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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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대륙, 아틀란티스의 가상의 지도다.

1. 문서 기재 조건
2.1. 국내 미제 사건
2.2. 해외 미제 사건
2.3. 관련 문서
3. 역사상의 미스터리
3.1. 한국사의 미스터리
3.2. 세계사의 미스터리
4. 다른 문명초고대문명설 관련 정보
6. 우주, 외계인, UFO 관련 정보
7. 예언 관련 정보
8. 생물학 관련 정보
9. 유령, 귀신, 심령현상 관련 정보
10. 초능력, 초자연현상 관련 정보
11. 지역에 관한 미스터리
12. 기인·기행·유명인
13. 인터넷 관련
14. 미스터리 관련 사이트
15. 관련 문서

1. 문서 기재 조건

이 문서에 기재하는 정보는 "상식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물이나 사건"이라고 하는 미스터리의 사전적 의미를 만족한다는 가정 하에, 다음과 같은 기재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 실재했던 사건, 인물, 물건에 관한 것을 기재한다. 실재하지 않았던 사건, 인물, 물건은 미스터리가 아닌 판타지픽션으로 규정하며, 이 문서에는 기재하지 않는다.
2. 정설이 존재하지 않는 미디어, 체험, 목격, 현상을 기재한다. 명확한 정설이 존재하는 미디어, 체험, 목격, 현상은 기재하지 않는다.
3. 가설의 경우,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존재하는 경우에 기재한다. 단, 사회적으로 충분한 공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설은 기재하지 않는다.
4. 유명한 미제 사건이나, 의문점이 존재하는 사건을 기재한다.(ex: 범인은 밝혀졌으나, 범행 수법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형사 사건 등) 의문점이 존재하지 않는 사건·사고는 사건 및 사고 관련 정보 문서에 기재한다.
5. 세계적, 국가적, 지역적으로 유명한 미스터리 정보를 기재한다. 단,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 전파하는 미스터리는 기재하지 않는다.
6. 저명한 인물의 예언 또는 실체가 있는 고대의 문서가 예언한 예언 관련 정보를 기재한다.
7. 상위에 포함되지 않는 정보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등재 기준은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규정한다.

2. 일반 미제 사건

2.1. 국내 미제 사건

  • 국새 실종 사건: 1949년 5월에 제작되어 1962년까지 사용되었던 대한민국 제1호 국새가 실종된 사건. 심지어 실종 추정 시각은 196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데 이 사실이 알려진 건 2005년 국정감사 때였다. 또한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불분명하며 현재 알려진 어떤 짐승[2] 모양의 형태라는 설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회수되기 전까지는 미스터리로 남을 듯하나 찾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상태다.
  • 금산사 연쇄 화재 사건: 1986년 12월 6일 금산사에서 화재가 일어나 보물 제476호 대적광전이 소실된 데 이어 1988년 4월 28일에는 나한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에서는 이 두 화재 모두 방화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지었지만 금산사 측과 문화재 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는 방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참고로 금산사는 증산계 종교들에서도 성지로 여기고 있어 금산사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불교계와 증산계 종교들이 여러 번 갈등을 빚은 바 있다.
  • 김주혁 의문사 사건: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2년여의 세월이 지난 2019년 현재까지도 김주혁의 사인(死因)이 된 교통사고의 원인이 밝혀지지 못했다.
  • 덩신밍의 정체: 2010년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은 상하이 한국 영사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정부에서조차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고 그녀의 정보를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북한의 스파이 설부터 한국을 위해 일한 로비스트라는 설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가 않은 상황이다.
  •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 대한민국 내 미스터리 사건 중 가장 기괴한 사건 중 하나. 자살임은 명백해 보이지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 도와준 사람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체 누가 도왔고, 무엇을 위해 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대한민국 최악의 미스터리 사건 중의 하나로, 아직까지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사건이다. 문제는 언론인들조차 취재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했을 만큼, 사건에 대한 유력 세력의 은폐시도가 빈번하게 벌어졌다[3]. 이 점으로 미루어 이 사건은 육영재단의 관계자에 의한 청부살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4].
  • 속초 영랑동 백골 사건: 강원도 속초시의 관광지이자 석호인 영랑호 인근 횟집에서 보수공사를 벌이던 중 신원을 알 수 없는 백골 16구가 무더기로 발견된 사건. 6.25 전쟁 희생자로 추정되어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조사를 실시했으나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철수하고, 의견만 분분할뿐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 우지 파동: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익명의 투서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
  • 윤영실 실종 사건: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 태도 때문에 정인숙과 더불어 전두환 정권의 희생양이 아니냐는 설이 있을 정도다.
  • 장자연 사건: 사건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모두 만료되었고, 재조사 과정 중 발생한 윤지오의 민폐짓으로 인해 더더욱 수사에 난항을 겪으며 사건의 진상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게다가 2019년 8월 22일 유일하게 기소된 조희천 기자마저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 제종철 의문사 사건: 2002년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두 학생 미선이, 효순이 사건에 대한 촛불 집회를 이끌어낸 인물. 2003년 다시 촛불 집회를 준비하다가 철도에서 사망한 채 발견됨. 사망 이유가 불확실하고 철도까지 접근이 어려운 점 등 경찰은 많은 의문을 뭉개버리고 타살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자살로 발표. 모종의 세력이 자살시켰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 2016년 12월 24일 그것이 알고싶다에 방송되었다.
  • 조두형 유괴사건: 대한민국 최초로 아이를 유괴하고 돈을 달라고 협박한 사건이다.
  • 주한미군 하사관 연쇄 사망사건: 1992년 2월과 4월, 주한미군 기지에서 벌어진 하사관 두명의 사망사건. 빌리 레이 하그로브 상사는 기지 근처에서 목을 매고 죽은채로 발견되었고 그의 친구인 마이클 카마이클 상사도 기지내 라커룸에서 목을 매고 죽은채로 발견되었다. 목을 매고 죽어서 자살로 보였지만 두 사람의 가족들은 두 하사관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으며 카마이클 상사는 친구인 하그로브 상사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던차에 본인도 사망한채로 발견되는등 의혹도 있는 사건이다.
  • 최덕근 영사 피살 사건: 1996년 10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 최덕근 영사가 숙소로 귀가하던 중 피살된 사건. 살해에 쓰인 흉기가 독침인 걸로 미루어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의심되었으나, 범인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범인의 실체에 관해서는 북한 공작원설 이외에도 레드 마피아설, 네오 나치 등 인종주의자설, 단순 강도설, 심지어 러시아 정보 당국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사건 발생 2개월 후인 12월 15일에는 모스크바 주재 한국 대사관 김선태 공사의 숙소에 누군가가 문을 부수고 침입해 들어온 사건이 발생했는데, 단순 절도범의 소행인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자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로선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이 정설인데 연해주 일대가 접경 지역인 데다 러시아에는 북한인이 많이 체류하고 북한 공작원도 매우 많기 때문. 1996년 당시에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소탕작전에 대한 보복공격 또는 북한이 연쇄적으로 벌인 대남도발로 추정했다.
  • 화성 연쇄살인 사건: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 그런데 2019년 9월 쯤 드디어 범인이 잡혔다.[5] 다만 8차 사건의 진범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므로 일단은 해당 문서에 존치한다.
  • 화성 해안초소 K-2 소총 사취 사건: 1997년 1월 3일 당시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육군 제51사단 해안 초소에 40대로 보이는 군복 차림의 남성이 나타나 자신을 수도 군단에 새로 전입한 백 소령이라고 밝히고 소초장에게 K-2 소총 한 자루와 실탄 30여 발을 빌린 뒤 그대로 잠적한 사건. 자신을 백 소령이라고 밝힌 이 남성의 정체가 무엇인지,[6] 무슨 목적으로 K-2 소총을 빼돌렸는지, 어떻게 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해당 부대 내부 정보[7]를 알고 있었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밀덕계에서는 범인이 위에 나온 것처럼 군부대 내부 정보를 잘 알고 소초장이 깜박 속을 정도로 전혀 어색하지 않게 행동한 점, 군경의 수사에도 단서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범인을 북한 공작원으로 보고 있다. 북한 특작부대가 국군으로 가장하기 위해 기존에는 M16 소총을 북한에서 무단으로 카피 및 생산해 왔으나 국군의 주력이 K-2로 바뀌자 K-2 샘플을 구해와 카피 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K-2를 빼돌렸다는 것.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개구리 소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사건을 한국 3대 미스터리로 꼽아 특집 방송을 한 바 있다. 한국의 3대 미제 사건은 모두 영화화되었는데, 《아이들…》,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가 바로 한국 미제 사건 3부작.

2.2. 해외 미제 사건

  • 3억 엔 사건: 범인이 경찰 간부의 아들이가,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 간부가 아들을 살해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 레베카 코리엄 실종 사건: Rebecca Coriam. 영국인 여성으로, 2011년에 디즈니 원더(Disney Wonder) 호 크루즈선에 승선했다가 영영 실종되었다.
  • 마이애미 좀비 사건: 루디 유진(Rudy Eugene)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이 고속도로 진입로 인근에서 나체로 타인의 얼굴을 물어뜯은 후 사살된 사건. 신종 마약 때문일 것이라는 수사 결과가 있으나 자세한 내막은 불명이다.
  • 만프레트 프리츠 바요라트 사망 사건: Manfred Fritz Bajorat. 한동안 행방불명되었던 독일 탐험가로, 어느 날 참으로 뜬금없게도 필리핀 해변에서 자신의 보트 안에 미라가 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건조하고 소금기 있는 공기가 부패를 막아 주었다고... 부검의 윌벤 메이어(Wilben Mayor)는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확인했다. 그런데 부검의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그의 사망일이 보트가 발견되기 불과 10일 전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의 시신은 열흘 만에 완벽히 미라로 변한 것이라는 얘기. 이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인지는 둘째치더라도,[11] 도대체 이 사람이 어쩌다 보트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왜 하필 필리핀 해변에서 발견되었는지도 미궁 속에 빠졌다.
  •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추락사고: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관제탑에 미확인 비행물체의 항적이 잡혔으나,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 공군이 이를 요격하지 않고 놔 두었는데 그 미확인 비행물체가 MH370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상항로를 이탈해 미확인 비행물체가 되었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이 기장의 자살 비행이 아닐까 의심하고, 최종보고서도 그와 비슷한 의혹을 제시한다.[12]
  • 블랙 달리아 사건: 범인이 잡히지 않은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를 놀라게 한 25가지 사건에도 선정되었다.
  • 세일리시 해 잘린 발 연쇄발견 사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와 미국 워싱턴 주에 인접한 세일리시 해에서 2019년 지금까지 총 잘린 발 20여 개가 계속해서 발견되는 사건이다. 캐틀 뮤틸레이션의 인간 버전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설득력 없는 추측일 뿐이다.
  • 에토레 마요라나 실종사건: 에토레 마요라나는 마요라나 페르미온 등으로 유명한 초기 양자역학의 거물들 중의 한 사람인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데, 1938년에 같은 물리학자인 삼촌에게 의문스러운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는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가는 배에 탑승한 뒤 실종되었다. 결국 그의 행방은 영영 알 수 없는 듯하다가, 1997년에 베네수엘라의 한 정비공이 1955년에 자신에게 차 수리를 의뢰한 사람이 에토레 마요라나라고 주장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에 이탈리아 경찰이 그 정비공이 증거로 내세운 사진에 찍힌 남자의 신원을 분석했고, 그 결과, 사진 속 남자의 정체가 에토레 마요라나가 맞다고 밝혀져 1955년 즈음까지는 생존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무엇 때문에 갑자기 모국인 이탈리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베네수엘라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는지, 1955년에 재등장한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 엘도라도 제인 도 살인사건: 1991년 미국 아칸소의 엘도라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피해자의 생전 사진도 여럿 있음은 물론 범인도 검거된 사건이지만, 피해자가 썼던 이름들이 모두 가명인 까닭에 피해자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해, 피해자의 진짜 신원은 현재까지도 불명이다.
  • 오우랑 메단 호 사건: 배 안에 모든 사람이 죽은 대량사망사건. 중요한 증거인 배가 폭발해버렸기 때문에 사망사인이나 기타 사안을 알 수가 없다. 관련자료가 부족한 탓인지 픽션이라는 주장도 많다.
  • 이노카시라 공원 토막살인 사건: 피해자가 국적 불명의 스파이들에게 표적으로 지목된 사람으로 오인받아서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있고,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설이다.
  • 제니퍼 페어게이트 사망 사건: 오슬로 플라자(Oslo Plaza)에서 제니퍼 페어게이트(Jennifer Fairgate)라는 가명을 댄 여자가 의문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사망한 여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특이하게도 온몸을 검은색 옷으로 치장했다.
  • 카이론 호먼 실종 사건: Kyron Horman. 미국 오리건 주의 유명한 아동 실종 사건으로, 실종 당시 나이는 7세. 초등학교에서 하교하던 길에 실종된 이후로 행방이 묘연하다.
  • 케니 비치 실종 사건 : 여자친구로 주장하는 인물이 나타나서 당사자는 우울증으로 인해 신변을 비관하다가 자살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 케이옐린 라우더 실종 사건: 케이옐린 라우더(Kayelyn Louder)라는 30세 여자가 실종된 사건. 마지막 목격은 CCTV에 찍힌 것으로, 비를 맞고 맨발로 밖을 돌아다니며 혼잣말을 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실종자 사진) 그리고 실종 2개월 후 한 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부검 결과 사인을 판단할 수 없어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 코리 맥키그 실종 사건: Corrie McKeague. 영국 공군 소속으로 2016년 실종 당시 23세. 서퍽 주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Bury St. Edmunds) 시의 한 길가에서 마지막 뒷모습이 CCTV로 촬영되었다.
  • 킴벌리 모로 실종사건: Kimberly Moreau. 실종 당시 17세로, 미국 메인 주에서 1986년 5월 10일에 발생한 사건. 이후 2015년 9월경 유튜브에 "00b4a56" 이라는 요상한 채널이 이 사건 당일에 찍은 캠코더 영상과 함께 암호화된 숫자 영상들을 올리다가 계정 정지를 당해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미해결 사건이다.
  • 티모시 핏젠 실종 사건: 2010년대 서구에서 유명해진 아동 실종 사건으로, 일리노이 오로라 시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간혹 '오로라 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종 당시 티모시 핏젠(Timmothy Pitzen)의 나이는 불과 6세. 어머니와 함께 방과 후에 즉흥적으로 리조트 소풍을 떠난 그는 얼마 동안은 어머니와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CCTV에 잡혔으나, 어머니가 약물 복용으로 갑작스레 자살한 채 발견되었을 때 티모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 그 이후로 영영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경찰의 백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왜 자살했는지,[13] 아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애초에 이들이 어째서 소풍을 떠난 것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실종자 사진)
  • 프론-크레머르스 사망 사건: 2014년에 두 네덜란드 여성 하이커 리산 프론(L.Froon)과 크리스 크레머르스(K.Kremers)가 파나마 정글에서 실종된 후 유해로 발견된 사건. 여러 차례 911 통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고, 심야에 찍은 알 수 없는 의도의 사진들이 다수 발견되어 당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결과적으로 단순 사고사로 매듭지어지기는 했지만 고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불명이고, 유해와 소지품이 발견된 경위 역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 YOGTZE 사건: 1984년 독일에서 귄터 스톨(G.Stoll)이 의문의 죽음을 맞은 사건. 죽기 직전에 마지막 메모로 남긴 YOG'TZE 라는 단어는 아직도 의미를 모른다.

2.3. 관련 문서

3. 역사상의 미스터리

3.1. 한국사의 미스터리

  •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장본인인 김재규가 무엇 때문에 이런 사건을 벌였는지가 의문이다. 물론 차지철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일이 한몫했다고는 하나, 중요한 것은 단순한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는 점이다.
  • 임진왜란 당시 궁궐의 방화 주체: 선조수정실록에는 간민과 난민이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지만 선조실록에는 이러한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14] 그외 기타 자료들마다 기록이 다 다르다.
  • 5.18 민주화운동관련된 미스터리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자: 1988년 5공 청문회에서도, 1995년 국회에서의 민주화 운동 인정과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투입되었던 계엄군이 당시 보안 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연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기총 사격의 진실: 당시의 목격담과 총탄 자국 등 증거를 토대로 정황상 발포가 이뤄진 것은 맞다고 판단되고 있다. 사격 명령자와 배후가 미스터리.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실종자들의 행방: 2017년 9월, 당시 실종된 실종자들 중 일부가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어 암매장되었다는 증언이 나와 대규모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나 아직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희생자[15] :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이 함락된 후 희생자들과 함께 수습된 남자 어린이 시신으로 검시 기록에는 총상이 사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사망추정일은 5월 27일, 나이는 약 4세 가량으로 추측되었다. 당시에는 신원미상 변사자로 간주되었는데, 이후 항쟁당시 실종된 국민학교 1학년 어린이 이창현 군과 관련되어 있다는 행방불명자 유가족의 증언이 있지만 DNA 검사 결과 불일치 판정을 받았고, 항쟁 당시 외할머니, 외삼촌과 송정리역에서 실종된 어린이 박광진 군으로 추정하는 기사가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관련 기사)
  • 거북선: 흔히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 철갑선이었는지의 여부와 더불어, 전반적인 내·외부의 구조가 어떠했는지가 불분명하다.
  • 견훤의 능(陵):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무덤이 견훤의 능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무덤이 진짜 견훤의 능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때문에 이 능의 공식 명칭도 앞에 전(傳)을 붙여 전견훤묘(傳甄萱墓), 말 그대로 "견훤의 능으로 전해지는 무덤"이다.
  • 고구려: 초기 고구려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부분이 최근에 논란이 되고있다. 일단 고구려가 부여에서 파생된 나라라는 점에서 고구려사가 한국사의 일부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16], '고구려'라는 국명의 유래나[17], 그 건국 시기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 고려 말 왜구의 침입: 임진왜란의 프리퀄 격인 사건이지만, 당시의 고려를 침략한 왜구의 주체가 누구였는지가 불분명하다. 왜구들의 주체가 남북조시대를 틈타서 봉기한 지방 호족의 세력이었다는 설에서, 신설된 무로마치 막부의 비호를 받던 북조에게 서서히 밀리고 있던 남조가 해외 정복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이 당시의 왜구는 이미 단순히 허접한 배를 타고 삥뜯기를 일삼는 양아치 수준이 아닌, 번듯한 국가의 정규군 수준인 군사 집단이었다는 점이다.[19] 그 근거로 우선 규모부터가 범상치 않는데, 임진왜란 당시 약 2만에 가까운 병력을 이끌고 제1군을 지휘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원한 군함이 약 700척인데, 고려 말 진포 해전 당시 왜구가 동원한 군함이 약 500척에 달한다. 군함의 크기 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적게 추정해도 1만에 육박하는 인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예삿 일이 아니다. 또한 통상적인 해적들이 민가를 대대적으로 약탈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가능하면 민간인을 무시하고 주요한 군사적 거점만 노리고 공격했다는 것과, 배를 타고 있지 않을 때는 보병에 불과한 보통의 해적에게는 있을 리가 없는 대규모 기마 부대가 존재했다는 것이 제기되고 있다.[20]
  • 고영근: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을 살해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우범선을 죽인 사람이라서 한때 그를 민족주의자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우범선 살해 사건이 단순히 출세를 위해 벌인 짓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사실 이후의 행적 또한 이러한 의문점을 더욱 부각시키는데, 그는 우범선을 살해하고 한국으로 추방당하는 식으로 귀국한 뒤에도 출세지향적인 기회주의자인지, 강경한 반일 성향의 민족주의자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행보를 보여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계속해서 골때리게 하고 있다.
  • 고조선: 고조선이 한국사의 일부라는 것은 한국의 학자들은 물론 외국의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며, 심지어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자국사라고 편입시키려 시도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주류 역사학계에 속한 학자들은 동북공정을 지지하는 학자를 어용학자들이라고 비웃으면서 만주의 역사에서 고조선 이후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 멸망까지 모두 한국사와 관련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지만[21], 그 외에 정확한 건국 시기, 고조선 사회나 문화의 전반적인 모습, 사용했던 언어[22] 등이 모두 불명이다. 심지어는 학자에 따라서 고조선이 단일 '국가'였는지, 아니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부족 국가들을 일컫는 말이었는지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 기자조선: 문헌상으로는 분명히 교차 검증이 가능한 나라. 하지만 만약 이 국가가 실존했다면 나타나야 하는 역사적 유물인 기자명 청동기가 발굴이 된 적이 없다.
    • 위만조선: 기자 조선과 마찬가지로, 문헌상으로 교차 검증은 가능하나 역시 관련 유적이나 유물이 아예 없다. 그래도 100년 가까이를 존속한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이 시기에 한반도로 본격적인 철기 문화가 유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떡밥이다.
  • 고종의 죽음: 1919년 식혜를 마시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서 차를 마신 후 사망하였다. 당시부터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어서 독살설이 꽤 설득력이 있었고 그에 따라서 3.1운동의 원인이 되었으나 실제로 독살당한건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23].

