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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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왕국
Koninkrijk België
Royaume de Belgique
Königreich Belgien

국기

국장

국호

벨기에 왕국
네덜란드어: Koninkrijk België
프랑스어: Royaume de Belgique
독일어: Königreich Belgien

건국

1831년 7월 21일

수도

브뤼셀

상징

국가

브라반트의 노래

국화

없음

국조

없음

국가 코드

BE

표어

네덜란드어: Eendracht maakt macht

프랑스어: L'union fait la force

독일어: Einigkeit macht stark

통합이 힘을 만든다

자연환경

면적(영토)

30,528km2[1]

인문환경

인구

11,443,830명(2017년)

인구 밀도

370.3명/km2

공용 언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구성

기독교 60.7%, 무종교 32.0%
이슬람 5.2%, 기타 2.1%

정치

정치체제

연방제, 입헌군주제 하의 의원 내각제

국왕

필리프(Philippe/Filips)

총리

샤를 미셸(Charles Michel)

경제

1인당 GDP

명목 $41,491(2016)
PPP $37,736 (2011)

GDP

명목 5,133억 달러(2011)
PPP 4,132억 달러(2011)

공식 화폐

유로 (€)

ccTLD

.be[2]

단위

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01:00

도량형

SI 단위

여행경보

여행유의

황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여행자제

브뤼셀[3]

대한수교현황

대한제국 최초 수교: 1901년
대한민국: 1961년[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01년

국제연합(UN) 가입

1945년

언어별 명칭

한국어

표준어: 벨기에 왕국(-王國) / 벨기에
문화어: 벨지끄왕국(-王國) / 벨지끄

네덜란드어

Koninkrijk België (코닝크레이크 벨히어) / België (벨히어)

프랑스어

Royaume de Belgique (루아욤 드 벨지크) / Belgique (벨지크)

독일어

Königreich Belgien (쾨니히라이히 벨기엔) / Belgien (벨기엔)

라틴어

Regnum Belgicum (레늄 벨지쿰) / Belgica (벨지카)

영어

Kingdom of Belgium (킹덤 오브 벨점, 벨지엄) / Belgium (벨점, 벨지엄)

일본어

ベルギー王国 (Berugī-ōkoku, 베루기 오코쿠) / ベルギー (Berugī, 베루기)[5]

중국어[6]

정체자: 比利時王國 / 比利時
간화자: 比利时王国 / 比利时
발음(북경어): Bǐlìshí wángguó (비리스 왕궈) / Bǐlìshí (비리스)
발음(광동어): Bei2 lei6 si4 wong4 gwok3 (베이레이시 웡궉) / Bei2 lei6 si4 (베이레이시)

에스페란토

Reĝlando Belgio (레즐란도 벨기오) / Belgio (벨기오)

러시아어

Короле́вство Бе́льгия (코롤렙스트보 벨기야) / Бе́льгия (벨기야)

1. 개요
2. 상징
2.1. 국명
2.2. 국기
2.3. 국가
3. 역사
5. 언어
6. 지역과 언어공동체
7. 분리주의와 정치혼란
7.1. 브뤼셀 수도권
7.2. 독일어 공동체
8. 정치
12. 외교
12.1. 대한민국과의 관계
12.2. 주변국과의 관계
12.3. 외교공관 관련 이야깃거리
13.1. 플란데런 독립 페이크 뉴스속보 사건
13.2.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
13.3. 안드라스 팬디 사건
13.4. 마르크 뒤트루 사건
13.5. 2016년 브뤼셀 테러
13.6. 2018 리에주 테러
14. 출신 인물
15. 창작물에서
16. 기타
17. 같이 보기

1. 개요

벨기에는 서유럽에서도 네덜란드의 남쪽, 프랑스의 북쪽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3국으로 불린다. 수도는 브뤼셀(Bruxelles, Brussel).[7]

벨기에의 인구는 1천 139만 명으로 세계 242개국의 국가, 지역 중 75위다. # 비슷한 인구 규모의 국가로 헝가리(9백 98만 명), 스웨덴(9백 55만 명), 그리스(1천 78만 명), 포르투갈(1천 63만 명), 체코(1천 53만 명) 등이 있다. 면적은 30,528㎢ 로 한국의 경상도 정도의 크기다. 즉, 벨기에의 면적과 인구는 영남 지역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네덜란드와 함께 연합 왕국을 구성하였으나(1815–1839) 얼마 못 가 갈라졌다. 네덜란드가 벨기에와 네덜란드 사이를 흐르는 강의 청소를 게을리하자 나라 전체가 홍합 불매 운동을 벌인 일도 있다(...).[8] 네덜란드와의 국경 지대 중에 바를러라는 곳이 있는데 국경이 심히 복잡해서 월경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리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데다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있어 나폴레옹 전쟁과,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에서 격전지가 되었지만 현재는 EU 본부와 의회, 나토 본부가 있는 유럽의 중요 국가가 되었다.

