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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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블랑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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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G}}}
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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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블랑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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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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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00}}}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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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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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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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랑 블랑
Laurent Blanc

본명

로랑 로베르 블랑
Laurent Robert Blanc[1]

출생

1965년 11월 19일 (54세) /
프랑스 랑그도크루시용 지방 가르 주 알레스 군 알레스 시

국적

프랑스

신체

193cm | 체중 90kg

직업

축구선수(스위퍼[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몽펠리에 HSC (1981~1983 / 유스)
''' 몽펠리에 에로 SC (1983~1991)
SSC 나폴리 (1991~1992)
님 올랭피크 (1992~1993)
AS 생테티엔 (1993~1995)
AJ 오세르 (1995~1996)
FC 바르셀로나 (1996~199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7~1999)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9~2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1~2003)

감독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07~2010)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2010~2012)
파리 생제르맹 FC (2013~2016)

국가대표

97경기 16골(프랑스 / 1989~2000)[3]

1. 소개
2. 선수 경력
3. 감독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6. 경력
6.1. 선수 시절
6.2. 감독 시절
7. 수상

1. 소개

프랑스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파리 생제르맹 FC 감독을 맡았다.

별명은 Le Président(대통령). 1990년대 후반 레 블뢰 군단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골 넣는 수비수로 유명했으며 스위퍼로 이름을 날렸다.

큰 체격을 비롯한 좋은 피지컬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힘보다는 기술과 지능을 앞세운 커맨더형 수비수였으며,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나 높은 득점력을 갖췄다.

그렇다고 해서 수비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파비앵 바르테즈 골키퍼와 비셴테 리사라수, 로랑 블랑, 마르셀 드사이, 릴리앙 튀랑으로 이어지는 일명 철의 포백으로 구성된 수비진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 부럽지 않은 막강한 수비력을 자랑하며 프랑스의 월드컵, 유로 메이저 대회 연속 제패에 크게 공헌했다.

2. 선수 경력

현역 시절

커리어는 몽펠리에 에로 SC에서 시작하여 약 8년 동안 뛰었는데, 이 기간 동안 쌓은 스탯이 수비수치고는 경이롭다 못해 경악스러운 251경기 84골이다.[4] 블랑은 83-84 시즌에 프랑스 2부 리그의 몽펠리에에서 데뷔했다. 그런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86-87 시즌 2부 리그에서 18골(...)을 기록하며 소속 팀 몽펠리에를 1부 리그로 끌어올리면서부터였다.

그 후 88-89 시즌부터 3시즌 연속 10골 이상(15,12,14골)을 기록하는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과시한 그는 89-90 시즌엔 몽펠리에를 프랑스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1989년 2월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되기 시작했다.

세트피스뿐 아니라 2:1 패스와 드리블 등의 여러 가지 스킬로 직접 침투하여 골을 넣는 것 또한 블랑의 전매특허였다. 다만 그 이후로는 한 팀에서 1~2년 정도밖에 머물지 못하고 저니맨마냥 이팀 저팀을 옮겨 다녀 몽펠리에 시절의 득점력을 다시는 보여주지 못했다.[5]

그후 91-92 시즌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SSC 나폴리로 이적했다. 세리에 A에서도 6골을 득점하며 '골 넣는 수비수'로서의 명성을 떨치기는 했지만, 그는 너무 자주 공격에 가담하고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용받지 못했고 한 시즌 만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 후 생테티엔과 옥세르를 거치며 기량을 회복한 그는 바르셀로나와 마르세유를 거쳐 99-00 시즌에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며 이탈리아 무대에 재도전장을 냈다.

그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입단할 당시에는 34세라는 나이와 나폴리 시절 실패한 경험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는 99-00 시즌 인테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론될 정도로 수비진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00-01 시즌까지 그는 리그 1경기를 제외하고 전 경기에 출장할 정도로 체력에도 문제가 없음을 증명했다.