  • 구태: 중국 정사에 속하는 역사서인 주서, 북사, 수서 그리고 책부원구에 백제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수수께끼의 인물.
  • 궁예의 출신 성분: 본인이 정말로 신라 왕족인지 폭군이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불분명하다. 죽음의 방식은 불분명해도 이미 권력을 잃은 후이고 죽은 것은 확실하므로 중요하지 않지만 본인의 주장대로 정통성 있는 왕족인지 아닌지 폭군이라 쫓겨난건지 쫓겨나서 억울하게 폭군으로 평가된건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 김두성: 안중근이 자신의 상관으로 밝힌 인물로 항일 운동사 연구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다. 문제는 실존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일단은 김두성이 실존 인물이라면, 이 이름이 본명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24].
  • 김익상의 최후: 1923년에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이후의 행적이 매우 불분명하다. 그의 사망 연대도 책에 따라 1925년이라고 하기도 하고 1943년이라 하기도 한다.
  • 김충선의 정체: 임진왜란당시 일본군의 선봉에 섰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조선에 귀화해서 일본군을 상대로 큰 공을 세우고, 이후 조선의 무장으로서 병자호란에서도 공을 세운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지만 그의 정체와 일본에서의 행적이 밝혀지지 않아 학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가공의 인물'드립까지 나오기도 했다.[25]
  • 김함보: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여겨지는[26] 김씨성을 가진 정체불명의 신라인이다.[27] 비록 '김함보가 신라인이니, 여진족이나 금나라가 모두 한국사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여진족의 지배층 중에 신라계 인물이 있었을 가능성은 주류 학계에서도 꽤나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함보의 원래의 성씨가 여진족의 성씨인 '완안'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출신은 신라[28]일지언정 일단은 여진계였다는 설이 힘을 얻었다. 즉, 그의 정체는 여진계 신라인이라는 것이다.[29]
  • 김형욱의 실종: 한때 박정희 정권 하에서 중앙정보부장을 지낼 정도로 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김형욱은, 이후에 이후락과의 대립으로 인해 모든 권력을 잃고 프랑스로 망명했는데, 그 이후에 영영 실종되어버리고 1979년에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망처리되었다. 일단 그의 나이로 보아서는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사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공식적으로 김형욱의 죽음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만일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게 사실이라면, 그 범인은 박정희의 지령을 받고 파견된 대한민국의 첩보원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들이 그의 실종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30].
  • 김홍도와 관련된 미스터리
    • 김홍도의 말년 행적과 사망 연도: 김홍도가 언제 죽었는지는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며, 일단 1810년까지는 김홍도에 대한 기록이 나오므로 그 이후에 사망했음은 확실하다. 아래의 토슈사이 샤라쿠 미스터리와 관련하여, 김홍도가 토슈사이 샤라쿠의 정체라는 설이 제기되었으나, 토슈사이 샤라쿠의 활동 시기에 김홍도는 조선에 있었음이 확인되었으며 화풍도 김홍도의 것과는 차이가 상당하는 것도 밝혀져서 가설이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31].
    • 김홍도의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 그동안 김홍도의 작품으로 여겨지던 작품의 상당수가[32] 동시대의 다른 화가가 그린 위작이라는 설이 제기되어 한국의 문화예술계를 충공깽에 빠뜨리고 있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김홍도의 화풍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모두 뒤엎어야하기 때문이다.
  • 낙랑군: 한사군 중에선 세 번째로 오랫동안 살아남은 군현인데,[33] 다른 군현들이 부여고구려 등의 토착민 국가들의 독립이나 정복으로 인해 폐지되어 사라진 것과 달리, 낙랑군고구려의 발흥과 함께 패망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나서 한참 만에 또 고구려에게 정복당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으로 관련 기록이 모순되기도 하고, 원래 낙랑군이 있던 자리에 최씨낙랑국이라는 독립국의 기록이 나왔다가[34] 느닷없이 중국 왕조의 소속 군현인 낙랑군으로 다시 언급되는 등, 관련 기록들이 개판이라서 역사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때문에 낙랑군의 정확한 존속 기간은 물론, 중간에 등장하는 최씨낙랑국의 실체, 그리고 낙랑군의 상세한 역사가 모두 불명이다.
  • 납북 일본인: 일본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의 적지 않은 수가 북한 공작원들의 납치에 의한 것임이 밝혀진 바 있는데, 이때 납북된 일본인들의 대부분의 생사가 아직까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들의 생환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북한 측에서 이들을 두고 자진 월북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통에 생사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이다.[35] 이들 중의 일부가 일본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여 증언한 내용에 의존하여 그들의 행적을 겨우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36] 참고로 일본인들의 납북 사건은 피해자들이 일본인이기는 하나, 가해자가 북한이고, 그들이 납치되어 끌려간 장소도 북한 땅인 만큼 한국사 부분에서 다룬다.
  •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1950년 6.25 전쟁이 벌어지던 중에 충청북도 영동군의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한 학살 사건이며, 2000년에 미국 정부가 이 학살 사건 자체를 자국의 전쟁 범죄로 인정하고 자체 조사를 하였다[37]. 그 결과로 이 사건은 당시 미 공군이 노근리로 피난하는 중이던 피난민 행렬을 북한군으로 오인하여 일어난 우발적인 학살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학살 가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자신들과 상부는 이들이 민간인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이들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이 정말로 미국 정부의 발표대로 오인 폭격으로 인한 우발적 학살이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 문종의 사인(死因): 조선의 5대 국왕. 어의가 고의로 질병을 악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설이 있다. 세조 문서의 2.2 문단도 참고하자.
  • 민승호 암살 사건: 고종 11년, 당대의 실권자 중 한 명이었던 민승호가 폭탄 테러로 인해 본인, 어머니, 아들까지 3대가 한꺼번에 사망한 암살 사건. 조선 역사를 통틀어 고관대작이, 그것도 가족과 함께 테러로 암살당했다는 건 비교할 만한 사건조차 꼽기 힘들 만큼 엄청난 일이었지만,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용의자로 흥선 대원군 혹은 그의 일파가 꼽히지만 그쪽에서 범행을 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
  • 박연조선인 후손들: 1622년에 조선제주도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선원인 얀 야너스 벨테브레가 조선 땅에 영구히 정착한 후에 이름을 박연으로 바꾸고 조선인과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며 살다가 조선 땅에서 천수를 누리다 자연사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44]. 하지만, 개개인마다 성씨와 본관이 있을 정도로 혈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문마다 반드시 족보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박연의 후손들이 어찌되었는지, 그들의 혈통이 단절되었다면 언제 단절되었는지가 알려지지 않은 건 상당한 의문을 낳고 있다[45]. 때문에 2000년대에 대한민국 정부와 네덜란드 정부가 합동으로 박연의 후손을 찾는 작업에 돌입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46][47].
  • 발해과 관련된 미스터리
    • 대조영: 대조영의 출신 성분이나, 그가 발해를 건국한 후, 그의 재위기간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여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 발해의 멸망 과정: 갑작스러운 멸망 과정이 의문이며, 한때 주류 역사학계 내에서 백두산 폭발로 인한 멸망설이 떠돌았었다. 다만 최근에는 발해 멸망보다 백두산 분화가 나중의 일임이 밝혀져서, 거란에 의해 수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함락됐다는게 어느 정도 정설로 굳혀지는 상황이지만, 대폭발 전에 지진이나 이상기후 등의 전조 증상으로 민심 혼란이나 왕권 약화 등의 문제를 유발해 멸망에 간접적인 영향을 줬을 수도 있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백두산은 1000년 단위의 대분출 주기와 100년 단위의 소규모 분출 주기가 공존해서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분출 시기를 알 수가 없으므로 멸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해서 백두산 폭발 멸망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 발해의 문화인류학적 구성: 발해의 언어가 어느 쪽 계통인지, 그리고 '발해인'들이 어느 민족에 가까운 이들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까지는 주류 학계내에서 말갈계 주민들과 고구려계 주민들이 발해 전체의 인구 수 내에서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였다는 설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말갈계가 더 많았다는 주장과 고구려계가 더 많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소수 의견이지만,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융합하여 독자적인 민족인 '발해인'으로 거듭났다는 설도 있다[48]. 이는 발해어로 된 기록을 해독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발해 문자로 된 기록들이 완전히 해독되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발해사를 중국사로 볼 수는 없다는 점에는 학자들의 절대다수가 동의하는 상황이다[49].
  • 백범 김구 암살사건: 이 사건은 선우진을 비롯한 비서들의 어긋나는 증언들로 사망 시각의 파악이 어려워서 의혹이 증폭되었다. 게다가 범인인 안두희마저 배후가 누군지 명확하게 답변을 하지 않고 버티며 50년 가까운 세월을 살다가 피살되어버린 바람에 배후를 규명할 단서는 사실상 영영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인다.
  • 백제와 관련된 미스터리
    • 백제의 건국 과정: 백제는 알다시피 고구려의 왕자였던 온조비류 형제가 건국한 나라이며[50], 처음에는 마한의 속국으로 시작했다는 점 또한 확실한 사실이다. 하지만, 백제의 건국 과정에 대한 기록은 이상한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 서쪽에 영토를 두었던 초기 고구려의 지리적인 위치때문에, 지금의 서울특별시 지역에 해당하는 한반도 중부 일대까지 내려오려면, 육로로는 한사군낙랑군 지역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대놓고 한나라에 적대하던 고구려의 왕자가 자신을 따르는 유민들을 이끌고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걸 묵인할 리가 없으므로, 비류, 온조 형제의 남하 경로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당시 만주의 교통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바다로 이곳까지 갔을리도 없고[51], 무엇보다도 만주 지역의 다른 부족과 합류해서 나라를 세우지 않고[52], 아예 자기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한강 유역으로 왜 간 것인지도 상당히 의문이다[53][54].
    • 백제의 멸망과 의자왕 몰락의 원인: 한때 백제의 멸망의 원인으로 의자왕이 폭군으로 흑화한 것이 거론되었지만[55],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의자왕의 실체는 백제를 부흥시켰으면 시켰지,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의 실정을 저지른 사람은 아니었다로 결론나면서[56] 그가 갑자기 망국의 군주로 몰락한 이유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일단 무리한 왕권 강화를 시도하다가 호족들의 반발을 산 것이 백제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알려져있으나, 도대체 무엇을 계기로 호족들과 백제 왕실 간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틀어졌는지는 기록이 부족해서 알기가 어렵다.
    • 백제부흥운동의 최후 거점인 주류성과 백강의 위치: 백제 부흥군의 최후 거점이었던 주류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57] 또한 백강이 어느 강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도 금강설과 동진강설이 분분하며, 일부에서는 삼국시대 말기에 백강이 분명 존재했으나 그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토사물 퇴적으로 사라졌거나 유로가 변경되어 다른 하천의 지천으로 편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58]
  • 북명: 고구려신라를 다룬 사서에 언급되는 나라. 위치 등 너무나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일단 학계에서는 고구려에 대한 기록에 나오는 북명과 신라에 대한 기록에서의 북명은 동일한 장소가 아니라, 이름만 같은 곳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고있다[59]. 북명이라는 이름의 한자를 뜻풀이하면 '북쪽 바다'라는 뜻이므로 단순히 북쪽에 있는 나라나 부족들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라는 설도 있지만, 신라 관련 기록에 나오는 북명이면 몰라도,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 언급되는 북명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부족을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현재의 정설이다. 일단 신라 관련 기록의 북명은 함경도 일대로 비정되고 있으며[60], 고구려 관런 기록의 북명은 만주 북부나 연해주 일대로 추정될 뿐, 어느 장소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 괴유: 부여의 왕인 대소왕을 죽인 북명 출신의 고구려 장수로, 북명 출신자임이 분명하게 언급되는 유일한 인물이라서 이 사람의 출신 성분이 무엇인지가 밝혀짐에 따라 북명의 실체가 밝혀지리라는 기대가 많다.
  • 서동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향가인데, 노래에 나오는 신라 공주인 선화공주백제의 왕인 무왕의 연애담은 고고학계의 연구 결과로 인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하지만, 당시의 신라에 왜 이런 내용의 향가가 유행했었는지[61], 노래에서 언급되는 선화공주의 정체나 실존 여부 등이 역사학계의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만족스러운 학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 석탈해의 출신지: 석탈해의 출신 성분에 대하여 삼국사기에서는 왜국의 동북쪽 1천리에 위치한 다파나국[63]의 왕자였노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 다파나국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일컬어지고 있다. 일단 석탈해 관련 설화에서 그가 가야의 왕위를 두고 수로왕과 대결을 벌이다가 패했다는 얘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석탈해가 어느 지역의 유력자 출신임은 분명하다고 보고있다. 석탈해에 정체에 대해서는 종래에는 인도 출신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고[64], 그 이외에 현재 유력시되는 가설로 캄차카 반도 출신설[65]사할린일본도호쿠 지방, 홋카이도 출신설[66], 한반도 동북부에서 이주한 옥저계나, 동예계 유이민 설, 현재의 강원도 지방에서 이주한 토착 부족 출신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 성한왕: 신라의 태조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지만[67], 이 사람이 누구인지가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주류 학계는 기존에 알려진 왕들 중의 한명에게 올려진 왕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소현세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의문사 사례로 꼽힌다.
  • 신라구: 왜구의 신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 신라 말기의 한국인 해적 집단이다. 한국의 사료에서는 등장하지 않으나, 일본 사서에서 그 존재가 분명히 언급되고 있어서 그 실존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신라구로 분류할 만한 인물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고[68] 이들의 규모에 있어서도 논쟁의 여지가 많아서 이들의 자세한 내용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하지만, 상대한 규모의 세력이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69].
  • 신천·재령군 봉기 사건: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에 황해도 신천군 일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민중봉기와 학살 사건인데, 이때 벌어진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밝혀지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이 사건을 신천대학살이라고 부르면서, 미군이 벌인 학살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시 학살이 벌어지는 신천군 일대에서 도망친 사람들의 증언에서 미군 병사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보여진다는 점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추정된다. 오히려 조선인민군이나 중공군이 저지른 학살이 아닌가하는 설도 있으나, 명백히 친대한민국 성향의 반공주의 민병대가 벌인 학살에 대한 기록도 분명히 존재하고 관련된 증언도 있어서[70], 학살의 주체를 종잡기가 어렵다.
  • 안시성주의 정체: 흔히 그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근거가 없다. 사실 안시성주의 본명은 물론, 고구려-당 전쟁 전후에 그에 대한 기록조차도 남지않아서 그 정체를 추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 요서경략설: 백제의 요서 경략설은 대륙 백제라는 상한 떡밥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논쟁이 되고 있으며, 이 전쟁 역시 논란이 끝이 없다. 심지어 근거는 미약하지만 있지도 않은 전쟁을 지어낸 것이라는 학자의 주장까지 존재하는 상황.
    • 북위백제 침공: 《삼국사기》뿐 아니라 당대의 기록인 《남제서》에서도 언급되는 사건으로 북위와 백제가 총 2차례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북위가 어떻게 고구려와 바다를 지나 백제에 도달한 건지, 또한 왜 침공한 것인지 고대 기록의 부재로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동성왕 항목 참조.
  • 우왕신씨설: 위화도 회군이성계는 우왕의 폐위의 명분을 신돈의 아들이라는 것에 두었다. 또한 본인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왕과 그의 아들 창왕이 신씨라는 것을 이용하여 처형하였다. 반란이 성공하였으므로 우왕의 실정을 근거로 폭군으로 모는 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혈통 문제를 제기한 것과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이미 의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다른 왕과 달리 우왕과 창왕의 공식적인 무덤이 없으므로 밝혀질 가능성도 없다.
  • 운주사천불천탑: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지, 어떤 석공집단이 만들었는지, 이들이 어떤 종파의 불교를 믿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윤동주, 송몽규 생체실험 피해 논란: 이른바 '마루타'로 불리는 생체실험의 피해자들 중에 윤동주와 그 사촌 형인 송몽규가 있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거의 음모론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상당한 기간동안 학계에서는 무시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에서 생체실험의 정황이라고 추정되는 서술이 발견되면서, 주류 학계에서 실제로 이 둘이 생체실험의 희생자였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 원균의 최후 행적: 칠천량 해전 당시 전사했다고 전해지나 이는 선전관 김식의 장계를 통해 알려진 사실일 뿐, 그가 전사하지 않고 살아서 전장을 빠져나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 을지문덕의 출신 성분과 최후: 당대 아시아의 최강대국이던 수나라를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72] 엄청난 전과를 거뒀음에도 그의 출신 성분이나 최후에 대한 기록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의문이다. 그래서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당나라에 이름이 비슷한 울지경덕이라는 인물이 있다는 점과 을지문덕의 성 또는 직위명이라고 추정되는 '을지'가 퉁구스제어로 사신을 뜻한다는 점[73]에서 외국계 귀화인이거나[74], 고구려 후기에 신진 권력층으로 성장한 하급 귀족 출신이라고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후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여 고구려-수 전쟁 이후에 그가 어찌되었는지는 불명이다.
  • 의열단정체불명의 조력자: 김원봉을 포함한 의열단 소속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이 의거에 사용하기 위한 폭탄 등의 무기를 지원해준 지속적으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 최재형신용호[75]같이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해준 민간 사업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열단 단원들이 언급하는 이 조력자는 한국인이 아닌 헝가리이며, 때문에 출신 국적에서 따온 가명인 마자르[76]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으며[77], 심지어 광복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 이상의 문학인 데뷔 동기: 건축 기사로 일하다가 시인으로 등단한 기간 중 2년의 시간 동안 행적이 밝혀지지 않았다. 장래 유망한 인물이 갑자기 배고픈 시인이 된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위종: 헤이그 특사 사건의 주인공 3명 중 한 명이다.[78] 헤이그 사건 이후에 러시아로 망명하여 러시아 귀족 여성과 혼인했다는 것과 소련 건국 이후에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여 소련 육군의 장교가 되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1924년에 이때까지 자신의 행적을 자서전 형식으로 작성해 당에 올린 이후의 행적이 일절 알려져 있지 않다.
  • 익산쌍릉: 2018년 7월 17일 고고학계와 전문가들의 발굴조사 결과 대왕릉에서 발굴된 유골은 백제 무왕의 것이 맞다는 판정을 내렸다.# 소왕릉에 대해서는 2019년 재발굴조사가 진행되었지만, 무덤의 주인이 선화공주라고 입증할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서동설화의 진위여부는 증명되지 않고 있다.
  • 임오화변: 사도세자의 죽음의 과정을 담은 기록이 정조에 의해 사라지면서 역사학자들의 골을 부여잡게 하고 있다[79]. 분명한 것은 노론이 사도 세자를 죽였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노론은 시파랑 벽파로 갈려있었고,[80] 사도세자의 죽음 당시에 붕당을 가리지 않고 세자의 죽음을 막으려 했다가 서로 사이좋게 영조에게 개발살나기도 했다. 애초에 숙종 집권기부터 정조 집권기까지는 노론이건 뭐건 간에 신하들은 그저 납작하게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81].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노론은 그 영수인 홍봉한[82]이 사도세자의 장인이 되는 등으로 세자와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83], 임오화변 당시까지 조정의 모든 대신들은 물론 세자의 여동생인 화완옹주[84]와 부인인 혜경궁 홍씨도 세자의 편을 들었고, 오직 영조 혼자서만 세자를 죽이겠다고 난리를 피웠던 상황이다. 주류 학계의 논점은 왜 영조자기 아들을 죽이는 비상식적인 짓을, 그것도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벌일 만큼, 세자와 사이가 틀어진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전술한대로, 신하들이 모두 반대하는 데도 아들을 뒤주에 가두는 짓을 감행할 만큼 권력도 매우 막강하며, 본인도 친(親) 노론 성향인데다[85] 조정을 노론이 다 장악해서 그의 권력에 위협을 줄 만한 요인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짓을 벌였기에, 학계에서는 임오화변의 원인은 정치적인 원인이 아닌 왕실 내부의 가정사 문제에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86].
  • 장영실과 관련된 미스터리
    • 장영실의 몰락 원인과 최후: 황희조말생은 뇌물이나 비리로 사형당할 뻔 했다가 겨우 사면 받았는데에 비해, 조선시대의 과학에 큰 업적을 남겼던 장영실은 가마 사고의 문제로 곤장 80대형을 받았다. 이런 세종대왕의 다른 모습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의구심을 들게 했다. 이렇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때문에 그를 중용하고도, 왜 사소한 실수 하나로 그를 완전히 실각시켰는지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하는 학설은 없으며, 실각 이후에 장영실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87]. 다만 온수역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건강이 좋지 않던 세종은 온천 같이 자기 건강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여느 전제군주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장영실의 몰락도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은 아니다. 장영실이 만든 문제의 가마는 세종이 온천여행을 할 때 타고 다니려고 만든 가마였는데 만약 그게 실제로 사용되다 부서져버렸다면 탑승자(세종)가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세종실록에 의하면 장영실 본인이 '이 가마는 부서지지 않을 겁니다'라고 호언장담했으니 왕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죄도 추가되고... 그나마 세종이 성품이 어진 임금이었으니 장영실이 한 번의 잘못으로 비참한 말년을 보냈을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만일 장영실이 모셨던 임금이 인조연산군 같은 영 좋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였더라면...
    • 장영실의 출생 배경: 장영실이 본래 동래부 소속의 관노였던 사실은 매우 유명하지만, 그가 노비의 삶을 살게 된 원인은 수상쩍은 부분이 많다. 우선 그의 본관인 아산 장씨의 족보에는 그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으나,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은 등재되어 있지않다. 특히 중간에 면천되었다고는 하나, 당시까지는 일부 상류층들만 족보를 따지던 조선 초기에 노비가 본관이 있었다는 점, 아산 장씨 문중들이 족보에 이런저런 윤색을 가했을 가능성을 고려해도[88] 장영실의 증조부는 족보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당대의 역사 기록으로도 교차검증되는 사람이라서, 그가 본래는 꽤 이름있는 집안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때문에 장영실노비로 태어나게 만들었던, 집안의 몰락의 원인에 대해서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아산 장씨 가계가 원나라 말기의 혼란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한 중국인 가문이라서 외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선의 조정이 이들을 배척하고 노비로 강등했다는 설이나[89], 장영실의 조부가 고려의 충신이어서 조선 왕조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다가 노비로 굴러떨어졌다는 설이 있지만[90], 여말선초의 혼란으로 인해 소실된 기록이 많아서 자세한 사정이 알려져 있지 않다.

  • 장준하의 사인(死因): 등산 중 실족에 의한 사고사로 발표되었으나, 타살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 전태일분신 사건: 전태일의 몸에 불을 붙인 김개남(가명)[91]이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진 것이 없다. 그나마 알려진 정보는 전태일 평전에서는 그가 전태일과 친했으며 함께 노동 인권 운동을 한 자라는 묘사가 있다. 사건의 여파를 생각하면 당시 경찰이나 정보 기관 등에서 찾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어째 언급되는 경우가 없다.[92] 정황상 주위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결과적으로 자살을 도와준 것이 되기에 전태일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끝내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았다.
  • 정조의 암살을 기도한 자: 정조에 대한 암살기도에 대해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로 정조는 절대로 암살로 죽은 게 아니라 자연사했다는 것이며[93], 둘째로 그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 자가 누구든지 간에 노론은 절대로 정조의 암살을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노론은 임오화변[94]을 계기로 시파와 벽파로 분열되었으며, 정조 본인은 이들 중에서 어디에 속해있던지 간에 일단은 명백히 노론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딱히 정조를 죽일 필요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당시[95]에, 과연 누가 그를 암살하고자 했는지가 의문이다. 세손 시절부터 암살 위협을 받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개인적인 원한이 동기였거나, 암살 위협 자체가 정조가 왕권 강화의 명분을 만들고자 날조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록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합당한 해석이 나오지 않고 있다.
  • 제국익문사: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의 주도로 설립된 관영 언론사이자, 첩보기관으로 고종의 밀서를 외국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한국독립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준 단체다. 문제는 그만큼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에도 매우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며 활동했던지라, 여기에 속해있던 인물들이 누가 있었는지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 최규하: 12.12, 5.18의 진상 규명 및 사법 처리 과정에서 사건 당시 국가 원수였던 최규하의 증언은 필수적이었으나 최규하는 죽는 순간까지 일체의 증언을 거부하고 함구로 일관했다. 그래서 그가 신군부의 피해자였는지, 아니면 동조자였는지 규정 짓기가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비망록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그에 관한 내용은 없었고 일종의 메모는 지하실에 있었는데 폭우로 물이 잠기면서 대부분 유실되었다고 한다.
    • 8.16 하야: 최규하의 대통령직 사임이 최규하 본인의 의지에 따른 건지 신군부의 강압에 의한 건지 규명되지 않았다. 만일 신군부의 외압임이 입증되면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들을 정권 탈취 목적 내란죄로 단죄할 수 있었지만 당시 이를 입증할 길은 최규하 본인의 증언 말곤 없었고 최규하는 끝까지 함구했다.
  • 최태민의 실체: 그 딸인 최순실박근혜와 공모하여 저지른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궁극적인 원인은 최태민이 박근혜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배후조종한 것에 있다[96]. 하지만, 최태민 본인은 수시로 이름을 바꿨으며, 알려진 생년월일과 묘비에 기록된 생년월일이 전혀 다를 만큼, 그의 과거 행적도 불분명한게 많다. 그래서 그의 실체에 대해 재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며, 이게 박정희 일가의 행적과 실체를 이해하는데 크나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 태조왕 시기에서부터 신대왕까지의 삼국사기의 기록: 태조왕에서부터 차대왕, 신대왕까지의 기록은 상당히 불분명한 점이 많다. 우선, 태조왕과 차대왕, 신대왕 본인들부터 명림답부와 같은 그들의 신하들까지도 생몰 기간이 터무니없이 길게 기록되어 있는 점이나, 태조왕이 국가의 시조에게나 붙여지는 태조(太祖)라는 왕명이 붙여진 이유가 역사학계의 오랜 떡밥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김부식견강부회식으로 왕과 그 대신들의 수명을 어거지로 끼워 맞추었거나, 당대의 기록이 조작되었다는 설만 난무할 뿐, 그 어떤 것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 한반도고인돌: 고인돌은 비단 한반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발견되는 유적이긴 하지만 유독 한반도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97]. 이처럼 한반도에서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해명된 바가 없다. 일단, 한반도는 타 지역에 비해 적은 노동력으로 고인돌을 쉽게 만들 수있는 지형이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무거운 돌을 이용해 어떤 구조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노동에 속해서, 이를 만든 목적도 불분명하고 무엇보다도 이런 것의 공사를 강요할 권력자가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고인돌을 만든 것 자체가 많은 의문을 남기는 상황이다.
  • 해씨 고구려설: 한때 고구려 왕실의 성씨가 초창기에는 해씨였다가 고씨로 바뀌었다는 설이 제기된 바 있다. 그 근거로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가 해씨인 것과 왕실의 출신 부족이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바뀌었다는 것이 제기되었지만[98], 현재 주류 역사학계는 해씨=고씨이고[99], 원래부터 고구려 왕실은 고씨였다고 보고있다.
  • 허가이의 최후: 북한으로 귀국한 고려인들이 주축이 된 조선로동당 내 세력인 소련파의 수장이던 허가이6.25 전쟁의 종전을 앞둔 1953년에 평양 시내의 방공호 안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는데, 통상적으로는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없고, 오히려 그 이후로 소련으로 망명한 허가이의 딸은 아버지가 김일성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되었음을 호소했고, 반대로 허가이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탓에 알려진대로 자살을 했을 것이란 설이 있으나, 단편적인 증언 이외에는 그의 죽음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사료가 전혀 없어서 허가이의 최후에 대해 역사학자들 중 그 누구도 자신있는 설명을 하지못하고 있다.
  • 허황옥의 출신지: 금관가야의 첫 왕후가 된 여성으로, 알려진 것과 같이 진짜로 인도 출신이라는 설과 불교 전래 이후에 출신이 날조되었다는 설이 있다.[100] 이와 같은 경우로 석탈해의 출신지 논란이 있다.[101]
  • 홍길동의 최후: 체포된 이후의 행적이 불분명하다. 체포된 이후에 탈옥해 오키나와로 가 활약했다는 설이 있으며, 류큐 섬의 호족인 오야케아카하치(オヤケアカハチ)와 홍길동이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만, '홍길동=오야케아카하치' 설은 이미 주류 학계에서 부정되었다.
  • 화랑세기 필사본: 진위 논란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의 주류 사학계의 입장은 위서론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으나 진서론의 주장도 고려해보자는 입장이다.
  • 황옥: 영화 밀정의 등장 인물인 이정출[102]의 모델이 된 사람이다. 현재까지도 주류 역사학계 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인지 독립운동가인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인데, 그와 함께 의열단에서 활동했던 약산 김원봉이 그를 끝까지 의열단의 일원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본래 친일 성향의 인물로서 의열단에 잠입한 스파이였다가 의열단 단장이던 김원봉에게 감화되어 진짜로 독립운동가로 돌변한 인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103]
  • 흥선대원군동학 농민 운동의 관계: 전봉준이 대원군의 식객으로 있었고, 또 동학 측과 대원군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는 것 자체는 밝혀진 상황인데, 구체적으로 대원군이 동학 농민 운동에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불명이다. 동학 농민 운동과 대원군에 대한 평가 자체를 크게 뒤흔들 수도 있는 초대형 떡밥이지만[104] 당사자인 전봉준과 대원군 모두 입을 다물고 사망했기 때문에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 효장세자의 죽음: 영조의 서장자로 1728년 10세의 어린 나이에 병으로 단명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요절에 대하여 영조가 직접 친국한 기록이 있고 매흉에 대한 기록과 독살에 대해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으며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되는 선의왕후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 위의 임오화변에 대한 내용이나 정조에 대한 암살 기록과 관련한 내용과도 관련이 깊은 부분으로, 영조를 위시한 왕실의 권위가 절정에 달한 절대왕정 시기였고, 노론을 포함한 그 어느 세력도 감히 왕권에 도전하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105], 대체 누가 효장세자선의왕후, 정조에 대한 암살을 기도하느냐가 의문이다.