이 나라의 총리를 지낸 헤르만 판 롬푀이(Herman Van Rompuy)가 유럽 연합 정상 회의[9] 의장 (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으로 활동하고 있다.[10]

2. 상징

2.1. 국명

이 나라의 국명인 '벨기에'는 로마 제국갈리아 점령 이전에 이 지역에 살았던 민족인 벨가이(Belgae)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명인 벨기에는 네덜란드어 België를 잘못 옮겨적은 것에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프랑스어 Belgique를 기준으로 해 '벨지끄'라 한다.

2.2. 국기

네덜란드어: Vlag van België

프랑스어: Drapeau de la Belgique

독일어: Flagge Belgiens

공식적인 비율은 13:15이며, 세 색깔들은 가로 길이를 3등분하는 수직의 선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벨기에는 이 비율을 자기들이 정해놓고도 대체 이 비율이 어떤 경위로 지정됐는지 모른다(...). 통상적으로는 2:3인 국기를 쓰고 간혹 정부 기관에서도 세로:가로 비율이 2:3인 국기를 쓰기도 한다.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의 삼색기이다.

벨기에 혁명이 시작된 다음날인 1830년 8월 26일, 브뤼셀 시청에서 네덜란드의 국기가 끌어내려졌고, 그 자리는 검정, 노랑, 빨강의 삼색기로 급히 대체되었다. 이 삼색기는 벨기에 합중국이 세워지도록 했던 브라반트 혁명 당시 사용된 기에서 본따 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때는 세로가 아닌 가로 줄무늬의 국기였으나, 1831년 1월 23일, 세로 줄무늬로 공식적으로 바뀌게 되어 현재의 국기가 제정되었다.

얼핏 독일의 국기와 배색이 비슷한데 독일의 국기는 그와는 다르게 가로형에다가 특히 빨강과 노랑의 배색 위치가 다르다. 검정이 맨 위에 있는 가운데 빨강과 노랑이 각각 상하로 배색되어져있으며 빨강이 가운데, 노랑이 맨 아래이다.

2.3. 국가

La Brabançonne 문서 참조.

3. 역사

베네룩스의 역사

고대

중세

근세

근현대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저지대 지역에 거주하던 켈트족의 일파인 벨가이족을 정벌했다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에 벨가이족이 가장 용맹하다고 기록했지만 벨가이족을 정벌하는데 유난히 애를 먹은걸 변명할려고 적은걸 수도 있다(...) 로마의 멸망 이후에는 프랑크 왕국, 프랑크 왕국의 후에는 신성 로마 제국으로 성장하는 동프랑크 왕국에 편입 되었다. 저지대 지역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영방인 플랑드르, 브라반트, 홀란트 등 여러 공국들이 등장하였으며 교통의 요지로서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 상공업 발달에 적합한 위치였기 때문에 저지대 지역은 서유럽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부유한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15세기 초 이 지역에 위치했던 플랑드르 백국, 에노 백국, 브라반트 공국 등을 부르고뉴 공국[11]이 하나하나 반강제로 상속받으면서 대부분의 네덜란드 지역이 부르고뉴 통치하에 들어왔다. 1477년 부르고뉴 공작이던 용담공 사를이 남자 계승자를 남기지 못하고 전사하자 부르고뉴와 저지대의 병합을 노리던 프랑스는 이를 계기로 부르고뉴를 침공하였고 이를 막기 위해 샤를의 유일한 혈육이던 마리 공주가 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면서 저지대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저지대의 영지는 막시밀리안의 손자인 카를 5세가 물려받게 되었고 카를은 물려받은 저지대 지역을 17개 주로 개편한다. 1556년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 이탈리아와 함께 저지대 17개 주를 물려주면서 저지대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카를 5세 시절에는 카를 본인이 이 지역인 겐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라 주민들을 유화적으로 대해 저지대의 주민들은 합스부르크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으나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골수 가톨릭 신자였던 펠리페는 저지대의 주민들, 특히 저지대의 칼뱅파 개신교도들을 억압하려 들면서 합스부르크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결국 1568년 스페인의 폭정에 대항해 네덜란드어권의 북부 7개 주[12]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80년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남부 10개 주는 반란에 참여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13] 그러나 1579년 같은 네덜란드어권의 플란데런[14] 안트베르펀, 브라반트의 3개 주가 추가로 반란에 동참해 기존에 반란을 일으킨 네덜란드어권의 7개 주와 함께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하고 프랑스어권의 나머지 7개 주가 스페인에 협력하는 아라스 동맹을 결성하면서 또다시 분열되었다. 반란에 추가로 동참한 3개 주는 저지대 17개 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는데 플란데런과 안트베르펀은 부유한 저지대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으므로 경제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으며[15], 브라반트는 당시 스페인령 저지대 지역의 의 행정 중심지가 브라반트의 중심 도시 브뤼셀에 위치했던 탓에 정치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스페인에 잔류한 프랑스어권 7개 주와 인접해 있어서 공략이 가장 쉬웠기 때문에 이 3개 주는 스페인 진압군의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스페인군 사령관 알레산드로 파르네세의 활약으로 1585년 안트베르펀이 함락당하면서 결국 3개 주는 다시 굴복하였고 3개 주의 개신교도들은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받거나 아직 함락당하지 않은 북부로 떠나면서 가톨릭 다수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것이 가톨릭의 남부 10개 주(벨기에)와 개신교의 북부 7개 주(네덜란드)로 나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네덜란드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을 때에도 남부 10개 주는 계속해서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714년에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령이 되었고 다시 1789년 프랑스 혁명군에게 공격을 받아 프랑스령이 되었다. 그리고 1815년 나폴레옹워털루 전투에서 몰락한 뒤 빈 회의 에서는 벨기에를 네덜란드에 편입시켜 네덜란드 연합 왕국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미 300년 가까이 따로 살았기 때문에 가톨릭이 다수였던 벨기에 지역은 개신교를 신봉하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1830년 7월 혁명 이후 벨기에 지역은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벨기에는 네덜란드와는 영구적으로 분리되었고 1831년 런던 회의에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등의 강대국들로부터 독립과 중립화를 확약받았다.[16] 벨기에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레오폴드를 레오폴드 1세로 국왕에 추대한다.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부유한 동네들 중 하나[17]였던 탓에 강대국 사이에 이리저리 넘겨지며 지내던 안습한 생활이 많았으나 독립 이후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려 1885년부터는 자국보다 80배나 더 큰 콩고를 식민지로 가졌던 식민 국가가 되었다. 비록 벨기 본토가 워낙 좁아서 80배라 해봤자 대영제국이나 프랑스 식민제국에 비하면 크지는 않았지만, 개인의 영토로 치면 엄청난 영토는데, 이는 콩고 땅이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였기 때문이다.

