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정치인)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강북구 을)

제19대
유대운

제20대
박용진

현직

이름

박용진 (朴用鎭, Park Yongjin)

출생일

1971년 4월 17일 (48세)

출생지

전라북도 장수군

최종 학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석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77cm A형[1]

종교

천주교(세례명: 베드로)

가족

아버지: 박구희, 어머니: 송복순

배우자

조형숙

자녀

슬하 2남

소속 정당

지역구

서울 강북구 을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0

소속 위원회

교육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약력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장
민주노동당 전국집행위원
진보신당 부대표
시민통합당 지도위원
민주당 홍보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부의장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외부 링크

, (개인)
(재벌개혁), (의원실)
, ,

1. 개요
2. 생애
2.1. 정치 활동
2.1.1. 진보정당 시절
2.1.2. 민주당 합류 이후
4. 여담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는 서울 강북구 을 지역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원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몸담았던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었으나[2]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후 20대 총선 때 비로소 원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등 진보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민주당을 '새누리당 순한맛' 취급을 하며 "배지를 못 달았으면 못 달았지, 민주당으로는 안 간다"고 하는 정서가 제법 강한 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간 특이한 케이스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3]

2. 생애

전라북도 장수군 출생. 1979년 부친의 근무지가 서울로 변경된 후 그는 현재 서울 강북구(당시 행정구역은 도봉구) 소재의 화계초등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했다. 이후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1989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그의 고2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이수호 선생이 결성 주도 인물로 구속되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박용진은 학교 동기생들과 교내 시위를 주도한다. 고등학교 내내 1987년 6월 항쟁 이후 분출된 정치, 사회의 민주화 흐름에 민감한 시절을 보냈다.

1990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학년 때이던 1991년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5월 정국의 말미에 그의 대학 선배인 김귀정이 시위 도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용진은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으로 찾아간 뒤 장례가 마무리 될 때까지 그곳에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1994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 서총련산하 북부총련 의장직에 선출된다. (NL주류 한총련에서 지구총련 의장을 PD계열이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사례.) 그해 6월 벌어진 전국철도기관사협의회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연대 파업[4]을 지원하던 도중 구속되어 첫 번째 감옥 생활을 경험하였다. 100여 일의 수감생활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총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그해 12월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1997년 2월 부산 53사단 해안레이더 기지에서 복무를 마치고 만기 제대하였다. 제대 후 1997년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복학한 뒤 김귀정추모사업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2.1. 정치 활동

2.1.1. 진보정당 시절

대학 졸업 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정치부장으로 일하다가, 1997년 9월 결성된 국민승리21에 언론부장으로 파견되었다. 대선을 마친 뒤 전국연합을 그만두고 권영길을 따라 진보정당 운동을 계속했다. 국민승리21에서 언론부장, 조직부장, 기획부장, 청년사업부장, 청년실업대책본부 상황실장, 대표 수행비서 등을 겸직하며 진보정당 건설에 힘썼고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2000년 1월 문화일보가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人'으로 선정되었다.

민주노동당 창당 직후인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만 29세의 나이로 도전하여 서울 강북구 을에 출마했다. 13.3%의 득표율로 7명의 후보자 중 3위를 기록하였으며 이는 민주노동당의 서울 지역구 출마자 중 최고 득표율이었다. 그 후 최고위원 격인 전국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노동운동을 대표하던 정윤광 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과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등이 그의 경쟁상대였다.

2001년 3월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전국민중대회’에 참여했다가 구속되었고, 2년 1개월 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주년 사면으로 출소했다. 피선거권을 회복하지 못해 2004년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원내 3당이 된 민주노동당은 그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총선이 끝나고 한 달 뒤 복권되었다. 그때부터 2007년 12월 대선 선대위 대변인까지 중앙당에서 활동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에 반대했지만 진보신당이 창당되자 합류[5], 진보신당 후보로 다시 서울 강북을에 출마했으나 11.8%의 득표율로 통합민주당 최규식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10년 진보신당 부대표가 되었다.

3기 진보신당 지도부 중 유일하게 야권대통합에 동의했다. 2011년에 '진보대통합'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2011년 9월 25일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진보정당을 출범한다"고까지 합의가 되었으나, 뒤이어 열린 진보신당 당대회가 합의안을 부결함으로써 결국 '진보대통합' 논의는 무산되었다. 이에 지속적으로 '야권대통합'을 주장하던 그는 진보신당을 탈당하였고 통합진보당 동참 역시 거부했다.

2.1.2. 민주당 합류 이후

진보신당 탈당 뒤 문성근 등이 주도하는 ‘국민의 명령’ 운동에 합류하여 2011년 9월 '혁신과통합' 상임운영위원을 맡았다. 혁신과통합이 결성한 시민통합당 지도위원으로 창당에 함께했다.

