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대한민국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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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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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 원내총무

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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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박희태

제4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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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원내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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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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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표

제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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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박희태

제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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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노태우 정부 (1988 ~ 1993)

문민정부 (1993 ~ 1998)

제41대
이정우

제42대
박희태

제43대
김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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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박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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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7대
박희태

제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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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김양수

제18대
박희태

제19대
윤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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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희태(朴熺太)

생년월일

1938년 8월 9일 (79세)

출생지

경상남도 남해군

가족

배우자 김행자, 슬하 2녀

종교

무종교

학력

경남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소속

무소속[1]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3, 14, 15, 16, 17, 18

경력

제42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한나라당 당연직 당무위원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윈회 위원장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제18대 대한민국 국회 하반기 의장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새누리당 상임고문
제 13, 14, 15, 16, 17, 18대 국회의원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검사, 변호사, 정치인, 관료, 제18대 국회의장이자 유행어의 선두주자[2]다.

2. 생애

1938년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박상천사법시험 8기로 합격하면서 박상천과는 한 때 정치적 라이벌이기도 했지만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검사로 근무하였다. 검사 시절 폭탄주를 고안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대변인을 역임하며 사법시험 동기 박상천과 설전을 주고받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의 초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곧 맏딸의 편법입학 논란에 휩싸였다. 박희태의 미국 연수 중 태어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던 맏딸은 3살 때부터 줄곧 한국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고3 때 성적으로 명문대에 들어가기 어려워지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특례입학으로 이화여대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박희태는 딸의 편법을 묵인한 책임을 지고 취임 열흘 만에 사임한다. 이후 국회에 돌아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하자 2003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탄핵을 주도하였다. 같은 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또한 2006년까지 2년 동안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 탈락하였다. 2009년 경상남도 양산시 지역구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김양수 대신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2012년 초 고승덕 국회의원이 2008년의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씨가 돈봉투를 살포하였다고 폭로하여 국회의장직을 사임하였고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국회의장 직무를 대행하였다.

2014년 9월 11일, 강원도 원주시의 모 골프장에서 캐디성추행하여 논란이 되었다. 당시 "손녀 같고 딸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것"이라고 해명하여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검찰은 사건을 질질 끌며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결국 기소하였다.

그 결과 1심 재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 받았다. 그 직전에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석좌교수로 재임용될 뻔 했으나, 이 사건 때문에 결국 재임용 철회되는 망신을 당했다.[3]

그 후 2016년 1월 20일, 2심인 항소심에서도 감형 받지 못했다. 현재 박희태 측이 항소를 제기해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이 나겠지만, 이 정도면 무죄나 벌금형은 글렀다 봐야 한다. 인생 말년이 꽤 피곤해질 듯. 상고심에서도 감형 받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이면 당연히 가는 국립묘지 안장 혜택도 못 누리게 된다. 게다가 이미지가 나쁜 성추행범이라 죽어서까지 좋은 소리는 못 들을 수도.

2017년 4월 28일,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의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 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국립묘지 안장 혜택은 날라갔다.

이후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있었으나, 2017년 1월에 인명진 비대위체제가 되자, 새누리당에서 제명되었다. 성추행 사건과 돈봉투 파동을 일으킨 사람이기에 잘려도 싸다는 반응.[4]

여담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김포시 갑에 출마해 당선된 김두관과는 동향으로 꽤 가까운 사이라 한다. 2003년 김두관이 행정자치부 장관에 올랐을 당시 박희태는 한나라당 대표권한대행이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를 향해서는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다가도 김두관 장관에게는 이런저런 덕담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 해 9월 김두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통과될 때 마지막까지 반대한, 몇 안 되는 한나라당 의원이었다.[5] 물론 단순히 고향 후배라서 배려해줬다기보다는 이듬해 선거에서 맞대결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가장 컸다는 게 중론.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민주정의당

46,381 (52.9%)

당선 (1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민주자유당

49,378 (60.2%)

당선 (1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신한국당

49,874 (75.8%)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한나라당

38,615 (59.6%)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남해·하동)

한나라당

34,106 (53.5%)

당선 (1위)

2009

하반기 재보궐선거 (경남 양산 국회의원)

한나라당

30,801 (38.1%)

당선 (1위)

[6]

4. 기타

'총체적 난국'이나 '정치 9단',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등 수많은 관용 표현들의 창시자이다.

부인인 김행자 전 건국대 교수도 한때 논란이 되었다. 1990년 김 씨는 실수로 도서관 책을 무단 반출한 학생에게 "이런 학생은 사회에서 매장돼야 한다" "가정교육이 잘못돼 도둑질을 했다" 같은 말을 했다. 이듬해 이 학생이 자살하자 총학생회 등은 김 씨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둘째 사위인 김형준 부장검사가 2016년 9월 '제2의 진경준 스캔들' 의혹으로 해임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상세한 것은 김형준(법조인) 문서 참조.


  1. [1] 2017년 1월 18일 새누리당 윤리위원회가 제명하면서 당적 상실
  2. [2] 대표적인 게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와 '총체적 난국'.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 참조
  3. [3] 참고로 박희태의 부인이 김행자 전 건국대학교 교수이다. 박희태 본인도 건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4. [4]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이한구 전 원내대표, 현기환 전 정무수석이 같이 제명되었다.
  5. [5] 이 과정에서 일명 '이장 비하 발언'이 나왔다. 서청원, 최병렬 등의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와 골프를 하다가 "우리도 다 같은 촌놈 아니냐. 김두관이도 이장하던 촌놈이 장관까지 되었는데 이번에는 좀 봐주자."라고 말했는데 앞부분이 쏙 빠지고 김두관을 지칭하는 부분만 언론에 나가서 곤욕을 치른 것. (...)
  6. [6] 전임자 허범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 하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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