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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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2. 각국과의 관계
2.1. 중국과의 관계
2.2. 대만과의 관계
2.4. 미국과의 관계
2.5. 영국과의 관계
2.6. 스웨덴과의 관계
2.7. 핀란드와의 관계
2.8. 이탈리아와의 관계
2.9. 독일과의 관계
2.10. 한국과의 관계
2.10.1. 탈북 루트
2.12. 터키와의 관계
2.13. 헝가리와의 관계
2.14.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2.15. 베트남과의 관계
2.16.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
2.17. 기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2.18. 중동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1. 개관

중국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 신세이며 이 두 나라에 침략당했던 역사 때문에 이 나라들을 매우 경계한다.한 때는 이 두나라를 모두 털어먹었지만..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 협력 기구(SCO) 및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에 참여하는 등 현실적인 이익 앞에서는 이들 국가와 협력하고 있다.

나치즘을 찬양하며 외국인을 배척하는(주로 중국인이 타겟) 네오 나치 극우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사이트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테러가 잦다며 자국민에게 여행 안전 경고를 내렸다.

좀 의외겠지만 터키가 몽골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고 한다. 몽골에 남은 흉노, 돌궐 역사를 자기들 조상 역사로 봐서인지 몽골에 있는 돌궐 재상 톤유크 유적지 발굴에 투자 및 인력을 보내는 것도 바로 터키 측이다.비석 사진 덕분에 몽골과 터키는 몽골땅의 옛 유목제국의 역사가 서로 자신들의 역사라고 키배를 벌이고 있다.

중국러시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영세 중립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근데 아시아엔 싱가포르가 있잖아 아마 안될꺼야

참고로 서양인들은 몽골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 사람도 많다. 왜냐하면 칭기스 칸 등을 매체에서 나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히 뭉개진 러시아나 서아시아가 두드러지게 혐오하고 직접 대결하지 않은 서유럽은 그저 순수한 유목민들이라고 비교적 관점이 완화되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포용하고 있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상당수 매체에서 선역으로 좋게 묘사되었다.

2. 각국과의 관계

2.1. 중국과의 관계

워낙 이쪽의 역사가 농경민과 유목민족의 싸움이다 보니 둘의 관계는 예전부터 안 좋았다. 중국에서 오랑캐라고 멸시하듯 몽골도 중국인을 "호자"(хужаа)라고 부르며 멸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몽골의 반중의식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한족에 대해 크게 경계심을 가지게 된 근현대에 이르러서이다.

중국은 중국 내의 몽골족(내몽골인)이 몽골인보다 더 많다는 사실에 힘입어 중국 소수민족인 몽골족이 주류인 내몽골자치구에다가 칭기즈 칸이 중국인이라면서 무덤이나 여러 가지를 세워둬서 몽골국 몽골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물론 사서에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무덤(...)을 내몽골에 조성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중국이 내몽골에 저런 일을 하는 것은 몽골을 중화민족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칭기즈 칸은 오논 강 유역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가 있던 보르지긴 씨족조차 본래는 이 지역에서 살았던 부족이다. 또한 원조 성립 이전의 몽골 제국의 수도는 카라코룸인데, 이 카라코룸은 현재 외몽골의 한가운데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오르콘 강 유역에 있고, 알다시피 오르콘 강 유역은 셀렝게 강의 지류이며 몽골의 정중앙에 위치한 강이다. 상식적으로 몽골제국 성립 당시에는 서하, 금나라와의 접경지였던 내몽골인데 칭기즈 칸이 전투를 벌였던 곳 같은 장소라면 몰라도 무덤을 내몽골에 갖다 놓는 건 말이 안된다.

물론 몽골 제국 당시 만주~부랴트에 이르는 광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닌 이들이 몽골 키야트 부족이며 이들은 만주와 부랴트를 다 "몽골"로 인식했다. 중국의 주장대로면 러시아의 부랴트도 중화세계의 일부여야 하는데 너무 무리수이다.

