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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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한국전쟁 당시
3. 현대
4. 정치 은어

1. 개요

산 위와 능선을 따라 조성된 고지를 두고 벌이는 공방전을 뜻한다. 고지(高地)라는 단어에는 그저 '높은 땅'이란 의미밖에는 없지만, 대개 군사 용어로 쓰이며 "적의 고지를 탈환하다.", "고지를 사수하다."라는 말을 거의 누구나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전술적 목표를 의미해 왔다.

고대로부터 고지를 선점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일단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시야가 더 넓어지는 작전술적인 이점도 있으며, 전술적으로는 화살이나 투창, 돌팔매, 탄환과 같은 투사 무기들이 고지에서 아래로 공격할 때는 속도가 더 붙어서 위력이 훨씬 강해지며, 반대로 이런 투사무기들이 평지에서 고지로 올라올 때는 속도가 줄어들어서 위력이 훨씬 약해진다. 여기에 더해서 근접전이 벌어질 때도 고지에서 아래로 돌격하는 측은 고지에서 뛰어내려오며 가속도를 붙여서 돌격의 피해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반면, 고지로 올라가는 측은 쉽게 지치고 돌격의 충격력도 발휘하기 어렵다.

단, 고지대는 일반 지형에 비해 보급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보급이 끊기는 순간 고지대는 그대로 사지가 될 수 있었다. 삼국지에 등장한 마속의 사례가 좋은 예.

19세기 이후 화포가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포격에 산술계산이 도입되면서 고지의 중요성은 극대화된다. 즉, 고지 하나를 손에 넣으면 그 위에서 적들의 동향을 감시하다 적들이 오면 위에서 총탄을 퍼부어대거나 포격 요청을 넣을 수 있었고, 이는 상대 측도 마찬가지였기에 이후의 전사(戰史)부턴 고지를 뺏고 뺏기는 게 필수적으로 벌어졌다.

여하튼 방어 측은 이런 중요한 고지가 쉽게 함락당하지 않도록 참호와 기관총좌를 시작으로, 대형 콘크리트 벙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어책을 구축했고, 밑에서부터 공격루트와 숫자가 완전히 노출되는 공격 측은 언제나 막대한 피해를 강요받았다. 군대에서 배우는 약진 같은 보병단위 전술에서부터 대대, 연대 단위 우회기동까지 수많은 돌파법이 연구되었고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고지 하나에서 사상자가 수천 명 이상 나오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언덕 하나에서 발생한 피해가 수천이다.[1]

2. 한국전쟁 당시

한국전쟁 역시 주로 고지전을 중심으로 전쟁의 양상이 흘러갔으나, 휴전을 앞둔 말기로 갈수록 좀 더 넓고,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휴전하려는 간절함 때문에 고지쟁탈전은 더 격렬해졌다. 특히 휴전 협상이 진행되던 51년 하반기부터 고지쟁탈전이 주류가 되었는데, 이유인 즉슨 공산군과 UN군 사이에 대규모 공세가 멈추었기 때문. 이미 1.4 후퇴와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거치면서, 양측 모두 상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낼 힘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전선을 유지한 채 휴전을 하기로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것.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양측이 싸움을 멈춘 건 아니었기 때문에, 보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한 전투는 계속되었으며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바로 '고지'였다. 고지를 확보하면 그 위에서 주변 전황을 두루 둘러볼 수 있을뿐더러, 일대의 적들을 향해 사격 및 포격을 보다 멀리, 더 정확히 가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너도 나도 고지를 차지하거나 사수하기 위해 일정 텀을 두고 치고박는 일이 전선 전역에서 벌어졌으며 계속된 쟁탈과 포격, 폭격 속에 곳곳이 화약과 피 냄새 진동하는 민둥산이 되었으며,[2] 가칠봉 전투에선 아예 시체들을 모아 진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1950년 겨울 중공군의 개입으로 37도선까지 후퇴한 유엔군은 그후 반년동안 전선을 38선 이북으로 올렸지만, 그만큼 중공군의 인해전술(정확히는 보병의 수적우세를 활용한 기동전)도 잦아져서 이에 따른 사상자들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중공군 또한 유엔군을 쪽수로 밀어붙일 때마다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이에 따른 후방지원 및 보급체계는 매우 열약해 51년 상반기까진 공세기간이 1주일을 넘기질 못하는 등 전쟁수행능력이 미숙했다. 그래도 51년 5월 공세에서 중공군은 동부전선에 어떻게든 큰 구멍을 내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유엔군 또한 이들의 재정비를 틈타 전면 반격을 감행했고, 결국 현재의 휴전선과 비슷한 전선까지 중공군을 밀어내 전선을 교착상태로 밀어넣었다.

1951년 4월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밴플리트 장군은 재임 기간 내내 기동전 성격의 대규모 공세를 제안했지만(맹조의 발톱 작전), 휴전협상을 방침으로 정한 미군 수뇌부들은 이를 각하시켰으며, 허락받은 몇몇 작전들도 예상 사상자가 많다 하여 스스로 중지시킨 것도 있었다. 그래도 퍼즐 조각같이 돌출된 전선을 일직선으로 만들고 전선을 10~20km 올리려는 제한적인 목적의 대규모 공세는 그와 수뇌부 모두 공감했기 때문에 이를 여름과 가을 사이에 실행해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를 끝으로 대대급 이하의 소부대 전투만이 금성 전투 이전까지 이어졌다.

3. 현대

항공정찰이나 무인기, 정밀 타격무기가 발달된 현재에는 예전에 비해 그 중요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3] 그래도 엄연히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적에게 고지를 내주고 더 많이 염탐, 공격당하는 게 좋을 리 없기에 보병 단위의 전술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 근시기에 벌어진 아프간 전쟁에서도 전투의 상당 부분이 고지전이었고, 지형 대부분이 산악 지대인 한반도 역시 만약 전쟁이 재발한다면 보병, 포병 중심으로 고지전은 필수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게다가 현재 공군의 레이더부대나 이동식 레이더부대가 전개하는 장소가 특정지역의 가장 높은 고지임을 생각하면 현대전에서 고지의 중요성이 낮아진것 같지도않다. 특히 적의 항공기 침투를 감시하기 위한 저고도 탐지레이더는 주변이 뻥 뚫려있는 고지대에 설치해야된다.

4. 정치 은어

정치 성향이 다른 유저들이 커뮤니티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키보드 배틀을 하는 걸 고지전이라고 부른다. 가장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지는 커뮤니티로 엠엘비파크의 자유게시판이 있다.


  1. [1] 다만 여기는 그냥 무작정 돌진해서 그런 것이므로 일반화는 금물이다. 고지로 돌격하는 부대도 무작정 공격하는 게 아니라 매복, 부대별 엄호, 개별 사격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며 적의 화력을 분산시키고 최대한 대형을 넓게 벌려 공격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질 수가 없다. 당장 한국전쟁 후기 고지쟁탈전 중에 막판 중국군의 대공세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군이 주도했는데 정작 사상자는 한국군이 중국군/북한군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
  2. [2] 이것의 극단적인 예가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로, 모래폭풍 수준의 먼지 때문에 아예 소총을 내팽개치고 수류탄만 가득 챙겨 돌격했다.
  3. [3] 물론 한국도 국방과학연구소 등지에서 무인기를 정찰용으로 자체 개발하고는 있지만 기술력뿐만 아니라 연구원 대우도 미국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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