된 노르드인을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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