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티칸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 교황의 문장.
삼중관+천국열쇠가 전형적인 특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관 대신 3개의 줄이 있는 주교관이 위에 있고, 예수회 문장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 배필인 나자렛의 성 요셉을 상징하는 나르드 꽃이 새겨져 있다. 아래에 사목표어가 쓰여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어: 교황 (敎皇)

중국어: 教宗

일본어: 教皇, ローマ法王 [1]

그리스어: πάππας (pappas)

라틴어 · 이탈리아어 · 스페인어 · 포르투갈어: Papa[2]

영어: Pope/Pontiff/Holy Father[3]

독일어: Papst/Pontifex

프랑스어: Pape/Souverain Pontife

러시아어: Папство (Papstvo)/Папа Римский (Papa Rimskiy)

아랍어: بابوية كاثوليكية

에스페란토: Papo

1. 개요
2. 명칭
3. 역사
3.1. 탄생과 발전
3.2. Papa/pope(교황)의 의미 변천
3.3. 중세, 교황권의 전성기
3.4. 근세와 오늘날
4. 타 교파의 입장
4.1. 개신교
4.2. 정교회
5. 교황 무류지권
6. 교황을 둘러싼 이야기
6.1. 교황의 국적
6.2. 교황의 선출 과정
6.3. 교황과 외교 예절
6.4. 교황 관저
6.5. 신비주의적 떡밥들
6.6. 교황과 관련된 통계
7. 교황에게 부여되는 것들
7.1. 직함
7.2. 교통편
9. 창작물 속의 교황
10. 관련 문서
11.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교황들
11.1. 실존인물
11.2. 가상인물

1. 개요

교황 비오 8세의 무덤, 피에트로 테네라니, 1866년, 성 베드로 대성당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된 작품. 보좌에 앉아 양팔을 펼치고 있는 성상은 예수이고, 예수 앞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조각상은 교황 비오 8세, 왼쪽의 열쇠를 든 성상은 성 베드로, 오른쪽의 칼과 책을 든 성상은 성 바오로다.

그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후계자가 아니라 한 어부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모든 권력이나 권위의 행사는 봉사하는 데 있으며, 교황은 자기 자신을 즐겨 ‘Servus servorum Dei’(하느님의 종들의 종)라 부른다.

- 이브 콩가르

로마 교구의 주교이며 가톨릭의 수장이자 바티칸 시국국가원수. 부를 때는 성하(聖下, His/Your Holiness)라고 예칭한다.

가톨릭은 교황이 존재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교회체계가 완성될 수 있었으며, 따라서 가톨릭의 교황이라는 존재는 가톨릭 교회들의 하느님과 성인들 다음으로 존경할만한 대상이자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가톨릭 내부에서는 교황을 곧 하느님의 대변자로써 본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런 존경심을 권력으로 이용해먹으며 찌들어 부패하고, 이에 실망한 신자들이 등을 돌렸던 시절도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선출된 교황들은 세속적인 권력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이런 교황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신자들의 존경심이 돌아오고, 다시 존경받는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홍콩에서는 최근 미니버스 광고에 현 교황이 나오는 등 가톨릭의 선교활동이 적극적이다. 기존 홍콩 신자들도 많고 신심도 두터운 분위기이기 때문.

2. 명칭

라틴어에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 'Pater'가 있는데 이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의미하며,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를 뜻한다. 따라서 어원으로만 보면 '교부'(敎父)로 표기하는 게 맞지만, 국어대사전에는 교황의 동의어로 교화황(敎化皇), 법왕(法王), 법황(法皇), 로마 법왕(Roma 法王) 등이 등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는 '백성을 하느님에게 이끌어 감화시키는 자'라는 의미에서 '교화황'(敎化皇)이라 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모든 교리를 세상에서 주관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주교자'(主敎者)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화황을 줄인 교황과 교종을 혼용했으나, 차츰 교황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면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1992년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용어위원회 논의를 거쳐 교황이 공식 용어로 최종 확정됐다. 북한에서는 로마 교황이라고 한다.

근래 들어 교황이라는 호칭이 황제, 제국을 연상시켜 지나치게 권위적인 느낌이라는 비판도 있다. 2013년 3월 21일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경축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베드로 주교[4]는 강론에서 교황 대신 '교종(敎宗)'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택한 분의 복음적 영혼과 삶을 드러내는데 임금황제를 표현하는 '교황'이라는 어휘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는 것이 이유. 강 주교는 이미 1990년 전례위원장 시절부터 교황의 호칭을 '교종'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강 주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에도 다시 한 번 교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재 공식적으로 한국 천주교에서는 '교황'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구태여 '교종'으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또한 교황이라는 용어가 다소 군주적인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5], 바티칸 시국의 대표로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제도를 반드시 민주제로 인식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교황직이 교회와 한 봉사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교회 제도의 가시적인 형태를 보아 '교황'이라는 용어가 걸맞는 것이다.

'교종(敎宗)'은 홍콩, 마카오 등 기독교인이 많고 기독교가 보편화된 중화권에서 교황을 일컫는 말이며, 기독교 인구가 턱없이 적은 일본에선 교황(教皇)과 로마 법왕(ローマ法王)이 혼용되고 있다.

NHK일본 정부 공식으로는 '로마 법왕'이라고 하며[6] 1981년 2월 요한 바오로 2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부터 일본 천주교에서는 교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교황을 '법왕'이라고 하는 건 원래 불교 화엄경 한역(漢譯)에서 Dharma-raja에 대한 상대어로 사용한 해당 단어를 석가모니를 비롯한 부처, 나아가 교계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로 쓰던 용례를 그대로 유용해와 갖다 붙였기 때문. 당연히 일본 가톨릭은 불교의 영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단어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교계 자체적으로는 한국과 같이 '가르치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교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교세가 작아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하교회가 꽤 크지만 종교의 자유는 없어 표면적인 기독교인 수는 터무니 없는 중국이나 기독교인이 극소수인 대만도 홍콩처럼 교종이라고 한다.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로마 황제가 겸하던 대제사장의 호칭이다. 375년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이 명칭을 포기하자 로마대주교가 이어받아 사용했다고 한다.

