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ruby(羅生門, ruby=らしょうもん)](나생문)

1. 성문
2. 소설
3. 영화(1950)
3.1. 개요
3.2. 연출 의도
3.3. 줄거리
3.3.1. 증언
3.3.2. 결말
3.4. 기타
3.4.1. 라쇼몽 효과
3.5. 관련 문서

1. 성문

원래 표기는 나성문(羅城門)으로 らせいもん(라세이몬)으로 읽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민간에서 변화되어 羅生門으로 쓰고 らしょうもん(라쇼몬)으로 읽게 되었으며 현재는 연탁이 적용되어 らじょうもん(라조몬)으로 읽는다.

나성(羅城)은 왕성과 관청가, 시가지를 둘러싼 성으로 이름 그대로 나성의 문. 나라 시대의 수도인 헤이조쿄, 헤이안 시대의 수도 헤이안쿄의 정문으로 수도를 관통하는 큰 대로인 주작대로의 남쪽 끝에 있었다. 수도의 정문이라고는 하나 헤이안쿄의 라쇼몽은 이미 헤이안 시대에 폐허가 되어 시체를 버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헤이안쿄의 나성이 있던 자리는 모두 주택가가 되었고, 나성문이 있던 자리는 놀이터(...)가 되어 이곳이 나성문이 있던 자리임을 가리키는 표지석이 있다.[1]

2. 소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1915년작 소설. 일본의 옛 이야기책인 콘자쿠모노가타리에 수록된 이야기를 차용하였다.

줄거리는 이렇다.

헤이안 시대 전염병과 대기근이 닥쳐 수도인 교토에서도 사람이 마구 죽어나간다. 사람들은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아무 데나 버리게 되고 도시 외곽문인 라쇼몽의 다락에까지 시체들을 가져다 버리게 된다.

비가 내리는 저녁 무렵 사람들 왕래가 없는 라쇼몽의 지붕 밑에서 칼을 찬 남자 하나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대기근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진 고용주에게 해고된 하인으로 생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도둑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납득하지 못하다가 비라도 피할 요량으로 지붕 아래 다락으로 올라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여자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뽑고 있던 노파를 만나게 되는데 호기심 반, 분노 반으로 노파를 붙잡고 머리카락을 뽑은 연유를 묻는다. 노파는 뽑은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서 팔려고 그랬다고 말하며, 자기가 머리카락을 뽑고 있던 여자는 뱀을 말려 토막낸 것을 말린 물고기라 속여 팔며 연명하던 여자로, 자신은 그 여자의 행동을 비난한 적이 없으니 이 여자도 자기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던 남자는 자신 역시 '노파의 옷을 강탈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몸이므로 옷을 강탈해가도 할 말 없겠지?'라고 말하고선 노파의 옷을 벗겨 빼앗고는 사라진다.

살기 위해 서로 빼앗고 뺏기고 추악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인간의 현실을 그린 소설이다.

채지충의 만화 선설(禅说)에서는 배경이 헤이안시대가 아닌 중국으로 로컬라이징 되었다.

3. 영화(1950)


역대 베니스 영화제 - 황금사자상 수상작

1950년

1951년

1952년

재판은 끝났다

라쇼몽

금지된 장난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제23회
(1951년)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말라파가의 성벽

라쇼몽

금지된 장난

羅生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영화. 미후네 토시로 주연.

3.1. 개요

원작은 앞서 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호의 동명소설인데, 영화의 내용은 〈라쇼몽〉과 동 작가의 다른 단편소설인 〈덤불 속〉(藪の中, 1922년작)이 혼합되어있으며 〈덤불 속〉 내용이 더 중심이 되어있다. 위의 줄거리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라쇼몽〉과는 줄거리는 거의 상관없다. 다만 이야기의 흐름이나 분위기, 인간을 보는 시선은 비슷하다. 말하자면 〈라쇼몽〉의 액자에 〈덤불 속〉을 넣은 극중극 형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51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서구에 구로사와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려서 인지도가 높다. 다만 일본에선 제작자가 더 유명해졌다고…. 자세한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문서 참조.

