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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논어의 여러 버전
3. 내용과 특징
4. 편제
4.1. 여담
5. 관련 한자성어
6. 원문(한자)

1. 소개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 중의 하나. 공자 생전의 말 + 제자들의 말 + 출처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약간 포함된 유교 경전.

흔히 공자의 저작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1]이 그의 언행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

정작 공자 본인은 단 한 권의 저술도 쓴 적이 없다. 잘 알려진 춘추나 시경 등도 술이부작(述而不作)[2]의 원칙 하에 편집하기만 했을 뿐. 혹자는 공자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편집, 즉 술이는 술이인데 완전히 부작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공자 본인의 편집 철학은 술이부작이라고 한다.[3]

논어의 최종 버전은 공자 학파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증삼의 제자들이 완성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전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본래 버전은 제논어, 노논어, 고문논어 세 종류였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노논어의 교정본이다.

그런데 제논어가 발굴됐다! *

2. 논어의 여러 버전

2천년 이상 된 고전들이 대개 그렇듯 오랜 세월에 걸친 수많은 짜집기를 통해 완성되어 왔다. 논어가 형성된 건 최소 세차례, 수백년간으로 보인다. 1세대는 중궁, 자유, 자하 등의 직계 제자, 2세대는 유자, 민자 등의 직계 제자, 3세대는 전국시대 맹자나 동시대, 혹은 맹자 사후의 제자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당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관중에 대한 평가가 상론의 <팔일>과 하론의 <헌문>에서 다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노나라와 제나라의 평가가 서로 나뉘었던 것이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노논어와 제논어를 모두 담게 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분서갱유 때 당연히 논어가 소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논어의 원본이 뭔지는 알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분서갱유의 진짜 모습을 고려하면 그 때문에 원본을 알 수 없다는 말은 근거가 희박하다. [4]어찌되었든 전한대에 이르러 논어 같은 고전이 원래 담고 있는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연구하는 학풍이 훈고학이란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미 한나라 대에 세가지 버전의 논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지라 분서갱유 설은 설득력이 적다. 먼저 공자가 일생의 시작과 끝을 보낸 고국 노나라 옛 땅에 전해지던 텍스트(노논어)와 제나라 땅에서 별도로 전해지던 텍스트(제논어), 그리고 한경제곡부의 공자 생가를 허물다 벽에서 나온 텍스트(고논어)가 그것이다. 현재 전해져 우리가 보는 논어는 전한의 장우(張禹)가 노논어를 중심으로 하여 장구(章句)를 나누고, 제논어의 내용을 첨가한 통합본이다.[5] 논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한나라 경제, 무제 연간이라고 하며, 후한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며, 3-4세기 경 한성백제시대 목간에 5편인 공야장(公冶長) 편의 주요 내용이 기록되어 남아있다.

논어에 대한 주석도 이때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져 공안국, 마융, 정현 등이 주석을 달았으나 지금 전해지지는 않으며, 위나라(魏)의 하안이 이를 바탕으로 《논어집해》(論語集解)를 펴냈다. 이 《논어집해》를 저본으로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황간이 《논어의소》(論語義疏)를 저술하였고, 송나라 때에는 형병이 《논어정의》(論語正義)를 저술하였는데 모두 《논어집해》에 대한 재해석에 해당한다. 이중 형병의 《논어정의》는 북송대에 《논어집해》와 함께 십삼경주소에 포함되었다.[6] 성리학이 집대성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읽혔던 것이 바로 이 《논어주소》(論語注疏)이다. 《논어의소》의 경우에는 현학적 경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 하겠으며,[7] 형병의 경우에는 훈고를 중심으로 하는 주석학의 경향에서 의리를 밝히려는 경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여기까지를 일반적으로 고주(古註)라고 한다.[8] 이후 남송의 주자가 그 동안 축적된 연구성과를 집약해 《논어집주》(論語集註)를 편찬하였는데, 이것을 신주(新註)라고 한다. 여기에는 《논어주소》의 설은 물론, 정호(程顥), 정이(程頤), 사량좌(謝良佐), 장식(張栻), 범조우(范祖禹) 등 송대 유학자의 설이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었던데다가, 원대 이후 성리학이 관학의 지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논어집주》는 가장 보편적으로 읽히는 논어 주석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9]

이후 청대에는 고증학이 발달하였고, 이러한 고증학적 성과들이 경전 독해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유보남의 《논어정의》(論語正義)가 그러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주석이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정수덕의 《논어집석》(論語集釋), 양수달의 《논어소증》(論語疏證), 양백준의 《논어역주》(論語譯注) 역시 중요한 주석으로 꼽힌다.

