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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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위대한 영국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00 Greatest Britons

※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윈스턴 처칠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

다이애나 스펜서

찰스 로버트 다윈

윌리엄 셰익스피어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이작 뉴턴

엘리자베스 1세

존 레논

호레이쇼 넬슨

올리버 크롬웰

10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어니스트 섀클턴

제임스 쿡

로버트 베이든 파월

알프레드 대왕

아서 웰즐리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마가렛 대처

마이클 크로포드

빅토리아 여왕

폴 매카트니

알렉산더 플레밍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앨런 튜링

마이클 패러데이

오와인 글린두르

엘리자베스 2세

스티븐 호킹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윌리엄 틴들

에멀린 팽크허스트

윌리엄 윌버포스

데이빗 보위

가이 포크스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레오나르드 체셔

에릭 모어캠브

데이비드 베컴

토머스 페인

부디카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스티브 레드그레이브

토머스 모어

윌리엄 블레이크

존 해리슨

헨리 8세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찰스 디킨스

프랭크 휘틀

존 필

존 로지 베어드

어나이린 베번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보이 조지

더글라스 베이더

윌리엄 월레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웨슬리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아서 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로버트 스콧

이넉 파월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클리프 리처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프레디 머큐리

줄리 앤드루스

에드워드 엘가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애튼버러

제임스 코널리

조지 스티븐슨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찰리 채플린

토니 블레어

윌리엄 캑스턴

바비 무어

제인 오스틴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윌리엄 부스

헨리 5세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로버트 1세

밥 겔도프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무명용사

로비 윌리엄스

에드워드 제너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찰스 배비지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제프리 초서

리처드 3세

J. K. 롤링

제임스 와트

밥 겔도프 (아일랜드인)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보노 (아일랜드인)

존 라이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도날드 캠벨

헨리 2세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존 로널드 루엘 톨킨

월터 롤리

에드워드 1세

반스 월리스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리차드 버튼

토니 벤

데이비드 리빙스턴

팀 버너스리

마리 스톱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러시아인, 위대한 독일인, 위대한 프랑스인, 위대한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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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의 역임 직책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앨런 시어러
(1996~2000)

데이비드 베컴
(2000~2006)

존 테리
(2006~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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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01 UEFA 올해의 팀

FW
다비드 트레제게

FW
티에리 앙리

MF
킬리 곤살레스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라

MF
데이비드 베컴

DF
비셴테 리사라수

DF
파트리크 안데르손

DF
사미 히피아

DF
코스민 콘트라

GK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HC
제라르 울리에

2003 UEFA 올해의 팀

FW
뤼트 판니스텔로이

FW
티에리 앙리

MF
파벨 네드베드

MF
지네딘 지단

MF
데이비드 베컴

MF
루이스 피구

DF
호베르투 카를루스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파울루 페헤이라

GK
잔루이지 부폰

HC
주제 무리뉴


1999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1999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2001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루이스 피구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라울 곤살레스

1999 Ballond'or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안드리 솁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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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의 기타 정보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2년
리오 퍼디난드
(4600만 €)

2003년
데이비드 베컴
(3750만 €)

2004년
디디에 드록바
(3850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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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 마이애미 CF

Club Internaćional De Fútbol Miami

이름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조지프 베컴
(David Robert Joseph Beckham, OBE[1])

국적

영국 (잉글랜드 )

출생

1975년 5월 2일 (44세)

영국 런던 레이턴스톤

가족

배우자: 빅토리아 베컴 (1999-)
장남: 브루클린 베컴
차남: 로미오 베컴
삼남: 크루즈 베컴
장녀: 하퍼 베컴

직업

축구선수 , 축구경영인, 선수 에이전트

신체

181cm[2]체중 76kg

포지션

윙어, 중앙 미드필더

주로 쓰는 발

오른발

등 번호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7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28번, 24번, 10번[3], 7번
레알 마드리드 CF,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23번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 32번

후원사

아디다스

소속

유스팀

리즈웨이 로버스 FC (1985~1987)
토트넘 핫스퍼 FC (1987~1991)
브림스다운 로버스 FC (1982~198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8~1993)

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3~2003)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95, 임대)
레알 마드리드 CF (2003~2007)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2007~2012)
AC 밀란 (2009, 임대)
AC 밀란 (2010, 임대)
파리 생제르맹 FC (2013)

구단주

인터 마이애미 CF (2018~)

국가대표

115경기[4] 17골(잉글랜드 / 1996~2009)

종교

개신교(성공회)

SNS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사건사고
5. 여담
6. 가정사
9. 커리어
9.1. 대회 기록
9.2. 개인 수상
9.3. 수훈
9.4. 출전 기록
9.5. 홍보 대사
9.6. 영화 출연작

1. 개요

풀네임이 길어 흔히 데이비드 베컴이라고 부른다. 본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축구실력과 조각 같은 외모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고, 세계적인 걸그룹 스파이스걸스의 멤버인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한 뒤 3남 1녀의 자녀를 낳고 단란한 가정까지 꾸민 현실에서 대표적인 인생의 승리자. 실력도 뛰어나고 수려한 외모 덕분에 타 선수들보다 광고 수입 등으로 몇 배의 수입을 얻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질투와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 중 가십과 파파라치 등 세인의 관심이 많이 몰려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클래식 윙 미드필더의 교과서이자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5]이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손꼽힌다.

