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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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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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올해의 신인상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르브론 제임스

에메카 오카포

2009년~2010년 NBA 정규리그 MVP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데릭 로즈

2012년~2013년 NBA 정규리그 MVP

데릭 로즈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2012년~2013년 NBA 파이널 MVP

더크 노비츠키

르브론 제임스

카와이 레너드

2016년 NBA 파이널 MVP

안드레 이궈달라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2008년 NBA 올해의 득점왕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2006년 NBA 올스타 MVP

앨런 아이버슨

르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트

2008년 NBA 올스타 MVP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2018년 NBA 올스타 MVP

앤서니 데이비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2012

2013

2016



2012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팻 서미트
마이크 슈셉스키

르브론 제임스

페이튼 매닝


2016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 인물

세레나 윌리엄스

르브론 제임스

J.J. 왓
호세 알투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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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고군분투 했던 클리블랜드 1기 시절

이룬것도 많고 말도 많았던 마이애미 시절

고향으로 돌아온 클리블랜드 2기 시절

커리어 최초로 서부에서 뛰게된 레이커스 시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18-2019시즌 선수단

0. 카일 쿠즈마 (F) · 1.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 (G) · . 라존 론도 (G) 2. 론조 볼 (G) · 3. 코리 브루워 (F) · 4. 알렉스 카루소 (G) ·
5. 조쉬 하트 (G) · 6. 랜스 스티븐슨 (G) · 7. 자베일 맥기 (C) · 9. 루올 뎅 (F) · 10. 스비 미카일룩 (G)
11. 마이클 비즐리 (F) · 14. 브랜든 잉그램 (F) · 15. 모리츠 와그너 (F) · 17. 이삭 봉가 (G) 23. 르브론 제임스 (F) 40. 이비카 주바치 (C)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No.23

르브론 레이먼 제임스 시니어
(LeBron Raymone James, Sr.)

생년월일

1984년 12월 30일 (35세)

국적 / 국가대표

미국

가족

배우자 사반나 제임스
아들 르브론 제임스 주니어[2004년생]
아들 브라이스 막시무스 제임스[2007년생]
딸 주리 제임스[2014년생]

출신지

오하이오애크런

출신학교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신장

204.5cm (6' 8.5")[4]

체중

113kg (250 lbs)[5]

포지션

스몰 포워드/파워 포워드[6]

드래프트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

소속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3~2010)
마이애미 히트 (2010~201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4~2018)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18~)

등번호

23번(2003-2010, 2014-)
6번(2010-2014)[7]

계약

2018-19 ~ 2021-22 / $153,312,846[2021-22]

연봉

2019-20 / $37,436,858

수상내역

NBA 챔피언(2012, 2013, 2016)
4× 정규시즌 MVP (2009, 2010, 2012, 2013)
NBA 파이널 MVP (2012, 2013, 2016)
12× All-NBA First Team (2006, 2008-2018)
16× NBA All-star (2005-2020)
3× NBA All-Star Game MVP (2006, 2008, 2018)
All-NBA Second Team 2회 (2005, 2007)
All-NBA Third Team 1회 (2019)
NBA All-Defensive First Team 5회 (2009-2013)
NBA All-Defensive Second Team (2014)
NBA Rookie of the Year (2004)
NBA All-Rookie First Team (2004)
Naismith Prep Player of the Year (2003)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별명

King James[9]
Chosen One, LBJ
Bron-Bron, The Akron Hammer
릅신, 릅갈통, 릅택동

SNS

1. 개요
2. 생애
2.1. 성장기
2.2. 떠오르는 유망주
4. 주요 기록
4.1. 정규시즌
4.2. 플레이오프
4.3. 파이널
6. 말말말
7. 어록
8. 기타
8.1. Taco Tuesday!!
8.2. 농구 관련
8.3. 농구 외
9. 출연작

1. 개요

KING JAME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의 농구선수. NBA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NBA 역사상 최고의 포워드로 현역이면서도 역사적인 기록을 써내려가며 마이클 조던 이후 최고의 농구선수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미국 여러 매체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전미 스포츠스타 인지도, 수입 순위에서도 항상 3위 이내에 들고 있다.

2. 생애

2.1. 성장기

르브론 제임스는 오하이오애크런에서 태어났다.[10] 제임스의 어머니인 글로리아는 16살 때 제임스를 낳았다. 글로리아는 아버지 없이 르브론을 키워야 했기에 집은 매우 가난했다.[11]

르브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르브론 본인은 "그런 사람 필요 없고 어머니만 있으면 되니 신경쓰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어머니 글로리아는 르브론을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고, 5살과 8살 정도의 시기에 집을 12번 가까이 옮기며 계속 전학을 하는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12] 르브론 말에 따르자면 어린 아이에게는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없던 르브론에게 아버지나 다름 없는 사람은 에디 잭슨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르브론의 어머니 글로리아의 남자친구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했고 마약 거래로 감옥을 다녀오는 등 르브론 모자에게 집안의 가장 같은 역할을 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잭슨은 르브론에게는 자상했고, 아버지가 없었던 르브론도 주위에서 나오는 말들은 무시하고 잘 지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잭슨은 WWE를 보여주면서 르브론과 친목을 다졌는데, 르브론은 레슬러 중에 마초맨을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이 에디 잭슨은 결국 르브론이 NBA에서 데뷔하는 것을 보지 못한채 글로리아 제임스와 헤어지는데 , 그 이유는 바로 $ 775,000를 담보 사기로 얻은 것에 있다. 이로 인해 에디 잭슨은 3년형을 선고 받고 헤어진다. 에디잭슨은 그 후 글로리아 제임스와 헤어지고 각종 음주 운전과 같은 사고로 휘말리는 중이다.

