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김포시 갑)

선거구 분리
홍철호[1]

제20대
김두관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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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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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두관 (金斗官)

출생일

1959년 4월 10일 (60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2]#

본관

경주 김씨

학력

남해종합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3] (정치외교학 /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81cm, A형

가족

동생 김두수, 배우자 채정자, 1남 1녀

종교

불교(법명 : 웅기)

소속 정당

지역구

경기 김포시 갑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0

소속 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경력

남해농민회 사무국장
남해신문 대표이사 사장
제38·39대 경상남도 남해군 군수
제5대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제34대 경상남도지사

1. 개요
2. 생애
2.1. 남해군수가 되기까지
2.2. 재야 탈출기
2.3. 경상남도지사: 3수 끝의 당선
2.4. 대권 도전: 무리수를 두다
2.5. 다시 재야로
2.6. 20대 총선: 두 번째 재기에 성공하다
2.7. 21대 총선
3. 논란
3.1. 동양대 총장 전화 논란
4. 선거 이력
5. 기타
6. 같이보기
7.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본관은 경주(慶州).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상남도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로, 참여정부 시절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돼 친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4]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 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하면서 보인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2. 생애

2.1. 남해군수가 되기까지

1959년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가난한 어부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해외로 돈벌이를 나간 형들[5]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해종합고등학교(현 남해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대학교 어문계열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문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고, 이 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한다. 대학 시절 동생 김두수[6]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 남해로 낙향해 민중의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5%도 채 되지 않는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박희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기도 했다.[7]

이 후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기반을 쌓아나갔고, <남해일보>라는 지역 신문사를 설립해 운영하며 신망을 쌓았다.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남해군수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당시 만 36세로 전국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선거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최연소 기록이 깨지지 않는 중이다. 이어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에 성공하여 재선 남해군수를 지냈다.

2.2. 재야 탈출기

민선 2기 남해군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인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상남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노무현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던 상태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났고 결국 17%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상대 후보였던 한나라당김혁규넘사벽이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당시 김혁규는 무려 74% 이상의 득표율로 김두관을 개박살냈다.[8]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남해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박희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2006년 1월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그해 5월 31일 열린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김태호에게 큰 차이로 밀려 25%만을 득표한 채 낙선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수확이 있었다면 자신이 군수를 지낸 남해군에서는 58.9%를 득표해 당선자인 김태호를 더블스코어 차이로 눌렀다는 것.

2.3. 경상남도지사: 3수 끝의 당선

그러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상남도지사에 도전했고, 무소속 신분이었던 그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후보와 단일화되어 대통합 야권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53%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에 이달곤[9] 후보를 꺾고 성공했다. 본인으로선 도지사 선거만 3번의 도전 끝에 당선되었다. 중앙에서 활동하던 이달곤에 비해 오랫동안 PK에 몸담아온 김두관이었기에 지역밀착형 후보라는 태그가 승리의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2006년을 기점으로 세를 보이기 시작한 PK의 진보층도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경남 전역을 누비며 김두관이 당선될 수 있도록 총력지원을 해준 것도 당선의 원동력이었다. 이로써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 되면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10]

문재인강기갑 등 여러 야권 명망가들의 격려를 받으며 2010년 7월 1일 경상남도 도지사로 취임한 김두관은 자신과 야권단일후보를 놓고 경쟁했던 민주노동당 소속의 강병기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하며 협치 행정을 실천하였다. 이어 4대강 사업을 선명하게 반대하며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웠고, 무상급식을 통과시켰다.

2.4. 대권 도전: 무리수를 두다

이후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무난히 도정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재임 2년차인 2012년 경남지사직을 뜬금없이 돌연 사퇴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하였다. 이로 인해 경상남도 진보층 사이에서는 배신감(?)이 쌓이게 되었다.

