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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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지역 언론사

신문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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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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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방송

대구CBS

대구BBS

대구PBC

기타 방송사

TBN대구

대구국악방송

SCN 성서공동체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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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매일신문사
株式會社 毎日新聞社
The Maeil Shi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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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 : 대구경북이 pick한 뉴스

국가

대한민국

설립

1946년 3월 1일

창간

본사 소재지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0 (계산동2가)[1]
경상북도 안동시 경동로 841 (용상동)[2]

임원

대표이사 사장 · 발행·편집·인쇄인 이상택[3]

업종명

신문발행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소기업

임직원

231명 (2016년 기준)

매출액

313억 2,146만 원 (2018년 연간)

영업이익

12억 852만 원 (2018년 연간)

순이익

17억 5,272만 원 (2018년 연간)

최대주주

(재)대구구 천주교유지재단 (지분 98.92%)

사이트

홈페이지

SNS

1. 개요
2. 연혁
3. 역대 임원
3.1. 명예회장
3.2. 회장
3.3. 사장
3.4. 부사장
4. 역대 주요 간부
4.1. 주간
4.2. 주필
4.3. 논설고문
4.4. 논설주간
4.5. 논설위원실장
4.6. 수석논설위원
4.7. 특임논설위원
4.8. 편집국장
5. TV 매일신문
6. 논조
7. 이모저모
8. 논란
8.1.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비하 사건
8.2. 대구 희망원 사건 해명 기사 게재 사건
8.3. 트위터 일베 용어 사용 사건
9. 관련 문서

1. 개요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지역에서 주로 발행하는 지역 언론사 중 하나로, 대구경북가톨릭계 지역 조간 일간지. 본사는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0(계산동2가 71번지)에 있다. 본사 사옥 안에는 대구가톨릭평화방송이 함께 있으며, 사옥 바로 옆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인 계산성당이 있다.

그리고 경북본사는 안동시 경동로 568(당북동 333번지), 서울지사는 세종대로네거리 못 가서 있는 중구 태평로1가 서울특별시청 근처 프레스센터에 있다. 사시는 땀과 사랑으로 겨레의 빛이 되리.

종종 지역신문이기 때문에 ‘대구매일신문’ 또는 ‘대구매일’이라고 부르거나 정식 명칭을 대구매일신문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제호는 대구매일신문이 아니라 그냥 《매일신문》이다.출처 《매일경제신문》과는 아무 관계 없다. 같은 지역 일간지인 경북매일신문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물론 일본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과도 전혀 관계 없다.

대구경북에서 발행하는 지역 신문 중 가장 많이 구독하는 일간지로, 본래는 석간이었다가 2015년부터 조간으로 전환하였다. 1일 발행 부수는 15만 2천여부로서 대구 지역 1위이며 2위는 조선일보다. 영남일보와 함께 대구·경북 지역 여론을 주도(?)한다.

서울 공화국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지역 일간지로서 구독률이 1위인 게 이채로운 신문이다. 약 인구 250만의 영남권 대도시에 위치한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4] 그 뒤를 이어 대구는 영남일보, 부산은 국제신문이 각각 지역 일간지로서 콩라인을 타고 있다.

노조는 민주노총 언론노조 소속이다.

2. 연혁

매일신문의 역사는 굉장히 뿌리가 깊으며 전통이 있는 지역일간지이다. 1946년 3월 1일 '남선경제신문'으로 창간하였다. 여기서 남선(南鮮)이란 남조선의 준말. 지금이야 "남조선"은 북한에서 남한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지만 창간 당시에는 "한국"보다 "조선"이 자주 쓰였기 때문에 "남조선"도 많이 쓰였다.

남선경제신문으로 출발하여 이후 대구매일신문 → 경제신문 → 대구매일신문 → 대구매일 → 매일신문 → 대구매일신문으로 비슷비슷하게 바뀌었다가 1988년에 '매일신문'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남일보처럼 언론통폐합으로 사라진 역사도 없이 계속 이어 온 언론사라서 해방 후 대구의 역사를 알려면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신문이다. 영남일보는 언론통폐합 때 매일신문에 강제 합병되었다가 1989년에 분리하여 복간, 현재까지 발행 중이다.

특이하게도 발행처가 천주교 대구대교구이다. 1950년에 대구교구에서 신문사를 인수했다. 그래서 발행인도 대구대교구장 주교이다. 하지만 국민일보, 세계일보와 달리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다.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가톨릭계라는 특징 때문에 계산동2가 사옥 안에 대구가톨릭평화방송도 입주해 있다. 그리고 종이판 및 인터넷판에 대구가톨릭대학교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구매일신문》이라는 이름으로 발행하던 시절인, 1955년 9월 13일자 신문에 당시 주필 겸 편집부장이던 최석채가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한 관제 데모에 항의하는 사설을 썼다가 자유당 경북도당 등에서 고용한 정치 깡패들에게 본사가 테러당한 역사가 있다. 대구 매일신문 테러 사건 문서 참조.