3. 역사

3.1. 탄생과 발전

가톨릭에서는 예수수제자베드로가 최초의 교황으로 예수가 지어준 이름인 베드로(반석, 터줏돌)라는 뜻대로 베드로에게 주춧돌이 되라고 한 말을 따라 교회의 기초를 닦았다 한다. 이후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 인정되고 있다는 게 가톨릭에서 보는 입장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교황직 자체는 최초에는 로마 제국의 5개 주요 교구의 대주교직 중 하나인 로마 총대주교로 시작했다.[7] 다만 로마 총대주교좌는 사도 베드로의 직접적 후계자임을 인정 받는 자리이고, 동시에 크리스트교의 가장 중요한 두 사도인 베드로바오로가 순교한 곳이며, 로마제국이 시작한 곳이자 로마제국의 옛 수도인 로마 시의 대주교였기 때문에 종교적 권위는 콘스탄티노플을 포함한 타 교구의 대주교들보다 강했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 권위와 별개로 정치-사회적인 권위가 강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동쪽으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강성한 로마 제국의 황제가 여전히 수호자로 남아서 지원하고 있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실질적으로는 더 우위에 있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로마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여전히 이탈리아 반도에 남아있었고,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이탈리아 원정으로 이탈리아 반도가 동로마에 수복되며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로마 황제의 눈치를 봐야 했던 시기도 꽤 길었다.[8]

이렇게 동로마의 영향권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로마제국의 교구 총대주교로 작동하던 상황은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에 우위를 지니는 상황은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와 레반트, 가나안, 이집트를 상실하며 그 영역이 발칸아나톨리아 지역으로 크게 줄어들고, 로마 교회가 정통 교회를 받아들인 프랑크[9]앵글로색슨[10] 등 게르만 족 국가들의 후원을 받기 시작한 8세기 경부터 서서히 해소되기 시작한다.[11]

그리고 이런 배경 아래 서서히 교황은 로마 제국 기독교의 대주교가 아닌, 게르만 족이 지배하는 서유럽 지역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서유럽 보편 교회의 수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12] 특히 서기 800년 교황 레오 3세가 서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샤를마뉴에게 씌워주면서 교황직이 완전히 서유럽 보편 교회의 수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교황(Pope)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게 된 건 10세기 이후로 그 이전까지는 위에 언급된 '로마 총대주교' 라는 말을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했다. 영어 Pope는 아버지란 뜻인 라틴어 Papa에서 유래했다. 단, 아버지를 가리키는 또다른 라틴어인 Pater하고는 조금 의미가 다른데 Pater는 생리적 아버지,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이다. 아무튼 Papa는 두루 주교를 부르는 말로 썼으나 점차 교황을 가리키는 말로 유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3.2. Papa/pope(교황)의 의미 변천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원래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으로 쓰이는 단어[13]지만, 라틴어에서 이를 차용하면서 존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동방정교회 쪽과 라틴어를 쓰던 서방교회 쪽 모두 사제주교, 총대주교를 Pope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도 그리스, 러시아, 세르비아의 동방정교회에서는 교구 신부들을 Pope라고 호칭한다.[14]

반면 서방교회 쪽에서는 이 사용이 점차 제한되면서 3세기 초 무렵 고위 성직자를 일컫는 존칭으로 Papa를 사용하다가[15] 5세기 무렵부터는 주로 로마의 주교를 일컬을 때 사용, 8세기 이후에는 오로지 로마의 주교에 대한 호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종교개혁 시기에 들어서 이 용어에 대해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으며 개신교 쪽에서는 당시 많이 사용되던 Papa라는 호칭 대신 "로마의 주교" 라는 원래의 용어를 선호했다.

3.3. 중세, 교황권의 전성기

카롤루스 대제까지는 프랑크의 세속군주가 기독교의 교황보다 더 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사후 아들들이 제국을 분할 상속 받으며 제국은 한 세대만에 분열되었고, 이후 북쪽에서부터 바이킹이 침공해와 정착하며 서유럽은 봉건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 교황의 권위와 권력이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동시에 교황령 또한 크게 늘어나게 됐다.

962년 독일의 왕이었던 오토 1세를 서로마 황제에 봉위하는 등 신성 로마 제국(독일+이탈리아)과 프랑스 왕국, 잉글랜드-웨일스 왕국(+노르망디 공국)의 사상·종교·사회·정치에 있어서 교황은 막대한 권위와 권력을 지니게 됐다. 특히 교황의 권한이 세속 국가들을 압도할 정도로 커졌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굴복시킨 카노사의 굴욕과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을 굴복시킨 존 왕에 대한 파문 사건 등이 있다.

당시 교황의 힘은 단지 종교계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영적 권력뿐만 아니라, 교황령이라는 이탈리아의 노른자위 땅+각국의 교회에서 걷히는 세금을 바탕으로 한 세속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황이 황제나 왕과 직접 군사력으로 맞서는 것까지는 불가능했지만, 당시 황제나 왕들도 자국 내에 자기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왕 못지않게 강력한 대영주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의 눈치를 계속해서 봐야 했다. 교황은 이들에게 황제나 왕의 관을 씌워줄 권한이 있었고, 현직 황제나 왕보다는 약간 못 미치는 세력의 이들을 지원해 줄 군대와 돈이 있었기에 이렇게 강력한 교황권이 가능했던 것이다. 흔히 교황과 황제의 대립 과정에서 황제들이 옹립한 대립교황들의 존재가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교황이 이런 목적에서 세운 대립왕(Contrarex, 다른 번역명으로는 반왕)들도 많았고 카를 4세가 교황이 세운 대립황제가 황제가 된 대표적 예이며 프리드리히 2세, 콘라트 3세등도 유명한 대립황제 출신 황제들이다. 이렇게 교황의 지원을 받은 황제들은 당연히 교황의 눈치를 잔뜩 볼 수 밖에 없었고 성직 임명권, 교회 과세권등을 넘겨주며 교황권을 강화시키게 된다.

이렇게 종교의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올라가자 한 때 교황들이 유럽의 왕이나 황제보다도 강력한 실존하는 권력을 뽐낸 적도 있다. 1305년부터 1978년까지 모든 교황은 삼중관이라는 관을 썼는데 왕관 3개가 쌓여 있는 형태이다. 이 삼중관은 서유럽, 더 나아가 전체 가톨릭 세계의 왕과 황제, 대통령, 총리 등의 세속 지도자들보다도 교황의 권위와 권세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였다.

이렇게 중세르네상스 시기에 교황령의 통치권과 세속 국가들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성직 서품권 등으로 교황권이 매우 막강하다보니 교황 자리를 놓고 암투가 벌어지곤 했으며, 이런 암투 끝에 오른 교황들이 성품이나 자질에서 막장인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교황이 주도하여 전 서유럽을 전쟁으로 끌어들였으나 결국 실패로 끝난 십자군 전쟁[16] 그 이후 서유럽을 덮친 흑사병의 창궐로 교황권은 점차 하강하기 시작한다.