경선 결과, 손학규에게도 밀리며 14%의 득표율로 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야 했다. 자세한 경선 과정은 이곳을 참조. 같은 PK를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 후보가 월등히 지지율이 높은 상태라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애초에 높지 않았는데, 도지사직을 뛰쳐나와 무리하게 경선에 참여하여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꼴이 되어버렸다는 비난을 받았고,[11] 결국 대선과 병행하여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어렵게 얻은 경남지사 자리를 다시 새누리당 쪽에 헌납한 꼴이 되어버려, 야권 지지자들에서까지 평생까임권을 얻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거꾸로 나열한 '관두김', 사퇴하고 도망쳤다고 '런두관'[12]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생긴 것은 덤이다. 경선에 참여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고 왜 경남지사직을 사퇴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13][14] 사실 안철수의 국회의원 사퇴도 그렇고 대선후보 또는 경선후보 역할과 국회의원, 도지사직을 동시에 수행하면 한쪽에 소홀하게 된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기는 하다. 실제로 안희정, 남경필 등이 대권도전으로 인한 도정소홀 문제로 약간 논란이 있기도 했다.[15] 문제는 그러한 명분보다 도지사를 다시 뽑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자신을 뽑아준 도민들에 대한 신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두관 이후로는 경선출마를 이유로 시/도지사, 넓게는 기초단체장직이나 지방의회 의원직을 사퇴하는 사례가 없었는데, 2020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서 정의당 소속 구의원이던 임한솔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구의원직을 사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정의당마저 탈당해 버렸다. 물론 임한솔의 경우는 경선출마가 아닌 국회의원 선거 출마가 목적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새롭게 둥지를 튼 민생당에서조차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받지 못해 임한솔의 무리수는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홍준표, 안희정, 이재명 등이 다 경선단계에서 단체장직을 유지했다.

2.5. 다시 재야로

졸지에 다시 재야가 되어버린 그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초청으로 독일에서 1년 간 연수를 받은 뒤, 2014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역구는 당초 활동했던 PK가 아닌 경기도 김포시로 정해졌다.[16]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나서자 낙하산이나 뜨내기라는 비판이 생겨났지만, 본인으로선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힘을 뻗어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수였다.

거주지도 김포로 완전히 옮기고 본인은 분투를 했지만, 지역 토박이들은[17] PK 그 자체라 볼 수 있는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고 그나마 지역 정체성이 덜한 신도시 지역에 승부수를 둬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승리여부에 의문을 둬야 했다. 결국 경쟁상대인 새누리당홍철호[18] 후보에게 밀리며 4년만에 낙선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예상대로 농촌지역에선 홍철호에게 몰표가 쏟아졌고, 신도시에서도 패배하여[19] 40% 득표율로 선거를 마감했다. 경남지사 당선 배경에는 PK 지역밀착형 후보였던 점이 상당히 먹혔던 것에 비해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그 점이 낙선의 큰 요인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2.6. 20대 총선: 두 번째 재기에 성공하다

이후로도 경남으로 주소를 옮기지 않고 계속 김포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점점 김포사람으로 되어가는 중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포에서 출마하기 위해 준비해오고 있는 듯했다. 마침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포시 선거구가 갑/을로 분리되면서 자리가 하나 더 늘었고, 김포시 갑 선거구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20] 새누리당측의 상대는 김동식 전 김포시장. 더불어민주당에서는 PK 출마를 기대했지만, 본인은 대권도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김두관 본인 말로는 경남지사 자리에서 중도 하차해 다시 보수정당의 홍준표에게 헌납한 그 원죄 때문에 못 내려가고 있다고 [21]

현재까지 나온 관련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새누리당의 김동식 후보보다 5~10% 안팎의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포시(갑)이 도시 인구가 많아 야권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 결과를 두고볼 일이지만, 일단 2014년 재보궐 선거때보다는 해볼만한 승부로 여겨진다. 김동식 후보는 김두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데다[22] 김포시장 시절 권력형 비리(!)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다.

여담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지역 출마자 중 91년 이후 역대 공직선거 출마횟수가 8회로 가장 많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포함하면 9회이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면 10회가 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기간에 경남에 내려가서 똑같은 내용으로 고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충의 내용은 '죄송하다 내 잘못이다'로 시작해서 '중도사퇴는 잘못됐다' → '내가 관둬서 홍이 됐다' → '나는 준비가 미흡했다' 이 순으로 간 다음 그 다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하며 여기에 홍준표를 벌해달라는 말은 덤. 사실 내용을 보면 전형적인 사과문의 한 사례이다.

2.7. 21대 총선

머니투데이 200106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에서 PK 지지율이 안 좋아지니까 21대 총선에서 다시 PK로 차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양산 갑/을 중에 차출될 구상이었는데, 김두관 본인은 김포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고사했다. # 하지만 계속된 당 지도부 및 친문 그룹의 설득과 권유로 양산 갑/을 중 하나로 다시 PK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기사)[23]

2020년 1월 23일, 양산시 을 출마를 결심하였다. ## (현역 서형수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곳이다.)

2월 17일, 양산시 을 전략공천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20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선거를 지휘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21일에는 양산시 을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임재춘, 박대조 예비후보가 김두관 지지를 선언했다.

