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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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베이징 성의 정문인 톈안먼(天安門, 천안문)

베이징 중심부 풍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베이징 내셔널 스타디움

영어위키백과에서 북경의 행정구역 보기

중국어 : 北京

한국 한자음 : 북경

영어 : Beijing, Peking[2]

프랑스어 : Pékin, Beijing[3]

일본어 : 北京(ペキン, Pekin, 페킨)[4]

독일어 : Peking, Beijing[5]

스페인어 : Pekín, Pequín, Beijing[6]

라틴어 : Pechinum, Pekinum, Xuntienum[7]

1. 개요
2. 역사
3. 자연 환경과 기후
5. 교통
6.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6.1. 우다오커우
6.2. 왕징
7. 경제
8. 문화
9. 베이징 성
10. 베이징의 랜드마크
11. 여담

1. 개요

(지도가 위성사진과 어긋나 있는데, 이건 중국 정부가 구글에 지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가 필요하다면 구글보다는 바이두 맵을 이용하자. 훨씬 정확하고 업데이트도 잘 된다. 사실 구글은 바이두에 밀려 중국에서 철수한지 오래다.)

중국수도. 한자 표기를 한국어식으로 읽으면 북경이 된다. 인구는 2012년말 기준 약 2,060만. 면적은 무려 16,808km²로, 휴전선 이남의 강원도와 크기가 같다.[8] 참고로 인구 1,000만의 서울 면적은 605km²다.(…) 서울의 28배에 가까운 면적에 2배의 인구가 상주한다.[9]

공산주의 국가답게 베이징은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며, 베이징에 사는 사람들도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만 거주가 허가되었었기 때문에 베이징 시민이라는 것 자체로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매체에서는 베이징 후커우(戶口 - 주민등록증)로 누릴 수 있는 복리혜택 가치가 100만 위안(우리 돈 약 2억원)이 넘는다고 보도할만큼 베이징 후커우를 갖고 있다는건 특혜를 받는 신분 계급의 상징이며 심지어 '귀족 신분증'으로 불릴 정도였다. 중국의 후커우 제도는 무척 엄격한데 그 중에서도 수도 베이징의 후커우는 취득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어려웠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베이징 출신은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베이징에 가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사판 인부, 건물 경비원, 청소부, 파출부(중국어로 阿姨(아줌마)) 등의 단순 노동직 종사자 중에는 베이징 출신이 많이 없다. 대부분이 타 지방에서 돈 벌러 온 사람들. 베이징 출신이거나 베이징 거주가 허가된 사람들은 그런 일에는 거의 종사하지 않는다. 다만 집 한채씩 가지고도 그냥 건물 청소하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다. 완벽한 북경어를 사용하면서 청소하는 사람들의 경우, 말을 걸어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가 산 집이 어디에 있는데 지금은 얼마더라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베이징 후커우에 대한 자세한 설명 관련 기사

후커우로 인한 베이징인과 외지인 사이의 극심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베이징 후커우의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앞으로 후커우의 위세가 낮아질 것으로 보이고 점차 내려가고 있다. 정확히는 후커우의 혜택을 줄이면서 외지인도 거주 허가를 받는 경우 베이징인과 비슷한 혜택을 주는 정책도 같이 사용한다. 현재 가장 후커우를 얻기 쉬운 방법은 개발중인 몇몇 베이징의 외곽 지역의 집을 사면 된다. 베이징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살지도 않을 거면서 지방에서 부자들이 후커우 얻기 위해 집 사는 경우도 은근 많다. 베이징 땅값이 잘 안 떨이지는 이유. 베이징 후커우를 가진 사람이 비교적 잘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만큼 후커우가 초상위계층을 말하진 않는다.

땅값이 비싼 걸로 홍콩을 제외하고는 베이징이 세계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아졌다. 거주시설은 그나마 조-금 덜 비싸지만 회사나 가게 등의 상용시설은 가차없다. 상용시설의 경우, 외곽지역이라 할 수 있는 5환 지역들 가격 조차도 한국의 3대 상권이라는 홍대거리 및 그 주변보다 비싸다. 거주시설의 경우 월세가 최소 몇 백만원부터 시작해서 최대 몇 천만원까지 수두룩하며, 아파트는 중심부도 아닌 4환 지역 아파트 1채 가격으로 서울의 강남 아파트 1~2채는 살 수 있다(2016년 기준). 이렇다보니 중심 지역인 2환, 3환의 땅값은 얼마를 상상하건 그 이상이며 차라리 모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지경(…) 다만 살인적인 집 값에 비하면 월세가 신기하게도 싼 편이긴 하다.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중국의 평균적인 노동자가 330여년(...)을 한 푼도 안 쓰고(...) 일해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베이징에서 월세까지 올린다는 건 다 같이 죽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집 값에 '비해서는' 월세가 싸단 얘기고, 왕징 같은 한국인 거주구역은 방 2-3개짜리 가족 단위 아파트 월세가 2-300만원은 가뿐히 넘어간다. 이런 데도 2016년만 해도 4월말 기준으로 연초대비 이미 10퍼센트 이상은 올랐다.

