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에 대한 내용은 경복궁 광화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광화문광장

개장일

2009년 8월 1일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2 (세종로)

1. 개요
2. 역사
2.1. 육조거리 원형 논란
3. 현재의 광화문 광장
3.1. 입지
3.2. 교통
3.3. 집회 금지?
3.4. 역사성 무시
3.5. 부실한 전시 시설들
4. 수정 가능성
4.1. 서울시청문화재청 공동안 (추진안)
4.1.1. 평가
4.2. 문재인 정부 수정안 (철회안)
5. 관련 사건 사고 혹은 시위
5.2. 스노보드 트랙
5.3. 아이리스 드라마 촬영
5.5. 최악의 건물 선정
5.7. 광화문광장 국기게양대 설치 무산
5.8. 박정희 동상 설치 추진 무산
5.11. 불법 천막 설치 관련
5.12. 세종대왕상 화염병 투척
5.14. 이승만광장
6. 대중매체에서

光化門廣場 / Gwanghwamun Square

1. 개요

서울특별시 광화문세종대로 한가운데에 있는 광장. 조선시대 이후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에 세워진 광장이자 세계적인 사진 촬영의 명소이다. 2008년 5월 27일 착공하여 6월부터 세종대로 일부 차로를 막고 공사에 들어가 2009년 8월 1일, 시민에게 개방되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기존 은행나무는 2008년 10월 말에 철거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광장으로 문화강국을 이루자는 뜻으로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고 이순신장군 동상도 세워져 있다. 서울역 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 등과 함께 시민단체들의 주요 집회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로 이곳에 세월호 시위를 위한 천막이 세워지면서 진보단체들 중심으로 강하게 각인되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열리면서 대중적인 집회, 시위성지 비슷하게 인식되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로 보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이전에도 청와대정부서울청사가 인접해 있어 이쪽을 공격하기 좋은 모양새라 시위는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일부는 관광하거나 지나갈때 여기 일대는 시끄럽기 때문에 피해서 관광하거나 지나간다고 한다. 이유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시위, 집회 등을 할때 광화문 광장 안 뿐만 아니라 세종대로 양 옆 인도, 광화문 바로 앞 인도 등에서 1인시위, 소규모 집회를 동시에 많이해서 충돌도 일어나고, 시끄럽기도 해서 헬게이트가 열리기 때문.

2. 역사

1395년 정도전태조의 명을 받아 한양이라는 도시를 만들며 조선 왕조의 정궁인 경복궁 앞에 관아를 배치하고 큰 길을 낸 것이 현 광화문광장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육조거리이다. 이 때, 경복궁광화문의 축을 북한산관악산을 연결하는 축선과 일치하게 지었는데, 무학대사가 관악산은 '불의 산(火山)'이기 때문에 관악산과 북한산을 축으로 하면 도시가 화를 당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광화문 앞길 130m 구간만 경복궁과 같은 축선으로 배치하고, 그 다음부터 종로 입구까지는 도로의 중심이 동쪽으로 최대 39m 가량 틀어진 구조로 조성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 길에 경복궁과 달리 통일된 이름은 없었고 광화문 앞길, 관아거리, 육조거리, 육조 앞길, 궁궐 앞길 등이 혼용되어 불렸다. 임진왜란 이후에 경복궁과 광화문은 복구되지 못하였지만 육조와 한성부등의 주요 궐외각사는 여전히 이곳에 위치하였다.

도성도, 보물 제1560호, 18세기 후반#

18세기 후반에 작성된 한양의 도성도에 당시 도로 모습이 보인다. 오늘날의 지도와 달리 남북이 뒤집혀 있는데, 왕이 궁궐의 어좌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지도 한 가운데에 동서축으로 나있는 도로가 오늘날의 종로이고, 6시 방향에 凸모양처럼 생긴 정원같은 공간이 창덕궁창경궁, 그 오른쪽 5시 방향에 있는 네모난 공간이 경복궁이다. 경복궁 가운데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이어지는 붉은 선이 과거의 육조거리. 참고로 현재 세종대로에 해당하는 구 태평로 지역의 도로는 조선시대에는 주 도로가 아니었다. 서울시청 서편을 통과하는 세종대로 부분은 과거에는 덕수궁(경운궁) 궁궐 영역 안에 포함되어 있었고, 대한제국 때에 와서 개통한 태평로로 정식 도로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남대문로숭례문에서 종로까지 이어지는 주도로였다. 괜히 종각이 그 위치에 놓여있는게 아니다. 당시에는 종각 자리가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조선총독부와 광화문통(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육조거리는 '광화문통'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3.1 운동 때 현재의 교보문고 앞(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각)에 사람들이 모인 기록이 남아 있다. 1926년에는 광화문을 헐고 조선총독부가 지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일제는 조선총독부 신청사 앞인 육조거리의 도로를 확장하였다. 이것이 세종대로세종로의 원형이며, 후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해체되었으나 육조거리와 광화문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오늘날의 세종대로가 되었다.