3.4. 근세와 오늘날

르네상스 시대에는 강력한 군주가 여차하면 교황을 갈아엎을 수도 있는 수준이 된다. 군주론에서 체자레 보르지아의 실수로 자신에게 해를 입었던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을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황 선출에 권력자들의 입김이 미치는 것도 공공연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도 교황을 정치적 의미에서 종속시켰다.

특히 14세기가 시작되면서 교황권에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납치한 것은 물론 교황 선출에 개입하여 클레멘스 5세를 교황으로 선출시킨 뒤 교황청을 통째로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아비뇽으로 뜯어 옮긴 아비뇽 유수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백년전쟁과도 연관되어 교황의 권한을 빌미로 한 서유럽 국가들 사이의 국제전으로 번졌으며, 동시에 아비뇽 유수를 빌미로 3명의 교황이 난립하는 난장판이 펼쳐지며, 존 위클리프, 얀 후스 등 종교적 개혁을 요구하는 신학자들과 사제들이 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이렇게 14~15세기가 되며 교황권이 급락하게 된 이유는, 이 시기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초기 자본주의와 인문주의가 서유럽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백년전쟁 등의 국제전으로 잉글랜드-웨일스, 프랑스 등의 서유럽 국가들에서 서서히 내셔널리즘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교황과의 사이가 미묘했던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들로 인해 입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때문에 이 시기의 교황들은 예술을 후원하는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 교회의 위상을 높여보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입지 때문에 사치스러운 경향이 생겨나게 되고, 이게 하필이면 위에서 언급한 '권력에 종속된 교황직'과 환상의 시너지를 불러일으켜, 교황들의 인성적 자질은 르네상스 시기에 최악을 달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데르 6세. 이 사람은 일단 교황 선출 과정부터 추기경에게 뇌물을 뿌려 당선되었으며, 교황의 자리에 오른 이후는 뇌물을 받아 먹는 건 약과고, 주교 자리와 추기경 자리를 매점매석 하고 돈세탁까지 해주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악행이란 악행은 다 행했다. 그리고 얀 후스 등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유배를 보내거나 화형에 처하는 등 개혁의 목소리 마저도 꾹꾹 억누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권력의 맛 때문에 교황부터 썩어 들어갔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교회의 부패와 압력은 당시 가장 곤궁한 처지에 놓여있던 북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독일어권과 북유럽 지역들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터지며 오늘날의 개신교가 탄생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리고 개신교의 탄생과 맞물려, 합스부르크 가문과 스페인, 잉글랜드-웨일스 왕국 사이의 정치적 문제와 헨리 8세의 후사 문제까지 결부되며 잉글랜드-웨일스 교회가 통째로 분리되어 나가며 교회의 권위는 완전히 곤두박질 치게 됐다.[17]

아무튼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들 인격은 가톨릭 입장에서도 정말 뼈아픈 흑역사라, 신학자들 역시도 교리적 차원에서 가톨릭 교회를 옹호하는 것과는 별개로, 르네상스 교황들 개개인의 인품이나 자질에 대해서는 거의 쉴드를 안 치고 오히려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여전히 이탈리아 중부에 드넓은 교황령이 존재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한 군대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18]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과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국 시기를 거치며 많이 위축되었고, 1870년 이탈리아 통일로 로마 시내에 있는 바티칸 언덕을 제외한 이탈리아 내에 남아있던 교황령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실질적 권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교황령의 상실이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과거에는 교황이 뭔짓을 해보려 하더라도 반쯤 세속국가인 교황령의 정치적 입장도 고려해야 했고, 교황령에서 비롯된 세속 권력을 노리고 선출 과정과 통치에서 암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교황령이 날아가면서 이제 더이상 눈치보거나 암투를 벌일 필요가 없어진 것. 즉 교황이 세속적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교황령이 날아간 후에는, 교황들의 인품이나 자질이 눈에 띄게 좋은 편이다. 물론 인격적 자질이라는게 많은 경우에 주관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지만, 최소한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들과는 비교를 거부할 수준으로 올라간 셈.

물론 그렇다고 교황을 세속국가 이탈리아에 포로 신세로 놓는 것도 여러 모로 난감한 상황이라, 이후 1929년 라테라노 조약으로 바티칸 시국(市國)을 세우게 된다. 따라서 세속국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되, 다스리는 땅은 미니국가 수준이라 세속적 권위는 없다시피 한 현대적 교황직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세속국가와 교회의 구분을 더 명확히 하게 된다.

이렇게 과거엔 권력에 찌들어 부패하고, 정치적 권력을 악착같이 챙겨왔으나 가톨릭이 정치와 정치적 권력에게 작별을 고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선출된 교황들은 권력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제를 뛰어넘는 권위를 상징하던 삼중관은 공의회 이후 착용하지 않음은 물론 베네딕토 16세 부터는 아예 문장에서까지 삭제되었으며,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던 세디아 제스타토리아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한 이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박물관으로 가버렸고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에 와서는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붉은 모제타를 착용하지 않은 채 즉위식을 하였을 정도.

그러나 지금도 교황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세계의 거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종파, 단 하나의 보편 교회를 유지하는 가톨릭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인 만큼 전 세계 모든 가톨릭 교인이 그 영향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4. 타 교파의 입장

4.1. 개신교

반면 개신교에서는 예수베드로에게 직접적으로 교단을 차리라고 말한 적이 없고 물론 목사들에게도 차리라 말한 적 없다 예수 사후 베드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바 없으며 대부분의 복음 전파는 사도 바오로가 주축으로 행했다는 점과 베드로로마에서 죽었다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교황이라는 존재를 부정한다.(참고글 "로마교황권에 대한 정리)

개신교의 다른 주장으로는 베드로의 고백[19]이 반석이 되어 교회가 세워진 것이지 베드로가 반석이 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가톨릭 측의 입장인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세철학적으로는 '사람'이 아닌 '믿음'이 축복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떡밥이 되기도.