3.2. 연출 의도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해진다. 이 영화는 그러한,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3.3. 줄거리

헤이안 시대,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폐허가 된 나생문(라쇼몽) 밑에 승려나무꾼이 멍하니 앉아있다. 그러던중, 한 하인이 비를 피해 나생문 밑으로 들어오고, 나무꾼과 승려는 어떤 살인사건과 그 사건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3.3.1. 증언

  • 나무꾼(시무라 다카시)의 증언
그는 나무를 하러가다가, 산에서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했다. 검은 보이지 않았으며 여자의 모자, 사무라이의 모자, 잘린 밧줄이 있었고 수풀 안에 밧줄을 두른 부적 상자가 있었다.
  • 도적 다조마루를 잡은 사람의 증언
그는 이틀 전 강가에 쓰러져있는 다조마루를 발견했다. 거기에 있던 활, 화살, 다조마루가 훔친 말 등은 모두가 죽은 사무라이의 소유물이었다. 그는 다조마루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증언했으나. 다조마루는 말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목이 말라 샘물을 마셨는데, 독이 들었는지 갑작스런 복통 때문에 쓰려져 있었다고 말한다.
  • 도적 다조마루
그는 악명높은 도적으로, 사무라이의 아내를 보고는 그녀를 빼앗으려 한다. 그 시점까지는 사무라이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다조마루는 보물을 숨겨뒀다고 속여 사무라이를 데려온 뒤 암습해 포박한다. 그리고는 사무라이의 아내를 속여 데려오는데, 이 와중에 그녀의 모자가 나무에 걸린다. 다조마루는 사무라이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를 범한다.[2]그러자 그녀는 사무라이와 다조마루 둘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면서, 싸워 이긴 쪽을 따르겠다며 싸움을 부추긴다. 결국 타죠마루는 사무라이와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사투 끝에 이기고, 사무라이를 죽이게 된다. 그러나 여자는 그 사이에 사라졌고, 여자가 쓰던 단도 역시 어찌되었는지 모른다고 증언했다.[3]그는 사무라이의 말을 타고 가던 중 오사카에서 샘물을 마셨는데, 샘에 독사가 빠져 있었는지 복통이 점점 심해지다 말에서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가 체포당하게 되었다고 증언을 마무리한다.
  • 사무라이의 아내[4](쿄 마치코)의 증언
도적에게 겁간을 당한 이후, 도적은 달아난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아내를 싸늘한 표정으로 계속 노려보았고, 아내는 차라리 죽여달라며 자신의 단도를 남편에게 내밀었지만,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아내는 결국 이성을 잃고 실신한다. 정신이 들었을 때 단도가 남편의 가슴에 꽂혀 있었다. 이후 숲을 빠져나와 산기슭의 연못에 몸을 던지려 했으나 차마 목숨을 끊지는 못했다.
이미 죽었지만 무녀에게 빙의되어 증언한다. 아내를 겁탈한 도적은 아내를 꼬셔 같이 도망치려 하고, 아내는 도적에게 남편을 죽이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도적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고, 아내는 도망친다. 그리고 잠시후에 돌아온 도적이 오히려 자신을 풀어주자 그는 도적을 마음 속으로 용서하고, 배신감과 자괴감에 몸서리치다가 결국 떨어져있던 아내의 단도로 자결한다. 그 후 누군가가 몸에 꽂힌 단도를 빼가는 것을 느낀다.

3.3.2. 결말

  • 나무꾼의 증언
사실 나무꾼은 시체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사건 당시의 상황을 목격했는데, 관가에는 그대로 말하지 않았다. 도적은 여자를 겁탈한 이후,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꼬셨다. 천둥벌거숭이인 그가 온갖 감언이설로 꾀면서 도게자까지 할 정도로. 그러나 아내는 "여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사무라이를 풀어준다. 도적은 이를 "남자끼리 결정해라. 서로 싸워 이긴 쪽을 따르겠다"는 것으로 알아듣고 싸우려 하지만, 사무라이는 "이런 여자 때문에 목숨걸기는 싫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졌으면서 어째서 바로 자결하지 않는 것이냐? 나는 이런 여자는 필요없다."며 아내를 버린다. 그러자 도적 역시 아내를 버리고 가버리려 한다.[6]두 남자에게 모두 버림받자 여자는 갑자기 미친듯이 웃고는 사무라이와 도적을 남자도 아니라고 비난하며[7] 이간하는데, 그녀의 도발에 설득된 사무라이와 도적이 칼을 뽑아들고 서로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두 남자는 서로에게 겁에 질려 칼 든 손을 떨거나 혼자 넘어져 허공에 칼질을 해대는 건 예사요, 칼을 놓친 채 도망다니거나 흙을 뿌려대고 서로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등 민망한 개싸움을 벌인다. 사실 이쪽이 제일 현실감 있는 액션이라는게 함정이지만(…).[8] [9] 결국 싸움은 도적의 승리로 끝나고, 사무라이는 "죽고 싶지 않아!"를 외치지만 도적의 칼에 죽는다. 도적은 사무라이의 부인을 데려가려 하지만, 그녀는 지친 도적을 뿌리치며 도망을 쳐버리고 없어 도적은 홀로 남아 자신과 사무라이의 칼을 들고 달아난다.
  • 나무꾼이 이야기를 마치자 승려와 나무꾼 모두 지옥같은 인간세상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지만, 하인은 그런 그들에게 인간사란 다 그런 것이라며 비웃는다. 그때 버려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하인은 아이는 버려둔 채 아이에게 둘러져 있던 비단옷을 가져가려 한다. 이것을 본 나무꾼은 하인을 이기적이라며 비난하지만, 이를 들은 하인이 이야기 속에서 모두가 잊고 있었던 단검의 행방을 들어 오히려 나무꾼의 도덕성을 힐난한다. 아내가 사용했던 단검은 결국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것을 나무꾼이 가져갔던 것. 즉 나무꾼은 무사가 죽고 아내와 도적이 그 자리를 떠났을 때 그곳으로 가서 몰래 단검을 가져왔던 것이다.[10]
나무꾼이 변명하지 못하자 하인은 옷을 챙겨서 떠난다. 이윽고 비가 멈추는데, 나무꾼이 아기를 안고 가려고 하자 승려가 황급하게 '핏덩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며 소리치면서 제지한다. 자신이 아기를 데려가려는 데에 의심받는다는 걸 깨달은 나무꾼은 불쌍한 표정으로 자신이 키우고 있는 아이가 여섯이니 한 입 더 늘어난다고 크게 달라질 것 없다고 해명한다. 이에 승려는 자신이 순간적으로 나무꾼을 불신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11] 나무꾼은 그런 승려에게 오늘 있었던 일로 자신을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며 승려의 반응을 이해한다고, 자신도 자신의 본성을 모르겠다면서 통렬한 자기비판을 보여준다. 승려는 그런 나무꾼의 모습에 “당신 덕분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군요.”라며 감격. 아이를 안은 나무꾼과 스님은 맞절을 하며 헤어지고, 영화는 아이를 안은 채 퇴장하는 나무꾼의 모습으로 끝난다.

