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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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어

세가 새턴

드림캐스트

GSTAR 2011에 전시된 모델.

TV 일체형 모델 CX-1이 후에 발매되었다.

1. 개요
2. 사양
3. 상세
3.1. 소니와의 관련성
3.2. XBOX와의 관련성
4. 역사
4.1. 발매 전
4.2. 발매 직후, 전기
4.3. 후기
4.4. 패배 선언과 그 이후
5. 후대의 평가
6. 기타
7. 발매된 게임
7.1. 세가
7.2. 타회사 (세가 라이선스)
7.3. 타회사 (세가 비라이선스)
7.4. 미출시

1. 개요

세가에서 세가 새턴의 차세대기로 발매한 게임기. 1998년 11월 27일 일본에서 가장 먼저 발매되었다.

2001년 3월 31일 단종까지 전 세계에 약 913만 대를 판매했으며, 일본 내 판매량은 286만 대, 북미 지방은 464만 대, 유럽 지방은 163만 대 팔렸다. 최다 판매 게임는 262만장의 소닉 어드벤처.

2. 사양

CPU

히타치 SH-4 SH7750 32비트 200MHz[1]

GPU

NEC-Video Logic PowerVR2 CLX2 100MHz[2]

메모리

메인 메모리 : 16MB 100MHz SDRAM[3]
VRAM : 8MB 100MHz SDRAM[4]
사운드 프로세서 메모리 : 2MB 67MHz SDRAM[5]

사운드

야마하 AICA Processor 67MHz(수퍼 인텔리전트 사운드 프로세서)[6]

네트워크

33.6 kbps 모뎀

미디어

GD-ROM 12배속

데이터 세이브

VMS(Visual Memory System)

3. 상세

드림캐스트라는 이름은 D의 식탁, 에너미 제로 등을 제작했던 이노 켄지가 지어준 이름이며, Dream(꿈)과 Broadcast(방송)의 합성어로 '꿈을 방송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부르는 약칭은 도리캬스(ドリキャス). 한국에서는 주로 드캐로 불렸다.

새턴의 실패에서 배워 개발하기 쉬우면서도 뛰어난 성능에 생산성 면에서도 신경을 쓴 하드웨어 디자인에, 화면과 키를 갖춘 외장형 메모리인 비주얼 메모리를 탑재했다. 인터넷 시대를 염두하여 모뎀과 웹 브라우저를 탑재했고, 온라인 게임 서비스 세가넷을 운영했다.

구조는 아케이드 게임 기판인 NAOMI와 비슷하게 설계되었다. 아케이드 머신을 가정용으로 설계한 메가 드라이브와 비슷한 개념으로 설계했으며, 아케이드 게임들의 게임기와 쉬운 상호 이식을 위해서였다.

드림캐스트의 하드웨어 구조는 괴악한 지금까지의 세가 게임기의 모습을 탈피해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 추가 장치 덩어리가 되어 버린 메가 드라이브나 여러 개의 프로세서로 떡칠을 한 세가 새턴와 비교하면 상식적이다. 하드웨어를 열어봐도 매우 아름답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을 정도다. 만일 세가가 드림캐스트의 후속기를 발매할 수 있었다면 그 이후의 물건은 하위 호환을 기대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다.

그리고 본래 세가는 나오미의 게임을 드림캐스트 이외의 게임기에 이식할 것은 전제로 하지 않고 게임기와 나오미를 설계했기에, 나오미 기판은 드림캐스트 이외의 다른 게임기의 이식에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드림캐스트의 몰락 이후 타사의 게임기에 게임을 이식하기가 꽤 어려웠고, 이후에 기판을 생산할 때에는 타사의 게임기로 이식하기 쉽게 만들었다고 한다.[7]

드림캐스트로 웹 브라우징

개발 당시에는 막강한 성능으로 여러 모로 큰 기대를 모았으며, 당대 최고의 아케이드 기판이었던 모델 3의 버추어 파이터 3가 너끈하게 이식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성공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림캐스트 광고로 당시 세가 전무였던 유카와 전무를 내세웠는데, 전일본 CM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정도로 완성도도 높았으며 대중적으로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드림캐스트는 준비도 괜찮았고 서드 파티의 지원 사격도 받아 좋은 분위기에서 발매를 시작했지만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 64 사이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후술하였지만 소니의 마케팅 술수에 말리기도 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2는 발매 후 한동안 게임 공급 부족으로 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DVD 비디오 재생과 하위 호환 기능 덕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처럼 독점으로 나왔던 게임은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2에 다시 발매했고, 심지어 선행 발매로 나오리라 생각했던 데드 오어 얼라이브 2는 플레이스테이션 2로 먼저 발매하기도 했다. 결국 세가는 2001년 3월 31일, 드림캐스트에 대한 생산, 지원 중단 및 가정용 게임기 사업 포기를 선언하였고 이렇게 드림캐스트는 세가가 만든 마지막 가정용 게임기가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역사와 플레이스테이션 2, 엑스박스 문서를 참고할 것

삼성에서 1996년 가을에 드림캐스트가 개발에 착수할 당시 정식 발매를 검토했었으나, 전작인 삼성 새턴(한국판 세가 새턴)의 큰 실패로 인해 같은해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게임기 사업을 완전히 접게 됐다.#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이 계획은 철회되었는데 삼성이 1996년 12월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하자마자 현대전자[8]에서 정식 발매를 검토했다가 세가와 의견차가 심해서 1997년 봄에 정식발매를 취소했다.[9] 설령 삼성 새턴이 성공했다고 해도 1998년은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경제 관리 시절이었기 때문에 정식 발매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대기업의 정식 참여까진 아니여도 병행 수입 경로로 들어온 적은 있다. (주)JAKO에서 담당했고, 유통은 GRI, 용산 총판은 SLK에서 했다고 하지만 북미판 기기[10]를 들였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사라진 이유는 홍보는 저기 있는 기사 하나만 찾을 수 있으며 전매상들이 이미 물건을 들여와 팔고 있어 굳이 저것을 사야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1년 후에는 라이벌인 플레이스테이션 2가 정식 발매되었으니 안 봐도 비디오 였던 셈. 이 때문에 정식 발매가 됐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삼성전기에서 아케이드용으로 드림캐스트를 수입한 적이 있다.# 다만 이건 정식 드림캐스트가 아닌 NAOMI를 개조한 벌크용 드림캐스트이다.[11]

