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군주의 치세에 따른 호칭 분류

암군


(부정)

군주


(긍정)

성군

폭군

명군

전 세계의 군주들.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찍은 사진. 가운데가 엘리자베스 2세다.

http://img.theqoo.net/img/QgaAy.jpg

미래의 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유럽의 어린 왕족들[1]

君主 / Lord[2], Monarch

1. 개요
2. 군주와 책임
3. 군주정 국가들
4. 군주정 폐지
5. 영연방 소속 국가들의 군주정 폐지
8. 왕 없는 왕국
9. 왕국 없는 왕
10. 관련 문서

1. 개요

"백성은 곧 나를 일컬음이라."

- 조지 5세

한 나라를 다스리는 세습제 최고 통치자. 군주제 국가국가원수이다. 일반적으로 이라고도 하지만 그럴 경우 황제이거나 공국대공인 경우 등을 포괄하지 못하여 본 문서로 이관하였다.

황궁 혹은 왕궁에서 살며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리는 정점의 지위란 것이 일반적인 이미지. 예부터 수많은 권력자들과 야심가들의 궁극적인 목표였으며, 이 자리에 오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무한한 도취감과 희열을 안겨주는 그야말로 마성의 매력을 가진 직책이다. 주로 왕관, 옥좌, 옥새 등으로 상징된다. 순우리말 표기는 임금.

군주라는 것 자체가 특정 무리들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집단에서 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며 구성원인 국민들을 다스리고 국가의 보호하에 편안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직업이며 국가의 NO.1이다. 그래서 군주는 해당국가에서 최고로 화려하게 지어진 건축물인 궁궐에서 살며 음식, 옷, 수입 등등 그 어떤 것도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최고가 아닌 게 없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강력한 군주권을 구축한 군주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군주는 한명인데 신하는 여럿이니까. 국가 수뇌부에서 다수를 차지한 관료, 귀족들이 연계해서 군주를 견제하면 왕권은 놀라울 정도로 무력해진다. 이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친위세력을 양성하고 종교, 학문 등의 힘을 빌려 시스템을 강화하지만 결국 머릿수 앞에서는 답이 없다. 조금만 삐끗하면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 권위가 약화되고 심할 경우 허수아비로 전락한다던가 아예 퇴위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권력의 중추에 있는 자리이니만큼 국가정책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군주권이 아무리 약해져도 아예 막장이 되지 않는 한 신하 한 명 한 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을 갖는다. 또한 군주 하나이므로 그나마 신권이 강할 때와는 달리 여러 이익집단의 사정이라던가에 덜 휘말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추진이 가능한 힘이 있으므로 신권 위주 일 때보다 무언가가 많이 추진 될 수 있다.

그리고 약해져도 상징적인 힘이라도 강한 경우가 있는데 조선만 해도 한창 막장테크를 타고있던 세도정치 말기였던 철종 시기조차도 군주가 제대로 폭발하자 안동김씨의 수장이 벌벌 떨어야 했다.

백성들의 지지를 얻을 경우 힘이 강해진다. 어차피 신권과는 어느 한 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이 약해지는 구조로 죽을 때까지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데 백성들의 지지가 있으면 바로 이 신권을 견제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따라서 관료들의 장막을 뚫고 민생을 어루만져 줄 능력이 되는 군주는 신하들과의 파워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신권이라는 게 여러 신하들에게 나뉘어져 있다 보니 오히려 신하들이 적절히 분열되면 서로 군주에 대한 충성 경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서로가 정적이고 나눠먹기 힘든 이권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주가 어지간히 막장이 아닌 이상 신하들이 죄다 단결해서 군주에 대항하는 구도 자체가 보기 힘든 것. 바로 이런 케이스가 조선선조였다. 다만 신하들이 위 아 더 월드로 일단 군주권부터 깍고 보자라는 식으로 가면 답이 없어지긴 마찬가지다.