2.2. 떠오르는 유망주

그런 르브론의 딱한 사정을 눈여겨 본 것이 초등학교 미식축구부 친구의 아버지인 프랭크 워커였다. 애크런 주택관리국에서 일하던 워커는 글로리아가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동안 르브론을 키워주기로 했다. 르브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경험했고, 워커의 다른 세 자녀와 함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르브론은 개근상을 타는 모범생으로 바뀌게 되었다. 워커의 아내인 팸 워커는 글로리아에게 임대 주택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르브론이 농구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워커는 그를 농구 스쿨에 보내 제대로 농구를 배우게 했고[13], 르브론은 여기서 시언 코튼, 드류 조이스 3세, 윌리 맥기 등의 친구들과 키스 댐브럿, 드류 조이스 2세 등 훗날 고등학교 은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Fab4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르브론과 친구들은 점차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AAU(Amateur Athletic Union) 8학년 이하 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활약을 했지만 결국 67-68로 아깝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르브론은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SVSM)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애크런에서 농구 잘하는 흑인 학생은 부틀 고등학교에 가능 것이 관례였지만 부틀에서는 초단신이었던 드류 조이스 3세를 받는 것을 거절했고, 친구와 계속 농구를 하고 싶었던 르브론은 조이스 3세가 SVSM 입학을 결정하자 미련없이 부틀 입학을 포기했다. 주로 가톨릭계 백인들이 다니던 SVSM은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학교였지만 농구에서는 완전히 무명이었다.[14]

그러나 Fab4는 빈센트-세인트 메리를 1984년 이후 처음으로 주 챔피언으로 이끄는 것을 시작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며 지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점점 몸이 자라던 르브론의 기량은 이미 고등학생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시합 중에 비트윈더렉 덩크를 작렬시킬 정도였다. 그는 3년이나 연속으로 오하이오 주의 미스터 바스켓 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싹수가 보였다. NBA의 전설 중 하나인 빌 월튼[15]은 르브론 제임스가 한창 고등학교에서 뛸 시기에(졸업시즌이 아닌) 그의 경기를 보고 "저 아이는 지금 당장 NBA에 가도 주전으로 뛸 수 있다." 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슬램매거진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을 다 휩쓸었다.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농구 명문을 포기하고 무명 팀에 입학하여 그 팀을 전국 최강으로 만드는 만화 같은 이야기에 언론의 주목도는 엄청났다.[16] 이렇게 르브론은 고등학생 때부터 어지간한 프로선수들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 코비 브라이언트마이클 조던도 르브론에 관한 코멘트를 했으며, 오크힐 학교와 치른 경기는 13년 만에 고등학생 농구 시합이 미전역으로 방송될 정도였다.

워낙 매스컴의 관심이 폭발하다보니 위기도 있었다. 2003년 제임스의 어머니 글로리아가 제임스의 18번째 생일 때 Hummer H2를 선물로 주었고,[17] 제임스 자신도 고가의 저지를 선물로 받아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하긴 했지만, 다행히 2게임 결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화려한 고교시절을 보낸 제임스는 졸업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함께 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지만, 워낙에 초월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던 르브론은 더이상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해서 2003년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 드래프트 1픽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되면서 르브론은 NBA 선수가 되었다.

2.3. 선수 시절

  자세한 내용은 르브론 제임스/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르브론 제임스/플레이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주요 기록

데뷔를 매우 어린 나이에 했고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기 때문에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록을 쌓아 올렸다.

4.1. 정규시즌

  • 이 주의 선수상 61회
  • 이 달의 선수상 44회
  • 출전 시간 현역 1위, 역대 14위
  • 통산 득점 현역 1위, 역대 3위 [18]
  • 통산 어시스트 현역 2위, 역대 8위
  • 통산 리바운드 현역 6위, 역대 54위
  • 통산 스틸 현역 2위, 역대 15위
  • 평균 득점 현역 1위, 역대 4위 (27.2)

4.2. 플레이오프

  • 출전 시간 역대 1위[24]
  • 통산 득점 역대 1위[25]
  • 통산 어시스트 역대 3위
  • 통산 리바운드 역대 7위[26]
  • 통산 스틸 역대 1위
  • 통산 블락 역대 19위
  • 통산 턴오버 역대 1위[27]
  • 자유투 성공 역대 1위
  • 필드골 성공 역대 1위
  • 3점슛 성공 역대 2위
  • PER 평균 3위 (28.03)
  • VORP 역대 1위 (29.38)[28]

4.3. 파이널

  • 출전 시간 역대 3위
  • 통산 득점 역대 2위
  • 통산 어시스트 역대 2위
  • 통산 리바운드 역대 5위
  • 통산 스틸 역대 2위
  • 통산 블락 역대 6위
  • 필드골 성공 역대 3위
  • 파이널 통산 PER 역대 4위(27.3)

5. 사건사고 및 논란

  자세한 내용은 르브론 제임스/사건사고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말말말

From Saint Vincent-Saint Mary High School and AKRON, Ohio, Number 23, LeBRON JAMES![29][30]

7. 어록

This fall, man, this is very tough, this fall, I'm going to take my talents to South Beach and join the Miami Heat.

올 가을에는……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올 가을, 저는 제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가서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합니다.[31]

In Northeast Ohio, nothing is given. Everything is earned. You work for what you have.

I’m ready to accept the challenge. I’m coming home.

오하이오에서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쟁취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위해 우린 뛴다.

나는 이러한 도전에 응할 준비가 됐다. 난 집에 돌아간다. [32]

"나의 실패를 고대하던 놈들은 그래봤자 내일 일어나면 이것과 상관없이 뼈빠지게 일하고 현실문제에 치여 살겠지만, 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그들은 잠시동안 이것으로 위안을 삼겠지만, 히트는 그들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어느 순간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33]

CLEVELAND! This is for you![34]

8. 기타

8.1. Taco Tuesday!!

르브론이 LA이적후부터[35] 하는 르브론의 인스타그램 명물 중 하나. 매주 화요일 혹은 타코를 먹는 날에는[36] 웬만해선 빠지지 않고 가족, 혹은 팀원들과 타코를 먹을때마다 외친다.