한국의 경우 정약용이 일본 에도 막부 초기(17세기 말)의 이토 진사이(伊藤 仁斎),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같은 인물까지 참고하여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10]를 썼다. 이상의 인물 및 저작들은 서로 살았던 시기가 심하면 1500년은 훌쩍 차이나며 학문관도 그만큼 상이하므로, 같은 논어임에도 결코 비슷한 종류의 저작이라고 할 수 없다.

3. 내용과 특징

난해하다. 난해하다는 것이 수학의 정석이니 비트겐슈타인이니 하는 것처럼 복잡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자의 말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으니 난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공자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11]라고 한 마디 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없고 그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한 마디만 남아있다. 말 그대로 상황은 하나도 없고 말씀만 남아 있으니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 물론 이 경우는 이미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역시 정확한 맥락이 어땠는지는 영영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인, 예, 충 등의 의미가 후대 유교에서 변화, 각색된 경우가 있어 공자가 말하는 인, 예, 충 등의 의미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인, 예, 충의 의미가 상충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명확하게 와닿지를 않는다. 하기사 2천년도 더 전의 책을 글자만 보고 바로 이해가 간다면 2천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니 이해하기 쉬울리가 있을까. 더구나 한자 특유의 중의적인 의미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예를들어 학이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 중 '전불습호(傳不習乎)'라는 문장 같은 경우는 크게 아래와 같은 4가지 해석이 가능한다.

전해 받은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

남에게 전하고도 스스로 익히지 못했는가?

고전(古傳)을 익히지 못했는가?

스스로 익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전하고 있는가?

또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 '색난(色難)'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대로 해석하면 '안색이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2가지 해석이 있다.

  1. 자식이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기기는 어렵다.
  2. 자식이 부모의 얼굴빛을 살피고 그에 맞게 대처하기 어렵다.

저 긴 문장을 두 글자로 확 줄여버리니 해석하기 어려울 수 밖에.

사실 이러한 중의성은 고전 한문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과 함께 글의 해석 순서가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에는 책을 만드는 것이 지극히 어려웠다. 간독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책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를 사용해서 내용을 극도로 축약하여, '꼭 필요한 공자 어록'만이 기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일단 이를 '암기'한 다음 이에 대한 '해석'을 강론받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전수했을 테지만, 문자는 간독으로 남아도 해석은 말이기 때문에 흩어져 없어지므로 후대에 주석으로 남은 부분을 제외하면 해석 부분이 소멸하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플라톤의 대화 편처럼 산문 혹은 대화 형식으로 연속된 하나의 글이 아니라 잡다한 짧은 글귀들의 모음집이라 여기저기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제자가 똑같은 개념에 대해 물었는데 다르게 답하기도 한다. 이는 그 제자의 성향에 맞게 설명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생전에 한 말들을 제자들이 모아 편찬한 논어의 몇몇 구절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곡해하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만큼, 하나의 일관된 사상 하에 전개된 노자장자, 중용, 맹자보다 훨씬 어려운 책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책 자체만 파고들어도 이해하는 게 가능하지만, 어떤 획일화된 사상이 직접 드러나지 않고 공자 생전의 말들을 모아 편찬한 논어는 어떻게 보면 명언집을 읽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문 해석 면에서는 맹자가 더 쉽고 주제의식도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읽기는 쉬워도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찾기는 대단히 어려운 경전이다. 당장 번역된 논어의 아무 페이지만 펼처도 쉽게 읽히긴 한다. 책 자체가 '공자 명언집', '공자와 제자의 일상' 같은 느낌이다 보니까 마음이 정화되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구절도 많다. 때문에 마치 일상물마냥 접근성도 강력하다.[12] 하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잡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이것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논어를 읽으면 "그냥 착하게 살라는 말 아니야?"로 오해하기가 매우 쉽다.[13] 물론 논어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정한 사상 아래서 쓰여진 책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어렵기는 해도 책 속의 말이 워낙 자주 인용되다 보니 유명한 구절도 많지만, 역시 가장 유명한 구절이라 하면 논어를 펼쳐보면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말인 바로 이것. 흔히 아래와 같이 번역되지만 논어 번역본은 다양해서 이 구절 하나에도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 說은 '말씀 설'이라는 한자이지만 悅(기쁠 열)과 통자(通字)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기쁘다'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맞으므로 '불역설호'가 아니라 '불역호'로 읽어야 맞는다.]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14] 不亦君子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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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때로[15]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멀리서 벗이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16]

