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존슨

The 50 Greatest Players in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History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
in 1996. ESPN / 영상

네이트 써몬드

네이트 아치볼트

데이브 빙

데이비드 로빈슨

데이브 코웬스

돌프 세이즈

레니 윌킨스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시

릭 베리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모제스 말론

밥 페팃

빌 러셀

빌 셔먼

빌 커닝햄

빌 월튼

샤킬 오닐

샘 존스

스카티 피펜

아이재아 토마스

얼 먼로

엘빈 헤이즈

엘진 베일러

오스카 로버트슨

웨스 언셀드

윌리스 리드

윌트 체임벌린

월트 프레이저

제리 루카스

제리 웨스트

제임스 워디

조지 거빈

조지 마이칸

존 스탁턴

존 하블리첵

줄리어스 어빙

카림 압둘 자바

칼 말론

케빈 맥헤일

클라이드 드렉슬러

폴 아리진

패트릭 유잉

피트 마라비치

하킴 올라주원

할 그리어

찰스 바클리

밥 쿠지

[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공동 구단주

매직 존슨 (Earvin "Magic" Johnson Jr.)

생년월일

1959년 8월 14일생

신체 조건

206cm[2], 100kg

포지션

포인트 가드, 파워 포워드[3]

드래프트

197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LA 레이커스에 지명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79~1991, 1996)

지도자 경력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4, 감독 대행)

프런트 경력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2~, 공동 구단주)

등번호

32번

수상내역

정규시즌 MVP 3회 (1987, 1989, 1990)
파이널 MVP 3회(1980, 1982, 1987)
All-NBA First Team 9회 (1983-1991)
All-NBA Second Team 1회 (1982)
NBA All-Rookie First Team (1980)
NBA All-Star Game MVP 2회 (1990, 1992)
NBA assists leader 4회 (1983, 1984, 1986, 1987)
명예의 전당 헌액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No. 32

1987년 NBA 정규시즌 MVP

래리 버드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1989년 ~ 1990년 NBA 정규시즌 MVP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1980년 NBA 파이널 MVP

데니스 존슨

매직 존슨

세드릭 맥스웰

1982년 NBA 파이널 MVP

세드릭 맥스웰

매직 존슨

모제스 말론

1987년 NBA 파이널 MVP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제임스 워디

1981년 ~ 1982년 NBA 올해의 스틸왕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매직 존슨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1990년 NBA 올스타 MVP

칼 말론

매직 존슨

찰스 바클리

1992년 NBA 올스타 MVP

찰스 바클리

매직 존슨

칼 말론 & 존 스탁턴

1. 개요
2. 레이커스의 전설
2.1. the Show Time
2.2. 래리 버드와의 라이벌리
3. 감독으로서
4. 사업가로서
5. 말말말
6. 기타

1. 개요

매직 존슨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1991, 위쪽은 초판, 아래쪽은 1996년 개정판이다.)

코트위의 마법사

NBA 역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

NBA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선수이자 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공동 구단주. 현역시절 등번호는 32번. 본명은 어빙 존슨 주니어(Earvin Johnson Jr).

2. 레이커스의 전설

싱스테이트저널의 프래드 스타브리라는 기자가 고등학교 당시 그의 플레이를 보고 '마술같다'는 의미에서 별명을 "매직"이라고 붙여줬는데, 이때부터 이름대신 모두 매직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이름보다 별명이 더 유명해졌다. 오히려 매직이 본명인 줄 아는 사람이 대다수(베이브 루스의 경우와 같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미들네임 식으로 Earvin 'Magic' Johnson으로 불리기도 한다.[4]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훈남이다. 선수생활 초반에는 실수도 많은 놈이 실실 웃기만 한다고 까이기도 했...으나 근성과 승부욕은 래리 버드 못지 않은 선수.

NBA 역사상 최초, 그리고 유일하게 성공한 장신(206cm) 포인트가드. 그의 현역시절 기준이나 지금이나 이 정도 키면 파워 포워드로 뛰는게 정상인데 206cm의 큰 키로 앞선에서 뛰며 당시 레이커스의 쇼타임 속공농구를 주도했으니 대단하다. 그의 뒤를 잇는다고 주목받았던 수많은 장신 포인트가드들이 결국은 그에게 미치지 못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수많은 그의 후계자 후보 중 가장 위협적이었던 올랜도 매직 출신 가드 앤퍼니 하더웨이는 결국 누적된 무릎 부상으로 기량이 급격하게 쇠퇴한 선수가 되고 말았다.[5]