높으신 분들이 쉬쉬하고 덮으려던 가짜 이강석 사건을 까발린 것도 유명하다.

박정희 정부 시절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이 이사로 재직했던 적이 있다. 이효상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및 문리대학장 출신으로 국회의장까지 지내기도 했다. 경상도정권, 신라 드립을 날리기도했던 이효상은 3~4공화국 시절 여당인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5선의원 지닌 거물급 정치인이다. (출처)

2015년 1월 1일부터 조간으로 전환하여 발행한다.#,기사

3. 역대 임원

3.1. 명예회장

3.2. 회장

  • 정태호 (1959~1960)
  • 김상준 (1978~1979)
  • 전달출 신부 (1989~1994)

3.3. 사장

  • 최덕홍 주교 (1950~1954)
  • 임화길 신부 (1955~1956)
  • 주병환 (1956~1957)
  • 김영호 신부 (1957~1959/1960~1978)
  • 신상도 (1959)
  • 김덕룡 (1959~1960)
  • 전달출 신부 (1978~1989)
  • 김경환 신부 (1989~1992)
  • 김부기 신부 (1992~2001)
  • 정재완 신부 (2001~2004)
  • 조환길 신부 (2004~2007)
  • 이용길 신부 (2007~2008)
  • 이창영 신부 (2008~2013)
  • 여창환 신부 (2013~2018)
  • 이상택 신부 (2018~)

3.4. 부사장

  • 김영달 (1956)
  • 이우백 (1959~1960)
  • 김상준 (1965~1978)

4. 역대 주요 간부

4.1. 주간

  • 최민순 신부 (1951~1953)
  • 박종상 (1953~1955)
  • 이우백 (1955~1956/1959~1960)

4.2. 주필

  • 조약슬 (1950~1951)
  • 정명준 (1953~1955)
  • 최석채 (1955~1959)
  • 정만교 (1963~1969)
  • 백재기 (1985~1990)
  • 서상호 (2000~2003)

4.3. 논설고문

  • 백재기 (1990~1991)

4.4. 논설주간

  • 백재기 (1982~1985)
  • 손석기 (1990~1993)
  • 이정훈 (1993~1996)
  • 홍종흠 (1996~1999)
  • 서상호 (1999~2000)
  • 최종진 (2003~2004)
  • 이태수 (2004~2007)
  • 김성규 (2009~2010)
  • 서영관 (2011~2012)

4.5. 논설위원실장

  • 손석기 (1986~1990)
  • 이태수 (2004)
  • 박진용 (2007~2008)
  • 김성규 (2008~2009)
  • 서영관 (2010~2011)
  • 최미화 (2012~2014)
  • 정지화 (2014~2016)
  • 정창룡 (2016~ )

4.6. 수석논설위원

  • 백재기 (1970~1972/1973~1982)

4.7. 특임논설위원

  • 최미화 (2014~2016)

4.8. 편집국장

  • 김윤정 (1950~1953)
  • 박귀송 (1953~1954)
  • 박종상 (1955)
  • 최석채 (1955)
  • 이우백 (1955~1956/1959)
  • 이호우 (1956~1957/1959)
  • 여세기 (1958)
  • 김한성 (1959/1959~1961)
  • 장익제 (1962~1964)
  • 김창식 (1964~1966)
  • 김승록 (1966~1972)
  • 백재기 (1972~1973)
  • 안덕환 (1973~1980)
  • 김은식 (1980~1982)
  • 이정훈 (1982~1985/1986~1988)
  • 이일우 (1985~1986)
  • 김경환 (1988)
  • 조병로 (1988~1990)
  • 이용근 (1990~1993)
  • 이영목 (1993~1994)
  • 류시헌 (1994~1996)
  • 강창훈 (1996~1999)
  • 임덕치 (1999~2001)
  • 황인보 (2001~2002)
  • 이진협 (2002~2004)
  • 우정구 (2004~2006)
  • 정택수 (2006~2008)
  • 서영관 (2008~2009)
  • 조영창 (2009~2010)
  • 정창룡 (2010~2012)
  • 이상훈 (2012~2017)
  • 이대현 (2017~2018)
  • 김해용 (2018~)

5. TV 매일신문

TV 매일신문 링크

2019년부터 유튜브 TV 매일신문 채널을 본격적으로 제작, 송출하고 있다. 매일신문 디지털국 디지털뉴스부장 권성훈 기자와 김민정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매미야 TV”, “토크 20분”등과 같은 코너를 방영하며, 이혜진 기자의 “현장출동 너 뭐해찌!”, 이화섭 기자의 “이화섭의 아니면말고!” 등과 같은 프로그램도 방영한다.