자신이 속한 팀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강하다. 특히 국대에 대한 충성심이 누구보다 강하며, 일단 대표팀에 발탁되면 어떤 잉글랜드 선수보다도 뛰어난 공을 세우곤 한다. 지네딘 지단 / 루이스 피구 / 파벨 네드베드와 함께 세계 4대 미드필더로 손꼽힌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 축구계의 중심인 유럽을 떠나 미국에서 뛰면서 예전의 미칠듯한 인기와 세인들의 관심은 다소 떨어진 것으로 보였으나, 2009년 말에 2010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을 하는 멤버로 뽑히고 동년배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고도 남은 2012년에도 2012 런던 올림픽 영국 단일팀 와일드카드 0순위로 거론되는 등 그 영향력은 여전히 지대하다.

2. 선수 경력

이 부분의 본문은 데이비드 베컴/선수 경력 문서에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정확한 킥을 통한 패스 보급이 베컴의 가장 강렬한 특색이다. 베컴이 오른쪽 윙어로 뛸 경우 크로스가, 중앙 미드필더로 뛸 경우 이리저리 뿌려주는 칼같은 로빙 패스가 일품. 주력과 민첩성, 수비 스킬이나 공격에서의 테크닉이 대단한 수준이 아니지만, 이미지나 외모, 장기인 킥력을 위주로 할 것 같은 스타일과 안 어울리게 굉장히 많이 뛰는 하드워커라는 점도 특징이다. 딴 건 몰라도 그렇게 빠른 공수전환의 뻥축구가 대세였던 EPL에서 활동하는 윙 플레이어가 활동량이 적은 게으른 선수였다면 천하의 퍼거슨 감독이 베컴을 에이스로 믿고 중용하기는커녕 진작에 짤렸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최종전 대 그리스전에서는 팀 동료들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일관할 때 무려 16.1km를 뛰면서 코너킥 어시스트에 이어 95분에 극적인 프리킥 골을 터뜨리며 2-2 무승부를 견인, 거의 혼자 힘으로 팀을 월드컵으로 보내다시피 했다. 참고로 카가와 신지의 맨유 소속 시절 에피소드 중 맨유의 셔틀 런 역대 최고기록 보유자가 베컴이라는 언급이 있다.

두 개의 심장이라 할 만큼 많은 활동량과 성실한 플레이 스타일, 박스 투 박스의 커버리지,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뛰어난 움직임과 수비 가담 능력까지 미드필더가 지녀야 할 여러가지 능력을 펼쳤지만 워낙 패스 한 방이 인상적이어서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베컴의 킥에만 집중하는 경향도 있었다. 여러 스페셜 영상에서도 킥에 관한 것들만 모아둔 것이 대부분이지만 여느 선수들을 앞서는 부지런한 플레이 스타일 또한 갖춘 선수였다.

또한 이러한 활동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선수시절 동안 오른쪽 미드필더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엔 풀백으로도 두 경기 출전하였으며 레알 미드리드 이적 이후엔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거나 풀백으로 출전하는 전술을 감독들이 고려할 때 익숙지 않은 포지션에 대한 팬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베컴 본인은 "어느 위치든 상관없다"며 자신감을 보였고 실제로도 준수하게 소화해냈다. 이처럼 베컴의 플레이의 기본이 되는 활동량은 여러 포지션에서 양질의 패스를 하기 위한 순간순간 최적의 위치를 찾아내는 공간 활용 능력과 만나 필드 위에서 팀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킥력과 날카로운 프리킥 능력은, 명백히 16강권 수준에 불과했으며 본선진출도 위태위태했던 잉글랜드 국대의 리쎌 웨폰으로 베컴의 국대 커리어 내내 따라다녔다. 특히, 프리킥은 그의 상징과도 같은데 비스듬한 위치에서 대각선으로 도움닫기를 하여 감아찬 공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골대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베컴의 클리셰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이한 점이라면 다른 최상위 프리키커는 거리와 위치에 따라서 킥의 구종(?)에 변화를 주지만[6] 베컴은 어느 위치에서든지 늘 똑같이 감아차는 킥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사실 킥의 정확도야 본인의 인프런트가 정확할 것이고 워낙에 발목 힘이 좋다보니 감아차기를 해도 다른 선수들의 묵직한 파워 슛만큼 힘이 실려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방식의 킥을 구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역대 최고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를 논할때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디에고 마라도나, 안드레아 피를로, 지쿠, 지안프랑코 졸라, 리오넬 메시등과 함께 반드시 언급된다.

