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대한민국의 3대 영화상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大鐘賞
Dae Jong Film Awards[1]

제54회 대종상영화제 포스터

공식 홈페이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1. 개요
2. 역사
3. 시상 부문
4. 역대 수상
4.1.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
4.2. 남우 / 여우 주연상
4.2.1. 기록
4.3. 남우 / 여우 조연상
4.4. 신인 남우 / 여우상
4.5. 신인감독상
5. 문제점
5.1. 수상자, 수상작 논란
5.2. 운영상 문제
5.3. 왜 이렇게 논란이 많은가?
6. 관련 문서
6.1. 연도별 논란
6.2. 기타 관련 문서

1. 개요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주최하는 영화 시상식[2]의 명칭.

2. 역사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58년에 문교부에서 '국산 영화상'이라는 명칭으로 설립하였다. 단, 국산 영화상 시절은 대종상의 수상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그렇다고 국산 영화상 시절과 단절을 선언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이름을 대종상으로 바꾼 것은 1962년. 그런 이유로 2017년 기준 햇수로는 62년이지만 회수로는 54회이다.[3] 국가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간 것은 1992년부터다.

과거에는 한국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이으나, 후술할 여러가지 계속되는 논란과 병크로 인해 1990년대 중후반부터 권위와 공정성을 서서히 잃어가더니 2010년대에 들어서는 그 위상을 청룡영화상에게 내주었다.

제54회 대종상영화제는 2017년 10월 25일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되었으며, TV조선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청룡영화상 주최가 스포츠조선인데??

3. 시상 부문

2017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 최우수작품상
  • 감독상, 신인 감독상
  • 남녀 주연상, 남녀 조연상, 신인 남녀상
  • 기획상
  • 시나리오상
  • 촬영상, 조명상, 미술상, 의상상
  • 편집상, 음악상
  • 기술상

4. 역대 수상

4.1.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

연도

회차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1962

1

《연산군》

신상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3

2

《열녀문》

유현목 《아낌없이 주련다》

1964

3

《혈맥》

이만희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5

4

《벙어리 삼룡》

신상옥 《벙어리 삼룡》

1966

5

《갯마을》

유현목 《순교자》

1967

6

《귀로》

김수용 《안개》

1968

7

《대원군》

신상옥 《대원군》

1969

8

1970

9

1971

10

《무명의 교사》

유현목 《분례기》

1972

11

《의사 안중근》

신상옥 《평양폭격대》

1973

12

《홍의 장군》

최훈 《수선화》

1974

13

《토지》

김수용 《토지》

1975

14

《불꽃》

이만희 《삼포가는 길》

1976

15

《어머니》

설태호 《원산공작》

1977

16

《난중일기》

최인현 《집념》

1978

17

《경찰관》

임권택족보

1979

18

《깃발없는 기수》

정진우 《심봤다》

1980

19

《사람의 아들》

이장호 《바람불어 좋은 날

1981

20

《초대받은 사람들》

임권택 《만다라》

1982

21

《낮은데로 임하소서》

이장호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3

22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4

23

《자녀목》

정진우 《자녀목》

1985

24

《어미》

배창호 《깊고 푸른 밤

1986

25

《안개기둥》

임권택 《티켓》

1987

26

《연산일기》

임권택 《연산일기》

1989

27

《아제아제 바라아제》

김호선 《서울 무지개》

1990

28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91

29

《젊은날의 초상》

곽지균 《젊은날의 초상》

1992

30

《개벽》

김호선 《사의 찬미》

1993

31

서편제

임권택서편제

1994

32

《두 여자 이야기》

장선우 《화엄경》

1995

33

《영원한 제국》

박종원 《영원한 제국》

1996

34

애니깽

김호선 《애니깽

1997

35

접속

정지영블랙잭

1999

36

《아름다운 시절》

이광모 《아름다운 시절》

2000

37

박하사탕

이창동박하사탕

2001

38

공동경비구역 JSA

한지승 《하루

2002

39

집으로...