2. 역사

춘추전국시대에는 연나라의 수도로 이후로도 '연경(燕京)'이라 불렸다. 또한 계(薊)라고도 불렸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영어로는 Peking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Peking은 北京을 광둥어로 읽은 발음을 표기한 것으로, 영국 등 서양과 교류가 활발한 광둥 성 지역의 영향 때문이다. 이런 탓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의 작품 '베이징으로부터의 편지'도 영문 번역으로는 'Letter from Peking'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의 공항 코드가 PEK인 것도 여기서 따 온 것. 또 유명한 난징대학살도 영어로는 'The rape of Nanking'라고 번역된다. 현대에는 수도 중국 베이징의 표준어인 만다린의 발음을 따르기 때문에 관화 발음인 Beijing으로 변화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 왕조들의 북방의 요충지였으며, 전연, 후연, 북연 또한 베이징이 소속한 허베이성(河北省) 일대를 근거지로 하였다. 수양제가 건설한 대운하의 북쪽 종점이자 고구려 원정에서 최후방 보급기지였던 탁군은 현재 베이징 근처였고, 당나라 대에는 북방 방위의 거점으로 중시되어 안사의 난에서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킨 범양 또한 현재의 베이징 근처에 있다. 요나라때에 대도시로 자리잡았으며 금나라는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원나라 역시 이 근처에 수도를 정하고 '대도(大都)'라고 불렀다.

최초로 이곳에 도읍한 한족 통일 왕조는 명나라인데,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제가 된 영락제가 연왕 시절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에 명은 수도를 남경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자금성도 이때 조성하게 된다. 명이 멸망한 이후에도 청나라가 도읍을 심양에서 옮겨와 그대로 수도 역할을 이어갔고, 그 이후 중화민국이 수도를 난징으로 정함에 따라 잠시 원래의 이름인 베이핑(北平)으로 개칭된 적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던 천안문광장이 이 곳에 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 후 건설붐이 일어 도시가 대규모로 정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중국본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중화민국 측에서는 아직도 베이징(北京)을 베이핑(北平)으로 부르고 있다(영어로는 Peking을 그냥 썼다)...[10][11] 마치 북한 김책시를 대한민국이 성진시로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 하지만 명목상으로만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대부분의 대만인들도 베이징이라 부른다.

이름답게 중국 기준에서는 북쪽, 특히 북동쪽에 있다.[12] 이전 중국 왕조의 수도였던 뤄양이나 시안에 비하면 정말 눈에 띈다. 이는 중국의 농경상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이 때문에 만주몽골계 왕조의 공격을 자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국내 민족주의 사학계에서는 '고구려가 베이징을 위협했다!'는 선전도 자주 사용하는 듯.[13]

3. 자연 환경과 기후

사막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황사의 피해가 심한 편이고, 기후냉대기후에 해당하여 여름에는 엄청 덥고 겨울에는 엄청 춥다. 1월의 평균 기온은 -3.7도로 서울보다 낮으며 춘천, 시카고와 유사하다. 7월 평균 기온은 26.2도. 다만 여름에 끈적이는 습기는 없어서 견딜만한편. 차량 통행도 많은데다 베이징 외곽에 잔뜩 자리한 공장들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황사와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매우 안 좋으며, 이곳의 공기에 비한다면 서울의 공기는 알프스 산맥이나 다름없다.

프랑스의 파리, 영국 런던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유럽에서도 낮은축에 속하는 편이다. 참고로 아래 초미세 먼지 농도는 전부 세계보건기구의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세계 주요도시 초미세 먼지 농도나폴리...그리고 베이징 물론 중국에는 더한 도시도 있긴 하다. 결국 2013년 1월에 들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베이징을 뒤덮었다. 스모그가 뒤덮었다지만 사진만 보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14] 참고로 이 대기오염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아예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근교 공장 올 스톱이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어쩌겠는가, 정부에서 닫으라는데...