아래에 쓰여 있듯 스탠딩 윙어라고도 불렸지만 그건 그가 패스나 크로스를 할 때, 공을 잠시 키핑한 후 행하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가 많이 뛰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상술되어 있듯이 그의 활동량은 당시 세계 축구계에서도 상위 2~3%내에 들수 있는 최상위권이다. 때문에 베컴이 뛰던 당시 맨유 역습을 보면 베컴이 킥뿐만 아니라 측면에서 패스 주자마자 공간을 찾아 뛰어들어가며 다시 받고 패스하는 역습시 윙어 플레이의 정석같은(평소 잘못 알려진 베컴의 플레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거의 cm 단위의 포격이 가능한 킥의 정확도도 정확도지만, 수비를 앞에 두고도 여유 있게 로빙 패스가 가능하다는 점도 베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반적인 윙어들이 마크를 뿌리치고 공격수에게 크로스 한번을 올리기 위해서 죽어라고 기술을 쓰고 드리블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크를 앞에 두고도 정확하고 여유있게 올리는 베컴의 크로스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윙어들은 어느정도 상대 페널티박스 근처까지는 올라와서 크로스를 올리는것이 보통이지만, 베컴은 거의 중앙선 근처에서 뜬금없이 공격수를 바라보고 크로스를 올리기 때문에 마크하는 상대 입장에서도 대처가 힘들다. 물론 베컴이라고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특정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것만 해도 가공할 수준이다.

롱킥을 할 때 뛰어난 발목힘을 이용해 양팔을 아래 위로 휘저어 킥력을 올리면서도 밸런스를 잡는 특유의 폼은 그만의 전유물로, 킥 동작의 시작에서부터 볼이 선수의 머리에 닿을 때까지가 마치 하나의 공예품처럼 느껴져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또한 베컴은 그의 킥에서 커브와 자세로 많이 유명하고 매번 강한 파워의 슈팅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경악스런 힘의 슈팅을 보여줄 수 있는 발목을 가지고 있었다. 베컴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빠른 슈팅 10위 이내 기록을 2개나 가진 유일한 선수며, 1997년 맨유vs첼시 경기에선 157.5 km/h 슈팅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엄청난 하드워커로 전성기 맨유 시절에는 리그 경기당 평균 뛴 거리가 14km##라는 말도 안 되는 활동량을 기록했던 적도 있다. 다만 2002년 말 부상 여파로 인해 운동능력 저하가 왔는지, 이후에는 플레이 스타일이 약간 변화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라 리가에서는 많이 뛴다는 소리를 들으며 팀에서는 높은 활동량 기록을 보여줬던 베컴이었지만, 전성기 맨유 시절에는 정말로 오른쪽 사이드의 끝에서 끝까지 그리고 중앙까지도 너끈하게 커버하면서 뛰어다니는 미친 하드워커였다.[7]

태클로 입은 부상으로 인한 운동능력 저하 전에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어쨌든 돌파력도 더 나을 수밖에 없고, 눈 감고도 아는 걸로 유명한 게리 네빌과의 호흡을 바탕으로 측면 공격의 진퇴를 자유자재로 조절했다. 여기에 미친 활동량으로 중앙에서의 공격작업에 참가해 뤼트 판니스텔로이에게 절묘한 땅볼 킬패스를 날리거나 본인이 공간 침투로 골을 넣기도 하고 반대편의 긱스에게 돌리거나 중앙의 로이 킨이나 스콜스에게 부드럽게 연결해 주기도 했다. 고전적 윙플레이어들은 측면의 붕괴와 그에 이어지는 크로스에 집중하지만, 베컴은 전성기 박지성급 활동량으로 중앙까지 넘나들면서 마무리 스루패스나 슈팅까지 관여했다. 괜히 바르샤 회장 선거 공약으로 베컴을 사오겠다는 공약이 나온 게 아닐 정도로 베컴은 맨유의 에이스 중 하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주로 윙어로 뛰던 맨유 시절과 달리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기에 그동안의 킥 스루 패스 스타일보다 경기장을 휘젓는 엄청난 활동량이 부각되어 그 해 라리가에서 제일 많이 뛰어다닌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라 리가에서는 경기력에 대한 비난도 많이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부상으로 인한 운동능력 저하와 더불어 제대로 된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던 갈락티코의 사정 때문이었다. 또 라 리가에 진출한 잉글랜드 선수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 중 하나인데 느려진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말년에 방출이 확정된 상태에서 오른쪽 윙어로 돌아가 리가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본포지션에 돌아간 게 첫째고, 둘째로는 빠르고 위협적인 시싱요가 베컴에게 부족한 부분을 잘 메꿔줬기 때문이고, 호나우두 대신 영입된 판니스텔로이는 훨씬 더 위협적인 공중전 능력과 더불어 많은 활동량과 활동범위로 수비를 흔들어 베컴에게 보다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게 세 번째다.

AC 밀란에서는 안첼로티 감독이 있을 때는 주 포지션인 윙어에 가까운 플레이(중앙 미드필더이긴 하지만)를 하였지만, 레오나르도 감독 아래에서는 전술적 이유로 윙어로 출장했다. 하지만 라이트백으로 출장하는 이냐치오 아바테의 수비력이 개판 오분전인 관계로 윙어가 미친듯한 수비가담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기도. 어쨌든 생긴거나 플레이 스타일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대단히 부지런하고 열심히 뛰는 선수인건 확실하다.

