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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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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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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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36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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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다니엘 파사레야
(1978~1986)

디에고 마라도나
(1986~1994)

오스카 루게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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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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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수상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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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올해의 축구선수}}}

1979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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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골든볼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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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실버슈 19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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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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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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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발롱도르 명예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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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84 ·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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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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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FIFA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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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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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20세기 월드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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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20세기 남아메리카 XI}}}


1981 Rey del Fútbol de América

수상
지쿠

2위
디에고 마라도나

3위
레오베지우두 주니오르

1982 Rey del Fútbol de América

수상
지쿠

2위
호베르투 파우캉

3위
디에고 마라도나

1995 Rey del Fútbol de América

수상
엔조 프란체스콜리

2위
디에고 마라도나

3위
에드문두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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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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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의 기타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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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C 나폴리 영구결번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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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나시아 데 라 플라타

Gimnasia de La Plata.

이름

디에고 마라도나
Diego Maradona

본명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출생

1960년 10월 30일 (59세)

국적

아르헨티나

출생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

신체

165cm | 체중 70kg

직업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에스텔라 로하 (1968~1969/유스)
로스 세볼리타스 (1970~1974/유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75~1976/유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76~1981)
CA 보카 주니어스 (1981~1982)
FC 바르셀로나 (1982~1984)
SSC 나폴리 (1984~1991)
세비야 FC (1992~1993)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3~1994)
CA 보카 주니어스 (1995~1997)

감독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 (1994)
라싱 클럽 (1995)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2008~2010)
알 와슬 FC (2011~2012)
알 푸자이라 FC (2017~2018)
디나모 브레스트 (2018/회장)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2018~2019)
힘나시아 (2019~ )

국가대표

90경기 34골 (아르헨티나/1977~1994)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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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발

왼발

등번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10번

종교

가톨릭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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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2.3. 플레이 스타일
2.4. 메시와의 비교
2.5. 펠레와의 비교
2.6. 라이벌
4. 사건 사고
4.2. 도핑
4.3. 마약
4.4. 탈세
4.5. 기타
5. 대인 관계
6. 여담
7. 마라도나에 대한 말, 말, 말
8. 어록
9. 기록
9.1. 대회 기록
9.2. 개인 수상
9.3. 경기 기록

1. 개요

아르헨티나축구선수 출신 감독, 축구경영인.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감독을 맡았으며, 현재 힘나시아 데 라 플라타 감독이다.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초특급 유망주였으며, 1976년 10월 20일, 16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소속으로 데뷔하여 아르헨티나 리그의 역대 최연소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후반전 초반에 교체로 투입되자마자 일방적으로 밀리던 경기 양상을 단숨에 반전시켜 다음날 아르헨티나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동료들은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훗날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는 호세 페케르만은 이 시절 1군 선수들 모두가 일찌감치 훈련을 종료하고 유소년 팀에 놀러가 마라도나를 구경하던 일을 회상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이탈리아의 SSC 나폴리로 진출한 마라도나는 구단의 전설이 되어 영구결번을 부여받았고, 조국인 아르헨티나 대표팀1986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있을 정도이고, 아르헨티나의 두 번의 월드컵 우승 중 첫 번째 우승은 아르헨티나 정치권이 개입했던 최악의 월드컵 중 하나이므로 순수 본인의 능력으로 월드컵 우승을 가져온 마라도나는 더욱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디에고 마라도나/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디에고 마라도나/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플레이 스타일

축구선수로서의 모든 것에 능통했던 만능 플레이메이커이자 초절정 드리블러. 현역 시절 마라도나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상당한 근육질이며, 몸도 상당히 단단하다. 그러다 보니 상대 선수가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무작정 몸으로 부딪히다가는 오히려 역으로 튕겨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마라도나의 드리블이 투박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라도나의 드리블이 상대 수비수 입장에서 버거운 점은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바탕으로 기술적 측면에서의 드리블링 자체도 뛰어나다보니 몸싸움으로도 잡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볼터치의 가속과 감속이 워낙 변화무쌍하면서도 속도까지 빠르다 보니 도저히 그 수비할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비수들이 집요하게 마라도나의 유니폼이나 팔을 잡아채고 심지어 백태클을 숱하게 날리는데도 마라도나는 그 태클 타이밍을 다 농락하면서 전진하는 압도적인 개인능력을 과시했다.

이렇듯 마라도나는 축구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로 평가받지만, 정작 마라도나의 진정한 가치인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자질도 잊어서는 안된다. 마라도나는 경기장 전체를 조망하고 경기장 곳곳의 공간에 계속 관여하면서 경기 페이스까지 조절하고 변속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자질 또한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마라도나는 시야와 공간 판단력이 엄청난데다 패스의 구질과 타이밍 또한 창의적이고 변칙적이면서도 그 정확도까지 뛰어나다. 그렇기에 드리블을 막으려고 집중마크가 들어오는 순간 곧바로 빈 공간으로 위협적인 패스를 찔러주는 능력까지 겸비했으며, 반대로 수비가 마라도나의 공간을 미리 차단해버리면 압도적인 볼키핑으로 집중마크를 자신에게 유도하면서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면서 자유자재로 템포와 공간을 주도하는 특출난 플레이메이커였다.

즉 마라도나의 진가는 압도적인 드리블 전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듯 경기 흐름 전체를 읽고 거기에 최선의 플레이로 대응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데에 있다. 드리블이든 패스든 정지상태에서의 수비 끌어당기는 공간창출이든, 마라도나는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을 읽고 거기에 최적의 판단으로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경기 판세 자체를 바꿔버리는 모습을 위기의 순간이나 승부처에서 매우 빈번하게 보여줬으며, 이것이야말로 상대팀에게 마라도나가 왜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지 입증한다.

이로 인해 나타난 마라도나 상대법 중 하나는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마라도나의 발목을 일부러 노리는(...) 악질적인 견제전술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렇듯 마라도나는 폭넓은 시야와 창의성, 테크닉을 기반으로 패싱과 연계를 하면서 두 세명 이상의 밀집된 수비도 손쉽게 붕괴시켜 버린다. 그래서 "압박축구는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만든 전술이다."라는 속설도 있을 정도다.

여기다가 마라도나는 위협적인 왼발 프리킥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다. 그래서 드리블하다가 연계나 공간과 페이스 조절로 팀의 공격 활로를 찾고 템포를 주도하다가도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는 일부러 파울을 유도하기도 하면서 얻어낸 프리킥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매우 위협적으로 꽂아넣기도 했던 것이다.

상술했듯이 마라도나는 드리블과 슛팅능력 외에도 경기 페이스의 변화에 맞춰서 템포 전환과 주도를 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플레이를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굳이 본인이 드리블로 몹몰이를 하는 것 이외에도 정지 상태에서도 왼발만으로도 위협적인 플레이가 수시로 터져나온다. 그리고 운동량과 운동반경에서도 하프라인 아래부터 2선, 1.5선, 1선까지 너른 움직임을 왕성하게 가져가면서도 플레이의 패턴까지 정형적이지도 않아서 대인방어는 물론이고 지역방어도 거의 불가능하다.[2]

마라도나는 주된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각종 득점왕에도 오를 정도로[3] 문전 침투와 슛도 최고 수준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1선 포워드로도 플레이를 한 기간이 있을 정도. 단신인데도 헤딩능력도 준수했으며, 프리킥 능력도 최고였다.

단점을 꼽자면, 오른발의 사용 빈도와 정확도 모두 왼발에 턱없이 못 미쳤다는 점이다. 때문에 양발잡이만큼 변칙적인 슈팅 타이밍과 슛팅각도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전문 골잡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왼발 편향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드리블 실력과 준수한 득점력을 자랑했다는 사실이 마라도나의 왼발 테크닉이 얼마나 사기적이었는지를 반증한다.

게다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비판받기도 하였는데, 마라도나는 매번 시합에서 기본으로 2명, 3명, 많게는 5명 이상이 따라붙으면서 온갖 거친 플레이를 받으면서 발로 걷어차고,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공이 아닌 발목을 향한 살인태클의 위협에 시달렸으니 인격자가 아닌 이상 누구든지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만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필연적으로 "매춘부"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할리우드 액션의 달인이 되었을 수 밖에 없다.

마라도나는 물론 일개 플레이어로서도 역대 최고의 반열에 놓이는 선수였지만, 동료들을 잘 이용하면서도 이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있어 뛰어난 리더라는 점도 언급할 수 있다. 일례로 마라도나는 고작 18살 소년일 때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부터 이미 주장을 맡을 정도로 강인한 리더십을 가진 선수였다. 국가대표로서도 당시 영원한 캡틴 파사레야가 있었던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주장이 아니었지만, 선수 1인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팀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우승을 이끌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4]에도 계속해서 주장으로서 역할을 맡았다.

그가 전성기 시절, 우승컵을 들었던 팀인 SSC 나폴리아르헨티나의 다른 멤버들을 감안해 볼 때, "축구에서 한 선수가 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의 한계치를 평가하는 사례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하위권 수준인 나폴리를 UEFA컵 우승까지 이끌고 나간 것은 다름아닌 마라도나 단 한 명의 능력이다. 또한 유독 마라도나의 월드컵 우승이 고평가되는 이유도, 당시 결코 강팀이라 불릴 수 없던 스쿼드를 이끌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말 그대로 혼자서 지배하며 진정한 하드캐리가 무엇인지를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활약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당대의 수비 시스템을 붕괴시킴으로 사키가 압박 수비를 고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2.4. 메시와의 비교

비교에 앞서 재밌는 점이 있는데, 마라도나와 메시, 마라도나와 펠레의 비교우위 논점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마라도나의 강점은 클럽이건 국가대표팀이건 비교적 약팀의 소속으로 UEFA 컵월드컵을 우승시켰다는 점이다. 대조적으로 펠레가 역대 최고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월드컵을 3회 우승한 점, 그리고 리오넬 메시가 역대 최고 클럽팀 중 하나[5]로 꼽히는 FC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2회 트레블을 달성한 점과 달리, 마라도나의 강점은 우승후보로 꼽히지도 못하던 팀을 최고의 위치까지 혼자만의 힘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 있다.

아리엘 오르테가,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사비올라, 파블로 아이마르, 카를로스 테베스, 세르히오 아궤로 등등 아르헨티나의 수많은 축구신동들은 이후 '포스트 마라도나'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대부분은 마라도나와 축구 포지션 및 스타일도 달랐으며[6],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이후 현재까지 이르러서는 리오넬 메시가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칭호를 받는 등, 지금까지의 아르헨티나 축구신동 중에서 포스트 마라도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기대받고 있다.[7] 마라도나 역시도 "그동안 새로운 마라도나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수십 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메시만이 내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다."라고 하며 메시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고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라고 할 정도로, 실제로도 메시를 무척 아낀다. 2010 남아공 월드컵때 감독을 맡은 당시에도 팀의 에이스인 메시를 무척 싸고 돌았고 그후로도 계속 조언과 격려를 해주고 있다.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메시를 여러 이유로 혹독하게 까는 경향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곤 하고, 월드컵 우승이 없는 메시에게 우승으로 증명할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시는 이런 비교에 대해 "펠레, 마라도나와 비교되는 것은 정말 영광이지만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 그저 팀과 나의 발전을 위해 축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며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가장 존경하는 선수 역시 마라도나. 물론 역대 최고 역시도 당연히 마라도나라며 존경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누군가 나를 능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르헨티나인이기를 바란다. 그 인물이 메시라면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으며 "나의 커리어는 이미 끝났지만 메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에는 펠레와 나의 반열에 오르게될 것이고 우리는 훗날 역대 최고의 자리를 놓고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도 말한 적 있다.

