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

이름

배철수(裵哲秀)

출생

1953년 8월 1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학력

전곡초등학교
경희중학교
경희고등학교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전자공학과 학사

신체

177cm

종교

무종교#

1. 개요
2. 활주로-송골매의 프론트맨
3. 명 DJ로서의 변신
4. 젊음의 행진 감전 사고
5. 트리비아

1. 개요

한국의 가수 겸 라디오 DJ, 전 송골매 멤버. 영어 이름은 자칭 '찰스 배'.[1]

어부들이 제일 싫어하는 가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2] 위 두 가지 이름 드립은 본인도 잘 알며, 가끔 방송에서 게스트에게 농담삼아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2. 활주로-송골매의 프론트맨

한국항공대학교 스쿨밴드였던 활주로의 기타 겸 보컬로 활약, 1978년 TBC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로 인기상을, MBC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은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해당 영상 당시 배철수는 1회 우승자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를 들으면서 "뭐야? 저 정도면 우승이었단 말이야?"라고 생각했고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라는 기분으로 고무되면서 제2회 대학가요제에 참여했다고 한다.[3]

MBC 대학가요제 때에는 대회 직전 드러머가 탈퇴하는 바람에 그나마 드럼을 칠 수 있던 배철수가 임시로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했다. 덕분에 가요제 당시 드럼은 기본 비트만으로 연주되었다고 하며, 배철수 본인은 드러머라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부끄러워한다. 본인의 고백에 따르면 곡 후반으로 갈수록 비트가 점점 느려지는게 느껴진다고...[4]

이후 구창모가 이끌던 홍익대학교의 스쿨밴드 블랙테트라와 합쳐져 송골매를 결성했다. 1980년대 초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락밴드의 프론트맨으로서 성공적인 뮤지션이 됐다.

하지만 뮤지션 생활은 생각보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1985년 보컬 구창모가 송골매에서 탈퇴해 '희나리'가 히트하자 솔로가수로 성공했는데, 비슷한 시기 배철수 본인도 솔로음반을 내기는 하지만 구창모보다는 성과가 아쉬웠다. 아무튼 이후 배철수는 뮤지션으로 계속 활동하는데 자신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며 과감하게 가수활동을 접게 된다. 그리고 송골매는 1990년 '모여라'를 끝으로 사실상 해체 수순에 접어들게 된다.

3. 명 DJ로서의 변신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접으려고 할 때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저녁 6시 MBC FM4U에서 방송되는 2018년 현재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중 하나이자 국내 3사 라디오에서 유일한[5] 영미권 팝 전문 방송배철수의 음악캠프다.

배캠 초창기 때는 아무래도 록밴드 출신이라 당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있던 보이밴드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은연 중에 까기도 했으나 어린 청취자들의 비난공세 이후 최신 트렌디한 팝송도 수용하게 됐다.[6] 현재는 예전 올드팝뿐만 아니라 때마다 최신 트렌드의 팝송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어서 국내 덕후 중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비틀즈, 7080 가요부터 레이디 가가까지 방대한 영역을 커버, 배순탁 작가와 공동 저자로 낸 책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100장의 음반'에서 팝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방송 초기에는 음악을 걸어 놓고 엉뚱한 음악을 튼다거나, 아니면 음악이 나가야 할 자리에 음악이 안 나간다거나, 멘트가 나가야 하는데 멘트가 안 나간다거나 하는 방송 사고도 자주 일어나서 그러다 짤리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지금은 배철수 특유의 원숙미 넘치는 진행에 본인이 손수 스튜디오에서 음향장비를 만지며 음악을 틀어 주는, 그야말로 정감 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뭐 배캠 초창기 때 애청자였던 여고생이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 아이도 배캠을 듣는다는 사연은 그냥 예삿얘기. 오오오.

