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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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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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木浦市 / Mokpo City

마스코트 포포 & 포미.

목포시
木浦市 / Mokpo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51.64㎢

광역시도

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

23

시간대

UTC+9

인구

233,339명
(2018년 4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4,527.73명/㎢[1]

시장

박홍률 (민주평화당)
초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의회

민주평화당 9석

더불어민주당 6석

정의당 2석

무소속 5석

도의원

목포시: 강성휘 (민주평화당)
목포시2: 권욱 (무소속)
목포시3: 고경석 (민주평화당)
목포시4: 김탁 (민주평화당)
목포시5: 배종범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박지원 (민주평화당)
4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시화

목련

시목

비파나무

시조

두루미

시청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양을로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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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지리
4. 교통
5. 경제
5.1. 금융
6. 문화관광
6.1. 문화
6.2. 종교
6.3. 관광
6.4. 대표 축제
7. 교육
7.1. 현황
7.1.1. 대학교
7.1.2. 고등학교
7.1.3. 도심 공동화
7.1.4. 유학생
7.1.5. 장학제도
7.1.6. 특수목적고
7.1.7. 기타
7.2. 공립유치원
7.3. 초등학교
7.4. 중학교
7.5. 고등학교
7.6. 특수학교 / 평생교육시설
8. 정치
9. 행정
10. 이야깃거리 및 출신인물

1. 개요

목포항구다.[2]

- 이난영 노래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 광양, 군산과 함께 호남 3대 항구의 하나이며 호남선 철도의 종착역이자 서해안고속도로의 시점으로 개항 이후부터 항구 도시로 발전하였다. 일제강점기1940년대만 해도 원산시, 부산광역시와 함께 인구 7만으로 조선 3대 항구 중 하나였고, 1950년대 10만을 훌쩍 넘는 인구 증가(11만)로 한때 남한 6대 도시에 속했으나, 내해 수심이 얕아 현대적 대규모 무역항으로 쓰기에는 입지가 나쁜 탓에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했다. 또한 지금에 와서 성장시키려 해도, 면적이 너무 작다. 그래도 전남 서부권의 중심 도시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전라남도청이 남악신도시 내인 근방의 무안군 삼향읍으로 이전하면서 전라남도청의 배후 도시 역할도 하고 있다.[3] 목포시의 인구는 전라남도의 지자체 중 여수시, 순천시에 이어 3위이지만, 읍면을 제외하고 동 지역 인구만 비교하면 목포가 이 둘을 앞선다. 그리고 여수, 순천은 도농복합시이고 목포는 아직 도농통합이 안 된 것을 감안해 목포+무안으로 계산하면 32만 명이고, 신안까지 합치면 36만 명대이다.

다만, 행정과 정치 분야에서는 전남 동부의 여수시, 순천시보다 월등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넘사벽으로 밀린다. 참조 더군다나 인구나, 위상에 비해서 안습하다. # 전남 내 수출액이 목포 0.3%, 순천 2.2%, 여수 74.4%로 1/100도 안 되며, 2015년 9월 기준 재산세는 목포시는 114억원으로 여수시 220억 원, 순천시 182억 원, 광양시 143억 원에 이어 4번째다. 더군다나, 2016년 예산에서는 인구 15만 명의 광양시의 6667억 원보다 낮은 6483억 원의 예산을 기록했다. 그보다 한참 낙후된 나주도 5618억을 받는데. 그러나 목포는 자체 경제력은 부족하나, 강 건너 삼호읍이 목포 생활권인지라 거기 있는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산단을 목포의 산업기반으로 봐도 무방하다. 단지 거기가 행정구역상으로 '목포시'가 아닐 뿐이다. 참고로 대불산단이 소재한 영암군의 전남 내 수출액은 10.4%.

개항 이후 무안군에 속했던 지역을 야금야금 편입시키기는 하였으나, 그나마도 1987년 옥암리와 대양리를 마지막으로 편입시킨 이후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될 때 도농통합을 이루지 못해 발전의 희망이 끝나 버렸다. 면적이 서울특별시 서초구수원시 권선구와 엇비슷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2/3 크기(...) 계룡시(60.68)을 제외하고는 비수도권에서 유일한 면적 두 자리 시이며, 비수도권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이다.[4] 시골의 웬만한 읍면 면적 수준이다. 무안에서 남악신도시라도 떼오면 좋겠지만 무안이 그걸 줄 리가 없다

목포는 옛날 일제 강점기 때부터 커온 도시라서 도시 구획이 잘 되어있다. 대성동과 유달산 아래쪽은 난개발 지역이지만 일제가 도시구획을 잡고 개발해서 그런지 목포역 남쪽과 동쪽 도시구획들이 사각형 형태로 뻗어있다. 옛날엔 목포역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대부분 도시가 바다를 개발된 곳이다. 나머지 구도심과 하당과 남악도 다 바다를 매립하여 이루어진 지역. 인구도 80년 때의 수준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사공의 뱃노래 가믈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 년 원한 품은[5]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쪼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전설적인 노래 목포의 눈물이 이 지역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졌다.

2. 역사

통일신라

고려

조선

1896년~

1897년~

1910년~

1914년~

1949년~

1969년~

무안군

물량군
무안군
무안현

무안군
무안현

무안부

목포부

목포부

목포시

무안군

무안군

압해군

장산현
육창현
임치현
압해현

나주목
광주목
지도군
영광군
해남현

지도군

신안군

후삼국시대에 최초로 목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태봉시대의 일인데 궁예 휘하의 장수였던 왕건이 태봉 수군을 끌고 목포라는 포구에 도착해 현재 전라남도 서남부 일대를 복속하여 현 광주광역시인 후백제의 거점도시 무진주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목포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의 목포시가 아니라 나주시 내라는 설도 있다. 이후 목포라는 이름이 영산강유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해 조선 태종 때 현재의 목포시 지역에 목포진(木浦鎭)을 설치하여 지명이 확정되었다. 한편 목포 일대는 무안군의 일부였으며, 고을의 행정 중심지 역할은 목포가 아닌 현 무안읍내 지역이 했다.

오늘날과 같은 항구도시로서의 시작은 1897년 10월 1일 대한제국목포항 개항에 따른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무안군이 무안부로 승격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외국과의 조약에 의한 개항이 아닌 정부의 자발적인 개항으로는 첫 번째였다. 유달동, 만호동에 해당하는 목포의 구도심은 일본 등 외국자본에 의해서 간척된 계획도시이기에 도로가 바둑판처럼 잘 형성이 되어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무안부가 목포부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개항장(현 유달동, 만호동, 대성동, 목원동)을 제외한 목포부의 나머지 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하였다. 재앙의 시작 무안군청은 목포부 내에 두었다. 1932년에는 무안군 이로면의 죽교리(유달산과 뒷개라 불리는 해안지역 모두 포함), 산정리(산정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목포에서 남으로 북까지 쭉 뻗은 목포 구도심의 1/3을 차지하는 법정동), 용당리(목포시청과 목포상고 인근)를 목포부에 편입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인구가 불어났으나, 이후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이 단절된 목포는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 당시 전국(남한) 6대 도시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영산강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토사에 의해 목포항의 수심이 얕아지는 것은 목포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에 목포시는 1962년 현 동명동사거리에서 대삼학도 서측을 잇는 방조제 공사를 시작으로 하여, 삼학도 전체를 육지화시켜 외항을 건설하였다. 또한 대삼학도 북측에서 현재 제일중학교까지를 방조제로 연결하여 생긴 땅에 차관을 빌려 4차주택단지를 건설하였다. 이로 인해 삼학도는 현재까지도 공원화가 되어 있긴하나 완전 복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삼학도의 흑역사

1963년 무안군 이로면(석현리, 대양리, 옥암리 제외)[6]이 목포시에 편입되어, 목포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부산동래군의 면을 몇 개씩 편입하고, 서울특별시가 부근 군(당시 광주군이었고 현재는 성남시,하남시,광주시 등이다.)의 면을 몇 개씩 편입하는 동안, 목포시는 무안군의 1개 면을 그것도 완전히 편입한 것도 아니었다. 이로면의 잔여 지역은 삼향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에 석현리를, 1987년에서야 대양리와 옥암리를 편입하게 된다.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분군되면서, 목포시 내에 있던 기존 무안군청은 신안군청으로 전환되고(이후 압해도로 이전), 새 무안군청은 무안군 무안면(이후 무안읍)에 설치되었다.