제안된 안에 따른 광화문 광장(측면배치안)

현재 광화문 광장(중앙배치안)

그러다 노무현 정부 말기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광화문 복원을 하면서 동시에 세종대로에 광장을 만드는 안을 계획해서 서울특별시청에 전달하게 된다.[1] 최초의 안은 원래 있었던 육조거리에 맞춰 세종대로를 미국 대사관/KT 쪽으로 보내고 세종문화회관 앞을 막아서 광장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서울시에서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중앙에 광장을 배치하는 중앙배치안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렇게 기존 왕복 20차로였던 세종대로를 왕복 12차로로 줄여버리고 세종대로 중앙에 현재의 광화문 광장을 만들게 되는데…[2][3]

2.1. 육조거리 원형 논란

육조거리가 관악산을 향하고 있다는 것과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의도적으로 육조거리의 축을 조선신궁을 향하도록 돌렸다는 오해가 유명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별도 항목을 만들어 설명한다. 혹시 틀린 부분이 있거나 반론이 있다면 이 부분에 수정바람.

해방 이후에는 관련 연구자들이 사라지고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일제가 자행한 각종 왜곡들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왜색이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전통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았다. 일본식 언어 표현이나 도깨비오니가 혼동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다 점차 일제의 영향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원형을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원형이 원래 그랬던 것인데 일제가 왜곡시킨 것이라 오해한 경우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육조거리도 이러한 사례 중 하나다. 원래 육조거리는 일직선 형태가 아니라 살짝 동쪽으로 굽어진 형태였다.# 앞서 말한 대로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육조거리 도면인 '경성부 지적원도'에도 이렇게 살짝 굽어진 형태의 육조거리 모습이 보인다.# 일제가 방향을 틀어다 놓은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이지 육조거리가 아니다. 일제가 왜곡시킨 부분이 있다면 광화문을 이전시키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축선(육조거리 축선이 아니다!)과 어긋나게 바꿔놓은 것[4], 그리고 육조거리의 축선 끝자락이 되는 남산에 조선신궁을 만든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헷갈리기 쉬워서 연구자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제가 육조거리를 근대식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당연히 방향도 왜곡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상식 상 도로를 일부러 굽어지게 만들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3. 현재의 광화문 광장

3.1. 입지

현재의 광화문광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인 세종대로의 가운데 부분을 공원으로 만든 것인데, 대부분의 도시공학자들은 이 공원의 조성 목적 및 용도에 대해 부정적이다. 예를 들자면, 이왕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세종대로 정중앙에 만드는 바람에 동선과 시선축이 어그러져 버렸다는 것. 서현 교수는 차라리 이 공원이 세종문화회관 쪽의 인도에 접하도록 만들어야 육조거리의 의미 뿐만 아니라 동선축, 시선축에 부합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은 서울시청 앞의 광장과 함께 정치적인 목적의 산물이라고 욕을 먹는 중이다.[5]

다만 이러한 혹평과는 별개로 북악산, 청와대, 경복궁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사진 찍기에는 최적의 장소.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사진촬영의 명소로 인기가 많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경복궁은 필수 중의 필수로 여겨지는 장소인데, 경복궁 온 김에 들렀다가 되려 광화문 광장이 인상깊었다는 주객전도(...)가 일어나기도 한다. 광화문 광장은 일단 규모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동상/경복궁/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도가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호평 일색이다. 각종 시위까지 끼얹어지면 금상첨화.. 그래서 요즘은 광화문광장에 시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 빼고는 잘 오지 않는다. [6]