레오폴드 2세는 식민지를 갖기 위한 군사력을 가질 수 없었지만, 당시 열강 간의 긴장관계의 틈을 노리는 동시에 리빙스턴, 스탠리의 탐험을 지원하는 책략을 통해 콩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콩고(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 지역의 수백명의 부족장들로부터 일일이 서명(?)등을 받아 '콩고 자유국'이라는 이름 하에 벨기에 식민지를 만든 것. 자유국으로 쓰고 식민지로 읽는다.

하지만 가혹한 레오폴드 2세 식의 식민지 경영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거나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고무다이아몬드, 야자유를 생산하기 위해 원주민을 혹사했는데, 할당량을 못 채운 이는 한쪽 팔이 잘려나가고 한 번 더 못 채우면 바로 사형. 그리고 남은 할당량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상아 채취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래서 현지의 관리들은 열심히 일하는 증거로 잘린 팔이 가득한 바구니를 내세우고는 했다. 이 때문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마을 전체의 주민들이 살해당하기도 했으며, 할당량을 위해 주민들끼리 돌을 들고 서로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가혹한 통치로 인해 사망한 콩고인들은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1500만명, 즉 콩고 인구의 절반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바득바득 모은 당시 왕의 개인 재산은 10억달러 가량. 그 자신은 한 번도 콩고에 방문한 적이 없었고, 그 재산 덕에 브뤼셀 등의 주요 도시에 수많은 공공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니 당연히 초반에는 좋았다. 그래도 나중에는 그가 물려준 안좋은 습관들 때문에 좋게 보지는 않는 사람도 많아졌다.

약혐주의

이러한 가혹한 통치는 제국주의가 하나의 대세였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정도였으며[18] 결국 벨기에 의회가 콩고 식민지를 레오폴드 2세에게서 빼앗기에(...) 이르렀다.

한편 레오폴드 2세 사후 즉위한 조카 알베르 1세는 박학다식하고 결단력 있는 애국자였던지라 실추된 이미지를 꽤 회복했다[19]. 그러나 그의 아들 레오폴드 3세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다시 이미지는 급 추락[20]. 결국 나치 패망 이후 국민투표에서 57%의 밋밋한 찬성을 얻어 왕가가 돌아오긴 했지만 레오폴드 3세는 나치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퇴위했다.

제1차 세계대전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국토 대부분이 점령당하고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그 교훈을 살려 에방 에말 요새를 건설하는 등 대비를 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또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전 국토가 넘어가버렸다. 이후 금융의 허브&평화로운 중립국의 명성이 무너지고 이를 스위스가 채가서 빛을 바랬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에 더이상 휘말리는 일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구중립을 포기하면서 나토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국제기구를 유치한다. 경제적으로는 마셜플랜에 힘입어 2차 세계대전 이후로부터 석유파동 이전까지 성장세를 유지했고, 이후로도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 제약 등의 첨단산업과 서비스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해 고소득 국가라는 지위를 유지했다.

4. 경제

5. 언어

벨기에 영토 내에서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며, 네덜란드어프랑스어, 독일어가 공용어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 네덜란드어권(위 그림의 노란색)은 제1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프랑스어권(붉은 색)은 제1외국어를 영어와 네덜란드어 중에 선택한다. 단, 브뤼셀에 한해서는 의무적으로 프랑스어권 학교 학생은 네덜란드어를 제1 타 공용어로 배워야한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은 제2 공용어를 간신히 알아듣는 수준이다. 영어네덜란드어밖에 못한다며 알바가 짤린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수도 브뤼셀(빗금 지역)은 벨기에 불어권 중 영어와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구가 꽤 높지만 이것도 정말 잘 구사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어권으로 들어가면 (브뤼셀 제외) 영어 의사소통이 힘들다. 프랑스어권에서는 대학생들도 취업 전까지는 모국어 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네덜란드어권은 영어가 비교적 잘 통한다.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를 쓰기는 하나 벨기에의 네절란드어는 네덜란드의 네덜란드어와는 좀 달라서 이를 따로 플람스어(Vlaams)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좀 복잡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Vlaams라고 할때 사용에 주의를 해야한다. 사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안 쓰는게 좋다.