베이징을 여행할때 호흡기가 민감한 사람이면 상당히 고생 할 수 있으니 마스크는 필히 챙겨가자. 대낮에 흐리길래 안개 낀 줄 알았는데 그게 다 스모그였다는 충격이

4. 행정구역

베이징은 16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베이징 이환로(北京二環路)내의 둥청(東城), 시청(西城)이 2개의 구역은 전통적으로 내성구(內城區)이다. 계획 중인 베이징 시 구역의 범위는 베이징 오환로 내외다. 근래에는 진행이 빠르게 발전하여 도시화가 진전되고 있다. 또한 몇몇 근교의 현이 구로 바뀌기 시작해 2016년 현재 현은 모두 사라진 상태.

때문에 베이징은 정치, 문화 중심의 정립, 공업 중심 도시로 점차 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둥청(东城), 시청(西城), 차오양(朝阳), 펑타이(丰台), 스징산(石景山), 하이뎬(海淀)의 6개 구는 도심 지역으로 여겨진다. 베이징 16개 구의 전반적인 개황은 아래와 같다.

한국어

중국어

인구(2010)

면적(km²)

둥청 구

东城区

919,000

42.0

시청 구

西城区

1,243,000

51.0

스징산 구

石景山区

616,000

89.8

차오양 구

朝阳区

3,545,000

470.8

펑타이 구

丰台区

2,112,000

304.2

하이뎬 구

海淀区

3,281,000

426.0

다싱 구

大兴区

1,365,000

1,012.0

먼터우거우 구

门头沟区

290,000

1,331.3

순이 구

顺义区

877,000

980.0

창핑 구

昌平区

1,661,000

1,430.0

퉁저우 구

通州区

1,184,000

870.0

팡산 구

房山区

814,000

1,866.7

핑구 구

平谷区

416,000

1,075.0

화이러우 구

怀柔区

373,000

2,557.3

미윈 구

密云区

468,000

2,335.6

옌칭 구

延庆区

317,000

1,980.0

5. 교통

(출처 : http://www.kotoc114.com 5환로까지 표기되어 있다.)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시내를 원형으로 도는 도로들이 있다. 삼환로(三环路, 싼환루), 사환로(四环路, 쓰환루), 오환로(五环路, 우환루), 육환로(六环路, 리우환루)라고 부르는 도로들인데, 이 도로들을 경계로 베이징 시내를 이환(二环, 얼환) ~ 육환(六环)으로 나눠 부르기도 한다. 보통 베이징에서 도심이라고 부르는 건 사환(四环)까지로, 이 밖인 오환~육환은 사실상 외곽 취급.

  • 2환 : 삼환로 안쪽을 일컫는다. 어째서 1환이 아니냐면, 1환은 자금성 쪽을 가리키는 걸로 치기 때문.
  • 3환 : 삼환로 ~ 사환로 사이의 구역.
  • 4환 : 사환로 ~ 오환로 사이의 구역.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인 왕징(望京)은 이 4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 5환 : 오환로 ~ 육환로 사이의 구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이 이 쪽에 자리하고 있다.
  • 6환 : 육환로 너머. 이쯤 되면 행정구역상 같은 베이징이라 해도 완전히 딴 동네다.[15]

모 엑소시스트 만화모 이노센스와는 상관없다

맨 윗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베이징은 하루 중 대부분 시간대에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1990년대까지는 소득수준이 낮아 자전거를 타는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교통체증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물론 그 시절에도 정도는 덜하기는 했지만 교통체증은 존재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차량의 수가 베이징의 도로망과 주차시설이 감당할수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서울의 80-90년대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국에서는 차량 5부제 시행, 출퇴근 시간대 혼잡 유발차량(트럭) 통행 제한, 타지 등록 차량의 출근시간대 통행 제한 등의 방법을 쓰고 있고 또한 교통체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선이 2개 정도에 불과했던 베이징 지하철의 노선도 속속들이 늘어나 일 평균 510만 명에 총 노선 길이 442km의 크고 아름다운 규모를 자랑하며 현재도 건설중이다. 하지만 스모그 해결될려면 30년은 멀었다

베이징역베이징 서역을 통해 중국 각지와 러시아, 몽골, 베트남, 북한으로 가는 국제열차가 운행한다.

