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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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종합대학
Kim Il-Sung University

분류

국립대학

개교일자

1946년 10월 1일

총장

최상건

국가

북한

소재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룡남동

웹사이트

홈페이지

1. 개요
2. 설명
3. 역사
4. 입학과정
5. 구성
5.1. 사회과학부
5.2. 자연과학부
5.3. 재교육학부
5.4. 기타
6. 대학 운영
7. 학사관리
7.1. 논문
8. 통일후 전망
9. 참고 자료
10. 출신 인물
11. 사건·사고

1. 개요

학교 전경

학교 정문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 김일성종합대학의 표어

1946년 10월 1일 개교한 북한의 종합대학으로, 개교 당시에는 평양직할시 시내에 있었지만[1] 이후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룡남동 용남산에 이주했다. 물론 대학 명칭의 근원은 김일성이며 북한에서는 김대(金大)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2] 북한의 100여 개의 대학과 500여 개의 전문대학 및 고등전문학교 중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기관이다.

2. 설명

의외로 설립이 순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한국에서의 통념과는 달리 북한은 처음부터 김일성 중심 체제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는 이미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활동해서 탄탄한 국내 지지 기반을 지닌 기존 사회주의 세력들이 여럿 있었고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들어와서 한자리 차지하긴 했으나 반대로 국내 기반은 미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해외파들 사이에서도 친소련계와 반소련계 등으로 세력이 갈렸다. 때문에 초창기의 김일성은 유력자 중 한명일 뿐이였지 절대자가 아니였다. 이런 상황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서는 종합대학을 설립할 예산을 돌려 경제 건설을 하자는 입장이 우세했고, 경제 건설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 기존의 전문학교들을 대학으로 승격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으며, 그동안의 대학 교육 수요는 소련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내자는 것으로 정리되었는데, 유력자 중 한명에 불과했던 김일성은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국립서울대학교(개교 당시 국립서울대)가 출범하면서 자극을 받은 김일성이 종합대학 설립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당시 김일성은 종합대학 설립에 의욕적이어서 군사 예산까지 전용해서 종합대학 설립에 보탤 정도였다. 그리고는 청원 형식을 빌려 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개교를 강행했다. 하지만 급하게 설립하다보니 설립 초기에는 제대로 된 교사를 갖추지 못하고 평양에 산재한 여러 근대적 건물에서 강의를 진행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평양의학전문학교와 대동공업전문학교였다. 두 전문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설립되었고, 평양 도심에 소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동공업전문학교는 보통문 인근에 있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평양의학전문학교는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부속의학대학으로 승계되었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은 했지만, 학생과 교원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왜냐하면 북한 지역 내에는 제대로 된 학위를 갖고, 대학 강의를 할 정도의 소양을 가진 사람도 부족했고, 대학 교육 자체를 이수할 수 있을 정도의 중등 교육을 받은 학생이 상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상기한 임시위원회가 소련의 대학에 유학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 것도 당장 국내에서는 쓸 인원이 없었던 문제 떄문이였는데 그걸 간과하고 급하게 개교부터 하니 당연히 인력이 없을 수 밖에... 교원뿐만 아니라 학생의 수와 질까지도 열악한 상황에서 결국 북한에선 당시 혼란에 빠져있던 대한민국의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을 포섭했고, 이들이 김일성종합대학의 초기 인적자원의 근간이 된다.

한국전쟁 이후 대학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고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자, 설립을 반대했던 이들은 소련의 똥꼬를 빠는 대국주의자나 친미 끄나풀로 몰려 숙청을 당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월북한 지식인들의 상당수도 이용가치가 사라지자 사상 검증을 받거나 숙청을 당했다.

본관 건물은 총장실, 당 기관, 청년동맹 기관이 입주해있고 학생들은 1970년대 초반 새로 지은 25층짜리 제2청사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김정일이 자신이 다녔던 본관을 완전히 허물고 그 자리에 옛 본관과 똑같은 모양의 전자도서관을 짓게 했다고 한다. 그 외에는 북한 대학 중에서 최고의 장서능력를 자랑하는 도서관이 있다.

교수 2,300여 명과 주간학생 12,000명, 야간 및 통신강좌 학생 5,000명이 있다. 여기에는 연구원(석사과정), 박사원(박사과정) 학생도 포함된다.[3] 해외에서 들어간 유학생들도 꽤 있는데, 국적은 주로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우호국이나 라틴아메리카 등 제 3세계 출신들이다. 의외로 한국어(조선어)를 여기서 어학연수해서 배우는 학생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씨 왕조 일가는 대부분 김일성대를 나왔으며 전통적으로 출세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의 동기생이 많았다. 조선로동당, 각종 정치 기관 간부의 70% 이상을 배출하여 북한의 권력을 완전히 독점하고 있다. 선후배 간의 규율이 엄격하여 밀어주고 끌어주는 강력한 인맥이 형성되는데다가 북한 특유의 전체주의 체제를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입학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원자의 출신성분이고, 그 다음이 성적이다.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설립된 학교이기 때문에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출신성분이 좋지 않으면 입학이 불가능하다. 다만, 북한도 체제유지를 위해서 인재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북한 사회가 막장이고 뇌물이 판친다고는 하나 최고학부를 단순히 뇌물이나 출신성분만으론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한다. 북한도 유교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대학입시는 엄청나게 치열하며, 출신성분에서 결격사유가 없다면 명문대 졸업장은 북한에서도 곧 출세를 보장하기 때문에 비밀 과외까지 존재할 정도로 엄청나게 공부를 열심히 한다. 관련기사 일례로 주성하 기자도 출신 성분은 좋지 않았어도 성적만으로 입학에 성공한 케이스.