3.4. 기타

둘의 싸움이 졸전인지 명승부인지는 보는 이의 주관적 관점이니 차치하더라도 별 이해관계가 없는 나무꾼의 말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애당초 나무꾼은 거짓말을 한 데다가, 하인이 지적했듯 사무라이의 아내의 비싼 은장도를 훔친 것이 바로 나무꾼이므로 100% 믿기는 어렵다. 또한 무녀가 불러낸 죽은 사무라이 역시 정말로 그 죽은 사무라이 본인이 맞는지, 심지어 남자로서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말한건 아닌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내답게 싸웠다고 주장한 도적이나, 불쌍한 여자인 척하려 했던 아내의 말 역시 그렇다. 관계자 모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된 이기적인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라진 단검을 나무꾼이 가져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무라이가 자살했는지 혹은 살해당했는지를 밝혀주지는 못한다. 나무꾼은 사무라이의 가슴에서 단검을 뽑았을 수도 있지만, 아내가 떨어뜨려 땅에 꽂혀 있던 것을 챙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의 사건과 연루된 4명의 증언의 진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렇게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마지막의 나무꾼이 아이를 데려가는 것으로 오히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기대하는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릴 여지를 열어둔 것이, 나무꾼이 아이를 데려가려 하자 승려는 아이를 팔아버릴 생각이 아니냐며 비난한다. 나무꾼이 승려를 설득하고 승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되찾지만, 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나무꾼의 마지막 미소는 여러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먹구름 사이에서 나온 햇빛이 나무꾼의 미소띤 얼굴을 비춰주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감독의 의도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고 보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단순화된 양식미와 뛰어난 카메라 워크로 구사하였다. 공간은 관가와 숲속 그리고 라쇼몽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사건의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한 트래킹과 틸 숏은 원작의 비장감을 살린다. 물론 이것은 제작자의 횡포로 적은 예산으로 촬영된 것일 수 있지만(...), 음악 역시 동일한 템포를 잘 조절하여, 몰입도를 조절한다.[12] 마지막에서 나온 빛살과 비가 엄청 내리는 라쇼몽 역시 대조를 이루는 것 역시 스토리 전개에서 빠질 수 없다.

당시 영화사 사장은 '구로사와가 라쇼몽 세트만 지으면 되니까 저예산으로 찍을 수 있다고 꼬셨는데, 세트 제작비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고 불평했고, 완성 직후 시사회에서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영화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가, 베니스 시상식 수상 이후 돌변해서 극찬을 늘어놓자, 구로사와 감독이 '이거야말로 라쇼몽 그 자체'라고 씁쓸해했다고 한다.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하늘에 구멍 뚫린듯 퍼붓는 비 장면은 비가 잘 보이도록 물에 잉크를 섞어서 뿌려서 만들어낸 장면이다. 영화 자체가 흑백이라 고육지책으로 한 것이었지만 해놓고 보니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 기술은 이후로도 감독의 작품에서 자주 사용된다.