3.2. 세계사의 미스터리

  • 갈족: 오호십육국시대 당시에 중국의 북부를 침공하여 전조후조 등의 나라를 세운 정체불명의 민족들이며, 후조가 멸망할 시에 염위를 세웠던 염민[108]에 의해 종족의 대부분이 학살당하면서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역사학자들은 갈족의 정체를 코카소이드계나 튀르크[109], 또는 예니세이계[110]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갈족의 언어나 문화에 대한 기록[111], 혹은 그들의 유골같은 것도 거의 발견된 적이 없어서, 이들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 건문제: 사망 당시의 정황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고,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 관체족: 오늘날의 스페인카나리아 제도에 살던 토착민들로, 베르베르인과 동계의 민족이라는 것을 빼면, 이들의 전반적인 문화나 생활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17세기 이후로 관체족은 모두 절멸했지만, 현대 카나리아 제도 주민들의 혈통에 관체족의 피가 섞여있다. 특이하게도 이슬람교를 믿지 않았던 몇 안되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계열 민족들 중의 하나이다.[112]
    • 귀마르의 피라미드: 카나리아 제도의 원주민들인 관체족이 세운 피라미드형의 건축물로, 원래 고고학계에서는 관체인들이 해풍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바람막이 벽이나[113], 농사짓다가 골라져 나온 돌들을 버린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탐험가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토르 헤이에르달귀마르의 피라미드들의 서쪽 계단은 동짓날 아침의 일출 방향을 따라 조성되었음을 밝혀내어, 이 피라미드가 당대의 천문학 지식을 적용하여 인위적으로 지었음을 밝혀내면서, 관체족들이 이를 어떻게 지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관체족이 체계적인 문명을 이루고 살았던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중앙집권제 국가를 세운 것도 아니라서[114] 피라미드의 건축 배경이나 건설 방식은 상당한 의문을 낳고 있다.
  • 광서제의 죽음: 당시에는 병사로 발표되었지만 2008년 중국의 조사결과 비소가 발견되어서 독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의심가는 인물로는 서태후위안스카이가 있으나 확실치 않고 황위가 고작 3살인 푸이에게 넘어가고 서태후도 이틀 후 급사하였다. 그나마 개혁 의지가 있던 그의 죽음으로 청나라는 그대로 멸망하게 되었다.
  • 고대 로마의 초창기 역사: 황당하게도 뒷날 온 지중해를 호령하게 되는 희대의 대제국의 초기 역사의 많은 부분이 기록 부족으로 인해 수수께끼에 싸여있는 상태이다. 로마 7왕에 해당하는 왕들의 정체에서부터, 로마가 당대에는 다소 생소했던 공화정 체제를 무슨 경위로 받아들였는지가 모두 의문에 싸여 있다.[115] 관련 기록이 부족해진 이유는 초창기에 켈트족의 침공으로 로마 시가 불타고 각종 공물을 뜯기면서 관련 기록들이 불타서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 괴베클리 테페: 최근 들어서 고고학자역사학자들을 하악거리게 하고 있는 유적지. 수메르 문명의 건설 이전에 만들어진 유적지인데, 무려 기원전 11,000년경의 건축물이다! 일종의 종교적 성소였다고 추정되는 이 유적지 때문에 종교나 체계적인 건축물의 건설이 신석기 시대농업이 등장하고 나서야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던 기존의 학설을 크게 수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몰타타르신 신전이나, 역시 몰타에 있는 바퀴 자국 지형이 있다.
  • 그리스·로마 신화의 성립 과정: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 중의 태반은 인도유럽어족 신화의 신이나 그리스 지역의 토속신이 아닌 비(非) 그리스계 신화에서 기원한 신들이다. 예를 들면, 헤라아나톨리아 반도 선주민들의 지모신이며,[116] 아폴론, 아르테미스 남매와 그들의 어머니인 레토 역시 그 기원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토속신이었다. 게다가 헤르메스는 아예 무슨 신화의 신이 기원이 된 게 아니라, '건너서 넘어가다'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기원한 신이다. 이렇게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의 기원을 밝히는 문제는 곧, 그리스인그리스어의 기원을 밝히는 문제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이런 연구에 의한 결과로, 그리스인은 지금의 캅카스에서 기원한 민족임이 밝혀진 바 있고, 여기서 아직 캅카스에서 살고 있는 인도유럽어족 계열 민족인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이 동계라는 주장까지 나와 주류 학계의 진지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117].
  • 네페르티티의 최후: 네페르티티이집트 제18왕조파라오아케나톤의 왕비인데, 남편의 사후에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의문이다. 한때는 아케나톤이 사망하기 직전에 궁을 나왔다는 설도 제기되었으나, 그녀가 투탕카멘 왕의 장모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있어서 이 설은 부정되고 있고, 현재는 스스로 파라오로 즉위하고 이름을 바꿨다는 설이 유력하다. 문제는 그녀의 바뀐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고[118], 그녀의 미라도 발견되지 않았다[119]. 일단 주류 학계는 그녀가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 노자: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 〈노장신한열전〉에 따르면 잉태 후 81년 만에 출생했고, 주나라 수장실의 관리를 지낼 때 공자와 회견했으며, 주나라를 떠나는 길에 관윤을 만나 《도덕경》을 저술하여 전해 주었다고 전해지는데, 사마천의 기록에 따른다면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 인물로 간주되지만 오늘날에는 노자가 공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인지, 나아가 노자라는 인물 자체가 실존 인물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노자가 저술한 《도덕경》 역시 노자가 직접 저술한 것인지, 아니면 미지의 인물이 노자의 이름으로 펴내거나 가탁(假託)한 것인지 알 수 없다.
  • 대 모라비아 왕국: 체코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인데, 멸망 직전의 과정이 기록의 부족으로 인해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120] 말하자면, 위의 발해유럽 버전인 셈이다. 대 모라비아의 멸망 이후에 체코의 정치적 헤게모니는 보헤미아 왕국으로 넘어간다.
  • 데린쿠유: 아나톨리아 반도카파도키아에 위치한 지하도시의 유적으로, 당대의 첨단 과학 기술들이 총동원되어 건설된 도시이다.[121] 문제는 이런 도시를 세운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인데, 한때 학계에서는 로마 제국 초기에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피해 숨어들어가느라고 세운 도시였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졌으나, 도시의 건설 시기가 로마가 있기도 전인 기원전 2000년경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기독교인의 피난처라는 가설은 부정되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용도로 처음 만들어진 도시가 로마 제국 시기에 기독교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용도가 변경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122]
  • 람캄행 대왕의 실제 행적: 람캄행 대왕이란 태국 역사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수코타이 왕국의 명군으로, 오랫동안 태국인들의 민족 영웅으로서 추앙받아왔으나, 그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이 위조된 것일 가능성이 유력해지면서 람캄행의 실제 행적과 더불어 비문에 등장하는 수코타이 왕국의 발전상의 실체가 크게 의심받고 있다[124]. 만일 람캄행의 행적과 수코타이 역사가 이 비문을 통해 조작된 것이라면, 태국의 초기 역사 전체를 몽땅 수정해야 할 것이다.
  •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 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이 협력했던 제1차 국공합작이 결렬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국민당의 원로 정치인인 랴오중카이가 암살당한 것지만, 정작 이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가 밝혀진 바가 없다[125]. 국민당 좌파가 이 사건으로 큰 이득을 봤으나, 랴오중카이 본인이 좌파라는 점에서 이들이 배후일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또한 그의 죽음이 우파가 숙청당하는 빌미가 되었다는 점때문에 우파도 배후일 가능성은 없는지라, 2020년 현재까지 이 사건의 진실은 베일에 싸인 상황이다.
  • 로어노크 식민지: 1588년부터 1589년까지 북아메리카 지역에 세운 잉글랜드의 식민지로 'CROATOAN'이라는 의미불명의 글자만 남긴 채로 주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멸망했다. 현재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들이 기근으로 인해 식민지를 버리고 인근의 다른 원주민 부족에 합류하여 동화되어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지만, 어느 부족에 동화된 것인지가 불명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의 친나치 행적: 일단 마르틴 하이데거가 나치당에 가입했고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나타낸 바 있어 하이데거가 나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 자체는 하이데거를 옹호하는 측에서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까지 나치에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이데거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하이데거가 나치를 지지하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별다른 정치적 활동 없이 학자 본업에 충실했음을 들며 하이데거와 나치의 관계가 그리 깊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하이데거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그가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재임 시절 유태인, 반나치 성향 교수 추방 및 나치 이념에 맞지 않는 도서 정리 사업에 협력한 점 들어 나치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에 동조한 진성 나치임을 주장한다. 특히 하이데거의 직계 제자들이 학계에서 거의 은퇴한 21세기 들어 하이데거와 나치의 관계가 그동안 알려진 것 이상으로 긴밀했다는 의혹들이 속속들이 제기되고 있다.
  • 마속의 최후: 《삼국지연의》 및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를 통해 가정 전투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형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삼국지》 〈촉서〉 9권 마량전에는 투옥 중에 사망한 걸로, 11권 상랑전에는 상랑이 마속의 탈주를 묵인하여 관직을 삭탈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마속의 최후에 관한 의문점을 낳고 있다.
  • 마이클 록펠러 실종 사건: 록펠러 가문의 일원이며 당시 뉴욕 주지사였고 후일 부통령을 지냈던 넬슨 록펠러의 아들 마이클 록펠러가 1961년 뉴기니 탐험 도중 실종된 사건.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종 사건 중 하나이며 흠좀무하게도 가장 유력한 설은 원주민에게 식인을 당했다는 것이다. 록펠러 가에 대한 평전에서도 식인종에 의해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 만력제의 폐정 원인: 장거정 사후 만력제는 30여 년간 황제로서의 소임을 방기하였고, 그 결과 명은 점차 쇠망을 향해 치닫게 되었는데, 만력제가 정무를 폐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만력제에게 등이 굽고 한쪽 다리가 짧은 기형이 있었음을 짐작케하는 기록이 발견되었으므로[129], 이 때문에 그가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국정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으리라는 추정이 주류 역사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 만세일계: 일본 극우들의 주장과는 달리, 주류 역사학계는 일본 황실의 가계가 20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단일하게 내려왔을리는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왕조가 몇번이나 교체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황실 가문은 언제 등장한 가문인지가 불분명하다[130].
    • 히미코 즉위 후부터 고훈 시대까지의 천황들의 계보: 일본 역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전국시대다, 태평양 전쟁이다 하면서 갖은 전란에 시달린 까닭에 많은 문화재들이 소실되었고[131], 때문에 고대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들이 매우 부족한 상태다. 이에 따라서, 일본서기와 같이 임나일본부에 쩔은 프로파간다조차도 일본의 고대사를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쓰일 만큼[132],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남아있는 사료들을 신빙성 여부와 관계없이 최대한 박박 긁어모아서 그중에서 사실인 부분만 추려나가는 식으로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고훈 시대 직전까지의 역대 천황들의 계보를 자세히 알기 어렵다는 것. 일본 황실의 족보는 태평양 전쟁기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온갖 윤색을 다 해놓은 결과물이라서[133], 히미코 즉위 이후에 어떤 천황들이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측 기록에서 왜왕(= 일본천황)이 보낸 사신들이 조공을 바치고 돌아간 기록이 있지만, 정작 일본 사신들에 의해 중국 황실에 소개된 '왜왕'들 중에서 실제 당시의 천황이였다고 추정되는 이들이 매칭이 잘 되지않는다.
  • 말라가시인의 마다가스카르 이주: 언어학, 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말라가시인들이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에 널리 분포된 말레이-폴리네시아인들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는데, 이들이 어떻게 바닷길이 개척되기 훨씬 이전에 동남아시아에서 인도양의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마다가스카르 섬에 상륙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밝혀지지 않았다. 말레이인은 전근대 시기부터 이미 캐터머런이라는 전통 배[134]를 이용해 태평양을 항해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이미 11세기에 남아메리카에 도달한 적도 있으므로, 마다가스카르도 이런 배를 타고 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배로도 당시에 동남아시아에서 동아프리카 방향으로 인도양을 횡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135]. 무역풍이라고도 불리는 인도양의 편서풍 때문에 서기 7, 8세기 경에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인도양을 횡단할 수 있는 배가 만들어졌는데, 기원전의 말레이인들이 이게 가능했을지가 의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말레이인의 진출도 태평양이 있는 동쪽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 미노스 문명: 그리스크레타에 건설된 유럽 최초의 문명이지만, 이들이 남긴 기록들이 전부 해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136] 미노스 문명에서 사용한 언어나[137], 미노스 문명의 주민들의 계통[138], 미노스 문명의 실제 이름[139]이 모두 불명이다.
  • 바수반두(Vasubandhu, 세친世親): 고대 인도 불교의 고승으로, 전승에 따르면 아상가(Asanga, 무착無着)의 아우로서 원래는 소승 불교에 속했으나 나중에 대승 불교로 전향하여 유식(唯識) 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승의 바수반두와 대승의 바수반두가 진짜 동일인인지, 아니면 동명이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대승 불교 전통이 강한 한국과 일본의 불교학계에서는 《아비달마구사론》의 저자인 소승불교의 바수반두와 유식 사상의 집대성자인 대승의 바수반두를 사실상 동일 인물로 간주하지만 서양의 인도학-불교학계에서는 소승의 바수반두와 대승의 바수반두를 다른 시대의 동명이인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 바실리 필라토프의 정체: 바실리 크세노폰트비치 필라토프(1907~1988)는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를 사칭한 인물이다. 니콜라이 2세의 가족들 중 알렉세이 황태자와 마리아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황녀의 유해는 2007년까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알렉세이와 마리아는 당시 죽지 않고 탈출했다는 생존설이 돌았다. 필라토프는 알렉세이를 사칭한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다른 사칭자들과 다른 점은 일단 다른 사칭자들은 돈을 노리고 생전에 본인이 알렉세이라고 주장했으나 필라토프는 죽기 전 유언으로 본인이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라고 남겼다. 또한 필라토프의 전체적인 골격과 얼굴 생김새 등이 알렉세이와 매우 유사했으며, 그는 일개 구두 제화공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오르간, 피아노, 하프시코드 등 여러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었고, 고전 음악과 러시아의 민속 음악, 오페라에도 조예가 깊었고 러시아의 역사에 박식했으며 모국어인 러시아어를 포함해서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6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필라토프는 하층민인 일개 구두 제화공의 자녀라기에는 상식적으로는 납득될 수 없는 다방면의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사기를 위해 노력 혹은 조작했다고 반론할 수도 있으나, DNA 검사 결과 필라토프의 자녀들의 유전자와 로마노프 왕조의 유전자가 일치하였다. 즉 필라토프는 로마노프 왕가의 일원이었던 것. 이러한 점들 때문에 학자들은 그가 탈출에 성공한 알렉세이 황태자라고 믿었으나, 2007년 알렉세이 황태자와 마리아 황녀의 유골이 발굴되면서 필라토프는 알렉세이 황태자가 아님이 밝혀졌다! 필라토프는 유언으로 자신이 알렉세이라고 밝혔기에 가짜 아나스타시야처럼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함이라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DNA 검사 결과까지 로마노프 왕조와 일치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필라토프는 로마노프 왕조의 방계 후손이거나, 니콜라이 2세의 혼외자녀 또는 숨겨진 자녀였기 때문에 일반 귀족으로 숨겨 키워서 로마노프 왕조 숙청 때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필라토프 본인도 자신이 알렉세이 황태자의 동생 혹은 이복동생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소련 치하에서 자신의 친족들이 숙청당하는 것을 보고 신분을 숨기고 있다가 임종 직전에 그걸 공개했는데, 노년에 기억에 혼선이 생겨 자신이 알렉세이 본인이었다고 잘못 기억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필라토프 본인이 이미 사망했고, 자녀들도 필라토프의 임종 직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돼서 앞으로도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많다.
  • 베이징 원인 해골의 행방: 1927년 베이징 근교 저우커우디엔(周口店)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北京猿人, Sinanthropus Pekinensis)의 해골이 중일전쟁 와중에 행방불명되었는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소실되었다면 어떻게 소실되었는지는 전쟁이 끝나고 70여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 보로부두르: 건설 시기, 건설 목적, 건설을 지시한 인물, 왜 폐허가 되었는지 보로부두르와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에 대해 밝혀진 게 없다.
  • 보이니치 문서: 발견 직후에 알 수 없는 글자들로 되어있어서 큰 화제를 모았던 미해독 문서다. 대충 중세기의 여러 가지 자연과학 지식들을 집대성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고 짐작되었고, 최근에는 여러 여성들이 물 속에 몸을 담그는 모습이 나오는 페이지가 있는 점과 책 전반에서 여러 약초들이 두루두루 소개되는 점으로 미루어 중세 시대의 건강관리법을 다룬 책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151]. 문서에 적힌 언어의 정체[152]가 밝혀져 있지 않고, 저자도 미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153]
  • 불멸의 연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스스로 남긴 기록에서 '불멸의 연인'이라고 언급한 인물이다. 그의 젊은 시절의 첫사랑인 줄리에타 귀차르디라는 여자[154]나 그녀를 소개해준 친구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155] 그리고 그의 말년에 맞은 동명이인인 여제자라는 설도 있고, 앞서 언급한 여사친 테레제의 언니인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156]가 불멸의 연인이라는 설도 있다. 베토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엘리제를 위하여의 '엘리제'가 이 '불멸의 연인'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설도 있다[157].
  • 빅토르 최 의문사 사건: 소련의 록 밴드인 키노의 리더였던 빅토르 최가 지금의 라트비아 영토인 투쿰스에서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다가오는 버스와 정면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즉사한 사건인데, 이 사건은 당시 공산권 국가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158]. 왜냐하면, 빅토르 최는 단순히 잘 나가는 록 스타가 아니라, 당대 가장 유명하고 활동적이었던 자유주의 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못마땅히 여긴 소련 당국의 수뇌부들이 그를 사고로 위장해서 고의로 죽였다는 설이 심도 있게 제기된다. 당시의 정황도 단순 사고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다.
  • 사마충의 장애 원인: 사마충은 현재 기준으로 경계선 지능 내지는 3급 정도의 지적 장애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훗날 서진의 운명과 중국의 역사를 바꿀) 이 황제의 장애에 대한 발생 원인이 의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은지라, 그저 선천적으로 불운한 확률에 걸렸다는 설부터 시작해서 어떤 외부 세력이 고의적으로 다치게 해서 멍청하게 만들었다는 설까지 나돈다. 유력한 설은 선천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159]
  • 사해문서: 유대교 역사의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료인데, 발견 당시에는 사해 근처의 동굴에 봉인되어 있었다. 문제는 언제, 어떤 경위로 이 문서들을 봉인했는지가 불분명하다. 바빌론 유수 당시에 유대인들이 중요한 기록을 보존하고자 동굴 속에 매장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마사다 요새의 반란이 진압될 때 로마군에 의해 문서들이 반달리즘의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해서 굴 속에 은닉했다는 설이 있다.
  • 산해경: 지은이뿐만 아니라 그 내용 역시 오리무중이다. 책 자체만 남았다.
  • 세계 대공황: 21세기에도 이 경제 역사상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여러 경제학적 이론이 있지만 왜 전례 없을정도로 강한 불황이 시작돼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퍼졌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합의를 보지 못했다.[160][161]
  • 센 강의 여인: 프랑스 센 강(Seine river)에서 건져올린 신원불명의 익사체로, 자는 듯이 반듯한 외모라 화제를 모았다. 일부는 시신의 얼굴이 오늘날 인공 호흡 훈련용 마네킹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하지만, 망자가 도대체 누구였는지는 불명이다. 유체의 데스마스크
  • 수메르 문명: 이들의 기원이나 타 민족과의 언어학적, 문화 인류학적 연관 관계가 모두 불명이다.
  • 시바의 여왕: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솔로몬 왕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남방에서부터 찾아온 명철하고 부유한 여왕으로 묘사된다. 솔로몬에게 즉석에서 퀴즈를 냈으나 온갖 세상의 모든 학문에 청산유수처럼 통달한 모습을 보고 탄복하여 여왕이 가져온 막대한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 나온다. 그에 더해 솔로몬 왕과의 염문설도 도는 인물. 일단 남방이라고는 하나 구체적으로 이 여왕의 정체가 불명인데, 에티오피아 등지에서는 여왕을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키는 모양이다.[162]
  • 아나사지 문명: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미국 애리조나 주 일대에서 번성한 문명인데,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애리조나 현지의 선주민 푸에블로족의 조상이나 사촌 격의 민족이 건설했다는 것 말고는 문명의 전반적인 모습이나 멸망 원인이 의문투성이이다. 오늘날의 미시시피 강 일대에서 번성한 도시 국가군인 미시시피 문명이 이들의 후손 내지는 자매 문화권이며, 아나사지 문명과 함께 오늘날의 미국 영토에 속한 지역에서 도시 국가를 이룰 정도로 크게 번성한 단 둘뿐인 문명이다. 특히 아나사지 문명은 현대의 미국을 제외하면 앵글로아메리카 유일의 대제국이었다.
  • 아돌프 히틀러: 그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해소되지 않았다.
  • 아카드: 아가데라고도 한다. 처음으로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아카드 왕국의 수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요 도시 중 소재가 파악되지 못한 유일한 도시다. 역시 발견된다면 초기 메소포타미아 통일제국의 역사를 다시 써야할 발견이 될 것이다.
  • 안네 프랑크 가족을 밀고한 자: 이웃들도 그 행방을 몰랐을 정도로 감쪽같이 숨는 데 성공했던 안네 프랑크의 가족들이 발각된 원인에 대해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밀고에 의해 발각되었을 가능성으로는 안네 가족들을 돕던 미프 기스의 친척이 안네 일가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고 밀고했다는 설과[174] 똑같은 동기로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의 부하 직원이 밀고했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밀고가 아니라, 우연히 나치 독일군의 수색에 걸려들었다는 설도 있다.
  • 안티키테라 기계: 서기 1세기 무렵에 제작된 세계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로, 인류 역사에서 1642년 파스칼이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하면서 등장했다고 알려진 톱니바퀴를 이용한 작동 원리를 적용시킨 물건이라서 고고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온갖 도시 전설과 조작 의혹이 짙은 오파츠 중에서 단 세 개뿐인 진품들 중 하나이다.[175] 다만, 현대의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에 자연과학이나 공학 부문에서 비약적인 성과가 자주 나왔다는 점을 들어서[176] 안티키테라 기계도 그런 성과들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진짜 미스터리한 건, 이걸 누가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다. 당대의 네임드 학자들이 이 기계의 발명자라고 주장되긴 했으나, 모조리 부정당하여서 이 기계의 실제 발명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 앰브로스 비어스: 악마의 사전으로 유명한 작가로, 1913년에 멕시코 혁명의 영웅인 판초 비야를 만나러 가다가 영영 실종되어 버렸다. 판초 비야에 의해 총살되었다는 주장은 그가 판초의 지지자였다는 점에서 부정되고 있으며, 아마도 판초가 이끄는 혁명군을 따라가다가 전사했거나, 멕시코로 건너가기 전에 앓고있던 천식의 악화로 인해 사망했다는 추정이 있으나, 현재 그의 최후 행적을 알 수 있는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아서, 끝내 그의 행방은 미스터리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하는 에토레 마요라나 실종 사건 및 애거서 크리스티 실종 사건과 함께 20세기 초반에 발생한 실종 사건 중에서는 가장 사회적 파장이 컸다.
  • 어밀리아 에어하트 실종 사건: 미국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 중 하나로, 가장 널리 알려진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해 사망했다는 설 이외에도 무인도인 가드너 섬에 조난당했다 사망했다는 설, 심지어 일본군에 붙잡혀 처형당했다는 설도 있다.
  • 에드가 앨런 포우의 최후: 죽기 직전의 행적이 미상이며 목격담은 있으나 확실치 않다.
  • 요가: 그 기원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진 바 없다. 원시 브라만교에는 없었다가 나중에 브라만교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아리아인의 민족종교에서 범인도적 종교인 힌두교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 원조비사의 저자: 칭기즈 칸몽골을 통일하는 과정을 다룬, 몽골 제국의 초기 역사를 다룬 원조비사유목민 스스로가 남긴 역사서로,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비사에는 칭기즈 칸의 인간적인 면모나[186], 정사에서 언급되지 않은 여러 가지 일화 등이 기록되었으므로, 저자는 오래 전부터 칭기즈 칸을 지켜본 최측근인 듯하다. 하지만, 원조비사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몇몇 사람이 후보에 오르고는 있으나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저자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기 생애: 영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윌리엄 셰익스피어 본인의 생애가 많이 알려진 게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게, 비록 당대의 중산층 자제들이 주로 다니던 그래머 스쿨을 다니다가 중퇴했을만큼 어느 정도 교육을 받기는 했으나, 몰락한 지역 유지의 아들에 불과한 일개 평민 출신자의 생애가 상세히 알려져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건 그가 극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의 일이었다. 현대에도 연예인이 유명세를 얻고 나서야, 그의 이전 행적이 언론이나 팬들에 의해 조명되기 시작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187]. 하지만, 이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누군가의 필명이라는 헛소문까지 돌 정도로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후대의 역사학자들에게 아쉬움을 주고 있다.
  • - 역성혁명 이전의 주나라의 역사와 기원: 주나라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현대 한족의 조상인 화하족의 기원을 밝히는 문제와도 엮여있는 떡밥이며, 나아가서 중국티베트어족의 언중들이 고대에 어떻게 퍼져나갔는지에 대한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은주 역성혁명이 있던 시기의 주나라상나라의 구성 민족은 모두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민족이었음은 틀림없지만, 주나라가 처음부터 화하족의 한 부류였는지, 아니면 본래 이민족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불분명하며[188], 다만 이들이 원래는 등의 가축을 길러서 살아가는 목축민들[189]이었다는 점에서 일단 당대에는 상나라와 얼마나 가까운 민족이었느냐와는 별개로 거의 이민족 취급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190].
  • 인더스 문명: 이 문명을 세운 이들이 누구인지도, 이들의 언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불분명하다.
  • 일본 최초의 국가인 야마토의 위치: 어느 나라건 간에 자국 최초의 국가의 영토나 수도의 위치에 대해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이게 크게 다루어지느냐 하면, 야마토가 위치한 곳을 추적해 봄으로서 일본인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민족인 야마토 민족의 기원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인류학적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기원에 대한 떡밥이 주류 역사학계와 비교언어학계의 오랜 떡밥인 만큼, 야마토의 위치가 어디였느냐가 밝혀짐에 따라 이러한 많은 의문들이 대거 해소되리라고 보고 있다. 대체로 큐슈에 있었다는 설과 지금의 교토 근교였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 전갈왕: 영화 스콜피온 킹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고왕국 시대 이전의 상·하 이집트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왕이다. 그러나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현존하는 기록에서도 그저 전갈 기호로만 묘사되고 있다.[191]
  • 정화의 대원정: 관련 기록이 상당수 소실되면서 정화가 이끈 명나라의 대함대가 어디어디에 도달했는지가 불분명해졌다. 호주나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설도 있지만,[192] 우선 명나라의 함대가 동아프리카까지 도달한 것은 입증되었다.
  •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에게 배후가 있다는 주장이 나와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실제로 오즈월드 본인도 자기는 음모의 희생자라고 주장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자세한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오즈월드 마저 잭 루비의 손에 암살당하여 모든 것이 의혹 수준에 그치게 되었다. 이런 의혹과 관련하여, 잭 루비의 오즈월드 암살 역시 누군가가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
  • 중세 이전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역사: 동시대의 이집트이집트 상형문자와 여기서 파생된 신관 문자 및 민중 문자를 개발하여 대대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기록이 많이 남아서 그 역사를 소상히 알 수 있는 데 반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역사는 자체 문자가 없어서 알려진 바가 많이 없다. 심지어는 13세기까지 존재한 와가두 제국[195]의 역사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고, 고대 이집트 문명의 바로 밑에 위치해 있던 누비아 문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부분이 많으며, 짐바브웨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기도 한 짐바브웨 신전 또한 토착민 문명이 세웠다는 것 말고는 관련 정보가 하나도 알려진 게 없다[196]. 여기에 더해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또 있는데, 바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민족들의 대부분의 조상격인 반투족들이 어떻게 발전한 농업 기술을 보유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동아프리카남아프리카까지 도달했을 때, 이들의 숫자가 기본이 수천 명은 된 것으로 보이고 목축만으로 부양하기 힘든 이 정도의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수준 높은 농업 기술이 발달하였다고 전해지나, 이런 기술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논란이 많다. 사막화되기 이전의 사하라 지역도 농사가 불가능한 사바나 지역이었는데 발달된 농업 기술을 얻게 된 경위로, 학자들은 어떻게든 스스로 농업 기술을 얻었다는 설과 동쪽의 이집트인들이랑 접촉해서 농업 기술을 배워갔다는 설이 있다.[197]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 아프리카는 아직도 미지의 대륙이라고 할 수 있다.
  • 진 Z. 한나한 - 말레이시아의 공산당 투쟁을 쓴 작가지만 본명 등 여러 가지 신원사항이 불명이다. 그의 저작들이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기밀문서들을 토대로 했으므로 아시아 문화에 정통한 CIA의 협력자라고 추정할 따름이다.
  • 짐새: 사서 기록만 보면 과거에 실존했던 동물이라는 것을 의심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사람을 끔살시킬 맹독을 깃털에 품고 있는 새라는 게 현대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어려운 터라 실존 여부, 실존했다면 정말 사람을 죽일 만큼 강한 성이 있었는지, 그리고 실존했다면 왜 사라졌는지 등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깃털 등에 독을 지닌 조류가 발견됨으로써 짐새의 실존 여부에 신빙성이 생기고 있다. 과거 중국에서는 짐새가 나오면 산에 불을 질렀다고 하니 멸종했을 수도 있다.
  • 차이코프스키의 사인: 흔히 차이코프스키는 콜레라 감염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작 당대의 관습대로 그의 시신에 입을 맞추는 의식을 했던 장례식의 조문객들이 콜레라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점으로 보아 사실이 아니라고 추정된다. 이에 대해서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다는 점을 근거로, 당시의 호모포비아적인 분위기에 따라 독살당했거나, 음독 자살을 강요받는 형식으로 타살당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 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없다. 역사학자들도 독극물에 의한 사망을 유력한 사인으로 보지만, 누가 무슨 이유로 그랬냐는 논란이 있으며, 심지어 진짜로 독살당한 게 맞는 가하는 논란까지 있다.[199]
  • 찬드라 보스: 그의 죽음에 관한 부분이 미스터리에 싸여있다. 타이완 근교의 상공에서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소련이 납치해서 굴라그에 수감했다는 설 또한 심도 있게 고려된다.
  • 철가면: 17세기 프랑스의 정체불명의 재소자로, 볼테르는 그가 루이 14세쌍둥이 형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상당히 유력한 가설이 제기되었는데, 이 사람의 정체는 외스타슈 도제라는 왕실 주치의라는 것이다.[200]
  • 출애굽기: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이야기 자체는 역사적인 실존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고고학적으로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갑작스레 유·이민들의 이주가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가 있었음이 확인되어 적어도 출애굽기의 성립에 영향을 준 어떤 사건이 있었음은 확인되고 있다.
  • 츠지 마사노부의 마지막 행적: 1961년 4월 4일에 갑작스럽게 호치민을 만난다면서 동남아로 떠나버렸고 이후 라오스 북부 고원에서 불교 승려로 변장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알아낼 수가 없어 마지막 최후에 대해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201]
  • 쿼티개발 계기: 빠른 속도로 치다보니 기계가 걸려서 개발했다는 설이 정설이었는데 최근 들어 이설에 대한 반박들이 나왔다. 오늘날에 가장 많이 쓰이는 영문 자판 배열인데도 아직 이 자판 배열의 정확한 기원은 불확실하다.
  • 타르신 신전: 달리 타르시엔 신전(It-Tempji ta' Ħal Tarxien)이라고도 불리는, 몰타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유적지로,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몰타의 거석 신전의 일부다. 문제는 이 유적의 건립 시기가 기원전 3250년경에서 기원전 2800년경 정도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유럽에는 크레타미노아 문명 말고는 다른 문명이 없었기에 이 신전을 건립한 이들이 누구인지가 밝혀지지 않았다[204]. 더욱이 타르신 신전을 세운 이들이 무슨 신을 믿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신전 내부에는 제단(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존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종교적 건축물임을 알 수 있었을 뿐이지, 이곳에서 지냈으리라고 보여지는 종교 의식과 관련된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고, 신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도 존재하지 않아서 의문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 타르테소스: 테오티우아칸, 티와나쿠, 나스카 문명과 함께 고고학자들을 하악거리게 하는 고대 문명인데, 문제는 타르테소스 문명과 관련된 것들이 전부 수수께끼에 싸여있다는 점이다. 타르테소스인들이 기록한 문자가 적힌 글이 발견되기는 했으나 전혀 해독되지 않았고 지중해의 고대 문명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부유했던 타르테소스의 수도의 위치도 불명이다. 일단 이 문명을 세운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민이라고 추정된다[205].
  • 토슈사이 샤라쿠(東洲齋 寫樂): 일본의 천재적 풍속 화가로 1794년에 갑자기 등장하여 불과 10개월 동안 작품 145점을 남기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때 샤라쿠의 정체가 조선의 화가 김홍도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으나, 샤라쿠가 활동했던 1794~1795년에 김홍도는 조선에 있었음이 공식 기록에서 확인되었다.[209]
  • 티니스: 이집트 초기왕조의 수도로서 도시의 존재 자체는 고대 기록에서 검증이 되지만 아직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전갈왕을 비롯하여 수수께기 투성인 이집트 초기왕조의 의문을 풀 열쇠로 추정되고 있기에 수많은 학자들이 티니스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필트다운 인의 위조범: 화석은 위조된 것으로 판정되었지만, 위조범이 누구인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위조 용의자로 거론되는 인물들 가운데에는 추리 작가 아서 코난 도일, 화석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인 테아르 드 샤르뎅도 있다.
  • 피리 제독의 지도: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해군 군인이자, 지도 제작자였던 피리 레이스가 만든 지도들은 당대의 다른 지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정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유사역사학자들이나 초고대문명설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남극 대륙이 그려진 지도를 운운하는 건 순전한 낭설에 불과하지만, 당시만 해도 영국이 찻주전자 비스무리한 모양으로 그려진다던가, 한반도가 섬으로 오인되는 등, 정밀도가 개판이던 시기에 어떻게 고도의 정밀함을 자랑하는 지도를 그렸는지가 수수께끼.
  • 하나라: 실존성이 분명히 입증된 상나라와는 달리 하나라갑골문에서도 언급되지 않아서[210] 그 실체가 오리무중이다. 다만 전설상의 나라라고 보기에는 하나라가 실존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상나라 이하의 역사서에서 꾸준히 등장하므로 실존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211] 실제로 상나라와는 별개의 문화권에 속하는 유물이 발견된 적이 있다.[212] 같은 사례로 요 임금순 임금의 실존 여부 문제가 있다.
  • 하시마 섬: 한국사와의 연관도 깊지만, 이 섬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사람들 중에는 중국인들도 많이 있었던 데다, 결정적으로 하시마 섬 자체가 한국령이 아닌 일본 영토이므로, 세계사 부분에서 다룬다. 일단,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는 일본의 주장대로 강제적인 노역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지만,[213] 전쟁 발발 이후에는 다들 아는 대로 헬게이트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하시마 섬의 대부분이 일본 정부에 의해 관광객의 접근이 금지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세한 진상을 알기 어렵다[214].
  • 하와라의 미궁: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기록된 이집트의 거대한 미궁. 헤로도투스뿐만 아니라 스트라보등도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과연 실존하는 유적인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논란 중이다. 미궁이 실존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집트 하와라 지역을 유력한 장소로 본다. 지표 투과 레이더 조사로 유적이 있을 만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까지 찾아냈지만 이집트 정부가 조사를 불허하여지금까지도 고고학적 조사가 없었던 탓에 실존여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 하자르족: 중세기에 유대교를 국교로 삼았던 유일한 민족으로, 이들의 기원이 어떻게 되는지는 물론,[215] 이들이 무엇을 계기로 유대교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문화적, 종교적 헤게모니를 유대인과 동화시켰는지가 불분명하다. 일단 이들이 튀르크 계통이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216]
  • 한복 입은 남자: 조선과 유럽의 교류가 없던 시절이었던 1617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인데, 루벤스는 어떻게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림의 제목은 무엇인지, 모델인 조선인이 어떻게 벨기에까지 가게 되었는지, 심지어는 이 그림의 주인공이 조선인이 맞는지 등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2018년에 17세기 당시에 중국 상인이 실제로 네덜란드에 다녀갔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고, 뒤이어 진행된 후속 연구에서 이 사람이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해럴드 홀트 실종 사건: 위의 마이클 록펠러 실종 사건 및 애거서 크리스티 실종 사건과 함께 20세기를 떠들썩하게 한 실종 사건으로, 호주의 수상이었던 해럴드 홀트가 1967년에 현직 수상 신분으로 지인들과 함께 휴가를 즐기던 중에 실종되어 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당시 홀트 수상은 경호원들도 뿌리치고 혼자 바다로 헤엄쳐 갔는데, 그 뒤로 그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고, 호주 해군과 경찰의 수색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헤엄치던 도중에 파도에 쓸려서 익사했다는 설과, 그가 유례없는 친중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사실 해럴드 홀트는 중국 측에 포섭된 스파이이며, 당시에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그가 사고를 가장하여 미리 약속된 지점까지 헤엄쳐서 중국 스파이와 접선한 뒤에 그대로 중국으로 망명했다는 설도 있으나,[217] 유력한 가설은 없는 상태이다. 일단 호주 정부는 공식적으로, 그가 수영하던 도중에 사고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 흉노: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중국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유목 민족. 지속적인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흉노 문화의 상세한 모습이 밝혀지고 있으나, 아직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튀르크계라는 설과 몽골계라는 설, 인도 유럽어족계 종족이라는 설이 난무하고 있다.[221] 위의 훈족과의 관계도 불분명하다.
  • 힌두교의 성립 과정: 브라만교에서 힌두교가 파생되어 나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 성립 과정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다. 구체적으로는 리그베다와 같은 베다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신들이 어찌하여 비슈누, 시바와 같은 신들보다 격이 떨어지게 되었는지, 이들 신들에 대한 신앙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가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비슈누나 시바 등의 신들의 기원을 인도 유럽어족의 공통 신화에서 찾는 학자도 있지만, 그런다기에는 다른 인도 유럽어족 계열의 신화인 그리스 로마·신화나, 슬라브 신화, 북유럽 신화의 신들과 이들이 대응되지가 않는다[222]. 오히려 인도 유럽어족 신화의 신들과 가까운 신은 아그니, 바루나 등과 같은 베다 신화의 신들이다.[223] 다만, 당시 인도에서 종교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던 불교가 힌두교한테 그 지위를 넘겨주게 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니다.[224] 위에서 언급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성립 과정에 대한 논의와 함께 힌두교의 성립 과정을 밝혀내는 과정은 인도 유럽어족의 원시 공통 조어를 재구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이 원시인구어를 사용했던 아리아 민족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225]

4. 다른 문명초고대문명설 관련 정보

실존하지 않는 것에는 ※ 표시. 단순 오해나 위조 또는 조작일 경우 취소선.