6. 논조

간단히 말해 정치적 논조는 중도 우파 ~ 우파적 성향이며, 여기에 더해서 지역신문 특성상 대경권 지역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현안의 관점에서 우파 정부 또는 우파 정당을 향해 비판할 건 비판하는 편이다. 일례로 대구공항 및 공군기지 이전관련 기사에선 "기쁘긴 한데 이거 사드배치 입막음아니냐"라는 논조로 썼다. 그리고 지역 문제, 지역 발전 문제에 관해서는 정파적 입장을 막론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예컨대 우파 정치인, 우파 정당이라 하더라도 지역 현안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노력을 쏟지 않는 모습을 보이거나, 지역 현안이 걸린 사안을 제대로 처리못하면 대놓고 깐다.

대구경북 지역의 일간지라는 지역성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지면을 보면 시사, 정치보다 지역 기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점은 부울경 지역의 부산일보국제신문 역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미디어가 대중화되기 전 종이신문 전성기 시절에는 서울 쪽 일간지 1부, 대구지역 일간지 1부해서 모두 각각 1부씩 총 2부를 구독하는 구독자도 많았다. 전국 소식을 알려면 서울 쪽 일간지 하나가 필요하고, 자기 지역(대구도 꽤 큰 대도시기 때문에)의 소식을 알려면 지역신문이 필요한 사정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이 우파라고 하더라도 서울쪽 일부 일간지처럼 보혁, 좌우이념 자체에 기울기보다는 특정한 지역 사안이나 지역의 이권과 관련된 문제에서 정치적 성향을 주로 드러내는 편이다. 스포츠 기사는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편파로 기사를 쓴다.[5]

7. 이모저모

  • 2000년대 대한민국 언론의 필수덕목이 된 제목낚시, 오버질, 팩트 없는 여론몰이 기사 등등의 습성을 다름 없이 구사하지만 인터넷 언론에 비하면 매일은 정론지급.
  • 대구 시내의 고풍스러운 계산성당 바로 옆에 본사가 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거니까 당연한거지만 본사 주변에 계산성당은 물론, 역사가 오래된 제일교회, 시인 이상화 고택, 천주교관덕정순교기념관, 대구 약령시 등이 있어서 근대역사 탐방을 위해 대구를 찾는다면 반드시 매일신문 본사 옆을 스쳐 지나게 된다.
  • 본사 1층엔 대구 지역에서 유명한 커피명가의 계산성당점이 있다. 비오는 날 여기 앉아서 맞은편 성당 풍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면 은근히 운치가 있다.
  • 소설가 이문열이 1977년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신춘문예 단편에 등단한 신문이 바로 매일신문이다. 이문열은 1978~1980년 매일신문의 편집 기자로 재직하기도 한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신동아》에 연재한 《둔주곡 80년대》를 보면 작품들의 당첨 소식을 듣은 작가가 부장에게 먼저 이야기를 한 후 남보다 일찍 자신의 편집분을 처리하고 회사에서 나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부분이 나온다. 그 외에도 그 당시의 신문사 편집실 분위기도 잘 드러난다.
  •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당한 8명 중 한 명이었던 서도원 씨가 이 신문사 기자로 논설위원까지 지냈다.

8. 논란

8.1.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비하 사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사장이었던 정재완 신부가 유가족 농성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8.2. 대구 희망원 사건 해명 기사 게재 사건

대구 희망원 사건이 터지자 매일신문이 대구광역시립 희망원옹호하고 대구 희망원 사건에 대해서 해명하는 기사를 실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참고로 대구시립 희망원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수탁받아 운영하는 시설이고, 매일신문도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발행하는 신문이다. 어쨌든 이 기사는 매일신문사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되었다. 관련 기사1 관련 기사2

8.3. 트위터 일베 용어 사용 사건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최저임금을 비판하는 논지의 트윗을 올리며 일베발 어투인 이기야를 사용하여 논란이 되었다. 말줄임표가 비정상적으로 긴 것으로 보아 트위터를 사용하던 직원이 실수로 커밍아웃한 것으로 보여진다. 해당 트윗은 빠르게 삭제되었으나 트위터리안들에게 빠르게 박제되어 놀림받고 있으며, 매일신문은 이에 대해 "사투리인줄 알고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하여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일베신문이라는 멸칭을 얻은 건 덤.

9. 관련 문서


  1. [1] 대구 본사
  2. [2] 경북 본사
  3. [3] 천주교 대구대교구 신부이며, 2018년 취임하였다.
  4. [4] 부산일보부산광역시에서 지역 일간지 구독률 1위다. 지역 일간지가 구독률 1위인 경우는 전국에서 대구부산 단 2개 뿐이다.
  5. [5] 연고지 팀만을 위해 편파적 어조로 스포츠 기사를 쓰는 것은 모든 지역신문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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