장지현 위원은 두 선수를 사실상 비교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1980년대의 축구와 현대 축구가 사실상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파고들자면, 1980년대 축구는 그 어느 시기보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마라도나는 개인적인 플레이메이킹 뿐 아니라 드리블링과 연계 능력, 경기 내의 템포 조절, 직접적인 득점력, 수비 가담까지 모든 부분에서 단 한 명의 클래식 공격형 미드필더가 책임을 지는 시대에 나타난 선수였다. 압박이 등장하고 1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이상 모든 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가 지나면서, 플레이메이킹은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전방 플레이메이커로 이원화된다. 이러한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대표적인 선수는 펩 과르디올라,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페르난도 레돈도 등이었다. 한편, 후위에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좌한 플레이메이커도 태동되었는데 이러한 선수의 유형의 대표선수는 지네딘 지단이라 할 수 있다.

마라도나가 메시에 비해 확연하게 우위를 가져가는 분야는 동시대를 비교할 때 원터치 플레이와 패스 스펙트럼의 다양성, 팀원의 움직임을 최대한 살리고 맞춰주는 플레이메이킹, 다채롭고 변칙적인 무브먼트, 수비력, 우월한 근력과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활동량과 활동범위, 몸으로 부딪쳤을때 밀리지 않는 피지컬적 성능이다. 마라도나는 메시처럼 섬세한 플레이를 하진 않았지만 이는 우수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좀 더 역동적으로 전진하는 플레이 스타일상의 차이이다. 또한, 마라도나는 양발잡이는 아니였으나 왼발만으로도 역대 손꼽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중요한 순간에 오른발로 실수를 범하는 일도 없었다. 당시 중하위권 수준의 팀을 이끌고 빌드업에서 골게터까지 모든 역할에 관여하고 수행해야 하는 진정한 원맨팀에서 마라도나가 세얼간이라는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진과 함께한 메시만큼의 득점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였다. 메시 역시 FC 바르셀로나라는 현세대 최고의 팀 중 하나에서 축구사의 역사를 써내려가고있지만, 마라도나처럼 중하위권 팀을 이끌고 스쿠데토를 차지하고, UEFA컵을 홀로 우승시키거나 월드컵[8]을 우승까지 떠먹이는 하드캐리를 하지는 못했다[9].

반면 메시는 비교적 균등한 양발능력을 활용한 마무리 부문의 전반적인 능력치, 연속 터치로 라스트 패스나 슛팅까지 이어지는 파괴력, 연계나 침투 이후의 문전 파괴력에서 더 우위를 점한다. 왼발 편향으로 킥의 반경이 비교적 좁은 마라도나는 메시만큼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슛을 하지 못하며,[10] 라스트 킥의 각도 활용 등에서 메시보다 많이 부족하다.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거나 기계처럼 원투패스를 주고 받는 능력 등에서는 메시보다 떨어진다. 반면 메시는 플레이메이킹에서 마라도나보다 떨어지는데, 이는 포지션 자체가 더 공격적인 메시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또 메시는 마라도나처럼 온 몸을 이용한 패스를 쏘아대지는 않는다. 메시의 탈압박은 본인의 뛰어난 발밑 기술을 통한 능력이라면, 마라도나는 볼이 오자마자 아웃사이드, 힐, 발바닥, 어깨나 가슴 등등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온 몸을 이용해 원 터치로 다른 선수에게 넘겨버린 후 다른 곳으로 파고 들어가는 형식으로 플레이메이킹을 했다. 물론, 그 볼 순환에 있어 중심 플레이어는 마라도나였고 마라도나 개인 기량에 팀 전체가 큰 의존을 했다. 이는 마라도나 시대의 볼만 잡으면 백태클이 들어오는 너무나 폭력적이었던 축구 배경과, 일인 플레이메이커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시대에서 자연스레 나타났던 플레이 성향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드리블 비교에서 서술했듯 마라도나의 신체 구조는 보면 메시가 아니라 되려 카를로스 테베스와 유사하다. 그래서 피지컬에 의존한 플레이도 가능하고 거기에 왕성한 활동량까지 지녔으니, 메시가 마라도나급의 하드웨어를 지녔다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은 아르헨티나가 우승했을 확률이 높다. 이 월드컵 당시 메시는 4강 네덜란드전부터 체력부족을 노골적으로 호소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그 이전의 경기들과는 달리 활약이 신통치 않았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8강 독일전에서 역시 메시는 체력부족을 호소했다.[11] 심지어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역시 메시는 칠레전에서 노골적으로 체력 부족을 호소했으며 승부차기에서 체력 부족이 원인이 된 집중력 저하로 인해 약점이었던 페널티 킥에서 또다시 실축을 하고 만다.

결국 시대에 따른 축구의 흐름 변화를 전혀 살피지 않고 메시와 마라도나를 1대1로 득점력이나 패싱력 등으로 비교하며 누가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답이 나올 수 없다. 마라도나와 메시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위상에 있어서만 가능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 장지현위원은 사실상 두 선수의 위상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요한 크루이프 역시 두 선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우위를 말하는 관계자, 전문가들이 있기는 하나,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스타일, 장점, 커리어 등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정도고, 어느 쪽이 선수 가치면에서 총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의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마라도나 vs 메시에 대한 비교분석을 한 칼럼.

이 칼럼에서 한 번 더 풀어 설명해 줄 만한 점은 젊은 층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정작 1990년대를 전후해서 공수간격이 가장 좁았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공수간격이 좁을수록 모든 선수들이 더 밀착하고 더 가까운 상태이므로 압박의 강도가 강하다. 더군다나 룰이 거친 플레이를 2010년대보다 훨씬 더 많이 용인했으므로 반칙이 엄청나게 더 거칠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이 시대 미래 축구에 대한 예측은 기술보다는 피지컬에 집중했으며,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대두될 것이며 아프리카 대륙이 축구적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즉,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몸으로 비비고 부딪치고 충돌하는 행위는 1990년대가 훨씬 강도가 높았으며, 조직적인 압박은 2010년대가 더 강하다. 1990년대에는 저런 식의 거친 몸싸움과 더불어 마라도나는 현대 첨단 의학과 관리기법의 수혜를 입지 못한 것도 감안해야 할 시대적 환경이였다.

또한, 득점력 등 공격포인트 부분에서도 1990년을 전후해서 축구가 가장 득점이 덜 나던 시절이라는 것을 무조건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가장 공수간격의 폭이 좁은 상태이기에 선수들이 훨씬 더 달라붙어서 경기할 수밖에 없었고, 거칠기까지 한 데다가 오프사이드 룰 완화, 백태클에 대한 레드카드 규정, 또한 골키퍼는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것이 가능했던 등[12] 전체적인 축구경기의 평균 득점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앞서 서술한 장지현 위원의 말처럼 시대가 다른 두 선수의 비교에 큰 의미는 두지 않는 것이 좋다.

2.5. 펠레와의 비교

  자세한 내용은 펠레 vs 마라도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6. 라이벌

호사가들이나 대다수 해축팬들이 꼽는 마라도나의 라이벌펠레지만 현역시절 마라도나의 라이벌로 꼽힌 선수는 서독의 미스터 유럽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프랑스의 마에스트로 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의 하얀 펠레 지쿠[13], 네덜란드의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 역시 같은 네덜란드의 스트라이커의 교본 마르코 판바스턴, 그리고 월드컵과 세리에 A[14]에서 심심하면 만나서 경쟁했던 로타어 마테우스가 있다.[15] 이 중 본인이 최대 라이벌로 꼽았던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였다.

사실 엄밀히 보면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는 마라도나보다 약간 전세대로서 전성기가 겹치지 않아서 완전히 라이벌이라고 보긴 좀 어려운 면이 있다.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가 이미 세계 최고로 꼽히던 1980년대 초반에 마라도나는 아직 20대 초반이었다.[16] 판바스턴, 굴리트, 마테우스는 동시대이지만 전형적인 센터포워드인 판바스턴은 포지션이 달라서 직접적인 라이벌로는 비교되는 빈도가 낮았다.[17]

이래저래 동시대에서는 굴리트와 마테우스가 라이벌로 많이 논해졌으나, 굴리트는 라이벌 포지션은 전성기 2년 정도에 그쳤고, 마테우스는 마라도나보다 몇년 늦은 1980년대 후반에 전성기가 찾아왔지만 엇비슷한 나이인 마라도나와 전성기가 어느 정도 겹치고 2의 월드컵 결승과 세리에의 우승길목에서 계속 마주쳤기에 라이벌 포지션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강한 인상을 줬다. 물론 마라도나의 전성기인 1979년부터 1988년까지는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의 퍼포먼스에는 감히 비교되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와 붙으면서 종종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판정승하기도 하면서 발롱도르를 수상하면서 30살에 최고 선수에 등극한다. 반면 마라도나는 그때부터 마약 스캔들로 급속한 몰락이 시작된다.

현재는 자국 후배인 리오넬 메시가 세대를 넘어서는 라이벌이 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3. 감독 경력

  자세한 내용은 디에고 마라도나/감독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사건 사고

4.1. 신의 손

  자세한 내용은 신의 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마 전세계적으로 가장 마라도나 하면 유명한 논란일 것이다.

4.2. 도핑

Diego Maradona, the Argentine superstar with a history of fabled play on the soccer field and drug use off it, was abruptly removed from World Cup play today because he had tested positive for five variants of ephedrine, a stimulant banned by soccer's international governing body.

축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마약 복용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오늘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흥분제 성분이 들어있는 FIFA의 5가지 금지약물에 대한 양성 반응을 보여 퇴출되었다.

뉴욕 타임즈, 1994년 7월 1일 기사.

앞서 설명했다시피 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 당시 에페드린 양성 반응으로 월드컵 도중 귀국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1994년 7월 1일) 경향신문 - 마라도나 약물 양성반응 충격 (1994년 7월 2일) 동아일보 - 월드컵 축구 약물복용 마라도나「축구인생」끝장. 이에 마라도나는 "감기약을 먹은 것일 뿐"[18]이라며 "나는 결코 신께 어긋날 행동을 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마라도나는 도핑 결과 에페드린, 페닐프로판올아민, 슈도에페드린, non-pseudo-ephedrine 그리고 메틸에페드린 이상 5가지의 약물이 검출되었고, 당시 도핑을 담당했던 Michel D'Hooghe[19]가 "현존하는 치료 목적의 약물중에 5가지의 금지약물이 동시에 사용되는 약물은 없다.[20]"라고 판단해서 월드컵에서 출전 정지를 먹은 것.

이후 2011년에 마라도나는 "그론도나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회장의 지시로 경기 전에 팀 닥터들이 커피에 약물을 타주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모든 선수가 도핑을 했다고 주장했다. sbs 뉴스

4.3. 마약

나폴리에서 뛸때부터 마약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마약 복용이 확인된 것은 1991년으로 코카인 양성판정을 받아 15개월간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고 1997년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할때 조차 마약에 빠져 살았다.