  • 네덜란드어권 사용자나 네덜란드어를 제2공용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네덜란드어/플람스어를 하십니까?'라고 묻고자 할 때
'Spreekt u Nederlands?' 혹은 'Spreekt u Vlaams?'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정치/지역적 의미가 있어서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플란더런과 벨기에 연방정부는 공식적으로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그렇기에 정부기관에서도 네덜란드어권 화자, 네덜란드어 사용 기구라고 하지 Vlaams(플람스) 사용자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국제적으로 네덜란드어가 널리 인정되는것과 불어권과 동등하게 하나의 정식 '공용어' 를 쓴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실제 네덜란드어와 플람스는 좀 차이가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 같은 차이). 미국 정부에서 영어(English)를 쓴다고 하지 미국어(American)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spreekt u vlaams?라고 현지인이 묻는 경우 벨기에식 네덜란드어를 하느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spreekt u nederlands라고 묻는게 맞다. (근데 어차피 대답을 듣는 그 순간부터 어느동네 화자인지 대충 유추가 다들 가능하다)
  • 발음
Vlaams라고 적었지만 읽을때 혹은 발음을 플럼스라고 읽을 경우 일반적으로 West-Vlaams라 하여 West-Vlaanderen에 기반하는 사투리를 의미한다. 나름 동부와 서부간에 언어차이가 제법 난다.
  • 비하적 용도
Vlaams는 비하의 용도로 쓰였던 역사도 있다. 네덜란드어권 화자들 중에 네덜란드인이 저 표현을 쓰거나 혹은 불어권 화자가 "그들은 플람스어를 한다"고 하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 인종적/지역적 비하가 있는 표현일 수 있다. 이는 벨기에 네덜란드어권이 오랜기간 분열되어 타국에 이용되었던 점과, 벨기에 독립 직후 왈롱이 국가 주도권을 잡고 플라망어 사용자라고 해서 정치/경제 등 사회 전반에서 네덜란드어권 화자들을 제외시킨 것에서 비롯된다.

공용어가 세 개이기 때문에 벨기에의 국가(La Brabançonne) 1절은 프랑스어, 2절은 독일어, 3절은 네덜란드어로 작사되었다.

미스/미스터 벨기에는 국민 통합을 위해 반드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고 한다. 독일어(위의 파란색 지방), 왈롱어, 서플란데런어는 무시당했다. 축구 국대 감독마저도 두 언어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 빌명보는 감독으로서 전술, 선수 기용 등 여러 면에서 잘 쳐줘야 평범한 수준임에도 언어권별로 따로 놀기 일쑤인 선수단을 휘어잡을 수 있는 벨기에 축구계의 보기 드문 이중 언어 구사자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만 떴다 하면 프랑스나 네덜란드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네덜란드도 그렇게 시장이 크다곤 할 수 없어서(...) 주로 프랑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왈롱 지방에는 벨기에식 프랑스어가 많이 쓰이지만, 왈롱어라는 언어도 있다. 프랑스어와 같은 오일제어(langues d'oïl)에 속하는데, 종종 프랑스어의 벨기에 방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학자들은 프랑스어와 친척뻘인 다른 언어로 취급한다. 현재는 벨기에식 프랑스어에 밀려서 60만 명 정도만 왈롱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비슷하게 서(西)플란데런어라는 언어가 플란데런 지방 서부에서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네덜란드어의 방언으로 취급하지만 표준적인 네덜란드어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당히 달라서 언어학자들이 별개의 언어로 분류하기도 한다. 1990년대 말기에 140만 명 정도가 사용하는 걸로 조사됐다. 왈롱어와 서플란데런어는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되었다.

6. 지역과 언어공동체

플라망 지역과
플라람스(네덜란드)어 공동체의 기 불나방

왈롱 지방과 프랑스어 공동체의 기[21]

독일어 공동체의 기

브뤼셀 수도권의 기[22]

벨기에는 (지역감정이 강한) 여러 지역과 언어 공동체들로 나누어져 이것들이 연방의 구성체를 이룬다. 벨기에의 모든 지역은 지역권과 언어 공동체라는 두 구성체에 동시에 소속된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안트베르펀은 플란더런 지역과 플람스어 공동체라는 두 연방 구성체에 동시에 속하는 식인데, 이렇게 두 가지 유형의 구성체가 한 지역을 동시에 커버하는 방식은 다른 연방 국가에서 볼 수 없는 벨기에만의 독특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벨기에의 지방자치 조직은 여기를 참조.