송해성파이란

2003

40

살인의 추억

봉준호살인의 추억

2004

41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박찬욱올드보이

2005

42

말아톤

송해성 《역도산》

2006

43

왕의 남자

이준익왕의 남자

2007

44

가족의 탄생

봉준호괴물

2008

45

추격자

나홍진추격자

2009

46

신기전

김용화국가대표

2010

47

강우석이끼

2011

48

고지전

강형철써니

2012

49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광해, 왕이 된 남자

2013

50

관상

한재림관상

2014

51

명량

김성훈끝까지 간다

2015

52

국제시장

윤제균국제시장

2016

53

내부자들

우민호 《내부자들

2017

54

택시운전사

이준익박열

4.2. 남우 / 여우 주연상

연도

회차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1962

1

신영균 《연산군》

최은희 《상록수》

1963

2

신영균 《열녀문》

도금봉 《새댁》

1964

3

김승호 《혈맥》

황정순 《혈맥》

1965

4

신영균 《달기》

최은희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1966

5

김진규 《태양은 다시 뜬다》

최은희 《민며느리》

1967

6

박노식 《고발》

문정숙 《귀로》

1968

7

신성일 《이상의 날개》

문희 《카인의 후예》

1971

10

장동휘 《대전장》

윤정희 《분례기》

1972

11

황해 《평양폭격대》

고은아 《며느리》

1973

12

남궁원 《다정다한》

윤연경 《비련의 벙어리 삼룡》

1974

13

박근형 《이중섭》

김지미 《토지》

1975

14

하명중 《불꽃》

김지미 《육체의 약속》

1976

15

신일룡 《아라비아의 일몽》

최민희 《빗속의 연인들》

1977

16

김진규 《난중일기》

윤미라 《고가》

1978

17

하명중족보

고은아 《과부》

1979

18

최불암 《달려라 만석아》

유지인 《심봤다》

1980

19

이대근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윤희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1

20

남궁원 《피막》

정윤희 《앵무새 몸으로울었다》

1982

21

안성기 《철인들》

김보연 《꼬방동네 사람들》

1983

22

안성기 《안개마을》

장미희 《적도의 꽃》

1984

23

윤일봉 《가고파》

이미숙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5

24

안성기깊고 푸른 밤

김지미 《길소뜸》

1986

25

이영하 《안개기둥》

최명길 《안개기둥》

1987

26

이영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강수연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1989

27

이덕화 《추억의 이름으로》

강수연 《아제아제 바라아제》

1990

28

신성일 《코리안 커넥션》

강수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91

29

이영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원미경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992

