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서양 철학사 -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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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결과주의
1.1.1. 상황주의
1.1.2. 행위 공리주의 vs. 규칙 공리주의
1.1.3. 행위와 무위 구분의 무용
1.2.1. 양적 공리주의 vs. 질적 공리주의
1.2.2. 비-쾌락주의적 공리주의
1.2.3. 도덕적 지위
1.3. 개인과 집단
1.3.1. 평등한 분배
1.3.2. 사상적 의의
2. 비판론
2.1. 공리주의는 너무 느슨하다
2.2. 공리주의는 너무 가혹하다
2.3. 공리 괴물
2.4. 대체 무슨 결과?
2.4.1. 반론
3. 옹호론
4. 더 읽어볼만한 글
5. 대중적 인식
6. 창작물에서 공리주의
6.1. 사례

1. 개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1]

최대 행복의 원리

- 제러미 벤담

/Utilitarianism

고전적인 규범 윤리 이론 중 하나. 대표적인 사상가로 제러미 벤담과 제임스 밀, 그리고 그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 등이 있으며 경험론이 득세했던 영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이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명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리주의자에게는 최대 다수가 최대 행복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하고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뜻이다. 다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은 "다수"와 "행복"이라는 두 가지 변수를 설정하고 있어서, 두 가치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공리주의는 "행복"이라는 한 가지 척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최대 행복의 원리"가 더 정확한 (또는 오해의 소지가 적은) 표현이다.

1.1. 결과주의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의 한 종류이다. 결과주의란 "가장 좋은 결과를 불러올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윤리이론인데,[2] 이때 말하는 "가장 좋은 결과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답한다면 공리주의이다.[3] "가장 좋은 결과"의 다른 대답으로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의무론과 대비되는 이론이다. 결과주의는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 예상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무론에서는 내 행위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해야 하는 (또는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어린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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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시간 여행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행선지는 1900년 오스트리아린츠다. 요컨대 어린 아돌프 히틀러를 죽일 기회가 주어졌다. 시간 여행 사정상 '아돌프를 올바르게 키워서 독재자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치경제 상황을 개선시킨다' 같은 선택지는 불가능하다. 어린 아돌프는 아직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지만, 이대로 제노사이드를 벌일 것은 분명하다고 가정하라. (더불어 히틀러를 죽여도 다른 독재자가 필연적으로 출연한다든가, 나비효과로 더 끔찍한 재난이 벌어진다든가 하는 것은 없다고 가정하라.) 곧 어린 아돌프 1명을 죽이면 수 백만의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어린 아돌프를 죽여야 할까? 죽이는 것이 옳은가? 공리주의자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며, 1명의 행복보단 100만 명의 행복이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무론자는 (다른 가정이 없다는 하에서) 죄없는 아기를 죽이는 것은 그르다는 이유에서 반대할 것이다.

1.1.1. 상황주의

상황주의란 정해진 원칙 없이 그때그때의 판단을 따른다는 것이다. 공리주의가 지키는 원칙은 단 한 개 뿐이다. 행복을 극대화하는 행동을 하라. 이 원칙 외에는 어떤 원칙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없다. 살인 금지, 약속 지키기, 이웃 돕기 등의 원칙은 근본 원칙으로부터 파생된 원칙일 뿐이고, 상황에 따라 폐기가 가능하다. 같은 행동이어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1.2. 행위 공리주의 vs. 규칙 공리주의

고전적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가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를 옳고 긂의 척도로 삼는 행위(act) 공리주의인 반면, '어떤 행위 규칙이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는가'를 옳고 그름의 척도로 삼는 규칙(rule) 공리주의도 있다. 철학사적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존 스튜어트 밀은 규칙 공리주의의 맹아에 해당하는 입장을 개진한 철학자로 여겨진다. 참조(IEP)

1.1.3. 행위와 무위 구분의 무용

공리주의자는 "행동을 하는 것"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가 아기를 집에 두고 밖으로 나간 후 일주일 뒤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기가 죽어있었다고 하자. 이 경우 아기에게 물리력을 행사해서 죽인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죽음의 원인은 부모가 행위를 하지 않은 것(아기를 돌보지 않은 것)에 있다. 공리주의자는 이 경우 "죽이는 것"과 "죽도록 방치한 것"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다른 예시로는 트롤리 딜레마를 꼽을 수 있다. 공리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레버를 당기나(행위) 당기지 않으나(무위) 한 쪽을 살리고 다른 쪽을 죽인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다수를 죽이느니 다수를 살리고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택하게 된다.