물론 비상시에는 큰 키를 바탕으로 센터, 포워드, 가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게다가 단순히 속공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게임 리딩 능력이나 코트의 시야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농구역사에서 포지션 파괴자의 원조라고도 할수 있다. <슬램덩크>에서 최강캐릭터 중 하나로 묘사되는 윤대협의 모티브가 매직 존슨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한데, 그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그의 올라운드 능력을 증명하는 일화 하나. 루키 시즌에 결승에 진출해 Dr. J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식서스와 붙었을 때, 2승 2패로 동률이던 상황에서 센터이자 주장인 카림 압둘 자바가 발목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보여주며 5차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부상으로 뛸 수 없게 되자 모두들 '아 이젠 시망이구나'하고 좌절해 있는데 매직 혼자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매직이 있습니다."라고 선언. (다들 어 그래, 라고 신경도 안 썼다고. 원래 좀 떠벌이 경향이 있었으니까..) 경기시작 전 코치를 찾아가 "저 센터볼래요"라고 했던 매직은 웃음을 터트린 코치에게 농담 아니라고 부연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직은 6차전에서 센터로 시작해 가드와 포워드 역할까지 수행하며[6] 42점 15리바운드 7어시스트라는 파이널 1경기 최다득점에서 역대 2위에 올라있는 괴물같은 성적을 올리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결국 MVP는 자바가 아닌 매직의 차지였고,[7] 자바는 살짝 삐졌다고(…).[8]

1991년에 HIV 양성반응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참고로 기자가 "누가 당신에게 에이즈를 옮긴것 같습니까?"라고 물으니 너무 많은 여자와 잠을 자서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고(…).[9] 침대에서도 올라운드 플레이어 역시 마법의 거시기가 맞나보다

당시 HIV보균자라는 사실은 대중에게 에이즈환자와 다름없이 여겨지는 상황이었다. 그 때만 해도 에이즈는 걸리면 바로 죽는 공포의 병이라 에이즈 환자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매직 존슨은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살았고, 이는 일반인과 환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완치제는 없지만 HIV 억제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관리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만성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에이즈 관련 약품이 개발완료되어 시판되기 직전단계에서 많은 제공을 받는다고도 한다.

1991년 은퇴선언을 했지만 1991-92시즌 올스타 득표에서 서부 가드 중 2위, 서부 전체로는 칼 말론,클라이드 드렉슬러, 크리스 멀린에 이어 4위의 득표를 해버렸다. 매직의 득표수는 65만표가 좀 넘었는데 서부 1위 말론은 76만표대였으며 전체1위는 유일하게 백만표를 넘긴 마이클 조던이 차지했고 전체2위는 당시 필라델피아에 있었던 조던의 절친 바클리가 조던과 99만여표로 차지했다.

덕분에 92년 올스타 게임 주전으로 발탁되었고 당시 반시즌을 쉬었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대활약. 게다가 결정적인 3점슛을 성공시키며 올스타전 MVP등극했다. 그리고 현역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NBA 드림팀 1기에 뽑히며 프로팀 선수가 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가 허용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95-96 시즌 중반에 현역 복귀를 선언하여 레이커스에서 32번을 다시 달고 뛰기도 했다. 이때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전처럼 주 포지션이었던 포인트 가드로 뛰지 못하고 파워포워드로 플레이하였다. 마이클 조던과 잠시 매치업MJ對MJ이 되는 등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허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은퇴했...으나, 다시 은퇴할 때까지의 기록은 역대 통산 기록 평균에 꽤 뒤지긴 하지만 그럭저럭 준수했다. 복귀 당시 스탯은 14.6점 6.9어시 5.7리바로 커리어 평균에 크게 못 미쳤으며 36분 환산 스탯과 윈셰어 등 2차 스탯도 마찬가지였다. 센스는 여전했지만 전성기보다 크게 느려진 몸놀림과 무릎부상으로 예전같은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닉 반 엑셀, 에디 존스 등 젊은 코어로 리빌딩을 마무리해가던 레이커스 입장에서는 전성기 기량을 잃은 과거의 전설이 사실 크게 필요하진 않았다. 올드팬들은 매직을 보며 즐거움을 느꼈지만 선수 커리어 측면에서 볼때 성공적인 복귀라고 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대함은 커리어 성적에서 볼 수 있다. 통산 기록이 거의 트리플 더블에 가깝다. 단일 시즌 통산 기록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오스카 로버트슨에 필적하는 대단한 기록.

