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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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ruby(广东省, ruby=Guǎngdōng Shěng)]
(廣東省[1])
광둥성 | Guangdong Province

성정부 소재지

광저우시 웨슈구 둥펑중로 305
(广州市 越秀区 东风中路 305)

지역

중난

면적

179,800km²

하위 행정구역

21지급시(2부성급시) 59구 21현급시 36현 3자치현

인구

1억 1,169만명

인구밀도

622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리시(李希)

성장

마싱루이(马兴瑞)

HDI

0.784 (2017)

GRDP

$1조 4,700억 3,000만 (2018)

1인당 GRDP

$13,257 (2018)

행정구역 약칭

ISO 3166-2

CN-GD

홈페이지

1. 개요
2. 특징 및 역사
3. 지리와 기후
4. 행정구역
5. 산업
6. 출신 인물
6.1. 중세
6.2. 근대
6.3. 현대
6.3.1. 정치인
6.3.2. 연예인
6.3.3. 재계
6.3.4. 스포츠 선수
6.3.5. 예술인

1. 개요

광둥(Guangdong) | 광동(廣東/广东)

국립국어원:광동 - 동형어 2번

중국 남동부의 이다. 약칭은 (粤).[2]

중국 본토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흔히 남방이라고 한다.[3]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성으로, 그 수가 2019년 기준으로 무려 1억 1,300만 명(...) 이렇게 인구가 많은 이유는 광둥성이 중국 최대의 공업 지역으로, 중국 각지에서 노동자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외지인들이 꽤 있다는 것. 또한 광둥성이 인구 수로 중국 내 행정구역 1위가 된 것에는 1997년 그동안 부동의 인구 1위를 차지한 쓰촨성 인구 중 3,000만 명이 충칭시 인구로 떨어져 나간 것도 크다.[4] 2009년 인구 1억을 돌파한후 서서히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매년 100만명이 넘는 인구 증가폭을 감안할 때, 향후 10년안에 일본 인구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면적은 177,900km²로 남한의 약 1.7배에 해당하며, GDP는 1998년에 싱가포르, 2003년에 홍콩, 2007년엔 대만의 GDP를 추월했고, 2013년 기준 약 1조 달러에서 2017년 기준으로는 이미 1조 4,400억 달러로 증가해 2018년 기준 1조 6,900억 달러인 한국을 턱 밑까지 쫓고있다. # 중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GDP 1조 달러를 돌파한 성이라고 한다.

성도는 광저우. 그 외에도 홍콩과 가까운 동네인 선전도 대표적인 도시다.

홍콩마카오 그리고 하이난 섬은 원래 광둥 성의 일부였으나[5]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분리되었다. 또한 중국 정부는 현재 대만 정부가 실효 지배하는 둥사 군도를 광둥성의 일부로 간주한다.

야오족좡족이 자치현을 각각 두 개와 한 개씩 가지고 있다. 야오족이 성 인구의 0.2%, 좡족이 0.7%.

유난히 해외에는 이 성 출신의 화교가 많이 보인다. 대체로 한국 화교를 제외한 전세계 화교는 이 성 출신, 푸젠성 이곳저곳, 객가 정도로 구분된다. 이는 원래 사람이 많은 것도 있지만, 19세기 중반에 태평천국난 이후 청나라의 행정력이 붕괴하고 살기 어려워지자, 이 성 출신들이 대거 바다를 통해 동남아, 미국으로 이주한 탓이 크다. 또한 명나라 시절부터 이곳은 매우 해외교류가 활발한 곳이었다. 아랍-페르시아인은 이미 3세기, 서양인은 16세기에 이곳에 도달했을 정도.

2014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1만 달러를 넘어선 수준으로, 한화로 따지면 1,000만원을 넘어선 수준이다. 중국에선 9번째로 높은 축에 속한다.

대만 중앙통신은 광둥 성의 인구가 1억 1,300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나무위키에서 가끔 몇몇 위키니트가 홍콩, 마카오를 이 광동성의 일부(...)로 헷갈리는데 엄연히 셋은 전혀 다르다. 홍콩과 마카오는 같은 광동지역이긴 했다. 그러나 홍콩은 영국, 마카오는 포르투갈이 각각 차지하면서 이 둘이 중국의 일개 행정구역으로 별도 행정부가 들어선 특별행정구로 관리되는 현재 이 둘은 체급이 다른 성과 같은 성급 행정구역인 특별행정구역으로 광동성과는 같은 성급이며 대등한 관계이지 종속관계가 절대 아니다!

물론 언어가 똑같이 광동어이고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등 관계를 부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양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서 셋을 비교해보면 외국인도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애초에 광동성은 좌측통행, 우핸들인 영국의 영향 때문에 좌측통행을 하는 홍콩과 차량 통행방향부터 우측통행으로 반대다.