DJ 초창기부터 그 이전까지는 '전하는 말' 등으로 돌려말하던 것을 직설적으로 "광고~ 듣겠습니다"라고 말하여 화제가 되었었다. 또한 1991년 당시 너바나[7]Smells Like Teen Spirit를 소개하면서 했던 "미국 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라는 멘트도 매우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정작 배철수 본인은 이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

25년 동안 배캠을 하면서 배철수는 20년이 넘도록 예고 없이 방송 펑크를 내거나 지각하는 일이 없었으며, 건강에 문제가 있는 날에도 오프닝과 엔딩 멘트만 하고 음악을 내리 틀지언정 방송을 쉬지 않았다. 물론 휴가나 출장을 가는 동안 친분이 있는 뮤지션이 대타 DJ를 맡는 경우는 왕왕 있기는 했지만. 그러한 성실성과 열정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프로그램을 만든 건 당연하다.

또한 배캠을 맡으면서 배철수 본인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먼저 배캠을 통해 결혼에 골인했다는 것. 배캠의 첫번째 PD였던 박혜영 前 MBC 라디오본부 부국장, 현 MBC 사회공헌실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과거 방송분을 틀어줬는데 괜히 상관없는 상황에서 '박PD는 어떤가요?' 등으로 자주 찝적(?!)대던 것이 결국 결혼까지 골인하게 됐다고. 물론 유세윤은 "라디오를 오래 하기 위한 거 아니냐"라고 깐죽댔다

그리고 20여년 한결같이 배캠을 지켜온 덕택에 성우를 연상시키는 멋진 목소리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내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담배도 끊었다고 할 정도. 이것은 정말 방송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우리말 맞춤법이나 외국어 발음 문제 등에도 관심이 많아서, 특히 게스트가 같은 말을 계속 틀리면 말을 끊고 지적하기까지 한다.[8] 이런 안정된 진행 덕택에 현재는 배캠 외에도 KBS 콘서트 7080도 오랫동안 진행해 오고 있다.

2010년 3월 19일로 20년을 맞이한 음악캠프의 시그널송인 롤링스톤즈의 'Satisfaction'[9]은 현존 최장수 시그널 타이틀[10]이며, 역시 거의 20년 동안 계속 출연한 임진모 평론가도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최장수 게스트.[11] 국내 유일한 팝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으로서 수많은 팝스타들이 내한 시에 (내한했다 하면 거의 유일하게 출연하는 라디오방송) 방송에 참여했다. 심지어 빌보드 Hot 100에 오른 대한민국 모 가수도 배캠에 출연하면 외국 팝스타처럼 모시겠다고 이야기했다 카더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0년 10월 29일 MBC 라디오의 명예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골든마우스를 수상했다.

4. 젊음의 행진 감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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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활동 당시의 감전사고는 방송사고를 소개할 때마다 단골처럼 나오는 사례며 이를 대한민국 최악의 방송사고 2위로 보는 사람도 많다. 실제 방송사고를 직접 보도하기에는 너무 잔혹해서 방송심의에 벗어나려는 가짜 자료화면을 썼을 정도였다. 1983년 KBS '젊음의 행진'에 생방송으로 출연해서 기타를 치면서 '그대는 나는'을 부르려고 마이크를 바로 잡으려다 감전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후일 난타로 유명해진) 송승환이 당황한 채 뛰어들면서 말을 더듬는데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들었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무대 조명을 끄는 등 난리가 아니었다. 카메라는 배철수를 잡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관객들은 충격을 받고 소리를 지르는 등 녹화장은 초토화된 상태였다.