이후 우루과이에서 마약 소지혐의로 체포되기도 하고 2000년, 2004년에 코카인 복용으로 인한 심장 발작증세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2004년 쿠바피델 카스트로의 도움으로 마약을 끊는데 성공한다.

4.4. 탈세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할 당시 탈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21] 지금도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가면 각종 귀중품을 빼앗긴다. 마라도나가 탈세한 액수가 모두 채워질 때까지 이 짓은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22]

다만 이부분에서는 마라도나가 "이태리 국세청 놈들이 나에게 세금 고지도 안해놓고 탈세했다고 하네?"라고 항의할만큼 마라도나 만의 잘못은 아니라는게 세간의 평이다. 왜냐하면 이태리 국세청에서도 이에 대한 반박은 못하고 슬그머니 체납액을 3,800만 유로에서 1,200만 유로로 깍아주었기 때문. 2016년 현재는 약 한화로 600억원 가량 체납액이 남아있다고 한다. 잠깐만...600억원이면 4천5백만 유로를 넘는 수준인데...가산세 감안해도 이건 좀...

어쨌든 이게 원인이 되어 나중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되어서도 이탈리아에 가질 못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마라도나가 받는 감독으로서의 급여)보다 배꼽(이탈리아에 가기만 하면 빼앗기는 세금)이 더 크니 이게 마라도나가 선수관리를 하는 데에 큰 애로사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4.5. 기타

  • 2013년 10월 14일 FIFA U-17 월드컵이 개최되자 마라도나는 여기서 굉장한 사건을 터뜨리고 만다. 이 마라도나의 발언 한 마디 때문에 온 아르헨티나가 뒤집어졌다.

"난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아랍에미리트를 응원하겠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내 조국이 아니다."#

  •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 D조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의 경기를 앞두고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한국 관중을 향해 눈을 찢는 인종차별 제스처를 취해 현재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마라도나는 "나는 월드컵에서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뉴스거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이 점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면서 "경기장을 수많은 팬 중에서 나는 멀리서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촬영하는 아시아 소년에게 놀랐다. 나는 심지어 아시아인들이 우리를 응원해주는 것이 얼마나 내게 근사하게 보였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그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해당기사 해명이 더 가관이다. 그러나 남미권은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수준이 매우 낮은 걸로 유명하고 그중 특히 마라도나의 조국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인종차별 국가로 비판을 받는 국가이다. 즉 마라도나도 인종차별의 중대성을 모르고 저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 인종차별 논란을 빚은 아르헨티나의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아이슬란드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크로아티아에서 역사에 남을 졸전 끝에 3-0으로 떡실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이후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그간 침묵하던 메시가 득점에 성공하자 실신할 듯한 표정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이후 페널티 킥을 허용하며 1-1 동점이 되었다가 후반 막판 16강행을 결정짓는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키자 환호하면서 아르헨티나 월드컵 도전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법규를 시전하여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월드컵 중계방송 제작진이 마라도나를 비춰주는 순간 마라도나의 기똥찬 두 손가락을 보고는 황급히 선수들에게로 화면을 돌렸을 정도.
  • 그 외에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FIFA에게 주의까지 받을 정도로 부적절한 발언이나 언행을 많이 하면서 축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장 자리에 지원한 하비에르 사네티에게 너무 나댄다고 저격했다. 물론 사네티가 마라도나에 비해 실력은 몰라도 인격적으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위인이기 때문에 역으로 까였다.
  • 최근에는 그동안 자신이 총애했던 메시“메시는 훌륭한 선수지만 신격화해서는 안된다. 그는 소속팀에선 맹활약을 펼치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선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경기 전에 20번이나 화장실을 가는 선수를 리더로 만들면 안된다. 메시는 동료들과 이야기 하는 것보다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가 좋은 모습을 보일 때까지 리더 역할을 맡겨선 안된다.”라고 비난했다. 기사 참조[23]
  • 마라도나가 이끌고 있는 멕시코 프로축구 2부 리그팀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는 2018년 12월 3일(현지시간) 원정에서 치른 아틀레티코 산 루이스와의 승격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2-4로 패했는데 도라도스는 1, 2차전 합계 스코어 3-4로 1부리그 진출이 좌절됐다.[24] 문제는 경기 이후였다. 멕시코 현지 매체들은 3일 문제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마라도나는 경기장을 나오는 상황에서 산 루이스 팬들을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이어 주먹질을 시도했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분노를 표했다. 기사 참조

5. 대인 관계

마라도나는 정치적으로도 상당부분 엮인 인물이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카를로스 메넴[25]과 상당한 연줄이 있었기 때문에 메넴의 지지자였다. 그러다가 2002년 이후로는 성향이 변했는데, 아르헨티나 정계가 경제위기로 인해 격변기를 맞았고 급진시민연합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페론당이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당되었는데 마라도나는 이중에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창당한 승리를 위한 전선[26]을 지지하였고 그 이후로 부부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지지하였다. 다만 2007년 수출세 인상문제로 시끄러울때 마라도나가 수출세 인상에 대해 네스토르와 크리스티나를 깐건 보면 무조건적인 지지자라기 보다는 깔때는 까는 타입에 가깝기는 하다. 그와 별개로 쿠바피델 카스트로와도 1990년대 초반부터 절친하게 지냈고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와는 생전에 매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조지 부시 부자에 대해서는 BU卐H라고 대놓고 부르며 아돌프 히틀러와 동급으로 취급해 버렸고 2005년 FTA 협상 당시에 반미 시위에 참여했었다.

이러한 인연은 마두로대에도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간 마두로 대통령이 유가폭락으로 인한 경제위기속에서 삽질을 많이 벌였고 마라도나도 이를 모르고 있을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기 때문에 대놓고식으로 지지하는 스탠스를 보이지는 않았는데[27] 마두로가 정치적인 승부수로 내놓은 제헌의회 선거가 야권의 보이콧과 함께 여러 남미국가들과 유럽, 미국 등으로부터 사실상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제헌의회 구성후에 군사기지가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내전 얘기까지 나오자 마두로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28] 이를 두고 마라도나가 CIA남미 정권교체를 유도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과도하게 빠져서 맛이 간 것이 아닌가하는 뒷말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29]

그러던 와중에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자 대놓고 쌍수를 들며 환영하면서 "나는 부시집안이 망쳐놓은 미국에 대해 오바마가 원상복구 시켜줄 것을 강력하게 확신한다."라고 말하며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렇지만 이후로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로 갈려다가 반미 시위 참여 및 우고 차베스피델 카스트로와의 관계로 인해 미국 이민관리국으로부터 출입금지를 먹은 경력이 있어서인지 지금은 어떻게 볼지 다소 미지수. 그리고 우파성향의 마크리와도 상당한 인연이 있는데 이건 마크리가 CA 보카 주니어스의 소유주인데다가 마라도나가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다보니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크리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정리해고와 공공요금 인상 등의 정책을 펴자 이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며 까기도 했다.

슬하 자녀는 2남 2녀가 있고, 이들 중 차녀는 아르헨티나의 신성 세르히오 아궤로와 결혼한 사이다. 조석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라는 훈훈한 가족(...)으로 묘사한 바 있다.큰아들이 묘하게 말디니 닮았다

그리고 2013년 2월 13일 득남하여 늦둥이 아들이 하나 더 늘었다. 한마디로 아궤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 외손주인 벤하민은 자기보다 4살이나 어린 외삼촌을 갖게 된 셈. 이 무슨 막장 드라마... 36살의(!!) 애인 베로니카 오헤다가 어머니라고...이름은 디에고 페르난도라고 한다. 늦둥이 아들이 외손주 벤하민과 메시의 아들 티아고와 함께 대표팀에서 뛰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메시의 아들인 티아고가 축구를 가장 잘 할 것 같고 벤하민이 스트라이커, 그 뒤를 티아고와 페르난도가 받쳐주면 좋을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에 이어 2세대마저 가족축구단될 기세;; 그리고 2030 FIFA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의 우승.

그러나 아궤로는 2014년 현재 마라도나의 딸 지아니나와 별거 상태에 들어갔고 이혼을 준비중이다. 마라도나는 아궤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까지 딸과 함께 가서 재결합을 위해 아궤로를 설득하는 부정을 보이기도 했다.

디에고 시나그라라는, 자매의 이복 오빠가 있다. 혼외자였고 이에 마라도나는 30년간이나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2016년 8월자로 친자임을 인정했다. 허나 축구 실력은 형편이 없다고. 거기다가 1996년생 사생아 딸이 하나 더 있다. 이름은 하나(Jana). 그녀의 생모는 하나를 마라도나의 친딸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오래 법정 싸움을 했다고 한다.#

리오넬 메시와는 요즘에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모양새. 메시의 말로는 2010년 월드컵 이후로 서로간의 연락이나 대화가 완전히 끊겼다는 모양이고, 2017년 메시의 결혼식에도 마라도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리고 나댄다는 이유로 하비에르 사네티를 저격한 이후 얼마 안 돼 메시를 경기 전에 화장실 20번이나 가는 놈이라고 저격해 메시의 사촌이 분노하기도 했다.

후안 로만 리켈메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처음에는 리켈메를 중용하지 않았던 바르사를 세계 최악의 클럽이라 불러 리켈메를 두둔할정도로 사이가 좋았었는데 마라도나가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트러블이 생겨 리켈메는 2008년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었다. 이후 빡친 마라도나가 너따위 없이도 잘할 수 있다며 메시에게 등번호 10번을 주고 남아공 월드컵에 나섰으나 8강에서 독일에게 0:4 대패를 당하고 쓸쓸하게 탈락했다.

