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경주 김씨(慶州 金氏)

관향

경상북도 경주시

시조

김알지(金閼智)

중시조

김명종(金鳴鍾), 김은열(金殷說), 김장유
(金將有), 김인관(金仁琯), 김순웅(金順雄)

집성촌

경상북도 경주시, 영천시, 상주시
경상남도 남해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충청북도 보은군, 청주시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함경남도 영흥군, 북청군
전라북도 임실군, 남원시
전라남도 나주시, 순천시

인구(2015년)

1,800,853명 (4위)

비고

신라의 왕족 성씨

1. 개요
2. 유래
3. 성씨관계
4. 유명인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신라왕성이다.

인구는 2015년 기준 1,800,853명으로 김씨 중에서는 4,456,700명의 김해 김씨 다음 가는 숫자로 분포하는 성씨로 되어 있다. 인구가 굉장히 많은 집안답게 강원도제주도는 물론이고 이북 지역에도 흔히 볼 수 있다. 본관에 따라 경상북도에 인구가 많지만 의외로 충청남도[1]이북[2][3] 지역에도 인구가 꽤 많다.

2. 유래

경순왕의 시조는 김알지로 그가 탈해 이사금 시절에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최초의 김씨왕은 미추 이사금이며 내물 마립간 김씨 왕조 지배의 기틀이 잡혔다. 설화상으로는 일단 그러하지만 이것은 고려 시대에 소급된 것으로 보통은 법흥왕 때 신라에 문화 전반에 개혁이 있었을 때 김씨를 사용했거나 서, 서의 기록대로 진흥왕 때부터라고 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진흥왕은 한국 최초로 김씨로 기록된 인물이다.[4]

참고로 신라인들의 경우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를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로 여겼으며 이는 《삼국사기》와 『김인문 묘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고사(新羅古事)에 금궤(金櫃)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後孫)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소호(少皥)는 ▨허(▨墟)하여 별빛을 나누고 시퍼런 바다를 뛰어 넘었으며, 금천(金天)은 …태조(太祖) 한왕(漢王)은 천년의 ▨을 열고, ▨성(▨聖)은 백곡(百谷)의 ▨에 임하셨다.

『김인문묘비』

또한 태조 성한왕이라는 인물이 『김인문묘비』와 『문무왕릉비』, 『흥덕대왕비문』에 등장하고, 한무제의 측근이던 투후 김일제도 김씨 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학계에서는 태조 성한을 김알지 또는 김알지의 아들 김세한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최초의 김씨성의 임금인 미추 이사금을 지칭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런 기록들은 당연히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중국의 고대 신화속 인물과, 당시 세상의 중심이던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민족 출신 영웅을 진흥왕 이후 김씨 왕족의 조상으로 편입시키면서 왕가 권위의 상징으로 썻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경주 김씨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이라 추정되는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 : 영분공파 파조)과 후비 낙랑공주 왕씨 소생인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 : 대안군파 파조)을 1세조로 하는 계통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조상에 대한 계통은 확실하지 않으나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김장유(金將有 : 판도판서공파)[5], 김인관(金仁琯 : 태사공파)[6], 김순웅(金順雄 : 대장군공파)[7]을 1세조로 하는 계통 등 크게 5파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10여 개의 지파(支派)가 생겨났다.

3. 성씨관계

사실 경주 김씨는 월성(月城) 김씨(金氏)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경주 김씨로 알고 있는데 가족관계등록부에 월성으로 나온다고 멘붕은 금지.[8] 애초에 지명이 경주 월성이다. 실제로 집성촌과 족보에서는 스스로를 경주 김씨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족보도 경주 김씨 종친회의 관리 아래에 있으므로 월성이라고 분파가 아니라 같은 씨족으로 대우받으며 시조와 왕릉에 대해서는 같이 제사도 올린다[9]. 이 때문에 합법적으로 동성동본결혼할 수 있었으며, 종친회와 가깝지 않는 이상 욕먹을 리도 없었다.

경순왕과 후비 낙랑공주 소생의 아들대에 갈라져 나온 성씨로는 경주 김씨, 의성 김씨, (후)강릉 김씨, 언양 김씨, 삼척 김씨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경주 김씨계 성씨로는 김녕 김씨(법흥파 김해 김씨), 광산 이씨, 안동 권씨[10], 수성 최씨, 감천 문씨, 강릉 김씨, (구) 안동 김씨, 전주 김씨[11] 등이 포함된다.

파들 중 상촌공파가 가장 번창한 가문이고, 그 다음에는 계림군파, 수은공파 순이다. 참고로 김씨들 중에서 이름 중간에 '학'자나 '관'자가 들어가면 계림군파이고 이름 중간에 '택'자가 들어가면 상촌공파이다.

4. 유명인

신라가 멸망해서도 경순왕이 순순히 나라를 바친 덕분인지 고려의 문벌귀족으로서 대우를 받았으며[12][13] 조선 시대에도 노론 벽파에 드는 등 승승장구 하였다. 다만 나중에는 본격 세도정치를 시작한 안동 김씨에게 축출당하기도. 이 시대의 유명한 인물로는 정순왕후 김씨, 추사 김정희김홍집을 들 수 있을 듯.

현대에도 워낙에 숫자가 많다보니까 경주 김씨 인물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본명을 기준으로 하였다.


  1. [1] 특히 상촌공파와 계림군파가 더욱 그렇다. 참고로 상촌공파는 충청남도 서부, 경기도 북부, 강원도, 이북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2. [2] 참고로 이북 지역에 있는 경주 김씨 집성촌의 무려 80%가 상촌공파 집성촌이다(...)
  3. [3] 단, 북한에서는 성씨의 본관을 구 시대부터 존재한 일종의 계급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본관을 기록하거나 남들에게 물을 일은 없다고 한다.
  4. [4] 물론 법흥왕과 진흥왕 이전에도 혈족의 계보는 계속 이어져왔지만, 김(金)이라는 한자를 이름 앞에 붙이는 '성'으로 사용한 것은 이때가 최초라는 것이다. 김씨 뿐만 아니라 다른 성씨들도 마찬가지.
  5. [5] 판도판서공파보를 보면 대체로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6. [6] 추사 김정희가 속한 선대계파로, 판도판서공파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덧붙여서 헌강왕의 후손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7. [7] 김홍집이 속한 선대계파로, 일부에서는 대장군공파의 명칭을 태자파로 변경하고 김순웅을 마의태자의 아들로 바꾸면서 다른 신라계 김씨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8. [8] 이는 경주 이씨도 마찬가지다.
  9. [9]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일제시절 호적의 영향이 크며 그 호적을 그대로 물려받은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10. [10] 시조인 권행(權倖)이 권씨 성을 사성 받기 이전에 경주 김씨였다.
  11. [11] 놀랍게도 김일성의 본관이다.
  12. [12] 정작 본인의 후손들은 경주 김씨에서 다른 본관으로 갈라져 나왔다.
  13. [13] 대표적으로 고려 중기의 학자이자 삼국사기 편찬을 주도한 김부식이 있다. 하지만 아들놈 때문에 망했어요(...)
  14. [14] 묘에서 "慶州金六十二世" (경주 김씨의 62세손).
  15. [15] 도지삽니다 그 사람 맞다.
  16. [16] 위키피디아 등에는 경주 김씨로 등재되어 있는데, 기록상으로는 본관이 확인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김부식 항목 참조.
  17. [17] 북한의 그 김정은 꿀꿀이은 전주 김씨.
  18. [18] 위의 김기리의 선배지만 항렬은 김기리보다 한 세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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