2001년 여름, SS 라치오로 이적한 야프 스탐의 대체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를 1996년부터 지켜보고 있었는데 35세가 되어서야 영입할 수 있었다. 맨유에서 2시즌 동안 75경기 4골을 기록했고, 2002-03 시즌 EPL 우승을 경험하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 경력도 화려하다. 통산 97경기 16골을 기록했으며, 프랑스 대표팀의 1998년 프랑스 월드컵UEFA 유로 2000 연속 우승에는 그의 활약이 컸다.[7] 그러나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에는 뛰지 못했는데, 크로아티아와의 준결승전에서 상대 수비수 슬라벤 빌리치의 헐리웃 액션에 속은 주심에 의해 퇴장당했기 때문이다.[8]

국내에서는 단순히 '철의 포백'의 리더 정도로 언급되고 넘어가는 감이 있지만, UEFA 유로 1992, UEFA 유로 1996, UEFA 유로 2000 3개 대회 연속으로 베스트 11에 선정된 유일한 선수이다. 1990년대 최고의 센터백을 논할 때 마티아스 잠머, 프랑코 바레시, 야프 스탐과 함께 1티어로 언급되는 선수.[9]

3. 감독 경력

4-3-3의 정석을 보여 주었던 감독.

선수 생활을 마친 후 2007년 프랑스의 FC 지롱댕 드 보르도의 감독으로 부임, 3년 동안 수행하며 2009년 리그 우승으로 올랭피크 리옹의 독주를 막아 내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으며, 06-07, 08-09 리그 컵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후 레몽 도메네크 감독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끄러운 지도력을 보여준 뒤 경질되자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맡았는데, 당연히 짧은 경력 등으로 인해 잡음이 일었으나 이후 상당히 안정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하며 역시 새롭게 감독이 바뀐 브라질을 카림 벤제마의 결승골로 무너뜨리는 등 선전하고 있다. 사실 이미 호사가들 사이에선 프랑스의 새로운 젊은 피 중 한 명으로 유력했다.

몇몇 선수들과 불화설이 돌았던 UEFA 유로 2012 이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했으며, 후임으로 레 블뢰 시절부터 동료였던 디디에 데샹이 감독직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2013-14 시즌부터 PSG의 감독으로 새로 부임했다. 그리고 13-14 시즌 리그앙 우승에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고 다 이기다가 수비의 삽질로 첼시 FC에 챔피언스리그 4강을 넘기긴 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를 거둬들였다.

2014-15 시즌 중반까지 PSG 사상 최악의 문제점 1순위로 지목되었다.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과 현지 팬들에게 전술적 역량 미달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고 까이고 있으며 실제로도 공격적 전방 압박 축구, 점유율 축구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단점들만 완벽하게 부각시키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으며 현재 23라운드까지 리그에서 승점 동률로 공동 2위에 위치되어있지만 그야말로 선수들의 클래스빨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이해 못할 고집스런 선수 기용과 로테이션의 부재, 플랜B의 부재로 인해 주축 선수들의 체력 방전으로인한 경기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고 현재 리그앙의 거의 어지간한 클럽들은 전술적으로는 파리 생제르맹 FC의 현 전술에 완벽한 카운터 전술들을 다들 짜서 붙는 형국이다. 마르코 베라티, 살바토레 시리구와 같은 몇몇 선수들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현 순위도 꿈도 못 꿀 수준의 경기력으로 당장 PSG 팬들은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첼시에게 압살당하는게 아닌가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수준. PSG 팬들의 현 시점 공통적인 주제는 결국 기승전블랑 그놈의 카바니 윙 포워드 좀 그만 보면 안되나

특히 가장 비판받는 선수 기용 부분에서는 현재 체력 방전으로 심각한 경기력 저하를 보이고 있는 티아구 모타블레즈 마튀이디를 거의 매 경기 풀타임 출장시키며 더더욱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는 실정으로 미들진이 폭망하는 상황인데도 곧 죽어도 요앙 카바예아드리앙 라비오같은 선수들을 잘 기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재 PSG 미들진은 베라티에게 공수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첼시가 마음먹고 베라티를 부상으로라도 보내버린다거나 혹은 베라티가 지나친 혹사로 경기력이 자체 저하될 경우 블랑의 전술 구사 능력, 대처 능력으로는 첼시 미들진에게 완벽하게 압살당할 것이 분명한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독 역량에 대한 심각한 질타를 받고 있다.