게다가 생애 대부분을 몽골 스텝지대와 중앙아시아의 원정길에서 보낸 칭기즈 칸이 '중화천하'라든지 '하나의 중국'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현대 중국 내셔널리즘의 필요에 따른 지극히 목적론적인 견강부회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중국식 칭제건원을 한 일도 없고, 중국의 제도와 문명을 따르긴 커녕 파괴할 생각이나 했으며 유목민의 삶만 고집하던 사람이 무슨 중화영웅이 된단 말인가. 그야말로 러시아의 동진이 몽골제국을 계승해 유라시아 통합을 도모한 것이었고 칭기즈 칸이 유라시아 연합의 초석을 놓았다고 주장하는 수준.

그리고 차하르 부족의 지배집단이 칭기즈 칸의 후손인건 맞지만, 칭기즈 칸이 생전에 활동하던 지역은 지금의 내몽골이 아니라 오논 강 유역과 카라코룸이 있는 외몽골이 맞으며 내몽골에 그의 무덤을 조성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이건 내몽골인이 칭기즈 칸의 후손이고 외몽골은 내몽골인보다는 거리가 있는 부족이라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며 중국이 그냥 기념을 위해 혹은 내몽골에 진짜 유적지가 있어서 저러는 건 절대 아니다.

더군다나 한국계 국가인 고구려발해의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속지주의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중국이 이런 문제에서 오히려 내몽골의 자하르부가 칭기즈 칸의 후손이니 이곳에 칭기즈 칸의 무덤을 조성한다는 건 전형적인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영토 내몽골이라는 속지주의적인 관점을 완전히 버려도 내몽골인의 혈통 드립치며 칭기즈 칸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도 실질적으론 개드립에 가깝다. 현대적인 의미의 몽골족과 엄연히 구분되는 오이라트인이 외몽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근대 이전의 이야기이며, 실질적으로 현대 몽골 공화국에서 오이라트인은 절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현 외몽골인들의 대부분은 북원 멸망 이후 칭기즈 칸의 후손인 다얀 칸의 시대에 다시 재통합된 동몽골이 나중에 다얀의 후손 보얀 칸의 시대인 16세기 말에 다시 둘로 분열되며, 이게 얼마 안 있어 이들을 차례로 복속시킨 청에 의해 고정되면서 현대의 내/외몽골이 완성된 것이다.# 한 마디로 외몽골인이나 내몽골인이나 소위 '혈통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게 그거다. 그러므로 중국의 주장은 내몽골을 토대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중 중국에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몽골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 역사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중국 극우들이 주장하는 소리는 중국 내부에서도 당연히 말이 많으며, 의식 있는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원나라는 몰라도 칭기스 칸이 어떻게 중국의 역사냐고 말하면서 이런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현재의 몽골-중국 간 갈등의 기원을 찾자면, 멀리는 원대, 일단 청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몽골은 중원, 티베트, 위구르 지역과 함께 청에 속해 있었다. 다만 청은 중원의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 통치하는 국가였고 오히려 후금시절 만몽 연합정권의 성격을 가지고 중국을 다시 정복했으며, 청은 주변부 지역들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원과 남부에서는 명나라를 계승한 중국의 천자를 칭하고, 북방에서는 몽골제국을 계승한 칸이 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왕조였다. 티베트는 스승의 민족으로 존중해 주었고, 위구르는 식민지 취급, 만주는 성지 취급하여 만주족 외의 민족은 출입금지, 몽골은 일찍 복속된 내몽골과 후에 정복된 외몽골을 따로 취급, 분리했고 징기스칸의 성씨를 계승하는 내몽골의 보르지긴 황족과 만주의 황족은 정략 결혼을 했으며 청의 황제는 칸위를 겸했다. 더군다나 당시 청나라와 호흡을 같이한 몽골은 내몽골이지 현대 몽골국인 외몽골이 아니다. 반면 외몽골은 준가르부를 정복한 건륭제 때에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복속시켰고 그나마 반 독립지나 다름 없었다.

