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녕대

권녕대(權寧大)

생몰년도

1908년 ~ 1985년

출생지

경기도 개풍군

직업

교수

학력

홋카이도대학 이학부
서울대학교 이학박사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상훈
5. 논문 및 저서

1. 개요

광복 이후 불모지였던 우리 나라 물리학계에 씨앗을 뿌려 오늘날 대한민국 물리학의 기반을 다져놓은 선구자적 학자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한국물리학회 회장,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 전문위원장,인하학원 이사장,과학기술진흥위원,자연과학협회 회장,한국과학원 이사, IQSY 한국위원회위원장, 한국과학자협회장, UNESCO 한국위원회 과학부분위원장, IUGG 한국위원회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 생애

1908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났다. 1926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세이죠고등학교(成城高等学校)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홋카이도제국대학(北海道帝国大学) 이학부 물리학과에 입학한다.

1933년에 홋카이도제국대학(현, 홋카이도대학) 이학부 물리학과에서 광학 전공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1934년에 귀국하여 개성에 구원광학연구소(久遠光學硏究所)를 설립하여 광학연구를 계속하였다.

1938년에 송도중학교(松都中學校), 1939년에 개성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5년에는 37세의 나이로 교장을 맡기도 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부교수로 부임하여 주로 광학강의와 광학연구에 힘을 쏟았다. 서울대학교에서는 1949년에 문리과대학 이학부장, 1954년에 대학원장 직무대리, 1964년 문리과대학장을 지냈다.

1957년 영국 브리스톨대학교에서 1년간 우주선 연구를 하고, 귀국 후 우주선을 쬔 핵건판(核乾板)에 대한 연구로 1961년 서울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광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레이저 분광학연구와 국내 최초로 건립된 입자가속기(사이클로트론)제작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74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임 후, 1976년부터 한국에너지연구소 상임고문으로 활약하며 후학들의 연구에 자문하였다.

1952년 한국물리학회 창립발기인으로 큰 공헌을 하였고, 1960년 학회장이 되어 10년간 학회발전에 헌신적인 노력[1]을 기울였다.

물리학에 대한 기여로 1952년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그 외에도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 전문위원장, 인하학원 이사장,과학기술진흥위원, 자연과학협회 회장,한국과학원 이사, 한국과학자협회장 및, 1963년 태양활동극소기국제관측년(IQSY) 한국위원회위원장, 196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부회장, 1967년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한국위원회 과학부분위원장, 1969년 국제측지학 및 지구물리학 연합(IUGG) 한국위원회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3. 여담

  • 자신이 길러낸 제자들이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받을때 가장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증언했다. 대표적인 제자들로는 미국 브라운 대학교강경식 교수와 호프킨슨 대학교의 김정욱 교수를 꼽을 수 있고, 국내에서는 그의 전공인 광학을 이어받은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인 이상수 교수를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또, 우주선 분야는 고려대학교 김종오 교수가 맡아 지금까지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해방 이후 서울대물리실은 3개 대학의 실험실 기자재를 인계받아 가장 훌륭한 연구실로 만들었으나,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6.25 전쟁으로 불타 없어졌을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제풍(美國製風)인 측정관을 하나 구해 1956년 삼복 더위때 8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한라산우주선을 측정하러 갔을 때 학생들을 부둥켜 안고 한없이 울었다는 증언을 했다.

4. 상훈

5. 논문 및 저서

  • 주요 연구논문은 「간섭 필터의 비교 연구」 외 수 편의 광학 분야 논문, 「서울 및 제주지방에서의 지자기 및 우주선의 일변화」 외 10여 편의 우주선 분야 논문, 기타 「1MeV사이클로트론의 빔집중」 등이 있다.
  • 저서로는 『자연과학』우주·물질·생명·『자연과학개론』·『광학』·『일반물리학』·『현대물리학』, 그리고 『과학하는 심상』 등 저·편저의 대학교재 수 편과 수필집이 있다.


  1. [1] 1951년 35명으로 설립한 한국물리학회는 1960년 권녕대가 회장을 맡은 이후부터 회원 수는 10년동안 1천명으로 늘어났으며, 회지(대물리)도 연간 국문 4회, 영문 2회 씩 발간하는 등, 국내에서 가장 건실한 물리학회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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