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

1. 개요
2. 경력
3. 연주 스타일
4. 생애
5. 비판
5.1. 곡에 따라 극과 극인 이상한 해석 센스
5.2. 클래식계에서 전례가 없었을 정도의 과도한 쇼맨십
6. 음반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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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리스트의 파가니니에 의한 대 연습곡 3번 "라 캄파넬라".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2분 39초쯤에 박수가 나온다

홈페이지

랑랑 (중국어: 郎朗, Lang Lang, 1982년 6월 14일 ~ )

중국피아니스트.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2000년대 중후반, 201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클래식계의 젊은 총아 중의 하나였으며, 현재 중견 음악가로서의 발돋움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2. 경력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5살 때 선양 콩쿨에 나가 입상한 것이 그의 최초 경력. 이후 13세의 나이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 (청소년 부문) 우승, 17세에 바르비에 뮤직 페스티벌에서 협연자 앙드레 와츠의 대타 자격으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시카고 오케스트라 협연)을 연주하여 전 세계 클래식계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에 첫 앨범의 녹음 작업을 수행하고,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광저우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다.

3. 연주 스타일

주로 리스트 같은 낭만파 계열의 곡을 즐겨 연주하는 편이다. 그 대부분의 곡들이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며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인데 그 또한 그에 걸맞게 굉장히 뛰어난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어서 많은 난곡들을 어려움 없이 소화해낸다. 그의 장기인 리스트 곡에서는 거의 미쳐 날뛴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테크닉을 보여주는데 당장 위 영상의 라캄파넬라[2]만 어지간한 초보적 테크닉으론 대충 훑어보기 조차 어려울 정도의 상당한 난곡이다. 이것을 초중반까지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얼핏 듣기에 쉽고 라이트한 곡으로 보이듯이 풀어낸다는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특히 위와 아래 영상에 나오는 저 두손트릴은[3] 집에 피아노가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속도의 반도 못살리고 리타이어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닐듯 미파미파미파미파!!!!!....헉헉 레#미인데요

또한 필링을 잘 살린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다이나믹(강약)의 음색 채도를 다양하게 구사한다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 바로 위의 영상인 카네키 홀 실황 당시의 돈 주앙의 회상 환상곡에 나온 느린 구간을 들어본다면 피아노를 거의 쥐어짜낸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음색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눈여겨 볼 수 있다.[4] 페달 테크닉도 대단히 능수능란하고 풍부하게, 그러면서도 전혀 지저분하지 않게 페달을 사용하는 편이다. 이런 장점으로 느린 구간에서 빠르게 변하는 분위기일때의 이펙트를 굉장히 잘 살리는 편, 지구력도 굉장히 뛰어나서 체력 면에서 한번에 수 개의 대곡을 커버할 정도의 기량도 충분하다.[5] 마치 클래식 음악이라기 보단 락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특징과 한편으론 느린 프레이즈를 능청스러울 정도로 우아하게 연주하는 점이 갭모에 스러운 반전매력을 잘 살리면서 어우러지는데 중기 낭만계열, 특히 리스트의 피아노곡 음반은 이런 점 덕분에 대부분의 퀄리티와 평론 면에서 매우 호평을 듣는 편이다.

연주 스타일은 아니지만 연주 도중 표정이나 제스쳐가 거의 독보적일 정도로 풍부해서(...)[6] 이 점에 대해서 얘깃거리가 많은 편인데 가끔씩 활동 초창기 때 연주영상들을 보면 이 인간이 지금 제정신으로 연주하나 싶을 정도의(...) 크고 아름다우며 흠좀무한 안면기예로 매 연주마다 몸소 흑역사를 생산하신 때가 많다.40살 드시면 중성자분열 이불킥 정도는 하시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 일단 본인의 입장에 따르면 '음악을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봐 달라' 정도의 얘기로 입장표명이 되는 편인데, 좋게 말해서 이런점 이외에도 여러 연주나 음반 포스터를 보면 쇼맨십 또한 대단히 풍부한 사람이라는걸 알 수 있다.그래도 이제 30대 중반은 된 나이라서 그런지 예전만큼의 안면기예는 보기 힘든 편 은근히 이런거에 정들은 팬들은 랑무룩 하지만 단점이 되기도 하는 편인데 아래 비판 항목에서 후술