한족의 독립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외몽골 역시 독립을 선언하지만, 중국은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청나라와 그 소속부 지역, 민족들의 관계에 대해 서구속령의 개념으로 이해, 도입하였다. 구 청나라의 모든 영토와 민족에 대한 지배권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주장, 위구르, 티베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 사회에서도 이를 승인하여 몽골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소련이 몽골의 독립을 도왔으며 중화민국과 전쟁을 치르던 중국공산당을 지원하는 대가로 외몽골의 독립을 보장해준 것이다. 소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독립국 몽골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 역시 과거에 워낙 몽골에게 당했던지라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 여기서는 반대로 대한족주의자들의 몽골인 폭행도 일어난다. 일단은 청나라의 영토를 운운하지만, 민족감정을 들여다보면 대놓고 '중화민국은 최초로 만주고 몽골이고 뭐고 북방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한족이다' 라며 뭔가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중국이 몽골을 지배하는 것을 복수 정도로 여기는 듯. 이따금 몽골인과 중국인 키배를 보면 매우 살벌하다... 어쨌든 수틀릴 대로 수틀린 골이 깊은 관계다.

하여튼 현재까지도 은연 중에 중국이 가하는 압박이 많은 탓에, 몽골인은 중국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몽골의 중국 항구 이용 불허. 내륙국인 몽골은 자원을 수출하려면 천상 타국의 항구를 이용해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중국은 반중 감정을 가진 몽골을 좋아할리가 없어 몽골의 이러한 항구 이용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문제는 그나마 우호적인 러시아는 이미 극동 항구가 포화 상태이다. 그래서 라선북한의 항구를 개발하려 기를 쓰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워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식량의 양 또한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만리장성이 생긴 이유 역시 만리장성 이북은 농업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토지와 기후를 가진 땅이기 때문. 이들을 넘어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제 문제 또한 존재한다. 몽골의 무역 상대국을 보면 몽골의 수입의 39.9%, 수출의 8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일 정도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항구의 경우 홍콩에서 항구를 쓰도록 해 줘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울란바토르-홍콩 간 화물기 및 중국을 종단하는 국제 화물철로로 다시 운송한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하자 중국측은 반발하며 2016년 12월 1일부터 몽골에 대한 화물비 징수를 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게다가 몽골의 광산전기공급도 차단시키는 등 여러 가지로 보복에 나섰고 이로 인한 타격을 입고 있다.# 결국 백기를 들었고,# 방중한 몽골 외무장관은 다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밝혀 중국도 제재를 해제하면서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같은 한족계라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 다른 국가의 한족의 경우 중국과 달리 마찰도 없고 이렇다 할 접점이 없어 그렇게 사이가 나쁘진 않다. 몽골인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건 직접 맞닿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족들이다.

오히려 몽골인들 일부는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싱가포르는 민족만 한족계이지 영국의 영향으로 영국식 영어가 국어고 중국대륙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해서 되려 이국적인 관광지로 울란바토르를 자주 찾는다.

정리하자면 적어도 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대만한테 하듯이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합병 의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민족과 언어가 다른 것도 있고 위쪽에 만만치 않은 러시아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듯. 만약 예전에 합병됐다면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와 합쳐져 위구르, 티베트와 비슷한 위치가 됐을 듯 하다.

2.2. 대만과의 관계

원래 중화민국은 청조의 후계국가를 자청하기 때문에 대륙시기부터 원칙적으로 몽골 전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고 현재의 몽골 정권은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대만 입장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있는 국가는 대만, 한국, 일본 셋이 전부이다.

물론 몽골 역시 그런 대만을 독립을 위협하는 적으로 명목상으로만 봤다. 하지만 어차피 명목상이고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못하니 그냥저냥 지내는 관계이다. 냉전 시절부터 이미 몽골 인민 공화국은 대만보다는 중국을 현실적으로 더 적대시했다. 게다가 대만도 요즘 들어 반중감정이 두드러지는 판이니 두 나라는 2002년부터 비공식 대표부를 두고 있다.

2012년에 대만은 헌법 해석을 변경해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고 몽골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게 헌법에 따른 영토변경 절차를 거친 게 아니기 때문에 명분상으로도 철회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나라는 2002년부터 대표부를 통해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홍콩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

2.3. 러시아와의 관계

해당 그림은 몽골 제국 시절 슬라브계 공국들을 털어먹던 시절과 근대에 소련한테 털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야말로 처지가 역전됐다

북쪽 또한 만만치 않은 국가인 러시아. 다만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에 둘러싸여있는데 그 중 러시아보다 중국을 훨씬 더 경계하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러시아에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러시아에 대한 몽골인들의 국민감정은 매우 좋다. 2017년 기준 몽골인들의 대러 호감도는 90%에 이른다.1차출처원출처