서구의 역사에서는 강력한 힘을 가지던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난 뒤 대혼란을 겪고 사방에 깔린 토호 들 가운데 힘이 강한 자가 조금씩 조금씩 힘을 길러 주도권을 잡으면서 발전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비교적 강한 군주권이 구축되었던 16~18세기를 절대왕정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의 군주들은 중상주의, 상비군, 왕권신수설을 무기로 군주권 강화에 성공하여 중앙집권 시스템을 만들어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그것을 마련한 국가들은 대개 서구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사의 경우 왕권이 강했던 시기에 국가발전이 많이 이루어진 편이고 왕권이 약해졌을 때에는 각 이익집단들의 아귀다툼으로 약해졌던 시기가 있다. 많은 예를 들 것도 없이 500년대 중반의 고구려나 조선의 세도정치라는 크고 훌륭한 예(...)가 있다. 작은 집단 여러 개 보단 큰 집단 하나가 더 강력하고 발전의 여지도 크며 위기 시 대응능력이 좋을 수 밖에 없으며 [3] 왕이 약해지면 중앙권력이 약해지고 그러면 여러 집단이 자기이익만을 우선 시 하는 것을 제지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큰 집단 하나 때보다는 당장 가용한 예산/인력/기타 등이 적어져서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내놓는 것은 쇠퇴해진다(당장 구 서로마만 하더라도...). 작은 집단 여러 개가 내놓는 활동도 큰 집단 하나보다는 못한 경우가 많고번영하더라도 그것은 특정분야 특화 등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손잡고 협업하는 것은 말은 몰라도 과거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쉬운 것이 아니다. 당장 현대의 무기개발도 미국, 러시아, 그리고 최근에 들어온 중국을 제외한다면 인력/자금/기술,규모의 경제 면에서 한계에 달해 협업을 하려고 하지만 서로의 이익때문에 파토가 나거나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군주들이 얼굴마담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이 분야의 끝판왕은 사유재산조차 가칠 권리가 없는 일본덴노.

놀고 먹는 것만 같아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놀고 먹기만 하다 제 명줄에 못 간 군주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일종의 예외 상황, 그러니까 군주가 또라이라서 그런거고…

온갖 교육, 결제, 면담 등등은 기본이고 국가의 일을 대부분 혼자 관리 책임하는 자리라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며[4], 당연히 과로사한 군주의 숫자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윗자리에서 온갖막장 상황을 다 겪다보니 정신이 피폐해지고 홧병으로 죽어나가는 도 수두룩하다. 뭐 절대적인 왕권을 누리는 국가라면 이론상으로는 놀고 먹는 것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랬던 왕도 있기야 있지만) 실제로는 일국의 수장이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라지게 되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까지 군주들을 왕이라 불렀으며 덕치를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현시창. 패도를 중시하는 패왕이 대세였다. 그 때는 중국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군주는 문화권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문관의 업무와 무관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신분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하기도 한다. 한국사에서는 전란이 잦았던 삼국시대의 군주들은 친정의 사례가 많았으며, 세계사적으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군주로서 전쟁터를 누빈 대표적인 인물. 때문에 군주는 의복도 여러 가지다. 평상복과 무도회에 참여하기 위한 파티복에 심지어는 전술한 바와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터를 누벼야 하기 때문에 갑옷도 존재한다. 때문에 왕은 문무를 겸비한 능력이 요구된다. 다만 조선시대처럼 군주가 친정하지 않는[5] 경우도 있다.

자신의 선택 하나에 수많은 국민들 운명이 왔다갔다 하므로 책임감과 의무감, 도덕심은 군주에게 있어야 하는 덕목이다. 물론 책임감과 의무감, 도덕심 등 규범적인 측면에서의 덕목'만' 갖추었다고 해서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는 없기에, 오히려 카리스마나 재력, 인맥 등의 기량'도' 군주로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참고로 '20세기는 군주들의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20세기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한국,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러시아, 중국, 이집트 등 웬만한 국가의 왕조들이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 1910년대에는[6] 세계대전에 앞서 대한제국이 경술국치에 의해 무너지고,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졌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오스만투르크의 황제들이 죄다 퇴출당했고[7][8]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등 동부 유럽의 왕들이 집단 퇴장당했다. 5~60년대를 지나면서는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계 왕들이 쿠데타로 줄줄이 쫓겨났고 1973년에 아프가니스탄, 1974년에 에티오피아, 1979년에 이란에서 군주정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전세계의 군주정들은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아프리카, 중동의 왕조, 동아시아의 왕조, 중동부 유럽, 아메리카의 왕조들은 거의 다 전멸해버렸다.