3.1. 소니와의 관련성

재미있는 점을 보면,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기능을 홍보한 세가 새턴이 3D 게임을 노리고 제대로 된 게임기로만 만든 플레이스테이션에[12] 패배했으면, 정반대로 제대로 된 게임기로 만든 드림캐스트[13]가 DVD 비디오 재생 기능을 넣은 플레이스테이션 2에 그대로 처참하게 밀린 점이다. 이를 두고 세가 새턴이 시대를 너무 앞선 탓에 드림캐스트 까지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다.

서드 파티들은 대부분 드림캐스트보다는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개발에 더 중점을 두었다. 스퀘어에닉스는 세가쪽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드림캐스트에 게임을 많이 내준 게임 회사들도 귀무자, 데빌 메이 크라이 같은 게임이나 메탈기어 솔리드 2, 진삼국무쌍 2 같은 게임이 2001년에 나왔다는 것을 보면 홀대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나오미 아케이드 기판 게임으로 제작됐기에 드림캐스트로 이식될 것이라 여겨졌던 데드 오어 얼라이브 2의 이식이 플레이스테이션 2로 먼저 발표가 되는 바람에 당시 PC 통신 커뮤니티 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소울 칼리버의 드림캐스트 이식으로 기대를 모은 철권 태그 토너먼트도 드림캐스트로는 출시하지 않았다.

소니에게 플레이스테이션 시절에 이어 또다시 게임기 시장 경쟁에서 패배했다. 특히 닌텐도가 슈퍼패미컴 시절에 썼던 마케팅 술수를 소니에게 같은 수법으로 또 당하고 말았다.

3.2. XBOX와의 관련성

컴퓨터와 유사한 하드웨어와 윈도 CE를 탑재해 엑스박스의 선조급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엑스박스 패드의 트리거도 드림캐스트 패드를 계승한 제품이고, 은근 드림캐스트의 후속작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세가가 하는 걸 보고 답답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를 만들었다는 농담도 있다.

실제로 엑스박스 개발에 드림캐스트 개발진들이 참여 혹은 피드백을 했으며, 드림캐스트로 발매 예정인 세가의 작품들이 드림캐스트 단종 후 플랫폼을 엑스박스로 옮겨서 발매했다는 점, 엑스박스에 드림캐스트 하위 호환까지 고려했다는 이야기[14]가 있는걸 보면 엑스박스가 드림캐스트의 정신적 후속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4. 역사

4.1. 발매 전

세가 새턴은 일본에선 초반 잘 나갔던 기세와는 달리, 중반 파이널 판타지 7의 플레이스테이션 독점 발매로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고, 북미에선 초반부터 아예 플레이스테이션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이 기색이 확실해지자 세가에서는 1997년부터 차기 게임기를 준비하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을 누르기 위해 자신들의 하드웨어 노하우와 과거의 실패 경험 등을 이용해 완벽에 가까운 게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제 갓 시장에 진입한 초보인 소니와는 달리 거의 20년 가까이 게임기를 만들어 왔던 노하우를 총 집합해 보자는 것.

세가 새턴의 괴팍한 구조로 인해 얻은 교훈으로, 게임기의 구조를 최대한 쉽게 만들고 개발 환경을 생각하여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아 윈도 CE를 드림캐스트에 이식해 DirectX를 통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했다.[15] 당시 드림캐스트는 개발이 쉬웠고 이는 서드 파티를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었다. 거기에 새턴의 호환 기판인 STVMODEL1MODEL2의 힘에 밀려 아케이드와의 연동이 잘 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 NAOMI를 적극 밀어주기 시작했다.

세가 새턴의 충격적인 실패로 인해, 1997년 5월 E3에서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버나드 스톨라 사장은 "세가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 이른다. 그리고 동시에 게이머들 사이에 급속히 루머가 퍼져 나갔는데. 세가가 NAOMI라는 이름의 아케이드 보드를 제작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블랙 벨트와 듀랄이란 개발안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 3dfx부두 밴쉬와 PowerPC CPU가 들어간 블랙 벨트, 히타치의 CPU와 NEC와 비디오로직의 PowerVR2 기반의 듀랄. 이 와중에 1997년 4월, 3dfx의 기업 공개 과정에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계획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고, 이로 인해 세가의 분노를 사게 된다. 결국 세가는 3dfx와 관계를 끊고 같은 해 9월, 언론에 공개한 것은 듀랄에 기반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결과로 3Dfx는 부당한 계약 파기 및 불공정 경쟁, 기밀 횡령 등을 주장하면서, 1997년 9월 2일 세가와 NEC를 상대로 캘리포니아 고등 법원에 1억 5,5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걸었다. 1998년 8월, 법원에서는 3Dfx의 손을 들어주면서 세가에게 블랙 벨트 관련 3Dfx의 모든 지적 재산권과 영업 기밀 및 비밀 정보들을 3Dfx에게 반환하고 1,050만 달러를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세가는 이 명령을 받아들이면서 소송이 끝나게 된다.