이러한 권력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학생들에 대한 통제도 매우 강하다. 북한 사회 전체에서 김일성대 출신들에 대해 북한 최고의 엘리트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김일성대 출신이 죄를 지을 경우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식해 공개처형 하지 않고 비밀리에 처형한다. 김일성대 출신들은 "넌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말만 꺼내더라도 "최고 정치교육을 받고 있는 놈이 우리 정치제도에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숙청될 수 있다. 이는 김일성대만 해당될 뿐만 아니라 북한 전체가 다 마찬가지로 상호 감시와 밀고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주성하 기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 말을 하는 순간 상대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는 의미라고 한다.

3. 역사

숭실대학교와 역사적으로 약간 연결되는 학교다. 숭실대학교의 전신인 숭실학당은 본래 평양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자진폐교했다가 광복 이후 이 평양 숭실대학 자리에 김일성대학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4]이 평양 숭실 출신이라는 점. 관점에 따라서는 김형직 일가 4대가 김대 출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성제국대학의 적통은 서울대학교보다 김일성종합대학이 더욱 확연하게 잇고 있다. 경성제대를 중심으로 9개 전문학교를 통합해서 서울대학교를 개교하는 과정에서, 미군정의 '국대안'에 반발한 상당수 교수, 연구자들이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설립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학제도 서울대학교는 미 군정의 영향을 많이 받아[5] 사실상 경성제대의 커리큘럼이 해체되고 미국식으로 재편된 반면, 김일성종합대학의 커리큘럼은 지금도 경성제대와 상당히 유사하다.

4. 입학과정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직통생은 중학교[6]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온 학생들을 말한다. 남한으로 치면 현역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말한다. 당연히 웬만한 수재가 아니라면 상상도 못 한다. 시험에 떨어지면 조선인민군에 입대되거나 직장에 배치된다.[7] 출신 성분과 성적 모두 우수한 금수저에 사기캐인 직통생은 전체 입학생에서 30%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제대군인은 군에서 5년 ~ 10년을 복무하고 노동당에 입당한 사람들이다. 복무연한은 부모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군 경력, 노동당원, 김일성대 졸업은 북한 최고의 엘리트 코스이다.

직통생이든 제대군인이든 당성이 매우 좋아야만 한다. 이것은 각 대학의 학생 선발 기준이 당성을 고려한 출신 성분 1/3, 정치조직생활의 평점 1/3, 시험성적 1/3의 비율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김일성대의 경우 최소한 6촌 이내는 모두 성분이 좋아야만 한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느냐[8]얼마나 김씨 일가에 충성심을 바쳐야 하느냐(정치조직생활의 평점)가 당락에 중요하게 좌우한다.[9]

김씨 일가나 북한 최고위층 자녀라면 공부를 못하더라도 당성만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백 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 '출신성분과 당성이 좋을 것'은 기본적인 요건에 불과하고 거기다 공부까지 잘해야 한다.[10] 여기서 북한의 체제가 사상교육만 가르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은 형편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엘리트교육에 한정하면 천만의 말씀으로, 전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과학교육에 힘쓰는데,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11]

이 대학을 나온 주성하 기자는 "북한에서 제일 부잣집 자식은 김대에 다니고, 북한에서 제일 가난한 학생도 김대에 다닌다." 라고 말했는데, 말하자면 돈만 많으면 아무리 멍청해도 갈 수 있고 반대로 아무리 가난한 서민집 자식이라도 성적만 좋으면 갈 수 있다고 한다.[12] 모든 것이 썩은 북한이지만 교육만은 덜 썩었다고. 그래서 신분상승의 유일한 기회인 자식 교육에 목숨거는 부모들이 많아서 고등중학교 교사들이 뇌물 수익이 쏠쏠한 반면, 대학에서는 직업배치나 성적에 교수가 관여할 수가 없어서 대학교수들은 김대 교수라도 중산층 수준도 못산다고 한다. 졸업할 때 대학 교원으로 배치되면 다들 한숨을 쉰다고 한다.

매년 2월 본고사 시험을 치르고 4월에 신학기를 시작한다. 입학 시험은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 등 사상과목과 역사·지리·영어·수학·물리·화학까지 총 7과목이다. 본래는 국어가 있었으나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국어를 빼고 역사와 지리를 넣었다고 한다. 의외로 제일 어려워하는 게 역사과목이라는데, 북한에서는 "봉건사회의 역사는 배울 필요 없다"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근현대사 이전을 사실상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13] 대부분의 북한 사람은 세종대왕 말고는 아는 왕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반대로 혁명역사 과목은 가장 수업시간이 긴 데 비해서 배점은 다른 과목과 같기 때문에 사실상 변별력이 없어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고사에는 수험생들을 대학체육관에 모아놓고 교수들이 직접 시험감독에 나선다. 감독이 카메라까지 동원해 부정행위를 감시한다. 또한, 시험지는 다른 대학으로 옮겨져 엄격한 감시 하에서 채점한다.