2. 특징 및 역사

반골 기질이 강하며, 한족 민족주의 또한 강하다.

옛날부터 부조리에 저항하는 성질이 강했다. 몽골인 원나라가 무너지고 한족 왕조 명나라가 들어선 것도 여기서 시작되었으며 만주족 청나라에 맞서는 남명도 여기 기반을 두었다. 그리고 변발령 당시 성 하나를 통째로 팔기군이 도륙하는 소위 도성도 광동 지역에서 주로 행해졌다.

심지어 지금은 광동성에 소속되지 않은 별개 행정구역이지만 원래 같은 지역이었던 홍콩 특별행정구에서도 민주화 요구가 빗발쳐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2019년은 특히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대거 압승하는 초유의 결과가 나왔다. 애초 홍콩인 스스로가 독자 의식이 있는 경우도 꽤 있고 어쨌든 자신들이 중국인임을 받아들이는 홍콩인들도 중국본토와는 다르다며 차이를 어필한다.

중국 대륙 내부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서, 정통 중국 문화와 바다를 통해 들어온 외국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유럽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게 된 뒤부터는 반체제적인 사고 방식이 형성되어, 중국 내부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는 변수가 생긴다면 이 곳이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원래 베트남 북부와 함께 임호와 그의 부관이었던 조타진시황 사후 세운 남월(南越)의 영역[6]으로, 광저우는 과거 남월의 수도였다. 그래서 고대에는 중국보다 베트남동남아시아 민족과 더 동질성이 있었다. 남월은 중원의 풍속 대신 이 동네 풍속에 맞추고 독자적 세력을 이루다가 한나라 국력이 절정에 달해 흉노고조선 등 주변지역을 마구 침공한 한무제 때 정복당해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하지만 한나라 시절에도 이 지역은 미지의 남방영역이었으며, 간접적인 통치가 이뤄지다가 서진이 몰락하고 남북조시대가 되어서야 이곳은 남조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나라까지는 이곳의 개발이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고, 인구밀도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명나라 이후 기후가 좋고 해양세력과 접촉하는 데 상당히 유리했기 때문에, 이곳은 점점 부유한 지역이 되었으며, 현재는 여러모로 중국 경제의 핵심지역이다.

중국에 늦게 편입되었지만, 중화주의 혹은 한족 민족주의가 강한 지역이다.

지역 자부심과 한족 민족주의가 강하고 반골기질(특히 중국 남부의 북부에 대한)의 온상이며, 일단 쑨원이 여기 출신이고 해외에서 긴밀한 민족주의 네트워크를 가진 화교들도 광둥 출신이 많다.

이곳은 반골기질이 강해서 장제스가 대륙에 있을 시절에도 남경정부에 호락호락하지 않고 여러번 반란을 일으켰다.

한편 중앙정부 정확히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도 경향도 강해서 중국에서 가장 과감하게 공산당을 까는 언론인 남방도시보와 남방주말도 광둥성의 기관지다.

원래 광동성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다루기가 쉽지 않았으며, 자영농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도 토지개혁이 매우 온건했다. 그러나 중국 남부보다 화북이 더 자영농이 많아 토지개혁이 아니라 항일전쟁 시기 민족감정으로 화북을 회유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토지개혁이 적게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역사에 대한 시각에서도 한족 왕조인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에 대한 감정이나 평가는 높은데, 북방민족 정복 왕조인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에 대한 감정이나 평가는 낮다.

한 예로 송나라가 아닌 금나라 입장에서 저술한 책을 집필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범람연맹 성향도 광둥 성에 많다. 역사적으로 하도 북쪽에서 오랑캐들이 많이 쳐들어오다 보니 한족들이 화를 피해서 대거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쪽에서 내려온 한족은 주로 객가인을 이루고 있고 이들은 광동의 주류인 광동인은 아니다.

중국 국민당에서는 난징 충칭과 더불어 이곳을 자기 정당과 중화민국성지라고 여긴다.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호응하는 4.15 광저우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광동성 정부주석 리지선이 광동성의 군정대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장파쿠이장황사변을, 중국 공산당광저우 폭동을 일으켜 광동성을 장악하고자 했으나 모두 진압당했다.

이후 난징 국민정부에 그런대로 충성은 하지만 중앙과 적대적인 계계군벌의 수장 리쭝런, 바이충시가 리지선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우호적인 동맹 관계에 있었다. 1929년 2월, 호남 사건이 발생하자 장제스는 리지선을 광서파와 연대한 혐의로 투옥하고 천밍수를 신임 광동성 정부주석에 임명하였고 광동의 군권을 천지탕에게 맡겨 광동성의 지배자를 천지탕과 천밍수가 양분하게 했다. 천지탕과 천밍수는 반장전쟁 기간 동안 남방에서 광서파와 장파쿠이를 상대로 큰 전공을 세우며 중앙에 충성했다.