1.2. 쾌락주의

고전적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의 일종이기도 하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 쾌락주의: 행위의 결과의 가치는 온전히 그 행위가 불러오는 쾌락(/행복)과 고통(/불행)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의 실현을 위한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쾌락주의(Hedonism)은 행복(happiness)이 곧 "좋은 것"(good)으로 규정하며, 따라서 "행복의 최대화 = 좋음의 최대화 = 도덕의 실현"라는 간단(?)한 이치 하에 나온 것이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는 행복을 절대적 가치로 두기 때문에, 공리주의 하에서는 행복의 희생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공리주의가 쾌락주의의 확장인 만큼, 쾌락주의 논리 그대로, 행복을 좋은 것(good)으로 두는 한, 행복을 훼손 하는 모든 것은 좋지 않은 것(bad)이기 때문이다. 즉 의 문제는 행복과 불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행복(쾌락)의 최대화보다는 불행(고통)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부정적 공리주의(Negative Utilitarianism)도 포함된다.[4]

1.2.1. 양적 공리주의 vs. 질적 공리주의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최초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쾌락의 양'이 전부다. 이런 입장을 "양적 공리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도 질이 높은 쾌락과 질이 낮은 쾌락으로 나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말초적인 육체적 쾌락에 비하여 셰익스피어 비극을 읽으면서 얻는 쾌락은 질이 높은 쾌락이라는 것. 이처럼 공리주의는 단순한 쾌락의 양이 아니라 질 또한 고려해야한다는 입장을 "질적 공리주의"라고 부른다.

1.2.2. 비-쾌락주의적 공리주의

쾌락주의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비고전적 공리주의도 있다. 이를테면 피터 싱어가 한때 받아들였던 선호 공리주의에 따르면 쾌락은 행복의 전부가 아니며, 설령 쾌락이 어느 정도 희생된다 한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대한 적합한 정의에 해당한다. 따라서 비고전적 공리주의가 옳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쾌락의 극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1.2.3. 도덕적 지위

윤리학의 핵심적 문제 중 하나는 "우리는 어떤 대상에게 도덕적 책임을 지는가?"이다. 이를테면 땅바닥의 돌멩이에게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은 지극히 희박할 것이다. 이 문제를 "도덕적 지위" 문제라고 부른다. 요컨대 돌멩이는 도덕적 지위가 없는 것이다.

공리주의를 받아들일 경우, 곧 "쾌락 및 불행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도덕적 지위의 요건의 전부라는 점이 따라나온다. 그런데 쾌락이나 고통은 , 고양이,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동물들 또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5]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 또한 충분히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제러미 벤담 같은 공리주의의 주창자부터가 염두에 두었던 귀결이며, 곧 동물권을 옹호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현대 공리주의자인 피터 싱어동물권, 자선 기부 같은 여러 현실적 주제에 대해서 논쟁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1.3. 개인과 집단

공리주의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은 개인 행복 총합의 최대화다. 그러므로 '개인의 집단'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는 '공공'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공의 행복'은 '∑개인의 행복'과 같은 뜻이며, "모든 개인의 행복(이익)의 총합"을 넘어서는 공공의 행복이란 없다. 따라서 집단이 그 구성원들의 행복의 총합과는 다른 어떠한 별개의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한 행동으로 초래될 개인의 불행이 그로 인해 얻어지는 집단의 행복보다 크다면, 이익을 얻는 쪽이 한 가족이건 도시이건 국가이건 간에 상관없이 그 행동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행복은 개인들의 행복의 합이다'라는 정의가 전제되어 있으며, 이 정의는 '집단은 개인의 합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공리주의는 개인주의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개인이 집단에 속해있다.'라는 집단주의를 전제로 하는 전체주의와는 상반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곧 어떤 의미에서 공리주의는 절대 '개인의 행복보다 공공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상이 아니다.[6]

단 고전적 공리주의는 "몇몇의 개인"을 희생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수의 개인"에게 득이 되는 선택지가 있다면 그런 선택지가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본다. "전체주의"나 "개인주의"의 정의 방식에 따라 이는 어떤 의미에선 전체주의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이해할 여지도 있다.