대략적인 패턴으로는

1. 잡설. 특히 엄살 피우는 소리를 자주 한다. 힘이없다든지...

2. SIKE!![37] 오늘이 무슨날이냐!

3. 카메라를 전환해 테이블의 게스트나 부엌의 가족들에게 what day is it today!?를 묻기.[38]

4. 카메라를 다시 전환후 IT'S TACO TUESDAY!!!라고 크게 외친다.

5. 세상 경박한 목소리로 깔깔깔깔깔깔깔깔!

대략 이런식. 그 유구한 디스코그라피역사를 보건대...

가장 기본적(?)인 구조

모교 행사에서도 한다!

스테이플 센터를 가득 메우는 타코 튜스데이 챈트

르브론이 없으면 아이들이 한다

갈매기도 했다!

네이마르도 했다!대체 왜..?[39]이후 릅신의 감미로운 R&B버전도 있다

코로나도 타코 튜즈데이를 막을 수 없다

결국은 미고스가 타코 튜스데이로 노래까지 만들었다(...)

8.2. 농구 관련

  • 조던과의 비교가 잦지만 르브론 본인은 조던빠에 가깝다. 조던빠 기질이 어느정도냐면 르브론은 원래 왼손잡이인데 조던이 오른손으로 슛을 쏘기 때문에 슛을 할 때 오른손으로 슛을 쏜다. 또한 본인이 조던하고 맞붙는 합성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쓰고 있을 정도.'조던 막고 르브론 뚫고' 누구의 배경화면일까 2009년 11월 경에는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였던 23번을 NBA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어서도 마이클 조던을 폄하하는 발언을 오히려 하지 않고 마이클 조던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발언을 주로 하는 편이다. 코비를 필두로 한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슈팅 가드들이 조던의 거대한 그늘에 시달리며 "존경은 하지만 난 조던이 아니다." 는 식으로 조던과 매칭되는것에 대해 상당히 진저리를 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세대가 다르고 스타일도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그런 압박은 그다지 받지 않는 편인듯. 오히려 조던은 자신의 동기부여가 된다고 발언하는 편이다.
  • 새가슴 논쟁에 자주 시달리는 편인데 2010~2011시즌 피크에 달했던 시기에 하필이면 역대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로 꼽히는 조던과 비교되면서 조롱받아야 했다.[40] 하지만 바로 다음시즌 2011-2012시즌을 기점으로 플레이오프와 파이널에서 이런 논란을 일축할 만한 대활약을 선보이며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 가라앉았다. 특히 2015-16 파이널에서 3-1 상황에서 3연승을 하며 역전승을 거두고 특히 7차전에서 클러치 상황의 블락까지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가슴 논란을 완전히 떨쳐버렸다.
  • 실제론 르브론은 마이애미 시절을 제외하곤 리그 최고 수준의 클러치 플레이어였다.2000년대 이후 플레이오프 버저비터 위닝샷 갯수 독보적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고[41] 4쿼터 득점 역시 매시즌 상위권을 차지한다. 다만 클러치 상황에서 르브론은 점퍼보다 자신의 강점인 돌파를 위주로 플레이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약하단 느낌이 없지않다. 다만 18-19시즌을 기점으로 전체적인 기량 하락과 함께 클러치 능력도 다소 하락한 편.
  • 카이리 어빙과의 케미가 워낙에 좋았고, 흡사 유사부자관계수준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2014-15 시즌 초반에는 르브론과 카이리 어빙 간에 볼배합 문제로 인해 손발이 안맞고 그로인해 르브론이 공격 과정에 별 다른 적극성을 띄지 않는 모습을 연출하자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이때 모 커뮤니티의 한 르브론 팬이 "르브론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다."라며 별 문제없는 사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이를 본 NBA 갤러리에서 조롱하는 의미로 '르버지'라는 별명을 만들어냈다. 아들빙이라는 별명도 이러한 맥락으로 파생된 것.
  • 경기중에 멘붕한 모습이나 오프시즌의 행사 참석 모습을 두고 NBA 갤러리에서는 짤방제조기, 개념글 치트키로 취급받고 있다(...). 헤이 제임스!
  • 캐벌리어스를 떠났을 때의 움직임이 이미 계산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르브론의 샐러리를 안고는 프리 에이전트를 끌어들이기에는 어느정도 무리가 있고, 클리블랜드 자체가 스몰마켓이라 대스타가 오지 않는다는 점도 있어서 르브론을 가지고도 캐벌리어스는 거듭거듭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었다. 게다가 르브론이 억지로 탱킹을 하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은 캐벌리어스가 상위 픽을 받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르브론이 떠남으로 팀이 자유롭게 탱킹을 하고 상위 픽으로 젊은 유망주를 뽑은뒤 어느정도 안정된 후에 르브론이 컴백하면 자연스럽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마이애미 시절처럼 빅3나 최소한 스탁턴-말론의 픽앤롤 듀오를 만들수 있었기 때문.실제로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캐벌리어스에게 어빙을 뽑은 픽이 상당히 낮았는데 어빙을 뽑은점이마저도 음모론이 나온다이나 르브론이 떠나는 과정에서 엄청 욕을 먹었다는 점에서 결과론적인 말에 가깝다. 팀 전력을 강화시킬 목적이라면, FA로 떠나는것보단 자신을 대권후보 팀에 트레이드 매물로 쓰는게 더 나았을 것이다. 르브론 자신이 트레이드 카드였다면 몇년치 1라운드 유망주와 벤치 에이스 다수는 기본으로 받았을 터. 또한 팀에 복귀할 생각이었다면 더 디시전같은 삽질로 욕을 굳이 처먹을(...) 필요도 없었다.[43]
  • S급 선수임에도 파울콜이 짠편이는 의견이 있다. 공격비중의 절반이 돌파인데도 반칙을 잘 안불어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17-18 시즌에는 유독 그런 경향이 강해졌는데, 2017년 11월29일 열린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파울을 너무 안불어주자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재밌는것은 그의 농구 커리어 15년 동안 최초의 퇴장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트레블링 콜은 상당히 후한 편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많다. 다만 파울콜이 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이 농구 커리어 15년동안 퇴장당하지 않았다는 건 르브론이 수비할 때는 반대로 거의 파울이 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비를 열심히 하면 파울은 피할 수가 없기 때문. 게다가 르브론에 대한 파울콜이 짜다는 근거가 빈약한 것이 르브론은 슛 갯수에 비해 자유투를 상당히 많이 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르브론이 야투를 가장 많이 쏠때가 05-06시즌으로 23개 정도였는데, 이때 자유투를 10.3개, 07-08시즌엔 21.9개 야투를 쏘면서 자유투 10.3개를 던졌다. 2.2:1, 2.1:1 정도의 비율이다. 소위말하는 "자유투 삥뜯기"로 유명한 자유투를 얻어내는 비중이 심한 제임스 하든이 2017-19시즌에 야투 20.1개/자유투 10.1개를 기록했다. [44] 물론 하든의 자유투 비중이 더 높긴 하지만, 하든은 어거지로 자유투를 만들어낸다는 논란이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자유투를 많이 쏘는 선수란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위의 수치를 보면 르브론이 닥치고 돌파할 때는 하든에 버금갈 정도로 자유투를 많이 얻어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커리어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자유투 갯수가 적어지는데 이는 위의 플레이스타일 항목에서 장점으로 적어놨듯이 중거리슛의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돌파의 비중이 많은데도 하든보다 반칙을 잘 안 불어주는 이유는 수비수들이 하든같은 선수들에 비해 르브론에겐 반칙을 적게 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르브론은 파워포워드의 덩치로 가드처럼 달리는 선수이고, 빅맨이 아닌 이상, 아니 빅맨이어도 그의 돌파를 막기 힘들다. 파울해봤자 앤드원 적립이니까. 실제로 르브론이 돌파할 때는 많은 수비수들이 수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애초에 르브론은 플레이스타일상 하든보다 자유투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하든은 멸칭에 가깝게 "자유투 삥뜯기"로 불릴 정도로 어거지에 가깝게 자유투를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그가 완전히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컨택을 유도하며 들어갈리가 없는 슛을 쏘는 것도 가끔 파울콜이 불릴 정도. 이 때문에 하든은 파울이 잘 안 불릴 경우 경기를 말아먹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정상적인 자유투얻어내기를 할 때도 앤드원 플레이보다는 투샷, 쓰리샷이 많다. 포인트는 이렇다보니 하든은 파울콜 이후 대부분 슛이 안 들어가다보니 같은 수의 파울을 얻어내도 자유투 갯수가 당연히 2개 이상씩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르브론은 하든보다 압도적인 파워와 마무리 능력으로 파울 이후 슛이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고, 따라서 앤드원이 더 많다. 당연히 파울 갯수 대비 자유투는 하든보다 르브론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정도 자유투를 쏘는 것이다. 르브론에게 파울콜이 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르브론이 돌파할때마다 거의 매번 파울당했다는 어필을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치를 봐도, 경기를 봐도 그가 파울콜이 짜다고 볼만한 근거는 빈약하다. 진짜 파울콜이 짜다면 저렇게 많은 자유투를 얻어낼 수도 없고, 수비를 등한시하지 않는 이상 데뷔 후 15년동안 퇴장당하지 않을 수도 없다. 또한 트레블링의 경우 심판들이 대놓고 봐주고 있을 정도로 심판들이 느슨하게 콜을 부는게 르브론이다.