  • 기출문제
혁명역사: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승리의 요인은 무엇인가", "김정일 총비서가 제시한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문학: "○○작품의 종자[14]·주제·사상을 분석하시오", "'속닥속닥' 등의 단어를 뜻풀이하고 짧은 글을 지으시오"

그러나 노동력이 모자랄 때는 아예 한 학번 전체의 직통생을 뽑지 않을 수가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11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그리고 휴교한 채 나머지 재학생도 평양의 아파트 공사에 동원되었다. 하지만 2012년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직통생을 모집했다.

2014년부터 운전면허시험처럼 컴퓨터로 객관식 시험을 보고 바로 점수가 뜨는 방식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채점에 대한 부정청탁이 너무 많아서이다. 한 해는 교내 보위부원 전체가 부정청탁을 승낙한 죄로 끌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시험 답안지를 학교간에 미공개 셔플해서 채점하는 방식도 도입해 보았지만 큰 효과가 없어서 결국 주관식 시험제도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서 수험생들이 전부 평양까지 갈 필요 없이 각 지역에 있는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면 된다고 한다.

5. 구성

14개 학부 산하에 50여 개 학과가 있다. 통일되면 이 학교의 존폐 여부도 불분명하지만 이름 바꿔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15] 인문계열의 경우 폐지되어 없어질 학과들이 매우 많으며 이 계통의 졸업생들의 활용 방안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보면 알겠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학과들이 많다. 특히 김씨 일족에 관한 학과들.

5.1. 사회과학부[16]

본과 구성은 위와 같으나, 박사원(대학원)은 구성이 다르며 경제정보학[19], 인민경제계획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김정일이 졸업하였으므로 북한 내에서는 경제학부를 '사적학부'라고도 부르고 모든 행사에서 우대받는다. 졸업생은 대부분 당 간부로 발탁된다. 그중에서도 정치경제학과는 김정일이 졸업했다는 이유 때문에 전통적으로 대학 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과였다. 아웃풋이 이러니만큼 인풋부터가 중앙당 관리 자식들이 많이 갔으므로 북한의 엘리트 코스 중 하나였다.[20]
  • 력사학부: 김일성동지혁명력사학과, 김정일동지혁명력사학과[21], 조선력사학과, 고고학 및 민속학과, 세계력사학과, 종교학과
종교학과는 1987년 5명 정원으로 비밀리에 신설되었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개최하면서 북한의 종교 대외활동이 활발해지자 대외 활동을 담당할 전문가가 필요해 1989년부터 20명 정원으로 늘리고 공개 선발하였다. 종교학과가 '력사학부'에 속해 있는 이유는 당시 철학부에는 종교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명철에 따르면 북한은 해방 후 종교를 탄압해 왔기 때문에 종교학과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전문가를 확보할 수 없었다. 종교를 알 만한 나이든 교수들은 역사학부에 많고 역사학에는 종교사(史)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학부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평양 거주[22], 해외 활동, 노동 면제가 보장되기 때문에 공개 직후부터 최고 인기학과로 떠올랐다.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의 교리와 종교의식을 배우지만 학교 수업교재만 사용한다. 종교 경전 (성경, 불경)은 수업 중에 볼 수가 없으며 대학 도서관의 비공개 열람실에서만 접근 가능하다.[23]
  • 철학부: 김일성주의로작학과, 주체사상학과, 주체철학과, 철학사학과
황장엽이 학과장으로 있으면서 주체사상을 정립하였다. 이 곳을 졸업하면 사무직으로 직장 배치를 받을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사나 로동신문과 같은 주요 언론사의 기자 상당수가 철학부 출신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과처럼 철학부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 법률대학: 법학과, 국가관리법학과, 국가법학과
매년 입학 정원은 100~200명. 이곳을 졸업하면 재판소 법관이나 검찰소 검사로 직장 배치를 받을 수 있다. 일견 권력형 부정부패가 만연한 북한 내에서 법관이나 검사의 직업 선호도가 높아서 성적이 매우 높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50년대 북한에도 행정부 내에 남한의 법무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법성이 존재했었으나, 남로당 출신의 사법상이 숙청되면서 사법성은 완전히 해산되고 만다. 이러한 숙청으로 최고재판부로 대변되는 사법부의 입지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법치주의 문화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처럼 북한에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법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재판이나 검찰 제도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북한 내 학생들에게도 법학 계열은 크게 인기 있는 곳이 아니다. 또한, 북한의 법체계도 합리적인 법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고[24], 입법 시스템 역시 정부 위에 있는 당의 역시 거수기 노릇밖에 하지 못하므로, 학문으로서의 법률 수요도 극히 적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의 인문사회 계열 내에서 비인기 부분에 속한다.[25] 원래 법학부였으나 2000년대에 법률대학으로 승격되었다.물론 원래부터 법학이라는 게 입법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해석학으로써 배우는지라 상술한 바는 법학에 대한 몰이해라고 할 수 있다. 북한도 계약법, 채권법, 물권법이 있다. 심지어 법체계도 로마-게르만법계에 소비에트 법학을 가미한 정도라서 조문 자체를 놓고 봤을 때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이다. 법학은 민사부터 국가이론까지 연구 분야가 방대하다보니 법률이 필요한 분야는 단순히 헌법적 관계에만 있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법학이 인기 없는 이유는 사회주의법 태생 자체가 맑스의 법사멸론을 전제로 안고 가야하는 것이라서 당위적으로 소멸할 대상을 연구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스탈린 체제 이후 공산주의도 수정주의를 많이 거쳤으나 소비에트 법학자인 오이겐 파슈카니스 같은 쟁쟁한 학자들도 법사멸론을 천명하고 있다.
원래 조선어문학부로, 2000년대에 문학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외국어문학부(외문): 영어문학과, 러시아어문학과, 중국어문학과, 독일어문학과, 프랑스어문학과
1년 입학 정원은 100~150명. 각 지방 외국어 학원[26]이라는 특수목적중학교 졸업자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외국어교재는 평양외국어대학과 같은 교재를 사용한다. 재학생 절반 이상이 평양외국어학원 졸업생인데, 평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하면 보통 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외국어대학에 남는다. 최근에는 부모가 고위직인 경우 평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에 바로 입학하지 못하고 군에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5.2. 자연과학부

