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땅

1. 개요
2. 제작 과정
3. 가사
3.1. 주소
4. 수록 음반
5. 후속곡
6.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방송금지
7. 인기와 리메이크
8. 기타
9. 관련 문서

1. 개요

정광태 - 독도는 우리땅 (1982)

독도를 소재로 한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작자이기도 한 박문영(예명 박인호)이 작사 및 작곡했으며, 가수 정광태의 대표곡이다. 본래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정광태가 출연한 KBS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 코너에서 처음 공개된 이래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음반으로는 1982년 6월 대성음반이 여러 가수들의 인기곡 또는 신곡을 모아서 낸 앨범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에 수록된 것이 처음이다.

띄어쓰기를 똑바로 하면 '독도는 우리 땅'이 옳지만 노래 제목은 고유명사로서 맞춤법보다 상위에 있으므로 붙여 쓴 것을 표제어로 한다.

2. 제작 과정

1980년대 초 KBS 라디오 PD이면서 동 방송사 TV의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로도 일했던 박문영은 어느 날 신문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을 접한다. 이에 자극 받아 개그 코너에서 독도 노래를 내보내기로 김웅래 PD와 기획, 혼자서 1주일 만에 곡을 완성했고, 정광태임하룡 등 KBS 개그맨 4명이 포졸 복장을 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처음으로 곡이 공개되었다.

이후 1982년 6월 대성음반에 의해 정식으로 LP 음반에 수록됐는데, 원래는 정광태뿐만 아니라 처음 노래했던 개그맨 4명이 함께 녹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팅 자리에 제작자인 서희덕[1]이 지각을 하면서 미리 와서 기다리던 4명 중 한가하던 정광태를 제외한 3명은 스케줄 상 자리를 떴다. 뒤늦게 온 제작자는 정광태 혼자만이라도 녹음을 시키기로 결정해 정광태의 솔로곡이 되었고, 여러 가수들의 옴니버스 LP 음반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의 A면 5번 트랙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본래 이 음반은 후에 개똥벌레를 부르게 되는 신형원의 데뷔곡 〈불씨〉가 타이틀 곡이었는데, 독도는 우리땅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나중에는 아예 음반명을 《독도는 우리땅》으로 바꾸고 해당 곡을 타이틀 곡으로 바꿔서 재판했다. 또 이 노래로 정광태는 1983년 KBS 가요대상에서 남자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2]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여러 언론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인데, 그 밖에 모순되거나 보도끼리 상반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코미디 프로그램의 이름