  • 로스트 테크놀러지
    • 그리스의 불: 정확한 제조법과 배합법이 실전되었다. 석유 화합물을 쓰지 않았나 하는 의견이 통설.
    • 비거: 설계도가 전해지지 않아 추측만 할 뿐이다.
    • 사약: 정확한 제조법과 배합법에 대해 다양한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 아르키메데스의 거울: Mythbusters 등은 이것이 기록에 나온 것만큼 그리 엄청난 것은 아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내놓았다.
  • 문자 체계
    • 가림토: 유사 역사학적 위조품으로 판명됨.
    • 다이튼 바위(Dighton Rock): 미국 매사추세츠 소재. 각인된 글자들은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못했다.
    • 데이브 스키에(Dave Skye): 한자와 유사하지만 훨씬 복잡한 형태의 정체불명의 문자들을 쉬지 않고 빼곡하게 적어내려가는 흑인 남성으로, 이 사람이 적어놓은 문자 체계의 정체와 그 의미는 본인을 포함하여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본인에 따르면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사건 당시를 기점으로 하여 갑자기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분노 내지 간절한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관련 영상
    • 로혼치 사본: 중세 시대의 교양 종교 서적이라고 추정되지만, 이 문서를 작성하는 데 쓰인 문자와 언어가 해독되지 않았다.
    • 롱고롱고: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언어인 라파누이어를 기록할 때 사용한 문자이지만, 남아있는 텍스트가 별로 많지 않아서 해독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는 이스터 섬에 유럽인들이 도래했을 때, 그들이 문자를 사용한 것을 보고 원주민들이 모방해서 만든 글자라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 선문자 A: 고대 미노아 문명이 사용하던 문자 체계.
    • 보이니치 문서: 2017년 현재 해독이 완료되었다고는 하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해독이 불완전한 것으로 보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해독 방식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다.
    • 빈카 기호(Vinča symbols): 루마니아 지역에서 발굴되는 고대의 미스터리한 픽토그램으로, 일례로 타르타리아 판(Tărtăria tablets)의 경우 그 내용이 해독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싱가포르의 돌
    • 파에스토스 원반
    • 인더스 문자: 인더스 문명때의 유적지인 모헨조다로에서 도장, 인장 형태로 많은 문자들이 발견되었지만, 인장이다보니 같은 문자로 추측되는 계열 내에서도 형태 변형이 굉장히 다양하고 글 자체가 짧아, 이것이 대체 무엇을 뜻한 글자이며 표음 문자인지 표의 문자인지도 아직 알 수 없는 상황. 산스크리트어와의 연관성도 제시되지만 실질적 연관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며, 해독된 부분이 전혀 없다.
  • 발자국 유물: 아직까지 어떠한 "인간 발자국" 제보 사례도 진품으로 판명된 바가 없다.
  • 비문명 지역: 아직도 문명화의 수준이 낮은 지역들을 말하며, 여기에는 외부인들과의 유의미한 교류가 없거나 드물었던, 이른바 미접촉 부족이 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민족 집단에 대해서는 위의 "세계사의 미스터리" 단락을 이용바람.
    • 뉴기니 섬: 인도네시아령인 이리안자야와 독립국인 파푸아뉴기니 모두, 20세기까지도 존재만 확인했을 뿐, 외부와의 그 어떤 유의미한 접촉도 없는 부족이 많이 남아있었다. 최근에 파푸아뉴기니 정부와의 접촉에 성공한 한 부족의 경우, 아버지는 돌도끼같은 조잡한 석기로 무장한 전사였는데, 그 아들은 파푸아뉴기니 공군에 입대해서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는, 보기엔 참 언밸런스해 보이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226] 다만 이제 웬만해서는 대부분의 부족들이 최소 한 번이라도 외부와의 접촉을 해본 적이 있었던 데다, 아직도 부족별로 뿔뿔이 흩어져 싸우는 통에 어지간한 부족들은 AK-47RPG까지 들고 다니는 중이다.[227] 그러니 이제는 아예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지역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 동남아시아의 정글 지대: 비록 이제는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부족들이 외부와의 접촉에 성공하여 더 이상 비문명 지역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졌지만, 현재도 태평양 전쟁 시기나, 식민지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때문에, 혹여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외부 문명과 '접촉'만 했을 뿐, 문명의 이기 자체는 거부하는 부족들도 꽤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쿠부족들로,[228] 2000년대에 디스커버리 채널 측에서 도시로 이주해 살던 쿠부족 남성 한명을 통해 여자와 아이들의 모습을 촬영하지 않는 조건으로[229] 겨우 부족민들의 생활상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 거의 헐벗고 다니면서 화전 농업을 통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자기들 영토에서 불법적으로 벌목을 하던 외지인 벌목꾼들에게 쿠부족의 장로가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이를 돈이 아닌 옷으로 지불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230] 이런 식으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부족들이 동남아시아 정글 지대에 아직도 수백여 부족은 족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231]
    • 아마조니아 열대 우림: 아마존의 험악한 환경으로 인해 20세기에나 그 존재가 알려진 부족도 있고, 21세기인 현재에 이르러서야 존재가 드러난 부족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1950년대에 그 존재가 처음 알려진 와오라니족인데[232][233], 이들과 처음 조우하는데 성공한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들과 우호적인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들을 공포스런 존재로 여긴 와오라니족들에게 살해당한 적도 있을 정도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극심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자기들의 영토가 속한 에콰도르의 정부와 접촉하는데 성공한 뒤로, 외부인과 어느 정도의 교류는 하는 수준이 되었지만[234], 여전히 이들 못지않게 현대 문명의 이기를 접하지 못한 아마조니아 원주민들은 상당히 많다고 추정된다.
    •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현지 원주민들의 상당수가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이다. 일단 이 지역 전체가 인도령이기는 하나, 형질인류학적으로나, 문화인류학적으로나 인도 본토의 문화권과는 관련이 없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도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더 비슷하다.
      •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 일명 지구 최후의 비문명화 지역. 이 섬의 원주민들이 도대체 누구이며 몇 명이고 어떤 수준의 문명을 일구었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235]. 이들이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극히 꺼리고 있기 때문에 학자들뿐만 아니라 인도 정부도 이들과의 접촉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따라서 향후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이들의 생활사는 계속 의문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의 산악 지대: 2001년의 대 테러 전쟁 도중에 있었던 실례로, 20세기 초에 영국군과의 조우를 겪은 후에 단 한 차례도 외부와의 교류를 하지 않던 마을이 있었는데, 당연히 탈레반도 이곳의 존재를 몰라서 이 마을의 사람들도 '탈레반? 그거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하는 지경이었고, 전기 제품도 차량도 없이 전근대 시대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마을에 2001년에 미군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서 탈레반을 몰아낸 뒤에 이곳을 발견하였을 때, 하늘에서 날아오는 헬리콥터를 보고 기겁을 하여 19세기에나 쓰던 구식 총으로 대응 사격을 하기도 했고, 겨우겨우 이들에게 적의가 없음을 보이면서 접촉을 하는 데 성공한 미군들이 이들에게 통조림과 같은 유용한 것을 건네주자, 이를 신기하게 여기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지대에는 이런 산악 지대가 많아서 아직도 외부와의 접촉이 뜸한 지역이 상당히 많다.[236]
  • 오파츠, 유물, 유적들
    • 님루드 렌즈(Nimrud lens): 앗시리아 유적지에서 발굴된 볼록렌즈. 다만 학계에서는 장식 중 하나로 보고 있고 렌즈 효과는 우연의 산물로 보고 있다. 영문위키 참조.
    • 다뉴세문경: 거울 뒷면의 원형 무늬가 0.3mm마다 하나씩 새겨져 있는데, 현재까지도 그 제작기술을 추정만 할 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 도체스터의 바위 속 유물(Dorchester pot)(#)
    • 런던 해머: 망치가 어쩌다 지층 틈에 떨어진 것을 이후에 발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메인 페니: 미국메인 주 해안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15세기경의 노르웨이 동전 유물인데, 이것이 왜 이곳에서 대량으로 발견됐는지가 미스터리다[237]. 일단 이 유물은 날조된 것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 바이공 파이프(Baigong pipe): 백공산 철관이라고도 하며 칭하이성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의 주도인 더링하의 백공산 근처에서 발견된 철관 같은 특징의 물건들이다.
    • 볼프세크 철: 한때 오파츠의 하나로 취급받았으나 현대에는 설득력을 잃은 상태.
    • 보로부두르: 건설 시기와 그 의도, 건설자 등이 모두 불명인 수수께끼의 유적으로,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유적들 중 하나이다.
    • 사크사이와만(Saksaywaman): 페루 쿠스코 소재. 잉카 문명 당시 건설된 거석 유적. 거대한 돌로 쌓은 돌벽이 바늘 하나 들어갈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시공으로 세워져 있어서 이슈가 되고 있다.
    • 세이킬로스의 비문: 현존하는 악보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완성형 악보. 비석은 세이킬로스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어떤 이유로 만들었고 왜 그곳에 묻혀 있었는지 정체불명.
    • 아비도스 사원의 헬리콥터: 고대 이집트 사원의 상형 문자 중에 헬리콥터를 연상시키는 문자가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으나 이후 연구 결과 기존의 상형 문자 위에 새로운 상형 문자를 새기며 겹쳐진 모양으로 인해 생긴 오해로 밝혀졌다.
    • 아이우드의 쐐기(wedge of Aiud): 루마니아에서 발견된 알루미늄 쐐기. 그러나 11,000년 전의 마스토돈 유골과 함께 출토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 아이제르너 만(Eiserne Mann)
    • 엘타닌 안테나(Eltanin Antenna): 해면의 일종을 잘못 본 것으로 확인되었다.
    • 요나구니 수중 유적: 이쪽은 이제 인류 문명과는 관련이 없다고 보는 쪽이 대세다. 즉, 학계의 공식 입장은 이 구조물이 자연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이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연적으로 형성됐는지를 규명하는 게 또 문제다.
    • 위니페소키 호수의 유물(Lake Winnipesaukee mystery stone)
    • 코스타리카의 돌 구체(#)
    • 크리스탈 해골: 근현대의 조각품으로 확인되었다.
    • 클럭스도르프 구체(Klerksdorp sphere): 분석 결과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 킴바야 유물(Quimbaya artifact): 고대에 발굴된 현대식 제트 비행기의 유물이라고 인기를 끌었지만, 실제로는 남미의 메기의 일종인 플레코를 본따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 타셰바의 성터: 1940년에 오늘날의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인 하카시야 공화국의 수도인 아바칸 인근의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후한 시대[238]중국 양식의 성터인데, 이 성을 건설한 사람에 대해 논란이 많다. 일각에서는 이 성터의 축조 시기가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1세기 경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그 유명한 전한의 비운의 명장인 이릉[239]이나 그 후손이 세운 것이라고 추정했으나, 분명한 증거는 없다. 다만, 주류 고고학계와 역사학계는 이 유적의 건설자가 꼭 이릉이 아니더라도, 한나라에서 흉노로 귀순한 한족 출신 유력자였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240].
    • 피라미드: 음모론자들 사이에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그 주변 피라미드들의 배치가 신기할 정도로 오리온자리의 허리띠 부분[241]과 일치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계인이나 초고대문명의 작품이라고 떠드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이집트인들이 고대로부터 기하학천문학에 빠삭한 이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242]. 이것보다 진짜로 고고학자들의 의문을 자아내는 부분은 바로 피라미드의 건축 방식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흙으로 비탈길을 만들어서 건축에 필요한 석재를 쌓아올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하면 비탈길이 피라미드보다도 더 거대해져 버린다는 점에서 주류 학계에서는 부정되고 있다[243]. 그리고 피라미드 건설에 보통 2, 30년은 기본으로 잡았는데, 학자들이 추정되는 피라미드를 이루는 돌의 총 개수를 토대로 건축 시간을 계산했는데, 6분마다 하나씩 올리는 무식하게 빠른 속도여야 저 정도의 건설 기간이 맞춰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겉면만 큼지막한 것으로 쌓아올리고 내부는 잡석으로 처리했다는 추론을 해보기도 했으나, 당대 이집트인의 세계관 상으로 그런 건축 방식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라서 부정되었다. 결국 현재까지도 피라미드의 건축 방식은 큰 의문점으로 남았다[244].
      • 쿠푸왕의 피라미드: 음모론스러운 부분을 모조리 무시하고 보면,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다른 피라미드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간직한 신기한 유적이다. 일단 내부 구조부터 이상한 점이 있는 것이 용도 불명의 방이 여럿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현재 주류 학계에서는 이 방들은 기술력의 한계로 인한 극심한 부실공사로 인해 생긴 틈에다가 새로운 방을 조성하는 식으로 땜빵하느라 생긴 결과물들이라고 보고 있는데[245], 문제는 이 방들 중에서 그 어디에서도 쿠푸 왕 본인의 미라는 발견된 적이 없으며 이것이 도굴된 흔적도, 도굴 우려때문에 이장한 흔적도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246]. 그래서 전술한 용도 불명의 방들 중 어딘가에 실제 미라가 안치되었다는 설과,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실제로는 무덤 역할이 아니었다는 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247]. 사실 이 피라미드 말고도 쿠푸 왕의 치세 전후에 지어진 피라미드 역시 같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피라미드들도 미라나 유물이 안치되어 있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 지상화(Geoglyph) 및 언덕 그림(Hill figure)
    • 나스카 지상화
    • 루드 맨(Rude man): 어떤 인물을 묘사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한때, 선사 시대나, 그 이후 고대에서 중세 초의 켈트족들이 그린 것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이 17세기 이후에나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가설이 부정되었고, 현재는 17세기에 누군가가 알 수 없는 목적으로 그렸다는 것이 정설이다[248].
    • 블라이드 음각그림(Blythe Intaglios):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비행기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으며, 종교적인 의미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사하마 라인(Sajama Lines): 볼리비아에 위치한 거대한 그림.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직선이 수천~수만 개 수놓여 있는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 아타카마 거인
    • 윌밍턴의 롱맨(Long man of Wilmington)(#)
    • 파라카스의 촛대(Paracas Candelabra): 비탈에 그려진 거대한 촛대 그림. 고대 파라카스 문명이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어떤 용도나 목적으로 그렸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뱃사람들을 위해 그려놓은 표시라는 설이 있긴 하다.
  • 환상 유적(環狀遺跡) 또는 헨지(Henge)
    • 노울턴 서클(Knowlton circles)
    • 롱 메그와 딸들(Long Meg and her daughters)
    • 브로드가의 링(Ring of Brodgar): 유네스코 세계유산 No.514.
    • 샤프 애비뉴(Shap avenue)
    • 손보로 헨지(Thornborough henges)
    • 스탠턴 드루 석환(Stanton Drew stone circle)
    • 스톤헨지, 에이브버리 및 관련 유적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No.373.
      • 더링턴 월(Durrington walls)
      • 스톤헨지(Stonehenge)
      • 에이브버리(Avebury)

5. 정보기관·조직·비밀결사·음모론 관련 정보

  • 11B-X-1371: 무언가 알 수 없는 사람이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알 수 없는 배경음악(이라고 하기에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이 흐르는 내용의 유튜브 동영상. 2016년 초, 이 동영상의 제작자라 주장한 사람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진위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사실상 음모론과는 관련이 없다고 보아진다.
  • 9.11 테러/도시전설
  • 군산복합체: 전 세계의 전쟁과 분쟁들은 군산 복합체의 사주를 받아 벌어지고 있다는 음모론.
  • 고스트넷: 전 세계 각국의 주요 기밀들을 해킹하고 있다는 대규모의 사이버 해킹 활동이다. 중국이 가장 유력한 국가로 거론 중이나 중국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 나치
  • 난수방송: 사실 방송 주체와 그 목적 등은 이미 알려진 상태인 만큼 미스터리까지는 아니다. 다만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와 암호화된 내용, 그리고 정보 기관과 관련된 각종 미스터리와 음모론 때문에 흔히 주목받는다.
  • 대역: 각 국가의 중요 인물들이 사실은 대역일 뿐이라는 음모론.
  • 딥웹: 이야기에 따르면 온갖 불법과 반인륜, 부도덕의 엑기스가 모여 있다는 인터넷 세계의 지하로 극도의 익명성으로 인해 그 정보가 표면으로 올라오는 순간 경찰서 정모를 할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진 그 곳이다. 여하튼 각종 소문이 무성한 곳이며 한국에는 소라넷이나 히든 위키 등이 딥웹의 사례로 꼽힌다.
  • 로스차일드
  • 마인드 컨트롤
    • MK 울트라: 미국 정부가 실제로 연구한 것을 확인하고 인정했다.
  • 보헤미안 그로브: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넓고 우거진 숲으로, 이 속에서 정기적으로 전 세계 최상위 금수저들끼리의 비밀 친목 모임이 열린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올빼미 석상이 랜드마크. 알렉스 존스(A.Jones)[250] 등의 음모론자들은 이곳에서 밤마다 세계 지도층들이 비밀스러운 인신공양 의식 및 사탄 숭배 의식을 거행한다고 떠들기도 한다. 2000년에 보헤미안 그로브에 참여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한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적이 있었는데, 자신들은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가끔씩 모이는 친목회라고 증언한 적이 있다[251].
  • 비밀결사: 비밀결사라고 다 적지 말고, 그 단체에 관해 어떤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지 구체적으로 지목해서 기재하자.
  • 사이언톨로지
    • 미셸 미스캐비지(Michele "Shelly" Miscavige): 사이언톨로지 교단의 리더 데이비드 미스캐비지의 아내. 2007년 8월 이후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신변이 묘연한데, 일각에서는 종교 활동에 지친 그녀가 더 이상 대외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도 하고, 또 일부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체계적으로 숨겨지고 있다고도 한다. 사이언톨로지 측의 공식 입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며 비밀스럽게 교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대중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 중이다.
  • 사토시 나카모토: 가상 화폐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정체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일본인, 혹은 일본계라는 확증도 없는 실정.
  • 소련과 관련된 음모론
  • 시온 성모 마리아 교회 : 에티오피아 악숨 소재의 교회로서 그 유명한 성궤를 보관하고 있다고 알려진 장소이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은 이 곳에 진짜 성궤가 보관되어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관련 행사까지 벌이고 있지만, 그 성궤가 외부에 일절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검증이 되지 않았다. 교회 측에서는 정말 자신들이 성궤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성궤 보존을 위한 직책까지 두고 있고, 성궤를 보관하고 있다는 전승 자체는 무척 오래되었기 때문에 대체 이 교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 아폴로 계획 음모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NASA는 인류를 에 보낸 적이 없으며, 달 착륙 자체는 냉전 기간 중에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며[255], 다른 하나는 실제로 달에 간 것은 맞는데, 그곳에서 외계인을 목격했고 이를 NASA가 은폐한다는 것이다. 물론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둘 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낭설이며 아폴로 계획 당시의 착륙의 흔적들을 지금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256]. 외계인이 살고있으며, NASA가 이를 은폐한다는 주장도 결국 그 증거라고 주장되는 사진들이 하나같이 불분명하게 찍힌 형상을 증거라고 우기는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이 음모론도 허점이 굉장히 많다[257].
  • 악마 숭배자: 광란의 난교 파티, 살인, 마약, 아동 유괴 등의 흉흉한 소문들이 따라다니지만, 그 어떤 것도 실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일부는 일루미나티와도 접점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피자게이트(Pizzagate): 힐러리 클린턴이 워싱턴의 피자 레스토랑 지하에서 비밀스러운 아동 성범죄와 아동 노예, 인신공양을 밥 먹듯 해 왔다는 소문으로, 위에서도 소개했던 음모론자 알렉스 존스가 퍼뜨렸다. 이는 대선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조작한 전형적인 가짜뉴스로 판명되었으며, 그 세부 묘사는 악마 숭배자 소문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분석들이 있다. 즉 미국인들을 자극시키기 위해 전통적으로 쓰이는 떡밥들[258]이 정치적 목적을 띠고 의도적으로 꾸며졌다는 얘기.(#1, #2)
  • 암호
  • 유대인
    • 시온 의정서
    • 유대인 배후자본설
    • 잃어버린 10지파(Ten Lost Tribes): 고대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당시 북왕국으로 이탈한 10지파. 북왕국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보다 200여년 앞서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멸망했고, 북왕국의 10지파는 아시리아인에 동화되거나 세계 각지로 흩어졌는데, 몇몇 민족, 부족들은 자신들이 이때 흩어진 10지파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259]
  • 음모론 필수요소
  • 인터넷 3대 미스터리[260]
  • 자작극
  • 전파납치: 애쉬타 전파납치 사건, 맥스 헤드룸 전파납치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 조지아 가이드스톤
  • 켐트레일
  • 클럽 33: 한때 디즈니랜드의 미스터리한 비밀 사교 클럽으로 알려지며 온갖 루머가 나돌았지만, 실제로는 회원제 고급 레스토랑이다[261]. 원래는 디즈니랜드의 스폰서들을 접대하기 위한 곳이었으나,[262] 현재는 일반인도 회원 가입하고 돈만 내면 얼마든지 이용해 볼 수 있다.[263] 이런 곳은 도쿄 디즈니랜드에도 있지만, 여기는 미국디즈니랜드에 비하면 서비스나 음식의 질이 낮은 편이다.
  • 토인비 타일
  • 마리아의 구원방주: 1985년에 창시된 사이비 종교로,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는 거짓말이지만, 구원방주 측에서 주장한 성모상에서 흘러내렸다는 피눈물이라고 주장한 액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진 바가 없다. 그냥 물감일 수도 있지만, 피눈물이 진짜로 피로 이루어져 있다면, 당시 신도의 살인이나 폭행, 인신 공양 등이 이루어졌을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264][265]

6. 우주, 외계인, UFO 관련 정보

  • 드로파 석(Dropa Stones): 비슷한 것으로 롤라도프 판(Lolladoff plate)이 있다.
  • 맨 인 블랙
    • 검은 헬기: 최근에 이런 헬기에 대한 매우 유력한 가설이 있는데, 바로 미공개된 미군의 스텔스 헬기라는 것이다. 현재 미군이 도입 추진 중인 헬기들 중에 검은 헬기의 목격담에서의 묘사와 일치하는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266].
  • 외계인: 세계적으로 외계인을 보았다는 목격담은 한둘이 아니고, 정부가 외계인들의 노예가 되었다느니 하는 얘기도 매우 흔하지만, 그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거진 다 특정 사건사고[270]와 관련하여 해당 국가의 군대나 첩보요원들이 뒷수습을 위해 조사하던 것이 와전된 경우거나, 돈을 노린 사기 행각의 일환 내지는 관심종자들이 관심받으려고 가짜 뉴스를 퍼뜨린 경우에 속한다[271].
    • 그레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어좁이에 대두이고 고글을 쓴 듯 큰 눈을 한 외계인인데 우주가 아닌 지하 인류의 모습과 사실 더 똑같다. 그래서 이들이 지하 인류이고, 악마를 숭배하는 파충류 외계인 즉 랩틸리언들의 수하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이 파충류 외계인들의 지시를 받아 인간을 납치하곤 한다고 한다.
    • 렙틸리언: 뱀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 외계인으로 용자리에서 왔단 설과 지옥에서 올라왔단 설이 있다. 목격담이 꽤 많고 꽤 세부적인 편. 시가형 UFO는 이들이 타고 다닌다고 한다. 성경에 묘사된 뱀 내진 옛 뱀, 용 등이 이들을 뜻한단 해석이 꽤 있는데 신의 피조물 중 가장 머리가 좋고 사악하기 때문이다. 애초 악마도 원래 신의 피조물로 출발했지만 타락했단 걸 감안하면.
    • 노르딕: 인간형 외계인으로 말 그대로 인간인데 이상한 옷을 입고 있고 북유럽 백인처럼 생겼다.[272] 물론 휴머노이드 외계인의 통칭일 뿐이고 황인처럼 생긴 부류도 있다. 항간에선 이들이 화성이나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서 왔다고 믿는다. 지구인에게는 가장 우호적이며 파충류 외계인을 싫어한다고 한다.[273] 그리고 황인을 닮은 부류들이 바로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에서 말하는 신선, 산신령 내지는 선녀들의 정체일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중국의 신선 및 선녀들의 이야기가 전형적인 외계인 목격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 시리우스족: 목격 사례는 없는 설정상(?)의 외계 종족으로 중립적이지만 평화 애호적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 플랫우즈의 몬스터
  • 유명 외계인 인물 및 생물
    • 셈야제 : 빌리 마이어가 주장했던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여성 인간형 외계인. 회의주의자들은 그가 주장하는 셈야제의 사진이 북유럽 모델 사진을 도용했다고 기정사실화했다.
    • 옴넥 오넥 : 금성에서 미국으로 내려와 가족을 꾸리며 살고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다. 이 인물의 저서가 한국에 소개된 적도 있다. 홈페이지
  • 라써타 인터뷰: 소위 말하는 랩틸리언형 외계인과의 인터뷰를 글로 옮겨적었다고 주장하는 문서. 명확한 출처나 근거가 없고 곳곳에 오류와 모순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신빙성은 없다.
  • 제9행성: 2005년[274] 이후로 천문학계에서 제기된 떡밥으로, 그 존재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다.
    • 벌컨: 수성 궤도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이 관측되면서 태양-수성 간 궤도 사이에 새로운 행성에 대한 떡밥이 돌았지만,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티케: 한동안 천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희대의 떡밥으로 오르트 구름에 위치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가설상의 행성이었다. 학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진지하게 논의된 문제였으나 2014년의 NASA의 관측 결과에 의해 티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떡밥이 분쇄되고 말았다.
  • 크롭 서클: 어떤 초자연적 존재나,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주장이 여럿 제기되지만, 그 실체는 그냥 멀쩡한 에다 그럴싸한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땅 주인의 허가를 받는 경우라면, 예술적인 목적으로 만들거나, 지역 홍보 목적, 내지는 외계인 음모론주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부러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정인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만든 것도 있다[275]. 하지만, 대부분은 외계인 음모론에 심취한 관심병 환자들이 남의 밭에 무단으로 쳐들어가서 민폐짓한 결과물이다[276]. 처음 크롭 서클의 존재가 보고되었을 때는 이름(circle)처럼 원형 몇 개가 밭에 찍혀있는 게 고작이던게, 그 이후로 온갖 기하학적 무늬들이 난무하는 형태로 된 크롭 서클들이 속속들이 목격되는 게 그 예다.
  • 파인 갭: 단, 당초 알려진 UFO 격추 시도 영상은 의도적으로 잘라내고 설정을 덧붙인 영상으로 밝혀졌다. 실제로는 얼음 덩어리와 우주선의 분사로 인한 장면으로 판명. 기지 자체는 실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취소선은 부적절하다. 파인 갭과 캐틀 뮤틸레이션을 연결하려는 설명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당 문서 참고.
  • KIC 8462852: 백조 자리 항성으로 "태비의 별"(Tabby's star)이라고도 불린다. 불규칙하게 깜박이는 감광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는 마치 그 별과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장애물에 빛이 가로막히는 것처럼 보인다. 일각에서는 외계 문명이 이 별의 주위에 거대한 다이슨 스피어 같은 구조물을 건설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는 중이나, 천문학계에서는 먼지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 ##
  • SETI
    • 와우 시그널(Wow! Signal): 1977년 오하이오 주립대의 "빅 이어"(Big Ear)가 텅 빈 우주 공간 어딘가로부터 들어온 신호를 잡아냈는데, 직접 들어보면 그냥 특색 없는 전자음처럼 들린다. 신호를 잡아낸 사람이 종이에 "Wow!"라고 적었기에 이름이 이렇게 붙게 된 것. 이 신호는 어떤 행성도 은하계도 없는 우주의 빈 공간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라서 그 출처를 도무지 특정할 수 없다고 한다. # #(영어)
    • 아레시보 메시지
  • 페리톤: 이따금씩 전파 망원경에 감지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전파로 외계인의 신호가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그 원인은 어이없게도 전자레인지로 밝혀졌다.
  • UFO: 다양하게 설명되지만 한 가지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최초 발견 이후에야 수많은 목격담이 쏟아진 것도 의문.
    • 가평 UFO
    • 광해군 시기의 UFO 소동
    • 글래스고 상공 UFO 니어미스: 2012년 12월 2일, 글래스고 공항에 접근 중이던 A320 항공기가 "Baillieston" 지역 3,500ft 상공에서 푸른빛과 노란빛의(blue and yellow) 불상의 비행체와 니어미스를 일으켰다고 의심되는 사건. BBC에도 소개되었다.(#)
    • 서울 UFO 격추미수 사건
    • 황해 허상 항적 사건
    • 로스웰 UFO 추락 사건
    • 바르지냐 UFO 사건
    • 피닉스 UFO 사건(Phoenix Light): 1997년, 미국 애리조나 주의 도시 피닉스(Phoenix) 상공에서 야간에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목격하는 가운데 다수의 발광체가 V 자 형태를 이루어 비행한 사건. 불빛들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면서 전체적으로 거의 동일한 방향과 속도로 이동했고, 이 때문에 많은 목격자들과 UFO론자들은 이것이 여러 개의 조명을 가진 하나의 비행체라고 믿었다. 문제의 발광체들은 나중에 일렬로 정렬한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회의론자들은 이것이 단순히 비행기 내지는 군에서 사용한 조명탄이라고 믿고 있다.
    • 태양 근처의 UFO들 - 가장 미스터리하고 꽤 유명한 부분으로 대부분 태양을 관측하는 위성으로부터 찍힌다. 대부분 떼거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크기도 꽤나 거대한 편이다. 2018년 9월 초쯤에 거대한 뭔가가 지나가고 9월 11일에 이상한게 찍힌 후 태양 관측소가 연쇄 폐쇄돼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것 때문이 아닐까하는 음모론도 생기는 중...