1970년대 목포는 나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1호광장-2호광장-3호광장으로 이어지는 광로가 이때 개통된 것이다. 이전에는 대성동-산정초등학교-전남제일고앞 작은 길-이로시장-굴다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목포의 간선도로였다. 1972년에는 상동에 최초의 현대적인 공업단지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규모는 매우 작았고 그나마 호남고무나 행남자기와 같은 경공업 위주로 구성되었다. 1974년에는 옛 일본영사관에 있던 목포시청이 현 용당동 청사로 옮겨가고, 그 옆에는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현 초원관광호텔 자리에 있던 경찰서, 소방서와 기업은행 맞은편 교회자리에 있던 법원 등도 이 시기에 용당동 청사로 이전하였으며, 현 유달산우체국 자리에 있던 목포우체국과 유달산 기슭에 있던 MBC가 각각 1987년, 1989년에 용당동으로 이전을 완료한다. 비슷한 시기에 시역을 넓혀나간 다른 경쟁도시들이 이미 1970년대 중반에 이러한 변화를 마친 반면, 목포는 이러한 변화를 1980년대 말에서야 마무리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목포시는 1990년대 초반까지 별 다른 변화없이 전혀 발전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지시에 의해 목포와 마주한 영암군 삼호에 대불공단이 세워지고, 1995년 한라조선소가 건설되면서 도시의 정체된 발전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에는 20년 이상 끌어오던 하당지구 개발이 완료되었고, 하당지구는 목포의 대표적인 신도심으로 성장하였다. 2001년에는 서해안고속도로 전면개통, 2004년에는 KTX가 목포까지 운행되면서 수도권과의 이동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2006년에는 인접한 무안군 삼향면 남악신도시에 전남도청이 개청하고 2007년에는 영암에 있던 목포공항을 폐쇄하고 무안국제공항이 개항하게 되었다.

항구도시답게 대한민국 해군의 주요 기지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전쟁 초반에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정부 인원들이 이곳을 통해 해군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철수했다. 휴전 이후에도 해군이 계속 주둔해 목포해역방어사령부를 해군 제3함대사령부 휘하로 두고 있다가, 2008년 3함대 사령부가 지은 지 1년도 안 된 부산의 사령부 시설들을 작사한테 뺏기고 쫓겨나 강 건너 삼호읍으로 옮겨 오면서 목방사를 해체했다.

3. 지리

한반도 서남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동북쪽으로 무안군 삼향읍과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서해와 그 건너 신안군 압해읍 압해도와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하구둑 건너로 영암군과 경계하며 본토에서 떨어진 직할 섬지역으로 율도, 달리도, 장좌도, 외달도, 고하도, 허사도가 있다. 이 중 고하도와 허사도는 신외항 조성으로 인해 두 섬 사이를 매립하여 하나의 섬이 되었고, 고하도 바로 밑에 장구도라는 섬이 있었으나 매립으로 사라졌다.

무안반도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반도(半島) 지역으로 경계 대부분이 무안군에 인접해있고 하구둑 건너로 영암군과 인접해있기 때문에 군(郡) 지역 사이에 끼어있는 중소도시이기도 하다.

도시구조는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원도심

만호동, 동명동, 삼학동, 이로동, 용당동, 목원동, 대성동 등 목포역목포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북항지구

죽교동, 북항동, 원산동, 연산동, 산정동, 용해동 등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었고, 현 목포시청 및 북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압해대교 개통으로 신안군 압해도와, 목포대교 개통으로 영암군 삼호읍과 연결되며 혜택을 보고 있다. 장차 화원-압해간 연륙 연도 사업으로 해남군 화원면과 연결 및 새천년대교(2018년 예정. 압해-암태)를 통해 신안군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암태도 등이 연륙될 예정이다.

하당지구

상동, 하당동, 부흥동, 신흥동 등으로 2000년대부터 개발된 지역으로 목포종합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목포시의 실질적인 도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산강하구둑을 통해 영암군 삼호읍으로 연결되어 있다.

옥암지구

옥암동, 부주동 등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남악신도시개발의 일환으로 개발되었다.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과 인접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와 인접하고 있다.

의외지만 겨울에 눈이 자주 오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설일수는 많아도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눈이 많이 쌓이진 않는다고.

4. 교통

도로와 철도 교통 이용이 모두 괜찮은 편이다. 서해안고속도로와 호남선 철도의 종점이며, 전남 서남해안권 도서지역으로 가는 여객선의 모항이 된다.

5. 경제

어항이자 항구도시였던 과거의 영화와는 달리, 현재의 목포시는 소비도시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물론 과거보단 못하지만 일정 규모의 수산업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목포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웃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대불공단과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전남도청 및 관련 기관들이다. 문제는 두 곳 모두 행정구역상으로 목포시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목포시의 재정에 도움을 주는 것은 미비하며, 근무자와 그 가족이 목포 혹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면서 파생되는 소비 활동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도내 유관기관으로는 광주에서 살면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아서 효과가 크지는 않다. 최근에는 조선업계가 불황이라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였고, 이에 따라 목포시의 인구는 정체된 상태이다. 그리고 목포시의 인구가 무안군에 위치한 남악 신도시로 이동하면서 점점 도심이 구도심(목포역 인근)에서 하당 신도시로, 하당 신도시에서 남악으로 이동하고 있다.