5년제 과정이다. 김대 사회과학부를 졸업하면 당 간부 루트를 밟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힘 있는 사람들의 자식이 많은 데 비해서, 자연과학부에는 반대로 머리만 좋은 애들이 많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지구과학을 지리학과 합쳐서 자연계로 분류한다.[27]
  • 지질학부: 지질학과, 지구과학과, 지구물리탐사학과, 수문지질학과
  • 원자력학부: 핵물리학과, 플라즈마물리학과, 방사선화학과
  • 콤퓨터과학대학
원래 산업자동화학부로, 2000년대 들어서 콤퓨터과학대학으로 승격되었다.

5.3. 재교육학부

2000년 이후에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부는 본과를 졸업한 후 3~5년간 일하다가 자기의 연구성과를 점검하거나 새로운 발전내용을 다시 학습하기 위해 대학에 나와 일정시간을 공부한다. 이 학부의 학제 기간은 대체로 두 달간이다. 즉, 해마다 두 번씩 한 번에 두 달씩 공부하는데 철학, 력사, 경제, 외국어, 수학, 물리학과 등을 두고 있다.

5.4. 기타

위는 정규 과정에 해당하고, 김여정물리학과에 6개월짜리 속성 코스를 특별히 만들어서 재학했다.

이외에도 2010년에 별개의 대학이었던 평양의학대학과 평양농업대학, 계응상농업대학이 김일성종합대학의 부속대학으로 편입되었다. 전공에 따라서 야간반/통신반이 있는 경우도 있다.

공과대학에 해당하는 학과는 일부밖에 없다. 이쪽은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분리되어 있다.[28]

6. 대학 운영

흔히 생각하는 대학교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운영된다. 북한은 대학 안에 학부로 구성돼 있는데, 전시체계로 운영하다보니 한개 학부가 연대로 편성돼 있다. 학과는 대대, 학년은 중대, 학급은 소대로 불리며 각 편제마다 연대장, 대대장 등 학생 책임자가 있다. 이렇게 학급 단위로 운영되어 김일성종합대학 콤퓨터과학대학 4학년 1반 식, 정경 1반 김정일 같은 식으로 불린다.[29] 심지어 지정좌석제를 모든 강의에서 시행해 태만한 학생을 쉽게 잡아낸다고.

규찰대[30]를 운영하여 학교 주위를 순찰하며 교칙 위반을 잡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서 담배를 피우면 퇴학이다. 조선인민군에 복무하는 기간이 기숙사에 있는 것보다 기강이 약하고 편하다고 한다. 물론 조선인민군은 성추행, 성폭행, 구타 및 가혹행위, 뇌물수수,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지옥 그 자체인 군대고, 부대 배치에 따라 분위기 역시 다르다. 수도 평양 한 복판에서 감시의 눈빛이 여기저기 있으니 비교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대학생 신분임에도 군대보다 강한 군기를 잡는 이유는, 이들이 전시상황 발생시 인민군의 준 군사 조직인 교도대로 편성되며 초급장교로 복무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교도대학생이라고 부른다.

7. 학사관리

베트남사람 부 비엣 느아는 "수업이 끝나면 인민대학습당[31]에 가서 공부를 해요. 김일성대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요. 북한 최고 수재들만 모였어요."라고 말하였다. 중국인 왕틴찬은 "김일성대학 학생들은 모두 공부벌레다. 캠퍼스는 다람쥐와 꿩이 수시로 나타날 만큼 아름답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오로지 공부다. 놀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험이 너무 많아 공부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1년 동안 유학하는 데 드는 비용이 7천 300달러(약 805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평점은 5, 4, 3, 2, 1점 (A~F)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교에서의 수강신청과는 달리 수강신청의 개념이 없고 학교에서 정해 준 대로 수업을 들으며 한 학기당 4~5개 과목 정도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기자 주성하는 대학 전체 공통과목 17개 (김일성주의노작, 김일성주의기본, 혁명역사, 주체철학, 제2외국어, 조국통일 및 남조선문제, 미일제국주의 조선침략사, 환경보호 등), 전공 13개 과목으로 30개 과목을 배우고 졸업했다. 이 중 6개는 P/F이고 24개는 점수가 나오는 과목이다. 수강 신청에는 자율권이 없고 대학 본부에서 결정한다.