  • 남극에서 발생한 정체불명의 고에너지 우주선?
  • USO - 미확인 수중 물체(Unidentified Submerged Object)
  • 오우무아무아: 이상하게 가속해서 사실 외계에서 보낸 산물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었지만,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게 관측되어 그것 때문이라고 정설이 굳어지고 있다[277].

7. 예언 관련 정보

  • 표충비: 밀양 소재. 국난이 닥칠 때마다 땀을 흘린다고 알려져 있다.

8. 생물학 관련 정보

  • 고구마의 전파 과정: 고고학자와 식물학자들을 엿먹이는 대표적인 미스터리로, 아직까지 고구마가 어떻게 원산지인 남아메리카에서 전세계로 전래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일단 폴리네시아뉴기니고구마는 폴리네시아인들이 직접 남아메리카까지 가서 전파했다는 설이 주류 학계에서 공인받고 있지만[278], 유라시아아프리카의 경우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동시기의 다른 탐험가들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기존의 가설이 DNA 분석 결과에 따라 부정되면서 미궁에 빠졌다.
  • 고추의 전파 과정
  • 대멸종
    • K-Pg 멸종(백악기-제3기 절멸 사건): 대부분의 공룡, 익룡 등 당시 육상 생물종의 75%가, 장경룡, 암모나이트 등의 해양 생물종의 상당수가 멸종한 사건. 허나 양서류를 비롯한 민물 생태계의 피해가 미미했던 점, 악어 등의 분류군이 생존한 점 등의 의문은 아직까지 이견이 난무한다.
    • 네메시스 가설: 최근에 존재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 되고있는 가설상의 행성티케 및 가설상의 갈색 왜성네메시스와 관련이 깊은 가설로, 알려지지 않은 오르트 구름 내의 행성급 이상의 천체가 태양으로부터 1.5광년 정도 떨어진 궤도를 공전하면서 다량의 소행성들을 태양계 안쪽의 궤도로 끌어들여서 주기적인 대멸종을 야기한다는 것이 가설의 요지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천체가 존재하는지가 의문이라서, 가설 자체도 상당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279]
    • 앙코르와트의 공룡 조각: 앙코르와트 사원 벽면에 양각으로 장식된 문양 중에 공룡처럼 생긴 것이 있어서 이슈가 되었다.
    • 페름기 대멸종: 위 백악기-제2기 절멸 사건콩라인으로 만든 자연사상 최악의 대멸종이다. 일단 시베리아 트랩이라고 부르는 슈퍼화산의 분화가 원인이라는 설이 기정사실화되어 있지만, 이 멸종이 어떻게 종결되었는지는 불명이다.
  • 어드스톨(Erdstall): 독일 근방에서 다수 발견되는 미스터리한 지하 터널. 대략 중세 즈음의 인공물로 추정되나 그 용도가 불명이다. 이 동굴에는 "고블린의 감옥"이라는 이명이 붙어있는데, 일각에서는 이것이 작은 크립티드들을 붙잡아 감금하던 장소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 크립티드
    • 신비동물학
      • 기름구덩이 오징어(oil pit squid): 1996년에 미국 인디애나에서 발견된, 오징어로 의심되는 생물. 한 공장의 근로자들이 우연히 유독한 기름 웅덩이에서 발견하여 통에 담아두었으나, 본격적으로 그 정체를 확인하기 전에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증언과 언론 매체들의 보도를 통해 기록이 남아 있으나, 어떠한 객관적 증거물도 남아있지 않은 데다 1건의 목격 사례 이외에는 사실상 추가 목격 사례가 없기 때문에 조작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 우연히 평범한 오징어가 거기 빠졌다는 설, 대규모의 박테리아 군체라는 설, 지렁이의 일종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다.
      • 맨 힐 섬의 사체
      • 악어인간 제이크 (Jake the alligator man)
      • 인어
      • 장산범
      • 리자드맨[280]: 일루미니티, 외계인과 많이 엮인다.
      • 토머스 시어도어 메릴린: Thomas T. Merrylin. 런던에서 운영되는 메릴린 크립티드 박물관의 창립자로 알려져 있다. 현재 큐레이터는 C. F. 알렉스라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사실 토머스 메릴린은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며, 알렉스는 신화와 도시 전설을 소재로 하는 작가이자 조각가일 뿐이다.(#)
      • 프레스노 나이트크롤러
      • 짐새
      • 호수괴물 및 해룡(Sea serpent)[281]
      • 인간형 괴수
    • 신비식물학
  • 범고래: 수중/육상 동물을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흉포한 포식자지만 유독 인간만은 공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 52 헤르츠 고래: 일명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1989년에 소리가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미 해군의 관측기에 해당 생물체가 내는 52Hz의 주파수가 잡히고 있다.
  • 46B: 러시아보스타크 호수 탐사팀이 남극밑에 있는 호수에 문어와 비슷한 괴물을 보았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잘 알려진 크립티드.

9. 유령, 귀신, 심령현상 관련 정보

  • 검은 수도사의 집(Black Monk House): 영국 웨스트 요크셔의 폰테프랙트 마을 소재. 영국 전역에서 가장 흉악한(violent) 심령 현상이 발생하는 흉가라고 하며, 이곳의 유령은 실제로 사람을 공격한다고 한다. 주소는 30 East Dr, Pontefract WF8 2AN
  • 그림에 관련된 심령 현상
    • 고뇌에 찬 남자: 《The Anguished Man》. 일명 저주받은 그림이자 피로 그린 그림이다. 국내에는 어떤 화가가 자신의 피로 그림을 그렸다는 카더라로 잘 알려져 있다.
    • 그에게 저항하는 손: 《The Hands Resist Him》. 1972년 작. 귀신들린 그림의 대표격이며, 이미지 검색 시 상당한 불쾌감과 공포감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조심할 것. 그러나 그만큼 가장 확실하게 귀신 이야기는 뜬소문이라는 점도 밝혀져 있다. 물론 이를 알고 있다고 해서 그림을 보았을 때의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는 않지만.(그림 보기)[282]
    • 울고 있는 소년: 《The Crying Boy》. 1985년 작. 실은 그림 소재가 불에 잘 타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화재의 원인 대부분 피해자 본인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또한 저주를 받았느니 뭐니 하지만 실제로 저주 받은 사람은 없다.
  • 빙의 현상
    • 엑토플라즘
    • 영매
    • 인형에 빙의된 사례
      • 데비 메릭의 바비인형: 데비 메릭(Debbie Merrick)이라는 사람이 구입한 바비 인형에 얽힌 이야기로, 오밤중에 침대 위로 올라와서 다리를 할퀴고, "This morning"이라는 생방송 토크쇼에 나왔을 때에는 갑자기 인형이 놓인 흔들의자가 저 혼자 움직이는 모습이 그대로 송출되어서 시청자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 이후 이 인형은 매물로 나와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58초부터 의자가 흔들린다. 그러나 단순히 세트장의 환기시설로 인해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고 어디까지나 데비의 증언으로만 이루어진 사례이므로 일단은 배제.
      • 로버트(인형)(#)
      • 맨디(인형)(#)
      • 애나벨
  • 사후세계
    • 임사체험(NDE)
    • 윤회
    • 전생
      • 루크 루엘만(Luke Ruehlman): 1993년 시카고 팩스턴 호텔 화재 당시 사망했던 흑인 여성 팸 로빈슨(Pam Robinson)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2007년생 백인 남자아이. "화재 열기에 쓰러진 후 천국을 보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꼬마 남자아이가 되어 있었으며 모두가 나를 '루크'라고 부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 제임스 라이닝거(James Leininger): 2차 대전 당시 조종사 제임스 허드슨(James Hudson)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로 유명하다.(관련 유튜브 영상(한국어)) 특히 그는 자신이 부모를 '선택'했다는 발언을 하거나, 항공기 정비에 관해 언급하는 등 부모를 여러 차례 놀라게 했다.
      • 캐머런 매콜리(Cameron McCauley): 스코틀랜드 바라 섬(Barra island)에 살던 셰인 로버트슨(Shane Robertson)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아이.
    • 지옥
    • 천국
    • 환생
  • 안나 베이커의 웨딩드레스(Anna Baker's Wedding Dress): 일명 귀신들린 드레스. 안나 베이커라는 여성이 부모의 반대로 약혼남과의 결혼이 무산되자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은 후, 그녀가 부모 몰래 장만해 두었던 웨딩 드레스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유리장에 보관된 웨딩 드레스가 밤중에 갑자기 저 혼자 나풀나풀 춤을 추거나,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입은 듯한 모습으로 저 혼자 돌아다니거나, 웨딩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처녀 귀신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행여라도 이 드레스를 입어 보는 사람은 현재 혹은 미래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는 전설 같은 저주도 전해져 내려온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소재.
  • 전자음성현상(EVP현상; electronic voice phenomenon): 전화 등의 전자 기기를 활용해서 유령이나 망자가 메시지를 남긴다고 알려진 현상. 주로 백색소음이나 자동 응답기가 대표적인 의사 소통의 채널로 거론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잘 활용하면 고인이나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애완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으리라 믿기도 한다.
  • 크레센트 호텔(Crescent hotel): 미국의 대표적인 귀신들린 호텔로 알려져 있으며 정상 영업 중이다.

10. 초능력, 초자연현상 관련 정보

  • 고행
    • 못 침대: 못을 촘촘하게 박은 침대 위에 눕거나 앉는 것.
    • 낚싯바늘: 크고 날카로운 바늘에 자신의 피부 일부를 꿰어 매달리는 것.
  • 러시아 죽음의 터널: 터널 바닥에 강물이 스며들어와 얼음이 얇게 깔리면서 사고가 빈발하는 지역으로 밝혀졌다. 대만에도 신하이 터널(신해 터널)이라고 비슷한 것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 터널과 신하이 터널은 다른데 러시아의 터널은 원인이 밝혀졌지만 신하이 터널은 도대체 왜 이렇게 잦은 사고가 발생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대만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 투엔문 고속도로:홍콩에 있는 고속도로로, 피투성이가 된 처녀 귀신이 자주 목격되어 교통사고가 나는 곳이다.
  • 마녀
    • 몬테레이 마녀(Monterrey witch): 몬테레이 인근 산지에서 괴기스럽게 생긴 노파가 날아다닌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으며, 한 시민은 심지어 미상의 물체가 하늘을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을 찍기까지 했지만 회의론자들은 특수효과를 활용한 주작 내지는 단순히 주인 잃은 풍선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 시간여행
    • 살라망카 대성당 우주인 조각: 1102년 축조된 살라망카 대성당(Episcope de Salamanca) 벽 조각 중에 우주인의 모습이 포함되어 논란이 되었으나, 실상은 1992년 보수 공사 때 조각에 현대적인 요소를 포함하자고 협의 후 결정되어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이후 훼손된 부분을 2010년 재보수. 유서깊은 유적에 새로운 조각을 추가한다는 것이 얼핏 잘 이해는 안 가지만, 그쪽은 워낙 오래된 성당이 동네마다 있는 데다가 현재도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이니 뭐...
    • 존 티토: 어느 형제가 가상으로 꾸며낸 허구의 인물로 밝혀졌다.
    • 캐나다 시간여행자: 확인 결과 그냥 사진에 찍힌 남성의 패션 센스가 좋았을 뿐이라고 한다.
  • 요정의 고리(Fairy circles): 아프리카 나미비아 등지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토양 환경으로, 땅에 둥근 모양으로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둥근 공간이 숭숭 뚫려있고 그 가장자리에는 잡초가 나 있다. 흰개미 때문이라는 설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흰개미와 지하수의 영향을 받아 중간 원 부분에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고 설명된다.(사진1, 사진2, 네이버캐스트)
  • 파이어 워킹: 막상 해 보면 과학적으로 의외로 안전하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걷는 사람이 매우 숙련되어 있으며, 최대한 노력해서 걷는다는 한에서.
  • 하늘도시: 구름 위에 거대한 빌딩과 불빛, 사람들의 그림자 등이 웅장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링크된 것처럼 그냥 신기루의 일종인 Fata Morgana 현상이라고 한다.

11. 지역에 관한 미스터리

  • 나스타포카 호(Nastapoka arc): 캐나다 퀘벡 주 북쪽에 있는 완벽한 동그라미 모양의 해안선 지형.
  • 느타벨리스: 다벨리스 동굴(Davelis cave)이라고도 한다. 그리스 소재. 유명한 무법자 느타벨리스(Ntavelis)가 아테네 인근 펜텔리(Penteli) 산의 이 동굴에 은거한 적이 있으며, 이후 이런저런 초자연 현상이 목격되는 심령 스폿이 되었다.
  • 디 아이(The Eye): 아르헨티나 소재. 늪지 한복판에 존재하는 수상쩍은 초승달 모양 호수인데,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 ##
  • 룽유 동굴(The Longyou Grottoes): 중국 저장성 소재. 고대의 유산이라고 짐작되나, 그 규모와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기록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 마더 쉽튼의 동굴(Mother Shipton's cave): 영국 노스 요크셔 네어즈보로(Knaresborough) 인근 소재. 강변 동굴 입구에서 물이 지속적으로 흘러내리는 석화 우물(petrifying well)로, 이 물을 1주 정도 맞고 있는 물체는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다. 인형이나 신발은 1주 이내, 자전거 정도 크기의 물체는 1달 정도가 소요된다. 과학자들은 이 물에 유달리 무기물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빠른 시간에 석화가 진행되는지는 불명이다.
  • 마이산 탑사: 탑을 쌓은 사람이 해당 문서에 적혀 있다.
  • 멜의 구멍(Mel's Hole): 존재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 버뮤다 삼각지대: 그냥 선박 등의 통행량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고 수도 많은 곳이다. 사고의 수가 아니라 사고율로 따져보면 별반 특별할 것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식어버린 떡밥.
  • 베닝턴 삼각지대(Bennington triangle): 미국 버몬트 주 남서부 소재. 1920-1950년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으며 특히 1945-1950년 사이에는 5명이 연이어 실종되었던 대표적인 배니싱 스폿이다.
  • 산타크루즈 미스터리 스폿: 사진 보기 - 무섭다기보다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관광명소. 진짜로 심령 현상이나 미스터리 현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시각적 착각(Visual illusion)의 결과이다.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소재. 참고로 오레곤 볼텍스(Oregon Vortex)라고 거의 비슷한 다른 관광지가 하나 더 있다.
  • 아라무 무루(Aramu Muru): 페루 암벽에 존재하는, 인공적으로 반듯하게 깎인 듯한 바위. 지역 촌로들은 이세계로 통하는 포탈이 열리는 장소라고도 말한다.
  • 오버툰 교(Overtoun Bridge): 애완견들이 이유 없이 한 방향의 한 지점에서만 투신자살하는 의문의 다리. 이 다리에는 개를 목줄로 묶어놓으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다.
  • 오크 섬의 보물: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오크섬에서 1795년 이래로 현재 진행형인 미스터리. 땅을 파면 팔수록 보물은 없고 묘한 유물이 드문드문 출토되고 있다. 보물의 주인에 대해서는 성전기사단, 해적 캡틴 키드, 마리 앙투와네트 등이 거론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섬의 지도가 묘사되어 있는 12세기 문서의 사본이 발견되기도 했다. 일단 콜럼버스 이전에 바이킹들이 북미에 가본 적이 있긴 하다.
  • 유령섬: 한때 '발견' 되어 지도상에 표기되었으나, 추후 측량이나 탐험, 위성 촬영 등으로는 그 존재가 사라져서 더 이상 지도에 표기되지 않는 섬. #목록
  • 자팅가(Jatinga): 인도 아삼 주 소재. 매년 몬순 철만 되면 수많은 새들이 날아들어서 한꺼번에 곤두박칠쳐 투신자살한다. 이에 대해서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
  • 주카이 숲: 항목을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그냥 자살 명소이다.
  • 춤추는 숲(dancing forest):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소재. 숲의 나무들의 나무둥치가 제각기 기이한 모양으로 크게 비틀려 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랬다기에는 너무 비일반적인 모양이기에 온갖 추측들이 있는데, 그 지역 수목의 자연적 생장행태라는 설, 핵방사능의 영향이라는 설, 거센 바람에 의해 변형되었다는 설 등이 있지만, 밝혀진 것은 많지 않다. 루마니아에도 호이아바치우라는 이름의 비슷한 숲이 있다.
  • 카네토 디 카로니아: 시칠리아 북부의 작은 해변 마을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잦은 화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엑소시즘까지 했을 정도. 과학자들은 단순 방화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저절로 전기 스파크가 튀면서 화재가 시작되는 걸 봤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심령적인 이유로 발화가 나타나는 현상은 "염화"(Pyrokinesis)라고도 부른다.[284][285]
  • 카시쿨락스카야 동굴 : Кашкулакская пещера. '카스쿨라츠카야' 라는 발음으로도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소위 '검은 악마 동굴' 로 불리며, 예전부터 악마를 달래는 의식이 전해져 왔다고 한다.
  • 칼카자가 산: 그야말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전부다. 괴생물체, 실종 사건 모두 없다.
  • 파톰스키 크레이터(Patomskiy crater): 정체불명의 분화구로, 폭발한 흔적이 없고, 만들어진 시기가 고작 300년이라서 의문이 있는 크레이터다. UFO설, 운석 충돌설들이 있지만, 밝혀지지 않았다.
  • 포벨랴(Poveglia): 이탈리아의 심령 스폿. 흑사병 환자들을 격리 조치한 섬인데, 이후로 귀신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가혹한 학대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정신 병원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해서 여러 의미로 흉흉한 소문이 많다.
  • 헤드리스 밸리(The Valley of the Headless Men): 정식 명칭은 없다.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의 나하니 국립 공원(Nahanni National Park Reserve)[286]의 Headless Valley와 관련되어 전해져 오는 이야기. 1908년 경, 사금으로 한몫 잡으려 이 곳에 왔던 유럽인 금광 탐사자 둘이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고 나서부터 전해지기 시작한 전설이다. 또한 이 사건 전에도 유럽인 개척자들이 오기 한참 전에 구전으로 전해진 다른 사건이 있었는데, 옛날에 나하 족(Naha Tribe)이라는, 산에서 살며 근처 다른 마을을 약탈했던 호전적인 원주민 종족이 있었는데 어느 날 영문 모를 이유로 전부 갑작스레 사라졌다고 한다. 게다가 인근의 다른 원주민들은 이 곳이 귀신들린 지역 혹은 악마가 사는 지역이라며 유난히 꺼렸고 그 근처도 가지 않았다. (영어 위키백과) 저주받은 계곡, 갑작스레 모습을 감춘 원주민 종족, 사라진 금, 사금 채취꾼의 의문스런 죽음 등에 관한 얘기가 떠돈다. 당시 옛날이었을 뿐더러 현재까지도 이 지역이 유난히 고립된 지역이라[287] 사건의 목격자, 단서, 연관성 등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문제 없이 국립 공원으로 잘만 운영되고 있다.
  • 호튼 탄광: The Horton Mine. 버려진 탄광 방문을 컨셉으로 하는 어떤 유튜버가 이곳에서 저 혼자 흔들리는 쇠사슬 등 각종 불길한 현상들을 목격하여 화제가 되었다. 나중에 다시 재방문했을 때에는 심지어 기계음이 섞인 괴음을 듣고 다시 뛰쳐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유튜버에 따르면 이전부터 악마가 주문을 외우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등의 거짓 합성 영상들이 종종 올라왔고, 아마도 이 사람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일부러 이런 요소들을 추가했을 거라고 한다.

12. 기인·기행·유명인

  • 글로리아 라미레즈: 1994년에 미국 리버사이드 종합병원(Riverside General Hospital) 응급실에 심부정맥 문제로 인해 실려왔다가 사망한 여성으로, 입원 당시 자궁경부암 말기 환자였다. 그런데 의료진이 아무리 제세동을 실시해도 효험이 없었으며, 그녀의 혈액은 딱 봐도 이상한 입자들이 잔뜩 떠다니는 상태였고, 도리어 그녀의 피부 및 혈액과 접촉한 간호사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바람에 의료진들과 다른 환자들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얼마 못 가서 그녀는 심장기능의 정지로 인해 사망했으며, 어째서 그녀와 접촉한 의료진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입원하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한 설명이 없다. 일단은 지극히 유해한 화학물질인 황산다이메틸(dimethyl sulfate)이나 메틸아민(methylamine)에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이 존재한다. 이 인물은 세간에 "The toxic lady" 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으며, 많은 법의학 매체 및 메디컬 드라마 등에서 참고하기도 했다.
  • 나타샤 뎀키나: 투시능력과 확대능력, 그리고 낯선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질병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 독립 영양 인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하지만 당사자들의 주장 말고는 다른 근거가 전혀 없다.
    • 람 봄 존: 네팔의 수도자로, 일명 "소년 부처"로 알려져 있으며, 6개월간 금식하며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 지나이다 바라노바: 러시아 국적. 본인에 따르면 공기중의 수분을 몸으로 직접 흡수한다고 한다.
    • 프라흐라드 자니(Prahladbhai Jani): 인도의 수도자로, 60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고 한다.
  • 딘 카나시스(Dean Karnazes): 일명 "영원히 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불리는 마라톤 선수로, 2005년에 80시간 44분 동안 560km를 쉬지 않고 잠도 안 자고 달리는 기록을 세웠다.
  • 리칭윈(Li Ching-Yuen): 256세만큼 장수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197세라는 얘기도 있다.
  • 미셸 로티토(Michel Lotito): 유명한 이식증 환자로, "뭐든지 먹을 수 있는 남자"(Monsieur Mangetout)라는 별명이 있다. 그가 먹은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다름아닌 세스나 150. 그는 18대의 자전거와 8개의 샹들리에를 먹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 벤자만 카일(Benjaman Kyle) : 희귀하고 극심한 기억상실증을 경험한 미국인 남성. 그는 삶의 어떤 특정 시점 이전까지 갖고 있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으며, 여기에는 그의 원래 이름과 정체성, 거주지, 가족 친지, 직업 등조차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벤자만 카일이라는 이름 역시 뒤늦게 붙은 가명인 것. 미스터리한 점은, 보통 이런 경우 언론을 타서 얼굴이 알려지게 되면 가족이나 지인들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아무도 이 사람이 원래 누구이고 뭐 하던 사람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벤자만 카일의 과거 행적은 완벽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상태.
  • 비바 스트루자: 루마니아에 사는 남자로 몸 속에 전기가 흐른다고 한다. 손에서 나오는 전기로 소시지도 구웠다. 어떤 과학자들은 그의 피부에 수분이 사실상 없다시피한 유전적 특이체질이라는 점을 들어 설명한다.
  • 빔 호프(Wim Hof):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추위를 타지 않는다. 심지어 에베레스트를 반바지 차림으로 등산한 적도 있다. 미국 TV 프로그램 《Fact or Faked》에서는 이 사람이 추위 속에서도 심부 체온과 심박수를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모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도 찍었으며 국내에도 방송된 적이 있다.
  • 스탠 리의 슈퍼휴먼즈〉(Stan Lee's Superhumans):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스탠 리가 히스토리 채널에서 2010-2014년 사이에 진행하던 다큐멘터리 쇼. 쉽게 말해서 미국판 기인열전. 보다보면 별의별 신기한 사람들이 나온다.
  • 슬라비사 파즈키츠: 실존하는 전기능력자. 생체전기가 소시지를 굽고 달걀을 삶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것은 물론, 19000V의 전압도 버티는 어마어마한 전기저항력도 가지고 있다. 현재 이 능력을 이용해 고압전선수리나 전기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 안젤로 파티코니(Angelo Faticoni; 1859-1931): 이탈리아계 미국인. 일명 "절대 물에 빠지지 않는 사람" 혹은 인간 코르크(Human Cork). 하버드 대학교 연구팀이 몸에다 납 추를 매달거나 의자에 묶어놓고 물에 빠뜨려 보았지만 15시간 이상 부유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 오노다 히로(Hiroo Onoda): 일제 시대 일본 장교로, 필리핀에서 은거하며 전후 29년간 항복을 거부하고 정글에서 지냈다. 미스터리할 것은 없는 인물이지만 종종 미스터리 채널이나 서적에서 소개되기도 하는 모양.
  • 줄스 보글레이(Jules Bourglay; 1858-1889): 미국 코네티컷 주 인근에서 자주 목격되던 남루한 방랑자. 행색을 따서 레더맨(Leatherman)이라고도 한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추정되며, 동굴 등에서 장작을 때며 풍찬노숙을 했다. 그의 사진들이 몇몇 남아 있지만 그가 대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갑론을박이 진행중이다. 무덤은 뉴욕 주 오시닝에 있다.
  • 함보 라마: 본명은 다쉬 도르조 이티길로프(Даши-Доржо Итигэлов). 1852년에 태어나 1927년에 입적한 라마 불교의 고승으로, 2002년 발견 당시 죽은 지 수십 년이 되도록 시신이 썩지 않고 있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과학자들은 자기-미라화(Self-mummification)의 사례라고 생각하며, 과학적으로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함보 라마가 생전에 라마 불교의 의술에 정통했음도 그 근거가 되고 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어느 승려의 기도'란 제목으로 다루었다. 현재 그의 미라는 러시아의 이볼가 사원에 모셔져 있고 티베트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13. 인터넷 관련

  •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창시자 이 챌린지를 고안한 사람은 코리 그리핀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사실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2014년에 사망해서 창시자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창시자가 사망했으니 의문점들을 물어볼 방법들도 없었기에 온갖 루머들이 판을 치면서 진짜 유래도 흐지부지 되어갔던 것. 대부분의 뉴스와 SNS에서도 코리 그리핀이 창시자이고, 루게릭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유도 하는 것을 목적으로 고안 했다고 못을 박고 있기에 사실상 이것이 목적이라고 봐야한다. 다만, 루게릭병 간접 체험을 목적으로 시행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288]
  • 유튜브 괴담
  • 흰방녀
  •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 상대방을 낚을때 이용하는 짤방으로 흑인 남성유희왕 카드를 들면서 씨익 웃는 표정을 짓는 짤방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정작 사진 속 흑인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였다. 한때 엑조디아를 완성시켜 유희왕 카드게임 대회에서 우승하여 유명세를 탄 제럴 멕케이 윈스턴이라는 설이 나돌았으나 정확한 근거가 없어 거짓이라고 판명되었다. 결국 사진 속 장소[289]만 밝혀지고, 사진 속의 흑인의 정체는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4. 미스터리 관련 사이트

이 항목은 사이트 자체에 미스터리한 점이 있는 게 아니라 미스터리 관련 컨텐츠를 취급하는 사이트이다.