4. 사건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이었던 5월 21일 잉글랜드와 한국이 평가전을 가졌는데, 경기종료 후 한국선수들이 유니폼 교환을 위해 벤치에 앉아있는[8] 자신에게 다가오자 유니폼 교환을 거부하고 유니폼을 교환하려던 다른 선수에게 "얼른 라커룸에 들어가!"라며 호통을 친 일화로 논란이 되었다.

당시 베컴은 한국에서 그야말로 콩이 까이듯이 까이고 까여 가루가 되었다. 차범근도 칼럼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비판했을 정도. 또한 얼마후 월드컵에서 일본과는 유니폼 교환을 한 덕에 다시 비난당함.

결국 유니폼 교환 거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과의 경기가 잘 안 풀렸던 데다 월드컵 개막이 불과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이 다소 거친 플레이[9]를 펼쳤던 점 역시 대회 직전까지 회복을 맞추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베컴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도 있다. 베컴은 당시 시즌 중에 입은 발목부상을 치료 중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에릭손 감독이 엔트리에 포함을 시켰지만, 회복이 더디어지면서 상당히 심기가 불편했던 상태였던 듯. 참고로 당시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10]

2010년에는 이탈리아 TV의 성추행을 당한 적 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신문들이 대서특필해서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탈리아 여자 리포터가 베컴에게 접근해 거시기를 꽉 쥐어버린 것.

2012년 6월 30일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프로축구 로스앤젤레스 갤럭시와 산 호세 얼스퀘이커와의 경기에서 누워있는 선수를 정확한 킥으로 맞춰 화제가 되었다.

베컴의 활약에도 경기는 3-4 LA가 뒤지는 상황에서 추가시간을 맞이했고, LA의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는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이때 산 호세의 샘 크로닌이 LA 선수들과 문전에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부딪혀 쓰러졌는데, 그라운드에 그대로 누워 일어나지 않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침대축구를 시전했다. 프리킥에 실패한 베컴은 그의 시간지연에 화가 났는지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누워있는 크로닌을 향해 슛을 날렸고, 공은 크로닌의 몸에 정확히 맞았다[11]. 공에 맞은 크로닌은 벌떡 일어나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주심은 베컴에게 경고를 주었다. 하지만 양 팀 선수들까지 흥분해 서로를 밀치는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경기는 다시 속개됐으나, LA의 패배로 끝이 났다. 화난 베컴은 다시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홍보하러 그라운드에 진입한 마스코트를 밀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탈락해서 이러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침대축구에 응징을 가했다는 점에서 많은 축구팬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할 때의 여담으로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이 베컴을 자신의 사무실로 오게해서 베컴에게 축구화를 던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했다는 설과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광고를 찍을 때 카리스마에 반해서 이적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다만 축구화 사건은 라커룸에서의 우발적인 충돌로 드러났다.

2019년 10월 내한 시,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놓고 예약 30분전 일방적으로 노쇼한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해당 레스토랑 오너셰프의 포스팅 기사 해당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가 자신의 인스타에 올린 바에 따르면 심지어 국내 대행사가 아닌 해당 인사의 직속 스탭이 직접 예약했다고 한다.

5. 여담

2006년에는 자신이 강박장애를 앓고 있음을 언론에 고백하기도 했다. 실제로 생활하는 모습이 공개되었을 때 냉장고를 열자 안에 캔 음료수가 한가득 가지런히 정렬돼있고[12] 그 중 한 개를 꺼내자마자 바로 박스에서 음료를 꺼내어 빈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박스 안에 든 음료수가 바닥나서 냉장고 속 음료수의 열을 맞출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반대로 냉장고에 들어가있는 멀쩡한 음료수들을 내다버린다고(…).[13]

왼쪽 팔뚝에 아내 빅토리아의 이름을 힌디어로 새겼으나 글자가 잘못 들어가 '비흑토리아'가 되어버렸다 한다. 베컴의 대변인은 이에 대해 힌어와 힌어는 다르다는 개드립을 쳤다.

아들 부자다. 큰 아들 브루클린, 둘째 아들 로미오, 셋째 아들 크루즈[14] 모두 훈훈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도 딸을 가지고 싶어서 여러모로 노력한 결과 드!디!어! 딸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태어나지도 않은 딸 방을 꾸미는데 무려 2억 3천만원을 들였다고 한다. 2011년 7월 드디어 딸 하퍼 세븐 베컴 출생[15]. 아빠가 레전드, 엄마는 패셔니스타, 오빠들은 원빈. 재산은 황금산인 다이아몬드수저. 유전자 라인을 생각하면 외모도 그다지 걱정없이 순풍을 타게 될 듯.인생 치트키 브루클린과 크루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지만 로미오는 아스날 팬이라고 한다. 로미오는 모델 활동도 하고 있으며 2014년 아스날 유스팀에 입단해서 뛰고있다.브루클린은 퀸스 파크 레인져스 유스팀에 입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무근으로 알려졌으며, 베컴은 인터뷰를 통해 세 아들 모두 아스날 유스팀에서 뛰고 있다고 밝혔다. 세 아들 중 축구선수로써의 재능은 로미오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중이었으나 셋 다 축구를 그만둔 듯 하다.