또한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이든 믿음에 내려진 권위이든 간에, 그 권위를 타인이 승계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개신교 측의 주요 논거 중 하나이다.[20]따라서 개신교에서는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 이외에는 없으며, 교황은 교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고 본다[21]

아무튼 교황의 권위의 근거는 가톨릭개신교 신자들에게 키배를 벌이게 하는 좋은 떡밥이므로 언급할 땐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서유럽 등의 주류 교계에서도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하는 경우가 많다.[22]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주장 자체는 애초에 마르틴 루터장 칼뱅, 울리히 츠빙글리는 물론이고 후대의 존 웨슬리(감리교 창시자)도 했던 주장이다. 또한 변형되지 않은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에도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다만 몇몇 음모론이나 종말론에 심하게 현혹, 심취되어 집착하는 몇몇 극단적 세대주의에 빠진 개신교이단에서는 교황을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하고 좀 신빙성 떨어지는 영상과 자료를 올린다. 이런건 가려낼 필요가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민중신학 등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나 신학자들도 가톨릭의 전체주의식 조직 구조가 가지는 보수성과 권위(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원래 개신교가톨릭사제의 존재와 의미에 관련해서 여러 모로 다를 수 있으며 그 권위적 질서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교황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만인사제론'과 '개교회주의'의 특성간 개교회 간[23], 신자들 간 수평적[24]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교황이라는 자리는 이 두 정체성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다.

반면에 가톨릭은 전통과 권위가 존중되는 본래적 의미의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부 비판이 최대한 통제되고 조용히 넘어가게 되는 성향이 강하다. 평신도-성직자 및 상급성직자-하급성직자 간 순명이라든지 교도권이라는 수직적 질서가 강하다는 것. 파문을 비롯한 종교적·영적 제재의 의미도 훨씬 엄격하기도 하고 한 교회에 뿌리 박고 지내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목사와 달리[25] 주기적으로 전출하게 되어있으므로[26]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 신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는 방식으로 조용히 해결하기 쉽다. 교리 해석도 독점되어 있기에 이상한 사이비 종파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27]

이런 면에서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보수성 때문에 기존의 구조와 질서를 깨뜨리기 쉽지 않다는 한계도 지닌다. 한국 가톨릭은 훨씬 사회 참여에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진보적, 타 종교에 개방적인 편인 것은 사실이다[28][29] 하지만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30]와 신부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을 교황청에서 이단시하는 해방신학을 따르는 이단이라고 간주하거나 심지어 종북이라 말하는 등[31] 내부적인 부분에서는 좀 다를 수 있다.

종교개혁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적·교리적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헨리 8세 혼인 무효화 문제를 놓고 갈라졌다.

4.2. 정교회

정교회가톨릭동서 대분열은 신학적, 문화적, 정치적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매우 복잡하다. 정치적인 문제로는 교황의 수위권 논쟁을 들 수 있다. 동로마 제국의 교회에서도 교황(=로마 총대주교)이 총대주교들 중에 으뜸임은 인정하나, 그 으뜸이라는 표현은 명예적인 것으로 교황이 다른 총대주교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권리는 없다고 보았다.

5. 교황 무류지권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의 말은 언제나 옳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 발표된 '교황 무류지권(無謬之權)' 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교회' 자체에 대한 복잡한 신학적 논쟁의 산물이다. 교회 자체에 대한 이해와 정의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지금도 가톨릭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중요한 신학적 논쟁사항이다.

교황이 무류지권을 선언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 교황이 한 사람의 신학자로서가 아닌 세계 교회의 최고 목자이자 영적인 스승으로서 선언한다.[32]
  • 신앙이나 도덕의 문제에만 국한하며 그에 따라 지켜야 할 교리를 차례대로 절차를 밟아 진행한다.
  • 그 발언이 교회의 가르침에 모순이 되어서는 안 된다.[33]
  • 이 가르침은 무류적이다 또는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34]
  • 미리 충실한 조사, 연구, 협의, 기도를 자주 거쳐 충분히 모두가 이해하여 변경의 여지가 없도록 완성한다.
  • 성령이 부여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때 선언문은 '본인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결정을 내려 선언한다' 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또한 무류성의 마지막 조건은 반드시 교황의 선언이 전 세계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교황이 공식적인 순서를 밟아 모든 교회를 향해 선포한 것이 아니라면 그 선언은 무류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즉 교황의 결정이 전부 무류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결정이 무류하다는 것이며 그나마도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무류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으로 '교황무류성이 행사되지 않은 다른 가톨릭의 교리는 종교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 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런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사상인 유일신 사상이나 삼위일체, 단죄와 구원에 관한 교리들조차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극단적인 견해를 취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톨릭 교리의 가장 큰 권한은 성경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으며 그에 대한 유권적 해석의 최종 권한('절대 권한' 이 아님)이 교황에게 있는 것일 뿐이다.

현재 무류권에 의해 인정되는 교리는 아래의 3가지 뿐으로 가톨릭에서 전통적으로 인정해 왔던 교리를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아래 교리들은 오랫동안 가톨릭교회에서 '성전(聖傳)' 으로 전승되어 왔지만 '성경' 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교파에 따라 교리가 크게 다르다. 이 점에 관하여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신앙을 무류권에 근거하여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 449년 교황 레오 1세가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정통 그리스도론 신학을 담은 '토메'(Tome)를 보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만을 강조하는 단성론을 반대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人性)이 함께 있다고 했다. 레오의 토메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공식 신조로 채택되었다.
  • 성모승천교리(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 성모 마리아 사후 그 육체와 영혼이 함께 승천했다는 교리. 다만 예수처럼 자의로 승천(Ascensio Domini)한 게 아니라 구약성경 인물인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들어올려졌다' 는 의미로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한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무류지권을 발동해 발표했다.

교황의 무류지권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미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던 문제에 대해 이쪽이 더 타당하니 이렇게 정하고 더 이상 논하지 말 것을 교황이 도장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 반대하고 일어나면 그 순간 교회와는 분리되어 나간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강력한 권한인 것은 사실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에 퇴위하자 교황무류성의 권위가 모호해지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바티칸 측은 교회법상 교황의 무류성은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지니게 되며 사임한 교황은 더는 도그마를 선포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교황이 선종(善終)한 후 차기 교황이 결정될 때까지의 기간과 마찬가지로,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는 어떠한 주교도 무결성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6. 교황을 둘러싼 이야기

교황이 되는 법.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가톨릭 신자인 남성이 신부주교추기경 코스를 거쳐 교황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6.1. 교황의 국적