30

이덕화 《개벽》

장미희 《사의 찬미》

1993

31

이덕화살어리랏다

심혜진결혼 이야기

1994

32

안성기, 박중훈투캅스

윤정희 《만무방》

1995

33

김갑수태백산맥

최진실 《마누라 죽이기》

1996

34

최민수테러리스트

심혜진은행나무 침대

1997

35

한석규초록물고기

심혜진초록물고기

1999

36

최민식쉬리

심은하미술관 옆 동물원

2000

37

최민수유령

전도연내 마음의 풍금

2001

38

송강호공동경비구역 JSA

고소영하루

2002

39

설경구공공의 적

전지현엽기적인 그녀

2003

40

송강호살인의 추억

이미연중독

2004

41

최민식올드보이

문소리바람난 가족

2005

42

조승우말아톤

김혜수 《얼굴없는 미녀》

2006

43

감우성왕의 남자

전도연너는 내 운명

2007

44

안성기라디오 스타

김아중미녀는 괴로워

2008

45

김윤석추격자

김윤진세븐 데이즈

2009

46

김명민내사랑 내곁에

수애님은 먼곳에

2010

47

원빈아저씨

윤정희

2011

48

박해일최종병기 활

김하늘블라인드

2012

49

이병헌광해, 왕이 된 남자

조민수피에타

2013

50

류승룡7번방의 선물

엄정화몽타주

송강호관상

2014

51

최민식명량

손예진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5

52

황정민국제시장

전지현암살

2016

53

이병헌내부자들

손예진덕혜옹주

2017

54

설경구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최희서박열

4.2.1. 기록

  • 5회 수상자
  • 4회 수상자
  • 3회 수상자
  • 2회 수상자

4.3. 남우 / 여우 조연상

연도

회차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1962

1

이예춘 《현해탄은 알고 있다》

한은진 《연산군》

1963

2

박노식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황정순 《새댁》

1964

3

김희갑 《쌀》

최지희 《김약국집 딸들》

1965

4

박노식 《청일전쟁과 여걸민비》

윤인자 《빨간 마후라》

1966

5

최남현 《추풍령》

황정순 《갯마을》

1967

6

윤일봉 《애하》

주증녀 《만선》

1968

7

박노식 《카인의 후예》

황정순 《엄마의 일기》

1971

10

최무룡 《마지막황태자 영친왕》

사미자 《분례기》

1972

11

김희갑 《작은 꿈이 꽃필 때》

도금봉 《작은 꿈이 꽃필 때》

1973

12

박암 《열궁녀》

최인숙 《비련의 벙어리 삼룡》

1974

13

허장강 《꽃상여》

도금봉 《토지》

1975

14

김진규 《삼포가는 길》

박정자 《육체의 약속》

1976

15

장동휘 《어머니》

태현실 《원산공작》

1977

16

윤일봉 《초분》

선우용여 《산불》

1978

17

최불암 《세종대왕》

문정숙 《경찰관》

1979

18

황해 《심봤다》

정애란 《을화》

1980

19

박암 《땅울림》

김신재 《뻐꾸기도 밤에우는가》

1981

20

전무송 《만다라》

김형자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2

21

김희라 《꼬방동네 사람들》

-

1983

22

김희라 《불의 딸》

고두심 《질투》

1984

23

김무생 《깊고 깊은 그 곳에》

박정자 《자녀목》

1985

24

나기수 《화녀촌》

한은진 《오싱》

1986

25

신성일 《달빛 사냥꾼》

이혜영 《겨울 나그네》

1987

26

이대근 《감자》

김형자 《감자》

1989

27

한지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김지미 《추억의 이름으로》

1990

28

김희라수탉

유혜리우묵배미의 사랑

1991

29

박근형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배종옥젊은 날의 초상

1992

30

이경영사의 찬미

이혜영명자 아끼꼬 쏘냐

1993

31

이경영하얀전쟁

이미연눈꽃

1994

32

신성일증발

남수정두 여자 이야기

1995

33

최종원영원한 제국

정경순태백산맥

1996

34

김일우학생부군신위

김청애니깽

1997

35

임창정비트

정경순

1999

36

정진영약속

이미연여고괴담

2000

37

주진모해피 엔드

김여진박하사탕

2001

38

정은표킬리만자로

윤소정하루

2002

39

나카무라 토오루2009 로스트 메모리즈

방은진수취인 불명

2003

40

백윤식지구를 지켜라!

송윤아광복절 특사

2004

41

허준호실미도

김가연홍반장

2005

42

황정민달콤한 인생

나문희주먹이 운다

2006

43

유해진왕의 남자

강혜정웰컴 투 동막골

2007

44

김윤석타짜

심혜진국경의 남쪽

2008

45

유준상리턴

김해숙무방비도시

2009

46

진구마더

김영애애자

2010

47

김희라

윤여정하녀

송새벽방자전

2011

48

조성하황해

심은경로맨틱 헤븐

2012

49

류승룡광해, 왕이 된 남자

김해숙도둑들

2013

50

조정석관상

장영남늑대소년

2014

51

유해진해적: 바다로 간 산적

김영애변호인

2015

52

오달수국제시장

김해숙사도

2016

53

엄태구밀정

라미란덕혜옹주

2017

54

배성우더 킹

김소진더 킹

4.4. 신인 남우 / 여우상

연도

회차

신인남우상

신인여우상

1962

1

1963

2

1964

3

1965

4

1966

5

문희 《흑맥》

1967

6

윤정희 《청춘극장》

1968

7

1971

10

윤여정화녀

1972

11

전영 《불장난》

1973

12

윤미라 《처녀 사공》

1974

13

-

1975

14

문숙 《삼포 가는 길》

1976

15

한유정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1977

16

김기만 《고가》

김영란 《처녀의 성》

1978

17

한지일 《경찰관》

김보연 《제갈맹순이》

1979

18

이영주 《누가 이 아픔을》

원미경 《청춘의 덫》

1980

19

안성기 《바람 불어 좋은 날》

금보라 《물보라》

1981

20

전무송 《만다라》

명정옥 《하늘나라 엄마별이》

1982

21

나영희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1983

22

이보희《일송정 푸른 솔은》

1984

23

조용원 《땡볕》

김지숙 《푸른 하늘 은하수》

1985

24

전혜성 《에미》

최현미 《화녀촌》

1986

25

강석현 《젊은 밤 후회 없다》

전세영 《티켓》

최재성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7

26

김세준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신혜수 《아다다》

천은경 《소금 장수》

1989

27

이동준 《서울 무지개》

강리나 《서울 무지개》

최수지 《상처》

1990

28

안승훈물의 나라

최유라수탉

1991

29

박상민장군의 아들

김성령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최진실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2