원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지만 매직 자신은 농구 인생 최악의 선택을 NBA에서 포인트가드를 주포지션으로 선택한 것으로 꼽는다. 포인트가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하고 수비 때는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매직이 수비하러 따라 다니기엔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직은 선수생활 내내 무릎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게다가 그의 큰 사이즈는 공격 시 유리함을 가져다 주었으나 수비시 빠른 선수들에게 고전한다는 약점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전성기에도 수비시에는 놈 닉슨, 바이런 스캇(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감독)같은 보조가드들이 상대 포인트가드를 맡고 매직은 상대 슈팅가드, 스몰포워드와 매치업하는게 많았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산 어시스트 10141개로 4위, 통산 게임당 평균 어시스트 11.19개로 1위인 선수이다. 만약 매직이 포워드로 뛰었으면 이와 같은 기록은 나오지 않았을 수도. 게다가 만일 그가 포워드였으면 쇼타임 레이커스의 주역이자 최고의 스몰포워드 중 하나로 꼽히는 제임스 워디가 없었을 수도 있다.

선수로서는 일류였으나 지도자로는 범용한 수준이었다. 그 내용은 밑에서 후술한다.

2.1. the Show Time

매직의 전매특허는 역시 전광석화같이 상대의 혼을 빼놓는 화려한 패스. "쇼타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80년대 레이커스의 농구는 농구 역사상 런앤건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된 화려한 빠른 템포의 농구였고, 그 중심에는 단연 매직이 있었다. 특유의 노 룩 패스는 말 그대로 매직을 보는 듯 하다. 선수생활 시 같이 뛰었던 선수가 "매직의 패스는 마치 나와 그 사이의 사람을 뚫고 와 버리는 것 같다"라고까지 표현. 심지어 몇몇 패스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카메라맨조차 속아서 공을 놓쳐 버리고는 했다. 두 말이 필요없으니 아래의 동영상을 감상해 보자.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엄청나게 화려하다.[11]

다만 이런 화려한 패스 때문에 턴오버가 상당히 많은 편. 906경기를 뛰면서 3506개의 턴오버를 기록했고 평균으로 환산하면 3.9개이다. 83-84 시즌에는 4.6개의 턴오버를 하기도 했다.

래리 버드와는 NCAA 결승전 때부터 라이벌이었으며,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한 때 결승전이 녹화 중계될 정도로 안습했던 NBA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이 결승에서 만날 때마다 명경기가 벌어졌는데, 그중 87년 결승 4차전에서 상대 수비에 줄 곳이 없자 직접 본인이 드리블하며 들어가 훅슛을 성공시킨 'Baby Hook Shot'은 명장면 중의 하나.

바로 이 장면.[12]

2.2. 래리 버드와의 라이벌리

망해가던 NBA 를 살려낸 80년대의 마법.

래리 버드의 은퇴식에서 셀틱스의 라이벌인 자신의 소속팀 레이커스 츄리닝을 입고 웃으며 등장했는데, 츄리닝을 벗자 안에 입고있던 셀틱스 유니폼이 나타나는 장면은 역대 모든 선수의 은퇴행사 중 최고의 퍼포먼스로 꼽힌다.

매직 존슨래리 버드 는 각자의 농구 실력으로도 인정받았지만 이들이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이들이 망해가던 NBA 를 살렸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라이벌리는 NCAA 부터 즉 대학 농구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둘은 대학 경기 결승전에서 만났으며, 이 경기에서는 매직의 미시간 주립대가 버드의 인디야나 주립대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 했다.

이 경기를 시점으로 NBA는 대놓고 이들을 앞세우며 망해가던 인기를 다시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후세에 이들의 등장을 사람들은 "하늘이 내려준 라이벌 관계", "가장 완벽한 출연진" 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하였다. 당시 NBA는 결승전마저 녹화를 할 만큼 인기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등장을 앞세우는 건 어찌보면 NBA 로써는 당연히 해야할 숙명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대조점을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인기를 끌만한 요소들이 많다.

1. LA 레이커스보스턴 셀틱스 는 오랜기간동안 숙명의 라이벌이었다는 점

2. 한 명은 흑인이고 다른 한 명은 백인이었다는 점.

3. 한쪽은 화려한 스타일의 LA 출신이라는 점, 한쪽은 다소 꼿꼿한 보스턴 출신이라는 점.

4. 한쪽은 서부를 대표하고 한쪽은 동부를 대표한다는 점.