1997년 10월 경, 세가는 비디오 게임 관계자들에게만 드림캐스트를 카타나라는 이름으로 시연했는데, 이 당시 시연했던 게임이 MODEL3 기판으로 제작했던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 스커드 레이스였다.[16] 이 때 기술 시연이 꽤 잘 됐었고, 쉬운 개발 환경이 꽤 먹혀들어 캡콤, 남코 등의 굵직한 회사들이 연달아 개발 의사를 밝히게 된다.

이후 사람 얼굴 모델링의 시연도 했는데, 이 얼굴 모델링의 모델이 된 인물은 당시 세가 부사장였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17][18]

1998년 3월, 도쿄 게임쇼에서 이 후속 게임기의 이름을 드림캐스트라고 처음 발표했다. 이는 세가 차세대 게임기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정이 된 순간이였으며, 동시에 첫 게임으로 D의 식탁의 후속작인 D2를 발표했다. 그 해 5월, 세가의 드림캐스트 기자 회견을 통해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1,000명이 참가했고, 120곳의 서드파티가 개발 의사를 표현한 이 기자 회견은 드림캐스트의 미래를 아주 밝게 비추어줬다.

4.2. 발매 직후, 전기

1998년 11월 27일, 드림캐스트를 일본에서 최초로 출시했다. 드림캐스트는 발매 당시 준비해 놓은 15만대의 물량을 발매 당일 매진시켰다 그러나 NEC의 PowerVR2 CLX 칩셋 수율 문제로 물량이 부족했다. 그래도 동시 발매 게임인 버추어 파이터 3tb와 소닉 어드벤처로 드림캐스트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유카와 전무를 이용한 자학적은 캠페인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이번에는 세가가 정말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투자 분석가들 사이에서도 드림캐스트는 소니에게 있어서 재앙이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그러나 발매 직후 게임 가뭄으로 인해 연말 대목을 놓치고 만다.

1999년 3월 2일, 소니는 도쿄에서 플레이스테이션 미팅 1999를 통해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실기를 공개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콘셉트만을 슬쩍 보여주는 이 행사에 비디오 게임 관계자가 1,500명 정도 모일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이때 드림캐스트는 한창 보급에 열을 올리는 시기였고 본격적으로 북미 출시도 준비하는 등 무척 잘 나가고 있었다.

드림캐스트의 맥을 죽일 필요가 있었던 소니는 이 때 DVD 비디오 재생 기능과 플레이스테이션과의 하위 호환 기능을 처음으로 공개하고[19] 이 밖에도 이모션 엔진, 200억 엔의 개발비, 테크 데모 영상[20], 천만 단위의 폴리곤 등의 과장된 스펙을 소개했다. 초조해진 세가는 결국 일본에선 발매된지 6개월만인 1999년 6월, 드림캐스트의 정가를 1만엔 인하해 19,800엔에 판매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생산 단가를 절감하지 않은 채로 그냥 가격을 인하한 것이기 때문에 대당 1만엔 가량 손해를 봤다. 메가 드라이브 시절처럼 어떻게 해서든 기계부터 깔고 보자는 계획이었을 것이지만, 새턴 때도 이러다가 크게 손해를 봤었다.

그리고 1999년 9월 9일 북미 시장에 드림캐스트를 $199의 가격으로 출시했다.[21] 북미 출시 또한 당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로 많은 판매량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동시 발매 게임 중 소울 칼리버와 NFL2K, 그리고 북미 게이머들이 그렇게 기다렸고 세가 새턴에 출시될 예정이었던 소닉 게임인 소닉 엑스트림은 끝내 개발 취소되었다가 드디어 소닉 어드벤처가 출시되자 반응이 매우 좋아 백만장 이상 팔려 나갔다. 그렇게 1999년 12월 연말까지 북미에 150만대를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유럽에서도 반응이 좋아 1999년 12월 연말까지 50만대를 판매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드림캐스트는 세가를 부활시키고 그토록 염원하던 게임기 시장 1위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니 역시 이에 대항해 플레이스테이션 2라는 게임기 이름과 일본 출시일을 공개하고, 1999년 9월 가을 도쿄 게임쇼에 플레이 가능한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2000[22]과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전시했다.

드림캐스트는 1999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 양질의 게임을 많이 발매했다. 세가 랠리 2,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2 같은 아케이드 최신작을 집에서도 그대로 즐길 수 있었고, 캡콤이나 SNK도 프레임 삭제나 로딩 문제가 없는 초월이식 수준의 작품을 다수 제공했다. 베르세르크 천년제국의 매 편같은 준수한 오리지널 게임도 나왔고 또한 연말에 버추어 온 오라토리오 탱그램, 버추어 스트라이커 등을 시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3 더블 임팩트, D2, 쉔무를 투입하여 어떻게든 연말대목에서 이겨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1999년은 플레이스테이션에서도 파이널 판타지 8그란 투리스모 2, 사일런트 힐, 바이오하자드 3이나, 닌텐도 64에서도 닌텐도 올스타!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동키콩 64, 스타워즈 에피소드 I: 레이서, 포켓몬 스타디움을 수백만 장씩 팔고 있던 해였고, 그 틈에서 드림캐스트가 돋보일 여지는 없었다.

4.3. 후기

1999년 12월에 등장한 D2와 쉔무는 기존 드림캐스트 사용자들만 샀고, 게임기 판매량 견인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특히 70억 엔의 개발비를 들였던 쉔무의 실패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일조를 하게 된다.