독도는 우리땅이 최초로 수록된 음반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는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1982년 6월 30일에 발매됐으며,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도 관련 기사들이 있어 적어도 1982년 7월 이전에는 발매된 것이 분명하다. 한편 노래와 관련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음반 발매 이전에 이 노래가 나왔던 TV 프로그램 제목을 《유머 일번지》(당시 제목은 '유모어 1번지')라고 일관되게 설명해 왔다[3]. 그런데 정작 유머 일번지는 음반 발매 이듬해인 1983년 4월 2일부터 방영된 프로그램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82년 말에 유머 일번지에서...' 식으로 구체적인 시기를 지목해 나오는 보도도 많으나 역시 실제 방영 시기와는 맞지 않는다. 1982년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으로는 《코미디 출동》과 《유모어 극장》, 버라이어티 성격의 《젊은이의 토요일》 정도가 있지만 이중에서 독도는 우리땅과 관련해 보도된 것이 없어 정확히 어느 프로그램인지는 알 길이 없다. 세월에 따라 기억이 변조되다 보니까 그런 것이다.
  • 개그맨 4명의 이름
처음 TV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노래한 개그맨 4명을 이야기할 때 정광태, 임하룡은 관련 보도마다 빠짐없이 이름이 등장하나, 나머지 2명은 보도에 따라 장두석이상운, 또는 장두석과 김정식, 아니면 이상운과 김정식으로 나올 때도 있는 등 중구난방이다. 정광태의 인터뷰들도 일관되지 않은데, 서울신문 인터뷰에서는 본인,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이라고 했지만 스포츠조선 인터뷰에선 본인, 임하룡, 장두석, 이상훈이라 말한 것으로 나온다(이상훈이라는 오타는 다른 기사에서도 자주 보인다.). 한편 2011년 출연한 KBS 《여유만만》에서는 본인, 임하룡, 장두석, 그리고 '메기 이상운'이라고 직접 말하는 모습이 방송됐으나, 정작 방송 전에 연합뉴스에서 나온 홍보 기사에는 KBS에서 자료를 받아 쓴 기사일 텐데도 이상운이 아닌 김정식으로 나오며, 방송 직후의 TV리포트 기사에서는 방송 중에 이상운의 별명인 메기가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훈으로 오타를 냈다. 1982년 당시 촬영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을 박문영(박인호)의 연합뉴스 인터뷰에 이르러서는 정광태, 임하룡, 심형래, 김학래라고 나오기까지 하니, 결국 그 4명 중 2명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언급된 개그맨 당사자들이 직접 밝히거나 당시 방송분이 확인돼야만 알 수 있을 판이다.[4]
  • 음반으로 나온 과정
가수 정광태에 따르면 노래가 TV로 처음 방송된 그날, 방송을 본 음반 제작자가 음반을 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5] 방송 당시 이미 국민들은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 때문에 분노하고 있었던 터라 제작자가 주목하고 먼저 제안했다는 것. 하지만 작사 작곡가 박문영의 설명은 다른데, 원래 해당 노래는 개그 코너를 위한 일회용에 불과했기 때문에 박문영은 녹화를 마치고 곧바로 가사를 적었던 전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데 정광태가 휴지통을 뒤져 가사를 옮겨 적어 가더니, 나중에 대성음반에서 발매하려 했던 음반의 자투리 트랙에 노래가 실렸다는 것. 박문영은 노래에 관해 아예 잊고 있다가 녹음 이후에야 사실을 알았으며, 자신은 당시 곡을 직접 주기로 한 적이 없다고 한다(...).[6] 인터뷰 외의 다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광태가 여러 음반사를 돌아다니며 녹음을 부탁했으나 개그맨인 점도 있고, 가사가 장난스럽다, 괴상하다며 퇴짜만 맞다가 그 노력이 가상해서 간신히 받아준 곳이 대성음반 한 군데였다고 한다.[7]