1.3.1. 평등한 분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 자체는 부의 평등한 분배를 함축하지 않는다. 왜냐면 한 개인의 효용만 증가하더라도 사회 총합의 '최대행복'은 증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분배가 되어있건, 행복의 총합이 많으면 좋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7]

다만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받아들일 경우, 공리주의자는 부의 평등한 분배를 주장해야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미 부가 많은 사람에게 부를 또 분배해봤자 증가하는 한계효용은 미미하다. 그러나 그 부를 가난한 자에게 분배한다면 전자의 부자의 경우 보다 효용이 매우 크게 나타난다. 즉, 이미 한계효용이 충분히 체감된 자에게 또다시 부를 몰아주는 것보다 효용이 아직 체감되지 않은 사람에게 부를 나눠주는 것이 보다 큰 효용을 거두게 된다. 공리주의 자체는 평등주의를 함축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공리주의자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서) 부의 평등한 분배를 도덕적인 것으로 본다.

쉽게 말해 억대 연봉자가 1만 원을 받아서 느끼는 행복보댜는, 연봉 100만원인 사람이 1만원을 받아서 느끼는 행복이 크다는 것.

1.3.2. 사상적 의의

공리주의 사상가 밀을 공부하면 알 수 있듯 공리주의는 당시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성립하는 사상이며, 따라서 무작정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공리주의의 등장이 당시 자유주의 사상이 놓치고 있었던 공공의 이익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하여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 추구를 기초로 하여 입법과 행정을 운영할 것을 주장하며, 이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에 부합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활동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이는 영국에서 19세기 선거권의 확대를 비롯한 노동자의 권리 확대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복지국가의 형성으로 나타났다.

물론 엄격한 공리주의자에게는 자유, 재산권 등 현대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침해 불가능한 것으로 여러 가지를 포함하여 그 어떠한 것도 '행복'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닐 수는 없으므로 경우에 따라 이러한 가치들을 부정하기도 한다. 다만 공리주의적으로 이상적인 체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서 그 어떤 공리주의자도 이 세계 완벽한 공리주의의 실현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진화심리학적인 시각에서, 의무론에 입각한 도덕적 결정자가 신뢰 또는 선호되도록 적응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을 따른다면, 공리주의의 수행적 의미에서 의무론을 효용으로 인식하고 포용할 수 있다.

2. 비판론

2.1. 공리주의는 너무 느슨하다 [8]

흔히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논리 구조를 띈다.[9]

공리주의에 따른다면 우리는 p라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p라는 행동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 그러므로 공리주의는 틀렸다.

이렇듯 공리주의가 부도덕적인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행복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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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마을 사람들이 매우 행복한 마을이 있다. 그런데 이 마을에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의 행복이 한 아이의 불행을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불행한 아이는 마을의 숨겨진 지하 창고에 갇혀서 학대를 당하고 있다. 학대를 하지 않으면 마을의 평화는 유지되지 않는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불행한 아이의 존재 자체를 모름으로써 마을의 행복은 유지될 수 있었다. 이제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 온전히 당신에게 주어졌다 하자. 당신은 계속 아이를 학대해서 마을의 행복을 유지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마을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죄없는 아이를 학대하는 것에 불편해 한다. 그러나 공리주의자라면 아이의 불행과 마을의 행복을 비교해볼 것이다. 만약 마을이 지구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현재 세상처럼 전쟁과 빈곤이 만연한 세상을 만드느니 아이를 학대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때로는 아이를 학대해도 되며, 학대 여부는 아이를 학대한 결과를 계산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의 이런 함의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표명했다.

보다 현실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인종차별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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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남부의 어떤 마을에서 백인 여성이 강간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흥분한 백인들은 단체로 흑인을 공격하려 하고 있고, 사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몇 명이 죽고 여러 사람이 다칠 것이 분명하다. 당신은 이를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만약 당신이 무고한 흑인 한 명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면 당신은 오직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수의 목숨을 지킬 것이다. 이 경우 위증을 통해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 옳겠는가?

위 사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리주의자라면 위 상황에서 거짓말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것이기 때문에 공리주의는 틀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고 실험이므로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문제임은 감안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제시된 정보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확실히 예측할 수가 없다. 만약 죄를 뒤집어 씌웠는데, 나중에 범인이 자백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종 갈등이 격화되고 사법 질서가 신뢰를 잃지 않을까? 그러므로 공리주의자는 위증을 통해 단기적으로 좋은 결과가 확실히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장기적인 결과까지 고려해서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처럼 공리주의에서 도덕적 판단은 그 상황의 결과에 대한 최선의 예측에 의존한다.