결국 세가의 본래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1999년 여름 무렵에는 게임들의 높은 판매량으로 시장 1위에 진입했어야 했지만 그저 그런 가속만 붙은 채로 플레이스테이션 2와의 정면 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플레이스테이션 2의 가격인 $299와 비교하면 확실히 저렴한 $199라는 가격, 게임기로서의 성능, 게임 개발의 간편함 등 드림캐스트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 비해 거의 압도적이다 싶을 정도였기 때문에 2000년 초까지만 해도 '플레이스테이션 2를 드림캐스트가 이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코어 게이머들과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여전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2000년 3월 4일, SCE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발매했다. 그로 부터 6일 후인 2000년 3월 10일 GDC에서 전 세계 PC 운영 체제 시장을 쥐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 게임기 출시를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가는 플레이스테이션 2가 발매된 2000년 3월부터 드림캐스트 포기 발언을 한 2001년 3월까지, 약 1년 동안 드림캐스트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려왔다. 2000년 한 해 동안 161개의 타이틀을 발매하였으며, 상반기에는 크레이지 택시, 여름에는 씨맨이 발매되었는데 이 씨맨이 무려 50만 장이 팔렸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와 네트워크 플레이를 지원하는 대전 액션 게임을 계속 발매했고, 연말에는 본격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인 판타지 스타 온라인을 발매했다.

또한 온라인 서비스 세가넷[23] 가입시 드림캐스트 무료 증정(!!!), $149로 가격 인하 등 플레이스테이션 2를 상대로 극한의 벼랑 끝 정책을 펼쳤다. 필사적으로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손해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이미 발매일에 100만 대를 출하하였고, 플레이스테이션의 기세도 2000년에는 베이그란트 스토리, 파이널 판타지 9, 드래곤 퀘스트 7,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와 같은 RPG 대작들이 차례대로 발매되는 등 그칠 줄을 몰랐다. 또한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과 포켓몬 스타디움 2, 마리오 테니스로 여전히 수백만 장을 판매한 닌텐도 64 역시 버거운 존재였다.

2000년 10월 26일, 플레이스테이션 2가 북미에서 발매됐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이미 일본에서 2000년 한해 동안 게임기 공급 및 게임 부족을 겪게 되었으며 이에 세가는 2000년 12월 연말 시즌이 세가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0년 12월 연말 시즌이 되자 북미 게임 유저들은 드림캐스트를 구입하는 것보다는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또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 타이틀 부족 문제 역시 하위 호환 기능을 이용해 기존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돌리거나 DVD 비디오를 보는 선택을 했다.[24]

세가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드림캐스트 판매를 견인할만한 결정적인 게임이 없었다. 2000년은 공급 부족 문제로 플레이스테이션 2의 해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세가의 해 역시 아니었다. 심지어는 2000년 연말 시즌에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는 드림캐스트도 아닌 플레이스테이션을 리모델링한 PS one이었다. 북미 지방에도 NBA 2K1과 NFL 2K1을 투입하였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4.4. 패배 선언과 그 이후

결국 2000년 연말 시장의 패배로 세가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2001년 1월 23일 드림캐스트 생산 중지와 플레이스테이션 2로의 게임 발매라는 루머가 유출되자 세가의 주식은 급상승했고, 25일에 보도를 일부 인정했으며, 31일에 기자 회견을 열어 가정용 게임기 사업 포기와 각 게임기로의 게임 공급을 선언한다. 심지어 2001년 1월 25일은 PS2에서 귀무자가 처음 발매된 날이고, 귀무자는 일본 최초의 PS2 밀리언셀러 타이틀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더욱 드림캐스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창고에 쌓인, 도 소매점에 풀린 드림캐스트는 순식간에 악성 재고가 됐는데 약 200만 대로 추산됐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 1월 31일부터 미국에서는 $99, 일본에서는 ¥9,900로 인하됐고, 2001년 11월 21일에는 다시 $49로 인하해 재고를 전부 소진시켰다. 이때 재고를 털며 같이 발매한 사쿠라대전 3가 제법 쏠쏠하게(34만 장) 팔렸다.

이 여파로 세가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2001년 2월 1일 오오카와 이사오 CSK 회장은 사재 850억 엔을 세가에 출연할 계획을 밝혔다. 인터뷰 다음 달인 3월 16일 심부전증으로 별세하면서 고인의 유지대로 전액 증여했다. 모기업 CSK에서도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 증자로 1천억 엔 이상 세가에 자본을 수혈해야 했다. 또한 이 때문에 2001년에만 세가 종업원의 약 1/3 정도가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렇게 드림캐스트는 2001년을 1월 31일을 기해 스스로 사망진단서를 제출했지만 만들던 게임은 계속 나와서 2001년에 118개의 타이틀이 발매된다. 2002년까지도 세가는 사쿠라 대전4를 비롯해 여러 게임들을 발매했다. 생산 중단 선언을 하면서 18추 등급이 해금되었는데, 그 덕분에 이후 드림캐스트는 NEC 인터채널과 KID놀이터가 되어서 2004년까지 미소녀 게임[25]들이 꾸준히 발매된다. 2005년 부터는 매년 게임이 두 개씩만 나와 사실상 단종 상태가 되었고, 2007년 카라스가 마지막 게임이 됐다. 보급 대수 약 913만 대, 일본 내 발매 게임 타이틀은 499개였다.

5. 후대의 평가

세가가 만든 하드웨어 중 SC-3000/SG-1000 다음으로 가장 정상적이다.[26] 굳이 흠을 찾자면 GD롬을 이용한 매체 정도가 있겠는데 당시에도 DVD 재생 기능을 가진 건 PS2밖에 없었고 어차피 발매 초기엔 게임의 요구 용량이 그리 큰 편도 아니었다. 성능을 봐도 게임큐브에나 밀렸지 PS2보다도 다소 우위에 있었다. 드림캐스트가 실패한 이유로 세가의 말도 안되는 마케팅 능력이 꼽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중박은 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는데, 유카와 전무도 사실상 실패이고, 무엇보다 당시 홍보 총괄이었던 아키모토 야스시의 희대의 망작 체킷코를 고려하면 중박 같은 소리는 절대로 못한다. 쉔무 총제작비 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부은 아이돌 그룹이 게임 홍보에 기여한 것이라고는 DC로 내놓은 뮤직비디오 GD 정도로 끝이라면 절대로 우습게 볼 문제가 아니다.