3. 가사

독도는 우리땅 시대별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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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2.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일번지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땅

3.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

십칠만 평방미터 우물 하나 분화구

독도는 우리땅

4.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8] 셋째 줄[9]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

5. 노일전쟁[10] 직후에[11]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 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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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2. 경상북도 울릉읍 도동 산 육십삼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땅

3.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

십칠만 평방미터 우물 하나 분화구

독도는 우리땅

4.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 줄[12]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

5. 노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 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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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2.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땅

3.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

십칠만 평방미터 우물 하나 분화구

독도는 우리땅

4.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쪽에 셋째 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땅

5.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 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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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87K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2.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132 북위 37

평균기온 13도 강수량은 1800

독도는 우리땅

3. 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

주민등록 최종덕 이장 김성도

19만 평방미터 799에 805

독도는 우리땅

4. 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조선땅

독도는 우리땅

5.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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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 따라 가사가 달라지기도 하고, 원 가수인 정광태조차 공연, 행사 등에서 때에 따라 가사를 다르게 부를 정도라 세세한 부분에서 확정된 가사는 없다시피 하다. 다만 정광태가 녹음한 음원 기준으로 나누면 대체로 위와 같고, 현재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가사는 2001년 버전이다.

90년대 이전에 이 노래를 익힌 세대에게는 1982년 버전이 가장 익숙하고, 2절 가사 한 군데가 수정된 1983년 버전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광태가 오리지널 반주에 오리지널 가사로 부른 1982년 버전은 음원 사이트나 동영상 사이트에서 찾을 수 없고, 현재 올라와 있는 80년대 녹음 곡들은 모두 1983년 이후에 나온 버전이다. 1982년과 1983년 당시의 음반은 음원 서비스가 되는 곳이 없고, 들으려면 나중에 다른 음반에 수록됐던 곡으로 들어야 하는데 그중 1982년 버전이 수록된 음반은 없기 때문. 게다가 금지곡 파동 탓에 정광태가 이 곡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한 것도 1983년에 개사를 하고 난 다음인지라, 간혹 정광태의 80년대 자료 화면이 방송될 때도 개사된 가사로 노래하는 모습만 나간다...

정광태는 오랜 공백기를 지나 90년대 중반부터 다시 독도는 우리땅으로 활동을 재개하는데, 이때부터 4절 가사를 2001년 버전처럼 바꿔 부른다. 다만, 2절 가사는 인지도를 고려한 것인지 1983년 버전이 아닌 원래의 '남면 도동 일번지'로 돌아갔다. 1996년 DJ DOC의 앨범 《대한민국만세》에서 DJ DOC와 정광태가 같은 반주로 각각 녹음한 곡 중 정광태 버전 쪽이 대표적인데, 두 번 반복되는 4절 가사가 한 번은 '대마도는 몰라도'로, 반복 부분에선 원래의 '대마도는 일본땅'으로 나간다. 간보기

일반인들은 매 절 마지막의 '독도는 우~리~땅' 다음에 "우리땅!"하고 외치는 경우가 많은데, 원곡 가사에는 없던 부분이다. 이는 초창기 독도는 우리땅이 각종 대회의 응원가로 불리던 때부터 이어진 습관이다.

제6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사회과탐구 교과서에는 원래 독도는 우리땅 가사가 5절까지 실릴 예정이었고 1996년 2월에 시험판으로 인쇄되기도 했다.[13] 이대로 실현됐다면 대중가요 가사가 국정 교과서에 실린 첫 사례로 남을 뻔했지만, 가사 내용의 사실 관계가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최종적으로는 부적합 판정을 받아 실제 교과서에는 빠지게 돼 해프닝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교육부는 세종실록지리지의 독도 기술 부분이 '50페이지 셋째 줄'이 아니라는 점,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실제 거리는 230리인데 가사에는 200리로 부정확하게 나오는 점 등을 문제로 삼았다.[14]

3.1. 주소

2절 가사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가 1983년에 '경상북도 울릉읍 도동 산63'[15]으로 개사된 것은 중간에 주소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된 주소였기 때문이다. 우선 울릉군 남면은 1979년에 울릉읍으로 승격됐기 때문에 노래를 처음 만든 1982년 시점에서는 이미 사라진 주소였다. 또한 남면 도동 1번지, 즉 1988년 이후의 울릉읍 도동리[16] 1번지는 일제강점기 이래로 쭉 울릉도 측에 있던 지번이며 독도와는 관련이 없다.[17][18] 국유지로 관리돼 온 독도와는 달리 도동리 1번지는 사유지이며, 바다가 가깝기는 하지만 임야에 둘러싸여 바다와 직접 만나지도 않는다.