2.2. 공리주의는 너무 가혹하다 [10]

정반대로 공리주의는 도덕적으로 딱히 지탄받을 이유가 없어보이는 행동마저 비도덕적인 것으로 진단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기부 천사 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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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영이는 매달 월급의 큰 부분을 떼서 자선 단체에 기부를 하는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다. 남의 시선을 신경써서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봉사활동도 열심히 다닌다. 그러다가 문득 보니 평소에 입고 다니는 티셔츠가 목이 한참 늘어져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딱 이번 한달만 평소보다 2만원을 덜 기부하고, 그 2만원으로 보세 티셔츠를 사입기로 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말라리아 치료제는 2만원이다. 즉 희영이는 보세 티셔츠를 살 돈으로 말라리아 환자 한 명을 살릴 수 있었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희영이는 티셔츠 한 벌과 한 사람의 목숨을 비교해서 티셔츠를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다녀서 겪는 불행함' < '말라리아로 인해 극도의 고통을 겪으며 죽는 불행함'임을 가정하는 한, 희영이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너무 가혹해보인다.

더욱이 아래 시나리오를 고려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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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는 자기 아이에게 학대를 일삼는 끔찍한 인간이다. 어느 날 그 자녀가 말라리아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데 마침 지수는 자기 티셔츠가 늘어졌다는걸 알게 됐다. 아이가 무슨 고통을 겪건 아랑곳하지 않고 지수는 새로 2만원짜리 티셔츠를 사입었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이전까지의 행동들에 대한 평가와는 독립적으로) 희영이가 2만원을 주고 티셔츠를 산 것과 지수가 2만원을 주고 티셔츠를 산 것은 도덕적으로 동등하다. 둘 모두 각각 새로 티셔츠를 장만했다는 행복을 얻었고, 그 대가로 한 명의 사람이 말라리아로 고통을 겪으며 사망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영이의 행동이 지수의 행동만큼이나 극악하다는 결론은 너무 가혹해보인다.

이로부터 따라나오는 귀결은 '행하지 않는다고 비도덕적이지는 않지만, 만약 행한다면 대단히 칭찬받을만한(supererogatory) 행위'가 개념 상 부정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파이더맨이 목숨을 걸고 수 십명의 목숨을 살려내는 영웅적 행적을 펼쳤다고 하자. 공리주의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도덕적으로 숭고하거나 영웅적인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여전히 허용될만한 행위' 또한 부정된다. 이를테면 지나가던 시민A는 어린 아이 한 명을 구해냈지만 목숨을 걸고 5명의 목숨을 살려내는 행위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유력한 형태의 의무론에 따르면 시민A는 자신이 해야할 의무 이상을 충분히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공리주의에 따르면 시민A는 비도덕적이다.

2.3. 공리 괴물

로버트 노직'공리 괴물(utility monster)'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공리 괴물은 행복을 느끼는 데에 한계치가 없다고 하자. 만약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대신, 공리 괴물의 행복을 무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행복의 총량은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대신 공리 괴물의 행복을 무한으로 올리는 것에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조리해보인다.

이때 공리주의가 특별히 누군가의 행복을 가치있게 여긴 건 아니다. 공리주의는 같은 행복이면 그것이 왕이 느끼는 것이든 거지가 느끼는 것이든 동등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 괴물의 경우 공리 괴물의 행복과 일반인의 행복을 같게 취급했으나, 공리 괴물의 행복이 다른 모든 사람의 불행보다 양적으로 우세했던 것이다.

이를 좀더 현실적으로 만들어보자:

고급 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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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구매를 위한 예산 10만원이 준비되어있다. 이때 다음 두 가지 예산안이 있다.

* 일반인 10명에게 1만원짜리 와인을 한 병씩 돌린다: 일반인은 1만원 이상 와인은 구별을 하지 못한다.

* 고급 입맛 1명에게 10만원짜리 와인을 한 병 준다: 고급 입맛은 비싼 와인도 그 값만큼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10만원짜리 와인을 마실 때 1만원짜리 와인을 마실 때의 10배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후자가 전자에 비해 나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고급 입맛이라는 이유로 주어진 예산을 독차지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봐도 괜찮은가?

2.4. 대체 무슨 결과?