북미 출시 때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이끌었던 기세는 좋았지만 메가 드라이브 - 세가 새턴에서 이어진 세가의 연이은 실수들이 드림캐스트 판매에 큰 장애물이 되었다. 이 실수들의 예가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드림캐스트 매진 사태, 드림캐스트 매진 사태에 대한 사과라고 하면서 가격을 인하해서 이전 구매자를 엿 먹였던 것, 초기 게임기 구조상의 문제로 인해서 게임을 구동시키면 GD를 갈아버린다는 이야기[27] 등이 초기부터 연이어 터졌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자잘한 점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결국은 게임기 판매를 견인하는 결정적인 게임이 없었음이 패인이었다. 세가의 간판 게임들도 소닉 어드벤처를 제외하면 고작 30만 장 정도 판매했다. 서양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EA가 참여하지 않은 점, 그리고 일본 대형 회사들 중에서도 스퀘어에닉스가 전혀 참가하지 않았고, 코나미남코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캡콤 정도가 비교적 적극적인 편이었으나 거기마저도 플레이스테이션 2에 더 적극적으로 게임을 내놓았다. 또한 쉔무로 막대한 돈을 말아먹은 것도 큰 요인.

드림캐스트 게임기의 디자인은 지금 봐도 세련된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코타쿠에서는 외형이 멋졌던 역사속 게임기 10선에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구성도 다른 게임기에 비해서 뛰어났다.

WIRED지에서 실험을 했는데,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고 음료를 뿌려도 멀쩡했다. 그리고 소울 칼리버 시리즈, 쉔무 등의 게임을 배출해 서양에서는 아직도 매니아층이 많으며, 단종한지 10여년도 넘어가지만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는 드림캐스트 2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드림캐스트 HD 실제로도 관련된 떡밥이 나올 때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들썩이는 편인데, 정작 세가는 지금의 회사 규모에 비해 게임기 사업이 너무 거대해져 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진출하지도 할 수도 없게 됐다.

드림캐스트 게임 컨트롤러 내구성에 대한 불만은 주로 트리거 버튼에 있었다. 패드의 좌우 트리거 버튼에 걸리는 하중을 금형 설계 시에 충분히 예측하지 못해 내부 걸쇠 부분이 쉽게 부러지는데 해결책은 분해해서 부러진 부분을 순간 접착제로 붙이는 것. 응력이 집중되는 부분이 일정해서 한번 부러진 트리거를, 수리한 이후로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구성이라기 보다는 설계 상의 이슈인데, 전원이 연결된 상태에서 AV 케이블을 분리하면 그래픽 단자가 망가지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며 보면 알겠지만 패드의 케이블이 패드 위쪽이 아닌 아랫쪽으로 나와있어, 패드의 내부단선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고 그립감 또한 좋지 않았다.

패드는 새턴 시절에 게임 나이츠 전용으로 발매되었던 아날로그 게임 패드를 발전시킨 형태인데 닌텐도 64의 패드처럼 확장 유닛을 장착할 수 있게 되어있는 슬롯이 2개나 준비되어 있었다. 문제는 기본으로 넣었어야 하는 장비를 전부 옵션으로 빼두는 바람에 비주얼 메모리 유닛과 진동 유닛을 동시에 장착하면 패드 상단 부분에 하중이 쏠리면서 그립감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게다가 드림캐스트 패드 자체가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양쪽 손목이 가운데로 몰리는 어색한 파지 자세가 나오는지라... 그리고 비주얼 메모리 유닛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메모리의 커버를 분리해 따로 보관해야 하는데 분실의 위험성 때문에 평도 그닥 좋지 못했다. 대략 반년 후에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의 포켓스테이션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서 커버와 본체가 일체형으로 발매되었다.

