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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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 金氏 (月城 金氏)
경주 김씨 (월성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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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경상북도 경주시

시조

김알지(金閼智)

파조

김예겸 (벽상공신내사령공파)
김장유 (판도판서공파)
김인관 (태사공파)
김봉모 (평장사공파)
김순웅 (장군공파)
김위영 (호장공파)
김여진 (상서공파)
김소 (목사공파)

집성촌

경상북도 경주시, 영천시, 상주시
경상남도 남해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충청북도 보은군, 청주시
강원도 양양군
함경남도 영흥군, 북청군
전라북도 임실군, 남원시
전라남도 나주시, 순천시, 신안군
경기도 이천시

인구

1,888,121명(2015년) | 국내 4위

1. 개요
2. 유래
3. 성씨 관계
4. 분파
4.1. 족보 위조 의혹
4.1.1. 《김은열 묘지명》
4.1.2. 《신라경순왕전비》
4.2. 현재
5. 유명인
6. 관련 문서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신라왕성이다.

전국에서 4번째로 흔한 성씨. 인구는 2015년 기준 1,888,121명으로 김씨 중에서는 4,456,700명의 김해 김씨 다음 가는 숫자로 분포하는 성씨로되어 있으며 전체 김씨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가 굉장히 많은 집안답게 강원도제주도는 물론이고 이북 지역에도 흔히 볼 수 있다. 본관에 따라 경상북도에 인구가 많지만 의외로 수도권 지역, 전라북도[1], 충청남도[2]이북[3][4] 지역에도 인구가 꽤 많다.

2. 유래

경주 김씨 시조는 김알지로 그가 탈해 이사금 시절에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최초의 김씨왕은 미추 이사금이며 내물 마립간 김씨 왕조 지배의 기틀이 잡혔다. 설화상으로는 일단 그러하지만 이것은 고려 시대에 소급된 것으로 보통 법흥왕 때 신라에 문화 전반에 개혁이 있었을 때 김씨를 사용했거나 원래 한자를 사용하지 않던 한민족이 다른 이민족(선비족 등)들이 한자 성씨를 사용하는게 유행하면서부터 김씨를 사용한 것이, 진흥왕 때부터라고 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진흥왕은 한국 최초로 김씨로 기록된 인물이다.[5]

신라인들의 경우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를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로 여겼으며 이는 《삼국사기》와 『김인문 묘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고사(新羅古事)에 금궤(金櫃)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後孫)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소호(少皥)는 ▨허(▨墟)하여 별빛을 나누고 시퍼런 바다를 뛰어 넘었으며, 금천(金天)은 …태조(太祖) 한왕(漢王)은 천년의 ▨을 열고, ▨성(▨聖)은 백곡(百谷)의 ▨에 임하셨다.

『김인문묘비』

또한 태조 성한왕이라는 인물이 『김인문묘비』와 『문무왕릉비』, 『흥덕대왕비문』에 등장하고, 한무제의 측근이던 투후 김일제도 김씨 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학계에서는 태조 성한을 김알지 또는 김알지의 아들 김세한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최초의 김씨성의 임금인 미추 이사금을 지칭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러한 기록등은 당시 당나라때 선비족등 이민족들이 한족화하면서 한자 성씨를 사용하게 되었고 중국인들은 이민족들의 조상도 중국인으로 보고 친근감으로서 동일화 시킬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도 사용되는 흉노 김씨를 당나라에 거주중인 신라 김씨와 동일화하여 보았고 그것을 옴겨 적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금관에서 나타났다는 믿기 힘든 전설보다는 문헌에서 나오는 김씨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김일제의 김씨와 진흥왕을 연관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경주 김씨인 지증왕,법흥왕,진흥왕,진평왕,무열왕,문무왕 등 6명의 명군들이 신라가 약체였을 때부터 여러대에 걸쳐 통치해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삼한일통,나당전쟁 승리까지 함께했다. 반발에 부딪힐 수 있는 강도높은 내정개혁과 귀족들이 협조 안해 줄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전쟁 등을 천재적인 외교력과 다른 고대국가에서는 찾기 힘든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밀어 붙였고, 결과는 성씨 그대로 황금(金)빛이였다.