베이징과 서울이 공통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라고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왕징에서 중국인민대학까지 거리(=4환의 한 변)만 용인에서 고려대(안암)까지 거리랑 비슷하다!

6.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중국의 수도인 만큼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왕징(望京), 우다오커우(五道口)는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으로 불린다. 우다오커우에는 다른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한국 사람이 중국 사람보다 많다는 느낌도 든다고 할 정도.

6.1. 우다오커우

우다오커우의 거리깨알같은 포장마차

우다오커우는 베이징에서도 베이징 대학을 비롯한 칭화 대학, 런민 대학, 위옌 대학 등등 수많은 대학들이 근처에 있는 곳이다. 길 이름도 그래서 학원로. 지도에서 대학으로 검색하면 알겠지만 근처에 별별 대학들이 정말 많다. 한국인 고등학교 유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이 많고[16], 입시에 성공한 대학 유학생들이 주변에 머물게 되면서 자연스레 유학생 가족들이 모여들어 차츰 코리아타운을 형성 했다. 자녀들 뒷바라지하러 왔다가 혼자 온 유학생들을 상대로 홈스테이 그냥 하숙이라고 하지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 사람들이 조선족들과 합작하거나 혼자서 만든 여러 한국 식당, 술집, 노래방, 카페 등 편의시설이 많아서 베이징에 처음 온 유학생들이 놀기에 큰 불편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 사이에 사건사고도 많다.

6.2. 왕징

왕징(望京)에는 우다오커우보다 규모가 큰 코리아타운이 존재한다. 사실은 이쪽이 진정한 코리아타운에 어울린다. 왕징에 살기 시작한 이유는 공항과 대사관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한국 회사가 있는 량마치아오 혹은 구오마오와 가깝기 때문에 유학생들보다는 주로 가족단위의 회사원, 주재원, 공무원들이 많이 산다. 우다오커우보다 훨씬 더 많은 한국 음식점들이 있으면 이쪽이 맛도 훨씬 좋은 편이다. 우다오커우의 한국식당들은 왕징이 본점이고 우다오커우가 분점인 경우도 많고 아무래도 유학생들보다는 가족단위의 주재원들이 경제사정이 좋기 때문에 이쪽이 시장 자체가 크다. 대부분 한국에 있는 프렌차이즈 식당들이 먼저 들어오는 곳도 여기다. 베이징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는다면 왕징을 추천. 우다오커우에 비해 종류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고 맛도 좋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 거의 대부분은 여기서도 먹을 수 있다. 맛도 외국에서 먹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괜찮은 편. 몇몇은 한국보다 낫다. 근처에 북한에서 운영하는 옥류관도 있... 지만 2016년 현재는 북한의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해외소재 북한 국영식당 이용이 금지된 상황이므로 이 점을 유념할 것. 생생한 북한 사투리를 들으며 북한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관심 있으면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녁에 시간 맞춰 간다면 공연도 볼 수 있다.

뱀발로 현재 왕징의 집값은 다른 베이징 지역에 비해서 지속적으로 비싸지고 있는데, 한국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대적으로 중국 평균보다 수준 높은 편의시설 및 음식점, 가게들이 많기 때문. 이는 중국인들에게도 좋아보이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살(住)만한 가격이다. 베이징 집값에 비해 월세는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서 그렇다. 구매하려고 하면 엔간한 강남아파트 가격으로도 못 산다. 왕징 뿐 만이 아니라 베이징 5환 이내의 아파트나 집은 같은 평수라면 한국 어디를 팔아도 거의 못 사는 수준으로 비싸다.

왕징에는 KEB하나은행 지점도 있다.

7. 경제

▲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세계 대도시권의 경제 규모에서 베이징은 GDP(국내총생산)가 4,272억 달러로 총 13위를 차지하였으며 워싱턴 D.C. 경제 규모와 비슷하다. 이 정도면 소위 중국의 경제수도라는 상하이와 비교하면 크게 뒤쳐지지 않는 경제력이라고 볼 수 있다.

8. 문화

명나라 시절부터 중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중국각지의 물산과 문물이 모두 집결하는 곳인 만큼 찬란한 문화가 존재한다.

베이징 경극은 남방경극과 대비되는 중국 유수의 전통을 자랑한다. 베이징 경극은 노래와 대화, 몸짓, 움직임, 싸움, 그리고 곡예와 같이 요약된 행동의 연속의 조합을 통해서 공연된다.