6. 기타

  • 컴퓨터용 모니터에 연결할 수 있는 VGA-BOX라는 것을 발매했는데, 그간 가족들과 거실에서 TV 쟁탈전을 벌여야 했던 가정용 게임기 유저들에게는 자기 방의 PC 모니터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반가운 물건이었다. 또한 VGA 박스를 사용하면 정말 뛰어난 화질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일부 게임을 제외하곤 대부분 VGA 박스를 지원했다. 드림캐스트 유저 대부분은 VGA 박스를 구입했다.
  • 후면의 직렬 포트를 통해 전용 케이블로 SNK네오지오 포켓과 연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단순히 포인트 데이터를 전송하여 게임 안의 콘텐츠를 사용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볼품없는 물건이다.
  • AVGN도 세가가 만든 게임기 중 최초로 제대로 된 물건이라 평했다.대신 게임 컨트롤러를 행동으로 깠다. 씨맨에피소드에서 드림캐스트에 타임머신 기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 이 기기의 심볼 때문에 사이교우지 유유코는 일본에서는 드림캐스코, 대한민국에서는 바보드캐유령이라고 불린다. 심볼의 원작자도 이를 노렸다고 했다.
  • 드림캐스트의 패드는 방향키가 십자키인데 닌텐도의 십자키 특허권이 1994년에 만료됐기 때문이다.
  • 어클레임 재팬/타이토에서 발매한 드림캐스트 게임 '스피릿 오브 스피드 1937'은 공식 판매량 87장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공식적으로 드림캐스트의 마지막 게임은 2007년에 발매된 카라스이다. NG: DEV.TEAM이라는 독일의 아마추어 2D 게임 제작그룹에서 지금도 꾸준히 네오지오로 제작한 자신들의 게임을 드림캐스트로 포팅하여 판매하고는 있는데, 정식 퍼블리싱은 아니다.
  • EA에서는 드림캐스트 게임을 단 한 개도 제작하거나 발매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EA는 (어찌 보면) 북미 시장에서 드림캐스트를 실패하게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이유는 드림캐스트로 발매하는 스포츠 게임들의 EA의 독점 발매권을 요청했기 때문. 그러나 세가는 북미 시장의 드림캐스트 성공을 위해 스포츠 게임 전문 회사였던 비주얼 콘셉츠를 인수하는데 이미 천만 달러 이상 투자한 이후였다. 당연히 세가는 거부했다.[28] WiiWii U, PS Vita에서도 이유는 다르지만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EA는 이에 대해 해당 플랫폼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 당시 세가에서 개발한 음반 CD로 나온 규격인 MIL-CD[29]를 지원했는데, 이 CD로 인해 드림캐스트의 불법 복제 방지 장치가 제대로 뚫렸다. 당시 드림캐스트 게임 디스크였던 GD-ROM의 용량은 1.2GB 였지만 이 용량을 다 사용한 게임이 드물었고 설령 있어도 동영상등 게임 플레이에 지장없는 더미 파일을 삭제하거나 2장에 나누는 식으로 게임을 불법 복제 했다. [30] 이후 2002년에 MIL-CD 규격을 지원하지 않는 드림캐스트가 나왔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의 세상이 된지 오래였다.
  • 드림캐스트 게임 디스크도 CD 플레이어에 재생하면 "이건 드림캐스트 디스크이니 CD 플레이어에서는 재생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일부 게임은 등장 캐릭터의 목소리로 각종 애드립을 섞기도 한 모양#
  • 세가의 명운이 걸려있던 기기였던 만큼 다방면에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었다. 특히 축구계에서는 유럽의 빅 리그마다 드림캐스트를 가슴에 새긴 팀이 하나씩은 있었을 정도였다.[31]
  • 드림캐스트의 홍보와 관련된 상징적 인물하면 단연 유카와 전무이다. 하지만, 저런 중년 아저씨 말고 아이돌 그룹을 동원한 홍보도 있었다. 바로 드림캐스트 홍보 아이돌 체킷코. 한국내 게임 팬덤에서는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싶을 정도로 듣보이지만, 이 체킷코를 기획한 인물은 당시 세가의 사외 이사로 있었던 아키모토 야스시, 참고로 유카와 전무 CF를 기획한 것도 이 사람이다. 전설적 아이돌 오냥코클럽의 프로듀서이다. 체킷코는 전체적으로 오냥코클럽의 성공 전략을 따라간 모델이었으나 망했다. 드림캐스트가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려서 사라진 것처럼, 모닝구 무스메라는 커다란 조류에 밀려버린 것. 하지만 이 체킷코 프로젝트에 아키모토 야스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세가에 100억엔이나 투자 받았고,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자신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함구해왔다. 그러나 이 체킷코 전용 방송 말미에는 언제나 아키모토 야스시 사무소 협력이라는 자막이 나왔다는 것이 함정. 결과적으로 아키모토 야스시먹튀를 한 셈이었고, 이후 아키모토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프로듀스한 아이돌 그룹이 제작되니, 이 그룹이 바로 AKB48이다.
  • 2017년 6월 9일 뜬금 없이 브레이커즈가 드림캐스트로 발매 되었다. 단종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이식작이 나오고 있는 게 신기 하다(...)
  • 게임라인 만화에서도 당시 게임기들의 싸움을 다룬 적이 있다. 여기에 드림캐스트도 있었다.
  • 여담이지만 블랙핑크 '휘파람' 뮤직 비디오 초반부에 SNES와 같이 컨트롤러가 소품으로 등장한다.
  • 드림캐스트의 로고는 NTSC 지역[33]에서는 일본에서 복(福)을 상징하는 주황색 소용돌이 모양의 로고를 사용하나, PAL 지역[34]은 파란색 소용돌이 모양의 로고를 사용한다. 관련 사진 인트로 영상 이는 독일의 기업인 티볼라 퍼블리싱[35]이 이미 똑같은 모양의 로고를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어 분쟁을 피하기 위해 색상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 CERO 이전 일본 게임 심의는 자체 검열 시스템으로 돌아갔던지라 느슨한 편이었는데, 드림캐스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느슨한 편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드림캐스트 발매 초창기에 나온 게임들 중에는 지금은 발매하기 곤란한 꽤나 수위 높은 게임들이 있다. D2데스피리아가 대표적.

7. 발매된 게임

  • Windows CE 사용 게임의 경우 ★표 처리 (구동되는 에뮬레이터가 손에 꼽으며, 구동이 가능한 에뮬레이터에서도 Windows CE 미사용 게임에 비해서 구동속도가 떨어지는 편)

7.1. 세가

7.2. 타회사 (세가 라이선스)

7.3. 타회사 (세가 비라이선스)

드림캐스트의 마지막 라이선스 게임인 카라스 이후에도 인디 게임 제작팀이 드림캐스트 게임을 출시하거나, 과거에 게임기 이식된 적이 없는 게임을 드림캐스트로 이식하고 있다. 당연히 세가 라이선스가 아니기 때문에 미디어는 GD-ROM이 아닌 CD-ROM이라서 MIL-CD를 지원하지 않는 드림캐스트에서는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일부 게임의 경우 스팀 등의 다른 플랫폼으로 나온 게임의 이식작이기도 하다.