5.1. 금융

*목포시 소재 제1금융권은행

행명

지점명

위치

비고

행명

지점명

위치

비고

한국은행

목포본부

영산로 109 (원도심)

신한은행

목포지점

영산로 118 (원도심)

구.조흥은행 목포지점

산업은행

목포지점

백년대로 306 (하당)

영업시간 이후 ATM기 없음

신한은행

목포하당금융센터

영산로 352 (하당)

중소기업은행

목포지점

옥암로 25 (하당)

신한은행

목포법원출장소

정의로 29 (옥암지구)

구.조흥은행 목포법원출장소

중소기업은행

목포시청출장소

양을로 203 (용당동)

목포시청 1금고

SC제일은행

목포지점

옥암로 83 (하당)

중소기업은행

유달출장소

해안로233번길 33 (원도심)

KEB하나은행

목포하당지점

옥암로 68 (하당)

구.KEB외환은행 목포지점

중소기업은행

연산출장소

연산로 191-1 (북항)

KEB하나은행

목포지점

백년대로 319 (하당)

구.하나은행 목포지점

NH농협은행

목포2호광장지점

영산로 227 (산정)

KB국민은행

목포지점

영산로 101 (원도심)

구.한국주택은행 목포지점

NH농협은행

목포중앙지점

삼일로 10 (원도심)

KB국민은행

하당종합금융센터

백년대로 310 (하당)

구.한국주택은행 하당지점

NH농협은행

신목포지점

비파로 34 (하당)

우리은행

목포금융센터

백년대로 360 (하당)

우리은행 목포지점, 하당지점 통합

NH농협은행

목포시신안군지부

후광대로 114 (옥암지구)

수협은행

목포지점

신흥로 4 (하당)

NH농협은행

목포지점

옥암로 94 (하당)

구.축협중앙회 목포지점

광주은행

목포지점

영산로 93 (원도심)

NH농협은행

목포시청출장소

양을로 203 (용당동)

광주은행

북항지점

고하대로 668 (북항)

NH농협은행

동명동지점

산정로 18-1 (원도심)

광주은행

용당동지점

영산로 302 (용당동)

NH농협은행

자유시장지점

자유로 121 (원도심)

광주은행

하당지점

신흥로 50 (하당)

광주은행

목포시청출장소

양을로 203 (용당동)

목포는 한국씨티은행을 제외한 제1금융권 은행들이 모두 있는 지방도시이다. 또한 한국은행이 있는 유일한 인구 20만 도시이다. 이것으로 통하여 목포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목포는 수산물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목포시의 시금고가 기업은행이 맡고있는 만큼 전남 내 여타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기업은행 지점수가 많다. 또한, 조흥은행의 하나로 치는 호남은행의 시초가 이곳 목포였으며, 상락동에 있는 목포문화원 건물이 100년 가까이 쓰인 호남은행 목포지점이다. 이곳은 광복후 조흥은행 목포지점으로 개편되었다가, 2006년 조흥과 신한이 통합하면서 목포역전 옆에 KT 목포전화국 건너편 대신증권 빌딩에 있다가. 2010년대 들어서면서 바로 앞인 KT 목포전화국 내에 입점하였다.

*목포시에 있었거나 이전한 제1금융권 은행들

행명

지점명

위치

비고

행명

지점명

위치

비고

상업은행

목포지점

목포역전부근(추정)

한일은행

목포지점

2호광장부근 (추정)

서울은행

목포지점

영해동1가 11-1(원도심)

인수 후, 목포중앙출장소로 격하되었다가 하나은행 목포지점으로 통합

서울은행

용당동지점

용당2동 960-237 (용당동)

현재 주소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데, 홈플러스 목포점에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함.

외환은행

산정출장소(구. 목포지점)

용당동 1056-6

목포지점이 하당으로 이전하자, 산정출장소로 격하되었다가, 폐쇄됨

신한은행

목포상락동

상락동1가 10-2

구.조흥은행 목포지점이었으나, 합병 후 상락동출장소로 격하, 현재 ATM기 1기

SC제일은행

목포유달출장소(구. 목포지점)

행복동2가 2

목포지점이 하당으로 이전, 유달출로 격하 뒤, 폐쇄 및 ATM기 1대 위치

국민은행

용당동지점

영산로 343

국민,주택 합병전 목포에 위치한 국민은행이었으나, 합병 뒤 몇여 년간 존속하다가, 목포지점으로 통폐합

6. 문화관광

6.1. 문화

개발도 많이 안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꽤 잘나가던 항구(쌀 수출항이었다.)[7]라서,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의 건축물+근대건축물의 산실로 일본인 구역이었던 유달산 아래 목포여자중학교 근방과 구시가지에는 눈에 띄는 건물들이 다 준문화재급으로 오래된 건축물들이다. 그러나 이는 보존하려고 해서 보존한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이 그 이후로 거의 개발되지 않아서이다. (다행인지, 안습인지) [8]

또 일제의 잔재로는 목포해양대학교 근처의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건너편 섬들에 웬 동굴들이 여러개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미군을 막겠다며 군수물자나 군인들을 폭격등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현재까지도 슬픈 역사의 상징이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장군의 아들종로를 목포에서 찍었다.

국도 1-2호선 기점 비석 인근의 목포문화원 건물은 1900년에 완공된 건물로 일제 때는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에는 1974년까지 목포시청으로, 그 후 1989년까지는 시립도서관으로, 1990년 이후로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층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류 소설가인 박화성 문학 기념관이 있다. 이 건물은 사적 제286호로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개화기의 근대 건축물이다.

광주와 목포의 유력한 한국인 자본가 24명이 참여한 호남은행의 목포지점 건물이 있는데, 해방 후 조흥은행 목포지점으로 사용하였다. 목포에 현존하는 유일한 금융계 근대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9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옛 일본 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목포근대역사관으로 리모델링하여 개관하기도 했다. 영사관이 1관, 동척이 2관으로 총 2개 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1관에서 관람료를 내고 관람한 다음 2관까지 다 보면 된다. 유물보다는 당시의 서류 자료나 사진을 주로 전시해 놓았고 일제강점기의 목포 거리를 일부 재현해 놓기도 했다. 단, 2관에 있는 독립군을 처형하는 사진의 경우 정말 적나라하게 시체가 드러나는 사진이 일부 있기 때문에 관람에 주의를 필요하다.

쌀수출항에 일본인 거주구역이 많았던지라, 일제강점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신 구시가지 지역의 어르신들은 거의가 다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특이한 동네이다.

다우치 치즈코라는 일본 여성이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남편과 함께 공생원이라는 고아원을 세우고, 해방 후를 거쳐 1968년 타계할 때까지 평생 고아들을 돌보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통영과 함께 최고의 다도해 경치를 자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저녁에 유달산에 올라 석양에 붉게 물든 다도해의 바다는 정말 천하일품.

현재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프리머스시네마가 있는 도시였다. 2016년 1월 31일까지만 프리머스시네마로 운영하였고, 이후에는 메가박스로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은 목포시립도서관과 목포공공도서관, 목포어린이도서관, 전라남도립도서관[9]이 있다. 목포시립도서관의 경우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책 읽으러 가다가 뻗는 학생들이 부지기수.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면서 문무겸비를 하고 싶다면 자전거 타고 올라가보길 추천한다.

6.2. 종교

개신교회가 매우 많은 지역이다.[10] 많은 만큼 이단도 매우 많다. 목포에도 하나님의교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 날뛰고 있으니 주의 바람. 길거리에서 대놓고 천막 설치해서 신천지 홍보&신도 모집한다든가 전통시장 살리기 캠페인, 벽화그리기, 경로당에서 자원봉사 같은 것해서 사람들 환심사는 중. 목포가톨릭대학교 건너편에 외벽에 커다랗게 그림이 붙어있는 곳이 하나님의교회이다. KT 목포지사와 교보생명 사이에 있는 목포시온교회(구 코렉스마트)가 신천지교회니 주의할 것. 참고로 산정초등학교 부근의 시온聖교회는 신천지와 아무 상관없는 교회다.[11]

남악신도시에도 구 시가지의 교회들이 이전하면서 교회의 세력권은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6.3. 관광

광주광역시처럼 빛의 도시를 목표로 한다고해서 불꽃놀이를 자주 한다든지, 유달산가로등 설치 같은 삽질을 하고 있다... 있는 길 버리고 대교를 건설하고 길이란 길은 다 뚫는다. 그래서 시장 별명이 오직하면 '길 시장'이겠는가. 축제 한답시고 불꽃놀이는 새벽까지 터트리는터라 인근 주민에게는 죽을 맛에다 근데 그거 볼려고 밤에 안 잤다 츤츤, 멀쩡한 산을 가로등으로 발라놓는 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다.(…) 게다가 바닷물을 끌어와서 해상분수를 만든다는 프로젝트를 시에서 세웠는데 문제는 물을 높이 뿜을수록 소금물이 주변으로 퍼져서 주변 토양에 염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때문에 시민단체들에서도 염해피해 대책을 이유로 해상분수를 반대하고 있고 목포대학교의 실험결과에서도 염해피해가 우려되었으나 시에서는 무슨일인지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다. 때문에 추적60분에서도 격하게 까였다.