아이들을 마냥 오냐오냐 키우는게 아닌지 첫째 아들 브루클린은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런던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은 2.68 파운드로, 만 16세 미만이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적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외에도 모델일을 하고 있다.

로미오와 함께 아스날 경기를 관전중인 베컴, 아들아 아빠는 맨유 레전드란다.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게 했다고한다.

'베컴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한 5분 동안은 실실 쪼갤 수 있다'는 식으로 네티즌들에게 놀림받았던 적이 있다. [16]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발성법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고, 또 목소리 교정도 따로 받아서 그런지 현재의 목소리에서는 이전부터 지적(?)받아온 삐걱대는듯한 고음부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다. [17][18] 그나마 하나 있던 약점마저.. 그래도 최근 영상들을 살펴보면 일부 영상에서는 보통의 목소리 톤을 띄지만 일부 영상은 하이톤이 나오는 등 전체적으로 목소리 톤에 기복이 있는 편이다. 그냥 컨디션에 따라 목소리 톤에 기복이 생기는 타입이거나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목소리가 가늘다는 기믹은 빼도박도 못하는지 영화에서도 데드풀이 "헬륨가스와 오XXX한 듯한 목소리"라고 깠다. 이게 인연(?)이 됐는지 데드풀 2 홍보영상에는 데드풀이 전작에서 자기 목소리를 까는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베컴을 데드풀이 찾아와서 계속 화해를 시도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때 베컴은 데드풀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의 흑역사 작품들을 줄줄히 언급하며 쌓였던 걸 푼다.

일본에서의 인기가 장난이 아닌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출전했던 잉글랜드 대표팀은 조별 예선을 일본에서 치뤘는데, 어느 구장을 가든 간에 웸블리에 버금가는, 홈에 가까운 일방적인 응원을 받았다. 축구계에서 다시금 부활한 영일동맹? [19] 또한 베컴도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일본을 방일하여 일본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기도 했다. 또한 본인도 스시를 좋아한다고 한다. 재밌는 일화로는 베컴 닮은 꼴로 활동하는 사람이 일본에 갔다가 대형 음반점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덕에 앙죽전인 아르헨티나전에서 잉글랜드가 공을 잡으면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른 반면 아르헨티나가 공을 잡으면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일본의 한 시골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 반응이 '근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식으로 영 좋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블레어 총리가 "아저씨는 베컴과 같은 나라 사람이란다." 라고 말하자마자 학생들 반응이 갑자기 열광적으로 바뀌었다는 일화도 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때 베컴은 아르헨티나 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을 관전했다. 이 경기가 아르헨티나의 학살극으로 끝나자 베컴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내가 마라도나였어도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손으로 골을 넣었다. 스포츠정신이고 뭐고 간에 우리와 아르헨티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승리가 절박한 상대였다. 지금 아르헨티나랑 맞붙으면 잉글랜드로서는 아르헨티나를 이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발언은 8년 후 간접적인 정답이 되어 돌아왔다. 베컴의 조국인 잉글랜드는 1무2패라는 시원찮은 성적의 조 꼴찌로 조별리그를 탈락한 반면 아르헨티나는 3전 전승의 조 1위로 올라가서 8강즉 베스트4에못들어가는성적을 찍었다.

대표 명대사로는 2009년 모토로라의 MOTO V10 한국용 광고에 나왔던 "난 둘돠(Nan Dool d'wa)."가 있다.

상체에 한문 문신을 하고 있다. 아니, 상체 전체에 문신이 엄청나게 많다. 왼쪽 상체 세로로 고사성어 '생사유명 부귀재천(生死有命 富貴在天)'이 초서체로 적혀 있는데, 뜻은 '생사는 수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으니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컴은 첫째인 브루클린을 낳고 등에 천사 문신을 하고 아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문신을 시작했는데, 처음 문신을 했을때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안하리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겨진 것이 마음에 들어 점차 문신을 늘렸고, 그리고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이름을 더 새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상체 전체가 문신으로 뒤덮였다.

H&M바디웨어 광고를 찍는 중인 베컴, 상체 전체가 문신으로 덮여있다.

축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휴식시간엔 종종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슈퍼스타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만 친절한 성품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이벤트로 la 갤럭시로 가서 베컴을 만난 팬들이 있었는데 서슴없이 포옹도 하며 서글서글하게 대해주는 그 친절함에 녹았다고.

2011년엔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초청되어 빅토리아 베컴과 함께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다.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은 2003년에 받았던 4등급 훈장(OBE) 메달이다. 참고로 이 훈장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페널티 킥을 성공시켜 이기고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조별리그에서 탈락시켰기 때문에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테니스에 관심이 많은지 매년 6월말~7월초에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중 하나인 윔블던 관중석(VIP만 앉을 수 있는 로얄박스석)에서 그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째 굴욕광고를 많이 찍었다. 가장유명한건 뭐니뭐니 해도 아디다스 광고로 당시에는 만화나 짤방 등으로 많이 패러디가 되었었다. 한 소년에게 제일 좋아하는 축구선수를 물었더니 고민도 않고....