8.3. 농구 외

  • 그리 늙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탈모가 거의 완전히 진행되었고, 그때마다 점점 헤어밴드가 올라가고 있다. 최근 아들이 이발하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머리가 매우 부럽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탈모가 스트레스인듯하다. 최근에는 머리를 심은듯 하여 아래의 사진과 같은 참사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 2014년 ESPN 기사, "LeBron James' Greatest Weapon Is His Brain"과 르브론의 팀 동료들, 측근들에 따르면 사진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45] 가끔 옛날 농구 경기를 틀어놓으면, "어, 97년 NBA 파이널 2차전이네," 라며 매번 알아맞추고, 미식축구 경기를 볼때면, "어, 저 코너백은 몇년도 몇번째로 어떤 팀에 드래프트됐어" 라며 세세한 점들까지 기억해낸다고 한다. 함께 비디오게임을 해도 르브론 혼자 모든 기술들을 외워서 매번 이긴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기억력은 2007년 파이널 등 자신이 실패했을 때 까지의 기억까지도 너무 생생나게 기억나게 하여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잦았다고도 한다. 노비츠키와 댈러스에게 패배한 2011년 파이널이 그 대표적인 경우. 2011년 이후로 르브론이 플레이오프 때면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전부 끊는 것도 기억력이 이유라고 한다. 관련 링크 근데 가끔 불리한 건 까먹는 모습을 보인다.
  • NBA가 사무국과 선수노조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2011 시즌 일부를 쉬게 되자 부업을 찾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난데없이 10월 초에 트위터를 통해 프로 미식축구리그인 NFL의 FA계약 마감일을 물어보면서 뉴스거리를 만들더니, 1주일 후엔 시애틀 시혹스의 피트 캐롤 감독과 대화를 주고받았다.[46] 물론 진짜 미식축구로 전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격렬한 스포츠를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NBA 커리어는... 그래도 사람들은 인류최종병기 수준 피지컬의 타이트엔드를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NFL의 캘빈 존슨, NBA의 드와이트 하워드 등과 함께 다음 이종까페나 격갤같은 이종격투기 커뮤니티에서 가끔 발생하는 피지컬 괴물(격투기능력이 아니라 순수한 운동능력을 말한다) vs놀이 떡밥에 고정 등판하는 선수.
  • MLB 뉴욕 양키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2007년 뉴욕 양키스와 고향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가 열렸을 때,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제이콥스 필드(2008년부터 프로그레시브 필드로 개명)에 양키스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 양키스를 응원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고향팬들에게 욕을 왕창 얻어먹었다. 절친한 관계인 CC 사바시아밀워키 브루어스에서 FA로 풀리자 양키스로 가라고 권유한 것도 바로 르브론. 비슷하게 사바시아도 르브론한테 뉴욕 닉스로 가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 리버풀 FC의 서포터이다. SNS로도 종종 리버풀을 응원하는 글을 올리고 2011년에는 안필드를 방문해서 리버풀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받기도 했다. 또한 심지어 리버풀에 대한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다.
  • 2013년 9월 14일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 사반나 브린슨과 결혼했다. 사실 진작에 자식도 둘 있는 사이.
  • 특이하게도 자신이 직관한 클리블랜드의 모든 경기가 승리한다. 많은 경기에서 승리한다. 예를 들어 2016년 8월 19일에는 고향 연고지 야구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경기를 관람했는데, 이날 인디언스는 끝내기 동점 홈런과 끝내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승리했다. 10월 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보스턴 레드삭스2016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도 찾아왔으며, 이날 인디언스는 선발 코리 클루버의 호투와 타선의 힘으로 승리하여 시리즈 전적 2:0을 만들었다는 것이다역쉬 릅신.근데 구단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일지도 모르는2016년 월드 시리즈 7차전은 직관을 갔는데도 졌다. 그리고 인디언스는 3:1리드를 날렸다
  • 르브론 제임스의 아들 르브론 제임스 주니어는 2004년 10월 6일생이며 아버지와 같은 고향에서 태어났다. 농구실력이 동년배들보다 뛰어나다. 시야와 스텝백 점퍼, 드리블 모두 괜찮으며 르브론 제임스는 어렸을 때 자신보다 드리블, 슛이 좋다고 말한바 있다. 12살의 나이에 명문 듀크대, 켄터키 대학교에서 장학금 제의를 받았다 한다.
  • 클리블랜드 2기부터 수염을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는데 17-18시즌에서의 수염들이 미국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수염과 판박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건강을위해 매일 조금씩 와인 반잔한다고한다(...)[47]
  • 미국내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디시젼 쇼 등을 통해서 안 좋은 이미지가 약 4년간 있었으나 『아임 커밍 홈』을 통해서 클리블랜드에 복귀하고 그 과정에서 극적인 역전우승을 펼치면서 이미지가 개선되며 인기도 늘었다. 그러나 인기많은 선수 답게 안티지분도 상당하다.

2018년 MBLM의 BFF 마케팅연구통계 미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유명인 10인

1. 버락오바마

2. 미셸 오바마

3. 드웨인존스

4. 리아나

5. 비욘세

6. 르브론 제임스

7. 오프라 윈프리

8. 톰 행크스

9. 빌 게이츠

10. 세레나 윌리엄스

남성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명인 10 명

1. 르브론 제임스

2. 버락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빌 게이츠

5. 스테픈 커리

6. 도널드 트럼프

7. 톰 행크스

8. 세레나 윌리엄스

9. 리아나

10. 미셸 오바마

여성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명인 10 명

1. 미셸 오바마

2. 버락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리아나

5. 비욘세

6. 오프라 윈프리

7. 톰 행크스

8. 빌 게이츠

9. 세레나 윌리엄스

10. 르브론 제임스

  • LA 레이커스로 이적해서 클리블랜드에서 반응이 안좋을거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그렇지 않다. 헤어지는 과정이 좋았기 때문에 클리블랜드에서는 헌정영상을 틀어줄 정도로 사이가 좋다.[48] 다만 이적 후에 템퍼링 논란 등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며 이미지가 깎이고 있다.
  • 2 Chainz가 2019년에 발매한 신작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음악도 정복하실려는 릅신