그래서 벨기에는 언어권(gemeenschap) 경우 교육을 맡고, 지역(geweest)의 경우 그외에 행정을 맡는 형식이다. (의료, 교통 등)

연방구성체의 역사는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에 지역권과 언어 지역을 설정하고 벨기에 전국이 지역권과 언어 지역에 동시에 속하게 구성하였다. 이때의 지역권과 언어 지역은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는 기준이었을 뿐 행정 조직이나 의회는 없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연방의 구성체라는 개념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각 지역권과 언어공동체에 의회와 행정 조직이 생긴 것은 1980년대 말이다.

언어 사용 실태에 따른 언어지역은 4가지로 나뉜다.

  • 네덜란드어-프랑스어 이중 언어 지역: 네덜란드어 사용자와 프랑스어 사용자가 섞여 산다.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과 주변 지역에 해당한다.
  • 네덜란드어 지역: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북부 네 개 주와 Brabant(네덜란드어: 브라반트, 프랑스어: 브라방) 주의 북부. 브뤼셀을 제외한 플란더런 지역에 해당한다.
  • 프랑스어 지역: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남부 네 개 주와 Brabant(네덜란드어: 브라반트, 프랑스어: 브라방)주의 남부. 왈롱 지역 대부분(독일어 지역을 뺀 나머지)에 해당한다.
  • 독일어 지역: 독일어를 사용한다. 왈롱 지역 동쪽 일부 리에주(Liège) 주(州)의 오스트칸토네(Ost-Kantone) 행정구에 속하는 11개 지방자치체[23] 가운데 9개. 본래 독일 영토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에 할양된 지역 중 일부이다. '일부'라고 한 것은 과거에 할양 받은 모든 지역이 독일어 공동체로 지정돼 있진 않기 때문이다(프랑스어권에 잠식됨).

지리에 따른 지역권은 3가지로 나뉜다. 지도

  • 플람스 지역 (네덜란드어: Vlaanderen, 불어: Flandre, 영어: Flanders[24]): 플람스 지역의 가운데이자 브라반트 주의 한복판에 있는 브뤼셀 수도권은 포함하지 않는다.
  • 왈롱 지역 (불어: Wallonie, 네덜란드어: Wallonië, 영어: Wallonia)
  • 브뤼셀 수도권(프랑스어: Région de Bruxelles-Capitale, 플라망어: Brussels Hoofdstedelijk Gewest): 브뤼셀 시와 인근 지역을 합친 지역을 가리킨다.[25] 위치상으로는 Vlaams-Brabant 지역이 브뤼셀 수도권을 둘러싸고 있다.

1971년 총선부터는 모든 정당이 네덜란드어권 정당과 프랑스어권 정당으로 나뉘어서 참여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정치 항목을 참고. 벨기에의 정부 구성 방식도 이 때부터 생긴 것이다.

1974년에는 독일어 사용 지역에 독일어 공동체 정부가 결성되었다. 인구도 영토도 벨기에 전체의 1% 수준인 독일어 지역을 별도의 주로 독립시키기가 어려워 적어도 언어 정책(언어, 교육, 문화 등)만큼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독일어 공동체 선거는 연방선거와 같이 치렀다. 1974년에 독일어 공동체 정부가 생긴 것도 1974년에 연방 총선을 실시했기 때문.

1980년대까지는 이 방식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각 지역권(브뤼셀 수도권, 플란더런, 왈롱)에 각각 의회와 정부를 구성[26]하고, 독일어 지역에만 구성되었던 언어공동체가 나머지 언어 지역(네덜란드어, 프랑스어)에도 생겼다. 행정구역도 언어공동체에 따라 개편했다. 지도

예를 들어 Brabant(네덜란드어: 브라반트, 프랑스어: 브라방) 주는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은 플람스 브라반트(Vlaams-Brabant) 주, 프랑스어 사용 지역은 브라방 왈롱(Brabant Wallon) 주로 갈라졌고, 이중 언어 지역인 브뤼셀은 플람스 브라반트 주의 한가운데 섬처럼 분리되었다.(공식적으로 플란더런의 수도는 브뤼셀이다) 또한 네덜란드어 공동체에 속하는 웨스트 플란데런 주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방자치체 1개가 에노 주로 넘어가 에노 주의 월경지가 되었고, 프랑스어 공동체에 속하는 리에주 주에서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지방자치체 1개가 림뷔르흐 주로 넘어가서 림뷔르흐 주의 월경지가 되었다. 독일어 공동체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월경지다.

이렇게 해서 다음의 단위로 재편되었다.

  • 플람스(네덜란드)어 공동체 (Vlaamse Gemeenschap): 브뤼셀 수도권의 네덜란드어 사용자[a]와 북부 다섯 주.
  • 프랑스어 공동체 (Communauté française): 브뤼셀 수도권의 프랑스어 사용자[*a ]와 남부 다섯 주

언어공동체와 위 지역권들의 대응 관계를 표로 간단히 나타나면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어
공동체

프랑스어
공동체

독일어
공동체

플란더런 지역

O

X

X

왈롱 지역

X

O1

브뤼셀 수도권

O2

X

O1. 왈롱 지역은 프랑스어 공동체에 속하는 지역과 독일어 공동체에 속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음. 단 동시에 두 언어 공동체 양쪽 모두에 속하는 곳은 없음.O2. 브뤼셀 수도권은 플라망어 공동체와 프랑스어 공동체 양쪽 모두에 소속됨.