대부분의 교황이 프랑스계 아니면 이탈리아계였으나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새로운 역사가 열렸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당시에는 냉전 시대였고 폴란드공산주의 국가였다. 한편 베네딕토 16세독일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비유럽 국가 출신이자 최초의 신세계 국가[35] 출신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왜 '출신' 을 강조하느냐 하면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통치자이므로 국적바티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황이라면 이미 추기경 시절부터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초창기 교황들의 이름은 의외로 대부분 로마식이 아니라 그리스식인데,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인이라는 설명은 거의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교황 연대표는 초창기 교황들 중 7명은 로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출신이고, 베드로 한 사람만 유대인이라고 기술한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가 시몬을 케파라는 이름으로 바꿔주고, 이를 그리스식으로 베드로라고 읽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도 그리스식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리스식으로 개명하는 이런 관행은 제13대 교황 엘레우테리오에 이르러서도 끝나지 않았고, 심지어 중세에도 그리스식 교황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시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리스식 이름을 택하는 관행의 중요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교황이 공식석상에서 발언할 때에는 본인을 단수로 '나' 라고 칭하지 않고 우리라고 칭했다. 유럽에서 군주급 인물이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를 복수로 칭한 전통에서 유래하는데 이를 장엄복수형이라 하여 Majestic plural 또는 Royal we라고 하며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우리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만들자!' 라고 한다거나 히브리어에서는 신을 단수형인 엘이 아닌 엘로힘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동양에서는 그냥 짐(朕)으로 번역하고, 프랑스에서는 왕이 Je가 아닌 Nous로 자칭하며 스페인에는 이런 관습이 없다. 비슷한 전통이 있는 이슬람교쿠란에서도 신은 자신을 '우리' 라고 칭한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이 전통을 깬 사람이 바로 요한 바오로 1세. 자신을 그냥 '나'라고 칭하여 주변인을 놀라게 했다.

6.2. 교황의 선출 과정

새 교황은 전임 교황의 선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15일~20일 이내에 선출된다. 교황의 선출은 세속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다.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다.’는 뜻의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에서 이루어지며 국적이나 출신 등에 관계없이 80살 이하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석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일제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은 매일 두 번의 비(非)공개 투표를 하며, 그 결과는 전통적으로 짚이나 종이를 태워 알리게 되어 있다. 짚은 검은 연기를 내고 종이는 하얀 연기를 내는데, 연기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작은 굴뚝을 통해 경당 정면 오른편에 있는 박공 앞의 한 지점으로 뿜어져 나온다.

이렇듯 교황의 교체는 대부분 전임 교황의 선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교황이 선종했을 때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선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본명을 3번 부르며 은망치로 이마를 3번 두드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방법이 사용된 적은 없고 의사과학적 소견을 받아서 하며 선종이 확인되면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오른손에서 어부의 반지를 떼내 은망치로 표면에 2개의 깊은 십자 흠집을 내어 기능을 정지시키는 의식을 치른다.

교황이 새로 재임할 때 같이 새로운 추기경들을 임명하곤 한다. 그런데 왠지 대대로 정체가 '비공개' 처리된 사람이 꼭 (최소한) 1명씩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기경 문서의 인 펙토레 추기경 참조. 어디서 사는 비밀 추기경인지 공산당에 의해 천주교가 통제되는 중국 혹은 구소련 지역이자 정교회가 뿌리 깊은 러시아 지역 추기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언제나 떡밥만 무성하다. '예전에 비해 말도 안 될 빈도로 언론에 노출될 정도로' 규모 확대일로에다 아예 조직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엑소시즘 파트 담당자라는 소문도 있다.

6.3. 교황과 외교 예절

다른 군주국의 군주를 알현할 때와 마찬가지로 교황을 알현할 때 역시 엄격한 예법과 절차를 준수해야 했다. 한때는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을 맞추었지만 오늘날에는 (특히 세속 국가의 지도자들의 경우) 이렇게까지 격식을 갖추지는 않는다.

복장의 경우 여성은 검은색 긴 소매 옷과 검은색 머릿수건을 착용해야 하나, 교황의 수단과 같은 흰색 옷을 입을 수 있는 특권을 갖는 여성이 있다. 가톨릭 군주국 가운데서도 교황청에 의해 '최고의 가톨릭 군주(Rex Catholicissimus)'로 인정받은 국가의 여왕 또는 왕비만이 이 특권을 가진다. 대통령 등 왕정이 아닌 국가의 수장이나 가톨릭이 아닌 왕가의 여왕·왕비는 이 특권을 부여받을 수 없다.

현재는 스페인 보르본 왕가, 벨기에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룩셈부르크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 모나코 그리말디 가문,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 등 5개 왕가만이 보유하고 있는 특권으로[36], 2016년 기준으로 스페인의 레티시아 왕비와 소피아 왕대비, 벨기에의 마틸다 왕비와 파올라 왕대비, 룩셈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 이탈리아 마리아나 공비[37], 모나코의 샤를린 공비 등 7명이 이 특권을 갖고 있다. 관련기사

6.4. 교황 관저

4세기부터 교황들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인근에 있는 라테라노 궁전에서 기거했지만 아비뇽 유수가 종식된 이후에는 바티칸사도 궁전에 거처해왔다. 로마 시내의 퀴리날레 언덕에도 교황 소유의 궁전이 있었지만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사보이 왕가가 몰수했고 현재는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로 바뀌었다. 한편 로마 교구의 주교좌, 즉 교황좌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있다.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교황들이 라테라노 궁전을 1천년 가까이 관저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6.5. 신비주의적 떡밥들

성 말라키 오모르라는 12세기의 수도자라틴어 두세 단어로 112명의 교황을 예언했다고 전해지는 문서가 있는데 이 예언[38]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태양의 신고(辛苦)' 혹은 '일식' 은 요한 바오로 2세, '올리브의 영광' 은 베네딕토 16세라고 하며 마지막 112번째 교황은 '로마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식 기간에 태어나 일식 기간에 사망했으며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올리브.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다. 예언을 끼워맞추기 위해 억지로 대립교황[39]들까지 끌어다 붙였다는 점에서 이미 신뢰도는 크게 떨어진다.

물론 성 비오 10세가 1909년에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며 남긴 말, "아아, 나인지 나의 후계자인지는 모르나 그가 교황좌에서 내려와 로마를 떠날 때 그는 형제들의 시체를 밟고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와 같은 무시무시한 예언이 2012년 종말론과 맞물려 화제가 되었지만 이 일화는 위 예언과는 무관한 교황의 암살을 예언한 파티마의 성모 사건의 제3예언[40]과 관련된 일화다.