3.2. 교통

세종대로가 왕복 20차선에서 12차선으로 축소되어 교통정체가 극심해졌다. 게다가 고양시파주시에서 오는 광역버스들이 이 광장 때문에 광화문정류소의 반대편인 KT정류소에서 승객을 태울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노선이 조정되어 이 버스들이 서울 시내에서 나갈 때는 의주로를 지나게 되었다. 그 외 분당, 용인, 하남, 의정부(종로1가로 노선 단축), 수지에서 오는 광역버스들의 경로가 거의 남대문로로 변경되어 종각역-을지로입구역-숭례문구간이 헬게이트가 되었다. 1년여 동안 남대문로 정체로 몸살을 앓은 남대문경찰서가 서울시에 요청해, 결국 하남, 일부 분당행 광역버스를 제외하고 점차적으로 본래 노선으로 환원했다. 이 때문에 대중교통 종사자와 자가 운전자들 역시 모두 한 마디씩 하는 중. 광장을 조성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만 그 광장이 모두가 만족하는 광장이 아닌 정치적 산물이라는 점이 문제. 세종대로 등은 규격상 광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원래 광장의 기능을 포함한다. 단순 교통의 의미가 아니라 집회 기능이 있었던 것. 교통만 생각하면 도로가 그리 넓어야 할 이유가 없다.

여름에는 분수를 가동하기도 하는데, 겨울에는 차도로 넘쳐흐른 분수물이 얼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이 뒤늦게 제기되면서 늦가을부터는 전혀 가동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런 것도 생각 안하고 만들었단 말이냐

3.3. 집회 금지?

이 광장에서 정치적 집회를 금지한 것 때문에 까이기도 하였다. 홍보용 공터로 용도를 한정해버렸다는 것. 실제 서울시 조례에도 각종 정치적 목적의 집회는 금지되어 있으며 순전히 관제 행사만 허용할 정도다.

그런데 허용을 해도 집회가 힘든 게, 실제로 광장이라고 만들어놓은 게 상-하행 편도 2차선 도로 가운데 만들어놓아 차들이 달리는 가운데서 오가는 위험성이 존재하며, 실제로 택시가 광장 안쪽으로 돌진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즉 어지간한 대규모 집회가 아닌 한 집회가 불가능하다.

집회가 금지되는 법적근거는 서울시 조례상 문화재 인근 100미터 이내에서 행사를 진행하거나 행사를 목적으로 광화문광장을 점용할 때에는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과 함께 집시법상으로도 외교기관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를 할 수 없다[7]는 규정 때문인데 다만 집시법의 금지조문엔 예외적으로 집회가 가능한 경우도 규정하고 있다.

집시법 제 11조 4의

가. 해당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를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다.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

이 3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할 경우 외교기관 100m 내에서도 집회가 가능하다.

또한 집회시 광화문광장의 사용에 관한 서울시의 입장은 확고한데 해당 조례의 그 어느 조문에도 집회를 금지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광화문광장의 운영과 안전 관리, 문화 행사 등에 대한 행정적인 처리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이 담당하지만 집회나 시위는 조례에 우선해 상위법인 집시법 규정에 따르게 된다고 밝혔다.[9]

3.4. 역사성 무시

역사성을 무시한 대표 사례로 월대와 해치상 위치가 바뀐 점이 주로 꼽힌다. 광화문 앞에는 광장 역할을 하는 월대가 있었다. 월대 역시 궁궐의 일부였다. 베이징의 천안문도 그렇고, 동아시아의 궁궐 정문 앞에는 궁궐의 격을 높이고 기타 행사를 치르기 위한 월대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고, 광복 이후에 콘크리트 광화문이 세워지면서 월대 복원은 더 요원해졌다. 경복궁 완전 복원을 위해 문화재청을 포함한 유관 기관 모두가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서울시에서도 기왕 서울 광장을 만든다면 월대 복원을 위해서 광화문에 이어서 만드는게 옳다고 보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서울 시청 광장도 시청사 앞에 바로 이어서 만들었으니 전례도 있었고 경복궁 앞으로 광장을 세우면 궁궐에 대한 접근성과 광장에 대한 접근성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었으나, 사직로 문제도 있고 해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

해치 위치도 사실 원래보다 앞으로 나와야 한다. 과거 사진들을 보면 해치 위치가 지금보다 수십미터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직로가 경복궁과 광장 사이를 관통해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도 비판받고 있다.

3.5. 부실한 전시 시설들

황금색 세종상 뒤편으로 가보면 동상의 좌대 뒤편에 문이 달려있고, 화장실 같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볼 수 있는데 내부로 들어가보면 당연히 화장실은 아니다. 지하로 계단이 연결되어 있는데 내려가 보면 '세종이야기'와 '충무공이야기'라는 전시관이 있다. 이 전시관은 세종문화회관에서 KT빌딩에 이르는 크고 아름다운 지하 공간에 조성되어 있는데, 광화문 광장 조성 전 존재하던 지하U턴 차로를 재활용하여 만들어졌다. 광화문 광장을 자주 가본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다가 '어 이런 곳에 이렇게 큰 전시관이 있었어?'하며 놀라는 곳. 당연히 세종문화회관이나 KT빌딩 쪽에서도 접근 가능하다.