베컴: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야?

소년: 제라드요.

베컴: 어.......음.......어...... 그래?

소년: 음......

베컴: 그렇구나....

그 외에도 베컴에게 유니폼을 요구하길래 베컴이 멋지게 벗어줬것만 그걸로 콜라에 맺힌 베컴의 침을 닦는 소년. 그리고 뒤돌아선 소년은 유벤투스의 팬임이 밝혀진다.그 뒤에 깨알 카를로스

아들 브루클린의 인스타그램 100만 팔로워 기념 영상에 기습 출연하여 자기는 팔로워가 5200만명있다며 굴욕을 주었다(...) 빅토리아에게 등짝 스매싱 예약 왜 우리 브루클린 기를 죽이고 그래요

헬스 키친 시즌10의 에피소드11화에 아들 브루클린을 데리고 특별출연해서 신랄한 갈굼의 현장 주방이 가장 잘 보이는 VIP석에서 식사를 대접받았다.영상

상당한 지네딘 지단의 빠다. 현재로 치면 가레스 베일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관계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단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치켜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친분이 깊다. 베컴의 빠심은 지단에 대한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함께 광고도 많이 찍었다.

항상 긴팔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팔에있는 타투를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리고, 스펀지 제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은 태국에 "베컴 가루다"라고 하는 베컴 불상이 있다고 한다. 이 베컴 불상은, 그 당시 가장 사회적인 이슈 가운데 주인공을 불상으로 만들려고 했엇는데, 그때 베컴이 당첨된 거라고. 원래, 태국이라고 하는 나라 자체가 축구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나라라는 것도 한 몫을 했을 듯 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압권인게 당시 이휘재가 베컴 가루다를 따라오면서 "이휘재 가루다"라고 했는데, 평가원들이 내린 점수는 전원 0점(!!!)이었다라는 것으로, 오죽했겠으면은 당장 베컴 씨에게 사과해라라는 말을 듣고 이휘재가 베컴에게 사과(...)를 했다.

단순한 미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패션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2002년 당시의 데이비드 베컴의 헤어스타일이 아예 광풍이 불어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속칭 '베컴머리'라고 해서 베컴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영화 까불지마에도 나오는데 개떡이 미용실 가서 유명한 축구선수의 헤어스타일로 깎아달라고 했는데 미용사가 유명한 축구선수의 헤어스타일로 깎아주는 바람에 개떡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다.

2010 FIFA U-17 여자 월드컵 트리니다드 토바고 결승전에 당시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와 등장하여 경기 전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격려했다. 당시 결승전은 한일전이었는데 당시 소녀 선수들의 얼굴에 행복이 넘쳐 흐른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매니아로 알려져 있다.[20]

한국 한정 별명으로는 백암선생이 있다.

2019년 10월 9일 서울에서 아디다스 창립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백가람" 이라는 한국 이름을 받았다. 문제는 이 행사의 또다른 게스트인 블랙핑크가 약 20분 가량 지각을 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고 있다.[21]

2019년 10월 12일 스포츠 에이전트로 등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첫 고객 유치를 위해 킬리안 음바페 측과 접촉해보겠다고 밝혔다.

영국남자 채널에 출연 예고가 떴다.

영국남자 채널에 출연해 소고기 먹방을 찍었다.

된장찌개는 저날 처음 먹었는데 아주 좋아한다(...)

6. 가정사

평민이지만 집안 자체가 부유했던 아내 빅토리아와는 달리 평범한 서민 집안이었다. 한마디로 자수성가형. 3남매 중 둘째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던 베컴은 누나 린과 여동생 조앤을 잘 돌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자매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많이 해줬다.

그러나 누나 린은 이런 슈퍼스타 동생만 믿고 자기 분수와 능력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해대서 동생이 사 준 아파트들을 모두 날려버렸으며, 심지어 변변한 직업 하나 전혀 없다고 한다. 영국 언론에서 베컴은 초호화 집에서 사는데 누나는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산다는 기사를 내놓자 베컴이 즉각 반박했을 정도.

게다가 연애운도 동생에게 다 뺏겼는지 지지리도 없다. 애인들이 하나같이 다 범죄자다. 집에서 코카인 키우다가 걸리지를 않나, 폭력죄 전과범이지를 않나.... 그래서 그런지 큰시누이의 첫 결혼 때 빅토리아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동생 조앤은 남자관계에 별 문제도 없고 자립을 했다는 것.

7. 외모

할리우드 대표 미남들과 비교되는 외모,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 등

데이비드 베컴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외모다.

8. WAGs

역대 최고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빅토리아 베컴이다.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결혼식은 1999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은 같은 해에 있었던 에드워드 영국 왕자 결혼식을 제치고 올해 최고의 결혼식으로 선정됐다.

빅토리아 베컴은 그저 데이비드 베컴의 이름값에 효과를 톡톡히 보는 아내 이미지로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둘이 처음 만났을때 데이비드 베컴은 유망주였으나 빅토리아 베컴은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였다.

