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글쎄요, 마르크스와 레닌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반공주의자들을 알아보냐고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겠죠."

로널드 레이건

反共主義, 'Anti-Communism'

1. 개요
1.1. 대한민국에서의 반공주의
4. 201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의 분화
5. 오해와 설명
6. 참고 항목

1. 개요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상. 이게 어긋나면 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이 된다.

반댓말은 반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1.1. 대한민국에서의 반공주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 - 이승복 어린이 [1]

이승만 정권에서 군사독재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국시

대체로 일제강점기에도 독립운동가들 중 우익 계열은 좌익 계열의 공산주의자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2] 경계했다.

결국 해방 후 북쪽은 소련군이 들어와 완전히 공산 정권이 자리 잡을 기반이 만들어졌고, 남쪽은 미군이 들어와 일단 민족 우익 진영과 친중/친일 우익 진영이[3] 성립됐으나, 남쪽마저 공산화를 시키려는 친소련 공산주의자들과, 미군정 및 우익들의 대립이 시작되고 좌파와 우파들은 서로에게 테러를 시도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이념으로 인해 갈라져 동료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되는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때까지도 국민들은 그다지 나라 상황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광복 이후 미군정에서 정부 수립기로 가는 과정에서 제주 4.3 사건, 여순 반란사건 등에 의한 좌우 대립 속에서 무고한 사람이 좌익으로 몰려 단체로 죽는 일 또한 빈번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된 결정적 사건은 1950년,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이었다.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를 표방한다는 공산군이 쳐들어와 도시 하나하나를 점령하며 식량을 징발하고, 인민군으로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고, 인민재판을 열어 조금이라도 공권력과 연관이 있으면 모두 처형하다가, 나중에 UN군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은 아예 대놓고 학살을 벌이기까지 이르며, 혼란 속에서 국군 등에게 공산주의자로 몰려 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건까지 벌어지며 사실상 휴전 후 한반도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면 학을 떼는 수준이 되었다. 이북 사람들까지 공산군과 폭격을 피해 단체로 남쪽으로 피난을 오기까지 했으니, 수십만 명이 죽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남쪽의 인구가 북쪽에게서 유입되어 늘어날 정도였다.[4][5]

그리고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며, 휴전으로 끝나게 된 전쟁을 겪은 후 한국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하게 되고, 강력한 반공을 표방하는 국가가 된다. 공산권과의 수교도 거의 전무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때까지 여러 프로파간다가 쓰이기도 하고, 학교나 사회 곳곳에서 반공 교육, 성향이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1970년대만 해도 거의 모든 상업 광고에 반공 표어가 꼭 들어갔다. 이때까지도 북한이 대한민국에게 온갖 공작과 테러, 도발을 벌였기 때문에 국민 정서상 악감정도 컸고, 정부도 반공을 계속해서 표방하였다. 노태우 정부 때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시기였고, 노태우가 공산주의 국가들과 줄줄이 수교를 맺고 외교 관계를 맺으며, 한국에서도 '공산주의를 반대한다' 라는 의미의 '반공'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6]

5공화국이 끝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져 가는 시기에 인식도 점점 반공(反共)에서 지공(知共) 노선으로 인식이 바뀌어 가던 시대 흐름도 있었지만 노태우 정권 때도 반공이 사라지지는 않았고 김영삼 정권까지 반공은 있었는데, 김영삼의 모친이 무장 간첩단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영삼 때만 해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잔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김영삼 때만 해도 반국가행위자에대한특별조치법이나 사상 전향 제도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김영삼 정권 때도 반공은 이어져 왔다. 게다가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이 상당히 강했으며,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이 가져다준 영향도 반공 분위기가 지속되는데 한 몫을 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 들어서면서 반공 분위기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자민련 출신과 민정계 출신 정치인들이 아직 자리 잡고 있어서 반공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북핵위기서해교전이 닥치면서 반공 분위기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이러한 반공 분위기는 옅어졌는데, 북한과의 훈풍이 계속 유지되는 등 남북 간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서 반공 태세는 완전히 사라지는 듯 했지만 이 정권마저도 분위기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4대 개혁 입법 파동을 틈타서 반공 분위기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북한의 1차 핵실험 등으로 반공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는 취임 초만 해도 반공 분위기가 옅었으나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대청해전과 북한의 2차 핵실험, 천안함 피격사건, 5.24 조치, 연평도 포격 사태 등을 통해서 반공 분위기는 되살아나고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왕재산 간첩 사건과 북한이 자행한 사이버 테러 등으로 인해 반공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화되고,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면서 반공 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해졌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면서 반공 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해지는데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정전협정 백지화, 북한이 자행한 사이버 테러,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인해 반공 분위기가 계속해서 강해졌다. 이후 북한 무인기 사건과 한수원 사건을 겪으면서 반공 분위기가 강해졌고 이후에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목함지뢰 도발 사건,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으로 인해서 반공 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해졌다. 이후에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태영호 망명, 북한 여종업원 탈북 등으로 반공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반공 분위기가 다시 옅어진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반공 분위기는 다시 옅어지는데 이전 김대중과 노무현처럼 조금 옅어지거나 완전히 없애지 못한 형태가 아닌, 반공 분위기가 풀리는 분위기로 가게 되었다. 적폐청산의 바람에 맞물려서 반공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듯 했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 등으로 인해 반공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반공 태세가 예전과 달리 기를 펴지 못했다. 남북 단일팀 논란과 김영철 방한 논란으로 반공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지만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에 묻혔다. 파란만장