그러나 월경지까지 만들면서 행정구역을 언어공동체에 맞게 조정했음에도, 각 언어공동체 내에는 해당 언어공동체의 언어가 아닌 벨기에의 다른 공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적잖이 거주하는 지역들도 있다. 이런 곳에는 언어공동체의 언어가 아닌 다른 공용어를 위한 언어 시설(네덜란드어: faciliteitengemeenten, 프랑스어: communes à facilités, 독일어: Fazilitäten-Gemeinden, 영어: language facility)을 설치, 해당 언어공동체의 언어를 모르는 이들의 불편을 방지하도록 한다.

이러한 지역 설정은 지역의 인구구성이 바뀔 때 큰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브뤼셀 수도 지역에 접한 플란더런 지역의 한 지방자치체는 1970년대에 플란더런 지역으로 구분되었으나, 계속 프랑스어 사용자 인구가 늘어 1995년에 지역 의회가 생길 즈음엔 아예 프랑스어 사용자가 지방자치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플란더런 지역에 속해 있어서 프랑스어 정당이 활동하지 않고 지방선거에선 '프랑스어권 연합'이라는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당선된다. 이렇듯 언어와 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뒤에 나오는 541일 무정부 상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

아무튼 이에 따라 벨기에 연방의회 밑에 연방구성체의 의회가 7개(!)가 되었다. 벨기에 전체를 대표하는 연방의회는 상·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다. 그리고 언어공동체와 지역권별로 단원제 의회가 있고 연방제라 각각 입법권이 있다. 선거는 5년마다 실시하며(최근 선거는 2014년) 지역권 의회는 지역 정책, 언어 공동체 의회는 언어 정책을 관할한다.[28]

벨기에 왕족은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독일어는 특별한 규정은 없다. 오히려 1차 대전 중 독일의 만행으로 인해 인해 왕가 내에선 독일에 대한 반감으로 1920년에 기존 독일계임을 상징하는 가문명인 작센-코부르크-고타(Sachsen-Coburg-Gotha)을 버렸고[29] 영어로 of Belgium에 해당하는 성씨로 변경해서 (프랑스어: de Belgique, 네덜란드어: van België, 독일어: von Belgien)을 성씨로 사용한다.[30] 더불어 공용어가 3개이므로 이름을 각 언어별로 3개씩 쓸 수 있으나 대부분의 왕족은 독일어 이름을 따로 두지 않고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측에서도 프랑스어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벨기에의 국가인 브라방 찬가(La Brabançonne)마저도 불어와 네덜란드어, 그리고 독일어와 왈롱어[31] 가사가 각각 존재하며, 국가적인 공식 행사에서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섞은 버전을 쓰는 경우가 많다.[32] 벨기에의 어떤 공주가 국가를 부르는 도중에 프랑스어로 된 국가는 무사히 불렀는데 네덜란드어로 된 국가를 틀리는 바람에 플란데런 사람들에게 공주가 한 나라의 왕족이면서 국어도 모르나?라고 비난받았다.

결국 현 국왕의 경우 왕세녀를 네덜란드어권 공립학교에 보냈다. 아무래도 네덜란드어권이 왕실에 대해 가진 반감을 줄이려는 걸로 보인다. 기존의 왕족들 경우 대다수가 불어권 학교에서 재학했다.

7. 분리주의와 정치혼란

벨기에 10개 주. 남쪽의 룩셈부르크(뤽상부르)는 바로 옆 나라가 아니라, 벨기에의 최남단 주다.[33]

언어가 다른 만큼 지역간의 대립과 반목이 심하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왈롱(왈로니) 지방과 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플란더런 지방의 반목은 정부(정확히는 내각) 성립까지 후퇴시켰다. 주 문제인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왈롱에 경제적 지원정책이 세워지면 플란데런 지역은 또 여기에 반발하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사실 이런 감정은 이유가 있다. 우선 벨기에를 중세-근세까지 지배하였던 부르고뉴의 영향으로 정치 관련 주요 문서들이 불어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그걸 읽고 쓸 줄 모르는 플란데런 지방 사람들은 문맹(!)으로 분류되어 입법, 행정, 사법에서 제외되었다. 소장도 못쓰는데 뭔 재판이 가능하냐는 논리였다. 그리고 독립을 왈롱인들이 주도한 것도 왈롱계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이 시기 불어를 쓰던 지배층들은 문서를 모두 불어로만 작성하게 하여 불어를 모르는 플란데런인들을 반 예속상태한마디로 바보로 유지하고자 하였다. 또한 정치적 상류 계층인 부르고뉴인들이 네덜란드어를 한마디도 못해 서로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있었던 데다가 일부 상류층들이 플란더렌 사람들을 해적, 거지에 비유하여 제도적, 정서적으로 단절이 심했다. 어느 나라 말로 해도 욕은 알아듣는 모양

경제적으로는 벨기에를 중견 국가로 성장시킨 산업 혁명 시기, 벨기에의 탄전과 철광산 대부분이 왈롱 지방에 집중되어서 벨기에의 성장을 이끈 중공업 또한 왈롱에서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막대한 부가 왈롱인들에게 쏠리게 된다.