물론 90년대 후반부터는 데이비드 베컴이 우리가 아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고 인기는 확연히 역전됐다.

참고로 데이비드 베컴 인기에 빅토리아 베컴에 지분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슈퍼스타 아내이고 탁월한 패션 감각이 있어 옷만 입고 나오면 크게 화제가 되며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던 데이비드 베컴 패션에 도움을 많이 줬다.

빅토리아와 베컴의 첫 만남, 그리고 그 이후 러브스토리는 유명하다. 1996년 스파이스걸스의 히트곡 '세이 유 윌 비 데어의 뮤직비디오'를 본 데이비드 베컴이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 구애했다. "그녀는 나를 위한 여자다. 나는 그녀를 잡으러 갈 것이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여성이고, 그녀 역시 나를 원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며 그녀에 대한 마음을 용감하게 전했다. 빅토리아가 베컴의 맨유 클럽 선수 라운지를 찾으면서 평생의 연이 시작됐다.

''축구에 대해 좀더 배워두도록해. 특히 오프사이드 룰 말야"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진짜 존재하더라. 맨유 선수 라운지에서 첫눈에 반하는 그 일이 일어났지. 너는 약간 취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디테일은 가물가물하겠지만" "선수들끼리 바 옆에 서 있었는데 너는 가족과 함께 서 있는 데이비드를 봤어. 당시 그는 1군팀이 아니었고, 너는 굉장히 유명한 스타였지. 그가 널 향해 특유의 귀여운 미소를 지어보였고, 너는 그의 가족 옆으로 다가갔어. 그 역시 너와 똑같은 느낌일 거란 생각이 들었을 거야. 곧 그가 너의 전화번호를 묻겠지."

- 빅토리아 베컴이 본인에게 쓰는 편지

9. 커리어

9.1. 대회 기록

  • LA 갤럭시(2007~2012)
    • MLS컵(2): 2011, 2012
    • MLS 서포터즈 실드(2): 2010, 2011
    • MLS 서부 지구
      • 정규시즌: 2009~2011
      • 플레이오프: 2009, 2011, 2012

9.2. 개인 수상

9.3. 수훈

2003년에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다. 4등급이므로 작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알렉스 퍼거슨, 바비 롭슨 등이 받은 기사작위(Knight Bachelor)는 2등급 훈장에 준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대영제국 훈장 문서 참조. 같은 4등급 훈장을 받은 또 다른 축구 선수로는 라이언 긱스, 앨런 시어러, 프랭크 램파드가 있고, 그들에게 또한 'Sir'는 붙지 않는다. 앨런 시어러는 이후 2016년에 자선활동 공헌[25]으로 3등급 CBE를 받았다.

9.4.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 컵

리그 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2/9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0

0

0

0

0

0

0

0

1993/9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0

0

0

0

1

0

0

0

1994/95

프레스턴 노스 엔드

잉글랜드 디비전 3

5

2

0

0

0

0

-

-

1994/9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4

0

2

0

3

0

1

1

1995/9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3

7

3

1

2

0

2

0

1996/9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6

8

2

1

0

0

10

2

1997/9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7

9

4

2

0

0

8

0

1998/9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4

6

4

2

0

0

12

2

1999/200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1

6

-

-

0

0

12

2

200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1

9

2

0

0

0

12

0

2001/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28

11

1

0

0

0

13

5

2002/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31

6

3

1

5

1

13

3

2003/04

레알 마드리드

라 리가

32

3

4

2

-

-

7

1

2004/05

레알 마드리드

라 리가

30

4

0

0

-

-

8

0

2005/06

레알 마드리드

라 리가

31

3

3

1

-

-

7

1

2006/07

레알 마드리드

라 리가

23

2

2

1

-

-

6

0

2007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5

0

0

0

-

-

-

-

2008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25

5

0

0

-

-

-

-

2008/09

AC 밀란

세리에 A

18

2

0

0

-

-

2

0

2009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11

2

0

0

-

-

-

-

2009/10

AC 밀란

세리에 A

11

0

0

0

-

-

2

0

2010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7

2

0

0

-

-

-

-

2011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26

2

0

0

-

-

-

-

2012

LA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24

7

0

0

-

-

1

0

2012/13

파리 생제르맹

리그 1

10

0

2

0

-

-

2

0

9.5. 홍보 대사

  • 2005년 ~ (현재) 유니세프 친선대사
  • 2005 ~ 2012년 2012 런던올림픽 홍보대사
  • 2008 ~ 2010년 "2018년 잉글랜드 월드컵" 홍보대사
  • 2010년 ~ (현재) 야후! 글로벌 축구 홍보대사
  • 2011년 ~ 2012년 삼성전자 런던 올림픽 글로벌 홍보대사
  • 2013년 ~ 중국 슈퍼리그 홍보대사

9.6. 영화 출연작

자신의 이름을 단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26]에 와이프인 빅토리아와 카메오 출연....이 아니라 대역으로 출연하고 실제 본인이 나온 것은 자료화면만 사용했다. 당시 9.11 테러로 인해 각나라별로 보안검색이 강화된 데다가 아내인 빅토리아가 임신중이어서 촬영이 어려웠다고 한다. 정작 베컴 본인은 영화가 나온 뒤 “왜 이런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느냐”며 아쉬워했다는 후문.