30

신현준장군의 아들

이아로천국의 계단

1993

31

김규철서편제

오정해서편제

1994

32

김병세장미의 나날

김정민휘모리

윤유선두 여자 이야기

1995

33

이정재젊은 남자

정선경너에게 나를 보낸다

진희경손톱

1996

34

이병헌런어웨이

이지은금홍아 금홍아

이정현꽃잎

1997

35

송강호넘버 3

전도연접속

1999

36

이성재미술관 옆 동물원

김윤진쉬리

2000

37

설경구박하사탕

이재은노랑머리

하지원진실게임

2001

38

류승범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은주오! 수정

2002

39

이종수신라의 달밤

서원나쁜 남자

2003

40

권상우동갑내기 과외하기

손예진클래식

2004

41

김래원어린 신부

문근영어린 신부

2005

42

고수

이청아늑대의 유혹

2006

43

이준기왕의 남자

추자현사생결단

2007

44

류덕환천하장사 마돈나

조이진국경의 남쪽

2008

45

다니엘 헤니마이 파더

한예슬용의주도 미스 신

2009

46

강지환7급 공무원

김꽃비똥파리

2010

47

정우바람

이민정시라노;연애 조작단

2011

48

이제훈파수꾼

문채원최종병기 활

2012

49

김성균이웃사람

김고은은교

2013

50

김수현은밀하게 위대하게

서은아

2014

51

박유천해무

임지연인간중독

2015

52

이민호강남1970

이유영 《봄》

2016

53

정가람4등

김환희곡성

2017

54

박서준청년경찰

최희서박열

4.5. 신인감독상

연도

회차

감독

작품

1990

28

정한우

죄없는 병사들

1991

29

방규식

천국의 땅

이명세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2

30

장현수·이 만

걸어서 하늘까지

1993

31

김의석

결혼 이야기

1994

32

이정국

두 여자 이야기

1995

33

여균동

세상 밖으로

1996

34

강제규

은행나무 침대

이민용

개같은 날의 오후

1997

35

장윤현

접속

1999

36

이정향

미술관 옆 동물원

허진호

8월의 크리스마스

2000

37

민병천

유령

2001

38

임상수

눈물

2002

39

이시명

2009 로스트 메모리즈

2003

40

장준환

지구를 지켜라!

2004

41

최동훈

범죄의 재구성

2005

42

정윤철

말아톤

2006

43

한재림

연애의 목적

2007

44

권형진

호로비츠를 위하여

2008

45

오점균

경축! 우리사랑

2009

46

이호재

작전

2010

47

장철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1

48

윤성현

파수꾼

2012

49

최종태

해로

2013

50

정병길

내가 살인범이다

2014

51

양우석

변호인

2015

52

백종열

뷰티 인사이드

2016

53

조정래

귀향

2017

54

엄태화

가려진 시간

5. 문제점

초기에는 정부 주도의 어용영화제라는 한계, 이후에도 여러 논란을 만들어 스스로 영화제의 권위와 품격을 망쳐버린 대표적인 사례.

5.1. 수상자, 수상작 논란

대부분 시상식이 수상자, 수상작에 논란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특히, 대종상은 유난히 타 영화상에 비해 훨씬 정도가 지나쳐서 그 논란들로 인해 권위가 바닥인 상태다. 과거에는 유일무이한 영화제로서 권위가 높았지만 그 와중에 비리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예 돈봉투 건네주고 상을 '구입'한다는 말도 많았었고 지금은 흐지부지되어 거론되지 않으나, 1960~1970년대 영화계 인사들은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다. 더불어 정부에서 주도하는 관제행사라서 높으신 분들의 눈치를 보는 어용 영화제로도 악명이 높았다. 사회비판적 영화는 절대 금기였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서 사회계도성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품상, 감독상 다음으로 (체제선전용) 반공영화상이 주요부문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이후로는 반공영화상도 폐지되고 노골적인 체제홍보는 줄었지만, 사회비판 영화는 여전히 금기였다.[4]

더구나 당시에는 막대한 이권이 있었던 해외 영화 수입권을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과 우수 작품상 수상작을 내놓은 영화사에 수여했다. [5] 이 외화수입권은 당시 돈 기준으로 억 단위로 거래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상을 타는 것은 곧 수억을 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화사들은 대종상 작품상을 타기 위한 영화를 찍었다. 당연히 그 영화들은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아야 했고, 무엇보다 정부의 입맛에 맞아야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종상만 노린 영화는 작품상을 타면 그 역할을 다한 것이었지만, 만일 못타면 그대로 영화사 창고로 직행하는 사례도 흔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대종상은 본질적으로 최고의 영화제인 동시에 최악의 영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작품성이 있으나 사회 부조리를 다룬다든지 높으신 분들을 까는 내용이 있다면 설령 그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더라도 일절 후보에도 못 오르던 것이 흔한 일이었다. 10월 유신시대에는 아예 정부 주도로 수상을 통제했고, 친정부적이고 반공적인 영화에 '우수반공 영화상'을 따로 개설해서 시상할 정도였으니 사실상 어용 영화제 시상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문제점을 찾아본다면 엄청나게 쏟아진다. 심지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1990년부터 나온 문제점들만 봐도 이렇다. 이러니 그 이전에는 얼마나 많을지...

