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인종적 다양성을 나타낸 지도

*어두운 노랑: 주 민족이 85% 이상.

*어두운 파랑: 다수인종이 85% 이상.

* 노랑: 주 민족이 65% 이상 84% 이하.

*파랑: 다수인종이 65% 이상 84% 이하.

*밝은 노랑: 주 민족이 64% 이하.

*밝은 파랑: 다수인종이 64% 이하.

출처: CIA World Factbook: 인종 그룹들 2000~2008년 데이터.

1. 개요
1.1. Nation
1.2. Ethnic Group
4. 민족 회의론
5. 민족 실재론
6. 참고항목

1. 개요

民族

'Nation'을 번역하기 위해 근대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로, 하나의 언어, 문화, 풍습 등을 공유하는 집단을 일컫는 말. 영단어에서는 Nation이 국가 중심의 민족을 뜻하나 동양에서는 독일의 Bluntschili의 이론이 주로 받아들여졌고 독일어의 Nation이 영어의 Ethnic Group에 더 부합하기 때문에 Nation을 민족이라고 받아들였다가, 현재는 영단어 Nation과 혼동을 일으키는 상황이다.[1]

본래 프랑스에서 등장한 'nation'이라는 말은 '국민'[2], '국가', '민족'의 뜻을 포괄한다. 이는 '국민'이 스스로 주권을 갖고 특정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식을 갖는데 그 공동체가 '민족'이며, 이러한 '민족'을 단위로 스스로의 '국가'를 건립해야 한다는 이념('nationalism')을 기저에 둔 것이다. 따라서 'nation'은 '국민 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18세기 이래 유럽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에서 출발할 당시 유럽 'nation'과 'nationalism'의 의미는 혈통적인 의미가 아니라 '등질한 특성을 가진 국민 집단'에 관련된 의미였으며, 개인의 권한 보장과도 밀접히 관련된 의미였다. 아마도 '국민성' 정도가 이들을 하나로 묶는 특성과 비슷할 것이다. 이것이 성립된 시기는 반론도 있긴 하나,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과 이로 인한 프랑스라는 Nation 성립으로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광신적인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Chauvinism 또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한편 프랑스 혁명기에 Nation과 Nationalism이 형성되자 이에 반하는 Ethnic적인 정체성도 강하게 형성되었다. 이것이 시작된 곳은 바로 독일로, 프랑스라는 한 국가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있던 프랑스와는 달리,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던 각 제후국들로 분리된 독일의 상황으로 인해 국가와 여기에 속한 국민 대신, 종족집단을 중심으로 한 게르만 민족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19세기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미 유럽은 'ethnic group'의 의미로는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민족에 대응될 수 없어서 '범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와 같은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이 용어를 번역한 국가가 바로 근대 일본인데,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대체적으로 안정된 영토적 구분에 따라 인적 집단의 구분이 이루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혈통적 의미를 품게 된 '민족'이라는 개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단 용어의 수입에서 독일의 Bluntschli의 Nation을 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독일어의 Nation을 민족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한국, 중국 등지에서도 모두 개별적인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근대 민족주의가 확립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이 도입된 결과 기본적으로 '통일적인 국민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nationalism'의 이념 이상으로 '혈통적인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식이 국민 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작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유럽보다도 단일 혈통의 의미를 굉장히 강조하는 의미를 띠고 있으며, 급속도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진행해야 했던 동아시아의 특성상 이념의 강도도 매우 높았다.

다른 근대의 이념이 큰 충격을 받았듯, 전체주의제2차 세계대전은 '민족' 개념에 대한 큰 충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순혈 아리아인'을 자칭하며 인종적 검열을 마음대로 휘둘러 유럽을 뒤흔든 나치 독일의 게르만 민족주의를 지켜본 사람들이 더 이상 혈통 구분에 의해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이는 내선일체를 내세우거나 고고학을 통해 '일본 민족'의 확장을 꾀한[3] 군국주의 일본에서도 일어난 일이었다. 이는 식민지에 강제로 이념을 갖다붙인 제국주의적인 의미가 오히려 강했기 때문에 군국주의의 붕괴와 함께 이러한 이론은 사장되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중국',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민족주의가 번성했다. 한국과 북한이 산업화의 과정에서 '민족'의 단결성을 강하게 추동했고, 중국은 특히 다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민족' 개념이 강조되었다.