이 시설에 대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린다. 전시관 내부에 놓여있는 전시물이래봐야 어린애들이 왜군들 쏴 죽이는 오락기를 가져다 놓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종과 이순신의 위업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허접하게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름에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여서 전시 시설을 만드는 것 자체가 유치하다는 의견도 있다.

4. 수정 가능성

현재로서는 낮다고 봐야 한다. 일단 일반인들의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 조선시대 육조거리와 현재의 세종대로 및 광화문 광장이 어떻게 다른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어떻게 복원하는 것이 맞는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설령 복원 인식이 널리 퍼진다 해도 교통 및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 뻔하다. 그리고 일단은 어쨌든 여론조사를 통한 일반인들의 선택이 중앙 배치였으니 이제 와서 과거 역사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또다시 수백억 원을 투입할 가능성은 낮다.

일단 광장을 수정할 경우 1) 월대를 복원해 광화문과 광장을 잇는 것. 2)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 측면으로 붙이는 것 이 두 가지가 관건이다. 1번은 보행자들이 남북으로 경복궁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골자고, 2번은 보행자들이 동서로 세종문화회관 주변 골목을 드나들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골자다.

1번 안대로 하려면 광화문 앞으로 동서를 가로지르는 사직로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월대 복원 시 사직로의 기능 상실이 불가피하다. 장기적으로 사직로 차도를 지하화하고 지상의 차량 통행을 통제하는 완전 광장화가 거론되고 있긴 하지만, 사직로 밑에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의 노선이 지나고 있어 여러 모로 월대의 복원은 힘든 상황.

2번 안의 취지는 도로 한가운데 섬처럼 되어버린 광화문 광장을 보행이 자유롭게 만들어 광장의 본래 목적을 살리는 것이다.# 취지는 좋으나 이렇게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붙여버린다면 당장 이순신 동상과 세종 동상을 옮겨야 한다. 여기에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환승통로 등을 다 부수고 묻어버리는 등 관련 시설 정비에 교통 시스템 수정 등의 문제까지 합치면 수백억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복원보다는 현재 모습대로 놔두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더 이득이기도 하다. 시위 통제 등의 측면에서 보면 광장이 섬식 승강장처럼 되어 있는 것이 편측으로 붙어있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예산과 교통 문제를 고려하면 1번, 2번 안 모두 선택하지 않고 이대로 놔두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1번과 2번 안 외에도 한때 국가적으로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서울 시청을 지나 서울역, 나아가 한강대교까지 국가상징거리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국가상징거리 조성 사업은 폐기된 상태이다.

4.1. 서울시청문화재청 공동안 (추진안)

광화문광장은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확장돼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매머드 광장'이 된다. 광화문 앞을 가로지르는 사직로 자리에는 서울광장(1만3천207㎡)의 3.4배 크기 역사광장이 새로 조성된다. 이 경우 광화문광장이 지금보다 3.7배 커지며, 10차선은 6차선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2019년 1월 21일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조성사업 국제공모전 최종 당선작으로 '딥 서피스[10](부제: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를 공개했다.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CA조경기술사사무소 진양교 대표 등이 낸 모형.중앙일보1 중앙일보2 경향신문

위의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왔다. 역시 도로는 6차선으로 축소되고, 특히 세종문화회관 쪽은 광화문광장과 연결된다.[11] (수정 가능성 문단에서 제기한 2번 안과 특히 더 유사) 이순신동상, 세종대왕상 역시 예상대로 이동된다.

광화문 앞에 있었던 조선시대 월대와 육조거리를 복원함으로써 역사성을 살렸다. 또한 광화문과 광화문광장을 연결하며,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시민광장'을 유치한다.

더불어 현재 분리되어 있는 광화문~시청~을지로~동대문 4km에 달하는 지하 시설을 통합, 확장해 광장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채광은 자연광을 이용하는 선큰(Sunken) 구조로 변경한다.

그리고 광화문역시청역을 연결하고 GTX A 노선을 유치, 신분당선까지 유치해서 5개 노선[12]이 지나는 복합 역사를 만들어 강북의 교통허브로 만들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신분당선 광화문 연장에 미련을 못 버린 듯하다. 서인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인 국토교통부가 태클을 걸었다. 광화문역에 GTX를 정차시키면 비용 부담도 커지고 표정속도[13][14]도 떨어진다는 것.기사 어째 둘이 생각이 맞는 걸 본 적이 없다.