독도는 일본이 1905년 일명 시마네 현 고시를 낸 이후로 독도에 별도의 지번을 부여하지 않아 지금도 일본 행정상으론 독도가 '무번지'로 분류된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의 독도는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1910년대의 토지 조사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에 광복 이후에도 독도는 한동안 지번이 없는 상태였다. 한국 정부의 첫 독도 측량은 1954년 해군 수로국[19]에서 실시한 것이지만 7년 뒤인 1961년 11월 30일에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독도를 측량하고 토지대장에 등록하라(실제로는 임야대장에 등록됨)'고 지시했다는 것은[20] 이때까지도 독도에 지번이 없었음을 방증하므로, 이 지시에 따른 국립건설연구소(지금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측량이 끝난 1962년 2월 26일 이후에야 비로소 독도 35개 필지에 산42~산76번지의 지번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다만, 독도에 지번이 부여된 정확한 날짜는 알기 어렵다. 어떤 땅의 지번은 그 땅에 대한 지적공부(토지대장, 임야대장, 지적도, 임야도 등)가 작성됨으로써 부여되는 것인데, 독도의 구 임야대장이 등록된 날짜는 1961년 4월 1일[21]로 나오므로 국립건설연구소의 지형도 제작 시기인 1962년보다 앞서게 된다. 하지만 독도의 구 임야도와 1962년의 지형도를 비교하면 축척은 달라도 형태가 일치하며, 1961년 시점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단 하나뿐이었을 1954년의 지형도는 구 임야도와 모양도 많이 다를 뿐더러 표시된 섬도 40개가 넘어 등록 필지 수를 초과한다.[22] 따라서 임야대장의 날짜는 기입상의 오류이거나 일부러 연도를 앞당겨 기록한 것으로 추측되며, 실제 지번 부여 시기는 일러도 1962년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참고로 독도의 소유권보존등기는 1968년 3월 13일자로 접수되었다.).

한편 1948년 8월 정부수립과 동시에 독도에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 또는 산42번지 등의 지번을 부여하는 행정조치가 이뤄졌다고 설명을 하는 곳도 많으나, 번지수는 차치하고 애초에 1948년 당시 울릉군의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울릉군'이 아닌 '경상북도 울릉도(島)'였는데다 특히 산42번지 등의 경우 독도에 작은 섬이 몇 개인지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섬마다 지번을 부여하긴 어려웠을 것이므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독도의 주소가 노래에서 남면 도동 1번지로 표현되었는지 그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울릉읍 도동리 1번지(옛 남면 도동 1번지)는 부속 섬을 제외하면 울릉도 본도에서 거의 최동단이라 독도와의 직선거리가 짧기는 하다.[23] 또 노래가 나오기 한참 전인 1950년대부터 이미 독도를 도동 1번지로 표기한 신문 기사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작사가가 처음 창작한 번지는 아니다.[24] 작사가인 박문영은 작사 당시 독도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 방송국 도서관의 백과사전(동아 원색대백과)에서 찾은 독도 항목 내용만을 보고 작사했다고 하는데,[25] 거기에 실려 있던 잘못된(혹은 낡은) 주소가 그대로 가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번들은 2000년 도동리에서 독도리가 분리되면서 독도리 산1~산37번지로 변경되었고, 2005년에는 기존의 임야도를 폐지하고 지적도를 새로 작성하면서 미등록 필지를 신규 등록해 독도리 1~96번지로 개편되었다.[26] 이에 따라 2절 가사도 2001년 이후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도로명주소 제도 시행으로 독도의 도로명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안용복길 3이지만 노래가사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안용복길3 동경132 북위37♪♬♩

4. 수록 음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땅〉 의 각 버전이 수록된 정식 음반은 다음과 같다.

음반 제목

발매일

특징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

1982년 6월 30일

정광태 포함 가수 6명의 곡을 모은 앨범.

〈독도는 우리땅〉 곡이 수록된 첫 앨범.

《독도는 우리땅》

1983년

《웃기는 노래와...》를 앨범 제목과 곡 순서만 바꿔서 재발매한 앨범.

단, 〈독도는 우리땅〉 곡은 1982년 원곡 반주에 2절 가사를 수정해서 재녹음.

《김치주제가 / 탈춤노래 / 짜라빠빠

(정광태 2집)

1985년 6월 5일

《도요새의 비밀》에 이은 정광태의 두 번째 개인 앨범.

〈독도는 우리땅〉은 춤곡으로 재편곡해 수록. 가사는 1983년과 동일.

《대한민국만세》

1996년 3월

DJ DOC의 앨범.

DJ DOC의 버전과, 같은 반주로 정광태가 부른 버전을 함께 수록.

《아름다운 독도》

2001년 4월

김창환이 편곡. 2절 가사가 지금의 주소로 변경됨.

〈독도는 우리땅 Ⅰ〉은 완전히 새로운 반주를 사용.

〈독도는 우리땅 Ⅱ〉는 1985년 버전의 리메이크.