예로부터 중국 교육의 중심지였으며 한국 유학생들의 목표인 베이징대학,칭화대학,중국인민대를 비롯하여 어학연수로 유명한 북경어언대,북경사범대학 등 유수의 대학들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역사적으로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궁중요리와 귀족의 요리가 발달했다.청조가 설립한 후 한족의 전통음식과 결합되어 만한전석이라는 유명한 요리를 낳았고 그 외 유명한 요리로는 육봉달이 맨손으로 때려잡은 북경 오리 구이(베이징 카오야)가 있다.비슷한 자매품으로 난징 오리 요리도 있다. 또 외부 유입이 많은 만큼 다양한 지방의 요리를 맛볼 수도 있다. 베이징이 세계적 대도시로 떠오르고 나서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유명 셰프들의 음식점이나 세계 각국의 음식점들이 많아지고 있다. 돈만 있다면 다른 나라 음식을 즐기기에는 서울보다는 베이징이 낫다.

9. 베이징 성

지도의 빨간줄이 성벽이다. 전체적인 모양이 (...)[17]

1915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 흑백사진에 채색한 것이다.

베이징에는 궁궐인 자금성 외에도 서울한양 성곽과 같은 대규모 성벽이 있었다. 둘레 23km의 내성[18], 내성 남쪽 둘레 14km의 외성, 그리고 둘레 9km의 황성이 명나라청나라를 거치며 지어졌다. 또한 47개의 성문과 전루 및 각루가 있었지만, 지금은 정양문과 덕승문의 전루, 그리고 동남각루 등 고작 세 개와 두 군데 수백m의 성벽 잔해가 남아 있을뿐이다. 성벽이 있던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것은 큰 규모의 도로들과 그리고 전국에서 처음 건설한 베이징 지하철이다. 현대의 베이징 사진을 보면 성벽이 있던 자리 그대로 도로가 된 것을 알 수 있다.사진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따져보려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당시 막 중국을 장악한 공산당과 베이징의 시민들은 1950년부터 베이징성의 해체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해체와 보존 두 파로 나뉘었지만, 이 유구한 성을 그저 계급과 압제의 잔재로만 보는 원리주의자들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심지어는 보존파가 하다못해 해체하기 전에 사진촬영과 설계도를 만들려고 하였으나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숭문문, 서직문이 파괴되기 시작하자 보존파의 대표 량쓰청[19]은 공산당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사정 사정해서 겨우 공사 보류 동의를 얻어 냈다. 그러나 이미 숭문문은 남은게 없었고, 남은게 좀 있던 서직문은 불과 10년 뒤 문화대혁명 와중에 마저 파괴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더 이상 베이징 성의 파괴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지 1년 뒤인 1967년부터 서직문이 결국 해체됐고, 이어 안정문, 조양문, 영정문 등이 사라져 갔다. 1969년 부터는 "방공호를 파라"는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성벽 하부 허물기가 시작됐다. 모든 베이징 시민들이 베이징 성의 벽돌을 파해치고 방공호를 짓기 위해 들고가기 시작했다. 량쓰청은 성벽의 해체에는 83년이란 세월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해전술에는 무력했다. 베이징의 모든 사람들이 불과 5~6년 만에 성벽을 모두 무너뜨리면서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 성벽이었던 베이징 성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10년 후에 중국은 예산을 써서 시안 등에 남아있는 성벽을 보수하게 된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문화재급은 덜 건드렸으니 다행이랄까...

그리고 결국 2012년에는 량쓰청의 집도 헐리고 말았다. 기사

김홍도의 그림인 연행도 등에서도 베이징 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0. 베이징의 랜드마크

10.1. 유네스코 세계유산

  • 자금성
  • 이화원
  • 천단 공원 : 천단은 중국 황제가 풍작을 위해 하늘에 재사를 올리던 곳으로, 면적은 자금성의 4배에 달한다. 재사용 재단인 원구단은 한국의 사직단과 유사하며, 원구단의 북쪽에는 사진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둥근 고깔 모양의 황궁우 건물도 있다. 원구단과 황궁우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면적은 보통의 공원같은 모습. 이 곳에 있는 기년전은 은련카드 뒷면 홀로그램의 모델이다.
  • 만리장성(물론 베이징에서 볼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다...)
  • 명십삼릉 : 명나라 황제들의 무덤군. 베이징 외곽에 있다. 중국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많은 황제의 무덤이 몰려 있는 곳. 이 중 장릉의 능은전은 태화전에 버금가는 크기의 건물로 유명하다. 60개의 커다란 녹나무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10.2. 기타