예측대로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이순신 동상은 옛 삼군부 터인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옮기기로 했다. 다만 박원순 시장은 이순신, 세종대왕 동상 이전 부분은 공론화 과정을 거친 후에 확정짓겠다고 밝혔다.기사 같이 인터뷰한 심사위원장의 표현을 통해 추정하면, 시 입장에서는 이순신 동상을 현위치에 두는 데에 부정적이진 않은 듯.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각각 669억원, 371억원을 부담해 총 1040억원의 예산으로 2021년 완성하기로 발표했다.

근데 여기서 행안부도 태클을 걸었다.기사 계획대로라면, 정부서울청사에도 손을 대게 되는데, 여기에 부정적인 반응. 건물 4개가 철거되고 청사 앞 도로가 없어지는데 당연한 반응이다. 이에 서울시는 합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부겸 장관이 직접 비판에 가세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4.1.1. 평가

기존 광화문광장이 지녔던 문제점을 상당수 개선했다는 것은 분명 의의가 크다. 기존 광화문광장은 역사성 복원 부분의 아쉬움, 섬 같은 입지로 인한 단절성 등으로 목표 달성에 한계를 보였다. 그런데 이 부분을 개선한다는 건 분명 의의가 크다.

그러나 다음의 비판이 있다.

먼저, 교통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미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해 세종대로는 칼질을 당했다. 그리고 그 결과 광화문 일대는 현재 심각한 교통혼잡을 겪고 있다. 그런데 가뜩이나 모자란 도로가 더 줄어들면..... 결국 현 모습의 최대 단점이 극대화된다는 소리다.

다음으로는 랜드마크인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이동되는 것에 대한 반감을 들 수 있다. 의외로 교통보다 이 부분에 대한 반감이 거세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인물 2명을 대신해서 촛불관련 디자인을 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 심지어 진보 성향 언론사에 달린 댓글에도 이 부분은 건들지 않았으면 하는 의견이 더 많다. 박원순 시장이 동상 이전 여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광화문광장 설계자는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과 촛불문양 새기기는 포기한다고 했으니 이 부분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하다.

4.2. 문재인 정부 수정안 (철회안)

청와대 대신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중심이 되어 개편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면서 광화문광장 수정을 다시 추진할 예정이었다.

위에 언급한 수정안대로라면, 경복궁으로부터 광화문광장이 보행도로로 연결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맞은편 미국 대사관까지 세종대로 전체가 공원으로 꾸며진다. 구체적으로는 광화문 월대와 해태상을 조선 후기 때 위치로 복원하기 위해 경복궁 앞 율곡로 130여m를 지하화하고 지하로 내린 율곡로는 지하철 3호선 구간을 피해 곡선화할 계획이다. 또 현재 11차로인 광화문광장 양 옆 세종로도 전면 지하화해 KT 광화문지사 앞부터 경복궁 방향으로 30m 이상의 도로가 모두 지하화할 예정이다. #

어차피 대통령 집무실이 정부서울청사로 옮겨지게 되면 대통령의 동선, 보안시설, 전파 교란 등의 경호 문제로 광화문광장 구조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기사 후반부를 참고할 것.

하지만 결국 2019년 1월 4일, 유홍준 '광화문 대통령 시대' 자문위원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시설, 부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대통령 집무실 정부서울청사 이전과 청와대 개방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끝난 후에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여, 문재인 대통령의 대통령집무실 정부서울청사 이전 공약은 사실상 백지화되었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5. 관련 사건 사고 혹은 시위

서울특별시라는 일국의 수도이자 전세계적 대도시의 한복판에 위치한 곳이기에, 각종 대형 시위나 사건들의 무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5.1. 명박산성

  자세한 내용은 명박산성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스노보드 트랙

2009년 12월 세종대왕 동상 뒤쪽에 7억을 들여 스노보드 트랙을 만들었다. 외곽의 스키장을 빌려서 할 수 있었지만 이게 참 문제인 게 일회성 행사용 시설물 주제에 화단을 밀고 거기에 만들었다. 당연히 세금낭비라고 까였다. 그리고 광장 북쪽에 스노보드 트랙을 만든 터라 광화문을 가리는 사태까지 일어나서 더 까였다. 이후 동월 14일 철거되었다.