  • 1990년
    • 당시, 영화계도 예상을 했지만 정지영 감독이 연출한 남부군은 단 1개도 수상하지 못했다. 빨치산을 다뤘다고 논란이 거셌던 이 영화는 당시 흥행 대박과 같이 평도 상당히 좋아서 정작 조선일보가 주최한 청룡영화상[6]에선 감독상(정지영), 남우주연상(안성기), 남우조연상(최민수), 신인여배우상(최진실)을 받았다. 이 때부터 청룡영화제는 대종상에게 을 먹이기 시작한다.
  • 1991년
    • 미군에 의하여 성폭행을 당한 여인이 되려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가 결국 생계를 위해 양공주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미군을 깐다고 해서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논란이 컸었다. 겨우 대종상 의상상을 수상했을 뿐이었고, 이에 대하여 당시 영화지 로드쇼에서 취재하니 대종상 관계자들이 윗사람 눈치가 보이니 할 수 없다는 답변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가 서울관객 17만을 기록하면서 흥행도 대성공하고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각본상 및 여우주연상(이혜숙)을 받고 원작인 안정효가 쓴 소설이 미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와 미군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점에 대하여 작은 화제를 낳았던 거와 대조적이다.
  • 1994년
    • 대종상의 권위가 본격적으로 곤두박질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4년부터였다. 당시 흥행스코어에서 참패한 영화 '두 여자 이야기'가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도 영화 개봉하기 전(1994년 4월 23일)에 수상(1994년 4월 3일)하여 한동안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막상 개봉한 이후 좋은 영화였다는 평이 많아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밑에서 언급한 '애니깽'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작품 또한 봉건주의 제도 하에서 두 여인의 굴곡진 삶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흥행성과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반드시 국내 영화 시상식 결과에 영향을 줄 필요도 없고, 그러한 전례나 후례는 많은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정국 감독은 데뷔작 '오월의 노래'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세상에 알리지만 그 결과 한동안 영화연출 제의가 끊기기도 했었다고... 한편, 함께 후보에 오른 영화는 안성기, 박중훈 콤비의 연기가 돋보였던 투캅스와 그 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한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등. 그러나 '화엄경'은 감독상을 받는데에 그쳤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빨갱이 영화'라고 까이기만 했다. 투캅스는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당시 서편제에 이어서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라는 엄청난 초대박을 거둬들이고[7] 화엄경은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트 바우어상을 수상하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칸 영화제에 출품되고 서울관객 15만으로 그럭저럭 흥행도 하던 것과 달리 두 여자 이야기는 흥행도 서울관객 2만으로 참패하고 지금은 아주 듣보잡이 되었다. 그나마 감독인 이정국은 나중에 최진실 주연인 영화 편지로 서울관객 72만이라는 대박을 거두긴 했다. 하지만 2년후..역대급 병맛 시상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 1996년
    • 최악의 대종상 시상식 1. 1996년 제 34회 시상은 지금까지 진행된 대한민국의 영화 시상식 중에서도 넘사벽급으로 손꼽히며, 2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많은 대중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다른 말로는 영화 제목을 본떠서 애니깽 사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1996 대종상 시상식 논란 문서를 참조하자.
  • 2001년
    • 흥행 최고를 기록한 친구가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던 반면에, 관객에게 외면을 당하고 평가도 좋지 않았던 영화 "하루"에 감독상 여우주연상 포함 4개를 줬다. 특히, 여우주연상 고소영은 역대 최악의 수상으로 남아있을 정도다. 하지만, 고소영은 수상 트로피를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반납했다고 한다.
  • 2002년
    • 이전 년도에 수상논란이 가시지 않은듯 이번 년도에는 TV로 생중계 되지못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었다, MC는 MBC 출발비디오여행의 진행자 아나운서 홍은철이 진행했는데 진행은 훌륭했으나 영화인협회가 단독 주최한 이번 대종상 시상식에선 불참석자가 많아 시상식 대부분이 대리수상으로 진행됐다