하지만 1931년 2월, 탕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1차 양광사변이 일어난다. 장제스에 우호적이었던 천밍수는 천지탕에게 축출되었고 광동성은 천지탕의 지배지역이 되었다.

9월 만주사변이 발생하면서 형성된 거국적인 협력 분위기 덕분에 광동 지역은 현 광시좡족자치구인 광시성과 함께 1931년 12월, 제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자치를 인정받아 서남정치분회, 서남정무위원회, 군사위원회 서남분회를 설치하고 반독립적인 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34년부터 1935년에 걸친 대장정, 1935년 법폐개혁을 거치면서 중앙의 영향력이 계속 강해졌고 1936년 5월, 광동의 정신적 지주인 후한민이 사망하자 위기를 느낀 천지탕은 1936년 6월 2차 양광사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 홍콩으로 망명했고 광동성은 이후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중일전쟁 중 일본의 침략을 받아 광저우 등지가 함락당한 바 있다. 일본군은 이후 1941년 태평양 전쟁을 도발해 광동보다도 더 아래의 홍콩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까지 쳐들어가서 홍콩으로는 선전과 홍콩 경계인 로우 다리로 대규모의 기병기갑포병이 밀고 들어오고 홍콩 섬에 해군 육전대, 즉 해병대를 상륙시키며 베트남으로도 똑같이 육/해 양로로 쳐들어간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자 다시 중화민국의 통치에 들어간다.

국공내전 중에는 인민해방군에 밀려 중화민국의 수도가 광저우로 이전되었지만 결국 여기도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함락되었고, 그 해 10월 1일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홍콩과 가깝고 바다가 인접해 있다는 영향을 받아서 산터우, 선전, 주하이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전해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이렇게 부유하거나 북부민들에 비해 이질적이면 이탈리아 북부나 스페인카탈루냐 처럼 분리성향이 있을 법 한데, 광둥성은 이들과는 달리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짜 한족이다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광동어에 대해서도 고대 중국어라고 소개하며 현 만다린, 즉 표준중국어몽골어가 섞인 짝퉁 잡어로 격하시키는 게 이들이다.[7]. 전술했듯이 이 국수주의는 중화민국에 대한 국수주의로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중공의 중화사상과 상당히 다르다. 쑨원이 괜히 홍콩 독립운동의 국부로 추대되는 게 아니다.

즉 광동에서의 한족 민족주의는 쑨원과 삼민주의에 기초한 중화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강한 반공 사상이며, 2019년 들어 중공 체제가 서서히 내우외환으로 위기를 겪을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광동 지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웃 홍콩에서 민주화 요구가 거센데 같은 지역이었던 본토 부분인 광동 지역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원나라를 무너뜨린 장사성의 난도 이 광동에서 시작하였고 청을 무너뜨린 신해혁명도 광동에서 시작하는 등 북방 세력의 붕괴는 대게 광동에서 시작했기 때문. 공교롭게 원 말기처럼 페스트까지 유행하였다. 2020년 1분기 중부지방에서 전염병이 터진것도 동일,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일본에게 함락당해 학살당한 기억이 있어서 일본에 대해 아주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일제 물건들을 파괴하는 반일시위가 아주 격하게 벌어진 적도 있었다. 이때 얼마나 격했는지 일제 차가 말 그대로 뒤짚힌 적이 있다.

서방에서 중국의 풀뿌리 민주주의이라고 극찬했던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어촌마을인 우칸 촌이 바로 광둥성에 있다.

2011년 9월 현지 당 지도부가 마을 공동 소유 땅을 개발업자에게 몰래 헐값에 넘긴 데 격분해 시위를 벌여 비리 관리들을 내쫓고 이듬해 3월 직선을 통해 촌민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2014년에 있었던 선거에서 당국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더니 2016년에 직선 선출된 린쭈롄 당위원회 서기가 비리로 체포되었다고 하지만 촌 주민들은 당국의 방해로 보고있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국은 마을 폐쇄, 변호인 방해, 언론 검열 등 갈등이 있는 실정이다.

결국 2016년 7월 22일에 결국 구속되어서 5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지금도 대치 상태이며, 홍콩 기자가 불법적으로 연행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근엔 뇌물수수를 인정한 자백을 돌연 철회해 수사당국의 강압·회유 의혹이 일고 있다.# 촌민 전 지도자에게 징역 3년 1개월형과 20만 위안(약 3,340만 원) 벌금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확정했다. 그리고 주민들도 무더기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가끔씩 온라인에서 지역 비하 키배틀이 일어나면 광동인들을 가리켜 난만쯔(南蛮子, 키작고 못생긴 남방 오랑캐)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실제로 가보면 동남아인과 비슷한 스타일[8]이 많다.[9] 당연히 광동인들 앞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광동성은 유럽과의 만남 덕에 기독교 교세가 강한 편이며 현재 폐쇄되고 있는 지하교회도 광저우 등의 지하교회가 주 타깃이다. 애초 광동인인 쑨원부터 회중교회 신자였을 정도.

