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케 칸

역대 몽골 제국 대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관련직위역대 원 황제

관련직위역대 청 황제

제1대

임시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칭기즈 칸

툴루이

오고타이 칸

구유크 칸

몽케 칸

쿠빌라이 칸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제11대

테무르 울제이 칸

카이샨 퀼리그 칸

아유르바르와다 바얀투 칸

시디발라 게게엔 칸

예순 테무르 칸

라기바흐 칸

제12대

제13대

복위

제14대

제15대

제16대

투그테무르 자야아투 칸

쿠살라 후트그투 칸

자야야투 투그 칸

린칠반 칸

토곤 테무르 칸

아유르시리다르 칸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토구스 테무르 칸

조리그투 칸

엥크 칸

니구라스크치 칸

토요얀 칸

울루그 테무르 칸

제23대

제24대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울제이 테무르 칸

델베그 칸

에세크 칸

아자이 칸

타이손 칸

오케크트 칸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다이온타슨다이칸

오헤크트 칸

멀런 칸

만도르 칸

다얀 칸

바르스볼트 칸

제35대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알라크 칸

구덴 칸

자사그트 칸

체첸 칸

링단 칸

에제이 칸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제46대

복다 칸

아이비어 자사크 칸

엔크 암갈란 칸

나이랄트 토브 칸

텡게린 테트게센 칸

샤이시얄투 이루겔투 칸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터르 게렐트 칸

투기멜 엘베그트 칸

부린투 자사그치 칸

바다라울트 투르 칸

휴브트 요스 칸

복드 칸

황제가 대칸을 겸임

}}}||

묘호

헌종
憲宗

시호

환숙황제
桓肅皇帝

성씨

보르지긴
孛兒只斤(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몽케
夢哥(몽가)
ᠮᠣᠩᠺᠡ

칸호[1]

몽케 칸
夢哥汗(몽가한)
ᠮᠣᠩᠺᠡ ᠬᠠᠭᠠᠨ

생몰기간

1209년 1월 10일 ~ 1259년 8월 11일

재위기간

1251년 7월 1일 ~ 1259년 8월 11일

언어별 표기

한국어

몽케 칸

중국어

蒙哥汗

일본어

モンケ・カン

몽골어

ᠮᠥᠩᠬᠡ ᠬᠠᠭᠠᠨ
Мөнх хаан

영어

Möngke Khan

(1208년 ~ 1259년)

1. 개요
2. 생애
3. 가계
4. 여담
5.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몽골 제국의 제4대 대칸. 원나라 건국 후 받은 묘호헌종(憲宗), 시호는 환숙황제(桓肅皇帝). 휘는 몽케(夢哥). 몽케 칸의 시대에 몽골 제국은 최대 판도에 이르렀다.

2. 생애

칭기즈 칸의 4남인 툴루이의 큰아들이자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 일 한국의 창시자인 훌라구의 큰형이다. 젊은 시절에는 바투, 귀위크 등과 함께 서방 원정에 참여해 상당한 전공을 세웠다.

사촌인 구유크 칸이 사망한 후 주치家의 바투와 제휴하여 쿠릴타이에서 칸의 자리에 추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모친 소르칵타니 베키의 정치력이 상당히 발휘되었다. 툴루이의 부인 소르칵타니 베키는 자신의 아들 몽케의 칸 즉위를 위해 바투에게 오고타이 군대의 동태를 전달하는 등 주치 울루스와의 친밀한 관계를 다져나갔고, 툴루이가 보르테 소생[2]의 아들 중 말자임을 골자로 툴루이家의 정통성[몽골족유산분배문화]을 주장했다. 따라서 툴루이가 가장 많은 몽골족 인원과 재산을 받았는데[4], 이후 대칸이 된 오고타이는 툴루이 소유의 재산을 빼앗고자 한 것으로 추측된다.[5] 사실 대칸은 분배된 초지를 제외하고, 정주지역등 분배되지 않고 공동으로 관할하는 곳들을 직접 통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오고타이는 야금야금 이를 어겼다.