나당전쟁시기 문무왕요동지역 당나라가 점거했던 오골성을 선제타격 했는데, 후대의 고려의 명장 태조 이성계 등이 작은 나라(고려)가 큰 나라(명)와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냐며 요동을 포기하고 위화도 회군겁을 낸 쫄았던것을 생각한다면, 무열왕계 경주 김씨 왕가가 한민족의 영토와 정체성을 위해 이루어 낸 것이 무엇이며, 그 용기와 통솔력,군사,행정,외교적 수완은 대단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나당전쟁 당시 신라는 통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영토는 크게 늘었으나 넓힌 영토들은 전부 불안정적인 상태였고, 아직 감정정리도 안 된 사이인 백제,고구려 부흥세력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언제 비담의 난과 같이 귀족들이 또 들고 일어나 왕권을 낮추려들지 몰랐다. 긴 전쟁으로 당연히 민간 또한 피폐해져 이 또한 문제였다. 고려 말기 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결국엔 이 모든 이들과 회유,협상을 하며 하나된 한민족의식을 갖추려 노력했으며 당시 아시아 세계최강인 당나라를 선빵 선제타격 했고,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해 거의 모든 문제를 종식시켜 오늘날 대한민국 영토, 그 이상을 만들어 놓았다,

혹자는 모든게 토번덕 이였다고 하지만 참고로 토번이 당나라 서변을 친 게 나당전쟁이 끝날 시점인 676년 기벌포 전투와 같은 해다, 그만큼 경주김씨의 지휘 아래 신라군이 전쟁을 잘했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고구려만큼이나 자랑스러워 해야 할 역사이며, 긴 전쟁의 역사를 끝내고 한반도에 300년이라는 진실된 그리고 자주성 있는 평화를 가져왔다. 그 역사의 중심에 경주 김씨가 있었다.

3. 성씨 관계

사실 경주 김씨는 월성 김씨(月城 金氏)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경주 김씨로 알고 있는데 가족관계등록부에 월성(月城)으로 나온다고 멘붕은 금지.[6] 애초에 지명이 경주 월성이다. 실제로 집성촌과 족보에서는 스스로를 경주 김씨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족보도 경주 김씨 종친회의 관리 아래에 있으므로 월성이라고 분파가 아니라 같은 씨족으로 대우받으며 시조와 왕릉에 대해서는 같이 제사도 올린다[7]. 이 때문에 합법적으로 동성동본결혼할 수 있었으며, 종친회와 가깝지 않는 이상 욕먹을 리도 없었다.

참고로 조선시대 이전에는 '금씨'로 발음되어 왔으나, 조선조부터 이씨왕가의 명령으로 '김씨'가 되었다. 금(金)은 비싼 재화 또는 철과 같은 쇠를 뜻하는데, 이(李)는 나무를 뜻하기 때문에, 쇠가 나무를 친다는 미신때문. 오늘날 현대 대한민국에 와서도 익숙해진 탓인지 바꾸지 않고 '김씨'로 발음되고 있다.

4. 분파

경주 김씨는 대보공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이다. 문헌(文獻)에 전하는 경주시(慶州)로 분파한 대표적 후손들은 다음과 같다.

경순왕고려에 항복 후 고려 태조의 첫째 딸인 낙랑공주 왕씨와 아홉째 딸인 '공주 왕씨'를 후비로 맞이하였다. 이들 후손이라 전하는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 내사령 김예겸(金禮謙)과 고려 말 판도판서 김장유(金將有)가 있다. 또 헌강왕의 후예라 전하는 고려 예종 때 검교태자태사 김인관(金仁琯), 신라 김알지의 후예라 전하는 고려 평장사 정평공 김봉모(金鳳毛), 원성왕 후예라 전하는 고려 초 장군(將軍) 김순웅(金順雄),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초 호장 김위영(金魏英), 고려조 상서 김여진(金麗珍), 목사 김소(金邵)가 있다. 이들을 1세조로 하는 파가 대표적이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10여 개의 지파(支派)로 나누어졌다.

  • 벽상공신내사령공파: 파조 김예겸(金禮謙)[8]
  • 판도판서공파: 파조 김장유(金將有) [9]
  • 태사공파: 파조 김인관(金仁琯)[10]
  • 평장사공파: 파조 김봉모(金鳳毛) [11]
  • 장군공파: 파조 김순웅(金順雄)[12]
  • 호장공파: 파조 김위영(金魏英)[13]
  • 상서공파: 파조 김여진(金麗珍)
  • 목사공파: 파조 김소(金邵)

경순왕고려에 항복 후 맞아들인 고려 태조의 딸들인 낙랑공주 왕씨와 '공주 왕씨'와의 소생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로는 경주 김씨 외에도 의성 김씨, (후)강릉 김씨, 언양 김씨, 삼척 김씨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경주 김씨계에서 분적된 대표적인 성씨로는 김녕 김씨(법흥파 김해 김씨), (구) 안동 김씨, 상산 김씨, 수원 김씨, 청도 김씨, 원주 김씨, 전주 김씨[14], 안동 권씨[15], 수성 최씨[16], 그리고 기타 김씨 본관 등등이 있어 이 성씨들을 다 합하면 약 600만명이 넘는다.