  • 괴물딴지: 다양한 관련 정보가 존재하지만 2010년 이후로는 운영을 포기했는지 더이상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뉴스기사 정도나 2010~2011년도에 일부 올라왔을 뿐... 각 분야에 있는 대부분 이야기거리도 2000년대 초~중반에 등록한 매우 오래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15. 관련 문서


  1. [1] 개구리 소년은 와전된 이야기이다. 따라서 개구리 소년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2. [2] 삽살개 모양과 유사하나 삽살개라 볼 수 없는 특징들이 있어 상상의 동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3. [3]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하던 김어준주진우 두 사람과 그것이 알고싶다의 제작진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과 접선하여 취재에 응하고자 했던 증인들이 자기들이 왔다가기 전, 혹은 왔다간 후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고 하며, 이들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수사도 미온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남은 한 명의 증인과 취재하기 위해, 평소 친분이 있던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대동해서 자신들과 증인의 신변에 위협을 주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얻어낸 방송분도 하마터면 SBS 내부의 내통자에 의한 고의적인 방해로 인해 전부 삭제될 뻔했으나, 간신히 백업본을 이용해 방송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이 사건에는 유력 인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4] 당시 경찰은 피해자인 박근혜의 5촌 조카 둘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라고 발표했지만, 피해자들끼리 사이가 매우 좋았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추정된다.
  5. [5] 공소시효가 지나서 이 사건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상태지만, 어차피 다른 살인 사건으로 기소되어 이미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중이라서 의미는 없다. 일단은 가석방이 허용된 징역을 살고 있다지만,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범죄의 가해자임이 밝혀진 마당에 가석방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6. [6] 당시 범인이 사칭한 백모 소령은 실존 인물로, 사건이 일어난 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었으며, 사건 당시에는 특전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7. [7] 행보관 도 상사의 안부를 물으며 신상에 훤했다.
  8. [8] 2016년 판례에 따라, 북한 주민은 별도의 국적 취득 절차 없이도 자동적으로 한국 국민으로 인정된다.
  9. [9] 자유조선이 일으킨 2019년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이 일어난 뒤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현재 미국 영토 내에서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있다고 한다.
  10. [10] 2019년 3월 1일 자로, 이름을 '자유조선'으로 바꾸고 자신들이 현 북한 정권을 대체할 임시 정부라고 선포했다. 임시정부 창설 선포 영상에 서울탑골공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천리마민방위 관계자 중에 남한인이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11. [11] 어쩌면 소금이나 기후 때문에 사망 시기를 잘못 알아내거나, 알아내기 힘든 경우일수도 있다.
  12. [12] 다만, 여객기를 발견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블랙박스 판독이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이것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다.
  13. [13] 우울증을 호소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기행을 한 적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으며, 아들과의 관계 역시 아주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14. [14] 여기서는 그냥 이날 궁궐이 탔다고만 서술되어 있으며 왜 탔는지는 서술하고 있지 않다. 또한 불탔다는 날짜 또한 수정실록에는 서기 1592년 음력 4월 14일,선조실록은 서기 1592년 음력 5월 3일(혹은 서기 1592년 음력 5월 3일 이전)로 기록하고 있다.
  15. [15] 링크는 실제 시신을 촬영한 사진이므로 열람시 주의를 바란다
  16. [16] 정사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에 "고구려부여에서 나왔고, 그 언어가 같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리고 백제신라는 고구려를 자국의 적으로 보고 적대하긴 했을지언정, '삼한일통'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자기들과 동류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17. [17] 고구려 건국 이전에 이미 고구려현이라는 한나라의 군현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중국의 역사학자들은 현대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토착 부족의 이름이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18. [18] 북한과 사정이 똑같았던 알바니아나, 루마니아는 국가 경제가 북한 이상으로 심각하게 붕괴했으나 이는 기존 체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정권의 붕괴를 경험하지 않은 북한과는 상황이 다르다.
  19. [19] 이 때문에 고려 해군이 왜구의 배후에 일본 북조 조정이 있다고 오해한 나머지, 멀쩡한 일본 해군을 개발살 내버리기도 했다.
  20. [20] 예로부터 해적질을 해왔던 동여진은 원래 유목민이니 만큼 기마대가 있었다. 하지만, 유목민이 아닌 농경민인 일본의 해적이 기마부대를 보유했을리가 만무하다. 고려를 침략했던 '왜구'의 정체가 해적이 아닌, 특정 군벌 세력에 소속된 정규군이었다는 추정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21. [21] 의외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중국 역사학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양심적인 학자들이고, 어용 학자는 한줌도 되지 않는다. 중국의 역사학과 고고학, 인류학민속학 연구의 수준은 서구권 학자들의 뺨을 치는 수준이라서, 오래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합작하여 연구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동북공정에 찬동하거나, 아예 협조하는 어용 학자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당장, 예전부터 중국 공산당의 역사왜곡 시도를 지속적으로 무력화시킨 이들이 바로 같은 중국 학자들이었다. 이런 관계로, 고조선 이후부터 발해 멸망 직전까지의 만주의 역사에 대한 중국 역사학계의 공식 견해는 한국사로 간주하거나, 최소한 그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만주사로 볼 지언정, 일단 중국사는 아니다라고 본다.
  22. [22] 관중(관포지교로 유명한 그 사람)이 지었다고 알려진 관자고조선어로 된 지명과 인명이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이 진짜로 고조선과 관련된 고유 명사들인지는 불분명하다.
  23. [23] 유사역사학에 근거한 단순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 다른 왕들에 대한 암살 의혹과는 달리, 고종에 대한 독살 의혹은 주류 학계부터가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는 상황이다.
  24. [24] 당시에 독립운동가들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가명을 쓴 것도 있고, 역사학계의 숱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김두성이라는 이름의 독립운동가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독립운동가들이 가명을 쓰는 이들이 많았는데, 백범 김구 선생만 해도 백정선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했고, 유명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김산의 이름도 가명이었다.
  25. [25] 물론 왜군 장수가 조선에 감화되어 자진 투항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조선총독부의 날조였었다.
  26. [26] 금나라에서 자기들 역사를 기록한 책인 금사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27. [27] 또는 고려인. 대충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여진족의 땅으로 넘어간 듯하다.
  28. [28] 또는 고려.
  29. [29] 이런 고귀한 혈통의 이방인 후예는 창업군주의 출신과 관련된 전설에 흔히 나오는 부류다. 즉 주몽이 용의 아들이라거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와 유사한 형태다.
  30. [30] 영화감독인 신상옥이 전처인 최은희와 함께 납북되었다가 둘이 함께 탈북한 후에 프랑스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때 김형욱과도 만난 바 있었는데, 당시 그는 신상옥에게 자기가 저술하고 있는 책의 원고들을 보여주면서 "이게 출판되면 나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면서 희희낙락했는데, 이 만남이 있은 후에 오래지 않아서 김형욱이 돌연히 실종되었다. 그가 쓰던 책의 내용과 실종 사건이 관련이 깊다면 이 책은 박정희부정부패와 각종 치부를 폭로하는 책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이것이 그가 실종되는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보여진다.
  31. [31] 김홍도일본에 간 적이 있기는 하나, 그때가 1788년의 일이라서 1794년부터 시작해서 단 1년 남짓만 활동한 토슈사이 샤라쿠와 동일인일 가능성은 없다. 당시의 에도 막부의 폐쇄적인 외교 정책으로 미루어보면, 외국인이 잠깐동안 슬쩍 활동하고 사라질 만한 정황도 존재하지 않았다.
  32. [32]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들이 위작설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33. [33] 한사군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군현은 현도군, 그리고 대방군인데, 낙랑군과는 다르게 현도군은 정확한 위치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는 것만 빼면, 딱히 논란이 되는 건 없다.
  34. [34] 사실 최씨낙랑국이 독립국인지도 논란이 많다.
  35. [35] 일례로, 납북 일본인들 중의 한 사람인 요코타 메구미의 경우, 13세의 나이였던 1977년에 납치되었고, 1994년에 북한 측에 의해 자살했다고 발표된 뒤, 10년 뒤인 2004년에 그녀의 것으로 주장되던 유골이 일본으로 보내졌는데, 확인 결과, 다른 사람의 것임이 확인되어 일본 전역이 분노로 들끓었던 적이 있다. 이후의 일본 정부가 조사해본 결과, 요코타 메구미가 화장되었다는 화장장부터가 북한이 발표한 요코타 양의 화장이 거행된 1997년보다 훨씬 뒤인 1999년에나 세워졌음이 확인되어 그녀가 아직 생존해있을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36. [36] 참고로, 일본인들 이외에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납북된 사례가 꽤 있다. 가령, 월북주한미군 병사들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의 부인인 도이나 붐베아루마니아인이었고, 다른 월북 미군인 래리 앨런 앱셔의 부인은 태국인이었다. 게다가 탐관오리로 악명 높은 최룡해가 거느리고 있던 성노예들 중에는 흑인도 있었다고 한다. 2016년에는 미국인 대학생인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입국해 있다가 체포되어, 북한 당국에 의해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하도록 강요받기도 했다.
  37. [37] 같은 해에 대한민국 정부도 미국 정부와는 별개로 조사를 하였다.
  38. [38] 동명의 드라마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책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유명하다.
  39. [39] 이 설에 의하면 이 비운의 한국인은 무사히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나라가 독립한지 불과 5년 만에 전화에 휩싸였으므로, 또다시 전쟁에 징집되는 비극을 맞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40. [40] 참고로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웨이가 이 가설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
  41. [41] 여기서 다시 이 사람의 정체가 한국인이 맞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 설에 의하면, 이 사람은 원래부터 소련 땅에 살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이라고 하며, 그 이후에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소련군에 징집되었다가 독일 국방군의 포로가 되어, 최종적으로 연합군에게 목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병사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설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의 원주민인 카자흐인이나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이 징집되었다가 포로가 된 경우라고 한다.
  42. [42] 아예 이 이야기 자체가 도시전설이라는 설도 있다.
  43. [43] 참고로 이완용은 그 행적과는 별개로 당대 뛰어난 명필이기도 했다.
  44. [44] 당시에 박연조선에서 탈출하여 네덜란드로 귀국하려는 생각을 몇번 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모조리 실패한 후에 자포자기로 영구 정착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연 입장에서는 이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이, 당시 조선 조정에서 서양인을 신기하게 여겼기 때문에 박연에게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고,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주어 무관이 되게 한 후에 유럽식 대포를 제작하는 기술직에 특채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 여성과 혼인을 시키고 생계를 지원해주어서 편안히 정착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현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박연은 본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의 사략선 선장, 즉, 네덜란드 정부의 공인을 받은 해적이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해적선 선장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리가 만무하므로,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고 안정된 지위를 제공한 조선에게 마음이 끌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45. [45] 물론 한국의 성씨의 상당수는 개화기 이후에나 수가 급격히 늘어나서 오늘날과 비슷한 인구 비율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의 뿌리에 대한 집착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굉장히 남다른 수준이었다. 당대의 법률로 현직 관료가 아닌 사람도 4대째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용했는데, 뒤집어말하면, 이는 보통의 사람들도 자기 증조부모까지는 이름을 정확히 기억할 만큼, 조상이 누구고 자기 뿌리가 어떻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다는 뜻이다.
  46. [46] 박연한국 땅에 정착한 지가 근 400년이 다 되가므로, 그의 후손이 현존한다고 한들 오랫동안 지속된 혼혈로 인해 외양 상으로는 보통의 한국인과 구분하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 감안해도 그의 후손들이나 가계도에 대한 기록이 일절 남아있지 않다는 건 여전히 의문이다.
  47. [47] 참고로 박연은 이미 네덜란드에서 결혼해서 처자식을 둔 상태였으므로, 네덜란드에는 그의 후손들이 현존하고 있다. 그럼 박연이 중혼한 거 아니냐하면 맞는 말이긴 한데, 도의적인 측면에서 고향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현지에서 새로 결혼하고 사는 것을 뭐라 할 수가 있나.
  48. [48] 세계사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민족들끼리 융화하여 새로운 민족이 되는 경우는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사에서도 부여계와 예맥계, 고조선계 부족들끼리 융화하여 생겨난 고구려의 사례가 있으며, 세계사적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유래한 게르만계 민족인 바이킹러시아유럽 지역의 토착민인 슬라브인 및 극소수 우랄어족 계통의 민족들이 합쳐져서 오늘날의 러시아인이 된 사례가 있다.
  49. [49]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던 중국 공산당동북공정 정책에 최초로 헤드샷을 날린 이들이 다름아닌 중국역사학자고고학자들이다.
  50. [50] 백제 왕실이 고구려의 건국자인 고주몽국부로서 숭앙했다는 점에서 주류 역사학계로부터도 백제 왕실은 고구려 왕실의 방계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51. [51] 고구려나 그 모체였던 부여나 모두 반농반목 생활을 하는 유목민이었으므로, 바다를 지나는 것에 익숙했을리 없다. 훨씬 후대에 같은 유목민인 몽골족원나라를 세워서 일본으로 쳐들어가려고 했을 때도 바다에 익숙치 않아서 태풍에 원정 함대가 쓸려간 것이 패인이 됐을 정도다.
  52. [52] 온조, 비류 형제의 아버지인 고주몽은 실제로 이렇게해서 고구려를 세웠다. 그리고 고주몽의 손자인 대무신왕에 의해 대소왕이 전사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은 부여 역시 만주 땅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수도를 옮겨서 나라를 재정비하는 방법을 택했다.
  53. [53] 만주에 살던 부족들에게 한반도 중부 지역과 그 이남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54. [54]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비류, 온조 형제가 한강 유역인 미추홀(지금의 인천광역시 일대)과 위례성(지금의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도읍을 정한 것은 후대의 백제 왕조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한강 유역의 절묘한 위치로 인해 농사도 가능하고, 어업에 종사하기도 좋으며, 중국 왕조와의 무역에도 유리했기 때문에, 백제가 삼국시대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빨리 중앙집권화에 성공하고 한반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 한강 유역을 잃은 뒤로, 백제는 서서히 국력이 기울어갔다.
  55. [55] 무려 조선시대부터 돌던 낭설이다.
  56. [56] 그냥 '의자왕폭군이 아니었다' 정도가 아니라, 잘하면 삼국통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던 성군이었음이 밝혀져서 백제의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제공한게 아님이 밝혀졌다. 사실 이 시기의 신라의 정세를 보면, 백제가 수도인 서라벌의 바로 코앞에 있는 대야성을 점령하여 신라 조정을 충공깽에 빠뜨렸으며, 하필이면 이때 선덕여왕이 병석에 누우면서 지도부가 혼란에 빠졌으며, 이를 틈타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 서라벌로 진격해오는 등, 제대로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 뒤에 금방이라도 멸망할 판이던 신라에게 백제가 패망했으니, 주류 학계에서도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황당해하고 있다.
  57. [57]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일대지만 아직 정설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58. [58] 지금의 만경강, 동진강 유로는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만들어진 것으로, 옛날에는 가뭄, 홍수, 퇴적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유로가 수시로 바뀌어 왔다. 또한 해안선도 자연적, 인위적 요인들로 인해 자주 변동되었다.
  59. [59]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는 고구려보다 북쪽에 있는 부여를 정복하려고 하는 대목에서 북명을 언급하고 있으며, 부여보다 북쪽에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 말하는 북명은 함경도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60. [60] 그 위치 때문에 신라 관련 기록에서 언급되는 북명동예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으로 본다.
  61. [61] 당시의 백제신라성왕의 죽음 이후로 개와 고양이 사이가 된 상태였고, 심지어 무왕의 아들인 의자왕은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의 바로 코앞인 대야성(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까지 침공하기도 했다. 당연히 역사학계는 신라의 공주가 적국인 백제의 왕 무왕과 결혼하였다는 내용의 노래가 신라에서 유행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현대로 치면, 남한의 대통령의 딸이 월북해서 북한김정은과 결혼한 얘기가 노래로 만들어져서 남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꼴이니, 이걸 이상하게 여기는 게 매우 당연한 거다.
  62. [62] 이미 독립협회에서의 활약 당시에도 서재필은 스스로의 이름을 영어식 이름인 '필립 제이슨'이라고 칭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여기던 터였다.
  63. [63] 다른 기록에서는 용성국 또는 화하국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64. [64] 다만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 주장에 대하여 신라불교가 유입된 후에 불교적인 윤색이 더해진 결과물이라고 보고있다. 한때 일본언어학자오노 스스무가 주장한 일본어타밀어에서 기원했다는 학설과 연계되어 석탈해일본으로 이주한 타밀인의 후손이었다는 설이 제기된 바 있었으나, 일본 어디에서도 타밀계 유이민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어서 석탈해 타밀인 설과 일본어 타밀어 기원설이 같이 타격을 입었다.
  65. [65] 석탈해 관련 설화에 나오는 까치와 관련된 이야기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설화가 캄차카 반도의 원주민들인 축치인들의 설화에서 발견되었다.
  66. [66] 도호쿠 지방과 홋카이도는 지금이야 일본의 주류 민족인 야마토 민족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고대에는 아이누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지역이다. 이 설에 따르면, 석탈해한반도 동남부로 이주해온 아이누계 이주민이다.
  67. [67] 신라의 건국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고구려태조왕이 건국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태조'라는 시호를 받은 것처럼, 건국자에 준하는 중시조라는 의미에서 이런 칭호가 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주류 역사학계는 알려진 그대로 박혁거세신라의 건국자라고 보고 있다.
  68. [68] 현재 신라구 출신임이 분명하다고 밝혀진 인물은 진성여왕의 지휘를 받는 사략 선단의 우두머리였다는 설이 있는 현춘후백제의 개국 공신이던 능창 뿐이다.
  69. [69] 오늘날의 일본규슈 일대가 신라구의 침략으로 인해 초토화되어 한때는 사람이 살지 못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70. [70] 개중에는 반공 민병대원 본인의 증언도 있고, 신천군 현지인의 증언도 있다.
  71. [71] 남동생 안준생과는 달리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의미로 건설된 신사인 박문사에 참배한 기록이 있어서 빼도박도 못 한다.
  72. [72] 무려 회전에서 100만 명 이상의 대군을 전멸시켰다.
  73. [73] '을지'의 '지'는 고대 한국어로 오늘날의 '님'에 해당하는 존칭접미사다.
  74. [74] 이 설에 의하면, 을지문덕선비계 고구려인이라고 한다. 이는 울지경덕이 을지문덕과 친족이거나, 비슷한 출신 성분을 가졌으리라는 가정에서 나온 가설이다.
  75. [75] 참고로 이 두 사람도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특히 신용호는 교보생명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76. [76] 헝가리어헝가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77. [77] 사실 앞서 헝가리인이라고 한 것도 조력자 본인의 주장일 뿐이며, 실제 그의 국적이 어디인지는 의열단 단원들도 모른다고 한다.
  78. [78] 나머지는 이준, 이상설이다.
  79. [79] 관련 기록을 파기할 것을 지시한 사람이 영조라는 설도 있다. 기록을 삭제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영조에서 정조의 치세 기간 동안에 임오화변과 관련된 기록이 대거 삭제되었으므로, 현재로서는 이 참극을 눈 앞에서 직접 목격한 혜경궁 홍씨화완옹주, 또는 당대의 여러 대신들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상황을 재구하는 수 밖에 없다.
  80. [80] 조폭이나 일진 패거리를 일컫는 단어인 불한당이 여기서 유래했다. 당시에는 노론의 분파들인 시파와 벽파를 각각 남한당과 북한당으로 불렀는데, 여기에 끼지 않은 중립파를 멸칭으로 불한당(不漢黨)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쓰는 단어는 '땀도 안 흘릴 정도의 냉혈한'이라는 뜻의 한자(不汗黨)를 쓰는 것으로 바뀌긴 했으나, 이쯤부터 이런 말이 쓰인 건 사실이다. 자세한 건 정병설 항목 참고.
  81. [81] 자주 오해를 사는 부분인데, 말기의 철종이나 고종, 순종을 제외하면, 조선 왕조의 왕들은 권력이나 위세가 매우 강해서 신하들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미 왕권이 내리막길을 걷던 세도정치기의 왕인 헌종조차 집권 세력인 풍양 조씨의 사람에게 무례하다고 윽박을 질러서 자살하게 만든 일도 있었을 정도다.
  82. [82]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83. [83] 당시 왕위를 노릴 직계왕손이 사도세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손도 있었다지만, 상식적으로 멀쩡히 살아있는 세자를 냅두고, 그 아들인 세손을 추대하는 짓을 벌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84. [84] 참고로 화완옹주영조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한 자식이었다.
  85. [85] 이후에 노론이 정치 성향이나, 사도세자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 문제 등으로 인해 시파와 벽파로 나뉘었으므로, 노론이라고 해서 꼭 보수 성향인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조는 분명히 보수 성향이 짙은 왕이었고, 이것때문에 사도세자와 그를 중심으로 한 노론의 주류 세력들이 진보적 성향을 드러낸 것에 대해, 영조가 이를 아니꼬와해서 아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학계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이 설에서도 물론 임오화변은 영조가 독단적으로 저지른 짓이고, 노론 전체가 세자를 보호하는 입장이었다는 전제는 분명히 깔려있다. 이 설의 문제점은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이 너무 짧아서, 그의 실제 정치 성향이 어땠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86. [86] 이런 학계의 분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사도다. 기존의 영조정조 관련 창작물들이 정치 투쟁을 다룬 것인데 반해, 사도에서는 학계의 추정대로 영조 개인의 인간성 문제와 사도세자의 정신의학적인 문제, 기타 주변 왕실 인물들과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87. [87] 장영실의 최후에 대해서는 실각 이후에 즉각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는 설과, 이후에 기존보다 다소 낮은 직책으로나마 간신히 복권되었다는 설, 고향으로 내려가서 은퇴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 중 확실한 설은 아직 없지만, 급작스러운 몰락과는 별개로 그의 말년은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보여진다. 장영실과 함께 파직되었던 동료 과학자들이 복권된 후에 본래의 업무로 되돌아왔으나 그만은 이런 기록이 없다는 점과, 이 시기의 장영실이 이미 고령의 나이였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법적으로 복권은 되었으나 업무 복귀가 불가능한 나이라서 복직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그의 최후는 의외로 새드엔딩이 아니었던 것이다.
  88. [88] 실제로 이런 문제때문에 일반적으로 족보는 사료로 쓰이지 않는다.
  89. [89] 실제로 고려에 비해 조선은 다소 폐쇄적인 경향이 있어서, 원나라 시기의 혼란을 피해 망명한 수많은 외국계 민족들에게 강력한 동화 정책을 실행한 바 있었다. 가령 세종대왕의 치세까지만 해도 조선으로 이주한 위구르족들을 중심으로 하여 존속해오던 이슬람 신자들의 커뮤니티가 조정에서 이들을 유교로 강제 개종시키면서 와해된 바 있으며, 한족이나 목호의 난 이후에도 잔존한 몽골인도 조선식 상투를 틀게 하고 한국어의 사용을 강요하면서 억지로 동화시켜 버린 바 있다. 이 때문에 장영실의 조상들이 이런 동화정책에 저항하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노비로 전락했다는 설이 있다.
  90. [90] 이와는 별개로 장영실의 조상은 조선과 별 인연이 없고 잠시동안만 조선을 방문했는데, 그동안에 조선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사생아가 장영실 본인이나 그의 아버지라는 설도 있다. 이는 조상이 꽤나 명망있는 사람인데 반해, 장영실은 노비 신분으로 태어난 사실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장영실의 어머니가 개인이 소유한 노비가 아닌 관청 소유의 노비, 즉, 관노인데 장영실의 조상이 무슨 수로 국가 재산인 관노와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만드냐는 것이 있다.
  91. [91] 동학 농민 운동의 주요 인물인 김개남에서 따왔다.
  92. [92] 다만 전태일 평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전태일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도 있긴 했다.
  93. [93] 그가 48살에 죽었다는 점에서 요절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전근대 시대 군주들은 워낙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평균 수명이 4, 50대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정조의 아들인 순조 역시 정조와 비슷한 44살의 나이로 병사했으며, 세종대왕 역시 50대의 나이로 과로사했다. 되려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가 당대 군주들치고는 상당히 장수한 케이스다. 게다가 딱히 군주가 아니더라도 전근대 시절까지는 평민들조차도 4, 50대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94. [94] 이 사건도 노론이 일으킨게 아니라, 영조가 독단적으로 벌인 짓이다. 정작 노론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막으려고 애썼는데, 외려 이 때문에 영조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주요 인사들이 대거 파직되면서 뿔뿔이 분열되어 버렸다.
  95. [95] 노론 음모론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조조선의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권력이 센 군주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이미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자기 최측근을 임명했다가 마음대로 숙청해버리는가 하면, 왕궁 경호를 핑계로 왕실 친위대인 장용영까지 설치했기 때문에, 암살 기도는 고사하고 정조와 정치적으로 대적하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나 다를 바 없었다.
  96. [96] 이 말을 절대 오해하면 안되는데, 박근혜가 순진하게 최태민-최순실 부녀에게 속아넘어갔을 뿐이지, 그 자신은 죄가 없다는 헛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비판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 부녀가 없었어도 어차피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으며,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문서를 보더라도 최순실이 없어도 본인을 중심으로 한 독재 권력을 구축하려 했을 만큼, 대단히 교활하고 악랄한 사람인 건 분명하다. 중요한 건, 이런 자격 미달자를 대통령으로 등극시켰을 만큼, 최태민 일가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가에 대한 논의다.
  97. [97] 수치는 기록마다 왔다갔다 하는 듯하다.
  98. [98] 참고로 해씨라는 성은 우리가 아는 태양에서 온 것이 맞다.
  99. [99] 고주몽고씨나, 고구려의 '고'가 모두 한자로는 높을 고이고, 옛날 사람의 관념에서 높이 떠있는 건 태양이기 때문에 '해'와 '고' 모두 고구려어에서 동의어로 통했으리라고 보여진다.
  100. [100] 일단 학계는 허황옥의 출신지가 한반도에서 인도로 날조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삼국사기에서 언급된 그녀의 출신지인 아요디아가 현재의 인도와 네팔의 국경 근처에 있는 지역이고, 여기서 히말라야 산맥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쓰촨 성 지역의 인족 구성에 대한 전한 시기의 기록에서 인도인들의 마을이 언급된다는 점에서, 허황옥의 출신지가 실제로 인도였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게 먼 한반도까지 육로로 오는 방법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설에 따르면, 허황옥의 정체는 나라가 망하거나 권력 투쟁에서 패하여 중국으로 망명한 인도계 중국인의 후손이거나, 무역을 목적으로 중국으로 넘어온 인도 상인의 딸이라고 한다.
  101. [101] 석탈해의 경우는 다파나국 출신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출신국의 국명이 고대 타밀어 지명이라는 설을 따라 인도 남부 출신이라는 설이 있고, 그 이외에 '다파나 국이 의 북동쪽 1천 리에 있다'는 기록을 근거로 실제로 일본의 북동쪽에 있는 사할린 섬이나 캄차카 반도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102. [102] 극중에서 송강호가 이정출 역으로 분했다.