바투는 귀위크 칸 사망 직후 툴루이家와의 연대감을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1250년 알라카마크에서 툴루이 家와 주치 家의 주도 아래 쿠릴타이가 개최되었으나, 반대 세력의 비판을 의식해 오난 - 케틀란 지역에서 즉위 후 쿠릴타이를 재소집한다. 1251년 여름 코데아랄에서 모든 가문이 참석한 공식적인 쿠릴타이가 개최되었고 몽골 4대 대칸으로 추대되었다. 코데아랄은 1206년 칭기즈 칸이 쿠릴타이를 연 곳으로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6]

동생 훌라구로 하여금 중동 지방을 침공하게 하고, 동생인 쿠빌라이 칸으로 하여금 남송을 치게 했지만, 쿠빌라이가 독립적인 세력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자 쿠빌라이를 뒤로 물리고 본인이 쳐들어갔다가 사천지역에서 병[7]을 얻었고 사망했다. 남송의 격렬한 반격에 의해 화살을 맞고 조어산에서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몽케 칸이 이끌던 우익군의 장수들 다수가 남송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걸로 봐서 병사가 아닌 전사일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의 즉위 과정에서 몽케의 후견인 격이었던 바투와 귀위크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바투가 귀위크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다. 이 부분은 그의 어머니인 소르칵타니 베키와 연관이 있는데 그녀가 귀위크가 바투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가자 바투에게 편지를 보내 경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위크가 병사한 일화 때문에 나온 주장이다.

기독교, 정확히는 경교를 믿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머니 소르칵타니 베키가 경교도(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였지 몽케 그 자신은 기독교도가 아니였다.

툴루이의 후손들이 오고타이 칸의 시대에 엄청난 핍박을 받은 탓에 툴루이 울루스는 제자 울루스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았다. 바투가 귀위크 칸 사후에 몽케를 칸으로 세운 까닭 역시 이 때문이었다. 바투는 '얘들은 너무 약하니까 내가 몽케를 칸으로 세우면 몽케는 내게 의지하느라 주치 울루스에 참견 못 하겠지' 정도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8]

단 바투는 예전부터 귀위크를 위시로한 오고타이, 차가타이 쪽과 사이가 안 좋았다. 서방 원정 도중에는 대놓고 귀위크가 술자리에서 깔본 일도 있었고 한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차가타이가 주치를 아버지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했던 일도 있다. 심지어 귀위크는 바투를 정벌하려는 찰나에 사망해버렸으니... 몽케의 어머니 소르칵타니 베키도 한몫해서 이미 예전부터 이런 바투와 귀위크의 알력 다툼을 알고 따로 라인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툴루이 가문이 상당히 약했기 때문에 몽케는 즉위 후 곧바로 숙청을 행하게 했다.[9] 그리하여 몽케가 행한 숙청은 몽골 제국에서 전무후무한 규모였다. 집사에 의하면 최고위층의 77명이 사사되었다. 특히 칭기즈 칸으로부터 왕권을 영구히 부여받은 오고타이계가 당한 숙청[10]

그래서 그들을 보호하려는 몽골 귀족들이 없었다. 이후 오고타이의 후손들 중 가장 잘 나간게 카이두였는데, 그나마 카이두도 차가타이 울루스의 바락이 몰락하기 전까지는 반 쿠빌라이파 가운데 최약체였다.

이것이 의미가 있다면, 그동안 칭기즈칸의 피를 이은 일명 황금 씨족을 공개적으로 숙청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는데, 몽케는 이 숙청을 단행하면서 권력 기반을 다지는 한편, 이 숙청을 뛰어넘을 업적을 이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기에, 급하게 남송 정벌을 서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충분한 준비 없이 남송 정벌을 단행하게 되었는데, 중간에 한 군을 이끌어야 하는 만주의 타가차르는 약탈 문제로 양양을 공격하다가 휙 돌아가버리고, 결국 자신이 좌천시켰던 동생, 쿠빌라이를 다시 부르는 등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사천 지방에서는 성도를 점령하고는 1년도 넘게 고전하게 된다.[11] 많은 장군들이 퇴각을 건의했음에도 듣지 않다가 결국 그 자신이 사망하게 된다.

그의 치세 때 프랑스의 사자 자격으로 온 사제가 있었고, 그는 몽케 칸에게 교황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지만, 몽케 칸은 당연히 그런거 신경쓰지 않았고(당시 몽골 제국은 세계 최강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다.) 대신 기독교 사제들과 이슬람 교도들과 불교 승려들로 하여금 토론으로 서로 겨루어 보라고 시켰다. 이 세 종파들은 서로를 성공적으로 교화시키지 못했고, 결국엔 기독교인들이 마유주를 마시다 취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고, 무슬림들은 질세라 쿠란을 외우고, 불교도들은 조용히 명상을 시작했다. [12]

그리고 이 프랑스인 사제가 돌아갈때 몽케 칸은 신이 손에 다른 손가락들을 내려주셨듯이 인간에게도 다른 방식들을 내려주었다며 몽골인들의 포용성을 설파했다. 근데 중국의 다른 기록을 보면, 그 뒤에 스님에게 가서 "다른 종교가 손가락이라면, 불교는 손바닥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막내 동생인 아리크부카를 아껴서[13] 자기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가 죽은 후 계승 다툼에서 승리한 것은 생전 그가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했던 바로 아랫 동생인 쿠빌라이였다. 그의 아버지인 툴루이가 막내였고, 친 형제인 오고타이에게 제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14] 심지어 방식도 비슷하게 죽었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가계