4. 생애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에 상당히 비참한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중국의 저출산 정책에 영향을 입어 외동아들로 태어나 가족들의 온 지원을 한 몸에 입은 것까진 좋은데 4살쯤 때 부터 아들이 음악에 재능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모든 걸 바쳐서라도 아들을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우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아버지 또한 중국 악기인 얼후 등에 재능이 있어서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지만 금전적 문제 등의 여러 요인으로 포기한 전적이 있는 공안이었다는데 어떻게 보면 자식에 대한 보상심리로 해석이 가능하다는게(...)

이후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끌어모아 오로지 랑랑의 성공에만 집중하는데 자서전을 보면 초등학생 나이 정도도 안되는 랑랑이 그 과정에서 거의 엄청난 수준의 노력을 강요당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 때 부터 이미 하루 8시간 연습(...)을 강요당하고 아버지의 퇴근 후 조금이라도 노는 기색을 보였다면 매우 심한 꾸지람을 당했다고 한다. 한 번은 그의 어머니가 얘기하려고 그를 불렀는데 퇴근한 뒤에 그걸 본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면박을 준 뒤 랑랑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애 앞에서 보란듯이 창가 밖으로 갖다 버리고 연습을 다시 시킨다(...)[7] 그러나 이건 후술할 만행에 비하면 약과 수준

랑랑이 센양에서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낸 후, 베이징의 음악원에 보내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때의 전개가 상당히 흠많무스럽다. 아버지는 자신의 직장인 공안마저 포기하고 베이징으로 건너가 말만 아파트지, 허름한 빌라나 다름없는 곳에서 부자끼리 생활하는 동안그동안 랑랑의 어머니는 혼자 어떻게 사셨을지 참 대단할 정도 방음도 안 되는 집에서 이제는 밤이고 새벽이고 가릴 것 없이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당연히 주민들의 원성이 엄청났다는데 이걸 모두 씹었다고(...) 한 번은 당연하게공안에게 신고까지 넘어왔다 하지만 어찌저찌 넘어간 모양이다(...)[8][9]

그러나 베이징에서 레슨을 받아주던 음악선생[10]이 계속 랑랑을 평가절하 하다가 결국에는 내치자[11] 이 아버지는 거의 편집증 수준으로 랑랑을 더더욱 들볶았다고 한다. 그 정도가 절정에 달한 때의 묘사를 보면 상당히 공포스러울 정도인데 랑랑이 학교 합창부 반주의 일로 2시간 정도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자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로 초등학생 나이밖에 안 되는 애를 붙잡고 온갖 폭언을 다 했다 한다. 베란다로 가서 뛰어내리느라니, 강한 항생제 알약병을 내밀며 30알을 전부 삼키라느니... 이 쯤 되면 랑랑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 당시에 랑랑은 정신상태가 한계에 몰리자 주먹을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벽에다가 찧으면서[12]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하며, 겨우 정신을 차린 아버지와는 거의 1달동안 말을 제대로 섞지 않고, 물론 피아노도 전혀 치지 않았다고 한다.[13]

하지만 어쩌다가 말을 트게 된 과일상인이 보여 준 친절함[14]과 일련의 사건, 결정적으로 자신에게 처음 피아노를 가르쳐 준 선생님의 방문으로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올바르게 잘 커주셔서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일련의 사건은 상당히 재밌는 사례인데, 랑랑이 한밤중과 새벽에 하던 연주를 가장 비난하던 한 사람이 돌연 불쑥 찾아와 어째서 연주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 자신은 신경증 환자라 매일 연주를 들으면 증상이 악화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랑랑이 연주를 하지 않게 된 이후로 신경증세가 더 심해졌으니 연주를 들려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왜 연주를 하지 않냐는 질문에 랑랑의 아버지가 대답하길 그 대답은 랑랑이 할거라고 했단다(...) 뭐??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랑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다가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하니 이걸 대인배라고 해야되는지 호구라고 해야되는지(...)[물론]