게다가, 손은 다 터져서 피가 났고 몸에서는 경련을 일으킬 만큼 매우 위험천만한 사고가 벌어졌다. 이 때 오히려 손이 먼저 터지는 상처 덕분에 심장이 터지지 않아서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고 한다. 감전사고는 대개 즉사까지 가기 때문에 이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례다.관련기사 그리고 그의 감전 사고 이후부터 '젊음의 행진'은 생방송에서 녹화방송으로 전환되었다고 하지만, 곧바로 녹화로 전환된 것은 아니고 1986년까지는 생방송을 했다.[12]

그 뒤 감전사고 이후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는 등,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고생을 한 적이 있으며 30년 남짓 지난 현재에도 아직도 손에 흉터가 남아있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담으로 비슷한 시기 공교롭게도 자동차 추돌 사고를 당했던 해태 타이거즈김봉연 선수가 사고부위를 가리기 위해 배철수처럼 콧수염을 길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13]

감전사고 이후 KBS와 원만히 해결했는지 1988~1994년까지 사용한 '젊음의 행진' 오프닝 시그널을 직접 만들어 송골매의 연주로 불렀다. #

그리고 시간은 어느덧 흘러 2013년 4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패널로 활동하는 남궁연이 "후배들이 모여서 뭐 하나 추진하려는데 괜찮겠느냐..."라고 운을 띄우곤 궁금해진 배철수가 뭐냐고 묻자 이름하야 '감전 30주년 헌정 콘서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남궁연은 "이미 김도균, 신대철 등 섭외 끝났고 형님이 나오셔서 피날레 하셔야 한다"고 농담섞어 말했는데, 배철수는 좋게 좋게 대해줬더니 사람을 뭘로 보나 싶어 나중에 진지하게 화냈다. 비록 장난식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본인에게는 생명이 오고가는 사고였는데 이를 헌정하는 공연을 하려고 했으니... 남궁연 씨 입장에서는 다행히 사고가 별일 없이 마무리되어 오랜 시간이 지났고, 워낙 친한 사이여서 한 농담이겠지만...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고 나서 몇 주 뒤 게스트에서 잘렸다[14]

이 사고는 접지 하나 제대로 안해서 일어난 사고로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사고로 가수 하나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후로는 가수의 매니저는 무대에 접지 설비가 제대로 되어있는지 깐깐하게 따져서 접지가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조치가 될때까지 가수를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5. 트리비아

비틀즈렛잇비앨범 커버 이미지에 조지 해리슨을 지우고 합성한 사진.[15]