지금까지 축구와 관련된 영화 작품에만 출연하였던 베컴이지만, 2017년 개봉한 영화 킹 아서: 제왕의 검 에서는 감독인 가이 리치 감독과의 친분으로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극 중 블랙레그의 리더를 연기하였다.


  1. [1]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음을 나타냄. 2017년에 아내도 패션 산업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아(For services to the Fashion Industry) 같은 등급 훈장을 받았다.
  2. [2] CelebHeights.com
  3. [3] 데뷔 초기에는 이 세 번호로 96-97 시즌까지 수행하였다. 그 당시에는 올드 트래포드의 왕이 군림하고 있었다.
  4. [4]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역대 3위. 1위는 125경기의 피터 쉴튼, 2위는 120경기의 웨인 루니
  5. [5] 흔히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함께 4대 미드필더로 꼽혔다
  6. [6] 원거리에서는 감아차기보다는 무회전 킥이나 맞고 뒈져라 슛(...)을 구사한다든지.
  7. [7] 중앙보다는 전력 질주나 방향전환 할 일이 많은 윙어의 체력소모가 같은 활동량에 비해 더 심하다.
  8. [8] 베컴은 당시 시즌중에 입은 부상을 치료중으로,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한 상태였지만 에릭손 감독은 전력의 핵심인 그를 엔트리에 포함했고, 베컴은 월드컵까지 회복하여 출전했다.
  9. [9]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히딩크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지 못했다. 2001년에는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이 유행했을 정도였고 2002년 들어서도 우루과이에 패하고 CONCACAF 골드컵에서는 쿠바와 0:0 무승부캐나다를 상대로 1:2 역전패를 당했으며 심지어 4월 27일 중국과의 평가전에서조차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본선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상황. 이러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이후 평가전 때마다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하다보니 다소 거친 플레이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며칠 전이었던 5월 16일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4:1의 스코어로 한국이 이겼고 잉글랜드전을 무승부로 끝내면서 히딩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싹 걷혔다.
  10. [10] 전반에 마이클 오언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후반에 박지성이 헤딩 동점골을 기록.
  11. [11] 조금만 옆으로 빗나갔으면 주심에게 맞아 옐로가 아닌 레드 카드가 나왔을 것이다
  12. [12] 꼭 짝수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13. [13] 다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베컴만 그런 것이 아닌 자신이 무언가를 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가졌을 법도 한 강박장애의 일부분으로써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다.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도 전 농구선수이자 현 방송인인 서장훈 역시도 경기에 대한 부담감과 자신이 잘해야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앞에 불규칙적으로 놓여진 음료수 캔이나 병들을 다시 규칙적으로 정리한다든가 시간 계획을 철저히 세워서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하고,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절대로 시간 계획에 어긋나지 않게 일을 하는 강박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14. [14] 2016년 12월 가수로 데뷔하였다. 뮤비
  15. [15] 세 오빠들이 각각 1999년생, 2002년생, 2005년생으로 3살 터울인데 반해 막내 하퍼는 바로 윗 오빠인 크루즈와 6살 터울이다. 즉 늦둥이
  16. [16] 오죽하면 축구의 신은 축구선수를 만들 때 꼭 하나씩 빼고 만든다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메시를 만들면서 키를 빼먹고, 호날두를 만들면서 패션감각을 빼먹고, 펠레를 만들면서 승부예측을 빼먹고...
  17. [17] 베컴의 목소리와 화법의 변화에 대한 BBC 기사, 베컴의 목소리 변화에 대한 칼럼
  18. [18] 이전 목소리와 비교한 동영상. 톤 자체가 많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19. [19] 당시 주한미군내 여행사에서는 한국 경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경기의 티켓을 예약할 수 있었지만, 일본과 잉글랜드 경기는 불가능했다.
  20. [20] 여담으로 웨인 루니가 맨유 훈련장으로 에스컬레이드 몰고 가다가 대형트럭과 박았는데, 하나도 안 다쳤다. 하지만 루니는 사고 이후 자국의 국가대표 SUV로 바꿨다고.
  21. [21] 당연하겠지만 이는 블랙핑크가 잘못한거지 베컴의 잘못은 아니었기에, 베컴은 논란에서 자유롭다. 오히려 블랙핑크가 올 때까지 시간벌이를 위해 혼자서 팬 서비스를 하면서 이미지가 상승했다.
  22. [22] 1992-93~2001-02
  23. [23] 1997~2008
  24. [24] 골닷컴 선정
  25. [25] For charitable services to the community in North East England
  26. [26] 인도계 영국 여학생 중심의 2002년도 롬콤, 스포츠 영화이다. 발리우드 영화는 아니고, 원제는 Bend It Like Beckam. 저예산 영화이지만 제작비의 10배 이상을 벌어들이는 인기를 누렸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풋풋한 모습도 감상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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