  • 노동인민문화궁전 : 본래 한국의 종묘와 유사한 태묘 건물이었지만, 근대 이후 노동인민문화궁전으로 개칭되었다. 태묘의 중심인 전전(前殿)은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보다는 다소 작고 단이 낮지만 크기가 거의 맞먹는 큰 건물이다. 최상급 목재인 녹나무과의 금사남목 기둥 68개로 만들어져 있다. 천안문 바로 오른편에 있지만, 웬만한 관광객들은 잘 가지 않아 한적한 편. 전전 안은 입장 가능하지만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수준이고 다소 비싸다.
  • 천안문광장 : 천안문서역천안문동역 모두 접근이 용이하지만 비교적 동역이 더 편하다. 이는 자금성도 마찬가지.
  • 왕푸징(王府井) 거리 : 자금성 동남쪽에 위치한 번화가로, 유럽식 성당이나 큰 쇼핑몰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경악하는 것은 전갈이나 해마 등을 가지고 만든 꼬치 노점상들이다. 가끔 이거시 중국 음식이다! 하면서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이건 현지인들도 신기해하는 별종 중의 별종.(...) 구경하는 것은 좋지만 사실 관광화가 지나치게 된 왕푸징 거리의 음식들은 그다지 가성비가 좋은 것은 아니며, 입구쪽은 그냥 비싸고 출구쪽은 사기꾼에 가까운 바가지상술이 판을 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어 할 줄 모른다면 그냥 구경만 하거나 경험삼아 사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정확히 가격이 고지된 꼬치정도만 먹고 오는게 좋다. 어설프게 한국말 하면서 오라고 유혹하는 상인들이 많은데 그들은 한국에 관심있어서 그런말 하는게 아니니 아예 그런 집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20]
  •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 사옥
  • 다산쯔 798 예술구 : 공장 지역이었으나, 공장을 이전하고 예술가들의 작업 및 전시공간으로 바뀐 곳이다. 왕징에서 가깝다. 달리 말하면 중심부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 싼리툰(툴) 三里屯(儿) : 한국의 청담동, 가로수길. 이태원을 합쳐놓은 느낌의 곳. 상하이의 신천지와 비교되는 곳이다. 외국인도 많고 명품매장도 많고 쇼핑몰도 많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한 장소. 이곳에 있는 클럽은 한국 연예인들이 필수로 들르는 곳이다. 특히나 YG 소속 가수들. 베이징의 잘 나간다는 여자 남자는 여기 다 있다. 물론 일부는 왕푸징에도 있다. (...) 중국 무시하는 사람들 데리고 오면 클럽 앞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숫자에 입부터 벌어지는 곳이다. 왕푸징과 함께 중국 와서 함부로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곳.
  • 원명원圆明园 : 하이뎬 구에 위치한 궁궐. 부속 건물로 서양루가 있다. 하지만 보존상태가 나쁘다 못해 거의 없는거나 다름 없어서 대개 이화원 부속으로 들리는 편.혹은 원명원 이웃동네인 칭화대학북경대학을 방문해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 베이징 지하성 - 냉전 시대에 지어진 방공호이다.

11. 여담

C&C 제너럴에서 중국 미션 1에 이 도시가 등장한다. 열병식을 거행하다, GLA가 습격을 감행하고 급기야 천안문에서 핵이 터지며 완전히 쑥대밭이 된다. 이 미션 때문에 중국의 제너럴 발매는 불가능하게 된다.

2022년 동계올림픽의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사상 최초로 올림픽 하계와 동계를 모두 유치한 도시가 되었다.


