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턴 1세

평범한 상인 시절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으며, 누구도 약탈하지 않았고, 그 어떤 나라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은 점. 그 점에서 그와 같은 부류(다른 군주)들에 비해 훨씬 나은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that he had shed no blood; robbed no one; and despoiled no country; which is more than can be said of his fellows in that line."). -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장 패트릭 크롤리(Patrick Crowley)

제호

노턴 1세, 미국의 황제, 멕시코의 보호자
(Norton I, Emperor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rotector of Mexico)

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Joshua Abraham Norton)

황궁

샌프란시스코

생몰년도

1819년 1월 2일? ~ 1880년 1월 8일 (61세)

재위기간

1859년 9월 17일 ~ 1880년 1월 8일 (20년 118일)

장례식

1880년 1월 10일

1. 소개
3.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
4. 사후 평가 &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5. 대중매체

1. 소개

Emperor Norton I. 본명 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Joshua Abraham Norton). 미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황제를 자처한 인물.

영국 런던 출신으로, 어릴 때 가족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으로 이주했다. 그는 일찍이 상업에 종사해서 돈을 제법 벌었으며 1848년 사망한 아버지의 가산을 처분하고 남은 4만 달러를 가지고 브라질로 이주했다.

1849년 노턴은 골드 러시가 터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노턴은 금보다는 다른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잡화점을 여러 개 내어 1853년에는 25만 달러나 모았다. 당시 미국중국 청나라로부터 수입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고 기근이 들어 쌀 수출금지령이 떨어지고 본래 4센트였던 쌀값이 9배인 36센트까지 폭등한다. 노턴은 쌀 수입업자에게 2천 달러 선금을 주고 나머지 2만 5천 달러는 30일 후에 주겠다는 계약을 하고 쌀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쌀값은 계속 올라 1파운드당 5센트 하다가 50센트까지 폭등하게 됐는데 이때 팔았더라면 노턴은 떼돈벌고 대성공을 했겠지만 더 큰 욕심 때문인지 묵혀두었다. 그 후 난데없이 페루 쌀이 들어오자 쌀값은 폭락하게 되고 50센트나 하던 쌀은 순식간에 3센트로 떨어지게 되었다. 노턴은 본전도 못 건질 위기에 처하자 급히 계약을 취소하지만 법정에서 패했고 2년 후 파산하게 된다. 이 때 그는 몇 년 동안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게 되는데 이 몇 년 동안의 행적은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1859년 9월 17일 노턴은 어느 군인에게서 받은 허름한 육군 군복의 차림을 하고 정신이 약간 불안정한 상태로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노턴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인 블리턴에 찾아가 편집장에게 자신을 미국의 황제 노턴 1세라고 선언했다.

편집장은 속으로는 기가 찼지만 흥미를 느끼고[1] 신문판매부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그의 선언에 동의하며 신문 1면에 황제 즉위 기사를 싣게 된다. 그리고 황제 선언에 뒤이어 1주일 뒤 2차 선언에서, 노턴 1세는 버지니아 주지사 등 고위 관리들의 부패를 이유로 미국 정부의 해산을 명령하고 대통령직 박탈과 더불어 의회를 해산한 뒤, 황제가 친히 정사를 돌본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미국은 고위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들끓고 있어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기뻐했으며 노턴 황제는 시의 최고 유명인사가 되었다. 거 참 훈훈한 동네네

수도 워싱턴 D.C.의 행정부가 노턴 1세의 제2의 포고문을 무시하자 진노한 황제는 미합중국 육군참모총장에게 "필요한 병력으로 의사당에 진격하여 국회를 해산시키라"고 명령했다. 또한, 합중국의 각 주는 샌프란시스코의 음악당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고 법적으로 필요한 수정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뒤이어 황제는 멕시코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이 명백하므로 자신이 멕시코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선포했다. 뜬금포 제국주의