이나마도 실신한 교황이 위의 비오 10세를 포함해 비오 12세라든지 바오로 6세라는 등 자료마다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애초에 제 1, 2예언보다 공개가 한참 늦었던 제 3예언을 둘러싸고 핵전쟁 예고라는 둥 각종 음모론이나 추측이 난무했으며 예언이 모두 공개된 시점에도 그렇게 사소한 예언을 교황청이 100년 가까이 일급 기밀로 숨겼을 리 없다며 많은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조직의 수장이 암살당할 것을 예고한 예언이 과연 사소한 것일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하튼 상황이 이러하니 이와 관련해서 교회의 공적 발표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자료는 거의 없다.

6.6. 교황과 관련된 통계

1. 역사상 266명[41]의 교황과 39명의 대립교황[42]이 있었다.

2. 78명의 교황이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대립교황 중에서도 2명[43]이 시성되었다. 교황 중 복자로 시복된 경우는 8명이다.

3. 출신지별로는 이탈리아 출신이 177명[44], 그리스 출신 11명, 독일 출신이 7명, 시리아 출신이 6명, 시칠리아 출신이 3명, 사르데냐 출신이 2명, 스페인 출신이 2명, 아프리카 출신이 2명, 영국,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폴란드 출신이 1명이다.

3. 특이한 직분 출신으로는 수도자 출신이 22명, 탁발 수도자 출신이 16명, 평신도가 2명, 은수자(수도원이 아닌 혼자서 은둔해서 수도하는 수도자)가 1명이었다.

4. 31명이 순교했고, 5명이 사임, 5명이 투옥, 4명이 살해, 1명이 암살, 1명이 면직, 1명이 대중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죽었다.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은 사람이 1명, 1명은 무너진 지붕에 깔려 죽기도 하였다. 사후 부관참시당한 경우도 1명이 있다.

7. 교황에게 부여되는 것들

7.1. 직함

역사가 오래된 직위답게 호칭이 많다.「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 따른 교황의 공식 직함은 다음과 같다.

  • 로마주교(Episcopus Romanus): 가장 기본적인 직위. 의외로 로마 교구는 대교구도 아닌 그냥 교구이다.
  • 으뜸 사도(베드로)의 후계자(Successor principis apostolorum)
  • 전체 교회의 최고 주교(Caput universalis ecclesiae)
  • 보편 교회의 최고 대사제(Summus Pontifex Ecclesiae Universalis))
  • 서방 교회의 총대주교(Patriarcha Occidentis): 2008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동·서방 교회 화해를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연감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이 직함을 교황청의 공식 문서에 사용하는 것을 중지했을 따름이고, 교황이 고대로부터 전해온 5대 총대주교구의 하나인 로마의 총대주교라는 사실에는 전체 보편교회 내에서 누구도 이의가 없다.
  • 로마 관구의 관구장 대주교(Archiepiscopus Metropolitanae Romae): 로마 교구 및 주변 7개 교구관할. 주변 교구는 6개이며 현직 주교가 추기경으로써 임명된다. 오스티아 교구는 실존지역교구가 아니므로 주변 6교구장 중 선임이 겸임한다.
  • 바티칸 시국의 원수(Princeps sui iuris Civitatis Vaticanae)
  •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 대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교황들의 서명으로 많이 애용되는 명칭이다.

교황청 연감에 수록되어있지는 않지만 관례적으로 현재(베네딕토 16세)까지 사용되는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대승원장(Pontifex Maximus) : 직역하면 '최고 제사장'. 375년까지 로마황제의 칭호였으나 그라티아누스의 포기선언 후 가톨릭에서 채택.

요한 바오로 2세 기념주화 PONT. MAX.에 주목

7.2. 교통편

이탈리아의 철도사업자인 '트레니탈리아' 는 3~4량의 교황 전용 객차를 보유하고 있고 이탈리아의 국영 여객항공회사인 '알리탈리아(ALitalia)' 는 여객기를 전세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며 이탈리아 공군은 H-3D 31-2번기를 Elicottero Del Papa(교황의 헬기)라고 부르며 운영 중이다. 아마도 이탈리아 공군이 H-3 시킹 시리즈를 AW101 시리즈로 통일 운영할 시에는 아무래도 교황 전용 헬기 역시 바뀔 것으로 추정된다.

육로를 이용한 대외 활동을 할 때는 전용 차량에 타고 이동한다. 흔히 영화 같은 데서 교황이 나올 때 특이한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것. 이 교황 전용 차량은 파파모빌(Papamobile)로 불리고 있으며 방탄 소재로 되어있다. 파파모빌의 차량번호는 SCV 1.

국내에서 <둘이 합쳐 아이큐 100>으로 개봉된 <Le Comiche>라는 이탈리아산 논스톱 코미디 영화에도 교황이 타고 다니는 파파모빌이 등장하는데, 난데없이 난입한 두 주인공 때문에 사막 랠리 경주에 휘말려서 엉뚱하게 랠리 우승을 하기도 한다.

교황에게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과 같은 전용기가 없다. 가톨릭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자 세속적으로는 로마 안에 있는 도시국가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한 교황에게 전용기가 없다는 것은 다소 뜻밖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교황청은 그동안 교황의 외국 방문 때마다 민간 항공기를 빌려 사용해 왔다.

교황은 관례로 로마에서 출국할 때는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리탈리아 항공을 임차하고 외국 방문 뒤 돌아올 때는 방문국의 국적기를 빌려왔다. 가령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는, 알리탈리아 항공의 에어버스 330 전세기로 한국을 찾고 로마로 귀국할 때는 대한항공의 보잉 777기를 이용했다.

교황이 타는 항공기는 에어포스 원과 같은 국가 정상의 전용기가 아니라 민간 여객기이다 보니 방어용 무기 등이 전혀 장착돼 있지 않고 전세기에 지휘통제센터도 없다. 교황이 탔다는 걸 알리는 건 항공사 로고 아래 교황의 문장 뿐이다. 게다가 교황의 좌석도 일등석이 아니라 이보다 등급이 한 단계 낮은 비즈니스다. 알리탈리아 항공 여객기에는 일등석이 없이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석만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황이 누리는 특권이라면 비즈니스석 첫 줄에 혼자 앉는 것뿐이다.