상기한 바처럼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의 일종이다. "결과"라는 말이 '끝'이라는 요소를 포함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리주의는 '그 끝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라면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낼 수 있을 지 몰라도, 현실은 그런 끝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어린 히틀러, 100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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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히틀러를 살해함으로써 홀로코스트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서기 3000년 경에 전 인류가 멸망에 처했으며, 그 원인으로 "1000년 전 시간여행자가 아돌프 히틀러라는 아이를 죽였기 때문에 이런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1000년 후까지 고려할 경우, 공리주의에 따르면 어린 히틀러를 살해한 것은 극악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시간 범위를 넓히면 넓힐 수록 이 결과는 얼마든지 재차 뒤집힐 수 있다

어린 히틀러, 800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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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000년 대멸망의 위기에서 극소수의 인류가 살아남아 서기 10000년 경에는 수 천개의 은하 문명이 번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밝혀지길, 서기 3000년 절멸 위기가 없었더라면 서기 10000년 현시점에서 전 은하 문명이 멸망했을 것이었다.

이렇듯 행위 사전에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거기다가 그 고려 범위에 따라 결과도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2.4.1. 반론 [11]

  • 위 비판은 공리주의가 "이러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줘야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애초부터 그런 '결정 절차'가 아니다.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가 좋은 행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객관적 답을 주면 될 뿐, 반드시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은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공리주의적] 절차가 모든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마다 사전에 엄격히 준수되어야 한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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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 고전적 공리주의는 행위의 실제 결과를 기준으로 그 옳고 그름을 따진다. 하지만 주관적(subjective)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위의 옳고 그름은 실제 결과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할 때 어떤 결과를 의도했느냐에 달렸다. 따라서 주관적 공리주의가 옳다면 어린 히틀러를 살해한 것은 '최대 행복'을 의도했던 이상 잘못된 것이 아니다.

3. 옹호론

공리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리주의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범주인 결과주의에 대한 옹호 논변들이 활용될 수 있다.

  •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규범 윤리 이론은 거의 없다. 그런데 "더 좋은 세상"은 명백하게 결과주의적인 척도다. 따라서 윤리적 판단에서 행위의 결과에 대한 고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의무론에 대한 현대적 정의가 "행위의 결과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점 또한 이를 대변한다. 따라서 결과주의는 규범 윤리에서 디폴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 결과주의 윤리학자들은 경쟁 이론인 의무론이나 덕 윤리학 등이 각종 윤리적 사례에 대하여 비일관적인 결론을 내놓거나, 아니면 Ad Hoc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공격을 펼친다. 만약 이런 공격이 성공적이라면, 결과주의 윤리학은 다른 경쟁 이론에 비해서 이론적 완성도가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철학 및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결과주의 윤리학을 참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생긴다.

4. 더 읽어볼만한 글

5. 대중적 인식

좋은 의도였다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어도 용서할 수 있지만, 좋은 목적을 가지고 나쁜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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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이중결과의 원리

"열차 사고로 다섯 명이 죽는걸 막기 위해 한 명을 밀어야 하는가?"로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는 공리주의를 소개할 때 쓰이는 대중적인 예제다.

공리주의는 행복을 도덕의 유일한 기준으로 보며, 상기한 바처럼 자유천부인권은 그 자체로는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옆 동네프로이트에 맞먹는 엄청난 어그로를 자랑한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를 비롯하여 공리주의를 가볍게 다루는 대중적 서적에서 공리주의를 때리는 것도 그런 이유.