그는 자기가 가진 낡은 대령 군복 한 벌만을 입었고, 특별한 직업은 없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가 걸린 낡은 하숙집에서 살았다. 그는 매일 시민들을 만나거나, 하수구와 버스의 시간표를 점검하고 매주 종교적 화합을 위해교단의 종파를 바꿔가며 예배하는 통치 활동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개들이었던 '버머'와 '래저러스'의 주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아닌 듯 하다. 아마도 한 때 잡종개를 길렀던 부분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동시기에 존재했지만, 정작 본인은 왜 자신과 개들을 한 그림에 그려넣냐고 역정을 낸 적도 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아무리 봐도 과대망상증 환자이지만, 이 "자칭 황제"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서 미합중국의 황제로써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지도자였다. 여기에는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이웃이나 동업자들이 "멀쩡하던 사람이 사업 실패 때문에 미쳐버렸다 ㅉㅉㅉ"라고 사정을 알려주어 사람들에게 많은 동정을 산 점도 한몫 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2006년 3월 5일과 2013년 10월 6일에 황제의 일생을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2. 선각자

그를 본 시민들은 그에게 호의와 존경을 표했다. 실제로 노턴 1세는 상당히 명민한 행동과 혁신적인 생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만국 종교를 제창했고 19세기에 벌써 비행기의 연구를 위해 기금을 조성했으며 국제연맹, 즉 UN 같은 세계정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아프리카에서만 사용하던 현수교 공법으로 샌프란시스코 만에 다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훗날 그 자리에 지어진 현수교가 그 유명한 '베이 브리지(San Francisco–Oakland Bay Bridge)'다.

인품도 훌륭한 황제였다. 노턴 1세는 유대인이었으나 모든 종교, 모든 인종을 공평하게 대우했으며, 모든 종교의 집회에 출석했다. 모든 인종에게 공평했기 때문에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이때는 아직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이 노예로 살고 있었고[2] 황인(주로 "쿨리"라고 불렸던 중국 화교들)에 대한 차별도 심했으며, 또 그게 당연했던 시절이란 걸 생각한다면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다. 심지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반아시아인 폭동이 발발하자 단기필마로 폭도들을 가로막고 그들이 해산할 때까지 주기도문을 외웠다고 한다. 남북전쟁이 터졌을 때는 전쟁을 그만두라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 링컨과 남부연맹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를 소환했다. 물론 그 두 사람이 황제의 소환 명령에 응하지는 않았다. 노턴 1세: 불충한 것들 같으니

또 그는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하여 국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 채권은 당대에 인기가 있었던 건 물론이고 오늘날도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구하지 못해 안달인 희귀한 아이템이라고 한다.

바로 이 물건이다. 명기된 액수는 10달러. 일찍이 노턴 1세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이 국채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오늘날 이 국채는 전술한 바와 같이 화폐 수집가들에게 10달러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받고 팔 수 있다. 그러니까 황제는 약속을 지켰다![3]

3.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

따르릉 따르릉 비켜주세요 황제 폐하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으앙 귀여워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노턴 1세는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교통수단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감히(...) 센트럴 퍼시픽 열차회사에서 그의 무임승차를 거부하자 무엄하구나 황제께선 해당 열차 회사에 영업 정지를 선고하였고, 데꿀멍[4]한 철도 회사에서는 종신 무료 탑승권을 바쳐 사죄했다고 한다. 그냥 민폐잖아 그의 제복이 낡자 노턴 1세는 포고령을 내려 자신의 예복이 국가적인 수치라고 했으며 이에 시 위원회에서는 급히 황실 예복비용을 마련해 그에게 최고급 맞춤옷을 지어 바쳤고, 이에 노턴 1세께서는 매우 흡족해하사 감사를 표하는 친서와 함께 위원 전원에게 귀족 작위를 내리셨다.

헌 옷 사진.

샌프란시스코의 최고급 식당들이 그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으며, 노턴 1세의 허락을 받아 식당 입구에 "황실 인증 식당"이라는 금속 기념패를 설치했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극장들은 노턴 1세의 전용 특석을 마련해두었다고 한다. 보면 볼수록 훈훈해 미치겠다

황제를 위한 세금도 있었다. 상점은 주당 25~50센트, 은행은 매주 3달러. 이 세금은 당연히 강제 징수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냈다고 한다. 한 풋내기 경관이 원칙주의에 입각하여 그를 체포하자 격분한 시민들과 언론의 항의가 빗발쳤고 샌프란시스코 경찰서장이 직접 그를 풀어주고 공개 사과했으며 시 의회에서 노턴 1세에게 사절단을 보내 사죄했다. 이에 황제 폐하께서는 그 일을 잊어버리기로 했다면서 자신을 체포한 경관을 사면한다고 선언하는 관대함을 보여주셨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경찰들은 노턴 1세가 지나갈 때마다 경례를 바쳤다고 한다.