영미권 언론들은 교황이 타는 비행기를 '셰퍼드 원'(Shepherd One)이라고 부르는데, 성경 구절의 '착한 목자'[45]라는 뜻의 셰퍼드와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8.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의 호칭

하지만 로마 교구에서만 교황의 호칭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총대주교 역시 아프리카 교회의 교황으로서의 명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다. 처음 사용한 사람은 13대 대주교 헤라클레우스 때부터이며 가톨릭교회 역시 이 명칭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자신들을 적법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의 계승자임을 선포한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의 콥트교회의 최고 수장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들이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교회나 콥트교 내에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들이 가톨릭의 교황처럼 특별히 주교들의 으뜸가는 위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프리카 지역 내에서의 관리자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교황이라는 말보다는 "아버지"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복음사가 마르코의 후계자이자 아프리카 전 교회의 총대주교답게 이쪽도 만만치 않게 명칭이 길다.[46]

  • 정교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 거룩한 신부이자 최고 목자
    •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 리비아, 펜타폴리스, 에티오피아, 전 이집트 그리고 전 아프리카의 아버지-총대주교
    • 신부 중의 신부
    • 목자 중의 목자
    • 대사제 중의 대사제
    • 13번째 사도
    • 보편교회의 재판관(Ecumenical Judge)
  • 오리엔트 정교회 콥트교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 교구, 대 카이로 관구의 아버지-대주교
    •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거룩한 정통 사도좌로써 이집트, 리비아, 펜타폴리스, 누비아, 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전 아프리카의 총대주교
    • 이집트관구의 수도대주교
    • 북아메리카의 수도대주교
    • 이집트, 펜타폴리스, 누비아, 수단의 수석주교
    • 복음사가이며 사도 순교자인 성 마르코의 후계자
    • 신부 중의 신부
    • 목자 중의 목자
    • 모든 대사제들의 대사제
    • 알렉산드리아 신학교 학장
    • 사도 중의 13번째
    •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오는 교회의 보편 재판관
    •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오는 교회와 정통 신앙의 기둥이자 수호자

9. 창작물 속의 교황

교황/창작물 문서 참조.

10. 관련 문서

11.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교황들

11.1. 실존인물

문서가 없는 모든 교황의 목록에 대해서는 역대 교황 문서 참조.

11.2. 가상인물

작품 - 캐릭터 순.