그런데 2010년 여름 실제로 해상분수가 완공되어 해양문화축제 때 선보이자, 까던 말들이 사라져 버렸다. 예상 외로 이쁘다외모지상주의의 승리는 것.[12] 해양분수는 "춤추는 바다분수"로 명명되었고, 3~11월 동안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부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공연을 한다. 중간 중간 쉬는 타이밍에 사연과 신청곡도 들려준다. 흠좀무 인근 주민들은 몇 번 보니까 식상해하기도 하는데, 외지에서 오는 사람은 보고 뻑 가는 듯. 실제로 목포에 방문하는 내일러들에게도 필수 방문코스. 정작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아 또 저거' 하는 눈빛으로 본다.

주요 관광지로 유달산이 있으며 바다를 면한 박물관 밀집지역인 문화의 거리가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구 국립해양유물전시관[13]), 목포자연사박물관, 남농[14]기념관 등이 가깝게 붙어 있으며 목포문화예술회관도 그 근처에 있다. 이 근처에 있는 갓바위는 2009년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유달산과 가까운 연안여객선 터미널을 통해 흑산도홍도와 같이 관광지로 유명한 섬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인근 횟집들에서 서울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다.

6.4. 대표 축제

  • 유달산 꽃 축제 (매년 4월 초 개최 /유달산 일원)
  • 목포항구축제 (매년 7월 말 또는 8월 초 개최 / 삼학도, 평화광장 일원, 舊 목포해양문화축제[15])
  • 목포시민의날 (목포 덕인고 출신 개그맨 배동성이 지상파에서 개그 소재로 활용한 적이 있다. 그때 불꽃놀이도 해요.)

7. 교육

7.1. 현황

7.1.1. 대학교

4년제 대학교는 목포대학교(솔직히 말하면 이름만 목포대학교다)[16], 목포해양대학교, 목포가톨릭대학교가 있고, 2년제 전문대는 목포과학대학[17](마이스트)이 있다.

7.1.2. 고등학교

고등학생들의 수준은 대체로 타 지방 중소도시의 평균만큼은 한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광주광역시가 전국 1위라서 목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의 고등학교로 유학가는 학생도 있고, 전남외국어고등학교 등으로 가버리는 학생들도 많다. 때문에 사실상 일반계 고등학교의 실력은 목포의 진짜 실력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도 시에서 서울대학교 입학생은 꾸준히 20~30명 정도는 나오는 듯 하다. 그런데 서울대는 거의 다 수시 지역균형으로 들어가기 때문... 지역버프.

이 지역 중고등학교는 평준화 이후로 사립이 강세고, 공립은 굉장히 약하다. 2005년 이전 고교 비평준화 시절에는 거꾸로 공립이 강세, 사립이 약세였다. 이 시기에는 공립학교인 목포고등학교가 제일 위에서 군림하고 역시 공립학교인 목포여자고등학교, 사립학교인 영흥고등학교, 문태고등학교전남제일고등학교가 그 뒤를 따르는 형세였고 목포고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었으나 대학들이 수시를 통해 내신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시작하면서 영흥고, 문태고, 홍일고를 필두로 하는 사립 고등학교들이 같은 재단의 사립중학교에서 우수학생들을 유치하여서 부속중학교가 없는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 안습[18] 좋은 내신점수를 만들어 주어 수시로 대학들을 보내기 시작하자 목포고의 위상이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학생들을 정시로 뽑던 시기에는 정시를 통해 명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며, 위세를 유지하다가 2005년 고교 입학생부터 평준화로 학생들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망했어요. 결국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2007년 수능의 응시생인 2004년 입학생에서 인문계 광주전남 수석[19] 및 자연계 광주전남 수석을 배출한 것을 마지막으로 망했어요(...)

또 다른 공립고등학교인 목포상고는 일반계인 전남제일고등학교[20]로 바뀐 뒤 더 망했어요..[21]이고, 목포고 역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최근 하향세. 평준화 이후 영흥고, 문태고, 덕인고, 홍일고 등의 사립고들이 잘 나가고 있다. 평준화 후부터 2012년 즈음까진 영흥고가 홍일고와 함께 명문대 배출자를 두고 우위를 겨누다 교내에서 안 좋은 일(?)로 인하여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고 그 틈을 타서 목포시 중등 성적 상위권을 전부 뺏어간홍일고가 성장하여 14년 현재 가장 명문고로 언급되고 있다. 13년에 수능 자연계 만점을 맞 서울대 의대를 지원했다 떨어진 모 학생도 이 홍일고 출신이다. 이후 14년도 입시 성적도 일반고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였다. 15년에 수시에서 말도 안 되는 포텐이 터지고 수능 성적으로는 전남 문과 수석 이과 차석이 배출되어 전남권에서는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을 했으나...[22]

목포 지역 중학생들은 학교를 잘 생각하자. 참고로 고교평준화 지역이므로 뺑뺑이다. 물론 일부 사립중학교에서 자교의 성적 중하위권 학생들은 절대로 같은 재단 고등학교를 못 쓰게 하고, 공립고등학교인 목포고목상고(구, 전남제일고)에다가 다 몰아줘 버린 다음에 일부러 미달 혹은 정원에 가까운 인원 정도만 지원하도록 만든 후 타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점을 어필해서 상위권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식의 '장난질'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23] [24]

7.1.3. 도심 공동화

현재 목포시 교육의 문제는 원도심 공동화에 따른 학생 수 편중 문제이다. 목포시구도심+하당신도심+전남도청의 인구는 하당신도심을 거쳐 남악신도시까지 지속적으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를 못 따라가고 있어서 원도심 학교들의 학생수 감소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서부초등학교는 북항의 버프를 받아 현재까지 약 1000명 가까이인 850여 명의 학생수로 살고있다. 원도심이야 이미 심각한 지 한참 되었지만 남악신도시가 개발된 2010년대에 들어서는 여파가 퍼지고 있다. 유달, 산정, 연동, 남, 중앙, 북교 등 원도심 초등학교는 학년당 한두 학급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고, 서산초등학교는 한 학년당 인원이 10명 이내로 거의 섬 초등학교 수준이고,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미어터지는 수준으로 열심히 교사(校舍)를 증축하고 신설학교를 추가로 개교시키던 하당신도심이나 북항지역 초등학교들마저 교실이 남아돌고 있다. 게다가 단순히 신도시 개발뿐만이 아니라 출산율까지 떨어지며 남악신도시를 개발하는 동안 초등학교 신입생수가 1천여 명 이상 감소해서 더욱 학생수 감소현상은 심화될 전망이다.[25]