'서울을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일'이라는 반론도 있는 듯 하다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지는 의문. 인공 스노보드 트랙과 고궁 중 어느 쪽이 더 이국적인 풍경을 보고 싶어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3초만 생각하고 넘어가자.

2015년 6월 16일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곽영진 부위원장에 의하면 평창 올림픽에 신규 등록된 종목인 '빅에어'를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기사

5.3. 아이리스 드라마 촬영

2009년 11월에는 드라마 아이리스를 촬영한다고 주말에 광화문 광장을 통째로 빌려줬는데, 이 작품에 꼭 '광화문 총격신'이 들어가야 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촬영 당시 심각한 정체가 일어났기 때문에 당시 그 주변 운전자들이나 대중교통 관련 종사자들은 이를 심하게 깐 바 있다.그렇게 찍은 광화문씬이 정작 얼마 나오지도 않아서 상당히 허탈했다 카더라

5.4. 집중호우 피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정 사건사고 문서는 유머성 서술과 비하적인 표현이 제한되며, 사실관계를 작성할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야 합니다.

국내에 발생한 호우 사태

1998년 8월 집중호우

2010년 9월 광화문

2011년 7월 중부권

2010년 9월 21일 추석 연휴에 호우로 광화문 광장 일대가 침수되었다. 이날 서울에서 기록된 강수량은 259.5mm였는데, 이때 충무공 동상 앞에 차량들이 마치 판옥선처럼 줄지어 있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일각에서는 중앙분리대의 가로수를 뽑아내고 광화문광장을 콘크리트로 덮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광장을 조성하면서 세종대로 일대 지표의 투수성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중앙분리대의 가로수는 뽑아서 내다버린 것이 아니고 길가로 옮겨 심었다.[15] 게다가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면서 광장 뿐만 아니라 일대의 찻길도 아스콘 포장을 걷어내고 화강암 박석으로 재포장하였다. 조각조각 나뉘어진 화강암 박석 포장이 아스콘 포장보다는 투수성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플라워 카펫이라는 대형 꽃밭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세종대로 일대의 토양 면적도 증가하였다.

그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그 정도의 폭우에는 지하로 흡수되는 물의 양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의 건물들을 전부 철거하고 흙바닥으로 만들었더라도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폭우 사태에서 광화문 광장과 관련한 서울시의 책임을 굳이 추궁하자면, 기후변화에 발맞추어 지하의 하수관로 확장이나 조례개정을 서두르지 못한 것 정도이다…라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 요컨대 변명과 달리 광장의 설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투수성이 왜 부족해졌는지 다수 기사에서 설명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막연한 핑계 또한 설득력이 없이 이미 광화문은 더 큰 비에도 견딘 바 있다. 진짜 100년 빈도 폭우라고 해도 지점을 한정했을 때 이야기이지. 한반도 전체를 기준으로 하자면 매년 어느 곳은 그 정도 수치가 나온다.

조례 통과나 하수관로 확장을 이야기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대형 저류조나 펌프장등 거대한 토목공사를 벌이기에는 시간과 예산이 요구되는데 정말 그것이 필요한지는 토론이 필요하다. 실재로 대책 내놓고 1년 동안 이루어진 게 없었다. 정작 저류조나 펌프장을 증설한다해도 해당 시설이 침수된 광화문과 떨어져있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광장만이 아니라 광장 주변의 도로에까지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거리를 모방해 아스팔트 대신 화강암 판석을 깔고 콘크리트로 마감했다가 비가 오면 틈새로 스며들어 균열이 발생해 돌이 흔들리거나 들뜨게 된 것. 그리고 설계 잘못으로 인해 도로 곳곳이 내려앉거나 파손됐다는 감사원의 지적도 나왔다.#

5.5. 최악의 건물 선정

2013년에는 마침내 동아일보와 SPACE가 선정한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 등재되는 기염을 토했다. 랭크는 20위 중 14위로 다소 낮으나, 문제는 같은 서울시 건축으로 1위, 4위, 5위, 8위가 선정되어 20개 중 5개나 선정됐다는 것.