한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PK 수비대장을 자처하며 양산 을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면서 전직 경남도지사 간의 빅매치가 성사될 것으로 보였으나, 홍준표가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한 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3. 논란

3.1. 동양대 총장 전화 논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조민이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총장의 승인을 받은 적 없이 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박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MBC서울신문뉴시스SBS동아일보 다만 전화를 걸어 압박을 했다는 총장의 주장과 달리 김두관 의원은 단순히 청와대 분위기가 안 좋다는 걸 전달했을 뿐이라며 회유나 압박은 없었다고 한다.[24] 채널 A

이에 자유한국당유시민 이사장과 김두관 의원을 직권남용 및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기사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민중의당

9,783 (3.22%)

낙선 (3위)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남해군수)

무소속

21,605 (55.61%)

당선 (1위)

초선[25]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남해군수)

무소속

18,612 (53.73%)

당선 (1위)

재선[26]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새천년민주당

315,008 (16.88%)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열린우리당

26,747 (41.96%)

낙선 (2위)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열린우리당

343,137 (25.41%)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무소속

24,966 (40.61%)

낙선 (2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무소속

807,698 (53.54%)

당선 (1위)

초선[27]

2014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김포)

새정치민주연합

38,858 (43.10%)

낙선 (2위)

[28]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김포 갑)

더불어민주당

49,758 (59.30%)

당선 (1위)

초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양산 을)

더불어민주당

경남에서 당선될 때는 무조건 무소속이다. 경남, 그것도 무려 서부 경남에서 민주당계 정당 하기 참 힘들다는 반증인데 사실 고향인 남해군에서는 군수 시절 주민들과의 소통이 잘되었던 덕분에 지지세가 상당했다. 실제로 2002년 지방선거 이후에도 낙선한 선거에서 전부 선거비용 보전선인 15%를 훌쩍 넘겼을 정도. 특히 남해 지역 한정으로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 때는 무려 58.9% / 66.2%, 2008년 총선에서는 67.7%를 얻었다!

그러다가 경남을 탈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2016년 총선에서 당적을 가지고서 당선되었다.