초등학교야 통학거리 등의 문제로 소규모 학교라도 유지시켜야겠지만 중, 고등학교는 신도심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학교 신설만 하고, 기존 학교 정리나 이전 등의 대책은 세우지 않아서 원도심 학교 진학 기피 현상으로 인해 구도심 학교들이 여파를 입고 있다. 게다가 고교평준화의 영향으로 사립중학교들이 새로이 명문고가 된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 등으로 인식되면서 지원률도 떨어져 애꿎은 공립중학교들만 미니학교가 되가고 있다. 목포 버스 13-1번이라는 전용 통학 노선까지 만들어가며 유치한 목포여중의 2014년 신입생수는 특수학급 제외 2학급 54명이다. 거기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원도심 공립 3개 남학교(제일, 유달, 청호)들도 학급감소가 심각하다. 목포 지역 현직 초등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신도심 학생을 원도심 학교에 배정했다간 학부모들이 교육지원청에 칼 들고 쫒아온다 카더라 제일중학교의 경우 한때 목포시 인구 1/4가 하당지역에 있던 유일한 남중이었던 영흥중학교가 1999년부터 남녀공학이 되면서 하당중학교가 개교한 2005년까지 남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가 0.5개뿐이라 신도심 근처에 위치한 관계로 미어터졌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학급이 줄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수요 불균형에도 일단 원도심 학교들이 학급수를 줄여서라도 유지는 되고 있는데 뺑뺑이 추첨에서 운 나쁘면 누군가는 신도심에서 원치 않은 원도심 중학교로 진학하게되니 이에 대한 신도심이나 남악신도시 옥암지구 주민들의 불만도 많고, 해마다 구도심으로 진학하게된 학생들이 대량으로 위장 전입을 써서 무안군 관내인 남악신도시 남악지구의 남악중학교로 전학신청을 하는 사태도 발생하였다. 이에 또 2013년에는 남악중학교 교사들이 과밀학급으로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며 관할 교육청에 배정중지 요청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기사참조 거기에 원도심 고등학교들도 평준화로 인한 사립학교로의 학생 쏠림 및 도심 공동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결국 학생 수 감소를 버티다 못한 청호중학교는 용해지구의 새로운 택지개발지구를 따라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기사참조 위에서 언급한 목상고등학교 역시 옥암지구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기사참조 ~그런데 옥암지구의 학교 부지들이 워낙 콩알만 해서 옥암지구로 가면 교지 면적이 1/4~5로 줄어든다(...).~ [26]

7.1.4. 유학생

목포 근처의 타 지역에서 목포로 유학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목포 근처의 지역이 대부분 섬과 같은 지역이라 섬 내에 고등학교가 없어서 아예 목포로 오는 경우도 있고, 질 좋은 교육이나 체육특기생 등의 이유로 목포로 오기도 한다. 목포가 죽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남 서남부에서는 목포만 한 도시가 없기 때문. 이렇게 시내로 들어오는 많은 학생들이 목포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숙사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애초에 시내로 유학오는 이유가 잘나가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함이었으니, 하지만 평준화 이후 망했어요 평준화 이후 목포고등학교는 기숙사 방이 남아돌아 4인실을 3인실로 바꿨다.

7.1.5. 장학제도

목포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광주로 올라가기 때문에 이를 잡아두기 위하여 목포시에서는 목포시내 고등학교 출신자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면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실력이 있는 학생은 노려볼 만하다!

7.1.6. 특수목적고

특수목적고로는 전남예고전남체고가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전남외고전남과학고 등 특목고를 노리는 중딩들은 무조건 나주시로 유학가셔야 하겠다.

7.1.7. 기타

전라남도의 22개 시군 중 유일하게 '읍과 면 지역 및 도서와 벽지지역 교육진흥법'의 적용이 되지 않는 지역이다. 동부권의 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등이 인구도 소득수준도 목포시보다 높음에도 위 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데 반해, 목포시는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고 경제수준이 낮은데도 도농복합시가 아니기 때문에, 즉 읍과 면이 없고 동만 있기 때문에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근데 여순광 지역이라 해도 읍면 지역이 적용 받지 시내 지역은 어차피 적용 안 받으니 그게 그거.

7.2. 공립유치원

  • 단설 목포서부유치원, 목포옥암유치원, 목포백련유치원
  • 병설: 목포북교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산정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중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유달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이로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남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서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대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용호초등학교병설유치원,목포삼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연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임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대연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상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부영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하당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연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목포신흥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청호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한빛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미항초등학교병설유치원,목포서해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용해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석현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항도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애향초등학교병설유치원, 목포부주초등학교병설유치원

7.3. 초등학교

  • 국립: 광주교육대학교목포부설초등학교
  • 공립: 목포북교초등학교, 목포산정초등학교, 목포서부초등학교, 목포중앙초등학교, 목포유달초등학교(달리분교, 율도분교(휴교)),목포동초등학교, 목포이로초등학교, 목포남초등학교, 목포서산초등학교(충무분교(휴교)), 목포대성초등학교,목포용호초등학교, 목포삼학초등학교, 목포연동초등학교, 목포임성초등학교, 목포대연초등학교, 목포상동초등학교,목포부영초등학교, 목포하당초등학교, 목포연산초등학교, 목포신흥초등학교, 목포청호초등학교, 목포한빛초등학교,목포미항초등학교, 목포서해초등학교, 목포용해초등학교, 목포석현초등학교, 목포항도초등학교, 목포애향초등학교,목포옥암초등학교, 목포영산초등학교, 목포부주초등학교, 목포백련초등학교

7.4. 중학교

7.5. 고등학교

7.6. 특수학교 / 평생교육시설

  • 사립: 목포인성학교(특수학교),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평생교육시설)
  • 공립 : 목포고등학교부설방송통신고등학교(평생교육시설), 목포중앙여자중학교부설목포방송통신중학교(평생교육시설)

8. 정치

19대 대선 목포시 개표 결과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77,896
(53.73%)

2,584
(1.78%)

53,303
(36.77%)

3,013
(2.07%)

7,529
(5.19%)

+ 24,593
(△16.97)

77.54%

용당1동[31]

46.36%

2.36%

45.93%

1.45%

3.45%

△0.43

71.63

용당2동

46.73%

1.86%

45.93%

1.63%

3.41%

△0.80

71.43

연동

43.39%

2.18%

49.67%

1.66%

2.57%

▼6.28

69.81

산정동

52.16%

2.07%

38.78%

1.84%

4.65%

△13.38

76.61

연산동

54.96%

1.49%

35.67%

1.69%

5.58%

△19.29

79.70

원산동

53.61%

1.82%

36.46%

2.02%

5.72%

△17.15

74.45

대성동

54.07%

1.69%

37.78%

1.48%

4.61%

△16.29

76.24

목원동[32]

44.43%

2.05%

48.37%

1.27%

3.47%

▼3.94

69.06

동명동[33]

44.57%

1.82%

48.39%

1.54%

3.32%

▼3.82

70.96

삼학동

50.01%

0.98%

42.68%

1.47%

4.52%

△7.33

77.63

만호동[34]

42.45%

1.00%

51.68%[35]

1.26%

2.88%

▼9.23

62.68

유달동[36]