  • 2004년
    • 영화·연극·방송을 포함해 1년 이내 경력자'가 후보자격이 되는 신인 배우상을 출연작이 무려 19편이나 되는 공형진과 6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김래원 등이 올라 논란을 일으켰으며 김래원의 수상으로 더욱 논란이 되었다.
  • 2009년
    • 내사랑 내곁에하지원이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개봉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하늘과 바다>의 장나라가 여우주연상에 오르며 논란이 되었다. 기사에서는 미개봉작이라고 하고 있지만 하늘과 바다가 대종상 시작하기 전에 개봉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출품된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종상 1주일전에 개봉하였으며 제한적 개봉이라서 미개봉작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하지만, 더 빨리 개봉했다하더라도 작품성 때문에 역시 논란은 피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같은 해에 시작된 청룡영화상이를 지켜보고 있기라도 했던 것 마냥 하지원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대종상에게 빅엿을 선사했다.[8]
  • 2011년
    • 써니심은경이 사정상 불참의사를 전하자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키면서 논란이 됐다.[9] 그 대신 영화 로맨틱 헤븐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린 후 상을 줬는데, 심은경은 '상을 받아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담담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거기다가 심은경을 대신해서 여우조연상을 받고 수상소감까지 말해야 했던 사람은 써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천우희. 다시 말해, 경쟁자 배우가 대리수상을 한 거였다.
  • 2012년
    • 자칭 '광해' 영화제. 2012년엔 광해 한 작품에 15개를 몰아주는 바람에, 수상하는 사람들이 미안해하는 시상식[10]을 벌이며,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에 빛나는 피에타의 감독 김기덕이 빡쳐서 영화제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면서 안 그래도 박살난 권위가 가루가 됐다. 그리고, 청룡영화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작품상에 피에타를 선정하고, 여우주연상에 내 아내의 모든것의 임수정, 남우주연상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최민식을 선정하며, 또 대종상을 엿먹였다.
  • 2013년
    • 2013년은 대종상 50주년을 맞이한 매우 뜻깊은 해였다. 하지만 2013년에는 본편 진출작 중에서 더 테러 라이브연애의 온도 같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배급 영화들이 전부 출품되지 않았고 작품상과 기획상 후보 명단이 미발표되었고[11] 베를린이 촬영상, 편집상, 조명상, 의상상, 미술상 5개 중에서 조명상과 촬영상 2개 부문을 수상했지만 수상자가 참석하지 않았다. 권위가 없음을 인정하는 비공개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청룡영화상은 기다렸다는 듯 신인감독상에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을 주며, 대종상에게 빅엿을 먹였다.
  • 2014년
    • 국내외영화제에서 극찬을 받던 ‘한공주’의 천우희, 아역시절부터 쌓아온 연기력으로 흥행까지 성공한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이 여우주연상 유력 수상자로 지목되었으나, 결과는 후보[12] 중 가장 낮은 가능성을 보였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손예진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후보 중 가장 흥행한 영화에 출연하여 과거 대종상에서 흥행빨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욕을 먹었던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과 비교되며 ‘대종상다운 시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두 배우는 원톱으로 극을 이끌어가기라도 했다. ‘해적’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여럿인 영화인데다가 극 중 손예진의 어색한 사극, 액션, 코미디 연기가 방해가 되었다는 평이 많았다.
    • 독립영화를 아예 빈 손으로 내보내면서 비난을 받았다. 청룡영화상은 이때다 싶어 한공주에는 신인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도희야에게는 신인여우상을 안겨줬다.
  • 2016년
    • '출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후보군에서 제외시켰다'는 내용의 서술이 있었으나, 출품되지도 않은 작품을 후보군에 올리는 것은 시상식의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다. 역으로 시상식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수상 의사가 없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주, 아가씨 등 다수의 작품이 출품하지 않았다.
    • 수상결과는 예전에 비해 많이 공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비상식적인 수상결과를 발표해서 대충상이란 비아냥을 받던 것을 의식했던것인지, 최초로 내부 심사위원보다 영입 심사위원의 숫자를 많게 하고 일반심사와 본선심사로 나누어서 심사제도를 개선하는 등 노력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던 '밀정'의 엄태구와 '곡성'의 김환희, '4등'의 정가람의 수상에 축하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동주아가씨가 후보작에서 빠진 것으로 인한 결과라는 반론도 있다.
  • 2017년
    • 박열최희서가 대종상 역사상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함께 수상하였다. 신인상 후보가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경우는 있었지만 수상한 경우는 처음이다. 이전과 달리 주최측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전혀 무관한 영화계 인물들로 심사단을 구성하였고, 심사위원들의 투표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였기에 가능한 시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심사위원 명단은 물론 심사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여우주연상 후보 중 최희서만 참석해 참석상이 아니냐는 논란이 다시 지펴지고 있으나, 다른 부문 수상자중 불참자는 사전에 촬영해둔 수상소감 영상을 방송하였으므로 불참했다고 주최측이 심사위원단의 결과를 번복하여 수상자를 바꿨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불참한 후보들은 보이콧에 참여 중 일 수도 있고, 수상소감 영상이 사전에 촬영된 것을 보았을 때 수상 결과가 알려져 불참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 신인상 부문의 후보선정 기준을 두고 꾸준한 논란이 있는데 시상 전 단 한번의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하던 MC들의 멘트와 달리 바로 전년도에 후보에 올랐던 배우들이 또 후보에 오르고 그 중 한명인 박서준이 수상까지 하였다.