5. 기타

  • 통영시 출신인 전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김호가 대표적인 지지자인데,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선거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 영화 이장과 군수의 두 인물이 그의 행적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 1999년 MBC의 성공시대에도 출연했는데 재연 부분을 연기한 배우가 다름 아닌 배도환. 실제 나이는 김두관 본인이 5살이나 더 많지만 외모가 가히 도플갱어 직전 수준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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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김포시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
  2. [2] 경주 김씨 집성촌이다.
  3. [3] 경북전문대학에서 편입
  4. [4] 김두관이 당선된 시절 경상남도는 한나라당계의 텃밭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당계에 매우 가까운 인물로서 당선된 건 당시 기준으로는 이변이었다.
  5. [5] 큰 형은 서독 광부였고, 셋째 형은 사우디 건설 노동자였다고 한다.
  6. [6]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제 16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제 17대 총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고양시 일산서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7. [7] 그래도 꼴찌는 아니었다! 꼴찌는 신민주공화당의 한춘기 후보. 그가 군소 진보정당 소속에, 지방대 운동권 출신의 서른도 안 된 젊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탈꼴찌에 성공한 것만 봐도 외려 엄청난 선전이다.
  8. [8] 그런데 한나라당 소속의 김혁규는 그 다음해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도지사를 사퇴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9. [9] 창원 출신의 이름있는 행정학자며 이명박 정부한나라당 18대 총선 비례대표 국회의원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로써 이 선거는 전직 행정안전부 장관(김두관 시절에는 행정자치부) 끼리의 대결이 되는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출마할 당시 중앙에서 내려온 낙하산 후보라는 비판을 들었고 나름대로 상당히 분투했으나, 낙선. 통합창원시 아이디어를 낸것도 이분이었다. 2012년에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되어 근무했다.
  10. [10] 실제로 김두관은 밀양,창녕,합천,거창,산청,통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11. [11] 이때 차라리 도지사직을 유지하고 같은 PK출신인 문재인을 지지하면서 PK의 진보층을 결집시켰더라면 문재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었다. 다만, 도지사직을 유지했을 경우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에 이대로 했더라도 그가 진보층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정치활동에 제한이 많은 도지사직을 내놓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12. [12] 참고로 관두김, 런두관 둘 다 이 문단으로 리다이렉트된다(...).
  13. [13]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경선출마는 지사직을 유지한 상태에서도 가능하다. 김두관의 후임 도지사인 홍준표는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고 지사직 사퇴 시한 직전까지도 지사직을 유지했다. 문재인의 경우도 본선에 진출하고 대선에서 낙선하고도 의원직은 유지했다.(다만, 국회의원은 그 직을 유지하고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으므로 경우가 다르기는 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박근혜가 대선 출마때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승부수를 던진 것처럼 그저 일종의 승부수가 아니었나 추측할 뿐(...)이지만 박근혜는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된 후 의원직을 사퇴했고, 당시에는 비례대표였기 때문에 의석은 같은 당에 확실하게 승계되어 의원직으로 당에 피해가 가는 것도 없어서 경우가 역시 다르다. 김두관은 애초에 대선 후보 선출 가능성도 높지 않았는데 본인이 나서서 도지사직까지 내던졌고, 이로 인해 새롭게 도지사를 뽑아야 했으니(...)
  14. [14] 2010년도 이후부터 일부 매체들을 통해 특정 정치평론가, 혹은 여권의 유력한 관계자라는 불분명한 출처를 통해 김두관이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일 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흘러 나왔었는데, 이를 근거로 그의 뜬금없는 대권 도전 선언이 여권 혹은 그 쪽과 가까운 정치평론가들의 지속적인 프레임 설계였으며 여기에 제대로 낚인 것이다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15. [15] 같은 지자체장 출신 경선 후보였던 이재명, 최성의 경우 시정 논란은 적었다. 최성의 경우 후반에 나오기도 했고 이재명의 경우 경선과 시정을 동시에 챙겨가며 되려 지지도를 쌓았기 때문이다.
  16. [16] 경남에는 자리가 없긴 했지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울산광역시 남구에서는 재보선을 치르는 지역구가 있었다. 이 중 부산의 경우는 아무 연고도 없는 김포와 달리 출신 대학과 민주화 운동, 막노동을 했던 연고가 있고, 게다가 지역주의 타파, 결자해지의 의미도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부산에 출마했다면 근소한 차로 이겼을지 모를 일이고, 졌더라도 도지사 사퇴라는 병크를 만회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리 국회의원이 좋아도 그렇지, 당선이 되어야 본전일 김포 출마를 왜 선택했는지 참으로 의아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7. [17] 김포는 한강신도시가 개발된 지금도 다른 지역에 비해 타 지역과의 왕래가 적고 북한과 가까워서 서울에 붙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토박이 비율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생전 김포에 발조차 들이지 않은 사람이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들어갔으니(...) 게다가 상대인 홍철호 후보는 김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토박이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유정복 인천시장의 측근이라서 애초에 김두관이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18. [18] 굽네치킨 창업주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계육 가공 중소기업인 (주)크레치코 창업주라고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김포 지방의 자잘한 단체 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선된 후에는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로 활동하다가 바른정당으로 옮겼으나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19. [19] 전부 패배한건 아니고 김포2동, 구래동에선 400~500표 정도 앞섰다. 하지만 해당 지역들은 아파트 밀집 지역에 비해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나머지 신도시 지역에선 많게는 2000표 이상 뒤지는 등 참패했다.
  20. [20] 2014년 재보선에서 대결했던 새누리당의 홍철호는 김포시(을)에 공천받았다.
  21. [21]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 PK출마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지역주의 타파이다. 왜냐하면 경남 창원, 양산, 김해같이 동부경남인 경우는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김두관의 연고지이기도 한 서부경남은 아직도 해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좀 묘한 부분이, 동부경남은 YS의 통일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던 곳이라 야권 입장에서는 '빼앗긴 곳' 정도의 위치라면, 서부경남은 80년대에도 TK와 별다르지 않은 민주정의당 우세지역이었다.단, 진주,통영,고성인 경우는 통일민주당의 우세지역이였다. 하지만 동부경남도 김해, 양산, 거제, 창원 등은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의 우세 지역이었다.
  22. [22] 그럼 홍철호는 뭐냐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홍철호는 김포 토박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유정복의 정치적 후계자였다.
  23. [23] 물론 양산을이 김포갑보다 험지고 갈 명분이야 충분하지만, 본인이 김포시에 당선되면 뼈를 묻겠다고 선언했다 변경한건, 당요청보다는 본인의 정치적인 입지를 높일려고 하는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24. [24] 권력단체인 청와대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전하는 것 자체가 최성해 총장에게는 압박으로 작용 할 수 있다.
  25. [25] 민선 최연소 자치단체장
  26. [26] 2002년 4월 13일 사퇴, 경남지사 선거 출마
  27. [27] 2012년 7월 1일 사퇴,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28. [28] 전임자 유정복 인천시장 선거 출마로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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