45.53%

2.10%

47.00%

1.40%

2.96%

▼1.47

67.73

죽교동

45.96%

2.41%

44.37%

1.68%

4.41%

△1.59

69.78

북항동

52.55%

1.82%

38.24%

1.75%

5.29%

△14.31

75.24

용해동

56.34%

1.58%

34.40%

1.82%

5.55%

△21.94

76.06

이로동

52.27%

1.76%

38.48%

2.12%

4.94%

△13.79

79.21

상동[37]

53.15%

1.62%

38.25%

2.01%

4.50%

△14.90

76.04

하당동

56.02%

1.90%

32.78%

2.47%

6.38%

△23.24

71.52

신흥동

55.67%

1.37%

34.77%

2.16%

5.67%

△20.90

79.47

삼향동

54.52%

1.65%

36.71%

1.81%

5.05%

△17.81

76.75

옥암동

57.45%

1.43%

33.48%

1.82%

5.53%

△23.97

81.62

부흥동

55.83%

1.67%

33.77%

2.06%

6.30%

△22.06

78.80

부주동

60.58%

1.70%

29.65%

2.25%

5.57%

△30.93

80.59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거소·선상투표

51.67%

2.95%

35.13%

4.74%

3.59%

△16.54

관외사전투표

60.80%

2.13%

25.41%

3.72%

7.43%

△35.39

재외투표

71.99%

1.53%

14.00%

1.97%

10.07%

△57.99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투표율

목포시[38][39]

52.83%

1.73%

38.23%

1.86%

4.92%

△14.60

75.42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투표율

원도심권[40]

50.20%

1.82%

41.37%

1.68%

4.46%

△8.83

73.66

하당지구[41]

55.42%

1.58%

34.92%

2.10%

5.58%

△20.50

77.35

남악신도시[42]

62.78%

1.38%

27.48%

2.27%

5.81%

△35.30

81.18

2012년 18대 대선/2016년 20대 총선(비례)/2017년 19대 대선 지역별 득표율 비교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선거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율 (대선/대선)

증감율 (총선/대선)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율 (대선/대선)

증감율 (총선/대선)

목포시

91.16%

20.65%

53.73%

▼37.43 (-41.1%)

△33.08 (+160.2%)

8.49%

4.71%

1.78%

▼6.71 (-79.0%)

▼2.93 (-62.2%)

목포시

목포시-신안군

목포시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권노갑/초선
평화민주당

권노갑/재선
민주당

김홍일/초선
새정치국민회의

김홍일/재선
새천년민주당

이상열/초선
새천년민주당

박지원/재선
무소속

박지원/3선
민주통합당

박지원/4선
국민의당

한화갑/재선
새정치국민회의

광주광역시가 민주당계 정당의 몸통이라면 목포시는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이다. 즉, 민주당의 상징성이 가장 강한 지역은 광주지만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은 목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지역으로서 동교동계가 움직이는 대로 지지도가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민주당계 정당이 둘로 분열되었을 때에 잘 드러나는데,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떨어져 나왔을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역풍을 맞아 새천년민주당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음에도 탄핵 직후에 열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이상열 후보가 50.89%를 얻어 열린우리당 김대중(...) 후보를 10.35%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고, 비례대표에서도 불과 2.21% 차이로 접전을 벌인 사례가 있었다. 또한 두 번째로 분열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사태에서도 동교동계 상당수가 국민의당으로 넘어가면서, 이듬해 열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후보가 56.38%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조상기 후보를 무려 36.12% 차이로 크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비례표에서도 무려 52.8 : 20.6으로 비슷한 격차를 보였을 만큼 동교동계가 아직까지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이러한 역사의 시작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6대 총선에서 목포시에서 당선[43]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다할 지역색이 나타나지 않아서 전국 민심과 비슷하게 흘러갔는데, 제6대 대통령 선거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이 각각 60.36%, 50.68%를 얻어 크게 승리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34.42%, 44.24%를 얻어 결코 적지 않은 표를 얻었다. 이 당시에는 전국이 여촌야도 현상을 보여 도시 지역에서는 민주당 계열이 승리를 했던 시절인데, 목포는 이런 전국의 민심을 따라간 것에 불과했다. 당시 목포가 전국 8대도시로 꼽히던 시절이었던 만큼 대표적인 도시의 민심을 대변했다고 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러나 김대중 의원이 신민당의 중진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김영삼을 꺾고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지역주의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결과는 결코 아니었고, 당시 김대중 후보는 66.45%를 얻어 32.37%에 그친 박정희에게 더블스코어로 이겼는데 김대중 후보의 본진인 것을 감안하면 딱히 두드러진 득표율은 아니었다. 지역주의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보수세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목포가 지금의 정치 지형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것은 산업화 시대에서의 소외 및 5.18 민주화운동이 결정적이었다. 5.18 민주화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광주에 유학을 간 목포 출신 고등학생~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실종 및 피살되는 사례가 생기고, 도망쳐나온 일부 학생들에 의해 5.18의 진실이 퍼지면서 군부독재 세력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비극이 언론에서는 폭동으로 선전되었고, 광주를 비롯한 호남 전체를 빨갱이로 매도하는 여론을 군부독재 세력이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면서 목포 사람들이 타지로 나가면 갖은 차별과 억압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가 민주당계 정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이미 보수정당의 지지세는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5개년 개발 계획을 통해 수도권영남권에 집중적인 대기업 유치를 하면서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인천, 안산, 수원, 울산, 포항, 마산, 거제에서 중공업이 성장을 하고, 부산, 대구, 구미 지역에 섬유산업 등 경공업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호남은 이러한 산업화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제대로 된 대기업조차 거의 나오지 못했고, 이 중에서도 목포는 그 안에서도 더 큰 소외를 당했다. 대표적인 예가 호남고속도로의 순천 경유인데, 당시 전국 3대항이자 8대도시였던 목포에 호남고속도로가 들어오지 않고 순천으로 우회하는 경로로 지어졌다. 물류의 이동에 있어서 고속도로의 필요성이 절대적이었지만 지금의 수원, 울산과 비슷한 위상을 지녔던 목포에 고속도로가 건설이 되지 않으면서 교통망에서 철저히 소외된 것이다[44]. 또한 수도권과 영남권에 엄청난 규모의 산업단지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온 것과는 반대로 목포엔 중공업은 커녕 경공업단지조차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철저한 소비도시로만 남게 되었다. 결국 목포의 성장은 80년대를 기점으로 완전히 꺾여 다른 지역의 도시들보다 매우 심각하게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소외가 박정희의 경쟁자였던 김대중의 연고지라는 것이 이유를 끼쳤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일부러 홀대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러한 결과들이 종합적으로 섞여 전두환 정부부터는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완전히 바닥을 치게 되었고, 김대중에 대한 암살 시도 및 가택 연금, 강제 미국 도피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서 보수정당은 아예 목포에서 기반을 상실하였다. 결국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가 이뤄진 직후에 열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93.54%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전남 1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열린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권노갑 후보가 84.20%의 득표율로 당선이 되었다. 이후 열린 선거에서 족족 민주당계 정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하는 역사가 꾸준히 이어졌다.