  • 실제 공리주의를 실현하는 것에 관해서 아주 많은 논점이 제기될 수 있다.
    • 공리주의를 엄격하게 실현하려면 일단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만 남기고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기부해야 할 텐데, 현대에 가장 극단적인 공리주의자로 꼽히는 피터 싱어조차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거기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것은 딱히 인간만을 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야생동물이나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의 행복을 인간의 행복과 동등하게 고려한다고 생각하면 사실상 인류가 존속할 수 없다.[13]
    • 하지만 자유를 옹호한다고 자유지상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자유지상주의를 논박하는 근거로 자유주의자를 비난할 수 없듯이, 공리주의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약간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다른 사람의 행복을 느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의 행복을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 세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얻는 행복과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위키질을 하면서얻는 행복은 동등할까? 양적 공리주의의 대답은 'Yes'이지만, 여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행복과 육체적인 행복을 같은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되며, 동물의 행복도 고려해야 할지도 문제가 된다.
      • 질적 공리주의가 옳다면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이 위키질을 하며 얻는 쾌락보다 질적으로 우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는 근거로, '많은 사람들이 두 개를 놓고 더 많이 선호하는 쪽을 질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한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며, 학생들이 심슨가족과 셰익스피어,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 생각하는가 거수를 하게 한 결과 셰익스피어가 우세했지만[14], 자유시간에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해선 심슨가족 시청이 우세했다고 한다. 밀은 인간에게 돼지와 달리 질적으로 우월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고, 이는 환경이나 개인의 상황에 따라 말라버리기도 쉬운 능력이라고 하며, 그런 사람들로서는 차선책으로서 양적으로나마 우월한 저속한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며 주위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우월한 쾌락을 두고서도 저속한 쾌락을 추구하는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어쩌면 밀은 그런 의미에서 성과위주적인 현대사회를, 또 아도르노처럼 현대의 대중문화를 공리주의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15]
  • 주관적 공리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저울질해야 할 때가 생기는데, 어디까지의 미래를 고려대상에 넣어야 하는지,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라면 이자율 혹은 할인율을 적용해야 하는지, 한다면 몇 %로 정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 '공리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실제로는 공리를 저해할 것이다' 라는 식의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대다수가 집단 내의 소수를 제거하는 것에 계속적으로 찬성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전체 집단이 붕괴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공리주의자라면 나치의 행태를 묵인하는 것이 미래에 불러올 일들을 모두 고려하여 생각해본 후, 나치에 대항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결국 이 주장은 '공리주의를 시행할 때에 조금 더 똑똑하게 결과를 계산해야 한다' 라는 조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행위 공리주의 대 규칙 공리주의' 논쟁이 촉발되는 지점.
  • 상기한 "공리주의는 느슨하다" 비판의 예씨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소수의 행복'은 조금 침해될 수도 있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의 자유를 희생하는 행위는 언제나 일어나고 다른 도덕 원리로도 정당화된다. 대표적인 예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부 범죄자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감옥. 그리고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최소의 희생을 주장하게 되니 다른 도덕 원칙에서의 선행에서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목표를 갖게 된다. 다른 도덕 원리는 결과적으로 희생자가 몇인지 상관을 안하기 때문에 적은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라 해도 비판할 수 없기 때문. 결국에는 정도의 차이인데, 공리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금 '덜 절실한' 상황에서까지 다수를 위한 정책을 지지한다.
  • 개인의 행복 추구에 법률이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면 안 된다. 공리주의는 모두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이지,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도덕과 법률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과하게 추구하여 타인의 행복과 충돌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즉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불행한 소수의 행복 추구를 법이 막는다는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법률에 관한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법의 기본적인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공리주의에 반대된다.
  • 공리주의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한 명의 완벽한 인간이나 완벽한 시스템이 생산과 분배를 비롯한 모든 것을 매우 적절하게 조절하는 사회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없고 완벽한 인간이란 신이라도 만들어낼 수 없으니 의미가 없다. 다른 도덕 윤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면에서 현실과 타협을 이루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논쟁거리들을 제쳐놓고 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이념은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문제시 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판단의 수준에서 혼자만 잘 되려는 것을 나쁘게 본다거나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선호한다거나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보는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공리주의와 부합한다.
  •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공리주의가 상황에 따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해 허무주의와 함께 엮이며 무언가를 지키려는 의지를 약화하는 것으로 악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매우 완벽하고 틀림없는 잣대를 따르는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희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용납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그 희생을 미리 막는 것이 더 이상적이므로 권장된다. 마찬가지로,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할 선택이라면 처음부터 막아서 최선의 과정과 절차를 방해할 것을 치우는 것이 옳다.[16]

6. 창작물에서 공리주의

어떤 사상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 흔한 창작물에서는 공리주의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그리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수정 전 고전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악인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극단적이고 왜곡된 인물상으로 묘사하는 편이라 공리주의자들에게도 비판 받을 만한 인물이 많다. 대게 이런 캐릭터들은 질서 중립이나 악용하거나 심하면 질서 악에 속하는 유형이다.