현대 한국에도 이 '민족'의 의미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민족단일민족'이라는 명제는 이미 한국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명제이며, 이와 반대항에 선 것으로 취급되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사고 전환도 '한민족의 혈통' 하인즈 워드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사회에 민족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는 사례.

이렇게 민족이 강조되는 이유는 공동체의 단결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다른 공동체와의 구별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탈근대'를 지향하는 학자들에게는 많이 까이는 개념. 민족주의 사학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탈민족주의'라는 말도 화두로서 활발히 제시되고 있으며, 민족 회의론과 민족 실재론이 치고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포스트 모더니즘의 쇠퇴로 민족 회의론 또한 예전만큼의 설득력을 지니지 않고 있으며, 민족 실재론의 반박 또한 매우 강한 실정이다.

1.1. Nation

Nation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국가중심의 민족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근대 민족주의와 연관되는 것으로 국가에 속한 국민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를 의미한다. 보통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유럽 각지에 퍼지면서 19세기 민족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의 국토는 백년전쟁으로 거의 완성되었고, 접경지인 플랑드르, 알자스-로렌 정도만이 프랑스 대혁명 직전까지 영역에 추가된 정도였다. 당시 오일어 계통의 북부와 오크어 중심의 남부는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하였고 그 외에도 로망스계와는 다른 브르타뉴, 알자스-로렌도 프랑스에 포함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들은 모두 프랑스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고, 이는 프랑스와 프랑스인이라는 Nation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즉 오일어의 북부, 오크어의 남부, 알자스-로렌의 독일인, 브르타뉴의 켈트인 등의 종족집단을 모두 묶는 프랑스라는 국가와 이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는 일-드-프랑스 지역의 문화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통합해 나갔고, 이들의 공통성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Nation 중심적인 민족 또한 강해, 제국주의 시기에 이주한 마그레브인이나 흑인들까지 포함하는 프랑스와 프랑스인이라는 사고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4]

하지만 여기서 민족은 한국에서 보통 받아들여지는 민족과는 약간의 괴리가 있다. 근대 일본에서 Nation과 Nationalism을 민족, 민족주의로 번역했는데, 실질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쓰이는 의미는 국민과 국가, 국가주의에 가까웠건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Nationalism의 번역어를 민족주의에서 국가주의로 바꾸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민족주의라고 쓰고 있기 때문에 혼동이 일어나고 있다.[5]