강의 한 시간은 45분이고 강의는 주당 50시간 정도. 학기는 2학기로 상반 학기와 하반 학기로 구분된다.[32] 북한은 1996년부터 새 학기를 4월에 시작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대학 강의는 8시 30분에 시작하고 겨울철에는 아침 9시에 시작한다.

졸업시험은 김일성주의노작, 외국어, 전공과목, 졸업논문이라는 4개 과목에 한해 치른다.

오전에 90분 강의를 3강좌 하면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는 자습시간과 당 및 사회단체의 활동 시간이다.

그런데 김일성대에서는 중간고사나 학기말시험보다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 문답식 경연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작은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을 완전히 외워서 암송하는 것이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사상투쟁 무대에 올라 비판의 대상이 되며, 한 단락을 빼먹거나 몇 단어를 틀리다간 퇴학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끝내고 나면 눈물까지 흘린다고.

거기에 주체사상·조선노동당투쟁사·마르크스-레닌주의철학·혁명전통 등의 정치과목이 전체 교과과정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필수교양인데다가, 매년 250시간 가량의 군사학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특히 2002년부터는 주체사상 강의가 대폭 확대되어 쓸데없는 학습부담이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김일성동지 혁명력사" 필수과목을 담당한 여교원이 7.4 남북공동성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수령님의 회담 전략은 이후락을 쩔쩔 매게 했습니다. 회담 때문에 온 이후락을 우선 극도로 피곤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초대소에서 잠자리에 들자마자 곧바로 깨웠습니다. 그때가 새벽 1시였습니다. 새벽 1시에 차에 태워 싣고 가니 이후락은 혹시 총살하는 줄 알고 겁에 질려 쩔쩔 맸습니다. 도착한 곳에서 이후락은 열려진 문 사이로 '어서오라. 이후락'[33] 하는 우렁우렁한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예상도 못하고 수령님을 만나게 된 이후락은 이후 '예, 예' 하면서 홀린 듯이 우리 제안을 다 받아들였습니다…. 이후락이 갈 때 수령님이 성천 담배 2박스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후락은 이 담배 때문에 실각됐다고 합니다. 담배 맛에 홀린 이후락이 박정희에게 이 담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몰래 피웠다고 합니다. 원래 이후락은 박정희의 심복이었으나 북에서 받아온 담배를 몰래 피운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박정희는 이때부터 이후락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구실을 붙여 잘라 버렸으니 결국 이후락은 성천 담배 때문에 실각된 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일성의 회담 전략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이후락은 김일성과 만날 시간을 지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방북 첫날 긴장된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으며, 잠이 들락말락하던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갑자기 북한 당국자들이 깨워서 차에 태워 갔다고 한다. 이때 이후락은 만약 북한이 자신을 감금하고 국가 기밀을 대라고 요구할 경우 자살하기 위해 청산가리까지 휴대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만난 사람이 김일성.[34] (다만, 효과적인 회담 전략이기 이전에 이건 굉장히 심각한 외교적 무례다. 김일성이 똑똑해서 이런 전략을 쓴 것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이런 짓을 차마 못 하거나 안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이후락이 김일성에 꼼짝 못 했다거나, 담배 때문에 실각했다는 건 북한의 헛소리지만. 이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 및 1986년 월간조선이후락 인터뷰 참조.

굉장히 똑똑한 학생은 조기졸업이 가능하며 박사도 굉장히 빨리 받는다. 예로서 2010년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교육과학연구쎈터 소장을 맡고 있는 리관호를 들 수 있다. 리관호는 평양제1고등중학교[35]를 나와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진학했는데, 남들 5년 배울 수학과 물리학을 2년 만에 이수해서 '고체의 열력학적상태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3학년(21세) 때 학사학위를 얻었다.[36] 26세 때 생체물리학 분야에서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자체 조직화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 28세 때 부교수가 되었다. 31세 현재 (2002년) 물리학부 생체물리학 부문 강좌장을 맡았다. 당시 영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나 31세까지 결혼을 하지 못해서 어머니가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37]

해외 논문이 차단되어 연구수준이 낮고, 교육과정의 약 40%가 김씨부자 찬양이나 군사학에 낭비되고 있다. 실습도 엉망인데, 30년 전에 쓰이던 도구와 중국제 싸구려 약품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공계 쪽 이론 교육에 사용되는 학부 교재는 거의 최신이다. 러시아, 미국 원서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엄청 똑똑하다. 쉽게 말해 남한에 태어났다면 영재 코스를 밟았을 텐데 태어날 나라를 잘못 배정받았다.

“김일성대를 나온 학생이 석사생으로 들어왔어요. 중간과제 낸 걸 보고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연구 주제에 대한 분석 틀은 물론이고 분석 방법까지 흠잡을 데가 없더군요. 영어도 굉장히 잘하고요. 김대에서 딴 학점은 우리 대학원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공과목 몇 개는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인서울 대학 교수 인터뷰

사상과 관계된 내용은 최신이든 고전이든 모두 금지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90년대에는 학부생들에게는 완전히 금지였다. 금서를 밤에 몰래 필사해서 돌려보는 비밀 독서회 같은 식으로 공부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같은 것도 다 금서이다. 90년대에 돌아다니던 책 중에는 '미국개관' (500여쪽)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철저한 정보통제를 받고 있던 학부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 식량생산이 한 해 6억t, 농부는 전체 인구의 2.5%, 농업 비중은 GDP의 4% 정도였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는 북한 대학생들에게는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2010년에는 위키백과가 인쇄본(200여 쪽)으로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충격을 주고 있다.