이런 다른 점들때문에 매직과 버드는 초반에는 정말 라이벌 답게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컨버스 농구화 광고를 찍게 된 시점으로는 코트에서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사적으로는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버드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매직의 기록을 확인하곤 했다"라거나, 매직이 "나에게 1년 일정은 셀틱스와의 2경기와 나머지 80경기였다"라고 말한 말은 유명. 둘의 실력도 막상막하이고 전적도 일방적이지 않으며 경기장을 벗어나면 최고의 친구인 정말 만화에서조차 등장하기 힘든 좋은 라이벌 관계. 당연히 경기장 내에서는 전력을 다해싸웠다. ESPN은 이 둘을 조명해서 Magic & Bird - A Courtship of Rivals 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시청한다면 라이벌이면서도 친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한 기자는 "사람들이 마이클 조던이 NBA를 살렸다고 하더군요. 웃기고 자빠졌네요 [13]. 매직하고 버드가 NBA를 구했습니다. 매직과 버드가요" 라고 강조할 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컸다.

3. 감독으로서

매직의 은퇴 후, 레이커스는 바이런 스캇 등 쇼타임 레이커스의 멤버들이 떠남으로써 성적도 점점 하락, 마침내 1993-94시즌에는 커다란 슬럼프에 빠져 플레이오프에 못 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구단은 시즌 중반에 해고당한 랜디 펀드(Randy Pfund)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즌 막판에 가서야 매직을 불러오게 되었다.

부임 초반에는 5승 1패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생겨 당시 레이커스 홈구장인 잉글우드 포럼에 팬들이 연신 몰려들었지만, 이후 10연패를 당하면서 정규시즌 33승 4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이후 구단주인 제리 버스가 다음 시즌에 1400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하며 정식 감독에 오를 것을 제의했지만, 그는 감독직을 거절하고 1996년까지 야인으로 지내게 되었다.

4. 사업가로서

결국 감독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대신 사업에는 재능이 있어서 선수생활 은퇴 후에 사업으로도 크게 성공하였다. 은퇴한 운동선수 중 사업으로 가장 성공했고, NBA의 은퇴선수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부사장직을 맡고있으며, Magic Johnson Development Corporation이라는 자신의 기업을 만들어 사업에 크게 성공했고 지금은 Magic johnson Enterprises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매직 존슨의 회사는 4개의 도시에 매직존슨 극장을, 그리고 미국 전역에 114개의 스타벅스, 39개의 버거킹, 13개의 피트니스 센터를 가지고 있다. ㅎㄷㄷ.

당시 미국의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우범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런 지역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주변의 평가를 물리치고 우범지역에 흑인들을 주로 고용하면서 그들에게 직업을 제공하고 그들이 그 급료로 소비를 하면서 지역경제를 끌어올리고 범죄율과 실업률을 낮추는 등 사업에서도 마법을 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브스에선 주목받는 흑인 기업가 중 한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2012년에 30년지기 친구이자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워싱턴 내셔널스 사장이었던 스탠 카스텐과 같이 컨소시엄을 이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인수에서도 나섰다. 그만 홀로 인수한다면 어렵겠지만 메이저리그 인맥이 많은 카스텐과의 협조 때문에 미국에서도 다저스 인수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리고 결국 다저스 인수쟁탈전에서 승리하게 되어 공동구단주가 됐다.대신 맥코트가 돈방석에 앉았지만. 덕분에 막장으로 전락한 맥코트 구단주 시기 선수들에게 연봉을 줄 돈도 없어 중계권을 헐값에 팔아넘기려다 무산되는 등 망해가던 다저스는 안정적인 자금줄을 확보하며 재도약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류현진의 입단식에도 얼굴을 비췄다. 현역 때 비해 더욱 후덕해진 모습. 앞으로 류현진과 관련해서 국내 팬들에게도 자주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이 완봉승을 기록하자 트위터를 통해 칭찬하기도 했다. 기사

전 야구선수노마 가르시아파라,그의 부인이자 미국 여자축구의 전설인 미아 햄,유튜브의 창립자 채드 헐리 등과 함께 다시 한번 컨소시엄을 이뤄서 2017년 MLS에 참가할 LA의 신생 축구 구단 창단 작업에 들어갔다.

5. 말말말

"농구 역사상 마이클 조던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14]

ESPN.

6. 기타

아들이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아버지인 매직 존슨은 아들의 커밍아웃에 대해 옹호해줬다.

국산 만화 달숙이에 나오는 매직 쫀슨은 이 캐릭터를 패러디한 것. 그렇다고 그 쪽이 된 건 아니니까 오해말자.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했다! 92년 마이클 잭슨의 Remember The Time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초반부에 파라오의 시종(...)으로 나와서 왕비를 기쁘게 해줄 광대들을 소개하는 역할로 나온다. 또한 퍼렐 윌리엄스의 Happy에도 등장한다.