노년에는 이러고 돌아다니셨단다. 마실 좀 나가볼까

1876년 영국빅토리아 여왕(!!!)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1880년 1월 8일, 강연하러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쓰러진 후 돌아가셨는데 모든 상점들이 황제 폐하의 붕어소식을 듣고 문을 닫아 조의를 표했으며, 무려 3만 명의 조문객이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가득 메웠는데 부자부터 거지까지 신분과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에서는 "폐하(노턴 1세)께서 붕어(崩御)하시다."라는 대서특필과 함께 호외가 전 도시에 뿌려졌다. 이게 좀 대단한 게, 이때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고작 23만 명이었다. 거기에 이분의 장례식 때는 일식(!!!)까지 일어났다. 1880년 1월 10일이 장례식이었는데 10일과 11일 연속으로 일식이 발생했다고 한다. 10일에는 부분일식이었지만 11일에는 개기일식이었다고 하니 이 무슨 조화인지. 실로 하늘도 인정한 황제

노턴 1세. 미합중국의 황제이자 멕시코의 보호자

노턴 1세의 황릉 무덤. 우드론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묘비는 1934년 세워진 것이다. 그의 장례는 샌프란시스코 시 의회장으로 치러졌고 그의 장미빛 목관은 샌프란시스코 사업가협회에서 특별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황후 아내도, 황태자 자식도 전혀 없었던 독신자였기에 후손은 없다.

4. 사후 평가 &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훈내가 넘치는 동네 샌프란시스코라서[5]

나쁘게 말하면 한낱 과대망상증에 걸린 미친 영감(...)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었다. 노턴 1세의 통치법은 무위지치(無爲之治)[6]의 일종으로, 중국의 사상가 노자가 상선약수(上善若水)와 더불어 최고의 통치라 일컬었던 방법이다. 만력제? 실제로 노턴 1세는 미국, 혹은 샌프란시스코의 정계에 직접적으로 투신하거나 의견을 제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모두가 그의 이 별난 행보에 발을 맞추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노자 철학의 진수라고 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노턴의 행동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으며, 1974년 이후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있는 그의 무덤에서는 매년 기념 예배가 열리고 있다. 비록 그의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다. 노턴의 '재위 기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함께 살았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노턴을 모델로 한 왕 캐릭터를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등장시킨다. 다만 이 인물은 사기꾼 악당이다(...). 어허, 짐을 이렇게 다루다니. 무엄한지고! 실제 둘의 친분 관계는 꽤나 각별했다고 한다.[7]

또 다른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그의 1892년 저작인 The Wrecker에서 노턴의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스티븐슨의 수양딸인 이소벨 오스본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노턴은 "신사적이고 친절한 남자였고, 다행스럽게도 세상에서 가장 우호적이고 감수성이 짙은 도시, '그가 황제가 되고 싶다면 황제가 되게 하라'는 생각을 지닌 도시에서 살았다. 샌프란시스코 전체가 그와 함께 게임을 한 셈이다."라고 평했다. 노턴이라는 존재는 그의 과대망상증 뿐 아니라 그것을 받아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위트와 여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1월에는 이 "미합중국의 유일무이한 황제"의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기도 했다.

PAUSE, TRAVELER
AND BE GRATEFUL TO
NORTON 1ST

EMPEROR OF THE UNITED STATES
PROTECTOR OF MEXICO, 1859-’80,
WHOSE PROPHETIC WISDOM
CONCEIVED AND DECREED THE
BRIDGING OF SAN FRANCISCO BAY
AUGUST 18 1869

DEDICATED BY E CLAMPUS VITUS, FEB. 25, 1939

여행자여, 잠시 걸음을 멈추고
1859년부터 1880년까지 미국의 황제이자 멕시코의 보호자이시며
예언적인 지혜로 착상하여
샌프란시스코 만에 다리를 놓으라 명령하신
노턴 1세께 감사하라.
1869년 8월 18일

1939년 2월 25일 E Clampus Vitus가 헌정

베이 브리지에 가보면 "황제 노턴 1세 폐하의 황명으로 건설하다"라는 기념패가 부착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에서는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샌프란시스코와 바다 건너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 브리지의 이름을 노턴 1세 다리로 바꾸려고 했으나, 오클랜드 시의회에서 부결시켰다. 이유는 아무도 노턴 1세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라나. 이 고얀 놈들!! 그 후, 샌프란시스코 시민 조지프 루미아는 베이 브리지를 "노턴 황제 베이 브리지"로 개명할 것을 공식 청원했지만 안 받아들여졌다.