여담으로 한 때 인터넷상에 김일성종합대학 정경대학 기말고사 시험문제가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참고로 마지막 문제는 오키시오 정리[38]를 논파해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을 증명하면 된다.

7.1. 논문

고등학생 수준의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순위만 보면 북한은 4~6위 정도로 굉장히 높은 순위에 있다. 하지만 세계 연구와 비교해 수준은 처참하게 뒤떨어진다. 왜냐하면 북한이 폐쇄적인 국가라서 국제 학술지의 논문을 거의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부분의 학자들은 해외 논문을 거의 읽지 못하고, 연구의 논문의 인용관계 대부분은 거의 99%가 북한 내부의 논문끼리 인용한 것이다.[39] 천재급 실력과 당성 모두를 인정받아서 해외 학회를 참석해서 구글 검색을 하든지, 중국 학자와 공동연구를 통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써내는 식이다. 대한수학회 회장에 따르면, “가끔 해외 학회에서 북한 수학자들을 만나면 논문 한 편이라도 더 보려고 시간을 쪼개서 북한에서는 금지된 구글 검색을 하더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연구논문의 서두에는 반드시 김일성 혹은 김정일 혁명력사에서 한 구절을 따와서 수령님, 장군님이 이렇게 교시하였으므로 이렇게 연구하였다. 라는 쓸데없는 구절이 붙어있다.

다음 사진을 보면 논문 형식은 교양 보고서만도 못한 개판 5분 전임을 알 수 있다. 내용 또한 막장인데, 소위 학술적 글쓰기라고 할 만한 객관성과 이성적 태도를 전혀 갖추지 못함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것은 북한 자체가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로 움직이는 막장이라 학문의 객관성과 엄밀성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북한에서 발간되는 논문과 학술서적, 통계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40]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지면, 김정일은 대기업이나 군산복합체와 같은 대독점체[41]가 해외침략이나 신식민주의정책[42] 등을 통해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현대 제국주의의 특징이라고 본다. 따라서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평화조약이나 후진국에 대한 원조와 같은 현대수정주의자[43]들의 주장은 거짓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이들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4]

과거에 국제 연구를 거의 하지 못했던 데 비해, 요즘은 그나마 조금씩 하고 있다. 북한의 SCI급 연구는 2005년에서 2015년까지 260편이다.[45] 그중 32편은 다른 나라 학자와 공동연구하지 않고 북한 안에서만 연구해서 실은 것이다.

2010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의 김남철, 고명철, 임송진 및 Qu-Quan Wang (중국 우한대학교 물리학과)에서 'Switching of a single propagating plasmon by two quantum dots system'라는 논문을 Applied Physics Letter에 실었다.[46]

2016년 말 북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과학자는 김일성종합대 물리학부 강좌장인 강진우 박사(37)로 총 8편의 SCI급 논문을 발표했다. 입자물리학을 전공했으며 북한 최초로 국제이론물리센터의 회원이 됐다.[47] 논문 보기. 독일에 유학하여 러시아 출신의 우주론 학자인 무카노프 박사 밑에서 수학했다. 한국에서도 교수를 할 수 있을 만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물리학 전공자의 수정 바람.

물리학부 교원 강진우 동무는 암흑에네르기에 대한 새로운 량자마당론을 비롯하여 현대소립자우주론에서 난문제의 하나로 나서고 있는 우주의 시원과 진화에 대한 소립자리론모형을 새롭게 제기함으로써 세계물리학계의 일류학자들과 어깨를 당당히 겨루고있다.

그 외에 2009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한송철 교수가 최초로 한국 수학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도 했다.[48]

2018년 9월 4일 김일성대 리일남 교수 등이 국내 IT 학회에 논문을 게제해서 화제가 되었다. #

8. 통일후 전망

남북통일/교육 문제

9. 참고 자료

  • 중요 참조
  • 단순 참조

10. 출신 인물

※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은 현재 내각의 고등교육상을 겸하고 있다.

  • 김길선(탈북자) -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전 제2자연 과학 출판사 정치선동부 기자.현재는 대한민국에 정착하여 방송과 유튜브에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 김양건
  • 김정은 - 북한의 현 국가원수. 그 누구도 김정은이 대학생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다.
  • 김정일 - 정치경제학과. 북한의 전 국가원수.
  • 김평일 - 북한의 외교관, 김정일의 남동생.
  • 리설주 - 김정은의 아내.
  • 박진희(탈북자) - KBS 북한 전문기자. 배우 박진희와는 동명이인이다.
  • 오극렬 - 북한의 군인 및 정치인.
  • 장더장 - 중국의 정치인. 서열 3위. 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 장성택 - 북한의 정치인.
  • 조경철 - 과학자, 입학만 하고 월남했다.
  • 조명철(탈북자) - 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조종학과 교수, 대한민국 19대 국회의원. 1994년 탈북.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4번)로 당선. 최초의 새터민 출신 국회의원이다. 남북 모두에서 높으신 분들을 체험한 특이 케이스.
  • 주성하(탈북자) -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지명관 - 전직 대학 교수, 입학만 하고 1946년에 월남했다.
  • 최룡해