  • 정절황후 옹기라트씨(貞節皇后 弘吉剌氏)
    • 제1황자 반독 태자(班禿 大子)
    • 제3황자 옥룡답실 대왕(玉龍答失 大王)
    • 제5황자 변도 황자(辯都 皇子)
    • 제1황녀 창국대장공주(昌國大長公主) 백아륜(伯雅倫) - 창충선왕 홀린(昌忠宣王 忽鄰)에게 하가(下嫁)
  • 야속아 황후 옹기라트씨(也速兒 皇后 弘吉剌氏)
  • 독특미 2황후 알올립씨(禿忒迷 二皇后 斡兀立氏)
    • 제2황녀 실린공주(失隣公主) - 출신(朮臣)에게 하가(下嫁)
    • 제3황녀 필적합 공주(必赤合 公主) 활올년(闊兀年) - 출진백(朮眞伯)에게 하가(下嫁)
  • 출비 3황후(出卑 三皇后)
  • 황후 이키레스씨(皇后 亦乞烈氏)
  • 명리홀도로 황후(明里忽都魯 皇后)
  • 화리차 황후(火里差 皇后) 화로자사씨(火魯刺思氏)
  • 실력길 비자(失力吉 妃子) 백요기씨(伯要幾氏)
  • 귀비(貴妃) 파아올진(巴牙兀眞)
    • 하평왕 시리기(河平王 昔里吉)
  • 귀비(貴妃) 규첩니(奎帖尼)
    • 제2황자 아속알 황자(阿速歹 皇子)
  • ?
    • 공주(公主) - 출신(朮臣)에게 하가(下嫁)

4. 여담

여담이지만 자신과 남에게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라 그의 치세에 몽골에는 '금 항아리를 든 여성이 제국의 끝부터 끝까지 걸어가도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15]

몽케의 어머니인 소르칵타니 베키는 여러모로 대단한 여걸로 손꼽힌다. 케레이트 부족 출신에, 칭기즈 칸의 후원자이면서 훗날 대립하다 죽은 옹 칸의 조카딸로 전리품처럼 툴루이에게 넘겨졌다가 남편이 죽은 후에는 칸으로부터의 혼인 명령이 내려왔으나 거절, 수없이 정치 공작을 펼치고 힘을 기른 끝에 아들 넷을 전부 칸으로 만들었으니...[16]

고려로써는 최악의 적국 군주라고 할 만한 인물인데 여몽전쟁 때 고려에 가장 강력한 공격을 퍼부은 칸이 이 사람이다. 물론 여몽전쟁 자체가 상당히 장기전으로 벌어졌고 이전 오고타이 칸 시절의 공격도 격렬한 편이었지만, 몽케 칸 때의 파상적인 침공으로 고려는 국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5. 대중매체에서

신조협려에서는 친히 몽골군을 이끌고 양양성을 공격하다가, 격전 끝에 신조대협 양과가 던진 돌에 맞아 죽는다. 물론 칭기즈 칸의 후예답게 양과의 첫 돌이 말의 엉덩이에 맞아 말이 울부짖으며 앞다리를 드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몸을 돌려 말 위에서 양과를 활로 쏘는 위엄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양과가 화살을 피하고 재차 돌을 던져 등짝에 명중시켜 그대로 전사하고 말았다.

신조협려 게임에서는 최종보스로 등장하는데, 원래 무예를 익힌 평범한(?) 인물이 쟁쟁한 고수들을 제치고 최종보스가 되다 보니 뭔가 아스트랄한 묘사가 이루어진다. 2번이나 변신하는데, 처음에는 말에서 내려서 벌크업을 하는 정도지만 두 번째는 꿇어앉은 몽케의 몸 위로 금색 영령이 튀어나와 폼을 잡는다.

