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아노 토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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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아노 톰마지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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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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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다미아노 톰마지[1]
Damiano Tommasi

출생

1974년 5월 17일 (45세)
이탈리아 베네토네그라르

국적

이탈리아

신체

177cm

직업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선수

엘라스 베로나 FC (1991~1996)
AS 로마 (1996~2006)
레반테 UD (2006~2008)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08~2009)
톈진 터다 (2009)
산탄나 달프레도 (2009~2014)
SP 라 피오리타 (2015~2018)
산탄나 달프레도 (2018~2019)
SP 라 피오리타 (2019~)

국가대표

25경기 2골(이탈리아 / 1998~2003)

1. 소개
2. 선수시절
3. 플레이 스타일
4. 프로 선수로서의 태도

1. 소개

"우리는 10년 동안 팀 동료였고, 함께 성공을 맛보며, 서로 수많은 경기를 했다. 나는 그를 매우 잘 알고 있고 그는 내가 축구계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진실하고 비이기적인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 프란체스코 토티

이탈리아 국적의 전 축구선수. 현재 이탈리아 선수 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2. 선수시절

로마를 너무나 사랑한 선수

91년 당시 세리에 B 소속이었던 엘라스 베로나 FC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소집됐고, 좋은 모습을 보여 로마로 이적했다. 로마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펼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발돋움한 톰마지는 2000년에 이적해온 에메르손과 함께 강력한 미드필더 라인을 구축하여 로마의 00-01시즌 스쿠데토에 기여했다. 이 당시 활약상으로 T-T라인이라는 말이 생겼으며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대표팀에서의 톰마지의 모습

아르헨티나 킬리 곤살레스의 태클을 버티는 토마시

대표팀에서도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2002년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월드컵에서 16강에서 한국에게 패해 탈락할 때까지 전 경기에 출장했다. 이 경기에서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골이 인정되지 않았다.[2]

월드컵 이후 잔부상에 시달리며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고, 팀에서도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잔부상으로 경기 출장 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국가대표팀과의 인연도 멀어졌다. 설상가상으로 04-05시즌 시작을 앞두고 파트너였던 에메르손의 유벤투스 이적으로 팀에서는 톰마지의 부활이 시급한 상황이었는데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장기 부상을 당하여 시즌 아웃되었다. 그에 따라 로마 또한 04-05시즌을 망쳤다.[3]

이 당시 부상으로 1년 넘게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하고 있던 톰마지가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팀의 공헌도가 높은 선수에 대해 예우를 해주던 프랑코 구단주와는 달리 개떡같이 구단을 운영하고 있던 로젤라 센시가 재계약을 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이 때 톰마지가 구단에 대단히 파격적인 제안을 했는데, 세리에 A 계약 최저 한도액[4]으로 재계약 제의를 한 것이다.[5] 재계약이 성사되고 05-06시즌까지 뛰게 된 톰마지는 부상에서의 회복 기간 때문에 시즌 초반에도 나오지 못했다. 리그 13 라운드인 피오렌티나 전에서 선발 출장하여 2분 만에 복귀 골을 신고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05-06시즌에 팀의 주포였던 빈첸조 몬텔라의 부상, 전 시즌에 토티와의 듀오로 매지컬 듀오라 불린 안토니오 카사노의 이적으로 공격진의 공백이 생기자 왼쪽 윙포워드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2006년까지 로마에서만 314경기를 뛰었으며 이는 경기수로 10위에 해당한다.

05-06 시즌이 끝난 후 레반테[6], QPR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2009년 톈진 터다에서 은퇴한...줄 알았으나 2011년까지 이탈리아의 산탄나 달프레도라는 팀에서 뛰었으며, 2015년부터는 산마리노SP 라 피오리타에서 뛰고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뽀글머리에 텁수룩한 수염, 단단해보이는 체구로 인해 거친 남자의 이미지가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답게 강력한 태클과 중거리 슈팅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체력도 좋은 편이라 활동량이 뛰어난 미드필더였다. 그 때문에 거칠고 터프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실제로는 터프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테크니션이었다. 드리블 실력도 상당하며 패스 센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05-06시즌에는 윙포워드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4. 프로 선수로서의 태도

프로는 돈을 따라 움직인다. 최근 중국의 가 그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돈 많이 주는 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톰마지는 돈보다는 클럽을 생각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05-06시즌엔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뛰면서도 팀에 헌신하는 최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이밖에도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불길한 숫자로 여기는 17번을 등번호로 삼는 등 멘탈도 건전한 편이다.

축구 외적으로도 사회적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시에라리온의 기아들을 돕고 코소보에 축구장을 건립하는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이어왔다. 그로 인해 로마에 상주하는 외국인 기자들이 선정한 2001년 올해의 스포츠인에 선정됐으며, 같은 해에 이탈리아 축구 협회로부터 인종 차별 운동에 대항한 공로로 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자 이를 강력히 비난하여 신문 헤드라인에 실린 적도 있다.

05-06시즌 후반기에 로마는 팀의 단결력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선수들이 돌아가며 저녁 식사 비용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월급을 다 털어서 180만원 버는 분이 저녁 식사를 산 일도 있다.


  1. [1] daˈmjaːno tomˈmaːzi
  2. [2] 톰마지가 골망을 흔들기 전에 이미 휘슬이 울렸기 때문에 골이 아니다. 거기다가 골망을 흔든 것도 휘슬이 울리고도 한참 뒤였기 때문에 골을 인정받기는 커녕 오히려 판정 불복으로 경고를 받을 수 있는 행위였다. 비슷한 사례로 FC 바르셀로나아스날 FC간의 UEFA 챔피언스 리그 2010-11 시즌 16강 2차전에서 호각을 무시하고 골망을 흔들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로빈 판페르시를 들 수 있다.
  3. [3] 코파 이탈리아 16강 탈락, UEFA 컵 32강 탈락, 리그 4위(4위도 초반 부진하여 강등권을 헤메다가 겨울 이적시장 이후 살아나서 4위를 수성)
  4. [4] 월봉 1500유로,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180만원
  5. [5] 그 다음 시즌에는 크리스티안 비에리도 똑같은 조건에 득점 보너스만 더해 아탈란타 BC와 재계약했다.
  6. [6] 이적할 때 AC 키에보 베로나에서 이적 제의를 했지만 ''로마 말고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팀은 없다. 로마가 아닌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로마와 싸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며 제의를 거절했다. 뼛속까지 로마니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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