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마어 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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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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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디트마어 하만
Dietmar Hamann

출생

1973년 8월 27일 (46세) /
바이에른 주 발트자센

국적

독일

신체

191 cm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선수

FC 바이에른 뮌헨 (1993-1998)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998-1999)
리버풀 FC (1999-2006)
볼턴 원더러스 FC (2006)[1]
맨체스터 시티 FC (2006-2009)
MK 던스 FC (2010-2011)

지도자

MK 던스 FC (2010-2011 / 플레잉 코치)
레스터 시티 FC (2011 / 코치)
스톡포트 카운티 FC (2011)

국가대표

59경기 5골(독일 / 1997~2006)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4. 우승
6. 평가
7. 수상

1. 개요

1990년대 혜성처럼 나타난 독일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1998년 잉글랜드 무대에 입성 후 오랜기간동안 활약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EPL에서는 리버풀 FC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1997년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어서 2005년까지 활약했었다.

2. 플레이 스타일

본래 전통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피지컬이 좋고 뛰어난 대인마크 능력과 순도 높은 볼 컷팅과 볼 배급력, 그리고 그의 최고의 장기인 막강한 킥력까지 갖춘 플레이어로 당시 뮌헨의 역습상황시 그의 킥 능력은 커다란 장기로 통했다. 어떻게 보면 전성기 시절엔 레지스타다운 플레이도 펼쳤었다. 하지만 당시 둔탁한 독일축구상 태크닉적인 부분에선 레지스타로 불리기엔 의문부호가 따랐고 체력도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활동량 또한 그리 넓지 않다. 게다가 이 선수가 결정적으로 평가가 낮은 이유는 당시 대세 포지션인 플랫 4-4-2에 약점이 많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2002년도엔 독일대표팀의 3-5-2 전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써 꽤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이 후 4-4-2 포지션일 시 발락과의 중원 파트너로써는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3-5-2에서 하만의 위치는 5의 중앙 3미드필더이며 그중 후방을 책임지는 더블 볼란치였으며 활동량에 대한 부담이 적었기 때문에 느린 발의 약점이 부각되지 않았다. 하만의 활동량 백업은 볼란치 파트너 옌스 예레미스가 메꾸었고, 여기에 리베로로 나오던 카르스텐 라멜로프가 빌드업을 지원해준 덕에 여러모로 자기 장점인 킥력과 대인마크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포백전술에 맞추기 위해 독일 대표팀은 4-4-2 전술을 사용해야 했고 미하엘 발라크와 같이 중원의 기동성을 담당해야 했으나 기동성이 전무한 하만의 경우 4-4-2, 특히 플랫 4-4-2에서의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은 전혀 맞지 않는 옷이였다. 한마디로 발느리고 행동반경 좁은 선수를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쓰는 감독이 어딨겠는가?

그럼에도 4-4-2의 나라라 불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주력선수로 활약을 많이 하는데, 제라르 울리에 감독과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은 박스 투 박스로는 약점이 있지만 EPL 롱볼축구에 적합한 강한 킥력을 가진 하만의 능력을 최적화 하기위해 4-3-1-2나 다이아몬드 4-4-2같은 포메이션을 짜고 하만을 후방에 고정시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잘 살렸고 기동성은 딸리지만 하만의 하드웨어상 피지컬로 EPL에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며 강력한 킥력이 EPL의 방식에 맞았던 덕에 뮌헨을 떠난 후 쭉 EPL에서 축구 커리어를 보낼 수 있었다.

3. 클럽

하만은 1989년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 합류하고 1992년 잠깐 2군에 몸을 담았다. 93년 본격적으로 프로무대에 데뷔한다. 비록 리그 바로 리그우승을 차지하지만 다음 시즌 팀이 부상악령을 겪으며 불가피하게 30경기나 소화하게된다. 이 시기 하만은 롱킥능력보단 수비형 미드필더의 교과서로 포켓 플레이가 뛰어났으며 20대 시절엔 어느정도 기동성도 갖추었기 때문에 뮌헨의 공수고리 역할을 해내게 된다.[2]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후 하만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로 이적하게 되는데 너무 무난한 활약(?)을 선보이고 1년후 1999/00 시즌 바로 리버풀 FC로 이적한다. 이 시절부터 하만은 그의 장기인 강력한 킥력을 뽐냈고 5년동안 리버풀의 핵심선수로 맹활약하게 된다. 기동성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강력한 피지컬로 경쟁력을 갖추었고 특히 갑툭튀스러운 논스톱 중거리포로 골도 제법 기록한다. 제라드 훌리에 감독과 베네티스 당시 리버풀 감독이 하만의 능력을 최적화 시켰고 2005년엔 비록 신예 알론소에게 주전자리를 내주게 되지만 그 때에도 정신적 지주 역할을 충분해 하였으며 특히 2004/05시즌 UCL 결승전에서 카카를 꽁꽁묶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이 후 2006년 리버풀 FC과의 계약 종료 후 6월 볼튼으로 이적을 하지만 뜬금없이 계약을 파기하고 7월 맨시티와 계약을 체결한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3년정도 활약을 보이다 발가락 부상으로 2009년 7월경에 잠정 은퇴를 한 뒤 2010년 밀턴케인스 던스 FC와 계약을 한 뒤 2년정도 뛰다가 2012년을 끝으로 완전히 은퇴하게 된다.