6. 여담

마라도나교(Iglesia Maradoniana)라고 하는데, 간단히 이야기 하면 기독교[30]여호와 내진 아도나이를 영(靈)의 아버지로, 마라도나를 육체(肉體)의 아버지로 여기고 섬기는 종교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축구의 신: 마라도나(Maradona By Kusturica)'에서 그 전모(...)를 감상할 수 있다. 진짜로.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는 가톨릭이지만 마라도나를 성인으로 숭배한다고 한다. 종교보단 가톨릭의 한 교단 비슷한 개념으로 마라도나를 성자로 숭배한다. 종교의 우두머리격(?)인 인물들부터 전통적으로 믿는 신(神)은 천주교지만, 마음의 신(神)은 마라도나라는 신앙고백(...)을 할 정도. 이단이다! 참고로 이 종교는 마라도나의 생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고 오순절(성령강림대축일)이라 여기는 날은 위에 나온 멕시코 월드컵 당시의 '신의 손'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십계명도 있으며 현재 전세계에 20만명이 신도로 존재한다고 한다. 앞면에 DT(diego ten), 뒷면에 등번호 10이 새겨진 예복도 있다고 한다.(...)
  • 명성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레몬이나 오렌지로 트래핑 연습'을 한다든가레몬과 오렌지가 비싼 한국에서 했다가는 욕 먹을 짓이다 '일부러 공을 차서 골대만 맞추면서 논다'는 등의 이야기도 널리 퍼져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연습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선수 시절의 마라도나는 식사시간을 빼면 늘상 미친 듯이 공만 차면서 노력하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했다. 심지어는 지네딘 지단조차도 마라도나의 축구실력에 경의를 표하는데 지단이 직접 한 말에 의하면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라고 극찬을 하는 정도이다.(그러나 이는 , 일설이고 다른 좀 더 유명한 설은 , 지단이 나는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볼 트래핑을 그는 레몬으로 할 수 있다 ...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편이 마라도나가 레몬을 가지고 자주 보여주기용 과시 차원의 경이로운 볼 트래핑을 했었던 실제 사실에 좀 더 가깝고 더욱 많이 연관된 신빙성이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의 주포지션은 공격수가 아니라 미드필더이다. 공격력이 매우 뛰어나서 스트라이커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의 골기록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
  • 호마리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세계제일의 "악동"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호마리우처럼 실력만 좋고 멘탈은 썩었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새총을 쏘는 등의 기행이 있었긴 했어도[31] 선은 지켰고 나름대로 선행도 많이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축구협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마라도나는 언제나 선수들의 편이었고 절대 축구협회 회장에게 빌붙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나폴리의 마피아인 카모라들과 사이가 나빴으며, 그들에게 대놓고 비난했던 유일한 인물. 당시 카모라들에게 대든다는 것은 정말 죽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 또한 서방언론 특히 미국계 언론과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일단 그 인생사, 물고 뜯을 게 많기 때문에 좋은 먹잇감이기도 하지만 남미인으로서 아르헨티나인으로서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즉 미국을 몹시 싫어하고 신나게 깐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바로바로 내뱉는 성격이다.[32]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를 좋아하는 것이 그 반증. 언론 역시 네 그러세요? 하며 신나게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 마약도 하니 뭐 카모라들이랑 한통속이라는 음모론도 있지만 완전 헛소리다. 당시 카모라의 아이들이랑 찍었다는 사진이 있는데 사실은 카모라들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찍은것 을 카모라들이 그렇게 퍼뜨린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하여 재단을 만들어 기부한 것도 유명한 일. 괜히 나폴리에서 저렇게 떠받드는 게 아니다. 라고 기존에 알려져 있었으나, 2019년 국내에도 개봉한 영화 '디에고'가 마라도나의 사생활을 꼼꼼하게 취재해 영화에 반영하면서 카모라와 친분이 있었다는 건 확실한 사실임이 널리 알려졌다. 카모라와 함께한 사진, 영상이 수없이 많다. 이 영화는 마라도나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면서도 옹호하지는 않는 태도를 잘 유지하고 있는데, 영화에 따르면 마라도나는 처음 카모라의 호의를 대충 받아넘겼고 깊은 친분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카인에 빠져든 뒤 마약을 구하기 위해 카모라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흔한 중독자처럼 카모라의 말에 따르는 신세가 됐다. 오히려 마라도나의 마약 관련 수사에 카모라가 연루되면서 언론 노출을 철저히 막던 그들의 방침에 차질을 빚었을 정도.

  • 한번은 친구의 딸이 병에 걸려서 비싼 수술비를 내기가 난감했는데, 그 막대한 수술비를 내준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아들이 바로 디에고 포를란으로, 병에 걸렸던 여성은 포를란의 친누나인 알레한드라 포를란이다. 원래 테니스 선수였던 디에고 포를란은 마라도나의 극진한 애정에 감명받아 자신의 진로를 축구선수로 전향했다.그리고 2011년마라도나의 조국을 엿먹이게 된다.

  • 이런 모습은 필드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재능만 믿고 혼자서 다 하려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고 항상 동료들과의 연계를 잘 활용하며 팀을 위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의 주장 완장은 결코 실력만으로 얻어진 게 아니다.[33][34] 실제로도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나이는 많은데 신인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해트트릭을 한 것은 죄다 마라도나가 발만 갖다 대면 골로 이어지도록 절묘하게 어시스트를 해준 덕분이었다.
  • 마라도나는 역으로 감독으로서는 동정심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빈민촌 출신이며 없는 자인 카를로스 테베스를 자르지 못했는데 후임인 알레한드로 사베야는 테베스를 잘라내고 승승장구했다는 것이 그 근거. 그러나 사베야 재임기의 테베스는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트러블을 일으켜 경기도 못 뛰고 있었으니 잘라내는게 당연한 얘기이고, 마라도나 재임기의 테베스는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이며 공격전개, 돌파, 연계까지 완벽하게 수행해 당시 미드필더진[35]의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맨시티를 이끌고 있었다.
  • 파파라치에게는 아주 쿨하게 대응했다.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했다. 이로서 가장 터프하게 파파라치를 상대한 유명인사가 되었다.[36] 이 때문에 지금도 파파라치가 마라도나에게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 자신과 같은 테크니션에게 들어오는 거친 견제와 파울을 매우 싫어했다. 친선전에서 상대 선수가 계속해서 거친 파울로 자신의 플레이를 끊어대자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럴 거면 왜 나를 부른 것이냐'라고 불만을 토하기도 했었고, 허정무에게 걷어차인 것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마도 이 때문이다. 반면 전설의 드리블 5명 돌파 같은 경우는 "그건 상대 선수들의 페어플레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라며 잉글랜드 선수들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 전 아내가 돈을 훔쳤다고 고소했는데 액수가 137억원...#
  • 은퇴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연간 유니폼 판매량에서 꼬박꼬박 10 위권 안에 개근 중.
  • 2010년 12월, 고작 22개월된 외손주 벤하민 아궤로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발휘하며 킥을 하는 영상이 올라오면서 20년 후를 책임질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마라도나에 아버지는 아궤로라.아빠랑 제일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메시 과연 어떤 굇수가 탄생할지 설레발이 오가는 중.
  • 벤하민 아궤로의 풀 네임은 벤하민 레오넬 아궤로 마라도나. 이름부터 벌써 축구신.[37]
  • 그런데 만 50살이 되던 2010년에 득남했다. 결국 벤하민 아구에로는 자기보다 어린 외삼촌을 두게 된 셈이다. 그리고 리오넬 메시의 아들 티아고 메시까지 해서 나중에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같은 괴물 3명이 동시에 뛰는 어마무지한 팀이 될 거라는 예측이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 세 명의 아이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2030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 앞의 일화들을 보면 마라도나는 나름의리는 있는 사람이다. 월드컵이 끝나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 마라도나는 그냥 연임시키고 코칭스텝만 경질한다고 하자 그 코칭스텝들의 편에 서서 그래도 안되니까 그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마라도나는 체 게바라를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본받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적으로 반미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이 좀 허술해서 그렇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당장 디에고 포를란의 누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 한 명 한 명한테 볼에다 찐하게 뽀뽀를 해준다. 특히 국대의 에이스이자 본인 후계자인 메시에게 경기 후 격한 애정표현을 퍼붓는 사진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화권이 다른 우리가 보기엔 뜨악스럽지만 선수들은 굉장히 영광스럽게 여긴다나. 2010 년에도 현역 시절 발재간은 아직 살아있어서 공이 날아오자 발재간으로 가볍게 툭 받아서 경기장에 돌려주는 센스를 보여줘서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외에 훈련 동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스핀이 잘 안 들어가고 반발력이 심해서 유럽 일류선수들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던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를 너무나 쉽게 가지고 놀면서 골대에 집어넣었다. 역시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덕택에 2ch에서는 이런 유머까지 나돌았다.

연습장에서 훈련중인 아르헨티나 선수들.

마라도나: 자, 다음 경기를 준비해보자. 이렇게 공을 잡고 3명을 제치면 되는거야. 어때 참 쉽지?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메시: 아, 정말이네. 쉽다-! (다른 선수들도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마라도나: 그래, 그럼 준비 끝. 남은 시간은 수영장에서 놀자구-! 농담이 아닌것 처럼 들린다.

  • 2014년 2월 21일, 데일리 미러를 비롯한 영국 매체들은 마라도나가 54세에 아르헨티나 5부리그 소속인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에서 현역선수로 복귀한다고 전했다.
  • 2015년에는 제프 블라터가 이런저런 비리로 FIFA 회장에서 물러날 조짐을 보이자 자기가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 마라도나 또한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의 영입 제의에 동의했고,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 선수 등록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신청서가 통과될 경우, 마라도나는 오는 3월 23일 산 로렌조와의 경기에 데뷔한다.

  • 세이부 컵 축구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철자가 하나 틀렸다. 즉, R이 아닌 L로 잘못 표기돼 있다.
  • FIFA 부회장 출마 선언을 했다.##
  • 프랑스 풋볼 일간지인 So Foot 에서 선정한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선수 TOP30 에서 펠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 펠레: 메시 성격은 어때요? 착한가요?> 마라도나: 정말 사람 좋죠. 하지만 리더가 될만한 성격은 아니에요.> 펠레: 아, 알겠어요. 예전의 우리 같지는 않군요.> 마라도나: 딱 그래요.
  • 밴드 오아시스와 한번 마주친 적이 있다. 리암 갤러거의 말로는 오아시스가 콘서트 일정으로 아르헨티나에 방문해서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게에 30 명 정도가 왁자지껄 밀려들어오길래 “뭐 하는 새X야?” 하면서 봤더니 마라도나였다고. 마라도나가 가게 2층으로 일행과 여자를 데리고 올라가길래 통역사를 통해 마라도나에게 한번 만나볼 수 있는지 부탁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갤러거 형제만 올라와라’. 남은 멤버들의 부러움을 뒤로 한 채 2층으로 올라갔더니 마라도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페트병 뚜껑으로 리프팅을 하고 있었고(...), 기이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에 얼른 사진만 찍고 튀려는 마음을 먹고 있자니 마라도나가 통역에게 무언가를 말했다고 한다. 갤러거 형제가 통역에게 무슨 말을 한 건지 물어봤더니 “여기 있는 여자들 꼬시면 죽여버리겠어”였다는 모양.

  • 2015년 성형 수술로 인해 얼굴이 바뀌었다. 주름 제거와 입술 보톡스, 턱 성형 등. 남자다운 강인한 이전의 얼굴에서 갑자기 중년 아줌마같은 얼굴이 된 탓에 이후 ‘마마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갑작스러운 성형의 계기는 30살 어린 새 여자친구의 권유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 2018년 여름 29세 연하로 지안니나와 동갑인 아르헨티나의 여자 축구선수 로시오 올리바와 약혼했다. 마라도나가 로시오에게 결혼 반지를 내밀자 로시오의 어머니는 특이하게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에 결별 소식이 떴다. 동거하던 집에서 쫓겨나는 모양새로 헤어지게 됐는데, 심지어 그 집은 마라도나가 올리바에게 선물로 사준 집이었다고.
  • 대두다. 당장 위에 사진만 봐도 키에 비해 엄청난 머리통(...)을 자랑하며 심지어 메시와 같이 선 사진에선 메시가 장신으로 느껴질 정도(...).

7. 마라도나에 대한 말, 말, 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펠레다. 왜냐하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의 이니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누구냐고 물으면 내놓는 답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 잉글랜드전, 신의 손 골 이후 그가 터뜨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보며 아르헨티나 해설자가 외친 말

왜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39]

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해설자.

마라도나는 펠레보다도 뛰어난 천재였습니다.