7.4. 미출시


  1. [1] 250 nm 공정. 단정밀도 부동 소수점 (FP32) 최대 연산 성능은 1.4GFLOPS. 128비트 CPU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Hitachi SH-4는 레지스터, CPU 내부 버스폭, 메모리 주소 버스가 전부 32비트인 32비트 CPU이다. Hitachi SH-4는 FPU에서 최대 128비트 벡터 연산(32비트 4차원 행렬)이 가능했는데, 이걸 가지고 세가가 128비트 300만 폴리곤이라면서 마케팅을 시전한 것이 오해의 원인. 비트 경쟁도 끝물이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다지 약빨이 먹힌 마케팅은 아니었는데, 유카와 히데카즈 전무가 불렀던 '소문의 드림캐스트'(噂のドリームキャスト)에도 저 대목을 언급한 가사가 있다. 여담으로 세가는 세가 새턴 때도 32비트 CPU인 SH-2가 듀얼 CPU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64비트 급이라는 마케팅을 시전한 전력이 있다.
  2. [2] NEC에서 250 nm 공정으로 생산했으며, 픽셀 필레이트 성능은 100Mpixel/s이다.
  3. [3] 메모리 대역폭은 800MB/s
  4. [4] 메모리 대역폭은 800MB/s.
  5. [5] 메모리 대역폭은 267MB/s
  6. [6] 사운드 처리 관련 ARM7DI 기반 프로세서 내장. 최대 64채널. 샘플링 주파수 44.1 kHz. 16 bit PCM, ADPCM, YAMAHA XG MIDI 지원
  7. [7] 이후 세가는 가정용 게임기 기반 기판에서도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나는데, 게임큐브 기반 TriForce, 엑스박스 기반 Chihiro등, 가정용을 기반으로 기판을 생산하다가 리눅스 기반의 LINDBERGH, 윈도 기반의 RINGEDGE로 갈아 탄 상태다.
  8. [8] 참고로 현대는 이전까지 닌텐도의 게임기들을 정식 발매했고, 닌텐도 64까지 발매했다.
  9. [9] 다만 현대에서 수입하려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게임기가 아닌 사원용 인터넷 단말기였다. 모뎀 기능이 있어서 수입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려 80만 대(..)나 수입한다고 밝혔기에 당시 잡지사들은 온갖 설레발들을 쳤다.
  10. [10] 기기의 전원 입력 장치를 한국의 220V용으로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인 일본의 100V용으로 발매하는 등 성의가 없었다고 한다.
  11. [11] 벌크용 NAOMI의 경우 가끔씩 기판 뒤에 NAOMI가 아닌 드림캐스트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12. [12] 플레이스테이션은 비디오 CD가 돌아가지 않는다. 비디오시디가 돌아가는 특이 기종이 하나 있고, 외부 확장 장치가 존재한다.
  13. [13] 아주 단순한 수준의 음악 CD, 비디오 CD, MIL-CD의 포맷만 지원한다.
  14. [14] 실제로 2000년 오오카와 이사오 당시 CSK 및 세가 겸임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찾아가 세가의 관련 자산을 모두 제공할테니, 드림캐스트 게임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와 호환되게 해달라고 말했다. 드림캐스트 사업을 접더라도 드림캐스트 유저들을 자연스럽게 엑스박스로 마이그레이션 시켜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엑스박스의 세가넷 지원에 대해 빌 게이츠 회장이 거절하면서 물 건너 가고 말았다. 드림캐스트 게임의 인터넷 비용 부담 문제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15. [15] 이 때문에 드림캐스트의 본체에는 Windows CE의 로고가 있다. 드림캐스트가 엑스박스의 전신이라 보는 것도 이런 이유. DirectX 덕분에 세가가 지원 중단한지 오래된 지금도 드림캐스트를 통해 동인 게임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드림캐스트는 본체에 윈도 CE를 내장하고 있지는 않다. 윈도 CE는 드림캐스트 게임 디스크, GD-ROM에 내장해 드림캐스트의 부트롬이 GD-ROM에 있는 윈도 CE를 읽어들여 구동한다. 그리고 개발사가 운영 체제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 게임만 윈도 CE를 사용했다. 세가 게임의 경우 세가의 자체 API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성능도 DirectX 보다는 세가 개발 도구에서 제공한 API를 사용하는 경우에 더 잘 나왔다고 한다. 예를 들어 NAOMI 기판으로 만든 모든 게임들은 윈도 CE를 쓰지 않았다.
  16. [16] 하지만 쉔무 개발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드림캐스트용은 개발을 취소했다.
  17. [17] 드림캐스트 말기에 세가팬을 울린 걸작이자 선더포스 시리즈 역적 대장 센스가 빛난 세가가가에서는 인명 한자중 入을 人으로 바꿔서 히토마지리라고 나온다(...).
  18. [18] 이 사람은 사실 게임 업계가 아닌 자동차 업계에서 전설적인데 혼다의 전성기를 이끌어갔던 인물이다. 혼다에서 20년간 근속하면서 주로 모터사이클 및 F-1 엔진 개발에 참여했고 혼다 = 스포츠 등식이라는 이미지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혼다의 타 브랜드 대비 월등하게 우월했던 스포츠 성향은 그가 혼다를 떠난 이후 거의 없어지다시피 소멸되었다. 이리마지리가 혼다를 떠난 것도 1990년대부터 스포츠 성향 대신 승용차 기반 RV시장 개척과 선점을 포커스로 바꾸고 F1에서도 철수한다는 혼다 내부의 결정에 반대해서라는 후문이 있었을 정도.
  19. [19] 이는 그 당시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능으로 인식했으나, 나중에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큰 일조를 하게 된다.
  20. [20] 이 날 공개된 테크 데모 중 파이널 판타지 8의 무도회 영상은 세간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발매한지 한 달도 안된 대히트친 게임의 CG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것은 트릭으로 덜렁 둘이서만 춤추는 장면 뿐인지라 별 거 아닌 거였지만...