1.2. Ethnic Group

Ethnic Group은 한국에서 말하는 민족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종족 중심의 민족을 의미한다. Ethnic적 정체성은 논란은 있으나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어느정도는 나타났고, 이것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에게 침공당한 독일은 수백개의 제후국으로 나뉜 상태였고, 형식적이나마 그들을 묶어 주던 신성로마제국도 붕괴되었기 때문에 게르만족의 통일된 Nation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물론 독일도 저지 독일어 지역과 고지 독일어 지역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였으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의 결과로 독일어 성경이 만들어 졌고,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을 중심으로 중립적 언어인 표준 독일어가 만들어지면서 종족적으로 분리되어가던 독일인들을 통합시킬 수 있었다. 저지 독일어를 쓰던 지역인 네덜란드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정치적으로 분리되면서 독자적인 표기법을 쓰게 되었고 결국 종족적으로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상황에서 Nation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혁명군의 침공을 받고 라인강 서부의 게르만족 거주지역이 통째로 프랑스에 떨어져나가는 위기를 겪자 독일인들은 프랑스의 민족과 반하는 또 다른 민족의 개념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독일은 프랑스의 Nation에 반하기 위하여 게르만족이라는 Ethnic Group[6]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 정체성을 만들었고, 국가보다는 종족이 중심이 되는 민족과 이로 인한 민족의식을 강화시키게 된다. 그 결과 19세기 내내 독일인들의 통합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결국 독일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즉 독일에서 Ethnic Group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형성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Ethnic적으로 독일인이 중심이 된 국가인 독일 제국이라는 Nation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Ethnic Group 중심의 민족주의는 Nation 중심의 민족주의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발달하였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각 국가들로 분리된 Ethnic Group을 통일된 Nation으로 만들어 Nation과 Ethnic Group이 일치하는 근대적 민족국가를 만들려고 하였으며, 한 국가안에 다양한 Ethnic Group이 산재한 프랑스의 경우는 일-드-프랑스의 문화와 언어를 중심으로 한 통일된 프랑스인을 만들어 내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 학계에서 민족에 관한 논쟁이 예전부터 일어났으며, 프랑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중심의 민족주의, 즉 Nation의 개념을 기반으로 민족과 민족주의의 발달 등을 설명했으며, 독일은 Ethnic Group을 중심을 이것을 설명하였다. 이는 양국의 역사적인 경험 등이 기반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맞다고만 보기가 힘들다. 다만 동북아시아에서 인식하는 민족이 Ethnic Group에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알자스-로렌 문제로도 이어진다. 프랑스의 입장에서 알자스-로렌은 프랑스라는 Nation에 속하는 지역이었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독일인이라는 Ethnic Group에 속하는 지역이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보불전쟁으로 야기된 것이 아닌, 19세기 전반 프랑스와 독일의 라인강 접경 문제 등에서 이미 나타난 것이었다.

2. 민족주의

해당 항목 참조.

3. 반민족주의

해당 항목 참조.

4. 민족 회의론

사실 학계에선 논의를 할 때에 위에서 서술한 대로 'nation'이라는 개념과 'ethnic group'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두 개념이 엄격히 분화되지는 않았으나 후자는 구분을 기하고자 '종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종족은 앞서 언급한 '혈통 상의 민족'으로서 의미가 강한 것으로, 생물학적 인종에 민족의 역사성을 결합해 소위 '근대 국가'의 토대로서의 '민족'과 '생물학적 인종'으로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 별개념의 사회적 집단을 가리킨다. 맥락상 오히려 'nation'이나 인종보다 더 많이 쓰이는 어휘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ethnic group'적인 의미의 민족은 중첩적인 사고가 필요한 개념이므로, 사실 근대에 만들어진 의미가 강하다. 우선 아직 세계의 그 어떤 민족도 기원을 인정받은 예가 없다. 가령 성경에는 유대인이 포함되는 셈족이 전부 노아의 아들의 자손이라 주장하나 사실 입증이 불가능한 성경 속 얘기일 뿐, 분파들이 비교적 친연관계에 있다는 것밖에 밝혀낼 수가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 민족의 기원도 단군이 아니다. 이걸 진심으로 믿는 종자들은 환빠들 정도고, 환빠들도 사실 그렇게까지 어리석지도 않다. 이 넓은 세상 속 수십억 인구가 부대끼는 지구촌에서 특정인으로부터 기원하는 민족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신화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이전의 사이비 과학이 아닌 유전학적인 의미에서 하플로그룹 연구가 대두되어, 혈통적인 민족 개념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되던 구획을 뜯어보니 잡탕 그 자체일 뿐더러, 흔히 등질적인 단일 집단을 상정하던 근거도 많이 흔들리고 있다. 히틀러의 망상과 현실을 대조해보자.