  • 르브론은 과거에 자신의 아들과 동시에 NBA에서 뛰는 것이 소원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야구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현역으로 뛰거나, 그리피 부자처럼 팀동료로 뛰는 경우도 있지만, 선수생명이 야구보단 짧은 NBA에선 아직 한번도 없었다.[49] 르브론이 35세가 되는 19-20시즌에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일찍 득남을 해 장남이 2004년 10월 6일생이라 꽤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르브론의 장남 르브론 제임스 주니어는 애칭이 "Bronny"로[50] 19-20시즌 기준 9학년으로 4년제 고등학교의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 두 가드 포지션 모두에서 뛰며 현재 188cm로 알려져있는데, 또래들보다 실력이 월등하며 심지어 초등학생이던 2015년에 이미 대학에서 농구장학금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물론 이건 아버지의 유명세 때문이지만. 현재 규정에 따르면 선수가 드래프트 되려면 드래프트되는 해 기준으로 만 19세가 되어야 한다. 즉, 2019년 드래프트라면 2000년생까지 드래프트될 수 있다. [51] 즉, 브로니는 빠르면 고등학교에 졸업한 직후인 2023년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서를 낼 수 있다.[52] 그렇다면 이론상 브로니가 NBA에서 뛸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즌은 2023-24시즌이 된다. 이 시즌은 르브론의 21번째 시즌이 된다. NBA역사상 가장 많은 시즌을 뛴 선수는 빈스 카터의 22시즌, 21시즌을 뛴 선수는 로버트 패리시, 케빈 윌리스, 케빈 가넷, 디르크 노비츠키인데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는 44세까지 뛴 윌리스이다.[53] 르브론의 실력과 내구성을 감안하면 별다른 이상이 있지 않는 이상 38-39세인 21번째 시즌까지 뛰는 건 충분히 현실성이 있고, 사실 39-40세인 22번째 시즌이나 그 이상을 뛰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아들이 대학에서 1년 경험을 쌓고 와도 아직 현역이게 된다. 물론 이 경우 슈퍼스타로 은퇴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조력자로서 줄어든 역할을 감수해야 한다.시간이 지나 2019년, 아들 브로니와 소속 고등학교가 자신의 모교를 상대로 하는 경기에서 전세기를 타고 오하이오까지 건너가 열정적으로 아들을 응원했다. 기사.
  • 르브론의 우승을 가장 많이 좌절시킨 스티브 커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리스트 시절 릅빠의 모습을 여러번 보여줬는데 우승 전이라 올타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까지 뽑히지않던 르브론을 뽑거나 우승2회때부터 올타임 탑 5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감독시절에도 파이널에서 듀란트와 르브론을 이긴 후 듀란트가 최고냐 르브론이 최고냐 논쟁이 한창이던 때 인터뷰에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르브론이 최고라고 하는 등 계속해서 팬인증을 하고있다
  • 딸 쥬리 제임스가 유튜브를 개설했다. 르브론도 간간히 출연 중이다.#

9. 출연작

  • 모어 댄 어 게임(2008) - 주연, 기획
  •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2015) - 본인 역[54]
  • 스몰풋[55] - 역
  • 나이키 광고 <르브론 제임스의 공포의 방(총 3편)> - 해당 광고는 <파천일검> 작가 아신(김영헌)에 의해 만화화되어 전국 나이키 매장에 배포되었다. 영어 및 중국어판으로도 번역됨.