지고한 신분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서브컬처 등에서는 역으로 신분 차이를 통한 스토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예, 거지, 떠돌이, 부랑자 같은 최하위 신분과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리니지의 반왕 켄 라우헬. '천한 노예로서 태어나 왕으로서 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캐릭터이며, 농노에서 왕으로 순식간에 신분 업그레이드를 했기 때문인지 작중에서 표현되는 왕위에 대한 집착과 권력욕은 실로 무서울 정도.[9]

2. 군주와 책임

군주는 국가의 권한이 집중된 자리라 그만큼 책임이 집중된 자리이다. 특히 나라나 인적역량, 유대감, 기타 등의 요소가 뒷받침 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군주는 나라를 통합하고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었으며 틈을 보이면 국가나 왕조유지가 매우 힘들어졌었다. 특히 고대에는 서로 가까워질 관계가 없었고 서로 관계가 없이 사분오열되어져서 살고있던 세력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들을 자신과 자신들 집단에게 충성, 최소 복종하게 만들며 그들을 자신들의 집단과 합쳐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었다. 당연히 주(主)세력이 아닌 집단들은 갈아엎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라기 쉬운데, 자기들 머리위에 있는 군주와 주세력들은 자기들과는 별 연고도 없기 때문. 심지어 주세력 내에서도 왕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왕을 해보고 싶은 자들이 있어서 군주는 내외를 전부 경계하면서 국가를 경영해야 했다.

우선 맹자의 언급을 보자.

만장이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임금에 이르러 덕이 쇠퇴해서 어진 이에게 천자의 지위를 물려주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하늘이 현자에게 주려고 하면 현자에게 주는 것이고, 하늘이 임금의 자식에게 주려고 하면 자식에게 주는 것이다. 엣날에 순임근은 우를 하늘에 천거하고 17년 후에 돌아가셨다. 우가 삼년상을 마치고 양성으로 순임금의 아들을 피해가자 천하의 백성들(天下之民)이 그를 따라 오기를 마치 요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요임금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을 따랐던 것처럼 하였다.

우임금이 재상 익을 천거하고 7년 뒤에 돌아가셨는데 익이 3년상을 마치고 기산의 북쪽으로 피해갔으나 조근하고 소송하는 사람들이 익에게로 가지 않고 우임금의 아들인 계에게로 가면서 말하기를, '우리 임금의 자식이다'고 했다.

-<맹자> 만장 상

물론 맹자는 혁명론의 예에서 들어나듯이 당대의 주요한 관념과는 사상이 이질적이라 이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나라가 힘있는 자가 만들고, 개척하고, 빼앗는 것이 횡횡하는 시대였고 맹자는 당시 기준으로도 주위와는 사상이 매우 다른 사상가였다.

한국사의 경우도, <삼국유사>의 신라 건국설화는 경주에 본래 있던 여섯 마을이 하나로 통합될려는 시기에 왕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들이 위로 백성들을 다스릴 만한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어찌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를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하지 않을 것이랴!”

<삼국유사> 1권 기이편

삼국유사의 이러한 일화는, 최소한 대외적 차원에서라도 군주가 단순히 높으신 분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특수한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성경사무엘기에서도 왕이 탄생할 때의 일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이 왕정을 도입할때를 배경으로 사무엘과 원로들의 대화가 진행된다.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청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런 짓을 저질러 왔는데, 그 모든 짓을 너한테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어라.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기> 상권 8장

여기서는 왕으로 대표되는 세속세력과 야훼로 대표되는 종교세력간의 알력이 보이는데(대표적으로 그들은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 ) 종교세력이 그러면 너희들는 신의 품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등의 말을 하며 세속세력이 커지는 것을 싫어했지만 결국은 현실의 요구에 의해 왕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즉, 종교세력이 세속세력에게 한 수 접어주는 것.