징기스칸 4 일러스트

게임 징기스칸 4에서는 파워업키트에서 추가된 시나리오 3(1229년 늑대 무리의 포효)에서 등장한다. 능력치가 정치 : 86 전투 : 84로 높고 지모는 91을 찍는다. 평균 능력치가 동생 쿠빌라이를 능가한다. 기하학이나 외국어에 능했다는 사실 때문에 지모 고득점을 받은 듯 하다. 시나리오 1에서도 징기스칸일 때 왕비로 아들을 낳고 이름을 투루이, 몬케, 흐라그, 쿠빌라이로 지으면 PK와 같은 능력치를 가진 아들이 생긴다. 하지만 쿠빌라이와 달리 이렇게 이름지은 몽케와 훌라구, 툴루이는 전용 얼굴이 없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선 템플 기사단 단원으로 언급되며, 어쌔신 크리드 라스트 디센던츠 - 칸의 무덤(Tomb of the Khan)에 따르면 몽골에 템플러 지부도 만들었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어렸을 때는 몽골 제국 및 일 한국[17] 궁정에 있지만, 연도를 뒤로 돌려서 몽케 칸의 즉위기간으로 맞추면 원나라 황제로 중국에 있다.[18]


  1. [1] 몽골식 군주 칭호
  2. [2] 칭기즈 칸에게는 여러 부인들이 있었지만, 1째부인인 보르테의 자식들만이 재산을 받았다. 딸들도 몽골에 복속된 오이라트, 위구르등의 수장과 혼인을 해서 각 세력들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잡았다. 물론 칭기즈 칸이 총애하던 부인 중 일부는 몇몇 강을 분배받기도 하였다.
  3. [몽골족유산분배문화] 3.1 당시 몽골족의 재산분배는 막내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지역을 받고, 맏이가 가장 먼 지역을 받았다. 칭기즈 칸도 몽골제국 영토 중 몽골초원에서 서쪽으로 가장 먼 킵차크 초원에서부터 순서대로 주치-차가타이-오고타이에게 분배하였고, 막내인 툴루이가 몽골초원을 받았다. 그외에 동쪽의 만주지역은 동복동생 3명에게 분배하였다.
  4. [4] 이때문에 칭기즈 칸 사후에 쿠릴타이에서 오고타이를 선출하기 전까지는 툴루이가 대칸을 대리하였다.
  5. [5] 카라코룸의 위치 자체도 툴루이의 분배지역으로 보이며, 우구데이시절 동원된 병력도 대부분 툴루이의 관할이였고, 툴루이 사후 소르칵타니-베키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고자 한 것에서도 그렇다.
  6. [6] 몽케가 바투의 지원을 받아서 카간이 되었기 때문에, 바투의 울루스는 독립적인 위치를 갖게 된다.
  7. [7] 이질이라고 추측된다.
  8. [8] 귀위크 칸의 시대부터 바투가 잘 나가서 반독립적인 칸국을 세웠다고 세간에는 알려져 있는데, 이는 몽케 시대의 일을 소급한 것이다. 단, 몽케 시대에도 바투의 권한은 해당 울루스 소속의 유목민들에게 한정된 것이었다. 하위 칸들의 권력이 정착민들에게도 행사된 것은 쿠빌라이 칸 시대 이후의 일이다.
  9. [9] 복수의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당장 아버지인 툴루이의 일도 일이고, 큰 아버지인 오고타이는 아예 어머니인 소르칵타니 베키를 자기 아들인 귀위크와 혼인시키려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가 이 순간을 위해 이를 갈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10. [10] 전대인 귀위크 칸이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을 추구한 결과 오고타이계는 인망을 잃었다.
  11. [11] 이게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이쪽이 엄청나게 더울 뿐 아니라 지형도 험난한 곳이라 몽골군이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지형인데다가, 수비군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했고, 돌아간 타가차르 대신 다시 데려온 쿠빌라이는 아주 느릿느릿 진군해서 몽케를 고립시켜버린다.
  12. [12] 당시 몽골의 관습에선 싸움이 끝날때 마다 마유주를 한 잔씩 마시는 것이 있었는데, 그 관습에 따라 토론이 한 회전씩 끝날때 마다 마유주를 한 잔씩 마셨고, 기독교인들이 먼저 취해버리는 바람에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해지자, 기독교도들은 찬송가를 불러대고, 불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명상과 코란 암송으로 대응한 것.
  13. [13]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무척 아꼈다.
  14. [14] 원조비사에 따르면 금나라가 멸망한 후 오고타이가 죽을 병에 걸리자 툴루이는 자기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오고타이를 살려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고, 얼마 후 오고타이가 살아나자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툴루이가 한때 대칸 후보로 거론된 적도 있어서 사실은 오고타이와 퇴레게네, 테무게 옷치긴에게 모살당했다는 설이 있다.
  15. [15] 이런 점을 보면 큰 아버지인 차가타이를 닮았다.
  16. [16] 아리크 부카도 어쨌든 칸은 칸이다. 오히려 정통성 면에서는 이쪽이 쿠빌라이보다 훨씬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17. [17] 게임에서 툴루이는 1227~1234년 사이에 일 한국의 초대 군주로 있다.
  18. [18] 크킹에서 중국 왕조는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가 구현됐다. 남송은 없어서 북송에서 금나라로 넘어간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26.82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