  1. [2004년생] 1.1
  2. [2007년생] 2.1
  3. [2014년생] 3.1
  4. [4] NBA,ESPN,바스켓볼 레퍼런스 기준,2019년 맨발 신장 출처
  5. [5] 고3때는 104kg (230lb), 신인때부터 히트 합류전까지 108.8kg (240lb), 히트 합류 후 117.9kg (260lb)였고 최고 많이 나갈 땐 265lb(120kg)까지 나갔다. 그 후에 2014년 여름에 캐밸리어스에 재합류하면서 113kg까지 다시 감량하며 현 체중으로 변경됨.허나 1819시즌에 사타구니 부상을 입었을때 체중이 127kg까지 불었지만 오프시즌에 감량을 했다.
  6. [6] 실제 플레이를 보면 포인트 가드에서, 스몰 포워드에서 파워 포워드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 NBA 신인때는 거의 슈팅 가드로 뛰었고 2016-17 시즌부터는 거의 파워 포워드로 뛰고 있다.
  7. [7] 2019-20시즌에 이적생 앤서니 데이비스를 배려하여 등번호를 다시 6번으로 교체할 예정이었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무산됐다.
  8. [2021-22] 8.1 Player Option $41,002,273
  9. [9]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교에서 1학년으로 재학하던 시절 놀라운 성적을 기록한 후 붙여진 별명. 1학년 시절, 즉 고교무대에서 바로 데뷔를 한 후 무려 29.0 PPG 8.3 RPG 5.7 APG를 기록했다. 참고로 SVSM고등학교를 포함한 미국의 공립고등학교들은 9-12학년, 즉 고1~4년까지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이때문에 절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고등학교를 4년 다닌다. 즉, 르브론은 한국으로 따지면 중3나이 때 자기보다 1~3살 많은 형들 상대로 저런 기록을 낸 것이다.여러모로 얻게된 이 별명에서 르브론 시리즈의 로고가 영감을 받았는데 겉으로 보면 왕을 상징하는 단순한 왕관 모양이나 자세히 보면 왕관이 그의 이니셜인 LBJ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0. [10] 스테판 커리와 같은 병원 출생이라고 한다.
  11. [11] 미용실을 하던 홀어머니 프레다 제임스와 함께 살 때는 생활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르브론의 세 살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프레다가 세상을 뜨자 금방 가세가 기울었다. 스무살 남짓한 미혼모가 친척도 없이 아이를 키우기는 힘들었던 것.
  12. [12] 글로리아가 거의 삶을 놓아 버리는 바람에 르브론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1년에 80~100일씩 결석하곤 했다.
  13. [13] 조던이 르브론을 막는 방법에 대해 "르브론은 왼쪽으로는 돌파 안하니까 나는 르브론을 왼쪽으로 몰아서 슛하게 만들겠음." 이라고 말했는데, 르브론은 여기에 대해 "워커 선생님이 나에게 왼손 레이업을 가르쳐 주었다." 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올랜도 원정 경기에서 깨끗하게 왼쪽 돌파로 위닝샷 성공.
  14. [14] 여담으로 이때 SVSM 농구부 주장을 맡고 있던 사람이 현재 르브론의 매니지먼트 회사 CEO인 매버릭 카터다. 카터는 어린 시절 르브론의 이웃집에 살면서 서로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적도 있었다.
  15. [15]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우승 멤버이며, 다재다능한 것이 특징인 센터
  16. [16] 훗날 르브론이 디시전 쇼를 통해 빅3를 결성한 것에 대한 반감이 컸던 이유는 물론 쇼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컸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이클 조던처럼 본인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량 면에서만 조던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실력과 배경 모든 면에서 엄청난 캐릭터의 탄생이 예고되어 있었던 것.
  17. [17] 자동차를 사준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당시 글로리아의 신용등급으로는 받을 수 없는 액수의 대출을 받아 차를 구입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은행으로서는 머지 않아 백만장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 르브론의 미래 가치를 고려해 대출을 해 준 것. 하지만 이는 선수가 100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규정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었다.
  18. [18] 2018-19 NBA 시즌 샌안토니오와의 경기에서 덕 노비츠키를 제치고 현역 1위에 올랐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어렵지 않게 2위 칼 말론을 제치는 것이 가능하다.
  19. [19] 시즌 7차례 1위, 30 이상만 5차례
  20. [20] 1위는 마이클 조던
  21. [21] 시즌 9차례 1위
  22. [22] 1위는 마이클 조던
  23. [23] 3년차 부터 단 한번도 MVP 투표에서 5위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24. [24] 2018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총 9천 870분 출전 시간을 기록했는데, 2018 NBA 파이널에서 4경기를 치르면서 역대 최초로 '포스트시즌 1만 분 출전 시간' 을 기록했다.
  25. [25] 16-17 시즌을 기점으로 마이클 조던을 제쳤으며 아직 르브론의 기량을 생각한다면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질 듯 하다.