  21. [21] 그 당시 드림캐스트의 광고 모토가 '9/9/99 for $199'이었다.
  22. [22] 그러나 정작 폴리포니 디지털의 개발자, 야마우치 카즈노리의 반대로 플레이스테이션 2와 동시 발매 하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그 이듬해 2001년 4월에 그란 투리스모 3: A-spec으로 발매된다.
  23. [23] 보통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나 XBOX LIVE, 닌텐도 네트워크에 가까운 형태이자, 이들의 시초.
  24. [24] 플레이스테이션 2 발매 초기인 2000년에는 본체와 함께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은 게임이 아니라 영화 매트릭스 DVD 비디오였을 정도.
  25. [25] 에로게 전연령(예외도 존재) 이식작들/다시 말해서 갸루게
  26. [26] 간혹 저 자리에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넣는 경우가 있는데...이 쪽은 롬카드와 롬팩으로 동시 구동하는 주제에 확장용으로 카드 슬롯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나가리이다. 카드 슬롯에 3D 셔터글라스 안경이나 YM2413이나 키보드 꽂는 거 본 사람?
  27. [27] 이 때문에 후기 모델에서는, GD삽입 부분에 고무 스폰지를 넣어서 접촉면을 띄우고, 먼지 흡착을 했다. 이 고무 모양이 수염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소위 수염 드캐이다.
  28. [28] 훗날 사미가 세가를 인수하면서 비주얼 콘셉츠를 테이크 투 인터렉티브에 되팔아버린다. 이 비주얼 콘셉츠라는 회사는 현재의 2K가 된다.
  29. [29] CDP에 넣으면 그냥 음악 CD지만, MIL-CD 규격을 지원하는 기기에 넣으면 뮤직 비디오가 함께 나온다.
  30. [30] 롬 파일이 셀프 부팅을 지원해야 하며 용량을 맞추기 위해서 영상/음성 데이터를 저용량으로 인코딩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이를 디스크 저글러라는 디스크 툴로 구워주면 된다. 디스크 저글러의 호환성 문제가 생긴 지금은 imgburn용 플러그인이 있다. 오버버닝으로 구워도 되지만 멀티세션을 적절하게 설정해야 했다.
  31. [31] EPL아스날 FC, 라 리가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세리에 AUC 삼프도리아, 리그앙(당시명은 르 샹피오나)의 AS 생테티엔 등.
  32. [32] 그만큼 단종된지 10여년이 넘어가는 아직까지도 드림캐스트발 게임이 많이 나오고 있다.
  33. [33]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 일본, 미국 등이 있다.
  34. [34] 대표적인 나라가 유럽 지역과 호주 등이 있다.
  35. [35] 이쪽도 세가와 마찬가지로 게임 유통을 하는 업체이며, 현재는 모바일 게임을 유통하고 있다.
  36. [36] 세가 토이 제작. 그래픽은 PS용으로 나온 다른 도라에몽 게임보다 훌륭함.
  37. [37] 처음에는 세가 직영 온라인 쇼핑몰인 세가 다이렉트롤 통한 한정판매였지만 세가 팬들의 성원끝에 일반판으로도 출시.
  38. [38] 드림캐스트 첫 작품.
  39. [39] AVGN이 처음으로 리뷰한 드림캐스트 게임인 만큼 괴작 반열에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쌍방향 대화 등의 참신한 시도 덕분에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명작 반열에 들기도 하는 특이한 게임. 드림캐스트 게임 가운데 최고 판매량을 찍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2로 이식하기도 하였다. 본작의 후속작을 기대하는 사람도 2015년 현재까지 많고, AVGN도 리뷰에서 이 애완동물이 우연히도 빈정대는 병X이지만 게임 자체는 상당히 참신한 게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40. [40] 세가넷에 연결해야만 즐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전용 대전 게임. 단 세작품밖에 존재하지 않는 일본산 FPS이며, 게임 플레이 자체는 전뇌전기 버추얼 온의 인간 스킨판같은 느낌이다.
  41. [41] 드림캐스트 그래픽 칩 PowerVR CLX2를 생산해 준 NEC의 자회사로 드림캐스트 말기 숱한 에로게를 전 연령 이식한 회사이기도 하다. 정작 센티멘탈 그래피티 시리즈는 망했지만...
  42. [42] 건담 vs 시리즈의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난투슈팅형 게임. 이 작품의 컨셉은 헤비메탈 지오매트릭스로 이어졌다.
  43. [43] 드림캐스트 최후의 발매작.
  44. [44] 본래 모바일 및 PSP로 발매된 오프로드 레이싱 게임.
  45. [45]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터 bleem!의 드림캐스트판. 각 게임에 대응하는 블림캐스트 부트 CD를 따로 발매하는 정책이었으나 철권 3, 그란 투리스모 2, 메탈기어 솔리드 이렇게 3종류만 발매되고 제작팀이 해체되었다.
  46. [46] 본래 2018년에 PC 엔진 CD로 출시한 인디 게임으로서, 1년 뒤 2019년에 드림캐스트로 이식되었다.
  47. [47] 2017년 11월 27일에 발매되었다. 정식 라이선스 발매지만, 에뮬레이터 구동.
  48. [48] 스팀에 등록된 게임의 이식작.
  49. [49] 원래 네오지오로 만들었다가 발매 취소된 게임으로, 2010년에 NCI라는 업체에서 비스코 라이선스로 네오지오/네오지오CD로 발매를 했으며 드림캐스트판은 2018년 11월 8일 발매. 정식 라이선스 발매지만, 에뮬레이터 구동.
  50. [50] 2017년 6월 9일에 발매되었다. 정식 라이선스 발매지만, 에뮬레이터 구동.
  51. [51] 스팀에 등록된 게임의 이식작.
  52. [52] 21세기에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개발된 RPG이며, 이후 드림캐스트로도 이식되었고, Wii U/Xbox One/플레이스테이션4/스팀으로 HD버전이 출시되었다.
  53. [53] 이식할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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