소련 시절의 공산주의 운동 때문에 몽골의 자랑 칭기즈 칸을 지옥에서 기어나온 대마왕으로 그려내고 모든 민족 관련 문화를 부정하게 했던 70년 가까운 역사가 있다. 심지어 1960년대, 몽골의 교육부 장관이 조상의 역사를 알자며 칭기즈 칸 유적지를 발굴하고 논문을 펴내자, 관직에서 박탈하고 시골로 쫓아냈다가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소련은 유목을 금지하고 몽골의 전통을 파괴했는데 할힌골 전투를 계기로 몽골과 만주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반제국주의, 몽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몽골 전체 인구의 5%나 되는 몽골인들이 숙청 당했고 그 와중에 몽골 여인들은 러시아 남성들에게 강간당하여 동서양 혼혈[1]을 낳기도 하였다.

몽골 내 러시아인은 5% 정도로 백인인데다 이들 대부분이 과거 몽골이 소련의 위성국이었을 당시에 러시아에서 유입되어 왔고 정교회를 믿어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이질적이라 몽골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며 침략자 내지는 자국내 불법체류자로 인식한다.[2] 몽골인이 제일 싫어하는 건 보통은 중국인 한족이지만, 중국인 한족보다도 이 러시아인들을 더 적대하는 몽골 국민들도 있다.

게다가 부랴티아 출신 몽골인들도 많은데, 이들 역시 근현대 러시아에 뺏겨 합병된 처지이건만, 외몽골의 주류인 할하 몽골족이 아니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일 뿐이다.

또한 몽골은 에너지 공급의 9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서 중국만큼이나 멀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몽골은 러시아의 키릴 문자를 혼용하고있다.

2.4. 미국과의 관계

강대국 러시아중국에 끼어있는 안습함 탓인지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에 대한 감정은 나쁘지 않다. 아니, 적극적으로 친하게 지내려고 몽골이 노력한다. 특히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구원해줄 세력이 미국밖에 없다고 여기는지 몽골은 공식적으론 중립이라지만 실질적으론 친미국가라 할 수 있다. 미국과의 경제 교류도 굉장히 활발하며 미국인 관광객들도 몽골을 많이 찾는다.

2003년에 조지 W. 부시가 몽골에 방문할 당시 크게 환영하며 성대한 대접을 했고 여기에 부시는 "최근 들어 내가 방문하는 나라마다 나를 21세기의 아돌프 히틀러라며 욕하는 걸개와 야유가 넘쳐나기 일쑤였는데, 이렇게 나를 환영한 나라는 정말 오랜만이다."라고까지 반응하며 감사를 표했다. 방문한 부시 전 대통령은 몽골 대통령과 회담을 가져 미국과 몽골이 군사, 안보 분야에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후 몽골은 2007년과 2011년에 대통령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양국의 협력을 다지는 협정까지 맺었다.

미국 입장에선 몽골이 친미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우군을 만들어 좋은 일이고 몽골은 중-러에 대한 일종의 외교적 견제구인 셈. 그리고 몽골은 항상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몽골은 이라크에 전투병도 파병하여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과 실전도 치뤄 저항세력 여럿을 사살하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이 아닌 평화유지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한 것과 달리 몽골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소수나마 전투병을 파병했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나 중국에서 꽤나 불쾌한 반응을 보였으나 몽골이 러시아와 중국을 자극하는게 없다보니 아직까지는 적극적인 반발이나 견제를 하지 않는다. 여하튼 당시 일부에선 몽골에 미군 주둔 문제까지 나오는 거 아니냐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지금은.....

몽골의 유엔 가입 자체가 미국이 대만에 압력을 넣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2019년 6월 6일에 미국 국방부는 몽골을 대만, 싱가포르, 뉴질랜드와 함께 우방국가로 명기했다.#

2.5. 영국과의 관계

1963년 서유럽 국가 중 최초로 몽골과 수교. 두 나라가 비슷한 역사를 가졌고 서로 지형이 동양의 내륙국 VS 서양의 섬나라정반대라서 어떤 영국 사람들은 은근히 몽골을 동경하곤 한다.