프란시스코 바라요(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참가 선수 중 최후의 생존자)

...TV 방송사들이 가끔씩 틀어주는 월드컵 회고 영상이나 <축구의 영웅들> 같은 프로그램에 펠레는 단골로 보여지지만 저를 가슴 뛰게 하거나 ‘축구의 유일한 지존’으로 느껴지기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펠레를 정의할 때 '축구 탄생 이후 1970년대까지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축구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1970년대 초반부터 축구를 보기 시작해서 당시 인기있던 서독 분데스리가에 대해서는 박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 축구 매니아였던 저에게 마라도나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뒷통수를 후려친 충격이었습니다. 그것도 오로지 왼발 하나로만... 공이 발에 착착 달라붙는 부드러운 볼터치, 뒷꿈치와 발바닥, 허벅지까지 이용하는 도무지 예측을 할수 없는 패스들, 두세명 사이를 눈깜짝할 사이에 뚫어내는 드리블, 절묘한 휘어차기 프리킥까지, 마라도나의 모든 플레이에 눈을 뗄수 없었습니다. 5만명의 일본 관중들도 마라도나가 볼을 잡을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더군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신동(神童)이란 표현은 저런데 쓰라고 있는거구나.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감동했던 축구 선수들, 이를테면 루메니게, 본호프, 키건, 시몬센, 심지어 크루이프까지도, 마라도나에 비하면 선수도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그 선수들은 재능은 있는지 몰라도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 불행하게도 앞으로의 축구 역사에 마라도나 같은 재능을 가진 선수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신이 특별히 세상에 내려보내는 인간'은 어차피 단 한명뿐이니까요.

송기룡(대한축구협회 홍보실장)원문

1989년 4월,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한 명의 선수가 시합 전에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 모두가 야유를 퍼붓는 와중에 그는 축구화 끈도 제대로 묶지 않은 상태에서 걸으면서 리프팅을 시작, 몸 전체 부분을 사용하며 볼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다루었다. 그것을 본 팬들은 야유를 멈췄다. 야유를 퍼붓다 멈춘 그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이름은 디에고 마라도나. 적의 팬들까지 포로로 잡을 수 있는 천재는 어쩌면 앞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칼 하인츠 빌트(키커 부편집장)

우리는 이미 팀에 뛰어난 선수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가 혼자 우리를 우승까지 끌고 갈 줄은 몰랐습니다. 마라도나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존재만으로도 경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걸로 상대팀은 흔들리죠. 상대팀을 위압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1986년이 그에게 가장 위대했던 해입니다.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증명했던 해였죠. 기술적으로 보면,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였습니다.

펠레는 천재였다. 엄청난 킥 능력을 양 발에 가지고 있었으며 가슴에 용수철이 있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공을 잘 받았다. 망치로 치는 듯한 헤더 슈팅 능력도 가지고 있었고, 먼 거리에서도 득점했다. 필드 위의 코치였으며 전략가이자 해결사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선수였다. 그러나 공을 가지고 하는 일에서만큼은 마라도나가 더 뛰어났고, 그러므로 기술적인 면에서는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라고 본다.

호르헤 발다노(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동료)

지금까지 축구를 40년 넘게 봤지만, 그 마라도나의 골보다 더 뛰어난 골은 보지 못했다. 그때 경기장에 있던 게 특권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냥 놀랐던 기억밖에 없다. 60야드(68미터)나 되는 거리를 돌파하려면 한 번의 터치 실수도 없어야 하는데, 끔찍한 잔디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면서 특출난 잉글랜드 수비수들을 간단하게 따돌리던 모습은 믿을 수가 없었다.

스티브 호지(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미드필더)

마라도나가 우리를 상대로 두번째 골을 넣었을 때는 나조차도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런 기분이 든 건 처음이었다. 마라도나는 단연코 역대 최고의 선수다. 완벽한 천재다.

마라도나는 차원이 다른 주장이자 미드필더였고 엄청난 오라를 내뿜었죠. 저희 세대 선수들은 기억해요. 학생이 된 것처럼 우러러봤죠. 말도 안 될 정도로 오라를 내뿜었잖아요? 다들 수군거렸죠. '마라도나야, 마라도나가 왔어!' 신을 본 것처럼요.

게리 리네커

나와 비교가 되려면 왼발, 오른발, 머리로 다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여야 한다. 나는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본다. 마라도나가 메시보다 낫냐고? 그렇다. 훨씬 낫다. 이뿐만 아니라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또한 훌륭한 선수들이었다.

펠레(브라질 일간지 '폴랴 데 상파울루'와의 인터뷰에서)

'스펙타클'이라고 하면 당연히 마라도나다. 축구공을 그처럼 다룰 수 있는 선수는 동서고금을 통해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토니오 핀코(이탈리아 저널리스트)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펠레도 위대했지만 펠레는 수준급의 팀메이트들이 받쳐주고 있었고 또한 전성기 시절 브라질을 떠나 국외에서 플레이한 경험이 없다는 점도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라던가, 평범한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나폴리 시절이라던가. 마라도나는 거의 혼자 힘으로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오로지 한 사람으로 인해 스타디움을 꽉 메워지게 할 수 있는 선수도 그 이외에는 없다.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세계 정점에 오른 마라도나. 그것과 같은 스피드로 파멸을 향해 내리막 길로 내려간 마라도나. 그저 유감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하비엘 아스칼골타(레알 마드리드 국제스쿨 교장)

바이에른에 살고 있는 나의 오랜 친구들은 모두 펠레의 플레이를 보았고 그가 코스모스와 산투스, 그리고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언제나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을 보았으며 그의 플레이를 좋아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좀 더 어려운 환경에서 플레이했다.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칼하인츠 루메니게

마라도나가 우리 팀에 테스트를 보러 왔을 때, 마라도나는 겨우 여덟 살이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의 재능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본 후 충격을 먹었는데, 고작 8살의 아이가 어른처럼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의 재능이 심상찮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마라도나를 당장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프란시스코 코르네효(마라도나를 발굴한 아르헨티노스 유스 코치)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을 것이다.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 선수들은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생각한다.

디에고 마라도나만큼은 나보다 위. 그는 격이 다르다.

녀석(디에고 마라도나)에겐 선수로서 전혀 대적할 수 없다.

요한 크루이프[40]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지 못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내가 백만 년을 뛰어도 마라도나에게 근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

리오넬 메시

내가 펠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르다. 내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만약 발롱도르가 처음부터 전 세계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나의 발롱도르 3연속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마라도나라면 최소한 5번은 수상했을 것이다

미셸 플라티니

나에게 있어서는 그가 세계 축구 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이고 가장 스펙타클한 선수다. 166cm의 작은 체구로 결코 피지컬적으로는 좋은 조건이 아니었지만 마라도나는 신(神)이 선사한 특별한 왼발을 갖고 몇 차례나 기적을 일구어 냈다. 우수한 탤런트들이 모여 있었다고는 할 수 없는 나폴리를 이태리 리그 챔피언 자리에 올려 놓았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도 거의 그 혼자의 개인기로 이룬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쉽지만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향수(享受)하는 기쁨은 약물 복용에 의해서 돌연 빼앗기고 말았다. 단 그것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그 연령(33세)을 생각하면 그의 기술은 특출했으니까.

프란시스코 아기랄(스페인 엘 문도 부편집장)

나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것은 실례다.

난 마라도나가 메시보다 더 경쟁력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믿는다. 그는 언제나 맨마킹을 당한 채 플레이했다. 마라도나는 팀에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메시도 마찬가지다. 단,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도 크게 공헌했다.

지쿠

진짜 거짓말 아니고, 나는 곰 새끼가 지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사람이 아니더라고.

마라도나를 상대한 어느 국내 축구인의 회고[41]

두 골 먹고 나니 갑자기 '광래 준비! 광래 준비!' 하면서 급히 부르시는 거라. 속으로 '전반전은 버티겠지' 했는데, 골 연거푸 먹으면서 급해지신 거지. 다른 선수들 웜업 시작도 안 했는데, 나만 급하게 숨 올려서 들어간 거예요. 원래 훈련할 때는 내가 선발로 뛰기로 돼 있었어요. 주전으로 계속 뛰던 때니까. 그런데 마라도나라는 존재가 워낙 특별하다 보니 김평석을 먼저 마킹시켰죠. 당시 마라도나는 메시 이상의 폭발력이 있었어요. 우리 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맨투맨으로 마라도나를 못 잡았으니까.

조광래

메시도 너무나 득점을 잘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지만 메시가 기술적으로 아주 두드러지는 선수인 반면, 마라도나가 좀 더 잡기 힘든 선수가 아닌가 생각해요. 파워, 스피드, 기술이 아주 특출난 선수였어요. 키가 작은 마라도나가 상대가 아무리 마크해도 뚫고 나가는, 한 마디로 힘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박창선

그때 마라도나를 본 한국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17분 동안 마라도나가 만들어낸 게 차원이 달랐으니까요. 순식간에 3~4골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교를 하자면 '가장 좋은 날의 메시' 정도로 보고 싶어요. 물론 전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메시가 어떤 선수인지 알고, 어떻게 뛸지도 예상을 해요. 하지만 그때는 마라도나를 처음 겪었어요. 자주 볼 수 있는 선수도 아니었고. '가장 좋은 날의 메시'란 알고도 못 막는 놀라운 유형을 가리키는 건데, 마라도나가 당시 그랬어요. 준비가 안 돼 있었으니 충격은 더 컸죠.

한준희

월드컵만 보면 최전성기였던 마라도나가 더 낫죠. 월드컵에서 6명을 제끼고 골 넣고 파울이 아니면 막지를 못하던 게 전성기 마라도나였어요.[42]

마라도나는 1986년 대회 때가 최전성기였다. 상대해 본 선수 중 최고의 공격수였다. 수비수 두세명은 순식간에 따돌렸다. 워낙 개인기가 특출나다 보니 마크가 쉽지 않았다. 태클을 하지 않으면 정말 막기 힘들었다. 당시 태권수비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정당한 마크였다. 무리한 수비였다면 당연히 퇴장을 당했을 것이다.

타임지 표지에 실리면서 유명해졌죠. 그걸 잘 보면 볼이 무릎 부분에 있었어요. 그걸 걷어낸 것으로 고의적인 파울은 아니었어요. 주심도 경고를 안 줬고요. 개인적으로 참 운이 좋아 요한 크루이프, 베켄바우어와 운동장에서 다 맞붙어봤어요. 그런데 마라도나는 솔직히 어떤 한 선수가 마크하는 게 불가능한 선수였어요. 상대방 중심을 역이용할 줄 알았고, 터치나 그런 게 정말 남달랐죠.

허정무

지금 룰이었으면 서너 명은 퇴장당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그렇게라도 버텨야 했어요. 난 당시 수비에 서서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정면에서 생생히 봤어요. 이야, 저 정도 갖다 받으면 부러졌겠다 싶었지. 그런데 태클을 피할 때 몸 중심을 살짝 띄우더라고. 그걸 어려서부터 접해왔던 선수다 보니 상대가 들어올 타이밍을 다 알고 충격을 완화하더만.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게 무슨 종아리가 우리 허벅지만 한 거야. 나도 한 허벅지 했는데. 가만 보니 정강이 보호대를 앞뒤로 했더라고. 얼마나 견제가 심했으면 저렇게까지 했나 싶었지.

조민국

플라티니가 잘한다 잘한다 했어도, 마라도나는 펠레 이후 처음으로 나온 차원이 다른 선수였어요. 갖고 있는 기술부터 천부적이었죠. 나도 당시 유럽에 같이 있었으니 마라도나를 자주 접했거든. 사실 나폴리에서도 나를 원했었는데. 그때 레버쿠젠으로 선회했더니 그 다음에 마라도나가 나폴리로 떡 하니 가 있더라고. 마라도나는 예견대로 특별한 선수였어요. 연습장에서부터 난리가 났죠. 훈련에만 6만 관중이 들어찼다는 얘기가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서 퍼졌어요.