  26. [26] 페이스를 보면 5위권 진입 가능
  27. [27] 메인 볼핸들러의 숙명이기도 하고 그만큼 상대팀의 르브론 견제가 많았다는 뜻이다.
  28. [28] 2위 조던과 무려 7 가까이 차이가 난다.
  29. [29] 전통의 소개 문구.
  30. [30]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히트 시절을 뒤로하고 클리블랜드로 다시 돌아온 2014-15 시즌 개막전 소개 문구에서는 Diddy의 Coming Home을 같이 틀었다. 유튜브 댓글을 보면 이 소개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흘렀다는 댓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르브론에 걸맞는 가사가 심심찮게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1. [31] 2010년 7월 9일, The Decison show
  32. [32] 2014년 7월 11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ports Illustrated)에 실린 르브론 제임스의 편지 中 마지막 문구들
  33. [33] “At the end of the day, all the people that was rooting on me to fail, at the end of the day they have to wake up tomorrow and have the same life that they had before they woke up today, They have the same personal problems they had today. I’m going to continue to live the way I want to live and continue to do the things that I want to do with me and my family and be happy with that. They can get a few days or a few months or whatever the case may be on being happy about not only myself, but the Miami Heat not accomplishing their goal, but they have to get back to the real world at some point.”
  34. [34] 2016년 우승 직후
  35. [35] 원래 타코가 미국의 인기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히스패닉계가 특히나 많은 LA 및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더욱 인기를 누린다. 본래 타코 튜즈데이의 기원이 캘리포니아 주에서 타코 전문점이 매주 화요일에 2달러의 타코를 1달러에 염가판매하자 번져나간 유행이다. 우리나라가 일요일에 짜파게티를 연상하듯이 이후 미국인들에게 '매주 화요일=타코 먹는 날'이 되었다. 많은 NBA팀들은 110점을 넘기면 관객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는데, 레이커스의 홈인 스테이플스 센터의 경우 관중 전원에게 무료로 타코를 제공한다.
  36. [36] 이때는 세계 어딘가에는 화요일이겠지 같은 드립을 친다.
  37. [37] 원래는 psych로 써야한다. 쉽게말해 뻥이야! 정도?
  38. [38] 브로니나 브라이스, 주리같은 아이들은 잘 받아주는데, 유독 아내인 사반나는 잘 안받아준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있다든지, 남편처럼 절대 경박하게 안하고 짧게 타코? 정도만 해준다.
  39. [39] 네이마르는 코비의 헬기사고 소식을 듣고 골 세레머니로 코비를 추모하기도 했고, 휴식기에 NBA를 보러오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40. [40] 다만 당시엔 꼭 조던이 아니더라도 상대했던 팀의 에이스가 클러치에 강한 일명 사기츠키. 더크 노비츠키였기에 이런식의 비교는 피할수 없었을 것.
  41. [41] 2018년 기준 5개
  42. [42] 넷 다 드림팀에서 같이 뛴 적도 있고 사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NBA 같은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강한 곳에서 유별나게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 넷 중 한명은 커리어가 끝나기 전에 한번 서로 뭉치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그러나 웨이드가 은퇴를 해서서...
  43. [43]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르브론이 디시전 쇼를 한 계기가 있다. 당시 쇼 방송을 했던 방송사가 르브론의 FA 상황이 상당한 화젯거리가 된 탓에 방송 기부금은 불우 이웃을 돕는 데 쓴다고 르브론을 꼬드겼고, 르브론은 이 꼬드김에 넘어가서 디시전 쇼를 하게 된 것. 르브론이 먼저 계획한 쇼가 아니였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에 눈이 멀어서 고향 팬들을 생각하지 않고 방송을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게다가 기부를 하고 싶었으면 대부분의 농구선수들이 하는 자선경기나 다른 이벤트, 심지어 본인이 사비를 털어서 기부하는 등 수많은 방법이 있었으나, 굳이 이런 쇼를 하기로 한 것이다. ESPN이 아이디어를 냈다고는 하나 르브론의 고용주는 물론이고 스폰서도 아닌 ESPN은 르브론에게 영향을 미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르브론도 신인도 어린 선수도 아닌, 비지니스 마인드가 투철한 베테랑 NBA선수인데 누가 누굴 꼬드긴단 말인가? 정확히는 꼬드겼다기보다는 제안했다고 해야 한다. 결국 이 아이디어를 낸 건 아니라고 하나 이런 방식의 쇼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이고, 이에 따른 책임도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44. [44] 초창기에 돌파를 통해 엄청난 갯수의 자유투를 얻어내던 마이클 조던은 가장 자유투를 많이 얻어낼때가 야투 27.8개당 11.9개의 자유투, 2.3:1의 비율이었고 통산 2.8:1 정도의 비중이었다. 물론 조던은 지금보다 심판콜이 빡센 시절에 뛰었다.