2.6. 스웨덴과의 관계

냉전 당시 중립국인 스웨덴이 대몽 지원을 상당히 해주었고 지금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7. 핀란드와의 관계

핀란드와도 괜찮은 관계이다. 냉전 당시 핀란드도 스웨덴과 비슷하게 대몽 지원을 해주었다.

2.8.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와는 당연히 우호 관계이다.

2.9. 독일과의 관계

독일과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양국은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2.10. 한국과의 관계

2.10.1. 탈북 루트

몽골은 중국 인근 국가 중 태국과 함께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얼마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라서 중국 내 한국 대사관 진입이 어려울 경우 몽골 밀입국을 시도하기도 한다. 몽골 루트의 경우 국경만 넘으면 북송 걱정은 없고 일단 몽골 국경수비대와 만나기만 하면 한국행은 약속되어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몽골로 가기 위해선 몽골의 모래사막을 지나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영화 크로싱이나 경계(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길도 없는 모래사막에서 몽골 국경수비대에 우연히 발견되기라도 하지 못하면 죽기 딱 좋은지라 대체로 동남아(라오스-태국) 루트를 많이 선택한다. 다만 태국까지 가다가 중간에 라오스에서 잡히면 북송되기 십상이라는 것이 문제.[3]

2.11. 일본과의 관계

역사적으로 일본에 쳐들어간 적도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할힌골 전투를 치르기도 했었지만, 오늘날에는 일본과 사이 좋은 편이다. 일본 애니가 몽골에서도 방영되고 있고, 일부 오덕도 존재하고 있다. 몽골인들이 스모선수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친일 발언을 하기도 한다. 사실 중국 견제를 위하여 일본이랑 관계 개선에 정계가 노력하는 점도 크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이랑 굉장히 사이좋은 부탄과 똑같다. 부탄처럼 중국이 일본에게 당한 건 좋아라 고소해하며 일본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지 중국이 싫다 뿐이지, 무조건 일본이 좋다는 게 아니며 한국 등 다른 일제에 피해를 입었던 다른 아시아 나라들과의 외교도 고려해야하기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부탄처럼 그닥 일본 편을 들어주지 않고 중립적으로 대하거나 기권하며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관계도 신경쓴다.

2018년 12월 14일에 아베 총리는 몽골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몽골과 연대하고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한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2.12. 터키와의 관계

터키는 최근 몽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일단 튀르크부터 기원이 몽골 고원이다. 흉노, 돌궐이 발원한 곳은 서몽골의 알타이 산맥이며 흉노, 돌궐의 강역은 내외몽골과 바이칼부터 흑해카스피 해, 중앙아시아, 이란 동부에 이르렀다. 그리고 셀주크 튀르크는 돌궐어파에서 나왔다. 터키가 서쪽으로 이주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같은 뿌리였던 만큼, 돌궐어계의 후신인 터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되찾아야 하는 곳이다. 오스만 제국이스마일 엔베르는 아예 위구르로 천도를 계획하며 몽골 고원으로의 복귀를 시도했을 정도.

물론 현대 터키 공화국은 몽골을 먹을려는 생각도 힘도 없고그러기 전에 그리스, 불가리아 등 앙숙인 주변국들부터 견제해야 한다. 그저 외몽골 내 돌궐 유적지를 복원하고 터키인들에게 답사하게 하는 것과 몽골-터키 양국의 경제 교류를 늘려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다. 민족적으로도 튀르크몽골인과 가깝고 언어도 가까운 관계이므로 몽골 정부도 터키와의 협력은 나쁘지 않게 보는 편. 다만 역사문제에 있어서는 흉노, 돌궐의 역사귀속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긴 있다. 그나마 몽골이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터키이며 울란바토르에는 터키인 공동체도 있다. 반대로 이스탄불에도 몽골인 공동체가 있다. 터키 항공이스탄불에서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경유하여 울란바토르로 가는 직항을 취항 중이며 탑승률이 꽤 높은 편이다. 그만큼 교류가 많다는 얘기다.

2.13. 헝가리와의 관계

몽골 제국은 예전에 헝가리로 원정을 간 적이 있다.[4] 그리고 터키와 마찬가지로 같은 계통이라고 여겨지는[5] 헝가리도 나름 몽골과의 외교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2.14.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몽골 제국키예프 공국을 멸망시킨 적이 있어서 역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소련 해체 이후에 몽골과 수교를 맺은 우크라이나에서는 13세기 몽골 제국의 키예프 침공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로 배상을 요구한 적도 있으며, 몽골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http://m.gwbiz.kr/39862

2.15. 베트남과의 관계

베트남과는 한때 같은 공산권 국가이기도 했고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으로 인해 일단은 우호 관계이다.