이후에 여러 음해들에 불구하고 베이징 중앙 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한 뒤 중국 내의 국제콩쿨에서는 쓴맛을 맛보지만, 독일 에틀링겐 국제 콩쿨, 차이코프스키 국제 영재 콩쿨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는데 사실 두 대회 모두가 의외로 아버지의 선택에 힘입은 부분이 크다. 특히 애틀링겐 콩쿨의 경우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실패할 거라고 예언한데다가 이미 중국 내에서도 2명 정도의 우승후보가 꼽혀져 있는데에 불구하고 강행시킴으로서 성공한 거다(...)숨겨진 프로듀서로서의 재능 자식교육의 재능을 버리고 프로듀서의 재능에 몰빵했다 이 후, 차이코프스키 국제 영재 콩쿨의 결선 협주곡 또한 이 아버지가 선택했는데 당시 레슨을 맡던 두 교수는 각각 모차르트, 베토벤을 추천하며 이구동성으로 쇼팽은 아직 어린아이가 소화하기 힘든 곡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16] 랑랑은 결국 1위의 영예를 얻었다. 자서전에 의하면 이때 랑랑의 집안 사정은 거의 랑랑이 우승 못하기라도 하면 집안이 뿌리채 뽑혀나갔을 거라는 정도 기술되어 있다. 친척들 재산을 거의 갈퀴로 긁어모으다시피 해서 비행기 표를 사고 참가비에 숙박료 등을 내고 콩쿨 우승상금으로 을 갚아나가고.. 집안 재산을 기둥째 긁어모았는데도 랑랑에게 연미복 한 벌을 못사줘서 이때 사진을 보면 랑랑은 반팔로 연주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참가자들은 다 하던 오케스트라 연습을 엄청난 고비용 때문에[17] 한 번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결선에 임했다고 하는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승했으니 그야말로 흠좀무(...)

당연히 이 우승 이후로 클래식계에서 국제적으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새옹지마 격으로 음악원 내에서 적들도 상당히 만들게 된다. 베토벤을 추천했던 레슨 교수는 쇼팽 협주곡이 자신이 추천한 곡이라며 언플을 털고(...) 그의 부인은[18] 자신의 제자와 랑랑이 같은 자리에 있을 때마다 노골적으로 랑랑에게 패널티를 줄려 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장과 음악원 교수들과의 마찰이 잦은 것도 있고[19]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랑랑의 아버지는 미국의 커티스 음악원 음악과장인 게리 그래프먼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오자, 랑랑을 데리고 바로 그쪽으로 갔다고... 당시 현역으로 뛰던 걸출한 피아니스트들이 입회한 입학 시험에서 상당히 흠좀무스러운 지원을 얻는데 등록금 전액 면제를 기본으로 까는데다가 무려 스타인웨이 피아노[20]가 딸린 숙소 한 채를 무상으로 제공받는다(...)[21]이 이외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또 하나 있는데 랑랑은 이 동안 아버지 주도하의 고별 연주를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정신력이 약해지면 안된다라는 되지도 않는 이유로 인한 공작 때문에[22] 떠나기 까지 어머니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안습

이 후, 개리 그래프먼 밑에 수학하면서 그의 권유로 어떠한 콩쿨에도 나가지 않으며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영재 콩쿨 이후로 콩쿨 참가 경력이 없는건 이 때문[23] 그 동안 미국의 수많은 오케스트라에 대리 연주자 요청을 내고[24], 뛰어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크리스토퍼 예센바흐의 지인 눈에 들게 되어 그에게 오디션을 받았다고 하는데 보통 몇십분 내에 끝날 오디션을 그의 연주에 푹 빠진 예센바흐의 요청으로 2시간이나 받게 되면서 매우 흡족한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이후 대리 연주자로 어느 정도의 대기를 기다리다가 예센바흐가 지휘하는 바르비에 뮤직 페스티벌의 협연자 중 하나였던 앙드레 와츠가 급성 열로 연주를 패스해야되는 상황이 오자 대리 연주자 자격으로 대타를 맡으며 화려하게 대뷔 스타트를 끊었다고 한다.[25][26]