11. 사건·사고

  • 2015년 5월경 이 대학 캠퍼스에 "김정은지 애비를 100배 능가하는 살인자다"라는 낙서가 발견되어 당국에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결국 범인을 색출한다고 평양뿐 아니라 평성사리원 일대까지 수사를 했었다. 그런데 수사하는 방법이 사람들에게 글씨를 쓰게 한 다음 필체를 비교하는 매우 후진 방법이었다. 필적감별의 관점에서는 타당하긴 한데 민주주의 국가의 법정이라면 당연히 이것만으로는 결정적 물증으로 채택될 수는 없다. 물론 범인이 잡혔는지는 알 수는 없다.
  • 북한의 前 외교관이었던 고영환의 저서 "평양 25시"에 따르면, 1987년 일명 "주패사건"이 터져서 꽤나 말이 많았다고 한다. 정치경제학부의 핵심계층 자녀 10명이서 도박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처벌감이 되는데 판이 점점 커지자 달러나 컬러 TV로 시작했던 판이 어느새 여대생까지 끌어오게 되었고, '질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겼는데 끝내 알몸이 된 여대생 옆에서 계속 플레잉 카드로 도박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적발되었다. 이게 생각보다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 10명은 곧바로 신나게 두들겨맞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본 다른 학생들은 '우리(북한)가 그래도 평등하긴 하구나… 도박 앞에선 얄짤없다.'라고 생각했지만 불과 6개월 후 모두 멀쩡히 복권되었다고 한다.
  • 서울대 총학생회가 김일성대 학생위원회에 이메일을 보내서 기사가 나는 등 관심을 모았다. 서울대 총학에서 2018년 8월 24일에 김일성대에서 온 답장을 공개했다.#