4. 우승

  • FC 바이에른 뮌헨 (1993 ~ 1998)
  • 리버풀 FC (1999 ~ 2006)
    • FA컵 : 2000-01 , 2005-06
    • 리그컵 : 2000-01 , 2002-03
    • FA 커뮤니티 실드 : 2001
    • UEFA 유로파리그 : 2000-01
    • UEFA 챔피언스리그 : 2004-05
    • UEFA 슈퍼컵 : 2001 , 2005

5. 국가대표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침몰시키는 중거리 포를 터뜨린 하만.

하만의 국가대표 데뷔는 1997년도에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엔 토마스 헤슬러와 디터 아일츠가 독일 국대의 미드필더를 담당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아일츠의 은퇴와 헤슬러의 노쇠화에 맞물려 국가대표에 데뷔를 한다. 1998 프랑스 월드컵유로 2000에선 별다른 활약을 못 보였는데 특히 포르투갈과의 유로 2000 조별리그 3차전에선 중앙 미드필더로 나오다 기동성에 한계를 보이며 세르지우 콘세이상 한 명에게 털리게 된다. 이 당시 독일은 3-5-2를 고집하는 상황이였고 포르투갈은 대세인 4-4-2를 사용했는데 기동성이 빠른 포르투갈 미드필드진에게 느린 독일의 중원은 그대로 떡실신당했다.

절치부심으로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3-5-2의 홀딩 미드필더로 활약을 하였는데 이 시기엔 좌우에 신예 토어스텐 프링스와 노장 마르코 보데가 독일 측면을 잘 커버해 주었고 같이 중원을 담당한 미하엘 발락베른트 슈나이더가 이 대회 최고의 폼을 자랑하면서 하만 역시 자신의 장기인 킥 능력을 살렸고 여기에 천운이 따르는 대진으로 인해 독일의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이 된다. 하지만 이 후 하만은 철저히 전차군단의 애증의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전설의 루마니아전 5-1 관광경기...[3] 은 하만은 이 경기에서 기동성에 완전히 한계를 보이며 20대 초반으로 이루어진 루마니아에게 처참히 발리게 된다. 이 후 유로 2004 본선에서도 2차전 라트비아전에서 4-4-2의 박스 투 박스 포지션으로 뛰었으나 느려터진 기동성으로 인해 0-0으로 비기는 최악 중의 최악을 달린다. 결국 2004년 8월 위르겐 클린스만이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하만을 과감히 제외시킨다.

4-4-2의 전술에 맞지 않는 하만은 2004/05 챔스 결승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집에서 구경만 해야했는데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하만은 결국 독일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본 대회에서는 미하엘 발락의 새로운 파트너인 프링스가 완벽에 가까운 박스 투 박스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하만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6. 평가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선수일 수도 있다. 그의 전성기 시절엔 4-4-2 전술이 대세로 떠올랐고 이 때에는 중앙 미드필더들의 높은 활동량과 다재다능함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특정 미드필더의 역할, 지역분담에 특화된 하만의 경우 당시 독일의 전술개혁에 방해되는 존재였었다. 사실 20대 시절엔 어느정도 기동성도 준수하였으나 그 역시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점차 기동성에 한계를 보였고 활동량도 좁으니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 만약 하만이 지금 시기에 전성기로 뛰고 있었더라면 분명 현재 독일 대표팀에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강력한 킥력이 주 무기이니 현존 최고의 크랙인 토마스 뮐러마리오 괴체등의 선수들이 있고 사미 케디라,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등 든든한 미들진이 있으니 하만의 능력을 최적화 시키기엔 부족함이 없다. 과장된 이야기일 수 있으나 하만의 전성기 시절엔 분명 사비 알론소정도의 포스를 보였으며 역대급 미드필더로 남을 수도 있었다.

미드필더진에는 에른스트, 프랑크 바우만 등 누구세요?[4]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고 2002년에는 늙은 비어호프, 폼이 바닥난 카르스텐 얀커, 그리고 2004년도엔 케빈 쿠라니, 마키 힌케, 벤자민 라우트 등 그냥 외국인들이야? 수준의 눈물나는 공격수들과 함께하니 본인 역시 암흑기의 독일축구에서 애를 쓰다 빛을 못본 케이스라 할 수있다. 다만 2002년도엔 어느정도 천운과 더불어 본인이 대표팀에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를 선보인 한일월드컵에서 성과도 있으니 뭐 암흑기였던 독일축구에서 나름 고군분투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컬럼니스트로 활동중이다. 가끔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리버풀 팬들과 트위터 문답도 하는데 팬들은 조던 헨더슨 축구 못한다고 하만을 그리워하는중(...)[5]

7. 수상


  1. [1] 계약 중도 파기
  2. [2] 이 시기 바이에른 뮌헨의 전담키커는 메멧 숄과 마리오 바슬러가 담당하였다.
  3. [3] 근데 이 경기 패배의 원흉 카르스텐 라멜로프는 단치 울레스쿠의 드리블 장면을 SSS급 관중석에 구경하듯 그냥 털렸고 에른스트의 패스는 죄다 루마니아 선수들에게 컷팅 당했다.
  4. [4] 물론 이 두선수는 2003/04시즌 브레멘의 더블을 달성한 주역의 선수들이였으나 대표팀에선 이상할 정도로 예능 쇼를 많이 선보인 케이스다.
  5. [5] 17년 현재 헨더슨이 맡은 롤이 딱 하만의 그 포지션이다. 그런데 너무 못한다... 열혈 OB 하만이 보기에도 깝깝한지 18년 1월에 꼭 수미 하나 데려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반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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