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정치인)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무)

선거구 신설
정미경[1]
박광온[2]

제20·21대
김진표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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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영통구)

신설

제17·18대
김진표

개편
김진표[B]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수원시 정)

개편
김진표[B]

제19대
김진표

제19·20대
박광온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6대
한덕수

7대
김진표

8대
최종찬

대한민국 재정경제부 차관

국민의 정부

7대
이정재

8대
김진표

9대
윤진식

}}} ||

대한민국 제17-21대 국회의원
김진표
金振杓 | Kim Jinpyo

<colbgcolor=#004ea2> 출생

1947년 5월 4일 (73세)

황해도 연백군[4]

본관

김녕 김씨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 41회)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위스콘신대학교 (공공정책학 / 석사)

병역

공군 일병 소집해제(방위병)

신체

170cm, A형

가족

배우자 신중희, 슬하 1남 1녀

종교

개신교 (기독교한국침례회)[5]

정당

現 지역구

경기 수원시 무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7, 18, 19, 20, 21

소속 위원회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

약력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재정경제부 차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민주당 최고위원
제19대 국회 지방재정특별위원회장
아주대학교 초빙교수
국정기획자문위원장

SNS

1. 개요
2. 생애
2.1. 관료 시절
2.2. 정치 활동
3. 업적
4. 논란
5. 여담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

관료시절 능력을 인정 받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중용되어 부총리, 장관, 차관 등을 5번이나 역임했다. 정계 입문 이후 지역구 수원에서 내리 5선에 성공했다. 2000년대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오랜기간 경제정책을 주도해온 인물로 2003년 노무현 당선인 인수위원회 부위원장[6]을 지냈으며,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모두에게 중용되었지만 전형적인 우파의 경제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진보진영과는 상극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경제부총리 시절 법인세 인하, 부동산 규제완화, 건설경기 부양, 노동유연성 강화 등 한나라당과 전혀 다를게 없는 정책을 추진해서 진보진영에서 격렬하게 반발한 적이 있다. 이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대표하는 경제관료 2인(이헌재, 김진표)으로 평가받는다. 사회적으로도 동성애, 낙태에 부정적인 사회보수주의 성향에 가깝다.

2. 생애

1947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네살때인 1950년 6.25 전쟁 중 아버지의 손을 잡고 피난하여 수원시에 정착했다. 이 때 곧 따라오겠다던 어머니는 영영 따라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되었다.

수원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서호초등학교, 수원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이후 서울로 유학하여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2.1. 관료 시절

1974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무관련 부처에서 오랫동안 재경직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하였다.

  •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을 역임하였다. 경제부총리를 역임하며 신용카드 대란을 수습했다.

2.2. 정치 활동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교육부총리)를 역임하였으며 2007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여 출마하지 못했다. 경선 과정에서 패배한 것이기에 의원직은 유지하였다. 이때 유시민은 김문수에게 패해 낙선하긴 했지만, 김진표가 물심양면으로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것에 대해 훗날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관련 글

2011년 5월 정세균 등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고, 당선되어 같은 해 12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밖으로 크게 지는 결과가 대부분이었다가 출구조사에서 앞서 역전의 가능성이 보였으나, 개표 결과는 새누리당남경필 후보에게 단 1% 차이로 밀려 낙선했다.

2014년 7월 열린 재보궐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박광온 의원을 지원하여 당선되도록 도왔다. 관련기사 그리고 2015년 3월 문재인 당대표 밑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이 때 대한민국 정당사상 최초로 열린 정책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아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능한 경제정당, 정책정당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새롭게 신설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원래의 지역구는 박광온이 자신이 사퇴했을 때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이 선거구를 옮겼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선거 공동대책위원장과 일자리위원장을 맡았으며, 문재인의 당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위원장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국정기획자문위원장으로서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설계, 발표하였고, 특히 강점인 경제분야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성장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직인 남경필 지사와의 경기도지사 리매치가 점쳐졌으나,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전해철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아무래도 경선까지 포함해서 두 번이나 패배한 만큼 또 출마하기에는 부담이 컸던 듯. 또한 70대의 많은 나이도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7]

2018년 7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예비경선 컷오프를 통과하여 이해찬, 송영길과 민주당 당대표직을 놓고 겨루게 되었으나, 3위로 낙선했다.

2018년 9월, 이해찬 당대표에 의해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자문기구인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2019년 11월부터 문재인 정부의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 그러나 본 문서 하단에 나와있는 숱한 논란거리 때문에 진보진영 전반적으로 국무총리 지명을 반기지 않는 모습이다. # 반대로 소상공인연합회, 외식업중앙회, 한국SWㆍICT총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김 의원이 총리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지지성명을 발표했으며, # 김무성 등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김진표 총리 임명을 찬성하기도 하였다. #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정권의 총리 후보자에 대해 진보층보다 보수층에서 찬성 여론이 더 우세한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김진표 내정설이 돌 때부터 후술되어 있는 논란들과 정체성 때문에 시민단체에서 반발하고 있었고, 지명 철회 요구까지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민주당 권리당원 카페에서는 2012년 전후 입당한 친문과 구 친노에서 대립각이 세워졌고,[8] 여권 내에서도 기류가 심상치 않자 김진표가 직접 대통령을 만나 고사의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후 거론되는 인물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 결국 정 전 의장이 문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되었다.

21대 총선에서는 단수공천을 받아 5선에 도전하여 무난히 당선되어 21대 총선 최고령 당선자가 되었다. 동갑인 통합당 홍문표보다 생일이 약 5개월 빠르다.