그러나 북한은 냉전 중에 공산주의의 탈을 쓴 독재 국가(사실상 왕국)를 만든 참이었고, 이젠 공산주의 시절 몇몇 제도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북한과 공산주의를 연관 짓기가 힘들어졌다. 북한은 한국의 경제 성장과 자신들의 경제 몰락, 그리고 공산권이 무너지는 사례들을 보고 나서도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전제군주제 독재 국가 체제를 유지하며, 한국에게 도발을 일삼고 있으며, 한국에선 아직 반공이라는 단어를 쓰긴 하지만 실제 공산주의와는 연관이 적으며, 북한을 편리하게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극우성향을 띈 보수 정당에선 반대자를 무작정 '좌파', '용공' 2000년대 후반에 와서는 종북이란 말로 모는 식으로 말이 오가지만 이를 악용한 '북풍'이 예전만큼 정치적으로 강하게 작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여기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반북 성향이 생기는 걸 북풍이라고 주장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북한이 도발했을 때 반북 성향이 생기는 것과 이를 정치적으로 몰아가서 정치적 반대자를 공격하는데 악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북한은 2009년 헌법 개정을 하면서 헌법의 공산주의 문구를 삭제했다. 즉 반공은 더 이상 북한에 알맞은 단어가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딱히 대체할 단어가 없는 탓인지 계속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선 반공문화로 정의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해도 반공성향이 다시 널리 퍼졌다. 햇볕정책을 비롯한 각종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해준 게 뭐냐는 반감도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전쟁이란 게 쉽게 안 끝난다는 것. 그러나 북한의 도발사태가 이어지면서 북한에 대한 경계에 대해서는 성향을 떠나 동의하는 편이다. 당연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무력으로 이루어지는 게 태반이라 국군이나 한국인들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이건 국민의 안위가 달려 있으니, 정당이라면 좌우 가리지 않고 당연히 신경을 쓰는 부분인 것이다. [7]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주적인 북한 정권[8]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되, 정계에서 정적을 무조건 북한과 연결시켜 제거하는데 쓰는 광적인 반공사상 또한 경계해야할 것이다. 반공은 국가의 안보를 위한 수단일 뿐이지 명백한 불법적/비도덕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만능카드가 아니다.

국가가 안보를 내세우며 반공을 권하는 것이 논란은 있겠으나, 그렇다고 북한이 도발을 펼치는 와중에도 음모론을 내세우거나 정당한 대응이나 안보를 보여도 '또 반공으로 국민 세뇌한다' 라는 반응을 지나치게 보이는 것 역시 좋지 않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선 상당한 무고한 희생자가 있었으므로. 반북한 정서를 이전 정권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쓴 이력이 있다 해도 한국인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행위를 펼치는 북한에 대한 경계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반공에 무작정 반대하는 진보층에게 '한국 장년층들이 반공 성향을 가진 이유는 보수 정권/언론의 세뇌나 교육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잘 살고 있는데 공산당의 이름을 내세운 북한군이 쳐들어와 식량을 모두 갈취하고, 점령지 사람들을 강제로 인민군으로 징집하고, 인민재판에다가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걸 그들이 직접 보고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9] 라며, [10]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에 대해선, 북한의 책임이 아주 크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반공교육도 부작용이 컸는데 국민학교 시절, 반공 프로파간다 영화를 유료로 틀어주지 않나. 반공도서를 강매하게 하여 그걸로 독후감을 내게하고 방위성금비를 강요한다든지 어린시절 반공교육에 대하여 그런 코묻은 돈을 뜯어가서 대체 누가 처먹은건지 궁금하다고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반공영화랍시며 토막나거나 피투성이 시체, 사지절단, 산채로 화장하는 장면 등등 왠만한 고어물 못지않은 장면들이 속출하는 걸 당시 국민학생들이 억지로 봐야 했다. 안보면 선생이 뭐라고 화내며 억지라도 봐야하던 시절이다....