양선규의 소설 〈칼과 그림자〉에서 이 영화를 언급한다. 작중 주인공이 '직접 본 건 아니고 줄거리가 어떤지만 들었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

미지왕에서도 패러디된다.

기스 하워드초필살기 '나생문'은 여기에서 이름을 따온 것.

미국에서 '씨 왓 아이 워너 씨(See What I Wanna See)'[13]라는 이름의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1막이 영화 라쇼몽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14] 등장인물들은 미국인으로,[15] 사건이 일어난 산 속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로 바뀐다. 여담으로 2막 역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인 '용'을 토대로 만든 것. 국내에서도 2008년 라이선스 공연을 했다.

1964년에 미국에서 서부를 배경으로 리메이크했으나, 비평과 흥행은 참혹하여 아주 잊혀졌다. 고스트 독에서 주인공이 루이스에게 라쇼몽 책을 전해준다.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가 라쇼몽과 유사한 전개 방식을 보여줘서 잠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블루레이로 출판한 것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화질은 되는데 자막이 문제.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작사 엠블린이 드라마로 제작할 예정이다.#

미국 드라마 디 어페어도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불륜(...)을 남여 당사자 각자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내용.

3.4.1. 라쇼몽 효과

이 영화에서처럼 현상을 왜곡하는 묘사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서술 트릭 기법을 라쇼몽 기법(Rashomon effect)이라고 칭한다. 또한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관계자가 객관적 현상을 주관적으로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것'을 라쇼몽 현상이라고 한다. 라쇼몽 현상은 이기심과 탐욕이 개입한 고의적인 경우일 수도 있고, 인간 기억의 주관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라쇼몽 효과를 잘 활용하는 영화들은 보통 군상극, 모자이크식 영화인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여주거나, 혹은 추후에 사건을 회상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진실에 근접해 가는 연출이다. 보통 각 전달자들의 정보부족으로 빚어진 오해 속에 반전이 있는 경우가 많다.

3.5. 관련 문서


  1. [1] 일본만화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에서도 나왔다.
  2. [2] 다조마루가 사무라이의 아내를 범하기 전, 아내가 품 속에서 단도를 꺼내서 다조마루를 찌르려고 발악하는 장면이 나온다.
  3. [3] 단도가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다조마루가 잊었는지 애매하다.
  4. [4] 원작에서의 이름은 마사코
  5. [5] 원작에서의 이름은 다케히로
  6. [6] 도적이 여자를 버리려던 이유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7. [7] 남편에게는 자기한테 자결하라고 하기 전에 자기 아내를 겁간한 타죠마루를 먼저 죽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지고, 이어서 다조마루에게는 다조마루가 자신을 해방(왜 남편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했는지는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자신을 버리려한다며 남자라면 검으로 여자를 쟁취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도발한다.
  8. [8]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이라고도 한다. 확실히 현란하고 폼나지만 일반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보이는 첫 번째 액션 신에 비하면 나무꾼의 증언에 나오는 이 두 번째 액션 신은 정말 목숨 건 진흙탕 싸움으로 느껴질 정도로 날 것 그대로인 싸움을 보여준다. 다만 처절하거나 비장하게 보이기 보다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편.
  9. [9] 이 증언의 시각대로라면 사무라이와 다조마루 둘 다의 각자의 증언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과장했던 것이 된다.
  10. [10] 바로 그 값나가는 단검을 빼돌리려는 목적 때문에 나무꾼이 관아에서 증언할 때 자신이 목격한 바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인이 그것을 지적하자 말문이 막힌 것.
  11. [11] 영화 내 줄곧 '인간이 전부 이기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던 하인과 대립하며 '그래도 자신은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고 되뇌이던 승려가 나무꾼의 진실을 알게 되자, 나무꾼을 믿지 않았음에 반성하는 것이다.
  12. [12] 감독이 라벨의 볼레로와 비슷한 곡으로 작곡가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13. [13]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뜻.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단 하나의 절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시선으로 본 상대적인 진실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제목이다. 《씨 왓 아이 워너 씨》(See What I Wanna See)는 2005년 미국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마이클 존 라키우사(Michael John LaChiusa)의 뮤지컬이다.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의 단편 소설 세 편, 〈게사와 모리토〉(袈裟と盛遠), 〈덤불 속〉(藪の中), 〈용〉(龍)를 원작으로 하였다.
  14. [14] 제목은 'R shomon'. 오타가 아니라 진짜 제목이 저렇다.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ㄹ쇼몽'이 되었다.
  15. [15] 나무꾼은 영화관의 경비원, 사무라이 부부는 택시 회사 사장 부부, 도적은 강도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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