각 분파들 중 태사공파 지파인 상촌공파가 가장 번창한 가문이고, 그 다음에는 장군공파 지파인 계림군파, 벽상공신내사령공파의 지파인 수은공파 순이다. 참고로 김씨들 중에서 이름 중간에 '학'자나 '관'자가 들어가는 항렬이며 계림군파이고, 이름 중간에 '택'자가 들어가는 항렬이면 상촌공파이다.

4.1. 족보 위조 의혹

4.1.1. 《김은열 묘지명》

조선조 말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된 《김은열 묘지명》에 경순왕고려에 항복 후 고려 태조의 딸들을 후비로 맞아들여 8남을 더 두었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일(鎰) · 굉(鍠) · 명(鳴) · 은열(殷說) · 중석(重錫) · 건(鍵) · 선(鐥) · 종(鐘)이라 한다. 또 2자 굉(鍠)과 4자 은열(殷說)은 고려 태조의 외손인 낙랑공주 소생으로, 고려 평장사(平章事), 유공지신(有功之臣), 특사장지(特賜葬地)하였다고 한다.

이듬해 1785년 경주 김씨 김사목이 족보를 수보 하면서 《김은열 묘지명》을 바탕으로 《보국대안군 은열공 묘지명》을 추기 하였는데, 여기서는 2자 '굉'을 '황'(湟)으로, 3자 '명'을 '명종'(鳴鍾)으로 개명하고, 4자 '은열'의 시호를 '보국대안군'이라 작호(作號) 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여 하는 등 거의 작문 수준에 가까운 묘지명을 서술하였다. 이후부터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경순왕 8자들의 이름 및 서차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은열 묘지명》은 찬(撰)한 사람도 없고, 배위(配位) 및 생애 등도 누락되어 있으며,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경순왕 8자들 이름 또한 《고려사》 등의 정사는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조선 후기 족보 편찬 과정에 위조된 지석(誌石)을 바탕으로 가탁(假託) 내지 조작(造作)된 사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러한 묘지명은 사료(史料)로서의 신빙성(信憑性)이 거의 없다 할 것이다.

4.1.2. 《신라경순왕전비》

이후 1814년 경주 김씨 일문들은 《김은열 묘지명》을 바탕으로 《신라경순왕전비》(新羅敬順王殿碑)를 세웠는데, 여기서는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제1자부터 3자인 일(鎰) · 굉(鍠. 또는 황(湟)) · 명(鳴. 또는 명종(鳴鍾))을 배척하고, 제5자 중석(重錫)을 '석'(錫)으로, 제8자 '종'(鐘)을 '추'(錘)로 개명하였다. 또 2녀를 추가하였다. 비문에 경순왕은 전비(前妃) 박씨와의 사이에 태자(太子)·차자(次子) 이외에 제3자 '영분공'(永芬公)을 더 두었는데, ‘영분공파’ 파조라 한다. 벽상공신 내사령 김예겸(金禮謙)은 그의 5세손이라 한다. 또 제4자 은열(殷說)은 고려조에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에 봉해졌다고 하며, ‘대안군파’ 파조라 한다. 평장사 김봉모(金鳳毛)는 그의 6세손이라 한다.

4.2. 현재

이후 경순왕 제3자가 '김명종'이라 하며, 영분공의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경주 김씨 영분공파’ 파조로 모시고 있다. 또 경순왕 제4자가 '김은열'이라 하며, 보국대안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경주 김씨 대안군파' 파조로 모시고 있다. 이와 같이 경순왕 후손이라는 일부 경주 김씨 일문에서는 조선조 말에 와서 상계를 경순왕 왕자대 까지 끌어 올려 시호와 군호를 붙였다.