5.2. 운영상 문제

  • 1998년 - 스폰서 부재로 인한 일시폐지
1962년 출범된 대종상은 그동안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총연합회, 영화진흥공사, 映協 등으로 주관단체가 바뀌어 오다가 1992년부터 정부 지원이 중단되었다. 이후 삼성문화재단의 협찬으로 운영이 되어 왔는데 상기에 서술한 1996년 애니깽 사태로 인하여 삼성문화재단이 협찬을 취소해 버리게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쌍방울이 후원에 나서면서 1997년 제35회 시상식은 쌍방울 계열사인 무주리조트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쌍방울이 부도가 나면서 대종상은 다시 후원사를 잃었고, 결국 다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1998년 시상식은 열리지 못하였다.
  • 2010년 - 초대 가수 선정의 병폐
  • 2013년 - 야구에 밀린 50주년 기념 대종상
50주년 대종상 시상식은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 중계 때문에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방영되었고 그 영향으로 1부가 7.0%, 2부가 6.2% 평균 시청률은 6.6%을 기록하여 49회 시상식 평균 시청률 7.3% 보다 0.6% 감소했다. 관련기사 KBO 리그 포스트시즌은 KBS2, MBC, SBS 등 지상파에서 한 경기씩을 번갈아 가며 중계하는데,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 시 7차전을 KBS 2TV에서 중계하는 것으로 확정이 된 상황이라 그 중계를 취소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KBS 측에서는 대종상 주최측에 "행사일 변경이 가능하다"는 사전 고지를 했는데 대종상 측에서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 줄 몰랐다"고 변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7차전까지 진행되는 (적어도 주최 측 기준에서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두고 날짜 변경을 고려했어야지, 한심하다
  • 2015년
2015년에는 아예 인기상 투표에서 투표권을 유료로 팔기까지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창조경제 투표법 인기투표에는 투표 한 표당 200포인트가 차감되는데 포인트를 얻으려면 강제로 각종 어플을 깔던지, 돈으로 포인트를 사야 한다.
  • 함량미달의 진행자 선정
사실, 배우들의 시상식 불참과 수상결과 문제가 커서 묻힌 것 뿐이지, 진행을 맡은 신현준의 진행 방식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 즐라탄을 닮아서 어수선하고 웃기려는데에만 치중하다 보니 후보자의 이름이나 작품 이름을 헷갈리는 등의 사전 지식 습득도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한다는 평이다.[13] 보수성향이 강한 한국영화배우 협회이사를 맡고 있다 보니 이 단체가 주최하는 대종상 시상식 진행을 맡게 된 것. 이 시상식에 이어 한국영화배우 협회에서 주최하는 '톱스타 시상식'에도 진행을 맡아 영화계에서 그에 대한 인식이 바닥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 절정이 2015년에 열린 52회 시상식에서... 그가 동분서주 하는 모습이 마치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하는 모습이었다는 힐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2016년에 진행자가 바뀌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그 해 신현준의 행보[14]를 볼 때 그 영향으로 교체된 것이 아닐까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나마 전문 진행자가 진행을 맡아 시상식이 다소 안정되어 보인다는 평도 있으나 메인 진행자인 김병찬의 진행 방식이 올드하다는 평 또한 있었다. 그래도 진행자가 다른 사람으로 자주 바뀌는가..했더니...역시나 신현준이 2017년 진행자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헛소리 시전과 시상자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비난을 산건 기본이고, 시상식 참석을 거부하는 상당수 영화인들에게 그런 내막도 모른채 꼰대기질을 선보였다.
  • 2016년
기존 중계 방송사이던 KBS[15]가 생중계를 포기함으로써 대종상 시상식은 중단될 것으로 보였으나,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서 생중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채널A 측에서 "(중계가) 확정된 건 없지만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또다시 난항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2월 27일 iHQ계열의 케이블채널(!) K STAR코미디TV에서 동시 생중계되었다.[16]시상식을 2주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우여곡절 끝에 개최를 선언했는데, 시작전부터 여러모로 삐걱댔다. 장소대관도 여의치 않아 결국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추락한 대종상의 권위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시상식의 진행은 김병찬, 공서영, 이태임이 맡았다. 강행한 생중계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현장을 찾은 팬들의 개인적인 대화가 방송에 계속 노출되는가 하면, 카메라는 잡을 곳을 못찾아 우왕좌왕하다 풀샷으로 넘어가기 일쑤였고, 행사장 내부 역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작년에 문제가 되었던 후보자 참석 문제도 고스란히 답습되었다. 당연히 2주도 남지않은 일정에 초대해도 안 가겠지만 제대로 참석할 수 있는 영화배우도 없는 듯. # 시상식 하루전에는 아직 결정 하지 않은 이병헌손예진을 제외한 나머지 주연 후보자들이 불참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당일에 손예진도 불참하기로 결정하면서 최종적으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곡성'의 김환희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제외한 신인남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신인여우상의 모든 수상자가 불참하게 되었다. 그밖의 대부분의 기술상 수상자들도 불참하여 시상식은 대리수상자들의 향연이었다. 거의 유일하게 참석한 스타급 배우인 이병헌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뼈 있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아마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참석한듯 싶다
> 대종상을 처음 받았던 게 아마도 20년 전 신인상이 아니었나 싶다.[17]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그 무대 위에 서고 싶을 정도로 명예로운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참여했었다. 오늘 시상식에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상을 받는다는 기쁜 마음보다 무거운 심정이었다. 대종상은 그동안 말도 많고 문제도 많았다.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느낌이 있는 건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53년이란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전처럼 명예를 되찾는 건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을 거라 본다. 하지만 53년이란 긴 시간 명맥을 유지하고 명예로웠던 시상식이 불명예스럽게 이대로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떤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 방법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변화라는 건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다기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이 돼서 조금씩 고민하고 노력하는 순간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언젠가 후배들이 내가 20년 전 이 시상식에 오면서 설레고 영광스러웠던 마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나도 그땐 태어나지 않아서 모르지만 50~60년 전 대선배들이 큰 뜻을 갖고 대종상영화제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배들이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지켜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2017년
행사 도중 참석자인 최희서와 이준익을 비하하는 발언이 섞여서 녹음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희서의 시상 장면 때 "그만 좀 해라, 돌겠다."라는 발언이, 이준인 감독을 비춘 장면에선 "저 빡빡이 아니냐?" 라는 발언이 나왔다. 중계 방송사인 TV 조선에서는 유투브의 대종상 시상식 영상을 삭제한 상태라서 검증이 힘든 상황이었으나 해당부분만 편집된 영상이 일반 유저에 의해 업로드되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직접 확인해보자. 이에 대해 대종상측의 공식 입장은 방청석의 소음이다.이 말을 누가 믿을지 어떤 방청객이 원커트라는 편집용어를 쓸까 10월 26일 TV조선는 방송사고는 아니고 유튜브 클립영상은 수정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외에도 촬영 중 스태프가 넘어지거나 가수 선미의 축하 무대 중 "커트"라는 말이 들려오는 등 개판 그 자체.