물론 당연하게 만들면 끝이 아니라서 군주는 항상 나라에 내란과 내분이 일어날 확률과 싸우면서 살아야 했다. 예를 들어 흉년이 들면 왕이 부덕해서 그렇다더라~라는 말이 자주 퍼지고 왕은 자신이 부덕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조선의 경우나 축출되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부여 왕의 경우 등 왕에게 틈이 보이면 공격을 해댔다.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였는데 로마제국 이후 각지에서 힘있는 자들이 할거해서 자리를 잡고 힘있는 사람 밑에서 이합집산을 대놓고 했던 유럽은 온갖 궁정음모와 반란 등이 난무했고 이를 제어하고 각종 조치를 취하고 종교를 끌여들여 왕권신수설에까지 호소하며 다스리려 하였다. 이러한 왕권신수설은 심지어 영국 내전 당시 의회파에서마저도 당연하게 여겨졌으나, 이러한 왕권신수설 마저도 종교개혁 시기에는 각 지역의 소수 종파들이 왕실을 공격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왕권신수설은 '주님에게 통치권을 받은 자'를 왕으로 옹호하는 사상이기에, '주님에게 통치권을 받은'이라는 전제가 깨어진다면 그 사람을 왕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위그노들, 엘리자베스 1세 이후의 잉글랜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그들의 군주는 도저히 주님에게 통치권을 받은 왕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맹자의 혁명론과도 어느정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맹자의 혁명론은 천명에 의해 권력을 부여 받은 왕을 옹호하는데도, 천명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권력자를 축출하는데도 모두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군주정 국가들

영연방, 입헌군주국, 전제군주국, 왕국, 여왕국, 제국, 공국 문서를 참조.