이 "자칭 황제"가 얻은 인기에서 미국인들이 당시에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자부심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추방하지 않고,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 조금 정신은 이상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자칭 황제" 가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추방하고, 재산을 빼앗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유럽의 군주들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여기고, 이런 풍자를 유쾌하게 즐긴 것이다. 정말 시 단위로 대인배가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는 비록 과대망상증에 빠진 자칭 황제였지만 이상적인 군주였다.

물론 이게 마냥 훈훈한 이야기는 아니긴 하다. 상기한 센트럴 퍼시픽 열차회사나 원칙주의에 입각한 경관은 지극히 당연한 대처를 한 것인데 시 단위 연극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바가지로 욕을 먹고 데꿀멍한 채 강제로 연극에 참가해야했으니...

스스로를 노턴 2세로 칭하는 제왕병자 과대망상자들이 이따금씩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자질들이 떨어져 노턴 1세의 행적에 따르지를 못하다 보니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나 이런 위대한 황제가 될 수는 없는 법이지 아니 그냥 이제 더 이상 저 당시의 샌프란시스코같은 훈내나는 동네가 없는 거 아닌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2월 14일을 '노턴 1세의 날'이라고 하여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 날에는 샌프란시스코 관광 안내를 전담하는 여행 가이드는 노턴 1세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5. 대중매체

닐 게이먼의 THE SANDMAN에서도 출연하는데 절망해서 자살하려고 하는 그를 본 DespairDream에게 오빠의 꿈이 저 남자에게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지?라는 내기를 걸었고, dream은 그에게 꿈을 줘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Delirium의 광기에 휘말리지 않고 Desire의 유혹을 이겨냈으며 죽기 전까지 Despair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즉 절망하지 않았다. Death에게 내가 만나본 왕 중 가장 멋있는 왕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뭔가 황제를 위하여의 황제와 비교된다. 차이라면 황제를 위하여의 황제는 미치광이로 모두에게 외면받은 데 반해 이 사람은 오히려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점, 그리고 정감록과 같은 구태의연한 예언사상에 기대에 살아온 황제와는 달리 노턴 1세는 시대를 앞선 혁신적인 행적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라이트 노벨 GGG의 소재는 이 인물이 모티브라고 작가가 1권 후기에서 밝혔다.

미국의 고전 드라마 <보난자>는 아예 이 인물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다 # 시즌 7의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현수교의 설치에 대한 노턴 1세의 탁견을 다루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크리스토퍼 무어의 더티잡이란 소설에서 황제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묘사가 이 분과 똑같다. 노숙을 하지만 주변 인물들에게 황제 폐하라고 불린다는 점,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는 점, 그리고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는 점까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 군도"에서도 자칭 짜르(러시아 황제)라는 소리를 하다가 잡혀들어온 수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행하게도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의 조직 NKVD(KGB의 전신) 검사관들조차도 미친놈 취급하면서 재미있어 했다고. "폐하께서는 새로운 황궁을 어디에 지으실거죠? 여기 멋진 루비안카(악명높은 러시아 감옥)는 어떠신가요? 한 번 관람해보시겠습니까?"라면서... 맞장구는 쳐주겠지만 대접은 없단다


  1. [1] 다시 말하면 이 편집장이 아니었으면 노턴 1세는 존재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2. [2] 단, 당시 샌프란시스코가 속한 캘리포니아 주는 남북전쟁 당시 자유주에 속했다.
  3. [3] 황제 생전의 10달러와 현재의 10달러는 가치가 다르지만, 채권 자체는 수집가들이 환장하고 소장하려 들 정도.
  4. [4] 한낱 과대망상증 환자의 말에 데꿀멍한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노턴 1세는 진짜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야 재밌게 놀고 있는데 찬물 끼얹지 마라
  5. [5] 아래에 나오듯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여유가 부족한 동네에서 노턴과 같은 자가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은 낮다.
  6. [6]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스림. 즉, 순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민정에 개입을 일절 끊은 채로 세상을 관망하는 것.
  7. [7] 그 예로, 1865년에 버머라는 노턴 1세의 애견이 죽었을 때, 마크 트웨인 본인이 직접 비문을 쓴 이야기가 있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