《독도는 한국땅》

2011년 8월 18일

〈독도는 우리땅〉 곡은 2001년 〈독도는 우리땅 Ⅰ〉의 재탕.

약간 편곡된 Inst. 버전을 신규 수록.

5. 후속곡

원 작곡가 박문영의 후속곡 독도는 우리땅 30년의 가사는 이러하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팔칠케이(87km)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132 북위 37

평균기온 13도 강수량은 1,800 독도는 우리땅

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 주민등록 최종덕, 이장 김성도

십구만 평방미터 우편 사공이사공(40240)[27] 독도는 우리땅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조선땅, 독도는 우리땅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한국땅)

6.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방송금지

가수 정광태의 고백에 따르면 1983년 7월부터 넉 달간 전두환 정부시절 문화공보부로부터 방송금지 처분(정확히는 잠정 방송금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1983년 일본이 역사 교과서 왜곡파동이 일어났을 때 일본과의 외교관계 등을 우려하여 금지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1998년 가수 정광태가 대한매일 인터뷰 기사에서 회고한 내용이었다. 이후 허문도 문화공보부 차관을 만나 사정한 끝에 금지곡에서 간신히 풀렸다.

7. 인기와 리메이크

1982년 처음 선보인 이후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한국인들에게서 자주 불리게 되었으며 후에 DJ DOC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다만 독도의 위치와 주소 같은 노래가사라기보단 지리정보에 가까운 예술성이 부족한 가사에 민족주의적이고 지나치게 호전적인 느낌이 드는 곡이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가사도 좀 더 멋진 홀로 아리랑을 높게 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가수 김흥국과 정광태가 함께 독도는 우리땅과 호랑나비 노래를 조합한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를 선보였다. 도입부 부분이 뜬금없어서 왕비호에게 까였다. 해당 곡 역시 KBS에서 심의보류 상태이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날아간 호랑나비 호랑나비 성난 호랑나비

왜 왜 독도로 날아갔을까 기회만 있으면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

조금만 틈을 줘도 자기네 땅이라 우겨 으아 정말 열받는구나~ 대한민국~ 대한민국~

호랑나비야 지켜라 아름다운 독도 지켜라~ 호랑나비야 외쳐라 동쪽에다 크게 외쳐라~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한국땅

8. 기타

  • 독도 노래비가 건립된 적이 있었다.
  • 초등학생 시절 독도는 우리 땅을 패러디한 이 노래는 다들 한 두번씩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울릉도 피시방[28] 한 시간에 오백원

아저씨 백원만[29] 깎아 주세요.

안 된다 안 된다[30] 네 머리나 깎아라[31]

PC방은 내가 지킨다. (피씨방!!)[32]

  • 가수 정광태는 '명예 독도주민'으로 등록되어서 1998년에 독도로 본적도 옮기게 되었고 독도에 관련된 활동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일본에선 입국금지 명단에 올라 있다고 한다.[33]
  • 과거 무한도전2008 베이징 올림픽 특집 당시 외국인들과 함께 독도는 우리땅을 불러 화제가 되었었다. 외국인들이 한 글자 혹은 한 소절씩 불러주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177회에서 이 노래 3~5절이 도전곡으로 선정되었다. 여기서는 원곡을 불렀기에 "대마도는 몰라도"가 맞는다는 논란이 있었다. 초반부터 가사를 빠르게 알아내서 무난한 성공이 예상되었지만, 여러 출연진의 자잘한 실수 때문에 9번 만에 성공했다.
  • 개그우먼 조혜련이 독도는 우리땅을 히라가나송으로 개사해서 큰 논란이 있었다.
  • 웹툰 신도림에서 Tiger.D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싸우고, 템포를 빠르게 할 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 중~고등학교 때 국사나 지리 등등 암기가 필요한 중요 부분을 이 노래의 멜로디에 얹어서 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이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미국 개봉 후 "제시카 징글(Jessica Jingle)"이라고 불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관련 뉴스