4. 군주정 폐지

  • 멕시코 1824년 산타 안나의 쿠데타로 아구스틴 1세 퇴위, 1867년의 막시말리아노 1세가 베니토 후아레즈에게 처형당한 것까지 치자면 1867년.
  • 인도 공화국 1857년 무굴제국이 영국에 의해 붕괴, 바하두르 샤 2세가 미얀마로 귀양. 인도제국 시기까지 친다면 1947년까지. 하지만 인도의 군주제 자체는 1950년까지 유지되었으나 영연방 가입 조건에서 군주제 유지가 빠지면서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 프랑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로 나폴레옹 3세 퇴위.
  • 미얀마 1885년 영국에 의해 꼰바웅 왕조가 함락되고 티바 왕 퇴위.
  • 브라질 제국 1889년 내각회의에 따라 페드루 2세 퇴위.
  • 하와이 1893년 백인들의 반란으로 릴리우오칼라니 여왕 퇴위.
  • 대한제국 1910년 일본에 합병됨으로 순종 퇴위. 일본 제국 산하의 창덕궁 이왕 역시 1945년 신적강하와 함께 폐지.
  • 포르투갈 1910년 혁명으로 마누엘 2세 퇴위.
  • 청나라(중국) 1912년 선통제 퇴위. 1917년 복벽운동으로 잠깐 복위하나 의미는 없다. 1915년 위안스카이의 중화제국 선포는 쳐줘야 하나?
  • 러시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 퇴위.
  • 독일 1918년 킬 항구 수병 반란을 시작으로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빌헬름 2세 퇴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918년 1차 대전 패배로 카를 1세 퇴위.
  • 핀란드 1919년에 독일의 지원으로 잠시 왕정이 세워졌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이 패배하면서 곧 붕괴되었다.
  • 오스만 투르크 제국 1922년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제정 폐지, 메흐메트 6세 퇴위. 1924년에는 칼리프 제도도 페지.
  • 몽골 1922년 공산화로 복드 칸 퇴위.
  • 유고슬라비아 1941년 추축국의 침공으로 페타르 2세 망명, 이후 티토가 권력을 잡으면서 퇴위 확정.
  • 아일랜드 1937년 군주정 폐지. 조지 6세는 아일랜드의 국왕 칭호 상실.
  • 아이슬란드 1944년 덴마크가 나치에 의해 점령됨에 따라 덴마크와의 동군연합 해체 이후 공화정 수립.
  • 만주국 1945년 푸이에 의해 만주국 해산
  • 이탈리아 1946년 국민투표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퇴위.
  • 불가리아 1946년 공산화로 시메온 2세 퇴위.
  • 알바니아 1946년 공산화로 조구 1세 퇴위.
  • 헝가리 1946년 공산화로 왕정 폐지. 하지만 헝가리는 왕정 수립 이후 왕이 없던 괴이한 나라였다.(...)
  • 루마니아 1947년 공산화로 미하이 1세 퇴위.
  • 이집트 1952년 나세르의 쿠데타로 파루크 1세 퇴위. 하지만 왕정 자체는 파루크 1세의 아들이 허수아비 국왕으로 즉위함에 따라 1953년까지 존속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철폐되었다.
  • 베트남 1955년 쿠데타로 응오딘지엠 정권의 수립으로 바오다이 황제 퇴위.
  • 튀니지 1957년 무함마드 8세가 사망함에 따라 왕통이 단절되어 공화정으로 이양.
  • 이라크 1958년 바트 당의 쿠데타로 파이살 2세 피살.
  • 르완다 1959년 내전 발발로 키겔리 5세가 망명함에 따라 사실상 왕정 붕괴, 1961년에 공화정 선포.
  • 예멘 1962년 쿠데타로 무함마드 알 바드르 국왕 퇴위. 하지만 1970년까지 바드르 국왕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수행했으나 1970년 살레가 왕당파를 완전히 물리침에 따라 예멘은 공화국이 된다. 한편 이집트는 살레의 공화국을 지원했고 덕분에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뒷통수를 맞아 처참하게 패배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일부로 가입하면서 조호르 술탄의 통치를 받았으나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되면서 왕정이 자연스레 폐지되었다.
  • 부룬디 1966년 군주정 폐지로 음왐부차 4세 퇴위.
  • 리비아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로 이드리스 1세 퇴위.
  • 아프가니스탄 1973년 무함마드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자히르 샤 국왕 퇴위.
  • 그리스 1973년 군사정권에 의해 콘스탄티노스 2세 퇴위. 군사정권 종식 이후의 1974년의 왕정복고 여부 투표에서 왕정복고 부결.
  • 에티오피아 1974년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퇴위, 피살.
  • 라오스 1975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사방바타나 국왕 퇴위.
  • 이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레자 팔레비 국왕 퇴위.
  • 중앙아프리카제국 1979년 장 베델 보카사가 프랑스 공수부대에게 체포됨에 따라 제정 폐지.
  • 사모아 2007년 사모아의 마지막 왕이 사망한 이후 왕실 혈통이 단절되면서 군주제가 폐지.[10]
  • 네팔 2008년 마오이스트들의 권력 장악으로 갸넨드라 국왕 퇴위.

5. 영연방 소속 국가들의 군주정 폐지

  • 아일랜드 1937년 영연방 탈퇴로 군주정 폐지.
  • 인도 1950년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파키스탄 1956년 영연방 탈퇴로 군주정 폐지. 사람들이 의외로 여기긴 하지만 인도나 파키스탄이 독립 이후 한동안은 왕정을 유지하고 영국왕을 모셨으나 인도는 헌법 개정으로, 파키스탄은 군사 쿠데타로 군주정을 폐지했다.
  • 가나 공화국 1960년 7월 1일 국민투표로 군주정 폐지
  • 남아프리카 연방 1961년 5월 31일 헨드릭 페르부르트 박사의 주도로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정 폐지.
  • 탕가니카 1962년 12월 9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나이지리아 1963년 10월 1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우간다 1963년 10월 9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케냐 1964년 12월 12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말라위 1966년 7월 6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가이아나 1970년 2월 23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로디지아 1970년 3월 2일 백인정권이 군주정을 폐지.(현재의 짐바브웨)
  • 감비아 1970년 4월 24일 국민투표로 군주정 폐지.
  • 시에라리온 1971년 4월 19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실론(스리랑카) 1972년 5월 22일 헌법 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몰타 1974년 12월 13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트리니다드 토바고 1976년 10월 26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 피지 1987년 9월 28일 군사쿠데타로 군주정 폐지.
  • 모리셔스 1992년 3월 12일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2015년 현재 바베이도스의 왕정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공화파의 득세로 현재 왕정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적어도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이후 영연방 왕국들의 숫자가 크게 줄 것이 자명해보인다.

