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범

KBS 9시 뉴스를 진행하는 박성범 앵커와 신은경 아나운서.

朴成範

1940년 3월 17일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1960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였으나, 4.19 혁명 때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제적되었다. 그 후 육군 보병 중위로 예편하였다.

1965년 KBS 기자로 입사하였다.

1972년 KBS 워싱턴특파원을 지냈고, 1974년 KBS 워싱턴지국장을 거쳐, 1975년 KBS 외신부장이 되었고, 1979년부터는 KBS 파리특파원을 지냈으며, 1981년에는 KBS 유럽총국장을 역임하였다. 뉴스에서 파리 소식을 전할 때에는 언제나 멋진 바바리 코트를 입고 나와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1986년부터 KBS 9시 뉴스 앵커가 되었다. 카리스마 있는 진행능력과 똑부러진 말투 등으로 인하여 호평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5공화국 독재정권에 적극 부역하는 땡전뉴스의 장본인으로, 재야과 학생운동 세력의 민주화시위를 '친북', '좌경', '용공'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였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야권에서 주도하는 집회가 사회 불안과 치안질서를 문란시킬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왜곡하여 비난을 받았다.

전두환이 물러나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평화적 정부이양이라는 우리 헌정사의 첫 걸음”, “단임 의지를 거듭 천명해온 전두환 대통령의 약속이 확인되는 정치적 절차이며 전두환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현실화되는,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한 순간”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전두환 시절이든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든 변함없이 이러한 친정부적 뉴스진행을 계속하여, 이제 '땡전뉴스'가 아닌 땡노뉴스를 진행한다고 시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1988년에는 KBS 보도본부 본부장으로 부임하였다.

1990년 정치권 출신의 낙하산 인사 서기원 사장 임명에 항의하는 KBS 노조의 파업에 대응해서 진행중이던 9시뉴스를 송출중단시켜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1991년에는 KBS 방송총본부 본부장 및 특임본부 본부장까지 역임하였다.

앵커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아내가 사망하였다.

1995년 18세 연하의 신은경 앵커와 재혼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해에 민자당 정원식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을 하고 신한국당 서울 중구지구당위원을 하면서 정계에 뛰어 들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중진인 정대철을 누르고 서울 중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 당시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아내 신은경의 도움이 대단히 컸다고 한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대철에게 패하여 고배를 마셨으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아내 신은경의 도움으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역풍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서울에서 속속들이 낙선하는 와중에 거둔 의외의 승리였다.

2006년에는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되었는데, "그의 리더십에 놀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직장악력 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공천비리와 관련해 한나라당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었다. 공천심사에 즈음하여 공천신청자의 인척으로부터 1병에 시가 2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는 최고급 양주 루이13세와 최고급 넥타이, 모피코트, 최고급 핸드백 등 1천500만~2천만원 상당의 물품을 받아 일부 사용한 3개월 뒤에야 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평소 이명박 서울시장과 가까운 편이라는 이유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그 측근인 허태열에게 찍혔기 때문에 고발당한 것이라는 루머도 나돌았다. 그때 "중상모략 세력의 말을 믿고 당 소속의원을 고발조치한 한나라당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그 후 대법원에서 징역형이나 금고형이 아닌 벌금 700만 원의 유죄판결만을 받았기 때문에 국회의원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서울 중구에 나경원 의원이 전략공천되는 바람에,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공천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밝히고 한나라당을 다시 탈당했으며, 아내인 신은경을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대신 내보냈다. 그러나 신은경은 나경원에게 큰 표차로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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