이후 14대 대선, 15대 대선에서 모두 김대중 후보가 95%가 넘는 몰표가 나왔고, 14대 총선, 15대 총선, 16대 총선에서도 각각 김대중의 장남 김홍일, 최측근인 한화갑박지원이 당선되어 왔으며, 특히 탄핵 역풍이 몰아닥친 17대 총선에서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만큼 김대중 및 동교동계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후 열린우리당이 대참패했던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박준영 도지사 후보가 76%, 정종득 시장 후보가 62.8%를 기록해 열린우리당 후보를 매우 큰 차이로 압도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분당 시점에서 민주당계 정당에 대한 지지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이 당시 탄핵 역풍에도 불구하고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이기기는 했지만 비례표에서는 열린우리당에 2.21%가 밀려 40%에 그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 후보가 80.09%를 얻어 민주화 이후 20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80%의 득표율에 그쳤고, 18대 총선에서도 컷오프되어 공천 불복으로 탈당한 박지원 후보가 53.58%를 득표해 통합민주당의 정영식 후보를 20% 격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처럼 민주당이 깃발만 꼽는다고 된다고 보기엔 오묘한 민심을 보였다.

이러한 민심 이탈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절정을 보였다. 아무리 동교동계 및 호남 중진 의원들의 대부분이 국민의당으로 갔다고는 하나, 수십 년간 지역의 여당 역할을 한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 비례표 모두 20% 초반의 득표율에 그치면서 2.5배나 되는 격차로 밀려버린 것이다. 텃밭에서 20% 득표라는 것은 그동안의 민주당계 정당에서 유례가 없었던 일로,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 싸늘하게 식었을 뿐만 아니라 텃밭이라 지역에 소홀히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를 아주 강력하게 보낸 것이다. 또한 박지원에 대한 신뢰도 및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대 총선에서는 또한 진보 정당인 정의당의 지지율이 전남, 전북, 광주를 통틀어 가장 높은 곳으로 나왔다. 무려 11.48%를 가져갔는데.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득표율이 목포보다 높게 나온 지역은 인천광역시 동구[45](12.79%), 울산광역시 북구(13.57%)[46],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11.50%),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15.36%)[47], 경기도 과천시(11.75%),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16.53%)[48] 6곳밖에 없다. 다만 19대 총선 때의 통합진보당 득표율은 전국 평균보단 높았으나 호남지방 평균과 비교했을 때는 평이했던 것으로 보아, 정의당이 창당 이후 자체적으로 기반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비례대표 4번 윤소하 의원(전남 해남 출신)의 정치 활동 기반이었다.[49] 실제로 민주노동당 시절에 목포시 지역구 의원 선거에도 몇 차례 출마한 바 있고... 또한 정의당 전라남도당이 목포에 있으니 전남 타 시군(특히 동부권)과 비교해 지역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쉬웠고, 이는 목포와 인접한 지역인 영암과 무안에서 정의당이 8%대를 획득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20대 총선 이후 국민의당이 한동안 우위를 보였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흔들렸다. 이미 리베이트 사건 및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기 위해 나온 것 아니냐는 설이 돌면서 안철수 및 국민의당 지지도가 크게 꺾이긴 했지만 목포에선 여전히 민주당과 접전 우위를 보이는 지지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12월 2일 탄핵 발의를 앞두고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 대표가 새누리당 비박을 설득할 때까지 탄핵을 미루겠다는 성명을 발표하여 목포에서 크게 분노를 샀다. 결국 목포 시민이 광화문에 올라와 직접 목포 김기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민주당의 지지세가 크게 반등을 하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에 돌입하면서 언론의 호의적 보도를 등에 업은 안철수 후보가 급부상하였다. 정권교체 열망이 매우 높았던 목포였지만, 지역 민심은 문재인과 안철수 모두 완벽한 정권 교체이자 언젠가는 합쳐질 경쟁적 동반자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기에 안철수 쪽으로 다시 급격히 지지율이 쏠리면서 안철수 후보가 크게 우위를 보였다. 그러나 차떼기 논란, 조폭 논란, 유치원 발언, 부인 갑질 논란이 연속으로 터졌을 때 안철수 후보는 검증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뿐더러, 토론에서 기대 이하를 넘어 자격 미달로까지 비춰질 모습을 보여 이후 지지세가 크게 꺾였다. 여기에 추가로 탄핵 이전부터 지역구 의원인 박지원의 집중적인 문재인 때리기에 염증을 넘어 분노를 느낀 민주당 유권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결집하는 모양새를 보였고, 국민의당 지지자들 중 일부조차도 '저 사람 왜저러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대선을 2주 앞두고 목포에서 골든크로스가 일어나게 되었다.

결국 5월 9일 골든타임이 오자 목포시민들은 다시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53.73%로 전체 표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 것이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승리를 했던 국민의당안철수 후보는 고작 36.77%에 머물러 무려 17%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더욱 굴욕적인 것은 이 결과가 호남권에선 가장 안철수가 선전한 편이라는 것이다. 안철수는 호남 전체 평균보다 무려 9%나 득표율이 높았으며, 목포 5개동에서 1위를 기록했다. 광주와 전북에서는 읍면동 단위에서도 단 하나도 1위를 하지 못했기에 그나마 국민의당 및 박지원 지지기반이 다른 호남보다는 조금 더 탄탄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에게 17% 격차로 참패한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연령별로 정치 성향이 크게 갈라진 모습을 보였다. 안철수가 이긴 5개동은 모두 구도심 지역으로 고령층 인구가 많고 낙후성이 심한 곳이었다. 구도심 전체로 보면 50.2 : 41.4로 문재인이 이겼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았고, 전국에서 가장 두 후보간의 격차가 적었던 지역들(신안군, 진도군, 강진군)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개발되어 30~50대 유권자가 많은 하당지구에서는 55:35로 문재인 후보가 20%의 격차를 벌려 크게 승리했고, 2000년대 이후 개발되어 더 젊은 유권자가 많은 남악신도시에서는 무려 62:28까지 벌어져 호남 평균 정도의 격차를 보였다. 이는 목포의 2040 세대와 50대 이상의 민심이 크게 격리된 것을 뜻한다. 광주에서 60대 이상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더 많이 지지한 것처럼 목포에서도 60대 이상 유권자들은 안철수를 더 많이 지지한 것으로 보이고, 50대에서도 오차범위 이내의 각축전을 벌인 것으로 추정되나, 40대 이하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이는 결과였다.

그래서 앞으로도 민주당계 정당이 분열된 이상 세대 간 대결 구도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을 하자마자 강경하고 단호한 개혁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면서 호평을 받았고, 국민의당은 여기에 협조를 하지 않고 반대만 거듭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목포 민심을 자극했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 27주기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 행보로 지지도를 급격하게 끌어올려 국민의당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고, 설상가상으로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이언주 막말 파동이 터지면서 현재는 목포의 고령층마저도 더불어민주당 및 문재인 대통령을 믿어보자는 분위기 및 국민의당 비토 정서가 강해졌다.

하지만 2018년 현직 시장인 박홍률시장의 업무수행 지지도가 높고[50] 재임기간동안 단 한명의 공무원도 비리로 인해 감옥에 가지 않는 것을 시민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라서 대통령 지지율을 등에 업은 민주당의 도전도 쉽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의 최종 승리자가 어느 정당이 될지는 목포시민의 손에 달렸다고 봐도 될 것이다.

9. 행정

목포시/행정 참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목포시의 도시구조는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10. 이야깃거리 및 출신인물

도시가 면적이 매우 좁아서 택시를 탈때 굳이 동 단위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목포시민들은 택시 탈 때 목적지 주변 건물 이름으로 말한다. 다른데서도 이런 줄 알았다가 서울시 가서도 건물 이름을 말해 버렸다..