또한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는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다. 투르크만 보더라도 과거 돌궐로 불리던 시절과 지금의 터키인은 유전자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현저하게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같은 범주로 묶일 수 있다지만, 그럼 무굴 제국몽골에서 발원했음을 표방한다 해서 그들이 인도(혹은 서아시아)가 아닌 몽골계 민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민족이 국가의 핵심이라는 생각 또한 근대적인 것이며, 민족이 국가 성립의 절대 요소가 아니라는 것은 고구려인과 말갈인이 섞여 지내던 발해, 몽골인과의 통혼이 잦았던 고려, 여진인을 자국민으로 적극 끌어들인 조선 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위만조선쯤 되면 아예 지배층부터가 중국()에서 넘어왔다[7].

이러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에 단결력을 필요로 한 집단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의도적으로 강조된 성격이 강하다. 이를 통해 볼 때 과연 '민족' 담론을 통한 구획의 순수성을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개별적인 공동체의 형성은 당연히 타자와의 구분을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배제된 중간 지역이나 혼합적인 내용들을 계속해서 배제된 소수자로 놓아 두어야 되겠냐는 것.

즉 '민족'의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평가받는 것들이 실제로는 매우 주관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어떤 '민족'이 학계에서 정의되었다고 해서 그 실체가 후세에도 꾸준히 동질성을 갖고 유지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어떤 민족이든 마찬가지다. 한 민족에서 두 민족이 갈라져나올 수도 있고, 다른 민족에 동화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구성원이 절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정 민족으로서의 '관념'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만 봐도 민족은 다분히 모호하며 관념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절대적인 실체를 갖지는 않는 것이다.

애초에 민족이란 것 자체가 종교, 사상, 국가의 이익 등에 비하면 우선도가 떨어진다. 같은 민족 내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이 벌어진 경우는 충분히 많고, 사상의 차이로 서로를 죽이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국가간, 자신이 속한 집단간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죽였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민족이 실제하고, 만약 실제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민족'이라는 것에 실체가 없다는 것에 대한 예를 들자면, 가령 한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3세와 한국으로 막 건너온 조선족 중에 어느 쪽에 더욱 동질감을 느끼겠는가?"

한국인 중 십중팔구 이상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5. 민족 실재론

한국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공동의 언어·혈연·문화공동체라는 객관적 요소에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더해져 공고해진 실체이다. 즉 양 요소가 서로 맞물리면서 민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민족의식이라는 요소의 생성은 상대적으로 그 시기가 늦다고 볼 수 있으나 공동적인 언어·혈연·문화공동체라는 요소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민족주의의 시작 이전부터 상당히 진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것이 근대에 민족의식과 함께 근대적 민족주의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족이라는 것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 요소들 중 일부만 비판하고 그 일부를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혈연과 민족의식의 문제인데, 혈연은 민족의 정의에서 생각보다 중요성이 낮게 나타나고,[8] 민족의식은 여타 요소와 맞물려 나타났다. 언어의 경우에는 분명 근대의 활판인쇄술과 표준어의 보급으로 소통이 되지 않던 방언들이 일체화하는 경향을 나타내었으나, 그것이 즉슨 민족이 없었으며 완전히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중간다리를 생략하고 단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기존에 가졌던 언어·혈연공동체적인 요소도 분명 나타난다. 위의 회의론에서 언급한 하플로그룹을 얼핏 보면 민족과 혈통이 별 관계가 없다고 보이지만 하플로그룹을 오해한 측면도 있다. 하플로그룹의 각 하플로들은 대다수가 구석기시대에 분화된 것이고, 아무리 민족에서 혈연을 강조한다 한들 대다수의 환빠들 조차도 그 기원을 구석기시대까지 올리지 않는다.[9] 또한 한국의 경우만 봐도 중국에는 만주족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무한 O2b가 30%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일본에는 20~40%를 차지하는 D2가 5%정도에 불과하는 등 혈통적으로 차이를 분명 보이고 있다. 다만 그 경향이 지역에 따라서 다를 뿐이다. 유럽의 경우는 경우마다 다르지만 국가보다는 지역적 차이가 큰 편이고, 동북아는 국가와 민족별로 매우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즉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 민족에 혈통적인 요소는 존재한다. 대신 그것을 입증하더라도 과거 우생학파시즘 시대의 광기에 찬 선동과는 거리가 매우 클 뿐이다.