2. 반공 영화

미국은 창의적이게도 반공영화 등을 단순히 공산당이나 간첩과 싸우는 평범한 구성보다는 대체역사물이나 SF 식으로 제작하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인 경우로 일본 및 국내에 붉은 새벽, 젊은 용사들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진 레드 던같은 경우도 있다.

80년대에는 아메리카, 아메리카라는 미국 드라마 시리즈로도 소련이 쳐들어와 미국 민간인이 서로 손잡고 무찌르자 소련~ 이런 구성을 보여준 바 있다[11].

사실 미국의 SF 영화의 범람이 빈발했던 50, 60년대가 반공 정서의 최고조였던 시절임을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외계인들이 악역을 맡은 이유가 외계인=소련이라는 의식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 시절 호러영화에 나오는 우주괴물은 소련에서 만든 비밀병기란 식의 구성도 흔했다.[12]

3. 반공 애니메이션

해당 항목으로.

4. 201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의 분화

전통적인 반공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사용하던 멸칭인 빨갱이는 21세기에 들어서는 보수 측에서도 사용을 다소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되기까지 했었다. 대신 빨갱이란 표현은 촌스러워서인지 잘 쓰지 않고, 좌빨, 좌좀이라는 표현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사실 어느 단어이건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입을 멸칭 하나로 틀어막으려고 한다는 것에서 별로 좋은 말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좌파에도 해당된다.

한편 전통적인 반공주의에는 비판적이지만, 반공(반북)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 역시 상당수 존재하는데, 이러한 연성의 반공은 극우를 제외한 우파~중도우파-반보수-민주당 계열 지지자들, 그리고 군필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이 항목을 비롯하여 나무위키의 대다수의 서술은 명백히 이러한 '연성의 반북'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반북은 기본적으로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우파적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 색깔론과 달리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이슈에서도 "쟤네들이 병신인 것은 맞는데, 어짜피 저따위 사상 믿을 사람도 없고, 오히려 풀어 줘야 우리 체제 우월성도 과시하고, 쟤네들이 혁명가 코스프레 하는 것도 막을 수 있지 않겠냐"라는 식의 논리로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주적인 북한의 위협이 있다는 특수성은 고려해야 해서 지극히 조심히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사람들 정도로 나뉜다.

다만 반북과 반공을 같다고 하는 것은 형식상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제3세계 독재국의 구조로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평가하는 꼴과 같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반소련을 반공이라고 하면 모를까..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반공과 반북을 분리하는 것은 요원치 않아 보인다.

5. 오해와 설명

그러나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조차 흑백논리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등을 겪으며 NLPDR, 주사파 계열의 병크가 반보수적인 젊은 층에게도 많이 알려지고, 북한의 삼대세습과 극단적 행보를 겪으며 2000년대의 반미, 통일 지향적 정서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는 극우반공세력과 이러한 '합리적 반북'세력, 그리고 종북주의자만이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있으며, 반공과 반북에 대해 비판적인 진보주의자는 모두 종북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PD 계열이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전 문단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 정도에 동조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NLPDR이나 주사파가 아닐지라도 진보좌파들은 관점이 다르다. 그러니 뭔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듯' 한 관점이 보이더라도 '네! 다음 종북주의자' 라는 식의 아몰랑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당마다, 그리고 당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정의당[13], 노동당, 녹색당 계열에서는 국가보안법의 완전 폐지는 당연히 깔고 간다.

특정 입장에서 특정 사상이 옳고 특정 사상이 그르다는 식으로 전제를 한 상태에서 시혜를 베풀듯 관용을 베푼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주체사상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토론을 하기도 전에 국가가 뭐가 답인지를 정해 놓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주체사상에 매우 비판적인 좌파들은 우파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사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나 그러한 사상의 표현을 억압하자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와도 같다. 국정 교과서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특정한 역사가 진실임을 이미 국가가 정해 놓는다는 것에 있다면, 국가보안법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가안보와 주적의 존재 때문에 불가피하다고도 하지만, 그것 자체가 냉전반공과 국가주의의 유산이라고 본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것과 별개로, 국가 정통성 운운하는 것을 의미없게 여기며, 해방 전후나 한국전쟁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북한을 악으로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적어도 해방 전후나 한국전쟁 시점에서 남한과 북한은 둘 다 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지, 지금의 정체성에서 추급하여 남한만이 '우리'라고 보고 북한을 타자화하지는 않는다. 그 시대에 갔으면 북한을 택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충분히 많이 있는 것이다.