농구 만화 디어보이스후지와라 타쿠미(디어보이스)는 매직 존슨을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NFL램스가 2016 시즌부터 세인트루이스에서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것이 확정되고 시즌 티켓 예매를 시작했는데 돌아온 램스의 시즌티켓 1호 예약자가 됐다.#


  1. [1] 류현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입단 기자회견 중. 맨 오른쪽 인물. 맨 왼쪽 인물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은 네드 콜레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단장
  2. [2] 실제 신장은 201cm에서 203cm 정도
  3. [3] 95~96 시즌 복귀 당시
  4. [4] 본명인 어빙 존슨의 경우는 매직이 은퇴한 이후인 1993년에 1라운드 23번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 지명되어 데뷔한 센터 어빙 존슨(Ervin Johnson)이라는 선수가 한명 더 있다. 스펠링이 Ervin으로 다르지만, 이때문에 보통 어빙 존슨은 이 센터 어빙 존슨을 말한다. 센터 어빙 존슨은 시애틀,덴버,밀워키,미네소타등에서 활동한 평범한 몸빵형 센터로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감했다.
  5. [5] 매직의 은퇴 무렵 피펜, 페니, 그랜트 힐 등 장신인데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수행 가능한 선수들이 인기를 얻자 리그 전체적으로 장신 포가 만들기 붐이 일었다. 제일린 로즈와 스티브 스미스가 대표적이었는데 둘 다 포인트 가드로서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스윙맨으로서 나름 괜찮은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매직 존슨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세기말을 맞이하면서 리그에서 다시한번 스타 만들기에 돌입했는데 그게 바로 제2의 조던 찾기....
  6. [6] https://www.youtube.com/watch?v=yYNDWaEmqto 사실 경기 장면을 보면 진짜 압둘자바처럼 골밑을 철저히 지키는 센터로 플레이한 건 아니고 가드와 포워드를 오가는 평상시의 플레이에 가까웠다. 90년대 이후 농구를 본 팬들은 "어? 포스트업을 자주하니까 센터 역할을 한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매직 존슨은 원래 포스트업에 이은 골밑 마무리와 훅슛으로 주로 득점하는 선수이다.(포스트업으로 유명한 마이클 조던보다 포스트업 빈도수가 훨씬 잦고 능력도 앞서면 앞섰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거리에서 약한데 점프슛이 없고 세트슛으로 쏘기 때문. 때문에 매직은 외곽에서 게임리딩을 하다가 패스를 찔러주기란 가드스러운 플레이 + 포스트업으로 쭉쭉 밀고 들어가다가 본인이 마무리 or 오픈된 동료에게 패스란 파워포워드스러운 플레이가 공존하는 선수였다. 이때 압둘자바를 대신해서 센터로 점프볼을 한 것은 "내가 당신의 빈 자리를 메우겠다"는 제스쳐에 가까웠으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7. [7] 최연소 파이널 MVP(만 20세)이자 신인이 받은 첫번째이자 지금까지도 없는 파이널 MVP
  8. [8] 공교롭게도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신인상은 래리 버드가 가져갔다. 이때 매직은 자신도 충분히 신인상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버드에게 완전히 밀려서 실망했다고 한다.
  9. [9] 1000명이 넘는다고 하며, 마돈나도 그중 하나였다고..
  10. [10] 그리고, 아직 포인트가드를 한 걸 후회하지 않던 젊은 시절, 앞에 언급된 2년 선배 놈 닉슨과의 포인트가드 경쟁이 자존심 싸움까지 번져서 결국 놈 닉슨이 샌디에이고 클리퍼스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그 맞트레이드 상대가 바이런 스캇.
  11. [11] 대신 아래 영상 2분대에 주로 나오는 것처럼 패스를 엄청나게 강하고 빠르게 예측불허의 타이밍으로 던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다간 패스 캐치 타이밍이 늦어서 공을 놓쳐서 턴오버가 되고 매직의 폭풍 갈굼을 당하는게 일상이었다. 이때문에 매직 중심으로 팀이 짜인 쇼타임 레이커스는 그의 패스를 받아낼 수 있는 선수만 한 팀에서 뛸 수 있다는 암묵적인 조건이 있었다. 매직의 후배이자 쇼타임 레이커스의 주전이었던 제임스 워디 역시 데뷔 초엔 매직의 패스가 너무 강해서 받기 어려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대신 그런 언제 킬패스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경기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레이커스 특유의 런앤건과 속공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원동력이었다.
  12. [12] 참고로 매직은 자바의 주무기 스카이훅을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따라하고, 이걸 경기 중에 응용해서 자신의 주무기로 써먹은 유일한 선수였다.
  13. [13] 실제로는 욕설을 사용했다.
  14. [14] It could be argued that he's the one player in NBA history who was better than Michael Jo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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