여기에 민족회의론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광신적인 민족주의의 선동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표어들을 일반적인 민족의 정의인 양 왜곡하는 경우가 상당히 심하다는 문제도 있다. 당장 민족회의론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혈통의 문제에서만 봐도 그리한데, 혈통은 민족을 정의하는 데에 쓰이는 요소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3대만 지나가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단지 정치적인 선동에서 매우 효과적이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도 자신이 유태인 혈통을 지녔음을 인지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속출하였고, 나치는 유태인을 걸러내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서 심사했다. 그러나 그것도 조부모까지 심사고, 그 중에서 심사지 무조건적인 유태인 낙인이 아니었다. 이것은 비단 나치와 유태인만의 문제가 아닌 상당히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민족의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보다는 집단적인 정체성이고, 이는 문화와 언어 등의 요소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10]

혈통에 대한 비난을 한들, 당장 혈통을 그리 따지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 보자. 부모님의 혈통이 다르다면야 신경을 쓰기 쉽지만 그것이 조부, 조모 이상으로 올라가고 외형상이나 문화적이나 스스로의 인식이나 여타 사람들과 차이가 없으면 한국에서마저도 거의 무관심하다. 아니 당사자라도 4대조 이상의 혈통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다시 강조하지만 혈통은 민족의 구분에서 마이너 팩터이지 절대적인 명제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집단적인 정체성이고, 그것이 국가 중심이면 Nation, 종족 중심이면 Ethnic Group으로 나타나는 것이다.[11] 하지만 민족회의론에서는 혈통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또한 한국인의 사례를 볼 때에 그 혈통에서도 민족회의론에 반박이 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배층의 교체에 관해서도 비판이 나오는데, 근대 민족주의의 시작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의 상황을, 특히 영국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해당 국가들의 지배층은 외국인인 경우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것이 근대 민족의 생성과 민족주의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영국의 경우는 그 상황을 감안하여 독자적인 민족 담론을 만들어 나갔고, 문화적으로 피지배층과 달리 놀던 지배층들도 이에 맞춰 해당 시기에 영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발달시켜 나갔다.[12]

또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고 하기에는 한국사의 의병이나 스페인의 게릴라 항쟁, 프로이센의 자유군단 등의 사건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들이 모두 지배계급의 선동으로 인해 봉기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 세세한 기록들을 살피면 본질적으로 외세에 대한 거부감, 혹은 외적들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음이 그 시대에도 생각보다 상당히 강하게 나타났다. 물론 여기에 지배계층의 선동의 요소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민중들의 민족의식이 약한 지역에서의 경우 오히려 그 시도는 참담한 실패로 나타나기까지 하였다.[13] 또한 이러한 저항이 행정적 자금적 지원이 없이 힘들다는 점에서 지배계층의 주도를 단순히 선동이라고 보기에는 전근대의 사회 시스템을 편향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명 배신자나 반역자의 존재를 반례로 들기도 하는데, 당장 목숨과 이득이 걸린 일에 외세에 협조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민족주의가 매우 강했던 20세기 전반기 유럽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수두룩하게 나타났다.[14] 즉 민족의식의 반례로 들기에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배신자의 존재'가 아닌, '배신이라는 의식의 전무'의 영역까지는 가야한다.

더 나아가 생기는 문제는, 민족회의론자들이 민족이 없었다는 근거로 드는 지역들은 역사적으로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약했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민족회의론을 외치는 임지현이 전공으로 한 동유럽이나,[15] 상상의 공동체를 쓴 베네딕트 앤더슨이 주로 연구한 동남아시아[16] 동시기 타 지역과 비교해 유달리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약하게 나타난 곳이었다. 그런 지역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여타 지역의 사건 일부와 결합시켜 민족이 없었다고 주장하면 무리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지역을 서유럽이나 동아시아에 곧바로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말이다.