  103. [103] 물론 절대 다수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기회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던 만큼, 황옥 역시 어쩌다보니 상황에 따라 독립 운동 노선으로 슬그머니 갈아탄 기회주의자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104. [104] 예를 들면 대원군이 고종의 밀서를 조작하여 2차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다는 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대원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야말로 수직 낙하하게 될 것이다. 다시 정권 한 번 잡겠다고 아들이자 국왕을 위기에 빠트리고 수만의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꼴이니....
  105. [105] 그래서 임오화변 당시에도 사도세자를 죽이라는 영조의 명령에 결사반대했다는 이유로 노론 소속 대신들 여럿이 파직당하고 세자도 기어이 죽고 말았는데, 노론 측은 스스로가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책임전가를 하다가 뿔뿔이 분열되기만 했지, 세자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노론 음모론과는 달리 영조사도세자, 정조는 전부 노론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을 물론, 그 자신들도 노론 지지파였고, 당시에 왕권을 위협할 세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106. [106] 걀첸 노르부의 부모가 중국 공산당의 당원이다.
  107. [107] 1989년에 행방불명된 게둔 최키 니마의 행방이나 생사 여부가 2020년 현재까지도 수수께끼에 싸여있는 점으로 보아선, 어쩌면 중국 공산당에 의해 비밀리에 처형되었을 수도 있다.
  108. [108] 참고로 염민한족 출신이었다.
  109. [109] 여기서 다시 순수 튀르크계라는 설과 튀르크화한 코카소이드계 민족이라는 설로 나뉜다. 인도유럽어족 계통이라는 설도 페르시아계 민족이라는 설과 토하라인이라는 설로 나뉜다. 어느 쪽이건 간에 분명한 증거는 없는 상황이다.
  110. [110] 시베리아 북부에서 기원한 이들이다.
  111. [111] 아예 발견이 안된 것은 아니나, 너무 단편적인 기록들 뿐이라서 이걸로 갈족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무리다.
  112. [112]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몰타인이나 에티오피아인, 에리트레아인, 레바논아랍인기독교를 믿는 등, 대부분의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계열 민족들이 이슬람교를 믿지 않을 지언정, 일단 아브라함계 종교를 믿는 이들이긴 했다. 그러나 관체족은 그것도 아니고, 절멸 직전까지 자신들의 토착 신앙을 고수했다.
  113. [113] 대한민국에도 이런 용도로 지은 구조물이 있다. 1박 2일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전라남도여서도라는 섬은 강한 바닷바람을 막아내고자 주민들이 돌을 쌓아서 벽을 조성했는데, 그 모양이 고대 유적지를 연상케할 정도로 기묘해서 종종 '한국마추픽추'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114. [114] 관체족이 전멸할 때까지 카나리아 제도는 계속 부족 사회를 유지했으며, 거대 규모의 피라미드의 건축을 명령할 정도의 강력한 지배자가 나온 적도 없었다.
  115. [115] 물론 전근대 시대에 공화국이었던 나라는 생각보다 많았다. 고대 로마는 물론, 로마의 대선배격으로 그리스의 각 폴리스들이 먼저 공화정을 실시하였으며, 아메리카 원주민이로쿼이 연맹도 연맹의 총 수장을 부족 회의에서 선출했다. 말기의 카르타고나, 판관기 시기의 이스라엘도 공화국이었으며, 심지어는 동북아시아에서 공화(共和)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는 주나라부터 시작해 한반도의 동예옥저까지도 왕이 없었다고 나온다.
  116. [116] 아나톨리아 반도에도 인도유럽어족 계열 민족들이 살았으므로 상관없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이 지역의 선주민은 뒷날 고대 로마의 초기 역사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에트루리아인들이며, 이들은 인도 유럽어족이 아니라 알프스 산맥 원주민들과 기원이 같은 민족들이다. 그래서 아나톨리아 반도의 토속신들이 그리스인들이 원래 섬기던 신이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117. [117] 그리고 이 주장에서 인도유럽어족의 기원 및 분화 과정과 관련된 중요한 가설인 아르메니아 가설이 등장했다. 때문에 신화 연구가 역사 연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예시로 자주 거론되는 게 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연구에 대한 부분이다.
  118. [118] 아케나톤 사후의 기록에 '네페르네페르아텐'이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이름의 유사성말고는 이 사람이 네페르티티와 동일인이라는 증거가 부족하고, 네페르네페르아텐이라는 인물 자체가 정체불명의 인물이다.
  119. [119] 네페르티티 본인 또는 그 친족으로 추정되는 미라는 발견되었다.
  120. [120] 확실한 것은, 오늘날의 헝가리를 세운 마자르족의 침략이 멸망의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만 마자르족의 침략 이후로 대 모라비아가 얼마나 버텼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 모라비아의 마지막 왕이 누구인지는 다소 분명치 않다.
  121. [121] 물론 도시의 경영 방식이 당대 최첨단의 기술이 반영되었다는 것이고, 데린쿠유의 건설 과정은 의외로 단순했다. 데린쿠유가 부드러운 화산암 지대에 있어서 웬만한 도구로도 파내기가 쉬웠던 것이다. 훨씬 후대인 동로마 제국 시기에 데린쿠유와 가까운 곳에 세워진 도시인 카파도키아도 이런 식으로 화산암을 파내서 만든 인위적인 동굴에 교회 등을 지어서 조성한 도시였다.
  122. [122] 도시 내부에 교회로 사용된 지역이 발견되었다.
  123. [123] 영어위키피디아에서는 라이 텍의 본명이 호앙 아 낙 또는 팜 반 닥, 이 둘 중 하나라고 나오며, 베트남응에틴성 출신으로 1901년생이라고 나온다. 이 서술이 맞다면, 일단 라이 텍이 베트남인인 건 확실한 듯 하다.
  124. [124] 이 비문에 19세기에나 쓰이던 식의 문법이 나타나고 있고, 중도에 서술자의 시점이 바뀌거나, 문체가 바뀌는 부분도 있어서 비문 자체가 후대의 가작일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다. 게다가 발견자라는 사람이 당시 태국의 왕세자였던 라마 4세였기때문에, 태국 내에서 민족주의적인 여론을 들끓게 하고,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고자 고의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태국 왕실은 이에 대해 해명을 하기는 커녕, 되려 이 문제를 조사하는 영국의 역사학자인 마이클 라이트에게 태국에서 추방해버리겠다면서 자꾸만 그의 연구에 훼방을 놓고 있다.
  125. [125] 랴오중카이의 암살범은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126. [126] 지금의 호주뉴사우스웨일스 주와 뉴질랜드 전역을 관할하는 총독부였으며, 오늘날의 호주 연방 정부의 전신이다.
  127. [127] 당시의 호주 대륙은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비견될 정도로 헬게이트였다. 백인들의 침략으로 인해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이 원한 때문에 지나가는 백인 탐험가들에게 적대적이었으므로 이들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광활한 초원사막이 펼쳐져 있어서 탐험 도중에 식량이나 물이 바닥나면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타기가 무척 쉬웠다. 즉, 이런 곳을 탐험하다 돌아오지 못했으면 십중팔구는 현지에서 사망했다고 보아야 했다.
  128. [128] 비슷한 사례로, 영국 해군 장교인 존 프랭클린이 이끄는 탐사대 전원이 북극에서 조난사한 사례가 있다. 이쪽은 항해 일지와 같은 기록물이 일체 발견되지 않아서 사건 자체가 미스터리로 남은 경우이다.
  129. [129] 만력제의 유골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그래서 그의 외양에 대한 연구는 오직 남겨진 기록으로만 할 수 있는 실정이다.
  130. [130] 현존하는 황실 가문은 고훈 시대 무렵부터 이어져 왔다고 추정되지만, 이를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다.
  131. [131] 전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재 파괴 사례가 오다 노부나가가 벌인 히에이 산의 방화 사건이다. 당시에 히에이 산은 민중들을 수탈하고 군대를 조직하여 군벌화한 승려들의 부패의 온상이 된 곳이라서, 오다군에 의해 히에이 산의 절들이 대거 불타버리자 당대의 민중들은 크게 환호했지만, 뒷날의 고고학자들에게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수많은 문화재들이 소실된, 뒷목잡고 쓰러지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132. [132] 물론 주류 역사학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일본서기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일본서기에 들어있는 의문스러운 부분을 걸러가면서 실제 고대 일본의 역사를 재구해보는 식인 거다. 일례로,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정벌했다는 삼한정벌 신화의 주인공인 진구황후에 대해서는 사이메이 덴노나, 히미코 및 그 손녀인 이요와 같은 실존하는 여성 통치자를 모델로 한 가상인물이라고 주류 역사학계에서 결론이 지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그 모델이 정확히 누구냐는 논쟁을 통해 수시로 신라가야 등의 한반도계 국가들이 벌이는 군사적 충돌에 시달리던 당시 일본의 정세를 분석하는 것이 있다.
  133. [133] 대표적인 경우가, 초대 천황진무 덴노. 일본사에서는 아직 문명조차 세워지지 않은 신석기 시대조몬 시대와 생몰년이 겹치는 지라, 실제의 역사와 매칭이 안된다. 그래서 황실 족보는 사료로 쓰기가 불가능하다.
  134. [134]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 나오는 그것이다.
  135. [135] 현재의 추정에 따르면, 말라가시인은 현재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일대에서 발원한 민족으로, 중도에 아라비아 반도나, 인도, 몰디브 등에 상륙한 바 없이 인도양을 서쪽으로 직접 횡단하여 마다가스카르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기술로 인도양의 편서풍을 어떻게 뚫고 지나갔는지에 대한 의문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136. [136] 미노스 문명의 주민들은 선형 A 문자선형 B 문자라는 일종의 선형 문자로 된 기록을 남겼는데, 아직 이 문자의 해독에 성공한 학자가 없다. 이외에도 파에스토스 원반에 쓰였던 문자도 있었지만 이것 역시 해독에 성공하지 못했다.
  137. [137] 인도유럽어족 계통 언어라는 주장은 다시 고대 그리스어의 직계 조상이나 자매 언어라는 설과, 아나톨리아어파라는 설로 나뉜다. 그 이외에는 에트루리아어가 속한 어족으로 추정되는 티레니아어족이라는 설도 있다.
  138. [138] 인도유럽어족 계통이라는 설도 있고, 에게 해 제도의 토착민들로, 에트루리아인의 사촌 격인 민족으로 추정되는 티레니아인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한 건 유골이 발견되지도 않았고, 미노스 문명에서 사용한 문자인 선형 A 문자도 해독되지 못해서 알기 어렵다.
  139. [139] 고대 이집트 측의 기록을 보면 크레타 출신 용병들을 '케프티우(Keftiu)'라고 불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이 미노스 문명의 주민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리라는 추정이 있다.
  140. [140] 평소 미와 와사부로에게 원한을 품었던 김두한이 그를 죽이고 암매장했다거나, 8.15 광복 당시에 모국의 패망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했다는 설이 있고, 그냥 일본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자연사했다는 설도 있으나, 전부 도시전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141. [141] 일단 기록을 보면, 기원전 1700년대 쯤에 처음 기록이 등장해서 기원전 1100년대에 이집트파라오람세스 2세가 남긴 "더 이상 바다 민족이란 없다!"라는 기록을 끝으로 더 이상의 역사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즉, 이들은 최소 6세기 동안이나, 악명을 떨쳤던 이들이라서 이전 서술처럼 '단번에' 지중해권 문명들의 리즈 시절을 끝낸 건 아니다. 하지만, 바다 민족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당시에는 이들의 존재가 지중해 일대의 국가들에게 상당히 충공깽스럽게 받아들여진것도 사실이며, 심지어 몇몇은 이들에게 패망하기까지 했으므로 그 후로도 6세기 동안은 바다 민족 출신을 용병으로 고용해서 쓰거나, 이들의 침략을 무척 두려워하는 기록이 속속들이 나올 만큼, 공포의 대상으로 불린 것도 사실이다. 이는 비슷한 이미지인 바이킹이나 몽골인들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둘 다 각각 9세기에서 12세기까지, 그리고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실제로 서유럽동유럽, 남유럽의 수많은 나라를 무력으로 위협하여 내내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첫 등장 시에 이들을 보고 '신의 징벌'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고대에는 이런 바이킹과 몽골인들의 역할을 바다 민족이 했다고 볼 수 있다.
  142. [142] 오늘날의 스파르타를 포함한 그리스의 차코니아 지방 주민들의 기원이 되는 도리아인을 말한다.
  143. [143] 뒷날 로마 제국을 세운 로마인들의 먼 친척뻘되는 민족이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로마인들의 언어인 라틴어시칠리아 원주민들의 언어는 큰 틀에서는 전부 인도유럽어족 이탈리아어파에 속하나, 어군 수준에서 분류가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144. [144] 성경에도 나오는 민족들이며, 다윗 왕의 즉위와도 관련있는 민족이다. 인도유럽어족 계통으로 추정되지만, 세부적으로 어느 어파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은 구약 성서에서 언급되는 내용이나, 당대의 다른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그리스인과 동계이거나, 아나톨리아 반도를 거쳐온 그리스인 이민자들이라고 추정된다.
  145. [145] 바다 민족으로 분류되는 민족들 중에는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트로이인들(히타이트인들의 사촌뻘되는 민족이다.)과 에트루리아인의 조상격인 민족인 티레니아인도 있다.
  146. [146] 바이킹의 경우와 같이 원거리 무역 활동이나 용병 활동을 동반한 일종의 해적 행위가 목적이었다는 설과 중세 초의 게르만족의 대이동처럼 외적의 침입이나 기후환경의 변화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인해 목숨을 건 대이동을 했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147. [147] 미국 정부가 타국의 핵실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발사한 벨라 위성에 의해 감지되었기 때문에, 벨라 사건이라고 한다.
  148. [148] 섬광이 발생한 지점에서 서쪽으로 200km쯤 떨어진 곳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속령인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가 있다.
  149. [149] 알다시피 이 시기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잔인하고 끔찍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벌어지고 있었기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이들에게 대대적인 경제 제재를 벌이고 국교를 단교한 바 있다. 그래서 남아공 정부는 이에 대한 반항으로 핵무기 보유를 추진하였고, 이를 위해 이스라엘 정부와 비밀리에 협력하여 핵무기를 개발한 바 있다. 따라서 훗날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넬슨 만델라가 연이어 집권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할 때, 과거사 청산의 일환으로 이때 개발한 핵무기를 모조리 폐기했다.
  150. [150] 이 섬광 자체가 핵실험에 의한 것이 맞다는 가정 하에서 그 범인으로 지목되는 또다른 나라가 프랑스다. 섬광이 발생한 지점에서 동쪽으로 500~600 km 정도 떨어진 곳에 프랑스의 속령인 케르겔렌 제도가 있으며, 훨씬 뒤인 1995년에도 프랑스는 자국의 다른 식민지인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핵실험을 한 전적이 있다.
  151. [151] 참고로 이 문서에는 무려 은하가 나온다. 은하라는 개념이 처음 밝혀진건 19세기 말엽의 일이며, 그 존재가 확실히 입증된 건 1917년에 미국천문학자에드윈 허블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중세시대의 문서에 어떻게 은하가 나올 수 있겠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데, 옛날에는 은하의 정체를 모른 채로 그 모양만 알아서 이를 '소용돌이 성운'이라는 이름의 성운의 한 종류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중세기의 기록에 은하가 나오는게 그리 이상한 건 아니며, 단지 은하로서 인식된 게 아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은하 그림때문에 이 문서의 정체가 중세 유럽자연과학 관련 백과사전 내지는 교양과학 서적이라는 설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152. [152] 만주어, 베트남어 등의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쪽 언어라는 주장도 있고, 아랍어히브리어라는 주장도 있으며, 문서의 저자가 창안한 인공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문서에 적힌 언어를 기술하는 데 쓰인 문자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서 모두 가설에 불과한 상태이다.
  153. [153] 2017년에 이 문서를 해독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오류로 끝났다. 다만, 문서 해독 방식에 있어서 유의미한 진전은 있었다. 항목 참조.
  154. [154] 귀족 출신 여성이었는데, 일개 평민에 불과했던 베토벤과의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혼에 실패했다.
  155. [155] 문자 그대로의 친구, 즉, 여사친에 불과했다는 설도 있고, 사실은 줄리에타와의 이별 이후에 친구 사이를 넘어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156. [156] 사족으로 이 사람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가 있었다는 설이 있으며, 주류 역사학계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있다. 자세한건 루트비히 판 베토벤 문서 참조.
  157. [157]불멸의 연인 떡밥은 현재 베토벤에게 딸이 있었느냐는 논쟁과도 큰 관련이 있다. 미노나 폰 슈타켈베르크가 베토벤의 딸로 거론되는 인물인데, 불멸의 연인 후보들 중 한 명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의 딸이다. 공식적으로는 크리스토프 폰 슈타켈베르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고 발표되었지만, 이 사람은 부모가 이혼했다가 재결합했을때 태어난 딸로, 요제피네가 이혼해있던 기간이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다시금 잠깐 동안 연애를 했던 시기였고, 남편과 재결합한 뒤에도 남편과의 동침을 거부했기 때문에 미노나가 크리스토프의 자식일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실제로 베토벤의 딸일 가능성은 주류 역사학계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 DNA 검사가 이루어진건 아니므로 정설은 아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실제 미노나의 어머니 요제피네가 진짜 불멸의 연인인지도 불명이다. 애만 만들고 딴 여자랑 눈 맞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얘기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카사노바호색한이라는 얘기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자. 그냥 플라토닉 러브가 아닌 관계도 좀 해봤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158. [158] 자본주의 진영에서의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과 동급의 여파를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159. [159] 그런데 이 선천적 장애설 중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유전병 인자가 우연히 겹치는 바람에 저지경이 되었다는 흠좀무한 새로운 가설이 등장했다.
  160. [160] 그래서 이 사태의 간접적인 원인이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는 것과 결과이자 해결책이 뒤이어 벌어진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견해로 보아, 이 초유의 사태가 사실 비밀결사의 소행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있을 정도다. 한편 이와 별개로 로스차일드 가문같은 유대 자본이 벌인 공작이라는 음모론과 이 사태에서 유일하게 공산주의로 이념으로 건국한 소련만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보았기 때문에 한때 소련이나 공산당 측의 공작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등장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음모론은 거의 신빙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
  161. [161] 세계 대공황의 발생 원인을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발생 원인과 결부시켜서 설명하는 주장도 있다. 2008년의 경제위기의 원인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이었듯, 대공황 역시 당대에 널리 퍼진 자유방임주의의 모순때문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경제학계는 이쪽에 크게 무게를 둔다.
  162. [162] 환빠와는 달리 이쪽은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 일단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나, 그 조상 언어인 그으즈어는 모두 아프리카아시아어족셈어파 계열 언어이고, 북쪽에 있는 이집트고대 이집트어는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이긴 하지만 셈어파가 아닌 함어파에 속하므로, 당시에는 에티오피아와 그 주변국들인 소말리아, 지부티, 에리트레아 정도만 셈어파 언어가 쓰이고 있었다. 게다가 훨씬 뒤에 에티오피아에 세워진 악숨 왕국의 경우 바다 건너 예멘까지 원정을 나간 사례도 있었던 만큼,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에티오피아인이 등장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덕분에 시바의 여왕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 자체는 셈어파 계열 언어가 전파된 과정을 밝히는 것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163. [163] 케트어가 속한 언어군으로, 시베리아예니세이 강 일대에 화자들이 주로 분포해있다.
  164. [164] 나바호어, 애서베스칸어, 에야크어 등이 속한 언어군이며, 북아메리카 서부에 화자들이 주로 분포해있다.
  165. [165] 이누이트의 사촌뻘되는 민족이며, 이들의 언어인 유픽어이누이트어와 함께 이누이트알류트어족으로 분류된다.
  166. [166] 유픽족이나 이누이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분류되는 다른 민족들과는 기원이 전혀 다르다. 이들을 제외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고(古) 몽골로이드계이고, 유픽족이나 이누이트족은 그 이후에 형성된 현대 몽골로이드 계통이다.
  167. [167] 아메린드어족 가설이라 하여, 이누이트유픽족, 알류트족이 쓰는 이누이트알류트어족 계통 언어들을 제외한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 전체를 하나의 어족으로 묶는 가설은 있지만, 주류 언어학계로부터 기정사실로 취급되고 있기라도 하는 데네예니세이어족과는 달리, 완전히 가설로만 취급되고 주류 학계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학설이 아니다.
  168. [168] 바이킹들이 그린란드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이누이트족과 조우했다는 설도 있다. 9세기경에 아이슬란드에 막 상륙한 바이킹들의 기록에서 조난당해 사망한 국적불명의 사람 두 명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는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들의 정체가 그린란드에서 표류해 온 이누이트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69. [169] 그 근거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아메리카 도래 이전의 폴리네시아 유적지에서 발견된 고구마의 존재와 고구마를 가리키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소속 언어들의 어휘들이 있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말레이 폴리네시아어군 조어로 고구마를 가리키는 단어인 쿠우말라(kuumala)는 케추아어로 고구마를 뜻하는 쿠마라(kumara)에서 차용한 말이다.
  170. [170] 9세기 경부터 바스크족들은 유럽에서 어부나 무역상같은 항해사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유명했을 만큼, 전통적으로 조선 기술과 항해 기술이 크게 발전해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아이슬란드까지 진출해서 어업이나 포경업에 종사하곤 했고, 그 흔적이 바로 바스크어아이슬란드어피진이라는 이런 끔찍한 혼종이다. 이런 관계로 어쩌면 바스크인들이 아이슬란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린란드를 통해 오늘날의 캐나다 북동부 지역까지 진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71. [171] 이 주장은 아래의 오크 섬의 보물 떡밥과도 연결된다.
  172. [172] 여담으로, 뜻밖에도 고구마의 전파 과정에 대한 미스터리가 바이킹북아메리카 진출 이전에도 아메리카 원주민과 접촉한 이들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오세아니아에서의 고구마 전파 과정에 대해서는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이 11세기에 남아메리카까지 가서 고구마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나머지 지역의 경우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그 이후의 탐험가들이 고구마를 가져왔던 것이 시초라는 설이 부정되면서 생물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때 종래의 학설을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된 게 고구마DNA 정보를 연구한 결과인데, 이 연구에 의해 무려 1200년 전부터 아메리카 밖으로 고구마가 전파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식물이 사람의 도움도 없이 타 대륙으로 퍼져나갈 수는 없으므로, 결국 이미 폴리네시아 원주민들보다도 먼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조우했거나, 최소한 아메리카 땅이라도 밟은 이들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173. [173] 공룡이 그려져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화제를 모았던 이카의 돌이 현지인의 날조로 만들어진 것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던 만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174. [174] 안네 프랑크 일가의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안네 프랑크는 금수저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가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다가 가세가 기울자,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간승리의 주인공이었던지라, 전쟁 전만 해도 부족한 것 없이 유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일가가 홀로코스트의 위협을 피해 달아나자, 그들의 막대한 돈을 노린 이들이 꽤 있었다.
  175. [175] 나머지는 네브라 하늘 원반파에스토스 원반이다.
  176. [176] 안티키테라 기계가 만들어지기 2세기 전에 에라토스테네스이집트알렉산드리아에서 아스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고 두 곳에서 태양의 남중 고도를 측정한 다음에, 이를 토대로 지구의 둘레를 계산해낸 바가 있었다. 당연히 현대에 지구과학자들이 계산해낸 수치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6000km정도로 고대인의 계산 결과치고는 상당히 정확한 수치를 얻어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헤론은 무려 증기 기관을 이용한 장난감을 만들어보기도 하였다. 물론 경제성의 문제로 인해 증기 기관이 실용화되려면 18세기 산업 혁명기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고대의 인류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성과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던 건 사실이다.
  177. [177] 고대 로마 시기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당대의 존경받던 학자인 히파티아를 잔혹하게 살해한 적이 있으니 그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태웠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 때문에 히파티아가 살해당할 당시에 도서관도 같이 불탔다는 설도 있다.
  178. [178] 그 유명한 마리 퀴리의 딸과 사위로도 잘 알려진 이렌 졸리오퀴리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부부가 실시한 실험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양성자와 질량이 거의 같은 입자를 에토레 마요라나가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성자였다. 당시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엔리코 페르미가 빨리 이것을 발표하라고 하였으나, 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 마요라나가 거부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영국의 물리학자인 제임스 채드윅에토레 마요라나의 분석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재현해내는 데 성공하여 1935년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179. [179] 참고로 이 사람도 물리학자였다.
  180. [180] 배가 조난을 당한 것이 아니고, 에토레 마요라나 본인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181. [181] 공동 번역 기준 제목. 가톨릭 역본은 루카 복음서, 개신교 역본은 누가복음.
  182. [182] 다만, 일부 성경학자들은 예수의 12세 당시 기록 이후로 아버지 요셉의 기록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 점을 근거로, 아버지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장남인 예수가 요셉을 대신하여 가장의 역할을 대신 했다고 추측한다.
  183. [183] 문명의 이름인 올멕은 훨씬 후대에 중앙 아메리카에 정착한 아즈텍족이 붙인 이름이었는데 나우아틀어로 고무 인간이라는 뜻이다.
  184. [184] 그리고리 오트리피예프라는 정교회 수도자 지망생이었는데, 가족들이 수도자의 길을 걸으라고 수도원에 들여보냈더니 되라는 수도자는 안 되고 달아난 양아치였다. 그런데 이 인간이 별안간 우글리치 공 드미트리가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소문이 돌자, 갑자기 자기가 그 사라진 황태자였다고 믿고는 폴란드 귀족 여인 마리나 므니제치와 결혼하고 폴란드 세력을 끌어들여서 러시아의 차르의 지위를 차지했다. 근데 이게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르는 인간이 사라진 왕자를 자칭하면서 외국군을 끌고 와서 보위를 강탈한 격이라서 러시아 국민들이 피꺼솟하여 반란을 일으켜서 그를 차르의 지위에서 끌어내버리고는 대포에 장전해서 폴란드 방향으로 발사해버렸다. 일개 양아치 하나가 거하게 오해를 해서 나라를 헬게이트로 만든 셈이다.
  185. [185] 일단 2번째 가짜는 리투아니아의 감옥에서 탈옥한 죄수라고 하며, 3번째는 동방정교회 사제 양성 과정을 밟던 부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과거 행적이나 본명 등이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골때리는 건 이 둘은 자기가 진짜로 사라진 황태자라고 믿은 첫 번째 가짜와는 달리 자기들이 가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출세하려고 전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간 큰 사기꾼이라는 소리다.
  186. [186] 자신을 누르고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던 이복형 벡테르를 죽인 바람에 어머니 호엘룬의 분노를 산 일이나, 자기 아버지 예수게이를 비열하게 죽인 타타르족을 잔인하게 학살한 일 등에서 볼 수 있는 비정한 모습과 이에 대비되는 그의 숙적이자, 평생의 친우였던 자무카와의 감동적이고도 안타까운 우정 이야기 등, 학살자나 정복자로서의 냉정한 모습으로만 기억되던 칭기즈 칸의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기록이다.
  187. [187] 그래서 21세기에 데뷔한 연예인인 이지아도 자신의 과거사를 밝히길 꺼려서 한동안 이회창흙오이 사건이나, 윤은혜왜 그리스는 새벽에 축구해요? 사건과 함께 인터넷 상의 3대 미스터리로 회자되기도 했다. 물론, 그 쉬쉬하던 과거사의 실체가 까발려지고, 이를 부정하고 미화하는 병크를 터뜨린 후에는 연예계에서 깔끔하게 매장되었지만.
  188. [188] 중국티베트어족 계통의 다른 민족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예 완전히 다른 계통의 민족이 화하족에 동화되어 생겨난 민족일 수도 있다. 현재 주나라를 세운 민족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89. [189] 유목민은 아니다. 동북아시아 역사에 처음 등장한 유목민은 (胡)라고 불리운 이들로, 이들은 무려 기원전 7세기 경에서야 연나라조나라의 기록에서 언급이 되는 이들이다. 주나라가 건국될 시기에 있었던 또다른 목축민으로 토하라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 거주하던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민족들로, 이들도 이 시기에는 아직 유목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다.
  190. [190] 같거나 유사한 민족끼리 서로를 적대하거나, 이질적으로 여기는 일은 세계사적으로는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삼국시대한국 왕조들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등으로 나뉘어서 피터지게 싸워댔고, 고려 시대까지 탐라 사람들을 외국인 취급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현대의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의 국민들도 문화인류학적으로는 세르보크로아트인으로 분류되어서 언어도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같고, 문화적으로도 전혀 차이가 없는 완전히 같은 민족이지만, 그 말을 구 유고 사람들에게 하면 크게 욕먹을 가능성이 높다.