4. 편제

논어의 편제는 모두 2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의 제목은 무슨 거창한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각 편의 맨 첫 단락 중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子曰)'을 제외한 구절을 따서 붙인 것이다. 상론 10편과 하론 10편은 문체와 호칭 및 술어 면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는데, 상론은 문장이 간략하고 글자수가 짧고 하론은 문장이 길고 글자수가 많다. 또한 상론의 마지막 10편 향당은 공자의 일상 생활을 담아 결말을 내는 셈이어서, 하론 10편의 사실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 여하간 상론이 먼저 쓰여진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상론上論

  • 학이(學而) - 논어의 첫 편. 내용이 배우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근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17]
  • 위정(爲政) - 주로 올바르게 정치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 팔일(八佾) - 편의 제목인 '팔일'은 주나라 천자가 제사를 지내면서 추도록 하는 천자의 무악으로 한 줄에 8명이 8줄로 서서 추는 것이다. 이 춤을 노나라의 일개 대부인 계손씨가 자기 집안 제사에서 추게 하는 것을 보고 공자가 예절이 무너지고 법도가 무너지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회상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인(里仁) - 선비가 살아가면서 처신해야 할 몸가짐을 설명한 편.
  • 공야장(公冶長) - 공야장은 공자의 제자이자 사위가 되는 인물이다. 옛날과 당시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평가가 주로 실려있다. 주자는 이 편을 자공의 제자들이 지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옹야(雍也) - 전반부는 공야장편과 비슷하게 인물평가. 후반부에는 주로 올바로 아는 것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 술이(述而) - 공자가 남을 가르치는 내용과 평소 행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편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구절인 '술이부작(述而不作)'은 이후 동양 역사학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태백(泰伯) - 공자가 구상한 이상적인 정치상을 설명하는 편.
  • 자한(子罕)
  • 향당(鄕黨) - 공자의 공사생활에서 드러난 행동거지에 대하여 기록한 편. 공자가 말한 것보다는 공자의 평소 행실에 대한 언급이 더 많은 편이다.[18]

하론(下論)

  • 선진(先進) - 공자가 자신의 제자들의 장단점을 평가한 편. 민자건을 민자라고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이 편은 민자건의 제자가 지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안연(顔淵) -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첫머리에 등장한다. 주로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이 나온다.
  • 자로(子路) - 열혈 제자인 자로가 첫머리에 등장하는 편. 내용 구성은 안연편과 비슷한 편이다.
  • 헌문(憲問)
  • 위영공(衛靈公)
  • 계씨(季氏) - 이 편을 제나라 논어로 따로 보는 논의도 있다.
  • 양화(陽貨)
  • 미자(微子) - 성현들의 벼슬살이에 대한 내용.
  • 자장(子張) - 공자의 말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편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한 말을 집중적으로 기록한 편인데, 이 중에서 자하자공의 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 요왈(堯曰) - 논어의 마지막 편이자 3장으로 가장 내용이 짧다.

4.1. 여담

논어는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는 아서 웨일리와 찰스 뮬러, 그리고 윌리암 에드워드 수틸이 번역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일찍이 16세기 후반에 논어의 일부는 예수회 중국 선교사들이 라틴어로 번역했다.

한문 초심자들이 논어로 공부를 시작하기도 한다. 논어와 맹자 어느 쪽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은지는 일단 맹자가 문장이 매끄럽다는 이유로 선호도가 조금 높기는 하지만 개인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어차피 초심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고 그러면 단문 위주로 구성되고 중의적 해석이 많아 한문 읽는 맛이 있는 논어를 먼저 읽어도 된다는 쪽도 있다. 참고로, 이이의 《격몽요결》은 맹자보다 논어를 먼저 읽는 쪽을 추천한다.