  • 영분공파: 파조 영분공 김명종(金鳴鍾)
  • 대안군파: 파조 대안군 김은열(金殷說)

5. 유명인

신라가 멸망해서도 경순왕이 순순히 나라를 바친 덕분인지 고려의 문벌귀족으로서 대우를 받았으며[17][18] 조선 시대에도 노론 벽파에 드는 등 승승장구 하였다. 다만 나중에는 본격 세도정치를 시작한 같은 신라계인 안동 김씨에게 축출당하기도. 이 시대의 유명한 인물로는 정순왕후 김씨, 추사 김정희김홍집을 들 수 있을 듯.

현대에도 워낙에 숫자가 많다보니까 경주 김씨 인물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본명을 기준으로 하였다.

6. 관련 문서


  1. [1] 고려 말 충신 6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도은 이숭인, 수은 김충한, 농은 민안부) 중 하나였던 수은 김충한 공이 조선조를 피해 남원으로 낙향하여 수은공파가 남원, 임실 등지에 많이 산다.
  2. [2] 특히 상촌공파와 계림군파가 더욱 그렇다. 참고로 상촌공파는 충청남도 서부, 경기도 북부, 강원도, 이북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3. [3] 참고로 이북 지역에 있는 경주 김씨 집성촌의 무려 80%가 상촌공파 집성촌이다(…).
  4. [4] 단, 북한에서는 성씨의 본관을 구 시대부터 존재한 일종의 계급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본관을 기록하거나 남들에게 물을 일은 없다고 한다.
  5. [5] 물론 법흥왕과 진흥왕 이전에도 혈족의 계보는 계속 이어져왔지만, 김(金)이라는 한자를 이름 앞에 붙이는 '성'으로 사용한 것은 이때가 최초라는 것이다.한자 사용이 유행하면서 한자 성씨를 쓴 것은 김씨 뿐만 아니라 다른 성씨들도 마찬가지.
  6. [6] 이는 경주 이씨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경주에 월성군이 있었다. 경주=월성 이라고 보면 된다.
  7. [7]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일제시절 호적의 영향이 크며 그 호적을 그대로 물려받은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8. [8] 경순왕 후예로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에 책록 되고 내사령을 역임했다고 하나, 일설에는 경순왕 후예가 아닌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라 한다.
  9. [9] 판도판서공파보를 보면 대개 경순왕의 후손이라 하나, 경순왕의 후손임을 증명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해서 김알지의 후예라 하기도 한다.
  10. [10] 추사 김정희가 속한 선대 계파로, 판도판서공파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증명할 사료가 없어서 대보공 김알지의 먼 후손이라고 칭하고 있다. 덧붙여서 헌강왕의 후손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11. [11] 경순왕 후예라 하나, 《고려사》에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인 신라 종성이라 한다. 전주 김씨로 분적하였다.
  12. [12] 원성왕 후예라 하나, 일설에는 경순왕 후예라고도 한다. 13세손이 계림군 김균(金稛)이며, 김홍집이 속한 선대계파로, 일부에서는 대장군공파의 명칭을 태자파로 변경하고 김순웅을 마의태자의 아들로 바꾸면서 다른 신라계 김씨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13. [13]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 인종 때의 명신이자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이 손자이다.
  14. [14] 놀랍게도 김일성의 본관이다.
  15. [15] 시조인 권행(權倖)이 권씨 성을 사성 받기 이전에 경주 김씨였다.
  16. [16] 경순왕의 고려 귀순후 그의 후예 김영규(金永奎) 후손
  17. [17] 정작 본인의 후손들은 경주 김씨에서 다른 본관으로 갈라져 나왔다.
  18. [18] 대표적으로 고려 중기의 학자이자 삼국사기 편찬을 주도한 김부식이 있다. 하지만 아들놈 때문에 망했어요(...)
  19. [19] 묘에서 "慶州金六十二世" (경주 김씨의 62세손).
  20. [20] 도지삽니다 그 사람 맞다.
  21. [21] 위키피디아 등에는 경주 김씨로 등재되어 있는데, 기록상으로는 본관이 확인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김부식 항목 참조.
  22. [22] https://youtu.be/Pu47A-6By8U?t=170
  23. [23] 북한의 그 김정은 꿀꿀이은 전주 김씨.
  24. [24] 위의 김기리의 선배지만 항렬은 김기리보다 한 세대 낮다(...)
  25. [25] https://youtu.be/Pu47A-6By8U?t=148
  26. [26] 김윤아도 경주김씨고, 남편 김형규도 같은 경주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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