대뷔해서 재산을 얼마 모으자마자 콘서트 피아니스트라는 직업 특성 상 집에 오래 들르지 못하는데 왜 집을 사냐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전까지 집 없이 거의 떠돌이 생활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데에 대한 보상기재로[27] 제일 먼저 한 일이 미국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에 집을 사는 것이었다고 한다. 곱씹어 보면 상당히 씁쓸한 대목

5. 비판

5.1. 곡에 따라 극과 극인 이상한 해석 센스

인기가 높은 만큼 안티도 상당한 편이다. 분명 그의 실력 면에서는 누구도 부정하는 사람 없을 정도로 최상위를 달리지만근데 솔직히 이 바닥에서 테크닉 부족으로 까일 정도면 아예 묻히는게 지극히 정상이다. 파데레프스키같은 한손으로 꼽기도 모자를 정도의 예외를 제외하면.. 해석 등에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것은 둘째 치고 그의 활동 초중반기에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치는게 너무나 많이 보였기 때문에 거품이 꺼지자마자 평론의 공격을 상당히 많이 받은 편이다.[28] 베토벤 같은 진중한 음악에서 평론가들 입장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나의 베토벤은 이렇지 않아!(...) 국내의 경우,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너무 피아노를 갖고 노는 것처럼 친다' 며 '말초적인 감각에 집중하지 않는 진중한 연주가가 되길 바란다'라며 그의 연주에 대한 비평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까방권 수준으로 실드를 받던 낭만 음악에서도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특정 작곡가의 작품에 발견할 수 있는 특유의 악상을 무시하는 행위[29] 등으로 유튜브 등지에서도 잘 보면 골수 클래식 팬들에게 상당히 까인다(...) 그렇다고 재해석이 각광을 받느냐면 그것도 글쎄올시다 수준의 애매하거나 팬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괴랄한 해석 센스를 보일 때도 종종 있어서... 대표적으로 헝가리 랩소디 2번[30]이나 쇼팽 발라드 1번 같은경우는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이상한 해석을 보여준다.

대표적 예시, 전반적으로 음의 형식적 구조를 잘 살려내기에 앞서 너무 지나치게 감정이 고조되어 있고, 연주효과를 거의 절제하지 않아서 듣는 사람에 따라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다. 쇼팽 덕후들에겐 거의 흑역사급 연주(...)Terrible !!! This is not Chopin guys !!

5.2. 클래식계에서 전례가 없었을 정도의 과도한 쇼맨십

그리고 그보다 더 까이는 행위는... 상기했듯이, 클래식에서 현대음악 이후에 전례가 없었을 정도의 과도한 쇼맨쉽에 상당히 공격을 많이 받은 편이다.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게 랑랑이 젊은 층에게 가장 많이 각광을 받는 피아니스트일 수 있는 이유이자, 랑랑이 까이는 알파와 오메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공연에 음침한 조명도 모자라 드라이 아이스까지 쓰시는 비범함

자리가 입석이 더 비쌀지 좌석이 더 비쌀지 궁금하다.

뒤에 나오는건 AMV 영상인거 같은데 그건 둘째치고 대략 2초마다 계속 바뀌어서 눈이 아프다 으악 내눈!

이런 것들이나

대충 이런 거라든가(...)

타임에서 "클래식에서 '엄숙함'이라는 껍질을 걷어낸 혁명가"라는 평가를 받았듯이 그의 공연 또한 타 클래식 공연과 다르게 엄청나게 비범하다. 사실 이 바닥에서는 공연장에 연미복이나 양복만 안 입고, 혹은 제대로 안 입고 나와도 이단아 취급 받는 와중에 저정도면 거의 컬쳐쇼크 수준(...)[31] 바네사 메이의 피아노 버전?