2010년에 목포 여대생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나, 근방 CCTV가 고장나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점, 발견된 피해자의 유류품들이 바닷물에 젖어[51] 국립과학수사대도 감정불가능한 점, 목격자의 제보가 전무한 점 등 때문에 2010년부터 계속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유로 제주도 출신들이 많이 살기도 한다. 일례로 박영수부좌현이 있다.

세월호가 거치될 곳이 목포시 달동에 있는 목포 신항이다.


  1. [1] 경기도에 속하지 않는 자치시, 행정시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부산과 비슷하고 대구, 광주, 대전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물론 언급한 예시들은 땅이 넓으며 그린벨트로 묶인 곳이 많고, 목포는 그냥 도시가 땅이 워낙 좁아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차이는 있다. 만일 다른 지역처럼 무안군 등과 통합된 도농복합시 형태였다면 목포시의 인구밀도는 400명/㎢ 정도로 크게 줄어든다.
  2. [2] 해수욕장은 배 타고 외달도로 가야한다. 유달해수욕장은 2006년에 기능 상실로 인해 폐쇄되고, 유달유원지로 개명했다.
  3. [3] 사실 도청이 행정구역상으로 무안군 영역에 있기만 하지, 도청이 있는 곳은 행정구역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목포다. 위성사진을 띄운 다음 어디까지가 목포시이고 어디까지가 무안군인지 분간이나 해 보자. 할 수가 없다!
  4. [4] 전국적으로는 경기도 구리시, 과천시, 군포시, 광명시, 오산시에 이은 전국에서 6번째로 좁은 시. 게다가 군포, 광명, 오산, 구리는 읍이었고, 과천과 계룡 등이 특수 목적시인 걸 감안하면(...)
  5. [5] 처음에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으로 바꾸어 부르다가 광복 후 고쳤다.
  6. [6] 당시 이로면사무소는 현재 목포의료원 자리.
  7. [7] 지금의 목포를 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광복당시만해도 전국 10대 도시 중 하나로 뽑힐 정도였다. 1966년 당시만 해도 인구 순위는 전국 8위였다!! 10대 도시는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전주 - 목포 - 마산 - 수원 순이었다. 대전까지 끊어서 직할시 승격 테크를 타고 목포는 과거에 비해 그 위세가 줄었지만 마산은 통합을 통해 100만급의 창원으로, 수원은 통합 없이 100만급으로 커져 광역시드립을 날리고 전주도 과거보다 위세가 줄었지만 여전히 전북 최대 거점 도시로 호남 북부권의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불균형개발의 큰 피해자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8. [8] 하당과 남악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이 지역은 더더욱 재개발의 꿈도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유달산 근방은 나름의 정취라도 있지만 7-80년대 주택들과 점포들이 위치한 삼학도 일대는 그저 안습
  9. [9] 행정상으로는 무안군. 하지만 바로 길 건너가 목포다. 진짜다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정확히 횡단보도 3개만 건너면 목포다.
  10. [10] 유달산에 올라서 돌을 던지면 십자 두 개가 부러진다고 카더라
  11. [11] 원래는 시온교회였으나 신천지가 이름을 가로채가고,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시온聖교회로 개명했다. 시온교회는 얄짤없이 신천지.
  12. [12] 이전에 깠던 주변토지의 오염문제도 분수주변을 아에 해수에 강한소제를 사용해서 공원으로 조성 해버린 건 덤
  13. [13] 국립해양박물관 승격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어영구영 시간만 보내던 도중 부산에 국립해양박물관을 떡하니 지어버렸다.현재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개칭
  14. [14] 남농 허건(1907~1987) : 한국화가. 한국화에서 남화를 잇는 중요한 화가로 꼽힌다.
  15. [15] 시장이 바뀌면서 축제 이름도 바뀌었다. 목포대의 한 교수가 오래전부터 이름변경을 권고한 결과.
  16. [16] 대학본부가 무안군에 있다.
  17. [17] 처음 명칭은 목포전문대학이었다. 얼마 후 전문이라는 이름 삭제하고 목포과학대학으로 개명. 최근 전문대의 대학교 명칭 허용하는 법이 개정되자마자 바로 목포과학대학로 개명
  18. [18] 과거에 마리아회중학교가 있었으나 폐교됐다.
  19. [19] 이 학생은 이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모종의 사태만 없었다면 공동 수석이었기에 사실상 수석 취급을 받기도.
  20. [20] 2014학년도부터 장사 상(商)자를 으뜸 상으로 재해석(?)한 목상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21. [21] 명색이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지만 목포에서의 인식은 실업계와 동급 내지 그 이하이다. 일반계로 전환한 이후 서울대학교 합격생은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22. [22] 목포시의 고교 성적 평준화 이후 입학한 15년도 신입생들은 모의고사 성적에서 선배 학년에 비해 후달리는 모습이 보여 이러한 명성도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3. [23] 하지만 이러한 장난질을 막기 위해 2015학년도 고입부터는 성적을 고려하여 목포시 전 고등학교의 입학생의 성적이 동일하도록 뺑뺑이를 돌리게 되었다
  24. [24] 예를 들면 100점이 10명이고 90점이 20명일때 학교가 10개면 한 학교당 100점은 한 명 90점은 2명을 배정하는식
  25. [25] 목포MBC보도에 따르면 2007년 3,729명이던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2013년 2,623명 까지 감소하였다.
  26. [26] 목상고 부지는 목포시내 학교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로 유명하다.
  27. [27] 舊 목포상고-전남제일고
  28. [28] 舊 목포기계공고
  29. [29] 舊 회림축산고-대양농업고-목포실업고
  30. [30] 舊 신명여상고
  31. [31] 목포시청이 있는 동네
  32. [32] 목포역 및 번화가가 있는 목포의 중심지
  33. [33] 목포수산시장이 있는 동네
  34. [34] 목포항 및 삼학도가 있는 목포의 중심지
  35. [35] 전국에서 안철수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36. [36] 목포해양대학교 및 목포신항이 있는 동네
  37. [37] 목포종합버스터미널이 있는 동네
  38. [38] 관외투표 제외
  39. [39] 지역구 국회의원 : 박지원 (국민의당, 4선)
  40. [40] 용당1동, 용당2동, 연동, 산정동, 연산동, 원산동, 대성동, 목원동, 동명동, 삼학동, 만호동, 유달동, 죽교동, 북항동, 용해동, 이로동
  41. [41] 상동, 하당동, 신흥동, 옥암동, 부흥동
  42. [42] 목포시 부주동,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제5~10투표소)
  43. [43] 실제로는 5대 국회에서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었지만 당선 12시간만에 5.16 군사정변으로 의회가 해산되었다.
  44. [44] 결국 2001년이 되어서야 고속도로가 처음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호남선 개량화도 2003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45. [45] 동구청장이었던 조택상이 정의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다.
  46. [46] 정의당의 주축 중 하나인 조승수가 정치활동을 시작한 지역이다.
  47. [47] 정의당 현 대표 심상정의 지역구이다.
  48. [48]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진보 정당 지지율이 높으며 이곳에서 권영길이 재선을 했고 20대 총선에 노회찬이 출마해 당선되었다.
  49. [49] 다만 정파상으로는 광주전남연합이 아닌 인천연합 계열로 분류된다.
  50. [50] 목포시 부채 3000억원 중 2000억원을 해결했다고 한다.
  51. [51] 하지만 사건현장은 바닷가와 꽤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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