더 나아가면 민족에 대한 정의와 각 지역의 상황이 맞지 않기 때문에 민족이 상상일 뿐이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정작 민족에 대한 정의는 서구에서도 국가와 학파별로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각 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영미권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그들의 전통에 맞춰 국가 중심에 시민권 및 계몽사상이 강하게 들어간 nation을, 독일의 경우는 수많은 국가들로 나뉘었던 자신들의 경험에 맞추어 종족을 중심으로 한 Nation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다. 이것만 봐도 민족이라는 정의는 각 국가의 역사적 경험에 맞춰 달리 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기준점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당 정의가 서구의 상황에 맞더라도 거기에 맞춰 타 지역을 관찰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각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인문학이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유의하여서 관찰하고 담론을 이끌 필요가 있다.

한편 Nation과 Ethnic Group은 심지어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수백여 개의 폴리스로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헬라스인과 바르바로이를 구분하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헬라스인의 학살 및 노예화가 일어나자 큰 충격을 받기까지 하였다. 즉 Ethnic Group이 어느정도는 형성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대두된 것이 코스모폴리타니즘인데, 현재의 세계시민적인 의미와는 달리 독일 근대 민족주의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17] 코스모폴리타니즘은 폴리스간의 다툼을 멈추고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원정으로 군사적인 허약함이 드러난 페르시아를 폴리스들이 뭉쳐서 공격하여 소아시아를 점령하자는 소아시아를 헬라스인들의 새로운 영토로 개척하자는 사상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단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이 너무 대박을 쳤고, 이 원정이 반은 바르바로이로 보던 마케도니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헬레니즘 시대에 현재의 세계시민주의와 비슷한 의미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한편 로마는 기원후 200여년이 되면 가장 반항적이었던 유태인조차도 종족은 유태인이지만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스인들은 아랍인들이나 투르크인들이 룸인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로마와 비잔티움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각 종족집단은 로마제국 말기 대 위기 때에 이민족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저항했고, 비록 실패하였으나 오랜 기간 로마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즉 로마제국이라는 Nation하에 다양한 Ethnic Group이 산재하는 국가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19세기의 계몽주의-시민의식과 연결되는 민족주의와 일치한다고 볼 수 없으나, 민족이 근대적 산물인가,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반론이 된다고는 볼 수 있다.[18]

물론 민족주의는 분명히 단점이라는게 존재하고 그 때문에 일으키는 문제점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런 비판이 지나치게 나가서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전제까지 가는 것은 논리상으로 문제가 많다.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민족주의의 비판에서 그치면 될 것이지, 민족은 없다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민족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그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6. 참고항목