북한과 종북주의를 비판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반종북주의와 반북의 프레임에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사로잡히는 것은 근본주의, 극단주의, 흑백논리, 진영논리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어떤 것이건 이분법으로 지나치게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6. 참고 항목


  1. [1] 실제로 그런말을 하였는지는 논란이 있다. 진실은 고인만이 알테지만
  2. [2] 우익 독립운동가들의 대체적인 생각들은 '좌익들은 자주 독립을 하자고 말은 잘하면서, 왜 저렇게 소련에 기대려고 하냐' 였거나 아니면 공산주의 자체를 아주 혐오하는 독립운동가들도 있었다. 물론 좌익 측에서도 미국에 의존하는 측면이나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의 장점을 받아들여 우익을 싫어하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자유시 참변. 같은 고려공산당 계열 독립군끼리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로 나뉘어 주도권을 잡겠다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이르쿠츠크파가 소련군까지 끌어들이게 되고 상해파는 몰살을 당한다. 지휘권 하나 잡겠다고 일본에 맞서 싸우는 같은 독립군을 그것도 외국군을 끌어들여 몰살시키는 걸 똑똑히 본 비좌익계 독립군 상당수가 반공주의자로 돌아서게 된다. 또한 우익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주의자들이었고, 독립을 위해 항일 투쟁을 벌였지만 같은 의미에서 소련도 또 하나의 외세로 평가했기 때문에 반공주의의 영향하에 있었다. 아시아주의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동아시아에는 서양과 동양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이들 중 아시아주의가 영 좋지 못한 곳을 스친 사람들이 1930년대에 친일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민생단 사건이다.
  3. [3] 당시 중국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으로 공산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승리하기 전의 우익 성향 국가였기 때문에 한국의 우익 독립운동가는 중국과 연대를 많이 했다. 친일 세력의 경우 국정 운영을 이어간다는 이유로 남북 둘 다 그대로 등용했다.
  4. [4] 게다가 북한 출신의 반공주의자들이 남한에 대거 유입되면서 반공주의가 더 심화되었다. 서북청년단 문서로.
  5. [5] 일각에서는 구 일본군 출신들이 대한민국 국군에 유입되면서 일본군의 반공 구호가 일부 수정되어 그대로 이식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군 군부는 방공협정 체결을 추진할 정도로 반공주의자들 천국이었다. 아니, 일본제국 자체가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이 활개치고 치안유지법으로 공산주의를 탄압하던 반공 국가였다.
  6. [6] 게다가 북한이 공산주의의 탈을 완전히 벗고 주체사상으로 바뀐 데에다, 공산권들이 줄줄이 무너진 지 오래 된 지금은,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것을 척도로 보수-진보를 나누기 어렵기도 하다. 진보 측에서도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보수 측에서도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도입한 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88올림픽 때는 미국이 한국을 좀 업신여긴다고 생각한 피 끓는 젊은이들이 소련을 응원하기도 했다. #
  7. [7] 정말 북한이 저지르는 일을 보고도 '북한이 아니라 정부가 꾸민 거 아니냐' 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을 자꾸 진보 측에서 품어 주거나 두둔하는 걸 경계하거나 싫어하는 진보주의자도 정말 많은 게 이런 이유다. 진보세력도 북한의 도발을 크게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자기 진영 내에서 북한을 두둔하거나, 너무 반정부 성향이 극심해서 음모론을 품는 사람들의 쪽수와 목소리가 더 크다면 그것이 그 진영의 의견으로 비춰지기 매우 쉽다. 통합진보당이 민심을 잃고 다른 진보계열로부터도 버림받은 원인 중에는 지나친 종북적 발언 및 의심스러운 행동의 영향이 컸다.
  8. [8] 국군 기본정훈교육 교재의 정의를 따르자면 북한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북한 공산정권과 북한군, 준군사조직,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국내의 지원•동조세력, 해외의 북한정권 지원세력이다.
  9. [9] 사실 김대중 자신이 6.25 당시 인민군목포시를 점령했을 때 자본가(광복 직후 해운업을 하였다)라는 이유로 인민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할 뻔 했다.
  10. [10] 40~50년대 중년층은 예전에 운동권을 했었던 사람도 많은 세대인데다, 애초에 선거 때부터 덜 반공적인 태도를 보이겠다고 했던 진보진영의 김대중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한 주요 세대여서, 이쪽은 어느 쪽을 딱히 지지한다고 정의하기 힘든 세대라고 보여진다.
  11. [11] 이것도 당시 국내에 비디오로도 나온 바 있다. 미국 서민은 람보라는 구성
  12. [12] 슬라임을 모티브로 한 영화 〈우주생명체 블롭〉은 이런 구성을 비틀어버리는 설정이다. 미국이 생체무기를 실험하다가 생물을 흡수하는 거대 슬라임을 만들게 되자 미국 과학자들은 "이걸로 소련도 뭉개버릴 수 있다!"고 좋아한다. 반공물을 아주 비틀어버린 것.더군다나 영화 안에서 언급이 나오길 그 거대 슬라임들이 나중엔 미국 전역을 덮어 버릴 수 있다고 했다.
  13. [13] 여긴 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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