5.6. 2014년 광화문 폭식농성

  자세한 내용은 2014년 광화문 폭식농성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7. 광화문광장 국기게양대 설치 무산

국가보훈처는 광복 70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보훈처와 서울시는 지난 6월 업무협약을 맺고, 각각 추천한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자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디자인과 높이 등을 정하는 등 게양대 설치를 추진했다. 결과, 협약에 따라 45.518m의 태극기를 설치하는 듯 했으나...박원순 서울시장이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대형 태극기 게양대가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보행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 국가보훈처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국가기관간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던 국가보훈처에서 한 발 양보하여 영구적 설치 대신 1달만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이도 무산되어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의 뜻대로 결말이 났다. 한편,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12월 19일, 20일 광화문 2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1인 시위를 펼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5.8. 박정희 동상 설치 추진 무산

2016년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진행되고 있던 중인 2017년, 일부 보수단체에서 뜬금없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박정희 동상을 이곳에 세우겠답시고 모금 계획을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히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이뭐병 싸늘했고, 실현되지도 못했다. 도리어 이에 대한 반발로 김재규 동상을 세우자는 주장이 인터넷에서 나오기도 했다.

5.9. 2016년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의 주무대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광장이어서 그런지 2016년 10월부터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 하야 관련 집회의 본 무대가 되었다. 11월 12일부터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100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특히 2016년 12월 3일 열린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집회의 경우 이 곳 주위에서만 총 170만여명이 모여 대한민국 광복 이래 70년간 최대 규모의 집회로 기록되었다. 해당 항목으로

들어올땐 맘대로지만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실제로 처음 100만명을 돌파한 11월 12일 집회 당시엔 적절히 유도되지 못한 채 지나치게 광화문광장으로만 인파가 밀집해 이동이 어려웠으나, 참여자들의 안전 의식과 주최 측의 대응 강화로 이후 집회에선 충분한 이동로가 확보되었다.

5.10.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자세한 내용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1. 불법 천막 설치 관련

광화문광장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면 신고 후 천막 설치가 가능하다. 또한 정치적 목적으로 설치되었다면 이를 허가하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으로든 어떤 목적으로든 떼거지로 집성촌마냥 광화문광장에 특정 세력이 점거하게 됐을 때, 서울시가 이를 방치하고 규모가 커질수록 광화문광장 전체를 써먹을 수 있으며 광장 의미가 사실상 완전히 상실될 수 있다.

5.11.1. 세월호 침몰 사고 유족들의 설치

세월호 천막 중 3동이 불법으로 설치되어 벌금 1,800만원을 낸적이 있다. #

이후에는 서울시에 신고를 넣었는지 기억 공간이 설치되었다. 이후에도 서울특별시에서 별 말은 없었다.

아래의 우리공화당의 점거 때문에 갈등이 자주 벌어지는데 주로 천막에 반대하는 1인 시위자들과 세월호 기억공간 관계자 vs 우리공화당의 구도로 충돌이 일어난다.

5.11.2. 우리공화당(舊 대한애국당)의 설치

2019년 5월 10일 친박극우정당 대한애국당이 기습적으로 서울시의 신고 없이 불법으로 천막을 설치했다. 박근혜 탄핵 가결 당시 반대 시위에서 사망한 5명을 추모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할 목적이었다. 서울시가 세 차례 경고했음에도 대한애국당은 천막을 철거하지 않았다.

시위현장 주변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등 시민들 안전상의 문제가 생기자 서울시는 2019년 6월 25일 5시 10분에 용역업체 직원 900명을 동원해 천막을 강제철거했으나 대한애국당은 같은 날 12시 40분에 불법으로 재설치했다. 조원진 대표는 "언제든지 규모를 키워 나갈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다.#

아마도 광화문광장 바로 옆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을 의식해 불법 설치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결정되자 대한애국당은 돌연 천막을 철거하고 트럼프가 있는 파이낸셜센터 앞으로 천막을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는 이를 틈타 광화문광장에 80여개의 화분을 설치해 애국당의 천막을 견제하고 있다.# ##

2019년 7월 6일 오후, 우리공화당 무리들이 다시 광화문광장을 무단 점거하였다. 해당 기사 이들은 하루 전날 청계천(청계광장)에 있던 천막을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옮겼고, 다음 날인 6일 여성지지자들을 이용해 무단으로 이동경로를 확보 후 서울특별시가 화단을 놓지 않은 KT 광화문지사(광화문광장 북쪽) 옆에 천막을 이동, 다시 광장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5.12. 세종대왕상 화염병 투척

50대 남성, 세종대왕상 화염병 투척…"소송에 져 억울"(종합)

2019년 8월 21일 오전 4시 경, 50대 남성 A씨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아래쪽에 화염병을 던졌다. 이에 세종대왕상 하단에 불길이 번졌지만 현장 근처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관에 의해 빠르게 화재가 진압되어 하단 부분이 약간 그을린 정도의 피해만 입었다. 곧바로 체포된 A씨는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다가 이후 경찰 조사에서 지인 빚보증으로 패소해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었다고 범행 이유를 밝혔다.