  45. [45] 원문은 photographic memory인데, 사실 이는 직관기억력 (eidetic memory)를 지칭하는 데도 쓰이지만 구어체에선 "마지 사진처럼 엄청나게 기억력이 좋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영화 배트맨 비긴스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스태프들이 크리스챤 베일의 기억력을 칭찬하면서 "He has photographic memory"라고 언급한다. 창작물의 영향인지 완전기억력이나 직관기억력 등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 단어를 쓸때는 그냥 "말도 안되게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애초에 직관력은 과거에 잠깐 본 시각적 이미지를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는, 보고된 사례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과학적으로 실존한다고 100% 증명은 아직 되지 않은 능력이다. 그런데 후술되는대로 누가 언제 드래프트되고 이런 거는 시각적 이미지와는 큰 상관이 없다. 베일이나 르브론이나 그냥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46. [46] 캐롤 감독은 곧바로 "르브론"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제작하기까지 했다.
  47. [47] 르브론만 특이한건 아니고, 레드와인이 심폐 기능에 좋다는 이유로 NBA 대다수 팀들은 선수에게 매일 레드와인 반잔을 마실것을 권유하곤 한다.
  48. [48] 17-18 파이널 까지의 과정은 어빙의 이적후 사실상 르브론 개인의 힘으로 올라간 시리즈였기 때문에 더이상 뭘 어떻게해도 골스를 이길 수 없다는것이 클리블랜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49. [49] 2대가 모두 NBA에서 뛴 경우는 여러번 있었다. 농구 전설 릭 베리는 아들 다섯 중 세명을 NBA선수로 키워냈으며 (이들 중 가장 성공한 이는 브렌트 베리로 NBA 우승 2회, 덩크 챔피언 등에 오르며 괜찮은 롤플레이어로 14년 커리어를 보냈다) 아들이 레전드가 된 걸로 유명한 조-코비 브라이언트 부자, 델커리-스테판 커리 부자, 아버지의 명성에 비해 아들이 다소 아쉬운 패트릭 유잉-유잉 주니어, 팀 하더웨이-하더웨이 주니어 부자, 존 스탁턴-데이비드 스탁턴, 빌 월튼-루크 월등 등이 있다.
  50. [50] NBA는 애칭을 공식이름으로 삼는 경우도 많으므로 (마누 지노빌리, 네네, 페니 하더웨이 등) 훗날 NBA에 진출할 시 너무 유명해진 아버지와 쉽게 구분하기 위해 아예 공식이름을 Bronny James라고 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제임스 주니어는 2020년 4월 기준 아직 15세임에도 준유명인사라 이미 위키피디아 페이지가 있는데, 여기선 아예 문서명이 "Bronny James"고 이름 소개에선 LeBron Raymone "Bronny" James Jr.라고 되어 있다. 마치 매직 존슨의 페이지가 Earvin "Magic" Johnson이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게 배우 마이클 B. 조던을 누구도 마이클 조던이라고 지칭하지 않듯이 (브로니가 루키시즌부터 MVP와 득점왕, 우승을 싹쓸이하지 않는 이상) 농구계의 그 누가 "르브론"이란 이름을 듣고 아버지가 아닌 아들을 먼저 연상하겠는가? 최소한 농구계에선 다른 이름을 쓸 수밖에 없다.
  51. [51] 드래프트 당시엔 18세여도 이 해에 태어나기만 하면 가능하단 소리. 과거 만18세가 나이제한이었을때 17살인 코비 브라이언트, 앤드류 바이넘 등이 뽑힐 수 있었던 이유다.
  52. [52] 많은 이들이 나이 제한 변경 이후 고졸선수들이 없어졌다고 오해를 하는데, 대부분의 미국선수들은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에 만18세가 되기 때문에 1년을 대학에서 보내는 것 뿐이지 고졸 선수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다. 실제로 2000년 6월생인 2019년 드래프티인 Darius Bazley란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한 직후 드래프트에 뛰어들어 23번째로 오클라호마 썬더에 뽑혔다. 즉, 현 제도에서도 고졸 선수는 충분히 가능하며, 브로니가 고졸로 23년 드래프트에 참가한다면 당시엔 18세지만 해가 바뀌기 전에 19세가 되기 때문에 규정이 바뀌지만 않으면 충분히 참가해 뽑힐 수 있다.
  53. [53] NBA 역사상 최고령 선수는 은퇴 후 복귀해 1948년에 단 두 경기를 뛴 냇 히키지만, 이때는 자기가 감독하고 있던 팀이 폭망하자 한 깜짝 복귀에 불과하고 (쉽게 말해 답답해서 내가 친다의 NBA버전) 이 두 경기 통합 야투 6개 시도/성공0회, 자유투로 2점에 파울 5개나 범했으므로 퍼포먼스에 불과한, 의미는 없는 경기였다. 게다가 48년이라 리그 수준이 지금보단 낮을 때였다. 당시는 조지 마이칸의 라이벌이자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밥 컬랜드가 프로 진출을 거부할 정도였으니. 그걸 감안하면 실질적인 역대 최고령 선수는 윌리스라고 봐야 한다.
  54. [54] 카메오 출연이지만 웬만한 조연만큼의 비중이다. 부자면서도 돈문제에 관해서 상당히 쪼잔한 면이 있으면서(친구 왈 "니가 지금 차고 있는 시계가 내가 사는 아파트보다 더 비싼데 나보고 점심을 사라고?") 친구 일에는 또 오지랖 넓게 간섭하는 역할로 나오는데, 연기력이 상당하다.
  55. [55] 워너 애니메이션 그룹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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