차범근

허정무 선배가 그때 몸이 아주 좋았어요. 근성도 있었고. 하물며 별명도 진돗개 아니야.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부딪혔으면 일어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마라도나는 진짜. '악' 소리 지르면서 쓰러지는데, 무슨 곰 한 마리가 누워있는 것 같더라고. 저런 몸을 갖고도 어떻게 그렇게 민첩할까 싶었죠. 후반 20분경부터 이 선수를 마크했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그 옆에 딱 붙어서는 일부러 호흡 참고 그랬다니까요. 그것도 고지대에서 말야. 정말 죽는 줄 알았지. 볼이 반대편으로 가면 그제야 참았던 숨 몰아쉬고요. 왜 그랬냐고요? 힘든 거 들키면 걔가 더 기 살아서 날뛸까봐.

박경훈

혼자의 힘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의 플레이어. 오락성 면으로 보자면 헝가리의 전설 페렌츠 푸스카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대한 7번” 보비 찰튼, 천재 조지 베스트, 그리고 네덜란드의 영웅 요한 크루이프조차도 마라도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준준결승전. 하프라인 근방에서 드리블을 개시, DF라인을 뚫고 골네트를 가른 그 장면. 마라도나가 5명을 제친 그 장면은 틀림없는 ‘구극(究極)의 스펙타클’이었다.

롭 셰퍼드(잉글랜드 저널리스트)

압박 축구를 고안해 낸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서이다.

메시는 현세대 최고 선수지만 나는 마라도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자신이 있던 모든 장소에서 차이를 만들어 냈다

오렌지 삼총사3 각기 실력을 발휘하고 나서 그와 처음 동등해진다.

로베르토 바조,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 프랑코 바레시 등등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판바스턴이 내가 맡은 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이다. 그리고 지금껏 봐 온 선수 중에서 가장 대단했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그는 위대한 선수였다.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그는 나폴리이 되어 있었다. 두 명의 디에고 마라도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오렌지 삼총사를 부른 것은, 한 명의 선수로 팀의 승패를 좌우 할 수 있는것은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펠레가 여러차례 월드컵 제패를 이룩함과 동시에 축구의 범대중화를 이끌며 축구계에 첫번째 혁명을, 요한 크루이프토탈 풋볼로서 전술적인 혁신을 일으키며 두번째 혁명을, 지단이 각 대륙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아트 풋볼로서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보이며 세번째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라도나는 경기장에 선 그 자체가 혁명이었다.

아리고 사키

나는 천재가 아니다. 천재라는 것은 아마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선수의 그것을 가리키겠지.

마르코 판바스턴

내가 맞닥뜨린 최고의 선수였다. 그는 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실상 상대할 수 없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앨런 한센

리오넬 메시는 그의 발끝에서 마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 책에서는 그는 세계적으로 보여준 면에서는 최고가 아니다. 그 영광은 디에고 마라도나로 가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펠레가 더 많은 골을 넣었고, 메시가 더 많은 우승을 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마라도나를 탑에서 끌어내리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마라도나는 본능적인 강력함과 천재적인 폭발력을 지녔다. 심지어 그는 코카인, 총격, 여자, 상해 등을 포함한 두드러지는 논란거리들 후에 궁극적으로는 자기 파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는 기술과 득점력 관점에서는 뒤에 있지 않지만, 최종적인 분석에서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는 역대 최고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의 커리어가 아직 축구적으로 역대 최고가 되기에는 마라도나를 배제할 만큼의 규정짓는 그런 류의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5골 5어시스트 및 절대적이고 경이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폭풍을 일으키며 토너먼트를 지배하면서 결국 아르헨티나에 월드컵 우승을 가져왔다. 아마 우리는 이번 여름 월드컵에서 메시로부터 같은 걸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바르셀로나 스타로부터 그런 종류의 영향력을 월드 스테이지에서 볼 때까지는 진짜 논쟁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나를 믿지 못한다면, 메시 스스로 마라도나에 대해 말한 걸 들어보라. "비록 수백만년을 플레이해도, 나는 마라도나에 근접할 수 없을 것이다" 메시는 이미 이렇게 말했었다. "He's the greatest there's ever been."

스티브 베이츠(데일리 미러 기자)

유벤투스호날두 때문에 강해질까? 한 선수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우승할 수는 없지. 심지어 세계 최고의 선수라 할지라도 말이야. 만약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아니라면, 혼자서는 그 어떤 것도 우승할 수는 없어.

마렉 함식

Q: 당신이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는?

A: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 퍼디난드

그를 마크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을거야.

파올로 말디니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디에고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

그와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마라도나가 페널티 지점에서 볼을 차서 크로스바에 맞추고, 튕겨나온 볼을 다시 크로스바에 맞추면서 놀고 있던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나로선 해낼 도리가 없다.

지네딘 지단

축구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경기를 승리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그것이 가능한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안드리 솁첸코

펠레도 버리기 쉽지 않지만 역시 이 사나이가 아닐까. 그처럼 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선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센트 듀르크(프랑스 축구 저널리스트)

마라도나처럼 축구를 할 수 있는 선수를 저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프리킥 실력이 그의 발 밑 정도에 근접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지안프랑코 졸라

메시는 현세대 최고의 선수지만 마라도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이 전에도 이후에도 마라도나에 비견할 선수는 찾을 수 없다. 마라도나보다 우위에 있는건 펠레겠지.

클라우디오 카니자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에 생각할 수 없다. 볼을 가진 그는 우리들의 상상을 훨씬 더 초월하는 마술을 피력했다. 변화무쌍한 드리블로 DF를 제치고, 믿을 수 없는 패스를 하고, 화려한 골을 터뜨렸다. 마법의 그 왼발 앞에서는 펠레요한 크루이프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거의 혼자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수있는 것도 마라도나 뿐. 유일무이, 축구 사상 가장 빛나는 "금자탑”이다.

에드윈 스트라우스(네덜란드 저널리스트)

내가 마라도나에 근접했다고? 그의 수준에 다가갔다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같은 비교를 넘어선 지평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다. 그는 축구 그 자체이다.

메시는 마라도나를 잡지 못한다. 내게 있어 마라도나는 최고였다. 마라도나는 축구를 넘어 아르헨티나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는 우리들에게 나타난 제대로 된 최초의 선수다. 마라도나는 월드컵에서 우승한 카리스마가 있으며 드문 재능과 상상력을 가졌다.

메시는 기술적으로 마라도나와 같거나 더 뛰어나지만, 필적할 수 없다. 메시에게는 마라도나의 카리스마가 없다. 마라도나는 경기장을 지휘할 수 있었고, 모두가 그를 지켜볼 수 있게 했다. 나는 마라도나와 경기를 해봤기 때문에, 그가 팀에 어떠한 존재였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비록 내가 마라도나의 생활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나에게 마라도나는 가장 위대한 선수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내 생각에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개인적이면서도 월드컵에서 승리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유였다. 왜냐면 단지 좋은 팀을 거의 혼자만의 능력으로 가장 위대한 경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난 호날두를 그 다음으로 놓겠다. 왜냐면 그가 최고일 때는 unstoppable. Just incredible이기 때문에. 만약 메시 위에 호날두를 놓는다면 당신들은 그걸 소수로 치부할 테지만, 뭐 다른 것도 좋다. 그리고 그 다음이 리오넬 메시다. 어메이징한 플레이어고 올타임 베스트 중 한명이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베스트는 아니다. 나는 이 3명을 피부로 직접 체감했고, 마라도나는 이 중에서도 다른 레벨에 올라있다. 내 관점에서는, 펠레와 현대선수들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왜냐면 그때 축구는 너무나 다르니까. 펠레는 그의 시대에서 최고다.

존 크로스(데일리 미러 기자)

1위 펠레, 2위 마라도나, 3위 크루이프, 4위 메시, 그리고 그와 동급인 디 스테파노

알피오 바실레 감독 (유일하게 메시와 마라도나 모두 지도해본 감독, 최고의 선수들 뽑으라는 질문에)

웃긴일이죠. 메시는 최고지만, 월드컵에서 우승한 적이 없습니다. 다른 시대의 선수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예요. 저는 1978년, 마라도나는 1986년에 우승했고 메시는 그러지 못했어요. 이게 현재 상황입니다.

마리오 켐페스

내게는 메시보다는 마라도나가 더 뛰어난 선수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물론 우리는 메시에게 그 이상을 바라기는 하지만, 그는 마라도나가 아니고 혼자서 월드컵 우승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에르난 크레스포

내가 브라질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우상은 디에고다. 물론 펠레도 늘 영웅이었지만, 나는 디에고의 플레이에 언제나 경악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

우리는 메시가 마라도나와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해왔으나, 아마 그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 마라도나는 (누구도)도달할 수 없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마라도나와 메시는 천재성, 플레이면에서 비슷합니다. 차이점은 마라도나 때는 옐로카드를 받기 전까지 60번의 파울도 가능했지만, 메시가 뛰는 지금은 그렇게 했다간 가차 없이 바로 옐로카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축구 역사상 3대 영웅은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입니다. 크루이프는 네덜란드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네덜란드와 세계 축구를 변화시킨 매우 특별한 선수였습니다. 메시가 펠레·마라도나·크루이프 수준에 도달하려면 월드컵에서 우승해야 합니다.

카를로스 빌라르도 감독 (1986년, 1990년 아르헨티나의 우승, 준우승을 이끈 감독)

난 축구 역사상 3번째로 뛰어난 선수다. 1위와 2위는 당연히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다.

나와 로베르토 바조스타이긴 하지만, 슈퍼스타의 존재는 아니다. 현대 축구에서 슈퍼스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호마리우

메시는 아직 펠레나 마라도나의 체급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디디에 드록바

마라도나는 유일무이합니다. 그는 역사상 최고입니다. 그의 워밍업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그는 자기 앞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했습니다.

후안 로만 리켈메

디에고 마라도나는 마르코 판바스턴보다 위다. 그가 지금의 시대에서 활약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디에고 마라도나에게는 언제나 당하고 있었다. 당시의 그는 최고로 빛나고 있었다. 최근의 은퇴시합의 그를 보면서 왠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프랑코 바레시

(당신이 대전했던 선수중 누가 가장 대단했나? 라는 질문에) 가장 대단했던것은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그는 특별하다. 그 다음은 마르코 판바스턴. 그리고 조금 더 내려와서 미셸 플라티니다.

로타어 마테우스

나는 1986년의 디에고 마라도나보다 더 뛰어난 개인 퍼포먼스를 전혀 본 적이 없다. 그때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 월드컵에서 우승을 실천해냈다. 메시는 지금 세대에서 베스트 플레이어지만, 내게 있어 그가 마라도나와 같은 레벨로 판단되기 위해서는 메시는 아르헨티나를 월드컵의 영광으로 이끄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아직 메시는 첼시전 8경기 무득점이다...[43]

닐 맥레만(데일리 미러 기자)

옛날, 바르셀로나 시절의 호나우두가 5, 6인을 제치고 득점하는 것을 보았다. 방금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는 경이적이었다. 호마리우도 발군이었지만,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가 본 중 최고였지. 초일류의 선수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조금의 차이로 2위다 (웃음).