6. 군주의 귀환

왕정복고 참조.

7. 위기의 군주국들?

군주국의 공화주의 참조.

8. 왕 없는 왕국

왕정이 폐지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나 국왕이 존재한 상태에서 또 다른 독재자가 등장한 특이한 케이스에는 국가 정체는 왕국인데 정작 왕이 없는 해괴한 일이 가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붕괴 이후 등장한 헝가리 왕국인데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이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정작 헝가리 왕위를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전 황제인 카를 1세를 추방해버려 함대 없는 제독이 왕 없는 왕국을 통치하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 지배하의 스페인인데 프랑코는 스페인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자신의 살아 생전에는 왕을 옹립하지 않았다. 왕위 계승 1순위였던 후안 3세가 자유주의 성향이었던 것과 기타 등등이 겹친 결과였다. 그가 죽은 다음에는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옹립되면서 스페인은 진정한 의미의 왕정복고를 맞이한다.

또 요르요스 파파도풀루스 장군 치하의 그리스 역시 왕없는 왕국이었다. 1967년 파파도풀루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당시 그리스의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는 파파도풀루스를 축출하기 위해 역쿠데타를 계획했다가 실패하여 망명한다. 이후 파파도풀루스는 그리스 왕국의 섭정임을 자처하며 한동안 왕없는 왕국의 섭정놀이를 하다가 1973년에는 아예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그는 학생 시위로 인해 곧 퇴진했고 그의 뒤를 이은 페지키스 장군도 키프로스에서 터키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그리스 군사정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1974년 왕정 복고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라서 왕정 복고는 무산된다. 애초에 그리스 왕가 자체가 외국인 출신이라 국민들 입장에선 별로 애착이 없던 것이 컸다.

9. 왕국 없는 왕

대개 이런 사람들은 왕정이 폐지된 공화제 국가에서 자신을 명목상 어느 나라의 국왕으로 자처하며 왕정복고나 왕위계승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루이 20세의 부르봉 왕가와 앙리 7세의 오를레앙 왕가와 보나파르트 황가가 동시에 왕위를 주장하는 난리 굿이고 이미 군주국인 영국에도 스튜어트 왕조를 지지하는 자코바이트란 자들이 있으며 그외에도 온갖 왕위 계승 주장자들이 존재한다. 이란의 팔라비 황가부터 리비아의 엘세누시 왕자에... 가깝게는 한국의 이해원 '옹주'나 이석같은 사람들도... 달라이 라마도 넓은 의미에서 이런 왕위 계승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10. 관련 문서


  1. [1] 리히텐슈타인 - 조제프, 벨기에 - 엘리자베스, 네덜란드 - 아말리아, 노르웨이 - 잉그리드, 덴마크 - 크리스티앙, 스페인- 레오노르, 스웨덴 - 에스텔, 영국 - 조지, 룩셈부르크 - 아말리아, 모나코 - 자크
  2. [2] 다만 이쪽은 '영주'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3. [3] 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
  4. [4] 이 살벌한 업무량을 그나마 감당이 가능한 수준으로 쪼갠 게 삼권분립, 오권분립 같은 거다. 그 중 하나쌈박질이나 하고 놀아서 문제인 거지...
  5. [5] 물론 즉위 이전의 인물들, 특히 이성계는 제외.
  6. [6] 유독 이 시기에는 군주들이 많이 퇴출당한 시기다.
  7. [7]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공화정으로 바뀌었으나 스페인은 프랑코가 왕정을 복고시켰다.
  8. [8] 몽골은 운게른의 깽판 이후에 복드 칸이 폐위당하면서 공화정으로 이양했다.
  9. [9] 사실 그것 자체가 이 인물의 매력이다.
  10. [10] 물론 그 이후에는 입헌군주제가 되었지만 이쪽은 왕이 없다. 자세한 것은 사모아 문서 참조. 다만 사모아 역시 독재자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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