  1. [1] 김일성종합대학 부속 평양의학대학 위치. 이 위치는 일제강점기 평양의학전문학교가 있던 곳이다.
  2. [2] 직접 관련은 없지만 김천대학교, 김해대학교 등 남한에도 김대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하는 학교들이 몇 있다.
  3. [3] 참고로 서울대학교의 경우는 교수(교수 + 조교수 + 부교수) 1,895명에 학부생 16,712명과 대학원생 11,299명으로 학생은 약 28,000명 정도다. - 2013년 4월 1일, 서울대학교 홈페이지
  4. [4] 이 사람은 아들과 다르게 독립운동가로, 훌륭한 사람이다. 김형직군의 그 사람 맞는다.
  5. [5] 서울대의 개교를 추진했던 최고책임자는 경성제대 출신이 아닌 연희전문학교 출신의 백낙준이었다. 미국 프린스턴대예일대에서 유학했던 백낙준은 미군정의 신뢰를 받아 전후 경성제대의 문과대학장에 취임했고 서울대의 개교를 주도했다.
  6. [6] 북한은 2004년 대대적인 학제 개편으로 9월 학기제를 4월 학기제로 고쳤으며,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를 각각 소학교와 중학교로 개칭했다.
  7. [7] 다만, 부모가 권력이 있는 경우라면(나름 고위직이나 당성만으로 합격이 가능한 최고위층보다는 낮은 지위일 경우) 다른 고등중학교 5학년에 편입해 다음 해에 재시험이 가능하다. 사실상 유일하게 북한에서 재수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8. [8] 당성을 고려한 출신 성분
  9. [9] 일례로 탈북자 김만철의 장남 김광규는 머리가 상당히 뛰어났으나 저놈의 출신성분이 나빠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남한에 와서 홍익대학교에 입학했다. 흔히 아는 그 대학들이 아닌 홍익대라는 점에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북한의 교육과정은 10년 내내 김씨 일가 우상화 교육만 받는다고 봐도 될 정도로 영양가가 없는 교육이라 남한의 교육내용과 너무 달라 탈북자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사람은 그걸 다 뚫고 인서울대학을 간 것이다.
  10. [10] 물론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이 나쁘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명문대에 못 간다.
  11. [11] 예를 들어 역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도 북한은 대한민국 못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기사
  12. [12]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가난하지만 성적이나 생활에 문제가 없는 김대생 및 명문대생에게 생활비를 후원해주는 대신 졸업 후에 자기 딸과 결혼시키는 부자들도 꽤 있다고 한다. 이런 후원자를 잡으면 생활비뿐만 아니라 졸업때 예비사위의 직업배치를 위해 힘을 써주거나, 심지어 딸밖에 없으면 데릴사위로 들어가 후계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인생역전을 하게 된다고 한다. 만약 배신하거나 바람 피우면 피의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13. [13] 초등학교 때 2년 동안 주1회 수업으로 한반도의 전근대사와 세계사를 다 배운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런 것도 있다고 훑고 지나가는 수준이다. 그리고 그 근현대사에서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배운다(…).
  14. [14] 작가가 표현하려는 사상적 알맹이
  15. [15] 아마 '평양대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지거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16. [16] 4년제 과정이다.
  17. [17] '통제'라고 하니까 쓸데없어보이지만 사회주의 경제학의 큰 축 중 하나인 계획경제 이론을 가르치는 나름 중추 학과이다.
  18. [18] 이 학과도 명칭만 보면 놀랍지만 실상은 그리 희한한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조종은 제어(control), 조종학은 제어공학을 말한다. 조종학은 최적화의 일종으로 기계공학, 전자공학, 경제학 등에 쓰인다. 북한에서 '경제조종학'이라 말하는 것은 최적제어론같이 동태적 최적화를 수리경제학에 응용하는 것을 말한다.
  19. [19] 통합경영정보체계 프로그람(ERP) 같은 것을 만드는 곳이다. 우리가 말하는 정보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20. [20] 학생들이 교수들보다 더 힘이 세다고 한다. 다른 학과 선배라도 경제학부 후배한테 먼저 인사를 할 정도라고 한다. 한 예로 축제 때 보위부에서 강제로 천막 등을 걷자 경제학부 학생이 나 누구 아들인데 밥만 먹고 치우겠다 라고 하자 보위부가 그냥 갔다는 일화도 있다.
  21. [21] 참고로 전 세계에서 특정인물을 연구하는 학과는 김일성대학의 저 두 학과와 우루과이에 있는 몬테비데오 국립대학의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 학과밖에 없다. 영남대학교에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이 있으나, 박정희 개인이 아닌 새마을 운동을 연구하는 대학원이다. 다만 단순히 인물명으로 따진다면 배재대학교의 단과대학명이 인물 이름이다. 이외에 리버풀호프 대학에 비틀즈 대학원이 있으며, 교양과목으로 범위를 넓히면 마돈나 등이 있다. 그 외에도 J.R.R. 톨킨의 작품들이나 김용의 무협 소설 등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도 있기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이지 작가 자체에 대한 연구는 아니기에 좀 애매한 경우다.
  22. [22] 대남 공작 기관, 우당 (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 국립 종교단체 (불교도연맹, 카톨릭교협회)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이것이 모두 평양에 있다.
  23. [23] 출처: 신문기사
  24. [24] 헌법 앞에 대놓고 김일성을 붙이는 나라다.
  25. [25] 이전에는 북한 내 법학 고등교육기관이 김일성종합대학에 유일하게 있다는 기술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방에 단과법률(학)대학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대학을 졸업해도 사법분야로 직장 배치를 받을 수 있다.
  26. [26] 각 직할시·도에 한 개교씩 설치되어 있다
  27. [27] 그런데 남한에도 건국대학교경희대학교처럼 지리학이 자연계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지리학은 인문계로 분류된다.
  28. [28] 참고로 이쪽은 적대계층만 아니라면 출신성분 필요없이 성적 위주로 선발한다.
  29. [29] 남한에도 주로 이과대와 공과대에서 전공을 확정하기 전에 임시로 반(班)을 편성하는 경우가 있고, 실제로 이렇게 편성하면 과가 갈라져도 은근히 내부결속이 남아있을 정도로 강해진다. 이외에도 "분반" 개념으로 나누는 학과들도 있으니...
  30. [30] 한국의 선도부.
  31. [31] 국립중앙도서관 정도의 개념이다.
  32. [32] 5~1점 성적 표기, 미리 정해진 수업 시간표는 공산권 국가들 대학교육방식이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요즘도 그렇게 하는 곳이 많다.
  33. [33] 물론 실제 김일성은 이후락에게 '이부장 선생'이라 불렀다.
  34. [34] 하필 이때 이후락이 가지고 있던 약이 녹아버려서 바로 악수할 때 손을 내밀지 못해서, 김일성이 순간 멈칫했다고.
  35. [35] 각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을 제1중학교에 모으고, 그 중 가장 뛰어난 학생을 평양제1중학교에 모아서 공부시킨다.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 대비도 평양제1중학교에서 한다.
  36. [36] 자연과학부 학사과정은 5년이 정상
  37. [37] 한국과 비교하자면, 자연계열 박사 취득에는 평균 63개월 (5년 3개월)이 소요되고 석사 취득에는 2년이 걸린다. 상당히 빠른 과정을 밟더라도 만 29세는 되어야 박사를 받을 수 있다.
  38. [38] 오카시오 모형의 명제
  39. [39] 물론 이공계열 학생들은 미국이나 러시아 원서로 공부하고 있다.
  40. [40] 하긴 이러한 일은 중국에서도 자주 발견되며, 학문이 사상적 통제를 받기 시작하면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잘 드러내는 단편이다.
  41. [41] 독점자본.
  42. [42] 위성국가에 대한 경제적인 수탈
  43. [43] 사민주의자.
  44. [44] 읽어보면 유럽, 미국, 중남미, 일본 등 전 세계의 급진좌파 계열에서 오랫동안 논의되던 이야기로 새롭지도 않고 독창적인 해석도 전혀 없다. 엄격하게 본다면 사회과학 논문보다는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대중선동연설에 가깝다.
  45. [45] 연간 20여 편에 해당한다. 참고로 대학별 순위를 매기자면 국내 20위인 영남대가 연간 200여 편을 내놓고 있다.
  46. [46] 인서울 중위권 대학교의 고체-응집물리 박사과정에서는 APL급 2편 이상이 졸업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47. [47] 이 센터는 개발도상국의 물리와 수학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유네스코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탈리아 정부가 1964년 세운 이론물리 및 수학 연구소다.
  48. [48] Wei Yao (화베이과학대학), 한송철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On ideals, filters and congruences in inclines", 대한수학회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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