바비 롭슨

나의 커리어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만큼 대단한 선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두 눈을 볼에 고정시키지 않고도 룰렛이나 라보나 킥 같은 고난이도 기술을 사용했고, 두 눈으로는 그를 향해 날아오는 백태클을 피하는데에 사용했다. 그 다음은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두. 그는 마라도나와 근접해있었다. 대단한 기백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호나우지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파올로 말디니

(연습 도중 안토니오 카사노에게) 백힐 패스를 계속하지 마라. 너는 마라도나가 아냐.

파비오 카펠로

메시는 그의 시대에서는 최고이나 역사상 최고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호나우두가 있기 때문 입니다.

호나우지뉴

역대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1986년1990년 월드컵을 보며 그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도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이 뛰어난 선수가 있지만, 내가 본 마라도나의 플레이는 축구 역사 전체에서도 없는 것이었다.

라이언 긱스

나는 1987년에 웸블리에서 열린 영국 1부 리그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 경기에 참여했었어. 엄청 스타들이 많았지. 지쿠, 플라티니, 푸트레, 마라도나까지. 우리 모두 몸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라도나가 끈이 풀린 축구화를 신더니 볼을 몇 번 툭툭 차다가 있는 힘껏 차올리는거야. 그리고는 공이 떨어지면 또 있는 힘껏 차올리고, 있는 힘껏 차올리고...이걸 12번 반복하더라...진짜 엄청났어. 옆을 보니까 플라티니가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고 있더라. 정말 믿기지가 않더라니까.'

게리 리네커 (2007년 12월호 포포투 인터뷰)

마라도나의 환상적인 기술을 보면 나 자신이 너무 작아졌다. 훈련장에서도 그런 기술들은 본 적이 없었다. 동료들이 본 걸 관중들이 못 봤다는 게 아까울 정도다.

프란체스코 로마노(SSC 나폴리 팀 동료)

나는 메시를 좋아한다. 내 아들이 메시 능력의 1%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마라도나는 독보적이다.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선수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메시가 세 번 연속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하거나 중앙선에서 오버헤드 킥으로 골을 터트려도 마라도나를 넘을 수는 없다.

엑토르 엔리케(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동료)

전성기의 에우제비우펠레의 플레이는 유감스럽게도 직접 체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낳은 천재와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을 주신 신에게 감사하고 싶다. 디에고 마라도나야 말로 스펙타클이고 완전무결이었다. 나폴리에게 두 번의 스쿠데토와 UEFA컵 우승을 안겨주고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마라도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안토니오 마가레야스(포르투갈 저널리스트)

마라도나랑 메시 중 누가 더 잘하냐고? 당연히 마라도나지.

알레한드로 고메스

물론 메시는 센세이셔널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더 천재적이고 극적인 마라도나가 더 뛰어납니다.

카레카 (나폴리 시절 마라도나 동료)

저에게는 과거에나 현재에도 모두 최고입니다. 당신이 메시와 호날두에 대해 이야기하면 난 이렇게 대답합니다. 메시와 호날두는 드리블을 할 수 있지만 마라도나는 드리블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상대 수비수들을 이겨내기 위해 점프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마라도나의 다리를 부러뜨렸죠. 실제로 빌바오의 도살자, 안도니 고이코체아는 마라도나의 발목을 부러뜨렸습니다. 그때 공격수들은 규칙으로 보호받지 못했고, 심판은 저같은 선수들이 완전히 박살나야만 파울을 불었습니다. 운좋게도 오늘날은 다릅니다. 메시와 호날두는 이들을 위해 뛰어줄 팀이 있고, 메시와 호날두는 이 조립 라인에 놀라운 마지막 퍼즐입니다. 밤면 마라도나는 혼자였고, 그는 상대 수비수들의 먹잇감이었죠. 만약 당신이 마라도나를 쓰러뜨렸다면 그 자체로 영광스러운 뱃지를 단 것입니다.

루드 굴리트

볼을 취급하는 컨트롤 기술에선, 내가 처음 본 완벽한 선수였다. 마라도나가 볼을 컨트롤 하면서 달릴 때, 혹은 디펜스를 드리블로 제껴나갈 때, 그것은 마치 볼을 다리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었지. 그건 첫 합동훈련 때였을 거야. 그가 처음으로 볼을 만진 순간 주위의 선수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든 선수의 눈이 마라도나의 발밑에 고정되어 있었지. 왜냐고? 그가 펼치는 다양한 테크닉을 실제로 처음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런 선수는 두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야

로보 카라스코(FC 바르셀로나 시절의 동료)

나는 지쿠, 플라티니, 마라도나와 팀메이트였지만, 최고의 선수는이라고 질문받으면 예외없이 마라도나라고 대답한다. 그는 미팅시 10분 20분 내키는 대로 오렌지레몬으로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마씨모 마우로(나폴리 시절의 동료)

지네딘 지단은 세계에서 탑5에 들어가는 대단한 GIOCATORE이지만,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른 판타지스타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일한 존재. 지단이 멈춰서서 하는 플레이를 그는 톱 스피드에서 정확히 해치워 버린다. 당시 나폴리의 연습에서는 많은 매스컴들이 보러 왔었는데, 거기에서 코치가 마라도나를 향해 강렬히 슛팅한 볼을 그는 어깨로 트래핑, 머리 위로 올려서 반대 어깨로 코치에게 돌려 보냈다. 믿어지나? 이런 광경을 마치 일상다반사처럼 볼 수 있었다

치로 페라라(SSC 나폴리 시절의 동료)

모두가 알다시피 발롱도르는 오직 유럽 선수들에게만 수여하는 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난 10년간 누가 진정한 넘버원이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업적을 기리고자 특별한 발롱도르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는 이 시대 축구의 이다

드니 쇼미에르(프랑스 풋볼 편집장)

8. 어록

나는 수많은 잘못을 했지만 축구를 더럽히진 않았다.

그러면 감독님은 그것을 잘라야겠군요. 자위를 안 해봤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카를로스 빌라르도 대표팀 감독이 자꾸 머리를 만져서 연습을 못할거면 머리를 잘라라라고 이야기했을 때 되받아친 말.

그 때 공을 강타한 것은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 잉글랜드전에서 손으로 슛을 넣은 직후.

나폴리의 국민들이여, 북녘의 주적[44]을 응원하지 말고 나폴리의 진정한 우방인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다오.[45]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4강 이탈리아전에서 관중석에다 대고 외친 말.

유럽 선수들은 대개 공을 제압하여 통제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하지만 나는 공을 친구로 대한다. 경기 중에 내 친구가 어디로 가든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둔다.

펠레가 나이를 너무 먹어서 노망이 들었나보다.

펠레네이마르리오넬 메시보다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자.[46]

우리 엄마는 내가 제일 뛰어나다고 하신다. 근데 펠레의 어머니는 펠레가 더 뛰어나다고 하시겠지?

차라리 내가 감독을 해보겠다. 비엘사 녀석 너무 못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 탈락하자 한 말. 근데 정작 감독을 잡고보니 비엘사가 명장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마라도나는 8강 갔는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XX놈(...)들을 제외한 모든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나와 대표팀을 믿지 못하는 기자와 언론 사람들은 X이나 XXX!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미 지역예선을 힘겹게 통과한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했던 발언. 실제로 마라도나는 이 발언으로 인해 징계를 먹고 조추첨에 참가하지 못했다.

마치 무하마드 알리의 펀치에 얻어맞은 기분이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8강 독일전에서 0-4로 대패를 당한 직후.

이 낙지놈, 나는 네가 죽어서 기쁘다. 월드컵에서 진 것도 다 너 때문이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독일전의 참패를 점친 문어 파울이 죽자 트위터에 올린 글.

브라질은 별로다. 그렇다고 독일이 잘한 것도 아니다. 독일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중반이란 없었으며, 다비드 루이스의 호흡도 전혀 안 맞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브라질이 한 거라고는 롱슛밖에 못한 것이 전부라는 점이다.

미네이랑의 비극 직후 인터뷰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르난 크레스포? 그 두놈 자식들은 골방에 가둔 뒤 한쪽이 사망할 때까지 서로에게 펀치를 날리게 해야 한다.

ㅡ아르헨티나 국대에서 두 사람의 갈등에 대해 한마디.

지난번에 디 마리아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 봤는데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고 대답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월드컵 우승이 아니라 말이다. 이딴게 얘들의 마인드다.

미국은 25분마다 TV광고를 하길 원할 것이고, 4번씩 나눠 100분을 뛰기를 바랄 것

미국·캐나다·멕시코 북중미 3개국에서 2026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것에 대해 한마디

캐나다 사람 중에서는 틀림없이 좋은 스키어들이 많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북중미 3개국에서 2026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것에 대해 한마디

9. 기록

9.1. 대회 기록

9.2. 개인 수상

  • FIFA 월드컵 골든볼: 1986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90
  • FIFA 월드컵 실버슈: 1986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86, 1990
  • FIFA 월드컵 도움왕: 1986
  • FIFA 월드컵 역대 베스트 XI: 1994
  • FIFA 월드컵 역대 드림팀: 2002
  •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골든볼: 1979
  •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실버슈: 1979
  • 세리에 A 득점왕: 1987-88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1978 전기리그, 1979 전기 · 후기리그, 1980 전기 · 후기리그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1987-88
  •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선수: 1979, 1980
  •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 1985
  • 옹즈도르: 1986, 1987
  • 옹즈드브롱즈: 1985, 1988
  • 구에린도르: 1985
  •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해의 선수: 1979, 1986
  • UNICEF 유럽 올해의 선수: 1989-90
  • 레키프 챔피언 중의 챔피언: 1986
  • 올림피아 데 오로: 1979, 1986
  • 월드 사커 월드 베스트 XI: 1984, 1987
  • 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2013
  • FIFA 100: 2004
  • FIFA 20세기 최고의 선수[49]: 2000
  • FIFA 20세기 최고의 골: 2002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 전)
  • 발롱도르 명예상: 1996
  • 골든풋: 2003
  • 올해의 유나이티드 프레스 국제선수상: 1986
  • 월드 사커 20세기 최고의 선수 100인: 1999
  • 마르카 레전드: 1999
  • IFFHS 레전드: 2016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4
  •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XI: 2015
  • 문도 데포르티보 바르셀로나 역대 베스트 XI: 2007[50]

9.3. 경기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76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1