5.13. 조국 전 법무부장관 규탄 집회

  자세한 내용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규탄 집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4. 이승만광장

조국 사태에 즈음하여 보수 진영 일부에서는 광화문광장을 이승만광장(Syngman Rhee Square)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 # 뉴데일리에 따르면 만민공동회가 종로와 이곳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릴 당시 이승만이 참가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이승만광장이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례 등 법적으로나[16] 언론, 서적, 인터넷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광화문광장'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이승만은 이곳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종로, 경무대 앞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에 이곳이 공식적으로 이승만광장이 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 대중매체에서

  • 골든 슬럼버에서 극 중 대통령 후보 유영국이 차량 폭파 암살을 당하는 곳으로 나온다.
  •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의 Somewhere in Seoul 중 1번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서의 민초들의 삶의 여정과 추억 그리고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클래식 바이올린곡. 광화문이 제목이 아니다. 광화문 건물 자체를 음악으로 재현한 것이 아닌 광화문 광장에서의 개인적 체험과 감흥을 음악으로 표현한 음악기행문.
  • Plague Inc.에서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시티캠으로 광화문광장이 나온다. 이순신 동상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국민이 전멸된 상태 시 훼손되는 연출이 마치 이순신이 나라의 멸망을 한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


  1. [1] 유홍준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2. [2] 광화문광장을 만들기 이전 세종대로는 왕복 20차로로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를 자랑했었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을 만든 이후 왕복 12차로로 줄어버렸고,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를 자랑하는 곳은 미얀마 네피도의 야자 흐타니(Yaza Htani) 도로로 왕복 20차로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무진대로(왕복 16차로)와 영동대로(왕복 14차로)에 밀렸다.
  3. [3] 야자 흐타니 도로는 미얀마 연방의회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부터 얄자 띤가하(Yarza Thingaha) 원형교차로까지 왕복 20차로이고 얄자 띤가하 원형교차로부터 로즈 샤페드(Rose Shaped) 원형교차로까지 왕복 16차로이다.
  4. [4] 나중에 다시 돌아온 광화문은 이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춰져 세워졌고, 결국 다시 수정되었다.
  5. [5] 서울 광장의 경우 국제 공모에서 서현 교수의 "빛의 광장" 설계안이 최종 당선되었고, 국내외에서 매우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아무런 이유 없이 폐기되고, 현재의 잔디광장으로 대신 건설된 사례가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건축계와 서현 교수 측의 강한 반발이 있었으나… 이런 희대의 삽질로 인해 한때 해외 건축계에서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설계 공모전에 참가하지 말자"는 의견까지 나오기도 했다.
  6. [6] 광화문광장 부터 양옆에 있는 건물들 앞 인도, 서울광장까지 1인 시위부터 다규모 시위까지 엄청 시끄럽다.
  7. [7] 광화문광장의 100M 이내에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있다.
  8. [8] 서울특별시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문화 활동 등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광장을 관리해야 한다.
  9. [9] 다만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1조[8]에 따라 정치적 목적의 행사는 광화문 광장의 조성 취지에 어긋나 허가하지 않는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 정치적 목적의 집회는 금지된다. 이를 두고 헌법과 집시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법률의 위임규정도 없이 조례로 제한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서울 광장 조례'가 상위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개정되어 현재 서울광장에서의 집회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에 대한 반박의견도 있는데 광화문 광장이 서울시의 관리대상이자 재산인만큼 시설의 관리 책임과 사용허가 권한은 지방사무에 해당함에 따라 조례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조례가 헌법과 상위법령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례가 아니라 단순히 집회에서의 해당 광화문 광장의 사용여부에 대한 허가제를 담은 것인만큼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다.
  10. [10] Deep Surface : 깊은 표면
  11. [11] 서현 교수의 '빛의 광장'의 핵심이었던 요소다.
  12. [12] 1호선, 2호선(이상 시청역), 5호선(광화문역), 신분당선, GTX A(이상 신설)
  13. [13] 이미 인근의 서울역에 정차한다. 마음 먹으면 충분히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 신분당선만 정차시켜서 2,5호선 환승은 신분당선으로 해도 된다.
  14. [14] 다만 서울역 정차로 인해 감속해야 하는 구간이라 큰 폭으로 표정속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15. [15] 그런데 양쪽 인도 쪽으로 옮겨 심은 나무들은 생육 문제 때문에 영양제를 맞고 있다. 어어??
  16. [16]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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