반면 한때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화려하게 번영하던 플란데런 지방[34]은 전통 산업인 모직물 공업이 쇠락하는 등 지독한 경제난을 겪고 왈롱인들에게 거지 취급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본래 플란데런인들의 도시였던 브뤼셀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빠져나가는 플란데런인들과 수도로 진출하려는 왈롱인들의 이주로 인해 인구비가 역전되어 왈롱인들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35] 이런 취급은 벨기에 독립후 150여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현대에 들어와서 벨기에의 중공업 섹터가 몰락하고, 관광과 금융으로 되살아난 플란데런 경제가 화려한 부활을 하면서 완전히 역전돼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플란더런 사람들의 깊어진 감정의 골은 어떤 사람이든 모국어로 된 행정 문서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법을 제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의 주요 부서의 장관을 플란데런인으로 지속적으로 정하는 등 불어권에 대한 압박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 당연히 불어권은 반발하고 있다. 이 나라 싸움은 예부터 지금까지 끝이 없다. 그리고 독일어권이 둘의 싸움에 소외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던 플란더런과 왈롱이 1995년에 별도로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면서 ,양쪽 모두 자치권 확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심각하게 커져서 스위스 수준으로 느슨한 연방제 국가로 변모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미 연방 국가이긴 한데 각 지방이 더 느슨해질 전망. 어쩌면 연방(federation)보다는 국가 연합(confederation), 즉 여러 '나라'들의 연합체로 변경될 가능성도 있고, 그보다 더 과격하게 아예 별개의 국가들로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다.

거의 매년마다 모종의 일로 지방들이 서로 분리하려고 지지고 볶고 난리다. 2009년 여름에도 총리가 최후 수단의회해산권을 발동하였는데 새로 당선된 총리가 모든(7개)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해서 무효, 거의 반 년 간 정부 수반이 없는(왕은 정부 수반이 아니라 상징적인 국가원수이니 제외) 진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물론 연방 정부의 공무원들이야 각 부처의 차관 등이 공석인 장관을 대리하여 일하긴 했으니 완전한 의미의 무정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막장임을 부인하긴 어려웠다. 이 난리 끝에 겨우겨우 새로 정부 만들었더니,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5당 중 하나가 탈퇴해버렸다.[36] 나머지 네 정당만으로도 과반수는 유지할 수 있으나, 새 총리가 네덜란드어 기독당 소속인데 네덜란드어 정당 하나가 프랑스어 정당 셋과 연정하면 네덜란드어권에서 '배신자'라고 욕 먹을 것이 자명하므로(...)

결국 자포자기한 여당들은 또다시 의회고 내각이고 다 해산(...)해버렸다. 근데 2010년 6월 중순의 총선 결과, 플란데런 지방은 분리주의당이 여당(온건파 N-VA와 강경파 Vlaams Belang[37] 합쳐서 40%)이 되고, 왈롱 지방은 PS(사회주의당)이 여당이 되었다. N-VA는 벨기에 총리는 왈롱에게 주고, 자신은 플란데런 통치에 나서는 대신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를 얻으며 점차 조용한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협상 돌아가는 거 보면 꼭 그런 거 같지도 않다(...).

왈롱에서는 국가 분열 시 66%가 프랑스에 합병되는 것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왈롱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플란데런 지역이 압박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입장인데다, 평소 사먹는 식료품 등을 주말에 프랑스에 가서 사오는 등 프랑스 문화와 유사하므로 프랑스에 편입되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프랑스가 역사적인 문제도 있고(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 의하면 산업 혁명기 당시 벨기에에서 노동자들이 넘어와 프랑스인들과 경쟁하면서 벨기에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다고 한다.) 반발심과 장난끼가 강한 벨기에인들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래 문화편 아르센 뤼팽 부분 참고. 어른의 사정인지도... 반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참고

반대로 플란데런 역시 분리되면 바로 네덜란드와 합치자는 여론이 종종 있다. 다만 왈롱과 달리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거라 별 호응은 못 얻는 편.

대체로 플란데런은 보수 성향, 왈롱은 진보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오히려 왕실 지지도는 불어권이 네덜란드어권보다 두배이상 높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나라가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정치가 막장을 달리고 있다. 총선 후 200일이 넘도록 내각이 구성되지 않아, 2011년 1월 23일 브뤼셀에 2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서 무정부 상태를 끝내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남자들은 수염을 깎지 말자는 캠페인도 진행했으나, 캠페인을 펼친 사람들도 턱수염이 땅에 닿을 때까지 무정부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는 농인지 진담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한마디를 남겼다.