'왜 클래식 공연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하면 안되는가요?'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의 해석만큼이나 상당히 자유분방한 공연을 자랑하고 또 그런 점 때문에 국내에선 보수적인 클래식계 인사들에 의해 비판을 참 많이 받았던 피아니스트이다. 한 국내 원로 연주자는 '연주가 서커스 같고 기본을 안지키는 형편없는 연주'라고 혹평하며 연주를 다 듣지도 않고 연주장을 나갔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 이런 점 때문에 클래식계 내의보수적 인사들 입장에서 클래식계가 점점 아이돌주의에 물들어갈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속출한다. 평가는 알아서(...)그러나 일단 랑랑이 아이돌주의에 편승할 정도로 독보적인 원판을 소유한 건 아니며, 주 홈그라운드가 따로 있어서 아이돌 마냥 두터운 팬층을 형성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골클음인들 사이에 내용없는 클래식 열화카피라고 종종 억울하게 까이는 뉴에이지조차 아이돌주의에 편승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괜한 기우다.

6. 음반

추가 바람

  • 2013년 《Prokofiev : Piano Concerto No.3 / Bartok : Piano Concerto No.2》
  • 2013년 《Lang Lang : The Romance Of Rachmaninov》
  • 2014년 《Tchaikovsky / Rachmaninov : Piano Trios》
  • 2014년 《The Mozart Album》
  • 2014년 《Chopin : The Piano Concertos》

7. 기타

자신이 설립한 '랑랑 국제음악재단'의 후원 학생들과 함께.

  • 의외로 한국과 연이 많다. 연주회 이외에도 한국 내 여러 행사에 출연한 기록이 많고 자서전에 의하면 BBQ치킨을 좋아한다고 한다. 후술한 여러 행사 이외에도 슈퍼주니어의 몇몇 멤버들이나 인순이 등의 한국 연예인들과도 안면이 있다고 한다.
2011년 MAMA에 깜짝 출연한 영상

클래식_월드스타와_대중가요_월드스타의_한_치킨.jpg[32]

  • 자세히 알기 위해 참고하면 좋은 기사들
  •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한다. 2012년 기준으로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2년째 비밀연애 중이라고...#,#아니 아버지!! 잘난 게 많으면서 남입장에서 보면 나름 답답해 보일 남자친구를 2년 남짓이나 이해해주고 견디는 여자도 참 대단하다. 지금까지 사귀고 있는거면 무려 6년은 사귀고 있다는건데 아직도 사귀는건가...

