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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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한국수력원자력 No.33

박종진
(朴宗眞 / Park Jong-Jin)

생년월일

1987년 6월 24일 (32세)

국적

대한민국

포지션

윙어, 오른쪽 풀백

출신학교

옥과초등학교 - 강진중학교 - 수원고등학교 - 숭실대학교

소속팀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2007~2008)
제프 리저브 (2008) (임대)
미토 홀리호크 (2008) (임대)
강원 FC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2015)
안산 경찰청 (2013.8~2015.5, 군 복무)
인천 유나이티드 (2016~2018)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2019~ )

국가대표

U-20 : 47경기 / 3골
U-23 : 1경기 / 0골

1. 소개
2. 경력
2.1. 해외 경력
2.2. 강원 FC
2.3. 수원 삼성 블루윙즈
2.4. 인천 유나이티드
2.4.1. 2016년 : 기대 이하의 전반기, 개선된 후반기
2.4.2. 2017년 : 무난함의 극치
2.4.3. 2018년 : 잠깐의 부활
3. 플레이 스타일

1. 소개

대한민국축구선수.

2. 경력

2.1. 해외 경력

강진중학교, 수원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를 중퇴한 뒤 2007년 일본 J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그 해 리그에서 10경기를 뛰었으나, 2008년 자신을 영입하였던 아마르 오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부상을 당하여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결국 그 해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되었으나, 잔부상으로 인하여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다.

2.2. 강원 FC

결국 '2009 K리그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09년 드래프트 2순위로 강원 FC에 입단했고, 피스컵 코리아 2009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첫 골을 넣었다. 이후 강원에서는 최순호 감독이 그를 풀백으로 기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때문에 주전 자리를 얻기는 어려웠다.

2.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후 2010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서동현과 트레이드되었다. 강원에서 온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수원 팬들이 난색을 표하지 않았던 것은 강원 시절 수원의 측면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빠른 발이 주무기이며, 수원에 와서도 이따금 킥을 찰 정도로 킥도 괜찮다. 그렇지만 강원에서 주전을 도맡지 못했던 것처럼, 수원에서도 적당한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 시즌에는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2012 시즌에는 부상을 겪고 2013 시즌에는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런 문제점들로 인해 출장 기회를 원한 박종진은 2013년 8월 16일 경찰청으로 입대했다.

안산 경찰청에서 첫 시즌에는 시즌 막판 합류해 5경기에 나왔고, 그 이후로는 주로 우측 수비수로 경기를 뛰었다. 2014년에는 25경기에 나와서 1도움을 기록했고, 2015년에도 초반 8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2015년 5월 15일에 전역하여 수원으로 복귀했는데... 얼마 안 되어 장기 부상을 당해 경기에 못 나오고 있다.

2.4. 인천 유나이티드

2.4.1. 2016년 : 기대 이하의 전반기, 개선된 후반기

2015 시즌에 수원에서 경기를 뛰지 못 한 박종진은 시즌 종료 후 2016년 1월 17일,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그 이전에 팀을 떠난 김인성의 대체자로 예상된다. 이후 5월에 부상에서 벗어난 박종진은 본격적으로 명단에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기회를 그리 많이는 잡지 못 하고 있고 출전할 경우에도 생각만큼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덕분에 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고연봉자인 박종진이 먹튀로 느껴질 수밖에 없으며, 전임자 김인성과 비교도 되는 모습.

9월 FC 서울 전에서 우측 풀백으로 출전했고 간만에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드디어 팬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위협적인 오버래핑과 안정적인 수비를 고루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쥐가 나서 풀타임 소화에는 실패했다. 그 뒤 권완규가 빠진 기간동안 그 자리를 잘 메웠고, 그의 복귀 후에는 다시 로테이션 자원으로 밀려났지만 이전보다는 전술적 가치가 있는 선수가 됐다. 리그 최종전에서 수원 FC를 상대로 조커로 투입됐고, 김용환의 득점 과정에서 기여했고 스피드를 앞세워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등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며 팀의 잔류를 이끌었고,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인천과 재계약을 맺으면서 2017년에도 인천에서 뛰게 되었다.

2.4.2. 2017년 : 무난함의 극치

2017 시즌에는 초반에 수비를 잠깐 보다 이후 윙으로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풀백으로의 경기력이 비판에 직면할 때 쯤 다시 윙으로 올라가 제 몫은 하고 있지만 이따금 기복이 보이는 것이 흠.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박종진은 공을 끌고 올라가는 것까지는 하는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김용환이 부상으로 빠졌고, 김진야가 대표팀으로 차출된 상황이라 선택이 여지가 거의 없어서 지속적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김진야 복귀 이후에도 박용지, 김진야는 조커로 취급되고 김용환은 윙백 자리로 내려감에 따라 송시우와 함께 선발로 나오고 있는데 경기에서의 영향력은 다소 아쉽지만 관중 호응만큼은 팀 내 최고.(...) 그래도 조금씩 폼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2.4.3. 2018년 : 잠깐의 부활

2018 시즌에는 계속 서브에 머무르다가 5R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좌측 수비수로 배치되어 선발 출전했다. 그러나 불안한 수비를 보여주다가 결국 자책골까지 넣으면서 최종환과 교체되었다.