6.1. 사례


  1. [1] 이 구절은 벤담이 원조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조는 '베카리아(Cesare Beccaria 1738~1794)'가 쓴 범죄와 형벌(1764)이라는 책에서 처음 나왔다. 이 책을 벤담이 읽고 자신이 써먹은 것이 후대에 유명해졌다.
  2. [2] 보다 엄밀하게는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닌지 여부는 온전히 그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3. [3] 쉽게 말해 가장 좋은 결과=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면 공리주의이다.
  4. [4] 다만 부정적 공리주의는 현대에는 사실상 사장된 상태다. 대표적인 비판점으로 부정적 공리주의를 강경하게 적용하면 자살이나 학살, 세계멸망을 옹호하고 본질적으로 잘못된 세상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 온건하게 수정하면 기존 공리주의와 사실상 다를 게 없고 문제점도 답습한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5. [5] (데카르트 같은 경우에는 이에 동의하지 않으나, 현대에 이를 받아들이는 논자는 거의 없다.
  6. [6] 이건 사실 수능 윤리 시험에서도 나온다. 즉, 개인의 행복을 경시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선택지는 틀린 거다.
  7. [7] 예를 들자면 평등의 실현에 앞서 그 평등이 쉽게 저해되고 그런 것을 막을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평등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꺾고 현실에 만족하도록 만듦으로서 행복을 늘릴 수도 있다.
  8. [8] IEP 항목 참조.
  9. [9] 다만 대표적인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해당 구조는 'p라는 행동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를 보이기 위해 사용된 논리를 공리주의로 환원시킴으로써 실제로는 '공리주의에 따른다면 우리는 p라는 행동을 하지 말아햐 한다.'를 입증할 뿐이라 보았다.
  10. [10] IEP 항목 참조.
  11. [11] SEP 항목 참조
  12. [12] “It is not to be expected that this process should be strictly pursued previously to every moral judgment."
  13. [13] 단, 의무론 역시 엄격하게 실현하면 인류가 존속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공리주의는 일반적으로 의무론에 비해 인류의 존속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일정 수준의 희생을 감수하고 공리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존속시키려 할 것이다.
  14. [14] 여담으로 일부는 심슨 가족의 세태풍자적인 요소를 들며 심슨가족에서 셰익스피어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다.
  15. [15] 문장에 중의성이 있어서 부연하자면 아도르노가 공리주의를 운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16. [16] 기근이 닥쳐서 식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없애기 위해, 기근이 오지 않도록 막거나 미리 식량을 축적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17. [17] 카츠라기와는 반대되게 스포일러최악의 악역을 제외하면 아군, 적 모두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18. [18] 물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들은 그걸 몰랐다. 사실 이때는 작가도 카구야가 최종보스였을지 몰랐을거야 만약 무한 츠쿠요미가 안전하게 끝까지 지속된다면,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행보다 미래에 발생할 불행을 없앰으로 인해 증가하는 공리가 훨씬 크며,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마다라를 지지할 리도 없으니 이행 과정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19. [19] 태모신교와의 싸움을 위해 몇몇 캐릭터가 죽는데도 불구하고 인과율이 망가진다며 내버려둔다. 그래서 일부 등장인물은 이런 면 등을 들어 데바림들을 깐다.
  20. [20] 본편에선 개인의 행복을 완벽히 침해하는 시스템을 계속 끌고가더니 극장판에선 공리주의에 완벽히 부합하는 개량형 시스템을 호기심 하나 충족시킨답시고 원환의 섭리를 박살내려다 실패하고 악마 호무라의 노예로 전락하는 촌극을 보여준다.
  21. [21] 공리주의라기보단 직접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무기를 다루는 마리아와 달리 의학의 특성상 많은 사람을 살리고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인체실험을 즐기는등 정당화하는 것에 가깝다.
  22. [스포일러] 22.1 핵전쟁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모종의 계획을 통해 뉴욕 시민 수백만명을 죽이고 관련자들도 제거
  23. [23] 공리주의가 정식 신념이지만, 정도는 장병 개개인마다 다르긴 하다.
  24. [24] 겉으로는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왕국과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크다.
  25. [25] 능력있는 히어로가 다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주장하며 백모래의 정화능력으로 인류와 환경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악행을 거의 방관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러한 행적이 들통날 경우 히어로 사회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의 공리를 계산하지 못해 현대 공리주의에는 맞지 않는다.
  26. [26] 참고로, 죠죠에서 말하는 '악'이란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고 짓밟는 행위이고, 설령 목적이 좋았다 해도 그 과정이 좋지 않다면 이는 악으로 분류한다. 즉 소수가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게 전부 망하는 것보단 합리적일진 몰라도 그것은 불합리한 악이라는 전제하에 7부는 이야기가 흘러간다.
  27. [27] 쿠베라 리즈란 사이로페, 메나카처럼 공리주의하고는 거리가 먼 경우도 어느 정도 있기는 있다.
  28. [28] 다만 이둘은 서로의 방법과 그 대가와 윤리적인 문제차이로 상당히 다른방향으로 공리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즉 반대성향.
  29. [29] 다만 이쪽은 마키아벨리군주론에 가깝다. 자신의 나라와 시민들을 위해 현실과 타협한 현실적인 군주
  30. [30] 공리주의자의 예시가 될 뻔했으나, 자기 책략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 공리주의자가 아니라 인간 말종임이 들어났다. 제갈량인 줄 알았는데 괴벨스였어
  31. [31] 이익형량이라는, 현대 공리주의에서 배제된 대상 사이를 비교해 더 나은 이익을 선택하는 초창기 공리주의의 문제를 그대로 수용하는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21세기에 갖고 있어 현대의 공리주의자들이라면 에미야 키리츠구를 공리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32. [32] 대의 사상을 따른다.
  33. [33] 카오스로부터 인류 전체를 보호하고 아엘다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제국의 품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소수의 인류세력과 사이커들은 철권으로 무자비하게 짖 밟았다.