2.1. 요리

  자세한 내용은 광동 요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지리와 기후

무지 습하고 덥다. 겨울에도 10도쯤인 온도를 유지한다(...) 단적인 예로 광저우가 영하로 내려간 적은 관측 이래 한 번도 없다.[10] 서남부는 충저우(瓊州) 해협을 사이에 두고 하이난성과 닿아 있다.

4. 행정구역

현재 21개의 지급시(地級市)를 비롯해 55개의 시 직할구, 23개의 현급시(縣級市), 41개의 현, 그리고 3개의 자치현(自治縣)을 관할한다.

광저우

선전

중산

포산

둥관

주하이

5. 산업

평야가 30%밖에 안 돼서 농업 생산력은 부족했었고 1978년 전까지는 공업으로도 침체된 지역이었지만 내륙 대신 해안을 개발하는 것을 포함하는 덩샤오핑의 개혁 및 개방 정책 덕에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5개의 경제특구 중 선전, 주하이, 산터우의 3개 경제특구를 가지고 있다.

홍콩마카오는 원래 광둥성 소속이었다가 영국포르투갈에 귀속되었고 중국은 오랫동안 이 지역을 미수복 지구 비슷하게 취급했다. 중국에 반환된 지금도 홍콩과 마카오는 광동과 교류가 많아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홍콩 및 마카오와 중국의 2중 차적을 발행하고 이 차적을 이용해 화물차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리고 본토의 부속 도서인 하이난 섬도 원래 광동 소속이었다가 1980년 경제특구 지정으로 별개 성으로 분리, 독립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언어인 하이난어는 민 계통 방언에 더 가깝다. 광동계 이주민과 하이난 토착민이 서로 다르다.

6. 출신 인물

중국의 변방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를 주도한 인물들이 많다. 다만 중세 이후에야 확실한 중국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에 명나라 이전에는 출신 유명인물이 매우 적다.

6.1. 중세

6.2. 근대

6.3. 현대

6.3.1. 정치인

6.3.2. 연예인

대부분의 홍콩 배우들은 광둥성 출신이 홍콩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고, 홍콩 출생이라도 본적이 광동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6.3.3. 재계

6.3.4. 스포츠 선수

6.3.5. 예술인


  1. [1] 주음부호로 쓰면 ㄍㄨㄤˇ ㄉㄨㄥ ㄕㄥˇ이 된다.
  2. [2] 본래 중국 남부를 가리키는 말로, 춘추시대의 월(越)과는 다른 나라인 베트남계 고대 국가인 남비엣(남월)에서 유래한다. 지금은 이들 나라 역시 '越'을 사용하지만, '粤' 역시 광둥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중화민국기부터 약칭을 사용하기 시작해 유지되고 있다.
  3. [3] 단 남방은 광동성만 말하는게 아니고 양쯔강 이남을 말한다.
  4. [4] 광둥에서도 하이난성이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거기는 충칭보다 인구가 훨씬 적어서 타격이 적었다.
  5. [5] 근대 이후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를 실효지배하지 못했으나 영유권을 주장했고, 그 때에는 광둥성의 일부로 분류하고 있었다.
  6. [6] 중국 한족이 단일민족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광동인들이 원래 남월인들의 혼혈 혹은 그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족 중에 고립된 섬나라나 산간지역 국가가 아니면 혈통상의 단일민족은 없다. 한족이 여러민족의 혼혈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광동성뿐만 아니라 한족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산시성-허난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지역들도 주나라시대에는 오랑캐, 즉 이민족의 영역이었으며, 이런 곳의 주민들도 대부분 모두 이민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7. [7] 알다시피 만다린어는 원나라 시대 몽골인들이 한어를 잘 못해서 성조가 4개 뿐인 북경 방언을 기초로 만든 인공언어다. 광동어보다 성조가 적고 발음이 간단하며 받침이 소멸되어 있다.
  8. [8]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눈이 크며 왜소한 체격
  9. [9] 실제로 광둥성을 비롯한 남쪽에 거주하는 한족은 북쪽에 거주하는 한족과 유전적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주류 Y 하플로그룹은 O2-M122로 북쪽 한족과 똑같지만, mtDNA 하플로그룹은 B로 북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쪽에 더 가깝다. 즉 원래 북쪽에 있던 한족의 남성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현지인들과 동화되었고 이들의 후손이 광동인들이라는 것. 그래서 외모도 흔히 말하는 북방계보다는 남방계, 즉 동남아시아인들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다.
  10. [10] 다만 1983년 1월의 비공식 기록으로 영하 5도를 기록한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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