  1. [1]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7988829
  2. [2] 엄밀히 말해 이건 별칭이고 정확한 명칭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 연습곡-3번이다
  3. [3] 랑랑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4. [4] 맨 위의 라캄파넬라 영상에서는 거의 귀를 농락하는 수준의 솜털같은 피아니시모를 구사하는 대단한 터치를 옅볼 수 있다
  5. [5] 지금이야 훨씬 더 많겠지만 그의 자서전에 쓰인 대뷔 초창기인 17살에는 예센바흐에게 밝힌 연주곡 레퍼토리 중 협주곡만 서른 개에 그 중 10여곡은 당장 연주할 수 있다고 밝혔단다(...) 흠좀무
  6. [6]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처음 부분을 칠 때는 과장 조금 보태서 피아노 의자가 저 멀리까지 가있다(...)
  7. [7] 때문인지 자서전에 실린 사진을 보면 최소 25살은 넘은 나이에(...) 식사 시간에서 장난감 헬리콥터를 만지작 거리는 랑랑의 사진이 실려있는걸 볼 수 있다.
  8. [8] 이에 대해서 아래의 사례와 별개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랑랑이 새벽부터 연습을 하는게 거의 일반화 되었던 시기에 랑랑이 애틀란타로 콩쿨을 나갔던 그날 아침 아파트의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은 직장에 지각을 했다는데 그 이유가 심히 이뭐병(...)스럽다. 랑랑이 새벽에 피아노 연습을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잠을 깰 수 없었기 때문이라구(...)
  9. [9] 여담으로 상하이에서 생활할 동안은 랑랑의 아버지가 어머니 대신 요리를 했다는데 맛이 하나같이 모두 이상해서 오죽하면 랑랑이 먹다 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랑랑의 어머니가 해준 음식은 상당히 괜찮았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를 당했다고 하며 얼마나 트라우마였으면 어떤 프로필에서는 좋아하는 것에 어머니의 요리라고 적혀 있을 정도(...)
  10. [10] 베이징 음악학원의 교수였다고 한다. 참고로 예나 지금이나 음악계에선 어느 정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이긴 하지만(...) 음악원이나 음대의 경우에는 원하는 상위권 학교에 입학하려면 필수적인 사항은 아니지만, 입학을 수월하게 하려면 해당 대학의 교수에게 고액의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물론 특수 대학교나 국립 대학교의 경우에는 당연히 불법이고 입시시험에 부정이 개입할 가능성 때문에 과거에는 대다수의 대학이 입시 시에 평가교수와 응시자들 사이에 천막으로 가리게 했다고는 하나 어차피 응시서류 등에 사진이 나오니 무쓸모(...) 이후 현재에는 많은 대학들이 시험때 천막을 사용하지 않는다.
  11. [11] 자서전에서는 센양에서 같이 상경한 경쟁자들의 학부모와 선생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하는데, 자서전의 말을 전부 신용하자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닌것이 랑랑이 음악원 내에서 1등을 하자 담당 교수가 그 교수에게 랑랑에 대해 여쭤보자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 아이의 재능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내 언론에서는 단지 저평가 받았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는 편이 많지만 아래 링크된 기사 중에 '너무 감정적이고 나이에 맞지 않게 연주한다.'라고 명확히 지적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서 사실파악에 혼선을 빚는다. 진실은 저 너머에..
  12. [12] 자서전 회상에 의하면 당시에 손을 부셔서 못 쓰게 만들어버릴 작정이었다고 한다.아직 중학생도 안 된 어린아이가 실제로 이런 의도를 했다는 것 자체에 당시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와 더불어 소름이 끼칠 정도다(...)
  13. [13] 이 때동안 랑랑의 아버지는 랑랑이 간간이 피아노 치기를 종용했다고 한다(...)제정신인가? 그러나 당연히 자신이 한 것도 어느 정도 있는 만큼 무리하게 권유하지는 못했고, 랑랑은 그 때마다 차갑게 응대했기 때문에 결국 이 기간동안은 제대로 화해하거나 다시 피아노를 치는 일 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14. [14] 랑랑이 수박을 사려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남다르게 수박을 두드리는(...)폼에 인연을 텃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 일화는 한 ebs 2015년도 영어 인터넷 수능교재 에서 장문 문제 지문으로 소개됐었다고 한다.
  15. [물론] 15.1 반 농담인게, 어쨋거나 랑랑의 성공은 아버지 덕에 의인한 것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다만 양육과정에서의 문제가 큰 편인게 문제지.. 자서전에 보면 이런 문제점은 랑랑의 첫 선생님도 상당히 비중을 둬서 언급했던 기록이 있다.