  • 아버지는 평안남도 평안 출신으로 해방 직후 월남해 결혼한 뒤 배철수를 낳았다. 군납업을 하며 한때 돈도 꽤 벌었으나 배철수가 국민학생때 사업에 망한 뒤로는 가정에 책임감이 없는 분이 되셨다고 한다. 온가족이 아버지 친구집에 얹혀 살기도 했는데, 그 친구분도 판자집 살림(...)이었다고하니 배철수네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난에 시달리던 배철수는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진학 대신 공장에 취직하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는 말리기는 커녕 별 내색을 안 했다고 한다. 암묵적으로 동의하셨던 것. 어머니는 당연히 펄쩍 뛰며 반대하셨고 결국 학교에 진학하는걸로 결론이 났다고. 국립 한국항공대학교에 진학한 것도 등록금이 없고, 책과 교복 등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대학교 시절 공군 ROTC를 1년 정도 한적이 있었다. 그만둔 이유는 공부를 하도 안 하는 바람에 학점이 안 되어서 일방적으로 잘렸다고(...). 이후 군대는 육군 사병으로 갔는데 "일반하사"라는 제도를 통해 하사로 임관해서 군복무를 마쳤다.[16]
  • 젊은 시절에는 밴드 인기에 힘입어 영화에서 연기도 몇번 했다. 주로 대학생 역으로 나오는데, 당시에도 얼굴은 이미 지금과 별 차이가 없는 굉장한 노안이다(...). #영화 '대학 괴짜들 84' 출연장면
  • 방송인 배칠수는 '배칠수의 음악텐트'라는 인터넷 방송의 패러디 프로그램을 통해서 배철수 성대모사로 데뷔했다. 배철수는 배칠수를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일요일 3~4부 꼭지였던 '사람과 음악'의 청취자 게스트로 몇 차례 초청했고, 이를 계기로 배칠수가 공중파 방송에 데뷔할 수 있었다. 현재도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서 배칠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목요일 3부 꼭지인 '철수와 칠수'의 게스트로 오랫동안 나오기도 했다. 오오 대인배. 그래서 그런지 배철수가 휴가라도 가면 배칠수가 대타로 나와 배칠수의 음악텐트 드립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쪽은 끝난지 10여 년이 넘었다
  • 배철수의 만화열전에서 발군의 해설 능력을 발휘했고 이 프로그램은 라디오 드라마로는 전무후무하게도 MP3 파일로 웹하드에 돌며 애청되고 있다.
  • 유명한 비틀즈. 특히 그 중에서도 조지 해리슨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확실치 않다. 또한 콧수염 덕에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사진과도 적절한 싱크로를 자랑한다.맨 위의 이미지만 보더라도... 그리고 딥 퍼플 역시 빠심(?)이 대단한데, 배캠에서 심심하면 'Soldier of Fortune'을 틀어줄 정도. 딥 퍼플이 배캠에 직접 출연했을 때는 직접 마중나가서 존경의 의미로 폴더인사를 했다고. 또한 데이빗 보위의 팬이기도 한데, 방송 중에 공공연히 팬임을 밝히곤 했다. 롤 모델이라고도 했던 적도 있으며, 보위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품을 언급할 때마다 조금씩 감정을 다스리고 진행할 정도였다.
  •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쿨함을 자랑한다.
  • 배캠을 진행해오면서 갈고닦은 목소리로 성우 뺨치는 내레이팅을 선보인다. 애플 아이패드 2의 한국 광고 성우를 맡고 있다.보통 애플 코리아에서 고용한 성우보다 목소리가 더 간지나는 건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그러하다. 전문성우도 아닌거 같은 목소리가 애플코리아 직원인지, 그 팍팍한 목소리를 듣다가 배철수의 목소리로 듣는 광고는 그야말로 품격과 적확성을 더했다는 평가. 이에 대항해서 삼성은 모 말을 닮은 가수를 광고 성우로 고용하는데...
  • 통역 태인영, 평론가 임진모과 함께 엠넷에서 매해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를 중계한다. 통역 태인영은 해외팝스타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할 때마다 나오는 인물이다. 역시 음악캠프 장기근속자 중 한명.
  • Nirvana를 니르바나로 발음한다. 또 케이블 방송 채널 엠넷을 엠네트라고 발음하기도. Nirvana를 니르바나라고 발음하는 것은 산스크리트어 원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같은 방송국에서 2시의 데이트를 진행했던 윤도현도 같은 발음으로 부르기도 했다. 만화가 박무직도 만화에서 "니르바나가 맞는 말이지, 영어로 부르는 건 어림도 없다. 그러면 한국 이름도 영어 발음으로 바꿔야 한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산스크리트어를 통해 외래어로 들어온 영어 단어 'nirvana'는 사전에 등재된 발음이 '니르바나' 내지 '니어바나'다.
  • 본 조비 는 "좐 봔 좌비"로 부른다. O발음을 거의 'ㅘ'로 발음한다. 애초에 'ROCK'을 '롹'이라고 부르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 친동생 배철호는 방송PD로 1979년 TBC에 입사해 KBS를 거쳐 SBS 제작본부장까지 지낸 베테랑 프로듀서다. 2015년 7월 1일부터는 MBN 제작본부장으로 재직 중. 그래서인지 배철수는 2017년 2월 16일부터 MBN의 정치 토크쇼 판도라라는 정치토크쇼 MC를 맡고 있다.