  191. [191] 현재 이집트가 통일된 초창기에 전갈왕 - 나르메르 - 메네스 - 호르아하 순으로 통일 이집트를 통치한 군주들이 기록에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나르메르와 메네스는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그러나, 나머지도 같은 인물인지는 불분명하다.
  192. [192] 아메리카는 몰라도, 호주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유럽인의 도래가 있기 훨씬 전부터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과 교류를 해 온 바가 있어서 퀸즐랜드 주에서는 이들의 영향으로 잠시나마 농업이 시도되기도 했고, 말루쿠 제도뉴기니 섬 서부의 원주민들도 오래 전부터 중국이나 일본 및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교역을 해왔다. 그러니 명나라의 함대가 호주까지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심지어 정화의 대원정이 있기 훨씬 전부터 중국인들이 호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설도 있다.
  193. [193]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으나, 공산주의자나, 프리메이슨 단원, 성소수자 및 반(反) 나치 운동가들도 여럿 있었다.
  194. [194] 한때 '여교황'(La Papessa)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을 만큼, 비오 12세의 치세에서 바티칸의 실권자였다. 이는 비오 12세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힘든 상황으로 생긴 신경쇠약이 나날이 악화되어서 바티칸의 국가원수로서의행정 실무는 전혀 보지 못하며 가톨릭 교황으로서 종교 관련 업무만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황이 행해야 할 행정 처리를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가 대행하였는데, 문제는 수녀는 사제가 아닌 수도자이기 때문에 교회 행정에 관여할 권한이 없었으므로, 당대에도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195. [195] 흔히 가나 제국으로 알려진 나라이다.
  196. [196] 11세기 경의 아랍인 상인들이 오늘날의 짐바브웨까지 내려가서 관련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는 비슷한 시기에 북아메리카로 갔던 바이킹 탐험가들 수준으로 일회성 방문에 그친 터라, 문화적으로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97. [197] 일단 주류 학계에서는 서아프리카이집트에서 너무 멀다는 점을 들어 반투족들 스스로가 농업 기술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나갔다는 설에 무게를 두고 있기는 하다.
  198. [198] 참고로 이 둘은 미국 영상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특수효과 전문가이자, 수준급 공학자들이다.
  199. [199] 소련 시절에 차이코프스키의 유해를 분석한 결과, 비소가 검출되기는 했다.
  200. [200] 실제의 철가면은 검은 벨벳으로 된 복면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 철가면의 정체가 외스타슈 도제라는 최근의 가설에서는 왜 그가 복면을 쓸 것을 강요받았냐는 의문점을 도제가 그저 왕실 주치의, 즉, 범털(돈 많고 백 있는 복역수)이라서 복면이 씌워진 것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의 복면은 그저 죄수에게 씌우는 용수의 역할이었을 뿐, 딱히 죄수의 신분을 숨기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201. [201] 츠지의 실종 1년 뒤, 산케이 신문 기자인 노다 마모루가 동남아시아 현장에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파테트라오군과 접촉하다 7월 경 하노이로 향한 뒤 실종되었다는 제보를 들었다고 한다. 노다는 직접 북베트남으로 들어가서 츠지 마사노부의 행방을 쫒으려고 했지만 입국 비자가 나지 않아 그 시점에서 취재를 끝냈다.
  202. [202] 각각 도널드 매클린(Donald Maclean), 가이 버지스(Guy Burgess), 앤서니 블런트(Anthony Blunt), 킴 필비(Kim Philby)이다. 왜 이들을 케임브리지 5인조라고 부르냐면, 이들 전원이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이라서 그렇다.
  203. [203] 참고로 이 사람도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이다.
  204. [204] 몰타북아프리카와 매우 가깝다는 점을 들어, 당시에 누미디아라고 불리던 북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던 베르베르인들이 세운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지만, 현재까지 이집트수단 이외의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발견된 문명의 흔적은 기원전 800년경에 지금의 튀니지 일대에 건설된 카르타고를 포함한 페니키아인들의 식민도시가 최초다. 그 이전에는 문명을 이룰 정도로 발전한 문화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후에 신석기 시대인류가 건설한 유적인 괴베클리 테페가 발견되면서, 타르신 신전을 건립한 이들이 꼭 문명을 이루고 산 것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205. [205] 바스크인들의 조상 격 민족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애초에 바스크어이베리아 반도 원주민들의 언어인 이베리아어 간의 비교언어학적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료가 부족하여 바스크어와 이베리아어가 실제로 친연성이 있는 언어인지, 단순한 언어동조대인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또 이베리아 반도에는 이미 기원전부터 켈트족들이 오늘날의 스페인갈리시아에 정착해 살았기 때문에, 타르테소스가 켈트계 국가이거나, 켈트계와 이베리아계 또는 바스크계와의 혼혈인 집단이 건설한 국가였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 이외에는 페니키아인들이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해서 세운 나라라는 설도 존재한다.
  206. [206] 그냥 당대의 네임드 가수도 아니고, 미국인이라면 이름과 노래는 웬만해선 들어봐서 알 정도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207. [207] 텍사스 알렉산더에 대해 흑인라는 점과 텍사스 주의 소도시인 주어트에서 살다왔다는 점, 생몰년도와 출생지까지 몽땅 밝혀져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친족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알려진 내용들도 모두 텍사스 알렉산더 본인의 증언에 의한 것뿐이라서,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208. [208] 텍사스 알렉산더와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네임드 블루스 가수였다.
  209. [209] 근데 사실 김홍도의 말년의 행적도 미스터리이다. 일단은 이미 언급했듯이, '김홍도=토슈사이 샤라쿠' 설은 부정된 상태이나, 1810년 이후로는 김홍도의 행적이 기록에 일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210. [210] 흔히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웠다고 알려진 탕왕에 대해서도 갑골문에선 그저 나라를 중흥시켰다는 기록만 있다. 참고로 갑골문에서 말하는 상나라의 건국자는 삼황오제라고 하는 제곡이다.
  211. [211]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하나라 왕실의 후손에게 기나라 제후의 작위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 등, 하나라의 실존을 확신하고 쓴 기록이 계속해서 보이므로 상나라와 별개의 민족으로서 하나라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된다.
  212. [212] 하나라나 상나라에 대한 연구 자체는 중국티베트어족한족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와도 연관이 깊다.
  213. [213] 물론 사방이 막힌 폐쇄된 섬이었으니, 이런 작은 사회의 특성상 실제로 인권 유린 행위가 있었어도 쉬쉬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전반적인 복지 수준이 괜찮았던 건 사실이다.
  214. [214] 일본 정부가 자세한 진상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서 일부러 못 들어가게 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사실 과거사 청산 문제에 일본 측이 협조적이었다고 해도 건물들이 너무 노후화되어 있어서 붕괴의 위험때문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
  215. [215] 이들이 튀르크 계통이라는 점에서 돌궐의 분파일 것이라는 설은 있다.
  216. [216] 현재 폴란드에 살고 있는, 튀르크계 언어를 사용하는 유대교 신자들인 카라임파가 하자르족의 후손들이다.
  217. [217] 신빙성이 많이 떨어진다. 거의 음모론에 가까운 내용이라서 전문가들도 거의 무시하는 설이다.
  218. [218] 이 설에 따르면, 오다 노부나가천황의 지위를 노릴 것을 두려워해서 공경 및 황족들과 친분이 있던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오오기마치 덴노가 오다 노부나가를 토벌하라는 밀명을 내렸다고 한다.
  219. [219] 도요토미 히데요시혼노지의 변 이후에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한 뒤에 오다 가문 전체를 토사구팽한데서 나온 설이다. 이 설에 의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종용한 뒤에, 정말로 반란이 일어나자 재빠르게 그를 토벌하고는 입을 닦았다고 한다.
  220. [220] 이 설은 예수회를 통해 일본 정계에 포르투갈이 개입하려했다는 설과도 이어진다.
  221. [221] 거기에 히말라야 산맥의 토착어인 부르샤스키어를 쓰던 종족이라는 설도 있고, 시베리아 원주민 중의 하나인 예니세이인과 동계 민족이라는 설도 있다.
  222. [222] 실제로 시바의 경우는 인더스 문명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연구에서 오늘날의 시바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게 묘사된 정체불명의 신을 숭배하고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본래는 인도유럽어족계통의 민족들이 들어오기 전에 드라비다인들이 믿었던 전통신앙의 신이 아닐까하는 추정이 나왔다. 이 설을 원(原) 시바 가설이라고 하며, 이 추정에 따라 비슈누와 그의 여러 아바타라들도 역시 드라비다 신화의 신들이나 영웅들이었으리라는 추정이 나왔다.
  223. [223] 일례로, 베다 신화의 신들 중 하나인 바루나그리스·로마 신화우라노스에 대응한다.
  224. [224]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첫째, 불교힌두교에 비하면 꽤나 금욕적인 부분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불교가 창설될 당시에는 극단적인 고행을 강요받던 수행자들의 수행법을 크게 간소화하여 금욕주의적인 요소를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훨씬 더 후대에 나온 힌두교보다는 당연히 빡빡한 부분이 많았다. 당장 스님들의 음주와 육식이 제한되고, 결혼마저 금지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소고기를 금한 것 빼고는 금욕 따위는 장식에 불과한 종교가 힌두교인 걸 보면 당대의 많은 인도인들이 불교에서 힌두교로 갈아탔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당장 힌두교에서 소고기를 금지한 것도 원래는 불교에서 육식을 크게 제한한 것이 그 기원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브라만교, 힌두교의 유력자들도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불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현재도 힌두교에서는 비슈누의 수많은 아바타르 중에는 석가모니도 있는데 이는 브라만교, 힌두교가 불교로부터 당대의 헤게모니를 탈환하기 위한 의도적 전략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해당 프로파간다를 퍼뜨릴 초창기에야 당연히 불자들로부터는 개소리 취급받을 게 뻔하지만 세대가 교체될수록 이러한 전략에 적대감이 줄어드는 부분을 이용하여 융화 정책을 꾀했던 것. 이러한 전략은 헬레니즘 제국, 고대 로마 등지에서도 자주 활용했던 방법으로 가령 점령지의 이집트인을 포섭한다치면 현지인과 제국 본토의 신앙을 융화하여 제우스+오시리스=세라피스, 헤르메스+아누비스=헤르마누비스 같은 식으로 제국 본토 문화에 손쉽게 복속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이슬람화도 불교에 크게 타격을 주었는데 힌두교야 이미 종교적 헤게모니를 탈환하고 확고히 자리를 잡은 지 오래였으므로 이슬람이 다시 약세가 된 후 또다시 종교적 헤게모니를 탈환할 수 있었지만 불교는 이미 인도에서는 그 세가 많이 쇠약해지고 힌두교에 융화된 부분도 없잖아있었기에 더욱 타격이 컸던 것.
  225. [225] 신화를 재구하는 게 세계사와 아무 관련 없는 것 같지만, 신화의 재구 과정에서 해당 신화를 믿어온 민족의 성립 과정과 그 와중에 밝혀지지 않은 많은 부분을 밝혀내는데 막대한 역할을 하므로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당장 그리스·로마 신화의 기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그리스인과의 동계 민족으로 추정되는 민족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힌두교의 성립 과정을 밝히는 과정에서 인더스 문명을 구성하던 민족에 대한 단서를 하나하나 찾을 수 있었다.
  226. [226] 이 이야기는 《총, 균, 쇠》에 실리기도 하였다.
  227. [227]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취재한 어떤 부족은 나무로 AK-47 모양을 깎아서 자기네 부족의 수호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쓰기도 했다.
  228. [228] 스스로는 '숲 속의 사람'이라는 뜻의 '오랑 림바(Orang Rimba)'라고 칭하며,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말레이화전민 종족이다.
  229. [229] 여자나 아이들이 카메라에 찍히면 부정을 탄다고 믿어서였다.
  230. [230]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쓸모 없어서였는데, 정작 당장 벌금으로 지불할 많은 옷이 없던 벌목꾼들과 그들의 고용주는 취재 당시에 옷 대신 돈으로 벌금을 지불했다.
  231. [231] 동남아시아의 대륙에 속하는 부분인 인도차이나 반도말레이 반도 일대는 물론, 인도네시아필리핀의 도서 지역과 내륙 지역에도 이런 비문명 지역은 수두룩하며, 전술한대로, 이들의 대부분은 가혹한 식민 지배를 피해 달아난 부족들이다. 이런 부족 중의 하나인 라오스말레이계 민족인 라오퉁은 라오스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타이계 민족들의 탄압으로 인해 라오스의 고산 지대로 달아나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그 이외에도 19세기에 청나라 조정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중국에서 라오스 영토로 달아난 소수 민족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미국 지배 시기의 필리핀에서 태어나 자랐던 라몬 막사이사이는 어린 시절에 친미 성향의 필리핀의 지배층들의 착취를 피해 숲속으로 숨어든 부족민들을 만나 그들과 사냥을 하러 다닌 경험이 있었다.
  232. [232]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돼 짤방의 주인공들 맞다.
  233. [233] 참고로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아마존 강을 탐험했던 사람인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본래 유럽의 선교사들이 선교 활동을 위해 투피족들에게 배워서 사용하던 투피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원주민 종족들과 조우한 내용이 나온다. 투피어는 당시 아마조니아 정글 지대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굉장히 널리 쓰이던 언어였고, 따라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콩키스타도르들이나 선교사들도 원주민들과의 우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자주 배웠던 언어였다. 그런 언어가 통하지 않는 민족과 조우한 경험은 오레야나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투피어나 그 친척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아마조니아 원주민 민족들은 많지만,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가 언급한 위치 등으로 미루어보면 그가 접촉한 이들의 정체는 16세기 경의 와오라니족이나 그 조상격 종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마침 와오라니족이 사용하는 언어인 와오라니어비교언어학적인 분류 상으로는 고립어로 들어가며, 투피어투피어족 투피과라니어파로 분류된다.
  234. [234] 그래서 이후에 멀리 대한민국의 방송국인 SBS에서 이들을 촬영하겠다는 제안을 하자, 와오라니족 측에서 흔쾌히 허락해줄 정도가 되어,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아마조니아 편에서 이들의 모습이 방송을 탔다. 뭐 한국에서는 결과적으로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돼같은 흑역사만 남았지만, 비록 SBS 제작진들의 주작이 좀 섞였을지언정 와오라니족들은 굉장히 호의적인 분위기 하에서 자기들의 전통 문화를 상세히 보여주었다.
  235. [235] 일단,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들의 정체를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에 속한 다른 섬에 살던 원주민들 중에서 우연히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로 흘러들어간 부류라고 추정하고 있다.
  236. [236]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은 위의 동남아시아뉴기니 섬 일대와 함께 민속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꼽힌다. 가령, 이곳에는 인도아리아인들이 인도 아대륙에 처음 유입되던 시기에 산악 지대에 정착한 이들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칼라쉬인이나, 이란아프가니스탄 일대에 거주하는 몇 안되는 드라비다계 민족인 브라후이인도 있으며, 고립어부루샤스키어를 쓰는 훈자 지역민 등과 같은 매우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민속학자문화인류학자, 언어학자들에게는 매우 이상적인 연구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지역이 탈레반들에게는 재기를 꿈꿀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되어준다는 게 문제다. 워낙 산이 많아서 은신해 있기에도 적합하고, 외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이들을 꾀어서 자기들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도 있으니, 탈레반을 때려잡으러 온 미군과 정부군의 골치를 여간 썩히는 게 아니다.
  237. [237] 빈란드와의 연관성이 제기된 바 있으나, 빈란드 자체는 14세기경의 소빙하기로 인해 그린란드가 몰락할 때까지 그저 질좋은 목재를 공수하기 위한 장소로만 애용되었을 뿐, 현지 원주민들에 의해 정착지가 정복당해 망한 뒤로는 두 번 다시는 정착이 시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킹들이 동전을 사용하러 그곳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이 동전들은 그린란드의 정착지마저 몰락한 14세기보다 더 이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238. [238] 정확히는 전한에서 후한으로 넘어가는 극초기 시대의 양식
  239. [239] 사마천고자되기와 연관이 깊은 사람이다. 흉노의 대규모 기마 부대를 알보병들만으로 무려 8번이나 막아내었다가, 누적되는 막심한 피해를 견디지 못하여 중과부적으로 흉노군에 항복했다. 문제는 당시 전한의 황제인 무제가 전후사정은 알아보지도 않은 채, 항복한 사실만 가지고 트집잡아서 이릉의 일족을 멸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이 때문에 빡친 이릉이 정말로 흉노에 귀순해버렸다.
  240. [240] 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에 한자가 쓰인 것이 많았다.
  241. [241] 한국에서는 삼태성이라고 부르던 부분이다.
  242. [242] 2014년도 리부트판 코스모스를 보면 선사 시대부터 인류는 사냥과 농사를 시작할 시기와 더불어 당대에는 하나의 과학 이론으로 당당하게 인정받던 점성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계절에 따른 의 움직임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로부터 상식적으로 농부가 자기 땅의 넓이 정도는 알고있어야 할 텐데, 이때문에 고대로부터 기하학에 대한 지식이 중요했다. 꼭 이집트인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문명을 이룩한 민족들은 상당한 수준의 기하학천문학 지식을 갖추곤 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나, 황하 문명, 마야 문명 등이 그 예다.
  243. [243] 피라미드는 아니지만, 당태종안시성 전투 당시에 안시성 공략을 위해 쌓은 흙더미로 된 산의 높이가 성벽의 높이보다도 컸다. 단순히 성벽을 넘어가려고 인위적으로 쌓은 것도 성보다 거대해질 수 밖에 없었는데, 남아있는 피라미드에서 그런 비탈길을 만들었다는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흙으로 이렇게 높은 구조물을 쌓아올리면 구조물 자체가 너무 불안정하여 쉽게 무너진다. 선술한 당태종의 공성용 토산도 난데없이 내린 폭우로 와르르 무너져 버렸는데, 뻑하면 나일 강이 범람하는 이집트에서 건설용 비탈길이 공사가 끝날 때까지 무사했을 리는 없다.
  244. [244] 최근에는 한국의 한 고고학자가 기중기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교롭게도 피라미드 주변에서 기중기의 부품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이 발견된 바 있다.
  245. [245] 당대의 기술로 쿠푸왕의 피라미드같은 무식하게 큰 건축물을 안정적으로 쌓아올리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당장 쿠푸 왕의 선대 왕인 스네프루 왕의 사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스네프루 왕은 엄청난 건축덕후로, 종래의 계단식 형태이던 초창기 피라미드의 모양을 오늘날 우리가 아는 깔끔한 정사각뿔 모양으로 만들고자하는 욕심에 정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는 첫번째 것은 기술의 한계로 인해 폭삭 무너져버렸고, 두번째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놓인 바람에 중간에 비스듬하게 꺾인 모양이 되었다가, 세번째에서야 간신히 우리가 아는 모양이 되었다. 이걸 더 크게 짓는다고 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46. [246] 현존하는 기록에 의하면, 맨 처음 이 피라미드를 도굴한 사람은 압바스 왕조알 마아문인데, 문제는 그가 처음 이곳에 도굴단을 파견했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고 흑심품은 놈들이야 많았을 테니, 벌써 누군가가 털어가지 않겠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술한 대로 미라나 부장품이 있었다가 도굴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알 마아문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는 기록을 남겼고, 이후의 고고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도 피라미드 안에 무엇을 안치한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247. [247] 후자는 피라미드 따위는 장식이고 실제 쿠푸 왕의 무덤은 따로 있다는 설과도 이어진다.
  248. [248] 괴짜 예술가의 예술 작품이라는 설에서, 지역 주민들이 마을에 특색을 주고자 일부러 그렸다는 설, 당대의 사이비 종교 교단들이 제의를 목적으로 그렸다는 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249. [249] 일단 주류 학계는 신석기 시대의 인류가 스톤헨지나, 괴베클리 테페같은 건축물을 짓느라고 사용한 석재를 운반한 흔적이거나, 당대의 농업용 수로라고 추정하고 있다.
  250. [250] 피자게이트 등의 헛소문을 퍼뜨린 인물로, 유명한 가짜 뉴스 단체인 인포워즈(Infowars)를 설립했다. 참고로 이 단체는 어찌나 음모론과 각양각색의 유사과학이 판치는지, 2016년도에 최악의 과학 정보 사이트 4위에 올랐다.
  251. [251] 사실 드넓은 숲 지대는 무언가 딥다크한 것을 은밀하게 벌이기엔 생각보다 적합치 않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상류층들이 모여봐야 말 그대로 친목질 밖에 할 수 없을 것이고, 잘해야 자기들끼리 술 파티나 섹스 파티 정도나 벌이다가 적발되어 망신당하는 수준이다.
  252. [252] 오늘날의 중화권 조직폭력배를 가리키는 말로서의 삼합회중화민국 초기의 혼란기를 틈타서 나타난 조폭들이 이들을 사칭한데서 기원했다.
  253. [253] 오히려 18세기에는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서구권 각국의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뒤에, 이를 출세의 증거로 삼아 세간에 과시하곤 했다. 그리고 현대에는 회원 수가 급격히 줄어든 바람에 SNS를 이용해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는 등, 신비주의 컨셉도 갖다버린지 오래다.
  254. [254]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그 수학자맞다.
  255. [255]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학교 교사라는 인간이 이런 소리를 지껄여서 진짜배기 NASA 소속 우주비행사 출신인 조셉 쿠퍼가 기가 차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작중에서는 이거 다 거짓말이다라는 전제가 분명히 깔려 있으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국가 막장 테크를 탈 정도로 지구 전체가 헬인 상태인지라, 돈이 많이 드는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을 끊으려고 이렇게 거짓된 내용을 가르치는 것으로 나온다.
  256. [256] 참고로 진짜로 아폴로 계획과 관련된 음모론은 이것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폴로 10호 문서와 존 영 문서 참조. 심지어 나라 망신이라고 생각한 NASA미국 정부에 의해 기밀로 지정까지 됐다가 나중에 기밀해제됐다.
  257. [257]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을 까는 에피소드가 네모바지 스폰지밥에서 방송한 적이 있다. '다람이의 로켓(Sandy's Rocket)' 편에서 스폰지밥외계인 음모론에 심취해서 뚱이와 함께 외계인 퇴치약을 뿌린다고 하다가 실수로 다람이 탐사용 로켓을 훔치게 되는데, 당연히 이 둘은 로켓 조종법을 모르기 때문에 달이 아닌 비키니 시티로 되돌아와 버리고 만다. 덕분에 비키니 시티를 달로 착각하고는 집게사장징징이를 포함한 온 시민들을 외계인이라면서 잡아다 로켓에 쑤셔넣고는 집으로 돌아간다면서 달로 가게 된다. 뒤늦게 진상을 깨달았을 때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58. [258] 어린이에게 손을 댄다거나, 비밀스러운 숭배 의식을 치른다거나, 인신공양을 한다거나 하는 썰들은 미국 역사의 여러 황색 잡지와 음모론자들이 대중의 이목을 성공적으로 붙잡아 왔던 의혹들이며 한 사람을 미국 사회에서 가장 철저하게 매장시키기에 충분한 떡밥이다.
  259. [259] 특히 한국의 일부 유사 역사학자들은 단군이 이스라엘 10지파 중 하나인 단 지파 출신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260. [260] 목록에 있는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하나는 '이지아 과거'로, 미스터리가 되었기 때문에 해당 목록에서 삭제.
  261. [261] 우리나라에서는 티파니클럽 33의 회원권을 가지고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262. [262] 당시 디즈니랜드의 스폰서 중에는 코카콜라펩시콜라가 있었다. 양다리
  263. [263] 참고로 회원 가입에 드는 비용은 10,000달러 정도이고, 회비는 3,500달러나 된다. 게다가 회원 가입 승인도 가입 시점으로부터 14년이나 지나야 난다. 올 수 있으면 와 보시게나 대신 여기서 나오는 음식이나 술, 음료의 질이나, 서비스 수준은 그만한 비용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참고로 클럽 33디즈니랜드 내에서는 유일하게 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한다.
  264. [264] 이에 관한 증거는 PD 수첩에서 피눈물에 있는 DNA를 조사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윤 율리아가 예수님의 피를 함부로 만질 수 없다며 이를 피하려고 했던 점.
  265. [265] 이에 대해서는 영화 촬영시에 가 튀는 모습을 연출하는 용도로 주로 쓰이는 특수 염료가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의외로 사이비 종교 신자나 교주들이 자주 사용하는 트릭이다.
  266. [266] 위의 맨 인 블랙도 국가 기밀 유출을 우려해서 조사 중이던 정부 요원을 보고 착각한 것이 와전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부 요원들이야 해야 할 일을 한 거지만, 요원들의 고압적인 자세에 쫄은 이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외계인 음모론 따위랑 헷갈리면서, 외계인의 존재를 숨기려는 수상한 놈들이라는 식으로 착각한 것이, 살이 붙어서 와전된 것이다.
  267. [267] 렌즈형은하나, 나선은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68. [268] 대충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외계인의 우주선같이 생겼다.
  269. [269] 이것도 바닷속에 가라앉은 고대 유적처럼 생겨서 화제를 모았는데, 역시 자연물로 밝혀져서 세간의 여론을 벙찌게 만들었다.
  270. [270] 주로 비밀리에 실시된 군사기술 실험이나 극비리에 개발한 신무기의 시연이 실패한 경우.
  271. [271] 상식적으로 외계인이 진짜로 지구를 방문했다면 이렇게 사람 몇 명 납치하거나, 가축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거나, 그 나라 정부 고관들을 협박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직접 지구를 침략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건 간에 좀더 우월한 기술력을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을 발견하자마자 침략한 사례는 많고, 이미 지구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사례는 흔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아메리카에 처음 도달했을 때는 현지 원주민들이 이나 바퀴만드는 기술력은 없는 대신 너나 할 것없이 황금 장신구로 치장한 것을 보자, 첫 접촉이 있던 시기에 벌써 원주민들에 대한 각종 학살과 고문, 약탈을 자행했다. 잉카 제국 역시 곤살로 피사로, 프란시스코 피사로 일당들에게 그 존재가 알려지자마자, 황제인 아타우알파가 처형당하고 수도인 쿠스코가 도륙났는데, 외계인들이라고 지구인들의 문명을 보고 똑같은 짓을 안 할리가 없다. 코스모스와 같은 다큐멘터리나 E.T., 미지와의 조우같은 창작물에서의 평화로운 접촉은 외계인과의 조우를 너무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272. [272] 영화 '새엄마는 외계인'에서 외계인으로 나온 킴 베이싱어를 떠올려보면 된다.
  273. [273] 한국에서도 산에서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증언에 의하면 그 외계인은 보통의 한국인과 똑같이 생겼고 지구의 환경 오염을 매우 걱정했다고 했다. 한국 UFO 연구 협회에 보고된 사례다.
  274. [274] 명왕성행성에서 왜행성으로 재분류되기 전에는, 있을지도 모르는 가설상의 행성을 제10행성이라고 불렀다.
  275. [275] 대한민국에서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봉하마을에 거주하는 농민들이 자기 밭에다 노무현의 얼굴 모양을 한 크롭 서클을 만든 바 있다.
  276. [276] 대표적으로, 아레시보 메시지의 답변이랍시고 회자되는 크롭 서클이 대표적이다.
  277. [277] 그러나 한동안은 외계의 인공물이라는 설도 꽤 신빙성있게 제기되었다. 애초에 오우무아무아외계인이 만든 무인탐사선이라는 설도 음모론자나 찌라시 언론이 아닌 주류 천문학계, 그것도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연구진들이 처음 제기한 것이다. 이 가설이 나온데에는 본래는 태양계 외부에서 날아온 듣보잡 돌덩어리라고 생각되던 물체의 운동 속도가 느닷없이 가속되는 것을 보고 천문학자들이 충공깽에 빠진 탓이 크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물로 결론난 뒤에도 표면에서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통에 한동안 혜성으로 분류되었다가, 뒤늦게서야 혜성과는 그 특징이 판이하게 다르다는게 밝혀져서 일반 소행성으로 재분류되는 등, 천문학자들을 여러번 엿먹인 천체다.
  278. [278] 폴리네시아 현지 언어들의 조어로 고구마를 쿠우말라(kuumala)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남아메리카안데스 산맥 등지에서 쓰이는 언어인 케추아어로 고구마를 쿠마라(kumara)라고 한다. 이는 폴리네시아인이 오래 전에 남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고있다.
  279. [279] 하지만, 최근에 WISE 우주 망원경의 관측에 의하면, 오르트 구름 내에 행성급 이상의 천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결과가 나와서, 가설 자체가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280. [280] 외계인 성향이 강한 크립티드
  281. [281] 호수 괴물이라고 해도 네시 또는 네시와 비슷한 괴수가 전부로 네시는 사실상 가짜로 판명되었다.
  282. [282]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 아이가 철창 앞에 서 있고, 철창 안에는 검은 배경에 작은 손들이 8개 정도 떠있는 모습이다. 아이의 왼쪽에는 눈이 없는 인형이 서 있다. 색조는 아이와 인형만 밝다.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딱히 무서운 건 없어보인다. 밤에 보면 또 모르겠지만...
  283. [283] 남극에 이 배의 이름을 딴 활화산에레버스 산이 존재한다. 인근에는 테러 호의 이름을 딴 화산인 테러 산도 있는데 이건 사화산으로 판명났다.
  284. [284] 이 표현을 고안한 사람이 다름아닌 스티븐 킹.
  285. [285] 사실 어원적으로 따지면 옳은 번역은 염화(念火)가 아닌 화동(火動)에 가깝다. Pyro(불)과 Kinesis(움직임)의 조합이기 때문.
  286. [286] 1978년에 유네스코 자연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87. [287] 현재 나하니 국립 공원에 가려면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인근 마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가거나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한다.
  288. [288] 그러니까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모금활동 유도가 목적인 건 맞지만, 루게릭병 간접 체험이 목적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289. [289]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공공도서관에서 찍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짤방은 2008년경에 찍은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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