7. 존 스튜어트 밀의 책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스런 인간이 되는 게 낫고, 만족한 바보보단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게 낫다"'

밀 특유의 질적 공리주의 사상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밀의 저서로는 자유론이 가장 유명하고 가치도 널리 인정받고 있으나, 밀의 철학의 요체는 <공리주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론의 논증 아래에 깔린 사상적 기반이 질적 공리주의이기 때문.

사실 오리지널 공리주의에서는 쾌락 측정해서 숫자계산만 하면 끝이고, 추가적으로 '질'을 고려한다느니 하는건 쓸데없이 계산에 착오만 일으키는 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밀은 자유론여성의 종속을 쓸 만큼 열렬한 자유의 주창자였고, 상당한 휴머니스트였기 때문에 단순 공리주의에서 '자칫' 초래할 수 있는 전체주의적인, 비정한, 천박한 결론을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따라서 공리주의를 논하는데 상당히 독특한 요소를 투입한다.

바로 '쾌락의 판단자'인데 '두 가지 이상의 쾌락을 전부 경험해보고, 똑같이 잘 알며, 똑같이 음미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34] 이런 사람들의 거의 전부가 한가지 쾌락을 뚜렷이 선호한다면 그건 더욱 바람직한 쾌락이라고 밀은 주장한다. 이는 양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느 것이 강렬한 쾌락이고 미약한 쾌락인지는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0분 줄넘기의 쾌락과 고통은 어느 정도인가? 매일 줄넘기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한다. 1달 금딸의 효용은 어떠한가? 역시 상당한 유경험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같은 이유로, 경험자들이 양적으로는 부족한 듯 보이는데도 한가지 쾌락을 분명하게 원한다면 그 쾌락은 더욱 바람직한 쾌락이며 질적으로 우월한 쾌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밀은 높은 질의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저질의 삶의 방식을 택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예를 들어 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튜브 짤영상 계속 돌려보면서 휴식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그 시간에 주로 소설을 읽을 것이다. (물론 읽다가 지치거나 힘들거나 하면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요리에 소질이 있으면 주말에 하루종일 tv보기보다는 다양한 요리를 실험하는데 시간을 보낼 것이고, 악기 다루는 데 재주가 있으면 DC들어가서 뻘글쌀 시간에 연주라도 할 것이다. 위의 유명한 격언인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밀 본인도 소크라테스 못지않은 대철학자였으니 왜 이런 논지를 펴는지 알 만 하다.

물론 밀도 항상 그런건 아니라고 한발짝 물러서기는 한다. 상황이 따라줘야 한다는 건데 극단적인 불행에 직면했을 때 저급한 쾌락으로 도피하고픈 충동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또 고차원의 쾌락을 누릴 능력은 쉽게 사그라들기 마련이라, 먹고살기 바쁘고 사회전체가 팍팍하고 하면 하는수없이 저질 쾌락에 빠져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밀의 사회철학적 기획은 단순 공리주의와는 달리, 개개인이 각자의 능력을 자유로이 계발하고 능력에 적합한 삶의 방식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데 집중한다. 이 기획의 결과가 바로 자유론이다.


  1. [34] 여기서 알 수 있는게 쾌락을 단순히 접해본게 아니라 '경험'을 했다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 희곡과 심슨 가족 보여주고 골라라고 하는데, 이는 대학생 상대의 강의를 재밌게 하기 위한 쇼일 뿐이고, 실제론 셰익스피어를 감상할 능력을 갖췄으며 심슨 가족도 종종 보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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