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직

  북한의 행정구역에 대한 내용은 김형직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름

김형직 (金亨稷)

출생

1894년 7월 10일

출생지

조선 평안도 평양부[1]

사망

1926년 6월 5일

사망지

중화민국 지린 성

학력

숭실학교 [2]졸업

직업

독립운동가

종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가족관계

아내 강반석

아버지 김보현

어머니 이보익

동생 김형권, 김형록

아들 김일성[3], 김철주[4], 김영주

손자 김정일, 김만일, 김평일, 김영일, 김현

손녀 김경희, 김경진, 김백연

증손자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증손녀 김설송, 김춘송, 김여정

현손김한솔

현손김주애

1. 개요
2. 우상화
3. 통일 후의 재평가?

1. 개요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로, 김일성의 아버지.

집안은 할아버지 김응우 이래로 지주 이평택(李平澤) 집안의 묘지기였으며, 조만식숭실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1917년 조선국민회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2월 평안남도 일본제국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형사소추를 받다가 그 해 출옥해 조국광복회를 조직했다. 이후 3.1 운동에 참여했으며, 1919년 5월에 만주로 건너갔다. 이후 그는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큰 돈을 벌었고 남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 산하단체의 회원으로 있었다. 관련 기사. 1925년에는 지린성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참고로 그는 엄청난 반공주의자였다. 그가 만주에 있을 무렵 남만주에선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공산당들도 자신들과 사상이 다르면 반동으로 몰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살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행태를 여러 번 봐왔던 김형직은 성격이 원래 깐깐하고 강직하기도 해서 공산주의자를 상당히 미워하였는데,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약도 팔지 않고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을 정도라 한다. 이런 반공 성향으로 공산당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결국 1926년 6월 5일 공산주의 집단에게 피살당했다. 향년 31세.

그의 아내 강반석 역시도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바 있다. 북한의 선전선동이 많지만 조선국민회에 참가하고, 김형직이 공산주의자들한테 암살당한 이후, 강반석이 조선 내로 들어와 신간회에 “민족주의자” 계열로 참가한 것도 확인된다고 한다.

아내(강반석)도 열렬한 독립운동가이면서 여성들에게 독립운동을 하자고 가르친 것도 모자라 힘든 가정에서도 열심히 남편을 도왔다.

반면에 그 아들은....

2. 우상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일성의 아버지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살해됐다는 것이 아이러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반동분자에 적대세력으로 몰아 처형하거나 수용소에서 죽게 만들었을 텐데, 북한 최고지도자의 친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훗날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수립된 북한 정권이 동네 이름까지 갈아치우며 우상화했다는 것이 놀랍다.

비록 공적이 다른 독립운동가들에게 밀리고 인지도도 부족해서 묻혀지긴 했지만, 김형직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이로 인한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전술했듯이 북한에서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평안북도 후창군을 그의 이름을 따 김형직군으로 개칭했다. 그의 며느리이자 손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옛 함경남도 삼수군 신파면 일대)과 그의 동생인 김형권의 이름을 딴 김형권군(옛 함경남도 풍산군)도 이와 마찬가지 케이스다.

3. 통일 후의 재평가?

남북통일 이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흔적을 모두 없앨 때 김형직 역시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이 있지만, 후손 잘못 둔 것 빼고는 그래도 평생 반공주의자였고 독립운동을 도왔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통일 이후 대한민국에서 김형직의 아들인 김일성과 후손들의 시체나 흔적을 없애고 반민족행위자로 기록할 때, 유일하게 김형직과 그의 아내 강반석은 독립운동자로 기록하고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점에서 김형직군을 다시 후창군으로 돌리고 북한 전역에 있는 모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동상을 철거하는 대신에, 김형직과 아내 강반석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념작업은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형직이 태어난 평안남도 대동군(지금은 평양)에 있는 생가를 보존하고, 생가에는 김형직과 강반석의 독립운동과 반공활동 행적을 기록하면서 못난 아들손자 때문에 공적이 가려진 점을 위로하는 공덕비 정도는 세워줄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내려온 고정관념이 문제이기는 하다. 남북통일 이후에 북한 주민들은 환영할 지 모르겠지만, 김일성의 조상인 김형직을 대한민국(남한) 주민들이 쉽사리 받아들일지는 의문. 그렇다고 남한 출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김형직이 반공주의자였다는 것을 강조하면 북한 출신 사람들이 반감을 가질테니 문제다.


  1. [1] 부군면 통폐합 이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대동군 지역이다.
  2. [2] 지금의 숭실대학교
  3. [3] 원래 이름은 김성주. 이후 김일성으로 개명함.
  4. [4]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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