욘 안데르센 부임 이후 휴식기 동안 꾸준히 기회를 부여받았고, 다시 윙어로 뛰면서 공격 포인트도 기록했다. 시즌 재개막 이후에 다시 서브에 이름을 올렸고, 문선민 부상 이후 윙어 자리에 투입되기도 했다. 강원 FC를 상대로는 이전 경기에서 퇴장당한 김동민을 대신해 좌측 수비수로 선발 출장했고, 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필요에 따라 전진해서 공격을 지원했고, 수비력도 이전보다 나아진 플레이. 하지만 기복이 여전한지 그 이후 수비수로 투입된 경기에서는 또 호러쇼를 펼치고 말았다. FC 서울을 상대로는 문선민 대신 윙어로 선발 출전했다. 팬들이 굉장히 우려했지만, 예상 외로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주면서 상대를 위협했다. 결국 남준재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면서 인천에서의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후반 문선민 제로톱 전술 하에서 스피드 있는 윙어 자원으로 공격을 지원하며 풀타임을 소화했다.

전남 드래곤즈 원정 경기에서도 선발로 출전했다. 초반에 인천이 밀리면서 박종진도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남준재와 위치를 바꾼 이후에는 좋은 위치선정을 보여주면서 영향력을 늘렸다. 그리고 후반전 스테판 무고샤가 슈팅을 하려고 잡아놓은 공을 박종진이 먼저 슈팅으로 연결해서 역전골이자 인천에서의 데뷔골을 기록했다! 물론 무고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어찌됐건 인천은 박종진의 득점을 통해 역전했고 박종진도 그간의 고생을 털어버리는 마수걸이 득점에 성공했다. 직후 임은수와 교체되면서 제 몫을 하고 경기를 마쳤다.

이후 경기에서는 남준재가 부상당한 이후 인천의 기세까지 죽어버리는 바람에 본인도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강원 FC 원정 7 : 0 참사 직후에는 고참의 위치에서 크게 책임감을 느꼈는지 고슬기와 함께 삭발을 감행했고, 이어서 한석종, 곽해성, 김정호도 삭발했다. 선수단 내 분위기의 변화가 주효했는지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팀 전체가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였고, 후반에 투입된 박종진은 같이 경기에 뛴 빡빡이 멤버 고슬기, 한석종과 경기 종료 후 서로 머리를 쳐주면서 기뻐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여러 상황을 볼 때, 팀의 정신적 지주가 남준재라면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선수는 박종진으로 보인다. 박종진은 이전부터 관중 호응을 이끌어내려고 시도하거나 선수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고, 팀 내 영향력이 꽤 큰 고참 선수로 인정받고 있는 듯. 아무래도 이윤표가 팀의 레전드기는 하지만 본인이 리더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다 보니 이런 역할을 남준재, 박종진, 고슬기, 최종환 등이 분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동안 김보섭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면서 서브에 머물다가 김보섭이 퇴장 징계를 받자 경인더비에서 간만에 선발로 나왔다. 그러나 출전 시간 내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문선민의 선제 골 장면에서 상대 수비에게 적절히 스크린을 거는 영리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본인이 공을 잡은 상황에서는 굉장히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어 결국 남준재와 교체됐다.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안정적인 플레이만 노리고 공격에서의 기여도가 지나치게 떨어지는 점이 아쉬우며, 주전 도약에 한계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김보섭, 문선민, 남준재, 쿠비가 자리잡고 박종진의 입지는 많이 위축됐다.

결국 시즌 종료 후 FA 대상자가 되었고,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인천을 떠났다.

2.5. 경주 한수원

이후 이효균과 함께 내셔널리그 경주 한수원에 합류한 사실이 알려졌다.

3. 플레이 스타일

부상 이전에는 가공할만한 스피드를 기반으로 역습을 주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였다. 킥력도 준수한 편이라서 이래저래 활용도가 있었지만, 지구력 면에서 약점이 있어 풀타임을 소화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편 그럼에도 꾸준히 측면 수비수 자리에 기용되는 실험의 대상이었는데, 군 입대 후에는 수비수 자리에서 뛸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만들고, 이에 따라서 필요한 다른 부분들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전역 직후의 인대 부상으로 인해 스피드가 이전에 미치지 못하면서 인천에서의 박종진은 과거보다 파괴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되었다. 사실 그렇다고 마냥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확한 장점도 단점도 보이지 않는 굉장히 애매한 선수가 되었다. 수비수로 쓰기에는 수비력이 부족하고 윙으로 쓰기에는 공격 진영에서의 파괴력이 부족한, 그러나 해당 포지션에 결원이 발생할 경우 그 포지션을 제일 무난하게 메울 수 있는 땜빵 로테이션 멤버 정도가 현재의 위치.

윙어로 뛸 때 제일 문제가 되는 점은 모험을 주저한다는 점. 박종진은 어지간해서는 위험 부담이 있는 플레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점유율 유지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윙어는 측면에서 다양한 움직임을 가져가 상대를 교란하고 스피드를 살려 돌파를 할 필요가 있는데 박종진은 적당히 움직이며 간을 보다가 주변 선수들에게 다시 공을 돌려주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경력이 많은 베테랑인 만큼 종종 센스 있는 움직임이나 스크린 플레이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역습이 아닌 지공 상황에서는 전혀 힘을 못 발휘하는 점이 굉장히 아쉬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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