  • 운동은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고 하며, 축구 및 구기 종목에 능하다.[17] 특히 탁구를 상당히 잘한다고 하는데, 방송에서 직접 밝히기로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탁구장에 출근부를 찍으며 살았다고 한다.
  • 1991년, 배철수의 음악캠프 PD였던 박혜영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큰아들은 연세대 건축학과를 전공했으며 입대 전 연세대 록밴드 '소나기'에서 기타를 쳤다고 한다. 둘째는 2018년 대학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1. [1] 과거 장항준 감독은 톰 크루즈라고 부른 적도 있다. 한국의 흔한 이름 철수는 미국식으로 하면 톰, 배는 크루즈. 따라서 배철수의 영어 이름은 톰 크루즈라는 의미다.
  2. [2] 반대로 어부들이 좋아하는 정치인은 안철수라는 베리에이션도 있다("안"(No) 철수).
  3. [3] 사실, 제2회 대학가요제에 참여한 가수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4. [4] 일각에서는 후배인 장기하와 드러머 출신으로 엮곤 하는데,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장기하가 기타를 연주하긴 했지만 장기하를 기타리스트 출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근데 장기하는 눈뜨고코베인의 드러머 출신이다.
  5. [5] SBS 파워FM의 팝 스테이션의 경우 2017년 봄 개편 이전까진 팝만을 선곡했던 적이 있지만 봄 개편 후인 지금은 가요도 선곡한다.
  6. [6]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당시에는 음악은 곧 락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락은 음악의 여러 장르 중 하나다."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7. [7] 배철수는 니르바나라고 발음한다.
  8. [8] 팝·가요 칼럼리스트이자 문화평론가 임진모가 가끔 실수할 때 투닥거리는게 대표적이다. 뭐 이 두 분은 배캠에서 재미있게 투닥거리는게 콘셉트니까(...)
  9. [9] 다만 원곡은 아니고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걸 틀고 있으며, 첫 방송때부터 현재까지 시그널이 동일하다.
  10. [10] 언젠가 방송에서 말하길 Satisfaction 이 곡이 시그널송이 된 유래는, 시그널송을 뽑기 위해 여러 장의 음반을 쌓아 놓고 고민 중에, 그 때 지나가던 가수 김수철이 '형, 이 곡 어때?' 라면서 뽑아줬다고 한다. 선곡까지도 탁월.
  11. [11] 배캠 항목에 보면 17년 정도 됐다는 얘기도 있다.
  12. [12] 여담으로 2006년 개그 콘서트 봉숭아 학당에서 이 사건이 재현될 뻔했다.
  13. [13] 사고 시기는 배철수가 더 앞섰다. 배철수는 1983년 3월, 김봉연은 프로야구 전기리그가 끝난 직후 올스타 브레이크인 7월에 각각 사고를 당했다.
  14. [14] 사실 감전당한 것 그 자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철수 본인 또한 상상플러스에 출연했을 당시 그 때의 감전사고가 언급이 되자 그 일을 회고하며 "감전당하면 굉장히 기분나빠요."라고 대 놓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당시에도 가짜 자료화면을 썼던 것은 덤이며 손이 다 탔다고 본인이 직접 언급한 것도 이 시기였다.
  15. [15] 공교롭게도 조지 해리슨은 동명의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 Let it Be에서 녹음을 하던중 마이크를 잡았다가 전기가 통하여 다치진 않았지만 당황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16. [16] 배철수의 만화열전 고우영 삼국지 편 57화에서, '나는 병장 때 이러지 않았다. 아니, 병장 계급장을 달아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육군 하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라고 대놓고 말한 적이 있다.
  17. [17] 유로 2000 당시 배캠에서 네덜란드 대 이탈리아의 4강 경기를 평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네덜란드 역대 최고의 공격진을 막아냈던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를 보고 너무 실리적으로 플레이하는 게 아니냐며 경기를 평하기도 했다. 근데 그런 이탈리아 수비진도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진이었다 네덜란드 팀을 응원했던 걸로 봐선 공격적인 축구를 좋아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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