또한 내용을 보면 딱딱한 유교 경전의 이미지에 비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제법 있다. 공자가 제자들을 평가하면서 솔직하게 심정을 나타내는 모습이나, 제자들이 공자에게 이러저러하게 질문하고 따지자 공자도 이러저러하게 반박하고 설명하는 모습 등, 공자와 그 제자들 역시 평범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자로에 대한 애정어린 갈굼(...)은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공자가 혹독하게 평가하는 제자 중에서도 유독 비난당하는 제자가 있다. 그는 바로 재여(宰予). 3년상을 하지 않아도 제 맘은 편안한뎁쇼? 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책 안 보고 자다가 욕을 먹기도 하고(...) 자로의 경우처럼 부족한 제자라도 나름의 장점을 인정하고 꾸짖으면서 이끌어주려는 공자가 유독 독한(...) 모습을 보이는 제자. 자로 문서에서도 확인 가능하지만, 자로를 꾸짖는 건 어디까지나 교육이 목적이다. 그런데 재여는 인(仁)하지 않다거나, 조각도 못 하는 썩은 나무토막(...)이라며 화를 낸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재여가 사상적으로 공자와는 다른 견해를 가진 것이 아닌가라는 말도 있고, 훗날 재여가 제나라에서 반역 사건에 참가했다가 삼족이 몰살당한 뒤, 공문십철이라고까지 불린 그와의 연관성을 최대한 부정하고자 유가 계열에서 재여를 깎아내리는 말을 많이 퍼뜨렸다는 말도 있다. 이래저래 흥미로운 인물.

공자가 사람을 구타한 기록도 있다. 《예기》〈단궁 하〉를 보면, 공자의 어린 시절 같은 마을 사람인 원양(原壤)은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지 않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등[19] 얽매이지 않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도교 사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으나 공자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논어》〈헌문〉에 이르기를, 어느 날 원양이 공자를 찾아갔을 때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거만하게 굴자 공자가 "어려서는 공손하지 않았고, 나이들어서는 일컬을 바도 없으면서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네놈이 바로 도적놈이다!" 라고 대노하여 원양의 정강이를 지팡이로 때렸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공자가 대노했다는 기록은 없고, 위의 언행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때문에 김용옥은 이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여, 사실 이것은 공자의 소탈한 면모를 보여주는 자료들 중 하나로, 못난 친구를 농담조로 힐난하며 투닥대는 흐뭇한 모습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기사가 고전 한문으로 기록되고, 공자가 이제껏 기계적인 성인으로만 해석되어서 다만 준엄한 꾸짖음으로 여겨져 왔지만, 실제로는 "짜식, 왜 사냐?"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 사실 원양은 단순한 공자의 동향인이 아니라 정말로 공자의 죽마고우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노래를 불렀다는 기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이렇다: 원양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공자가 그 겉 널 짜는 일을 도왔다. 헌데 원양이 목재위로 올라가 말하기를 "내 어머니의 상을 당한지도 오래되었고, 감정을 음률에 맡기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 하며 노래하기를 "너구리 머리 털 반드러움이여, 여인 손 잡은 듯 보드랍네!(나뭇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하였다. 공자가 그냥 못 들은 체 하였는데, 제자들이 "선생님께서는 저 사람과 사귀기를 그만두지 않으시려는지요?" 하였다. 이에 공자가 답하기를 " 구(丘, 공자의 이름)는 들었노라, 친우(親友), 그 친(親)을 잃지 말 것이며, 고우(故友), 그 고(故)를 잃지 말 것이라!" 하였다. 이 기사를 감안할 때 김용옥의 주장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성균관대에서 졸업하기 위해선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다.