2

0

0

0

0

1977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9

19

0

0

0

0

1978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5

26

0

0

0

0

1979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6

26

0

0

0

0

1980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5

43

0

0

0

0

1981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0

28

0

0

0

0

1982/83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리가

20

11

5

3

4

5

1983/84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리가

16

11

4

1

3

3

1984/85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4

6

3

-

-

1985/86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1

2

2

-

-

1986/87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9

10

10

7

2

0

1987/88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8

15

9

6

2

0

1988/89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6

9

12

7

12

3

1989/90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28

16

3

2

5

0

1990/91

SSC 나폴리

이탈리아 세리에 A

18

6

3

2

4

2

1992/93

세비야 FC

스페인 라 리가

26

5

3

3

-

-

1993/94

뉴웰스 올드 보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

0

0

0

0

0

1994/95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4

5

0

0

0

0

1995/96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

0

0

0

0

0

1996/97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

2

0

0

0

0


  1. [1] 카레카,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공동수상
  2. [2] 이 부분이 마라도나와 메시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는 타고난 낮은 체력의 약점 및 활동량과 미드필더 능력으로서는 지나치게 공격일변도라서 템포와 페이스 조절 등에서는 약점이 있다. 이 때문에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보다 보다 더 리딩과 후방 개입이 많은 아르헨티나에서는 동료들의 움직임과 속도를 살려주고 맞춰주는 플레이에서는 아쉬운 면이 많았고, 일정상 가혹하고 열악한 환경과 체력과 멘탈의 극대화가 요구되는 단기전의 악재들이 겹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마라도나는 탁월한 체력과 강인한 승부근성 및 미드필더 사령관으로서의 능수능란한 경기 페이스 조절능력까지 겸비해서 동료들의 움직임에 맞춰서 퍼포먼스를 살려주는 것은 물론 마라도나 본인도 개인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3. [3] 세리에 A에서의 7시즌 중 5시즌 동안 득점 4위 안에 들어갔고, 1987-88 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했다.
  4. [4] 단,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1994년 월드컵에서는 약물 복용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5. [5] 요한 크루이프AFC 아약스, 밀란 제너레이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레알 마드리드 CF도 있고 메시와 시기를 같이 한 지네딘 지단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CF와는 21세기를 양분하였지만, 2010년대 초반의 '최강 바르사'로 불리던 시절도 단연 최강 후보로 꼽힌다.
  6. [6] 저 중 오르테가가 포지션이나 플레이 스타일 면에서 그나마 비슷했다고 평가받는다.
  7. [7] 후술하겠지만, 메시와 마라도나 역시 포지션과 스타일이 다른 건 마찬가지다.
  8. [8] 두 선수의 축구실력을 떠나서, 이 월드컵 우승이 아직까지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마라도나를 메시 이상으로 환호하게 만드는 하이라이트이다. 마라도나가 월드컵 준우승에 그쳤다면 아마 둘의 평가는 이미 갈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당시 그저그런팀인 아르헨티나를 우승까지 떠먹인 마라도나가 어마어마한 선수였다는 말도 된다.
  9. [9] 물론 마라도나의 국가대표팀이 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나, 지금의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만큼 당대 최고의 공격진을 보유한 대표팀도 아니였다.
  10. [10] 메시도 왼발 편향적이지만, 슈팅만큼은 오른발로도 제법 찬다.
  11. [11] 게다가 독감증상까지 있었다.
  12. [12] 룰이 개정되기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학교 축구에서도 골키퍼가 엎어지면서 백패스 잡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13. [13] 공교롭게도 마라도나, 플라티니, 지쿠는 FIFA 회장선거에 출마했다.모든 것은 펠레에게 달렸다
  14. [14] 마라도나는 나폴리, 마테우스는 인터밀란
  15. [15] 6명 전부 전성기 시절 세리에 A에서 뛰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굴리트는 지쿠, 플라티니와 같은 세대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리그에서 부딪힌적이 단 한번도 없다. 사실 플라티니와 마주칠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헤이젤 참사 때 큰 충격을 받은 플라티니가 축구에 열정을 잃어버려 조기 은퇴한다. 훗날 인터뷰에서 헤이젤 참사 이후 축구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렸다고...마라도나의 맞수로 치는 선수는 세리에 A에서 피터지게 우승경쟁을 했던 루드 굴리트...라는 건 딱 1987-88 딱 1시즌 이야기. 게다가 굴리트는 이후 부상으로 전성기가 끝났다.
  16. [16] 그러나 마라도나가 만 19세, 20세의 나이로 지쿠를 제치고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 당시의 마라도나가 이미 더 뛰어난 선수라고 보는 시각도 많았으니 흠좀무...
  17. [17] 대단한건 당시 비교되던 선수 중 마테우스는 역대 최고의 수미, 굴리트는 역대 최고 올라운더, 판바스턴은 역대 스트라이커 한손 안에 드는 초특급 선수로 아직까지도 최상위반열에 있는 선수들이며, 이들 사이에서도 마라도나는 돋보이게 빛난던 선수였던 것
  18. [18] 에페드린 자체를 복용하는 것은 감기약 처방을 받았다고 둘러댈 수 있는데, 에페드린을 과하게 복용하면 아드레날린을 증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19. [19] FIFA의 ​​집행위원회 위원이자 벨기에 출신 의사.
  20. [20] Maradona must have taken a cocktail of drugs because the five identified substances are not found in one medicine.
  21. [21] 당시 3,800만 유로를 체납했다. 한화 기준으로 521억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22. [22] 2009년에는 귀걸이를 빼앗겼다. 경매로 넘어간 귀걸이는 최종적으로 이탈리아/팔레르모 소속의 파브리치오 미콜리에게 한화 4500만원 가량에 낙찰되었다. 미콜리 본인은 귀걸이를 돌려주고 싶다며 마라도나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마라도나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지금은 가끔 미콜리가 하고 다니는 듯. 경기 중에도 마라도나의 귀걸이를 하고 나오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23. [23] 이부분은 사실 메시의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라 나름대로 수긍받고 있다. 라이벌인 호날두가 경기장내에서 적잖은 승부욕으로 과민반응, 선수 폭행, 동료와의 불화설 등이 일어나긴 해도 그만큼 강력하게 선수들을 이끄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반면, 메시는 좋게 표현하자면 외유내강적인 모습이긴하나 팀을 강하게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말 그대로 실력으로 조용히 따라오게 하는 모습은 보여주지만, 리더로서 팀을 규합시켜 이끄는 역할에는 확실히 부족한 편이라는게 중론. 성격이 내성적이라 그런지 경기장내에서 소리치며 선수를 이끄는 경우가 매우 적다.
  24. [24] 도라도스는 홈에서 맞이한 지난 1차전에서 1-0으로 이겼지만, 마라도나는 퇴장을 당하며 이번 2차전을 관중석에서 봐야 했다.
  25. [25] 시리아 출신 아랍계 이주민으로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대처리즘적인 정책을 시행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익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국 주요 언론사에서 이부분은 꼭 빼먹는다 물론 임기 후반기에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26. [26] 페론당의 분파로 2000년대 초반 페론당이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창당된 정당이다.
  27. [27] 다만 2013년 취임식에는 참석하기는 했다.
  28. [28] 사실 제헌의회 구성 자체는 일단 베네수엘라 헌법으로 규정되어있기는 하기는 하기때문에 불법은 아니고 대통령도 제헌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못하는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지만, 1년 반 넘게 여소야대인 의회와 거칠게 대립하고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1990년대 말에 처음 제헌의회를 구성했을때 1998년 대선을 한달 앞둔 시기에 선거를 치른 기존 국회를 무력화시킨 채로 개헌안을 통과시킨 전적이 있다보니, 임기보장이나 정권연장을 위한 면피책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사고있고 실제로도 제헌의회 구상발표 이후로 오히려 시위 사망자수가 불어나는 등 오히려 혼란상은 극심해졌다.(...) 어쨌든 이러한 혼란상속에서 꾸억꾸억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서 야권의 선거 보이콧과 미국, 유럽의회, EU의 반대속에서도 투표율이 40%초반으로 예상보다 크게 나오기는 했는데 이것도 뒷말이 많이 나오는데다가 기존 국회가 제헌의회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스탠스를 여전히 보이고 있고, 제헌의회 의원들도 기존 야권이 보이콧한 관계로 마두로 지지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 기때문에 사실상 의회가 두 개 있는 시스템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헌의회가 해산될 때까지 혼란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29. [29] 다만 아주 음모론까지는 아닌게 미국 행정부나 주요 정당들 내에서 남미 좌파정권들을 손을 봐야한다는 의원들이나 공직자들이 꽤 있기도 한데다가,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중남미에서 우파정당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식의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30. [30] 여기서 말하는기독교는 당연 가톨릭이다.
  31. [31] 그러나 이것 역시 파파라치나 기자들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 중의 하나이다. 당장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가 어떻게 죽었나를 보면 답은 뻔하다.
  32. [32] 펠레는 저주로 유명해서 그렇지 인터뷰는 립서비스를 많이 곁들여서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그리고 애시당초 펠레의 저주 자체도 펠레의 엄청난 유명세와 립서비스가 결합되어 나온 만들어낸 속설이다.
  33. [33] 참고로 마라도나는 월드컵 역사상 주장 완장을 가장 오래 착용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34. [34] 2010년 월드컵 당시 이미 2승을 거둬서 여유있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하게 되자 마라도나는 메시를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게 메시의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35. [35] 나이젤 더용, 가레스 배리, 야야 투레
  36. [36] 유럽의 파파라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대표적인 피해자 다이애나 스펜서 전 영국 왕세자비가 파파라치를 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치명상을 입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파파라치들은 다이애나를 구조하지 않고 그녀의 죽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대기만 했으며 20분간 방치됐던 다이애나는 뒤늦게 현장을 발견한 시민의 신고로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고 사망하고 말았다. 만약 그들 중 단 한명이라도 그녀를 위한 신고를 해줬다면 그녀의 목숨이 그렇게 허무하게 날라가지 않았을것이다. 허나 그들은 모두 사진과 돈에 자신의 양심과 인간성을 팔았고 그들의 치부는 다이애나의 죽음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이러한 파파라치의 인식을 생각하면 마라도나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37. [37] 스페인어 사용지역의 정식 이름은 1st name- 2nd name - 아버지쪽 성 - 어머니쪽 성 방식을 따른다.
  38. [38] 말디니는 현역 시절에 지능수비로 유명했었다. 마라도나가 고전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말디니 또한 마라도나를 현역 시절 가장 막기 힘들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39. [39] 월드컵 당시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 감정이 전혀 좋을 리가 없는 잉글랜드 사람인데도 마라도나를 최고라고 치켜세우면서 인정했으니 할 말은 다한 셈이다.
  40. [40] 요한 크루이프축구에 대한 이해도는 역사상 따라올 사람이 없고,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마인드로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예외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41. [41] 출처
  42. [42] 2010년 8월 무릎팍도사에서 메시의 실력이 마라도나의 전성기를 뛰어넘는 정도?라는 질문에
  43. [43] 챔피언스 리그 첼시전 직전의 기사
  44. [44] 이탈리아는 남북간 갈등이 심하다. 참고로 이탈리아 북부는 남부에 비해 잘산다.
  45. [45]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19-20세기 걸쳐 엄청나게 많은 수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갔고, 아르헨티나도 이런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주 이민국 중 하나였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워낙 이탈리아계 성씨가 많은 이유.
  46. [46] 노망 이야기는 좀 심하지만 펠레의 발언이 개드립 수준의 망언임은 악성 호날두 팬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2019년 기준 현재의 네이마르면 또 몰라도 저 당시 네이마르는 유럽 리그에서 딱히 보여준 것도 없는 유망주에 불과했는데, 유럽에서 미친 활약을 보이던 리오넬 메시와 비교하는 것도 모자라 더 낫다고 할 정도이니 라이벌 국가 브라질 국민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였고, 마라도나 발언의 의도 역시 이러한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7. [47] 1982년부터 86년까지 존재했던 라리가 리그컵
  48. [48] 1985년과 1993년에 열렸던 유로 우승자와 코파 아메리카 우승자의 경기
  49. [49] 펠레와 공동수상
  50. [50] 108,200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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