5.3. 왜 이렇게 논란이 많은가?

아래 링크된 기사들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대종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개판으로 전락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결론적으론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단물만 빨다가 민주화가 되고 세상이 바뀌면서 그에 적응하려는 노력 없이 과거의 향수에만 매달려온 보수 영화인들이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이권을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다투고 싸우다가 수도 없이 많은 추태를 매년마다 저지르는 바람에 몰락하게 된 것이다. 자업자득인 셈.

6. 관련 문서

6.1. 연도별 논란

6.2. 기타 관련 문서


  1. [1] Grand Bell Awards가 아니다.
  2. [2] 영화제가 아닌 영화 시상식이 맞지만 법인 측에서 굳이 '대종상 영화제'라는 명칭을 고집한다. 시상식의 전야제 개념으로 후보작과 역대 수상작들을 상영하는 영화제를 열기도 하지만 인지도가 현저히 낮고 꾸준히 열리지도 않는다.
  3. [3] 1969년, 1970년, 1988년, 1998년 총 네번 개최를 안했기 때문이다.
  4. [4] 당시 민주화운동가들은 한국영화를 독재정권의 3S정책의 도구라고 비판하였다.
  5. [5] 여담으로 같은 권리가 그 해 최고의 반공영화를 제작한 영화사에도 돌아갔다. 반공영화가 미친듯이 찍혀나온 이유가 있다.
  6. [6] 1973년까지 시행되다가 1974년에 영화계의 질적 하락을 이유로 잠정 폐지된 후 이때 부활했다.
  7. [7] 다만 투캅스의 경우는 해당 항목에도 있지만 표절 시비가 꽤 강하게 일었었다는 것은 고려하자.
  8. [8] 하지만 이것도 청룡영화상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2009년 청룡영화상에서 하지원이랑 같이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 마더김혜자박쥐김옥빈이었다. 두 배우들 모두 각자의 영화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었고 적지 않은 영화 팬들이 당시에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김혜자나 김옥빈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하지원의 수상도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물론 하지원도 영화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논란은 덜한 편.
  9. [9]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학업에 전념하려고 불참했다.
  10. [10] 당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류승룡은 "광해로 상을 받았지만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수상 소감을 말하겠다."라면서 연출가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서 함께 출연한 배우 임수정과 이선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원래 해당 작품으로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했으면 이런 관례를 깨고 수상소감을 말했을까?#
  11. [11] 후보가 미발표되었다는것은 본선 진출작이 전부 후보인 셈이다.
  12. [12] 심은경, 천우희, 전도연, 엄지원, 손예진
  13. [13] 이해가 안되는 분들은 청룡영화제를 진행하는 김혜수와 비교해보면 안다. 김혜수는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후보작품 및 제작진, 배우들에 대한 정보를 스케쥴이 많아도 따로 챙긴다. 반면 그 흔한 연기도 안하는 신현준은?
  14. [14] 이 문단의 하단 참조.
  15. [15] 90년대까지만 해도 MBC와 SBS에서도 생중계를 해줬다.
  16. [16] 청룡영화상은 SBS에서, 백상예술대상은 JTBC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종상의 위상 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실.
  17. [17] 실제로 이병헌은 1996년 제34회 대종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 중, 닥터봉한석규와 함께 수상이 유력했었다.
  18. [18] 역사 내부에 대종상에 대한 소개와 역대 대종상 시상자 사진이 걸려있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