시민통합당이 민주당과 통합해 만든 민주통합당에서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해 컷오프를 통과했으나 당선에는 실패했다. 그 후 민주당 대변인, 홍보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의 당직을 지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서울 강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보수로 평가되는 김종인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 경선 국면으로 흐르자,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를 공개 지지하였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20대 국회 2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합류, 전략기획부대표직을 맡고 있다. 20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해 금융당국의 과세 결정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꾸려진 더불어민주당 이건희 과세 TF의 간사직을 맡았다. 또 꾸준히 현대자동차의 세타2엔진 결함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에 현대차로부터 2017년 5월 리콜 결정과 10월 국정감사에서 세타2엔진에 대한 무한보증 약속을 이끌어냈다.

2018년 9월 21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 중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를 평가한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의 보고서가 부풀려 작성된 것을 문제삼았다. 사실상 금융위원회의 묵인이 있었다는 정황도 확인했다.

21대 총선에서는, 바로 지역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재선에 도전하게 되었다.

2.1.2.1.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유치원 3법 발의

2018년 10월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2013~2018년까지 감사적발 유치원 수, 적발 건수, 금액 기본통계 엑셀 파일과 2014~2018년 감사결과 보고서, 감사결과 리스트 엑셀 파일 자료를 공개했다. 이를 통해 비리 유치원 명단이 드러나며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참고. 정무위원회에서 교육위원회로 옮긴지 3개월도 채 안 돼 보란듯이 '큰거 한방'을 날리면서 아래 출신성분+무수한 논란으로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진보적 민주당 지지층에게조차 쌓여왔던 어그로를 한방에 초기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박용진은 이 일로 인해 2018년 국정감사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가 되었고 순식간에 깡세고 할말은 하는 의원으로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지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박용진 빼고 아무도 일 안 했다고 보면 될 정도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일을 잘 했다고 평가가 나왔을 정도. 2018년 10월 23일에는 '유치원 3법'으로 잘 알려진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에 대한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또한 이 일은 결과적으로 박용진이 여당 의원으로서 정부 관료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크게 지원한 셈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결국 유치원3법은 2020년 1월 13일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통과되고 나서 감격스러워하며 동료의원들의 축하를 받고 같은 교육위원들과 포웅을 하며 기뻐했다.

2.1.2.2. 조국 국면에서의 소신 발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의 부정입시 의혹이 불거져 여론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이 조국 보호 일변도의 모습을 보이는 중 조국 후보자에게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한다면 결단이 불가피하다며 소신 발언을 했다. #

이후 유시민조국을 비호하면서 조국 반대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자유한국당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며 조롱하자, 편들어주는 건 고맙지만 오버하지 말라며 비판, "유시민의 20대나, 박용진의 20대나, 지금 20대나 피의 온도는 똑같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얘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

이에 대해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이 "우리가 정치를 하면서 때를 알고 나서야 하지만 나서더라도 말은 가려야 하지 않나, 민주당원이 아니면 조국 후보자에 대해 말도 못 하느냐, 자네 발언이 어떻게 악용되는지 주변을 둘러보라, 제발 오버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조국을 지지하는 친문 지지자들도 박용진 의원을 향해 비토와 더불어 1만건에 달하는 문자폭탄을 날렸다. 뿐만 아니라 다른 조국에 대해 비판하는 민주당 정치인들도 공격대상이 됐다. #

3. 사건사고/논란

  자세한 내용은 박용진(정치인)/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여담

배우 문소리성균관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문소리는 박용진이 2000년 총선에 출마할 때 민주노동당원이 되었다고 한 바 있으며, 지지 활동도 했다.

정의당대선평가 좌담회 때문에 진보정당 원로들[6]이 국회 의원회관에 모인 것을 보고 밥값을 계산하고 나왔다고 한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북 을)

민주노동당

8,381 (13.26%)

낙선 (3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북 을)

진보신당

7,088 (11.68%)

낙선 (3위)

[7]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북 을)

더불어민주당

37,445 (51.08%)

당선 (1위)

초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북 을)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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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페이스북 프로필 참조.
  2. [2] 실제로 이 당시 노회찬 前 의원을 보좌하던 사진도 남아있다.
  3. [3] 다만, 그 당시에는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하나가 이 이외의 정당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강할 정도로 보수정당 계열이 강세였고 민주당계도 이들에게 세가 밀리는 지경이었으며, 진보정당은 맥도 못 출 정도로 세가 약했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한국당 계열의 보수정당 대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계 정당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것이 이상한 점은 아니다.
  4. [4] 87년 민주화 뒤에도 노조 파업이 명목상의 합법화인 지라, 노조 탄압은 계속됐으며, 김대중 정부 들어서야 노조 파업이 사실상 합법화가 됐다.
  5. [5] 창당발기인 336명 중 한 사람이었다.
  6. [6] 권영길 전 대표, 강기갑 전 대표, 천영세 전 비대위원장, 단병호 전 의원,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7. [7] 2000년 2008년 선거는 비록 낙선했지만 진보정당 이름을 달고 지역구에서 이 정도 득표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진보정당의 한계를 느꼈는지 민주당으로 갔지만, 진보진영에서도 그의 당선을 축하하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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