5. 관련 한자성어

6. 원문(한자)

논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


  1. [1] 논어는 공자의 제자에서부터 그 제자 대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쳐서,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수차레에 걸쳐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개중에서도 유자를 거쳐 증자의 계열에서 현재의 논어가 완성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논어에서 공자를 제외하고 子가 붙는 이가 둘이 더 나오기 때문. 그게 바로 유자와 증자다. 한편으로 공자 생전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져있고, 안회나 자공 등에게는 子를 안 붙이는 것을 보아 초기 버전은 공자의 제자 대에 만들어졌고, 개정버전이 유자->증자계열에서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자왈파편(공자 생전의 말)을 달리 모아둔, 공자 제자대에 이미 완성된 논어의 원형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자공이 6년상을 할 때 논어의 초기버전을 만들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2. [2] 그대로 서술하되 창작하지는 않는다.
  3. [3] 여담이지만 웬만한 사상가나 종교의 교조는 스스로 책을 쓰는 일이 없다. 꾸란무하마드가 한 말을 후세에 정리한 것이고,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석가모니불경도 그렇다. 하다못해 공자와 비견될만한 소크라테스도 <변명> 등에서 플라톤에 의해 그 사상이 쓰였다. 거꾸로 말하면, 그렇기에 후세의 제자들에 의해 스승의 주장이 재단당할 확률도 없지 않게 있고, 그래서 욕도 먹는 게 사실이다. 초대형 규모의 사상집단의 교조급이 직접 자료를 남기는 경우는 기껏해야 도가의 노자가 남긴 노자(도덕경) 정도. 그마저도 사후에 도가가 다른 형태로 흘러가면서 종교화된 것이라 이마저도 얘기가 조금 다르긴 하다.(노자 당대의 죽간본과 현대에 전해진 도덕경을 비교해보면 그 사상의 차이가 적지 않게 난다. 자세한 것은 노자 항목 참조.)
  4. [4] ≪논어≫의 성립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대부분 ≪춘추좌씨전(좌전)≫에서 근거를 찾는데,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논어≫가 ≪좌전≫보다 앞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5. [5] 《논어장구》(論語章句), 혹은 《장후론》(張侯論)이라고도 한다.
  6. [6] '경문(대문)-집해(대주)-정의(세주)'의 형식으로 편집되었다.
  7. [7] 이런 이유로 이미 《논어정의》 단계에서도 《논어의소》의 설은 많이 까인다.
  8. [8] 혹은 《논어주소》와 같이 십삼경주소에 포함된 것만을 특정해서 고주라고 하기도 한다.
  9. [9] 현대에 논어 번역서를 내는 경우에도 이를 저본으로 삼는다.
  10. [10] 일상어를 잘 살린 명 번역으로 꼽히는 이을호의 한글 논어가 이를 저본으로 삼았다.
  11. [11]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12. [12] 한문으로 접근한다면 굉장히 어려워진다. 아니 애초에 이걸 처음부터 한문으로 접근했던 사람은 이게 한글로 읽으면 접근성이 좋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아마도 중의적 의미가 아예 한가지로 고정되기 때문에 한글로 접근하기 쉽다는 말일 것이다.
  13. [13] 사실 이건 유교에 대한 흔한 오해이기도 하다.
  14. [14] 성낼 온. 확장한자로 입력이 어려워 溫(따뜻할 온)이라 쓴 곳도 있는데 溫과 慍은 전혀 다른 글자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따뜻해지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15. [15] 여기서 時를 '때때로'가 아니라 '때에 맞추어 적절하게'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習은 실천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사실 습의 구성이 새가 날개짓을 하는 모양에서 따왔다. 새는 날개짓을 실천으로 배우므로 결론적으로 배웠으면 적절한 시기에 실천하란 뜻으로 해석이 된다. 덧붙여 한대에는 "때에 맞추어"의 해석이 대세였고, 주희의 논어집주에서는 "때때로"라는 해석이 대세였다. 여기서 "때때로"는 수시로, 시간 날때마다라는 뜻이다.
  16. [16] 이 중 두번째 구절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처음으로 한 말로 유명하다. 최인훈소설 회색인 첫마디로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로 나오기도 했다.
  17. [17] 학이시습지의 "학이"다.
  18. [18] 예를 들면, 똑바로 썰지 않았거나 너무 익혔거나 덜 익힌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 공자의 성향이라든가, 반드시 겉옷과 똑같은 색깔의 가죽옷을 골라서 입고 나가는 습관 등등.
  19. [19]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좋아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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