9. 관련 문서


  1. [1] 당시 대성음반 문예부장으로서 대학생을 겨냥한 음반을 기획 중이었다. 2017년 현재 한국음악산업협회 6대 회장.
  2. [2] 여자 신인 가수상은 〈아! 대한민국〉의 정수라였다.
  3. [3] 이건 80년대 초반 유머 프로그램 + 포졸복장이면 일단 변방의 북소리가 떠올라서일 가능성이 높다.
  4. [4]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방송자료 대다수는 테이프 재활용 등으로 소실되었다.
  5. [5] CNB 저널 제79호
  6. [6] 연합뉴스, 2006년 7월 20일.
  7. [7] 소비라이프, 2008년 10월 8일.
  8. [8] 원 가사집에는 '페지'로 되어있었는데,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9. [9] 원 가사집에는 80년대 맞춤법에 따라 '세째'로 되어있었다.
  10. [10] 당시에는 '러일전쟁'보다 한자식 표현인 이쪽이 더 많이 쓰였다.
  11. [11] 일본의 독도 편입은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2월 22일로, 엄밀히 말하면 러일전쟁 직후라기보다 러일전쟁 '발발 직후'이다.
  12. [12] 실제 세종실록지리지는 23쪽이 끝이다. 가사를 지을 당시 기술의 한계로 세종실록지리지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대충 이쯤 되겠거니 해서 넣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이 죄다 인터넷에 아카이브되어 있다.
  13. [13] 한겨레, 1996년 2월 17일, 경향신문, 1996년 2월 17일.
  14. [14] 경향신문, 1996년 6월 12일.
  15. [15] 서도의 당시 주소로 길이상 '울릉군'은 생략되었다. 현재 주소는 울릉읍 독도리 20.
  16. [16] 경상북도는 1988년까지도 읍면 단위 아래에 동(洞)이 있는 곳이 많았고 남면 도동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후 리(里)로 일원화될 때 도동은 아예 동 자까지 포함해서 도동리로 변경됐다. 서울의 청량리가 일제강점기 청량리정(町)을 거쳐 현재의 청량리동이 된 것과는 반대이다.
  17. [17] 1913년의 경상남도 울도군 남면 도동 지적 원도집 표지. 각 페이지를 표시한 약도에서 1번지가 속한 1페이지의 영역은 제일 동쪽에 있다. (울도군은 1914년 경상북도로 이관되고 1915년 울릉도로 개칭됐다.
  18. [18] 1913년의 남면 도동 1번지 지적 원도. 현재의 울릉읍 도동리 1번지와 토지 형상이 완전히 같다.
  19. [19] 지금의 국립해양조사원.
  20. [20] 월간산, 2008년 7월호
  21. [21] 월간조선, 2011년 6월호.
  22. [22] 임야대장 및 임야도 등본, 역대 지형도 모음. 참고로 1976년 이전의 임야대장 기록은 저기엔 안 나오고 따로 구 임야대장 등본을 떼야 나온다.
  23. [23] 실제로는 산4번지가 더 동쪽이며 1번지는 바다와 접하지 않는다.
  24. [24] 경향신문, 1959년 3월 3일.
  25. [25] KBS, 2014년 2월 5일.
  26. [26] 독도입도 종합안내 > 독도바로알기 > 독도지명
  27. [27] 우편번호가 개편되었다.
  28. [28] 피시방 이름은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다. 사실 울릉도에는 피시방이 거의 없다.
  29. [29] 깎아야 하는 액수는 그때그때 변하며 오백원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다.
  30. [30] '안 된다 거지야'나 '안 된다 아가야' 등으로도 개사되었다.
  31. [31] '돈 없으면 꺼져라'나 '먹고 살기 힘들다'라고 개사된 경우도 있다.
  32. [32] 마지막 우리땅에 해당하는 부분. 고음으로 올려야 정석이라고 한다.
  33. [33] 그러니까 입국비자를 아예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반대로 씨스포빌 등 육지와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사들도 일본인들에게 여객선 발권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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