  1. [1] 고어 발음과 프랑스어 표기 Pékin을 참고해서 대충 만든 표기. 요즘에는 잘 안 쓰지만 베이징대학(Peking University) 등 아직도 이 표기를 쓰는 경우가 있다. 우정식 병음은 과거에 썼던 로마자 지명 표기 방식인데(영어 등 외국어에서 주로 사용), 거의 웨이드 자일스 표기법을 쓰지만, 베이징처럼 고어 발음이나 방언 발음을 참고해 케바케로 정한 경우가 많아 체계성은 떨어진다. 현재 중국 본토에서는 더 이상 우정식 병음으로 지명을 표기하지 않는다.
  2. [2] 과거에는 Peking으로 썼지만 현재는 Beijing이 압도적으로 쓰인다.
  3. [3] 아직도 과거 표기인 Pékin이 우세한 듯.
  4. [4] ペキン은 우정식 병음 표기인 Peking을 대충 옮긴 것이다. 그래서 실제 중국어 발음과도 괴리되고 일본 한자음과도 괴리된 발음이지만 관행으로 굳어져서 쓰이고 있다. 단 현재의 베이징이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른 北京 또는 일반 명사로서 쓰는 北京의 경우 일본 한자 발음 그대로 ほっきょう(Hokkyō)라고 읽어야 한다.
  5. [5] 아직도 과거 표기인 Peking이 우세한 듯.
  6. [6] 아직도 과거 표기인 Pekín이 우세한 듯.
  7. [7] Pechinum, Pekinum은 北京과 관련 있는 표기다. Xuntienum은 명·청대 베이징이 속했던 행정구역명인 순천부(順天府)의 '순천(順天, 현대 표준중국어의 한어병음 표기: Shùntiān, 웨이드 자일스 표기: Shun4-t'ien1)' 부분에서 유래한다. 과거에 순천이라는 말을 그대로 베이징을 가리키는 말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순천'에서 유래한 Xuntienum이 베이징의 라틴어 표현 중 하나가 되었다.
  8. [8] 베이징이 비정상적으로 크긴 하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의 인구 밀도도 징그럽게 높아서, 메갈로폴리스 중에서 서울보다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은 인도 공화국뭄바이 정도 뿐이다. 여기는 1km²당 2만명도 넘게 거주한다.
  9. [9] 그러나 도심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실질적인 유기적 생활권을 기준으로 보았을때 협의의 시 개념보다는 베이징 시 자체가 대도심권에 대응하는것으로 볼수 있고, 한국의 경우 수도권, 일본의 경우 도쿄권과 비교할 수 있다. 이 경우, 베이징의 면적이 더 크긴 하지만 서울-인천 수도권 면적 약 11,704km², 도쿄권 면적 약 13,500km²로 차이는 줄어든다. 아래에도 나와있듯이 실제로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와 같은 세계 유수의 싱크탱크 기관에서도 베이징 시를 협의의 시 개념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를 대도심권으로 간주하여 비교하고 있다.
  10. [10] 1949년 당시 북평직할시는 면적 706㎢로, 서울보다 약간 큰 정도.
  11. [11] 80년대 이전의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면 중국을 중공 혹은 북평 정부라고 호칭했다.
  12. [12] 지도 참조.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베이징이 위치한 곳이다.
  13. [13] 사실 요나라 정도는 가야 지금과 같은 위상에 비견할 수 있게 되고 이전의 왕조에서는 좀 좋은 도시 정도 취급이지만 태조대왕 시대에는 우북평, 어양, 상곡을 공격했다는 한서의 기록등이 있는것으로 보아 베이징을 위협했다고 볼 수 있고, 광개토대왕도 다구리(?)에 참가한 약간의 꼼수(?)가 있었다. 북한에서 발견된 광개토대왕시대의 고구려 고분에 유주자사 진 이라는 인물의 무덤이 있긴 하다.
  14. [14] http://naridy.egloos.com/4775204
  15. [15] 단순히 거리를 대입하면 5환은 대충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주변급이고 6환은 수원 이남이나 양주 이북 정도에 포함된다.
  16. [16] 그래봐야 3개다. 베이징, 칭화, 런민. 세 대학 중에 하나도 못 가면 입시 실패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17. [17] 영락제 때 만든 베이징 성은 내성만 있었다. 외성이 축조된 건 가정제 때. 그런데 외성 공사가 진행되자 내성 바깥을 전부 감싸려면 공사비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는 계산이 나왔고, 결국 외성의 성벽을 내성 남쪽과 연결시켜 마무리지었다. 이 때문에 평면 형태가 모자처럼 생겼다 해서 속칭 '모자성'이라고도 불렸다.
  18. [18] 청대에는 한족은 거주가 금지되어 달단성이라고도 불렸다.
  19. [19] (梁思成 양사성·1901∼1972) 중국 전통 건축학의 대가로, 부인 린후이인과 함께 중국 전통 건축을 현대적 학문의 틀로 재정립하였다.
  20. [20] 마지막 문장은 수정자 실제경험으로 120위안 바가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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