  1. [1] Bluntschili는 Volk와 Nation의 양대 구분으로 민족을 정의했는데 그는 영어로 번역할 때에 Volk를 nation으로 Nation을 people로 번역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정의에서 Nation은 현대의 Ethnic Group의 정의와 비슷하고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의 정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2. [2]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의미이며, '주체성을 가진 개인'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중요한 기점이기도 하다.
  3. [3] 베이징 원인을 확보하거나 칭기즈 칸 무덤을 발굴하려 했던 시도가 대표적.
  4. [4] 여기서 다문화주의 등을 반박으로 들 수 있겠는데, 프랑스의 다문화주의와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 또한 프랑스라는 Nation의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다. 프랑스라는 동질적인 Nation에 속하는 것을 전제로 이주민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프랑스는 여기서 다양성은 인정하되, 프랑스의 가치관과 프랑스의 공통적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사르코지 이후 일어난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발도 기본적으로 프랑스라는 Nation의 문제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특히 Nation으로 통합이 상대적으로 덜 되어있는 이슬람계가 다문화주의 관련 충돌의 주된 문제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충돌의 문제가 이해가 잘 안되면 브르타뉴의 켈트족이나 알자스-로렌의 독일인의 사례와 비교해 보자. 기본적으로 다른 종족에 다른 언어를 쓰지만 프랑스라는 국가의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하고 프랑스라는 국가에 충성하고 프랑스어까지도 상당부분 받아들이는 브르타뉴인과 알자스인에 비해 마그레브인들은 프랑스라는 Nation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통일성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고 이로 인해 다문화주의와 관련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5. [5] 학술적인 정의에서는 여러 개념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쓰는 국민과 국가에 일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여타 학술용어들도 일반적인 대중의 용례와 엄밀한 정의에서 다른 점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봐도 된다.
  6. [6] 독일어로는 Volk와 Nation이다. 형태와는 달리 독일어의 Nation은 영국, 프랑스의 nation과 의미가 다르다.
  7. [7] 다만 민족이라는 개념이 19세기 말에서야 수용된 만큼 그 이전의 귀화 이민족들은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한 갈래로 봐야 한다는 관점도 자주 제시된다. 물론 이 경우 그렇다면 혈통에 의거한 민족 개념이 타당한가에 대한 반론을 피할 수는 없지만.
  8. [8] 대표적으로 튀르크인을 들 수 있다. 튀르크인은 언어가 비슷하나 혈연적으로 크게 다르다. 하지만 이들도 민족에 포함된다. 단 그 정의가 우즈베크, 야쿠트의 단위일지, 판-투라니즘까지 가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9. [9] 대부분의 하플로들은 3~6만년전 분화했다.
  10. [10] 물론 혈통이 민족의 구분에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11. [11] 혈통이 중심되는 민족도 있지만, 그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고 그 추적도 용이하지 않다.
  12. [12] 위에서 설명한 nation의 문제로, 영국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연합왕국의 구성국 전체와 외부에서 온 지배층, 이주민을 포괄하는 민족의 정의를 필요로 했다. 그로 인해 영미권의 nation의 정의에서 혈통의 영향은 더욱 낮게 나타난다. 설명하자면 복잡한 문제지만 영미권과 프랑스의 민족담론은 또 다르다.
  13. [13] 실제 19세기 중반 폴란드에서는 합스부르크에 반하는 봉기가 시도되자 폴란드 농민들이 그들을 잡아서 합스부르크에 넘겨줬다. 그리고 동유럽은 당시에도 민족의식이 약한 지역이었다. 그중에서도 민족의식이 유달리 약한 벨라루스의 상황은 동양인에게는 이해 불가의 상황을 보여준다.
  14. [14] 2차대전 레지스탕스로 유명한 프랑스만 해도 레지스탕스 이상의 대독협력자가 발생했다. 또한 프랑스인 지원병은 수만명에 달했었다.
  15. [15] 지역별로 달리 나타나나, 벨라루스의 경우는 민족이든 뭐든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볼 수 있고, 대폴란드지역은 계층별로 다르지만 민족의식이 상당히 강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제국의 소속보다 코작으로, 갈리치아는 합스부르크의 통치가 슐라흐타의 통치보다 낫다고 생각, 리투아니아폴란드와의 연합왕국의 영향으로 폴란드적 정체성과 리투아니아적 전통이 19세기에 충돌을 하고 있었다.
  16. [16] 태국이나 미얀마는 중앙정부에 각 제후들이 복속한 봉건왕국 수준이었고,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어를 쓰는 각 종족간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17. [17] 대표적인 인물로 이소크라테스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디오게네스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헬레니즘 이후 시기나, 근대 아나키즘과 더 연관이 깊다. 단 그 단어의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판헬레니즘으로 분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18. [18] 단 근대의 민족은 시민의식 등이 들어간 국민으로써의 정의도 강하게 들어간다는 차이가 있으나, 이것도 각 국가들별로 정의가 다른 경우가 다반사다. 위의 나오는 Nation과 Ethnic Group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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