21대 국회의장 후보로 언급되었다. 결국 5월 25일 최다선 박병석 VS 최연장자 김진표의 양자대결로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

5월 20일 국회의장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은 박병석 의원의 몫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3. 업적

3.1.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대통령비서실장도 모르게 비밀리에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때, 홍재형 등과 함께 관료로서 비밀리에 실무를 담당해 금융실명제의 성공적인 안착에 기여하였다.

3.2. 국민의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으로서 부동산 실명제 도입의 실무를 총괄했다. 금융실명제에 이어 실명제 도입에 더블을 달성한 흔치 않은 이력을 지닌 셈. 또한 2001년에는 정책기획수석으로서 국민의정부에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정책을 수립하는데 공헌을 했고, 2002년에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한일월드컵 성공개최와 경제성장률 10.1%를 달성하는데 기여했다.

3.3. 참여정부 시절

여기부터는 논란이 많지만 경제부총리로서는 국민의정부에서 경기부양 목적으로 과대발급한 신용카드로 인해 카드 대란이 벌어졌을 때, 이것을 1년만에 수습했고 경제는 안정을 되찾았다. 교육부총리로서도 죽음의 트라이앵글 등 여러 비판점이 있지만, NEIS 도입을 추진했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만드는 등 업적도 존재한다. 사실 교육부 장관은 누가 해도 성공하기 힘든 자리다. 이 밖의 논란들은 아래 문단을 참조.

4. 논란

  자세한 내용은 김진표(정치인)/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

  • 팬들에게는 진표살이라고 불린다. 이재명 도지사가 본인에게 조금만 불리한 뉴스가 나오면 고소 고발 드립을 치는 것[9]과 달리, 고소, 고발을 잘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실제로 대외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온화한 성품으로 동료의원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정세균과도 매우 친밀한 사이로, 정세균은 김진표를 총리로 추천했고, 김진표는 총리직을 고사하며 정세균을 자신을 대신할 총리 후보로 추천했고, 이를 문재인이 받아들이며 정세균을 총리로 임명했다. 관련 기사
  • 일관되게 민주당에는 상주하고 있지만 김진표 본인 성향은 보수인지라 민주당에서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평가를 양측 지지자들 모두에게 평가받는다. 오죽하면 민주당에서 김진표를 총리로 검토했다가 보수 성향으로 인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발등을 우려해 거뒀을 정도. 진보가 ‘김진표 총리 반대’ 외치는 이유
  •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비토가 많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내정되었을 때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게는 신뢰받고 있다. 위의 정세균, 홍영표, 노영민과 민주당계 정당과 유사한 이념을 지닌 유시민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성향이 정반대일 것처럼 보이는 추미애는 당대표직을 수행하면서, 김진표를 당 정책위원회의 의장으로 임명했고, 김진표와 당대표직을 놓고 경쟁했던 이해찬은 김진표를 국가경제자문회의[10] 의장으로 임명했다. 2012년 선대인, 우석훈,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등이 김진표를 X맨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하자 친노의 좌장이라 여겨지던 이해찬이 김진표 의원은 우리와 개혁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며 엄호한 적도 있다.관련 기사[11] 또한, 차기 국회의장으로 거론되고 있음에도 역시나 비토가 많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영통)

열린우리당

49,155 (48.3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영통)

통합민주당

40,781 (49.83%)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정)

민주통합당

68,274 (61.02%)

당선 (1위)

3선[12]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새정치민주연합

2,478,667 (49.56%)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무)

더불어민주당

62,408 (51.48%)

당선 (1위)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수원 무)

더불어민주당

82,002 (55.21%)

당선 (1위)

5선

7. 둘러보기

경기도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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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제19대 국회 당시 수원시 을 선거구의 국회의원이었다.
  2. [2] 제19대 국회 당시 수원시 정 선거구의 국회의원이었다.
  3. [B] 3.1 3.2 제19대 국회부터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가 수원시 정 선거구로 개편되었다.
  4. [4] 당시 미군정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5. [5]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남경필 도지사와 맞붙은 적이 있다.출처
  6. [6] 국무총리실에서 일하던 우석훈은 2003년 김진표가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자, 노무현 정부는 미래가 없다면서 사표를 던지고 나온다. 그뒤에 출판한게 바로 88만원 세대. 실제로 우석훈은 그때부터 십수년간 줄기차게 김진표가 경제정책의 키를 쥐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참여정부가 망가졌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7. [7] 20대 국회에서 김진표는 문희상, 심재권 다음으로 민주당 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의원이었다. 그 뒤를 변재일 의원, 이수혁 의원, 오제세 의원, 최운열 의원, 윤일규 의원, 진영 의원, 정세균 前 의장이 따른다.
  8. [8] 이재명 때도 비슷했는데, 이재명의 논란은 본인이 직설적으로 구사하는 화법이 여당 지지자의 반감(특히, 문재인 비판) 등으로 안 좋았던 것이 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벌어진 논란은 김진표보다도 적은 편.
  9. [9] 본인도 자신이 고소대마왕임을 인정했다.
  10. [10] 당의 자문기구로 경제정책 전반을 자문하고 총괄하는 자리다.
  11. [11] 다만 강성진보층에서는 이해찬도 김진표와 똑같은 삼성인맥으로 본다. 이해찬의 형인 이해진이 삼성전기 사장을 지내는 등 삼성그룹의 최고위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해찬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침묵하는 쪽이다.
  12. [12]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어 2014년 5월 15일 의원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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