이미 리그 경기에서 몇 차례 모습을 드러낸 구단주 타밈 빈 알 타니 국왕도 매우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광경이 TV에 종종 잡혔고 나세르 알 켈라이피 회장의 경우 그야말로 분노하는 표정이 자주 잡히는 것을 봐서 이번 시즌 끝나고 경질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있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예상과 달리 첼시를 누르고 8강에 진출했지만, 하필 만난 게 FC 바르셀로나[10], 챔스는 8강에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시즌 중반까지의 우려와 달리 리그, FA컵, 리그 컵을 싹쓸이하면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15-16시즌은 작년과 달리 초반부터 리그를 말 그대로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리그앙 역사상 최단기간 우승을 결정지었다. 근데 솔직히 상대할 만한 팀이 없다. 챔스 8강 진출은 덤. 물론 늘 8강까진 갔다는 것도 덤.

그렇지만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1차전에서는 비겼지만, 2차전에서 답이 없는 전술을 보여주며 패배했다. 중원의 핵심 of 핵심인 블레즈 마튀이디, 마르코 베라티가 전부 없는 상태에서조차 맨체스터 시티 FC를 상대로 점유율적인 우위를 선보였다는 점은 고무적이었지만 블랑 특유의 애무 축구로 인해 그저 그 뿐이었다는 것. 물론 조 하트의 신들린 선방이 없었다면 맨시티가 위험할 경기였던 것은 사실이나 이 2차전은 끝내 블랑 본인의 PSG에서의 축구가 반쯤은 선수 빨이었다는 걸 입증하는 꼴에 가까웠다.

현재 파리 보드진은 블랑을 3년이나 봐 줬으면 믿을 만큼 믿어준 셈이고 비록 리그와 리그 컵은 씹어먹는다지만 3년 내내 팬들한테 경기력으로 계속 욕을 먹고 있으며 계속된 챔스 8강 한계선은 마침내 보드진의 인내심을 바닥낸 것으로 보인다. 세비야 FC의 감독 우나이 에메리가 PSG 차기 감독으로 아주 유력한 상황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블랑 감독의 PSG 지휘는 조만간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우나이 에메리의 차기 감독 부임이 확정되어서 정말 그렇게 되었다.

... 그러나 후임인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챔스 8강을 넘어서기는 커녕 역사적인 역관광을 당하며 16강에서 광탈하고 심지어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던 리그앙 우승마저 AS 모나코 FC에게 내주면서 일부 재평가도 나왔다. 그래도 에메리는 다음 시즌 리그 우승과 컵대회 우승 더블을 이룩했지만...또 챔피언스리그 16강 광탈로 결국 아스날 FC로 떠나게 된다. 이어 투헬 역시 에메리에 이은 16강딱을 당하면서 계속 재평가를 받고있다...

4. 플레이 스타일

1990년대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답게 공수 모두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패스를 통한 빌드업이 아주 뛰어났고, 공격수의 압박을 가볍게 벗겨내는 간결한 볼 컨트롤과 숏패스 또한 돋보였다.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기에 공격 상황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여차하면 공격진 사이로 뛰어들어가 득점하곤 했다.

그는 장점이 참 많은 선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것은 공중볼 다툼 능력이다. 공중볼을 따내는 능력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190cm를 상회하는 큰 키와 완벽한 낙구지점 선정야구냐, 훌륭한 몸싸움 기술로 공중에서 상대를 찍어누르며 소유권을 가져왔다. 1998년 월드컵에서의 24회 공중볼 경합에서 23번 승리해 95.8%의 승률로 역대 단일 대회에서 15회 이상 공중볼 경합을 시도한 모든 선수 중 공중볼 다툼 승률 1위를 기록했으며, . 리그에서도 인테르 시절 잠깐 맞붙어야 했던 올리버 비어호프 정도를 제외하면 공중볼 싸움에서 그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타겟맨이 없었다.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그의 머리는 상대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였다. 이런 경향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경기가 바로 유로 2000 결승전. 톨도가 골킥을 찰 때마다 블랑이 완벽하게 위치를 잡고 머리를 가볍게 갖다대는 통에 이탈리아의 공격수들이 단 한 차례도 공중볼을 따내지 못했다.