  1. [1] 일본 가톨릭 교계 및 신자 사이에서는 교황(敎皇)이란 명칭을 사용하지만, 일반(비신자 및 언론)에서는 로마 법왕(ローマ法王) 아니면 줄여서 법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2. [2] 영어에서 교황의 형용사 표현은 papal인데 이게 바로 papa에서 온 것이다.
  3. [3] Holy Father는 교황이라는 의미 말고도 성부 하느님(야훼)를 의미하기도 한다.
  4. [4] 당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5. [5] 이 점은 '교종'도 마찬가지다.
  6. [6] 일본 교회에서 교황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는 정변이나 쿠데타로 나라가 바뀌지 않는 한 한 번 등록한 것은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허락을 안 해줘서 아직도 교황으로 못 바꾸고 로마 법왕이라는 명칭이 각종 미디어에서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혹시 소문대로 일본 황실과 관계가 있는 '황(皇)'을 사용하는 敎皇의 호칭을 피하려 한 거라면 중화권처럼 교종이라고 호칭해도 된다만
  7. [7] 당시 로마 제국의 5대 교구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이렇게 5개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모두 다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로마제국의 대도시들이었다. 다만 예루살렘이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는 이슬람이 등장한지 얼마 안 되어 이슬람 제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랜 기간 잔존한 교구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었다.
  8. [8] 사실 이 시기는 동로마제국이 동고트 족 등 적대적 이민족들로부터 군사적으로 로마를 지켜주던 시기라 황제의 권위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9. [9] 오늘날의 프랑스, 베네룩스, 독일, 스위스 지역을 영역으로 삼았다.
  10. [10] 오늘날의 잉글랜드 지역을 영역으로 삼았다.
  11. [11] 특히 8세기 경부터 맺어진 로마 교회와 프랑크의 관계가 중요한데, 이탈리아 근방의 게르만 일파인 롬바르드족 같은 경우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잡고자하는 정치적 문제로 로마 교회에 적대적이었다. 롬바르드족을 물리치고 교황에게 동로마제국의 총독부가 있던 라벤냐를 교황령으로 봉헌한 게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였다.
  12. [12] 여담으로비잔티움 대주교는 계속 (동)로마 황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동방 정교회는 가톨릭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수장으로서의 면모가 약하다. 때문에 정교회권에서는 종교에서도 세속 군주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으며, 세속 군주 혹은 지도자가 실질적 수장 역할을 맡았다. 이런 체제를 잘 보여주는 게 러시아 정교회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아닌 러시아 대통령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분석도 있을 정도.
  13. [13] 우리식으로 하면 아빠 정도?
  14. [14] 영어의 pope가 아닌 라틴어 papa에서 나온 러시아어 단어이다.
  15. [15] 다만 이건 papa에 대한 것이고, 아버지라는 의미의 존칭들은 21세기까지도 교황이 아닌 사람들에게 계속 사용되고 있다. 베네딕도회의 장상이 아빠스로 불린다거나, 신부에 대한 영어 존칭이 father라던가. 물론 father는 성부 하느님에 대해서도 쓰이는 표현이다.
  16. [16] 여담으로 이 십자군 전쟁으로 서유럽 보편 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20세기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화해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러시아와 그리스에는 특히 제 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이 저지른 만행에 치를 떨며 화해에 반대하는 사제들과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있을 정도.
  17. [17] 사실상 처음으로 서유럽의 주요 가톨릭 왕국 하나가 통째로 갈라져 나간 사건이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18. [18] 그냥 '존재하고' 정도가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5대 강국 가운데 하나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다른 넷은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이 시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중부 이탈리아에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넓은 영토를 보유했기 때문. 따라서 이 시기의 교황들은 성직자로서는 물론 정치가로서의 역할도 해야 했으며, 상술된 바와 같이 '워낙 막장인 교황들이 많았던 점이 비판받는' 것도 성직자인 동시에 정치가여야만 했다는 점을 보지 않고 '교황은 당연히 성직자 아님? 근데 엉뚱한 짓만 하네?' 라는 생각만으로 평가하기 때문.
  19. [19]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태오 복음서 16장 16절)'.
  20. [20] 특히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는 '사도'라는 직분이 초대교회 이후로는 사라진 직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21. [21]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도 천명되어 있는 내용
  22. [22] 개신교 교파 중 그나마 가톨릭과 사이과 원만한 루터교 중 보수 교단들에서도 이렇게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23. [23] 국교회를 의미할 수도 있고, 교단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교회 하나하나의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해석에 따라 다르다. 확실한 것은 가톨릭의 수직적인 구조를 거부한다는 점.
  24. [24] 심지어 사제직을 인정하는 성공회조차 만인사제론을 받아들인다.
  25. [25] 이것도 나라마다 다르다. 네덜란드등에서는목사의 임기가 정해져 있어서 목사들의 이동이 한국 등지보다 상당히 많은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교단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나, 한국 개신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회의 경우, 원론적으로 교회 장로들이 합의를 통해 설교자(목사)를 해임하고 다른 설교자를 초빙하는 것도 가능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행해진다. 또한, 교회 개척 등 다른 이유로 다른 교회로 옮기는 목사들도 상당히 많고.다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 교회에 목사가 오래 머무는것은 사실이긴 하다
  26. [26] 사실 이것도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다. 가령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한 성당에 꽤 오래 머무는 사제들도 있다
  27. [27] 물론 가톨릭에서 사이비 종파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드물긴 해도 있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베이사이드 성모와 국내의 마리아의 구원방주 문서를 참조.
  28. [28] 실제로 가톨릭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한국 천주교는 군사독재 시절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한 투쟁을 거치며 그러한 성향이 더 두드러진다.
  29. [29] 물론 천주교도 교구별로 성향 차이가 있다. 대구대교구 측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하고, 광주대교구는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편.
  30. [30]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 등
  31. [31] 물론 이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은 좀 심각한 사람들로, 가톨릭 내부에서 비판받는 이들이다. 진보파 성직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불호를 떠나 가톨릭 교리상 그들에 대한 비난은 교도권에 대한 불순명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
  32. [32] 교황 개인의 신학적 견해가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교황 개인은 다르게 생각할지라도 많은 신학자들이나 보편적 신앙심에 근거하여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33. [33] 교회의 가르침이란 성경을 포함하여 교회에서 가르치던 사도적이며 역사적인 전통. 즉 교황이 별다른 근거 없이 마음대로 교리를 뒤엎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34. [34]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크게 상관 없거나 연옥림보처럼 신학적으로 아직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황이 마음대로 무류지권을 주장할 수 없다.
  35. [35] 일반적으로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그 전에 유럽과 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고 있었느냐를 놓고 구분한 기준이다. 이에 따르면 '구세계 - 아프로유라시아, 신세계 - 아메리카, 오세아니아'가 된다. 신세계의 경우 역사가 짧고 대부분 구세계 국가들의 식민지였고, 구세계로부터의 이주자들에 의해 건설된 세계였다는 특징 때문에, 출신을 구분하는데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된다.
  36. [36] 이 중 이탈리아만 군주제가 폐지(1946년)되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21세기 들어서야 이 특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레이스 켈리가 교황을 알현할 때 검은색 옷을 착용했다.
  37. [37] 이탈리아 (사실상의) 마지막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손자(정식 마지막 국왕인 움베르토 2세의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왕세자(1937~)의 아내.
  38. [38] 112 로마베드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많은 환난 속에 들을 치리라, 그때가 지나면 일곱 언덕 위의 도시는 파괴되고 두려운 심판자가 당신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끝.
  39. [39] 정통성이 없어서 정식 교황이 아닌 교황. 간혹 이 대립교황 때문에 교황의 역사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으며 이 탓인지 참고 차원에서 대립교황 명단이 따로 있다고 한다.
  40. [40] 제1예언은 양차 세계대전을, 제2예언은 공산주의의 대두와 몰락을 예언하였으며 제3 예언은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 사건으로 현실화되었다. 교회에서는 예고된 시련을 성모 마리아의 충고에 따라 신심과 영성으로 극복해낸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요한 바오로 2세의 품에 마침 성모 마리아의 상본이 있었던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박혔던 총알을 파티마의 성모에게 봉헌했다.
  41. [41] 베네딕토 9세가 퇴위와 복위를 반복하면서 3선을 하는 바람에 실제로는 263명이다.
  42. [42] 콘클라베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교황직을 주장하거나 수행한 사람.
  43. [43] 히폴리토, 펠릭스 2세.
  44. [44] 그 중 로마 출신만 77명이다.
  45. [45]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 요한 복음서 10장 11-16절
  46. [46] 지역 교회의 최고재치권을 가진 총대주교나 대주교들은 이렇게 관할 구역이나 직함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 관례이다.
  47. [47] 대주교에서 마지막 권에서는 교황이 된다!
  48. [48] 세이어 교단의 교황으로 은의 현자 최고위인 은의 수호자 중 한 명이다.
  49. [49] 대주교였으나 교황 사후 엔딩에서 차기 교황이 된다.
  50. [50] 신전 총책임자이며 신전의 최고 권력자. 작중 정식 명칭은 신관장이지만 영어 표기는 Pope로 교황과 같다.
  51. [51] 항목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작중 정식 명칭은 교제.
  52. [52] 애니메이션에만 등장한다.
  53. [53] 시온을 암살한 후 시온인 척 위장해 교황 직위를 몰래 찬탈했다.
  54. [54] 에피소드 G.A 65화 말미에서 교황의 법의와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으며, 그 뒤 정체를 드러내면서 교황의 임무를 명받았다고 공언했다. 게다가 교황 직위를 찬탈한 형과는 달리 이쪽은 성역에서 공인받은 정식 교황이다!!!
  55. [55] 본편에서도 시온에게 다음 대 교황으로 지명받았었으며, 에피소드 G.A에서는 평행세계의 아이올로스가 로스트 세인트들의 수장 카오스 아테나를 섬기는 대립교황으로 등장한다.
  56. [56] 정확히는 교황대행. 동생인 세이지가 타나토스를 봉인하고 죽은 후 그를 대신해 교황의 직무를 물려받았다. 다만 쌍둥이 형제인데다 교황의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대다수의 세인트나 잡병은 교황이 바뀌었단 걸 모른다.
  57. [57] 아테나를 납치한 후 아테나의 대역을 내세우며 대교황이라 자칭했다.
  58. [58] 최종화에서 다른 골드 세인트들에게 추대받았다.
  59. [59] 엄밀히 말하자면 무장 교단 봉기 이후 실제 교황보다는 권세가 훨씬 약하고, 성공회캔터베리 대주교 정도의 위치이다
  60. [60] 작가의 사망으로 쓰여지지 않은 스토리에서 동생 알렉산드로 18세가 사망한 이후 교황으로 즉위한다. 교황명의 경우 생전에 작가가 언급한적이 없어서 불명.
  61. [61] 작중 정식 명칭은 성황.
  62. [62] 게임 <인피니트 덴드로그램> 내에서의 직업이 [여교황]이며, 실제 현실에서도 종교 단체 《월세의 회》의 교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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