  16. [16] 당시 아버지의 주장에 동의하던 건 랑랑을 옛날부터 응원하고, 결정적으로 랑랑이 망가질 뻔한 고비에 도움을 줬던 처음 가르쳐 준 선생님 밖에 없었다고 한다
  17. [17] 한 번 연습에 한화로 수백만원은 우습게 나갔다고 한다(...)
  18. [18] 음악원에서의 교직원 서열이 남편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19. [19] 주로 아들이 앞으로 연주할 곡목에 대해서 의견 차로 계속 다투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아무리 음악 지식을 잘 쳐주더라도 야매 이하밖에 안 돼 보이는 일반인이 나름 전문가들인 교수들에게 레퍼토리 곡갖다가 태클거는게 더 이상해 보이긴 할 듯, 당시 중국이 위계서열 면에서 현대보단 구시대적인 입장인 것도 있었을 테고..
  20. [20] 그랜드 피아노가 최소 억대는 호가하는 브랜드다. 피아노에 업라이트(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피아노)와 그랜드(연주용)의 성능과 가격의 차등이 엄연히 존재하는 판에 당연히 이 브랜드를 업라이트로 제공했을 리는 만무하고...
  21. [21] 이 때 오디션용으로 선곡한 곡에 대한 평가 역시 흠좀무 스러운데 쇼팽 연습곡 op.10의 2번을 무려 즐겨 치는 곡이라고.... 참고로 이 곡은 쇼팽 연습곡의 그 어렵다기로 말 많은 op.10의 4번 추격의 난이도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을 자랑하는 곡이다(...) 흠많무
  22. [22]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장 혹독한 상황을 매일씩 감내하고 있는 입장에서 여유가 한 번이라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의 경우에더라도 일의 능률은 쇠퇴하기 마련인데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강함에도 불구하고 수 년째 제대로된 회해를 나누지 못한 랑랑의 입장에서 적용해보면 말할 필요도 없다
  23. [23] 여담으로 이 시기의 자서전 대목을 읽어보면, 그래도 그 동안 경쟁을 할 수 있으며 명성을 쌓기 쉬웠던 대회에 참가하는게 익숙한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랑랑에게 권유하자 랑랑이 콩쿨 대회목록을 찾아보는데 이 목록 중에 리즈 콩쿨도 끼어있다. 참고로 리즈 콩쿨에는 한국의 김선욱 씨가 우승하면서 김선욱 씨는 2006년 아시아인 최초로 리즈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로서 명망을 떨쳤는데 가능성이야 매우 낮았겠지만 만약 이 시기때 랑랑이 리즈 콩쿨에 나갔더라면(...)
  24. [24] 대게 순위권이 4등까지는 들었다고 한다
  25. [25] 이 후, 랑랑이 건초염으로 추정되는 손 질환에 걸렸을 때 그 자신은 최소 중견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피아니스트인 랑랑을 위해 대타로 뛰어주며 우정을 과시했다고 한다.
  26. [26] 참고로 앙드레 와츠는 랑랑이 자서전에서 자신의 음악적 스승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음악적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연주자 였다고 한다. 잘 살펴보면 연주 스타일부터 백인위주로 돌아가던 음악장르에 유색인종으로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점이라든가 둘이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오버스러운 리액션이라든가(...)
  27. [27] 자서전에 직접 언급된다.
  28. [28] 심한 경우는 예센바흐까지 싸잡아서 미친 피아니스트를 지원해줬다고 도가 지나칠 정도로 깠던 평론가에 대해 예센바흐가 공개적 사과를 요구했을 정도(...) 이 경우는 어투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게 아니냐는 역비판까지 나온다.
  29. [29]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쇼팽의 경우, 작품 대부분이 우아하고 시적인 서정성을 얼마나 잘 살리는지에 대해 평가받는다.
  30. [30] 호로비츠 편곡 버전을 치는 게 대부분.
  31. [31] 물론 나이젤 케네디나 이반 포코펠리치, 막심 므라비차 같은 이단적인 스타일의 연주자이면서 태클이 별로 들어오지 않는 연주자도 있다지만, 이들과 랑랑의 성공이 스케일부터 다른 데다가 랑랑은 연주스타일 마저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만큼 더욱 논란이 크다고 볼 수 있다.
  32. [32] 싸이와도 여러 모로 인연이 있는데 싸이의 곡 '아버지'에 대한 피아노 편곡으로 당시 대륙은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상당히 이슈가 되었기 때문#, 랑랑과 아버지의 얽히고 섥힌 관계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일은 뭐라 말하기 힘든 미묘한 기분을 선사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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