2.16.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

아프간은 몽골 제국의 침략과 학살을 당한 적이 있어서 역사적으로는 몽골과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2.17. 기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중국과 적대관계에 있는지 악사이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사이가 나쁜 인도, 필리핀 등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심지어 몽골은 인도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필리핀과 같이 인도의 상임이사국 선정을 적극 지지할 정도이다. 그리고 중국의 영토이지만 1국2체제이며 홍콩 독립운동도 있는 홍콩과도 사이가 좋은 편. 내륙국이라 항구가 없는 몽골에서 홍콩항을 많이 빌려 쓰고 있고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다. 영국령 홍콩 시절부터 경제적 교류가 꽤 있었던 것 같다. 2012년에는 부탄과 수교를 맺었는데 부탄과 몽골은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반중감정에서 공통점이 있어 사이가 좋다.

2.18. 중동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이쪽은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아야 된다.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크게 본 곳으로, 중동권 최대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칼리프가 처형당하고[6], 압바스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던 바그다드가 불타버리기도 했으며, 농사를 위해 만든 관개시설을 파괴하여 이라크의 사막화에 쐐기를 박은 것때문에, 지금도 아랍인이란인들은 몽골이라면 그야말로 이를 간다. 몽골인들의 영웅인 칭기즈 칸 역시 현지에서는 한국에서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이토 히로부미같은 수준의 악의 화신으로 여길 정도니, 중동에서 함부로 몽골 얘기를 꺼냈다간 단순히 욕먹는 수준으로 안 끝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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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정작 러시아에선 유색 혼혈인을 싫어한다.
  2. [2] 대략 현재 미얀마에서 버마족, 아라칸족 등 황인계 미얀마인들과 영국의 미얀마 식민 통치 시기 똑같이 영국 식민지였던 다른 미얀마의 인접국들인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미얀마로 유입되어 온 인도-유럽 백인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겪고 있는 대립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싶다. 다만 해외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도 자국민으로 받아주는 러시아와 달리, 로힝야족은 미얀마의 이웃나라이자 언어, 민족, 문화가 비슷한 동족격 국가인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도 자국민으로 안 받아주고 있다. 사실 인구도 적고 영토가 방대하여 해외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을 자국민으로 받아도 아무 별 탈 없는 러시아와는 달리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자국내의 자국민들조차도 인구가 폭증하는 국가인데다 경제적인 사정조차 몹시 안 좋아서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도주해오는 로힝야족 난민들을 같은 동족이라고 해서 자국민으로 무턱대고 받아줄 수도 없는 처지인 면도 있다. 자세한 건 로힝야 문서 참조
  3. [3] 2013년 라오스 탈북 9명 청소년 사건이 있었는데, 정부와 외교, 라오스 당국, 탈북자들간의 공방이 이어졌는데, 결국 9명 모두 북송되어 라오스 루트가 붕괴되었다.
  4. [4] 이때, 칭기즈 칸의 손자 바투보잘것 없는 헝가리의 왕이라는 망언을 하며 즉각 항복을 요구했었다. 이에 당연히 헝가리 왕 벨러 4세는 큰 충격을 받았고 곧 헝가리군 및 기타 군대로 이루어진 유럽연합군은 몽골제국군에게 작살이 난다.
  5. [5] 실제로는 아니다. 헝가리언어학적으로 우랄어족으로 분류되어서,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터키인이나, 몽골어족으로 분류되는 몽골인과도 전혀 다르며, 헝가리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마자르족시베리아 원주민계 종족이다. 단지, 현지의 백인계 종족들인 독일인이나 슬라브족과의 혼혈로 인해 외견 상 백인으로 보일 뿐이다.
  6. [6] 미국의 만화가인 래리 고닉의 저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에 의하면, 피를 보지않고 죽이기위해 두툼한 카펫으로 칼리프의 몸을 둘둘 만 다음에 말발굽으로 짓밟아죽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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