단점은 느린 발. 월드클래스 리베로치고 발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바레시나 잠머 같은 경우에는 준수한 스피드까지 갖추었었는데 블랑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물론 다른 수비수들을 잘 지휘하여 그런 단점을 잘 커버했다.

5. 여담

  • 감독으로서 지휘한 대회에서 토너먼트 8강 그 이후를 뚫고 올라온 적이 없다. FC 지롱댕 드 보르도 감독 시절에 FC 바이에른 뮌헨유벤투스 FC를 제치고 조 1위를 하더니 급기야 챔스 8강까지 진출시키는 이변을 일으켰지만, 하필 같은 프랑스 팀인 올랭피크 리옹에 패하며 리옹 역사상 첫 준결승 진출이라는 업정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그 후 블랑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고 유로 2012에 참가하게 되는데, 여기서 팀을 토너먼트로 진출시키면서 지네딘 지단의 은퇴 이후 6년 만에 조별리그 통과라는 성과를 달성하지만 8강에서 스페인에 패해 탈락한다. 그리고 나서 맡게 된 팀이 PSG. 블랑은 PSG를 이끌고 챔스 3연속 8강이란 업적을 달성하지만, 3연속 8강에서만 탈락을 하고 결국 전무후무한 토너먼트 5연속 8강 탈락이라는 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어째 이 분이랑 비슷하다.

6. 경력

6.1. 선수 시절

6.2. 감독 시절

7. 수상

  • 1988 UEFA 유럽 21세 이하 선수권 대회 MVP
  • 1990 프랑스 올해의 선수
  • 1992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베스트 일레븐
  • 1996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베스트 일레븐
  • 1996 ESM 베스트 일레븐
  • 1998 ESM 베스트 일레븐
  • 1999 ESM 베스트 일레븐
  • 1999/00 인터밀란 올해의 선수
  • 2000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베스트 일레븐
  • 2004 Trophée d'honneur UNFP
  • 2007/08 프랑스 올해의 감독
  • 2008/09 프랑스 올해의 감독
  • 2014/15 프랑스 올해의 감독


  1. [1] 프랑스어에서 어말에 오는 c는 /k/'크'로 발음되지만, n 뒤에 올 때는 묵음이다.
  2. [2] 스위퍼 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3. [3] 골 넣는 수비수로 유명하다. 유로 1996 1골, 1998 FIFA 월드컵 1골, 유로 2000 1골로 수비수인데도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에서 3골이나 기록했다.
  4. [4] 참고로 역대 최강의 공격 가담 능력을 자랑했던 프란츠 베켄바워의 커리어 통산 스탯이 587경기 81골이다. 베켄바워와 마찬가지로 블랑은 '리베로'였다. 때문에 다른 수비수들보다 공격에 많이 관여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블랑의 스탯은 놀라운 수준이다. 원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코치들의 조언에 따라 수비수로 포지션을 전향하였다.
  5.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전했던 클럽들은 하나같이 빅 클럽들이었다.
  6. [6] 월드컵 역사상 1호 골든 골이었다. 골든 골 제도는 1998년 월드컵에 신설되었으나 2002 월드컵 이후 폐지되었다.
  7. [7] 특히 1998년 월드컵 16강 칠레전에서는 연장전에서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를 상대로 골든 골[6]을 터뜨리며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8. [8] 여담으로, 이것이 현역 시절 유일한 퇴장이다.
  9. [9] 릴리앙 튀랑, 파올로 말디니는 전성기인 1990년대에는 좌우 풀백이나 3백의 일원으로 더 많이 뛰었다. 전형적인 센터백으로 중용된 것은 30대로 접어들면서 운동 능력이 다소 떨어진 이후.
  10. [10] MSN 라인의 미칠듯한 공격력을 앞세워서 결국 2014-15 시즌 트레블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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