2011년 3월 30일에 무정부 상태로 290일째를 맞이하면서 종전 무정부 상태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던 이라크의 289일을 경신했다. 자랑이다 열 받은 국민들은 지연된 정부 수립 날짜만큼 누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기네스북 등재 욕구에 불타는 벨기에 정부는 6월 3일까지 무정부 상태로 남아 마침내 1년을 넘겼다. 결국 2011년 9월 15일, 459일만에 브뤼셀-알레-빌보르데(BHV)[38] 선거구 분할 문제에 합의를 이뤘고, 그 뒤는 미적거리다 11월 25일 S&P가 벨기에의 신용 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 정파들이 회동해 예산 삭감을 통해 재정 적자 감축에 합의함에 따라 12월 6일, 사회당의 엘리오 디 뤼포를 새 총리로 하는 내각이 겨우 출범해 무정부 상태는 541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이런 막장 상황에서도 국가는 그럭저럭 돌아갔다. 벨기에는 중앙 정부가 매우 약한 대신 지나칠 정도로 강한 지방 정부를 가졌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 점이 의외로 빛을 발했다. 벨기에 대사관에 가면 상무관은 연방 정부에서 파견되는 게 아니라 각 지방 정부에서 1명씩 나온다. 이는 산업 정책이 지방 정부 고유 권한으로 넘어가 있기 때문.

일단 국가 수장인 왕이 매번 두 지방들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고생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전무하다. 덕분에 왕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좀 많이 불쌍한 사람 정도(…)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던 200여일 간 왕이 지명한 조정관이 플란데런 다수당인 N-VA(새로운 플란더런 연합 )과 왈롱 다수당인 PS(왈롱 사회당)의 협상을 주도했지만 조정관만 9번 바뀌었다.

사실 벨기에의 국가 표어인 "통합이 힘을 만든다"도 저러한 분리주의를 극복하고 단결된 국가를 만들자는 뜻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실이 점점 표어와 동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라 참 반어법적으로 잘 만든 표어란 비아냥까지 듣게 되었다.

한편 2010년대 들어서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는 ICANN의 정책이 바뀌어, ISO 3166-1 코드가 없는 지역·민족 집단·언어권 등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최상위 도메인(TLD)를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GeoTLD라고 하는데, 벨기에에서는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을 등록했다.# 반면 왈롱 정부는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까우니 도메인을 등록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왈롱 정부의 예산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최상위 도메인은 민간 단체·기업이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왈롱의 민간에서 나서서 왈롱의 도메인을 등록하려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지금의 불어권은 네덜란드어권 피 빨아먹고 사는 중...안습

7.1. 브뤼셀 수도권

브뤼셀 수도권(브뤼셀 시와 그 주변 지역 모두 포함)은 분리 독립과 관련하여 아주 골치아픈 지역이다. 언어공동체 두 개가 중첩되는 곳일 정도로 양측에게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만약 플란데런과 왈롱을 나눈다면 대체 어디에 속하게 해야 할 것인지 문제가 된다. 먼저, 플란데런과 왈롱이 서로 브뤼셀을 차지하겠다고 다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아예 독립국이 된 플란데런과 왈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condominium)으로 만들자는 말도 있다. 또, 아예 어디에도 안 속하는 별도의 지역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2010년 9월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인 브뤼셀 시민들까지도 나라가 남북으로 쪼개진다면 그 와중에 브뤼셀은 또 별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브뤼셀을 유럽 연합 수도 내지는 유럽 특별구로 만들어 플란데런과도 왈롱과도 같이 놀지 않겠다는 소리다(…). 유럽연합판 워싱턴 D.C.가 되겠다는 뜻.[39]

그런데 브뤼셀 수도권은 플란데런 지방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돼 있어서 왈롱 지방과 직접 닿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브뤼셀 수도권이 독립국 플란데런과 왈롱의 공동 통치 구역이 되거나, 왈롱에 속하게 될 경우 플란데런 지방 일부를 수도권으로 옮겨서 왈롱 지방과 직접 경계선이 닿게 하자는 얘기도 아울러 있는 듯.

어쨌든 여자저차 플란데런과 왈롱이 분리된 다음에도 각각 문제 거리가 생긴다. 그냥 계속 그렇게 독립국 상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언어가 통하는 이웃 나라(네덜란드, 프랑스)에 합병되는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벨기에 국왕과 왕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플란데런과 왈롱이 독립국이 되면 플란데런과 왈롱 간의 동군연합을 형성하는 국왕과 왕실이 형태로 존속할 여지가 있는데, 만약 두 곳 모두 이웃 나라와 합쳐지는 쪽을 택할 경우 왕관을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때 혹시 브뤼셀 수도권이 별도의 지역으로 남는다면 왕이 브뤼셀 수도권에 붙어서 버텨볼(...) 여지는 있겠다.룩셈부르크 공국 옆의 브뤼셀 공국

7.2. 독일어 공동체

독일어 공동체도 골치 아프다. 벨기에가 분리될 경우 왈롱 지방에 속하니 왈롱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그냥 왈롱인들의 희망일 뿐일수도 있다. 왈롱을 따라가지 않을 경우 가능한 옵션은 여러 개인데, 1. 독일에 합병되기, 2. 왈롱에서도 분리되어 억지로라도 독립된 미니 국가가 되기, 3. 왈롱에서도 분리되어 그나마 사정과 언어가 비슷한 인접국 룩셈부르크에 합병되기.

그런데 1번은 독일이 2차 대전의 경험으로 독일 스스로도 1990년 동-서독 통일 후 기본법(헌법)에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독일이 기본법을 개정하고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를 흡수할 순 있는데 문제는 독일이 기본법의 조항을 개정하고 벨기에 내부 독일어 공동체에 대한 병합을 시도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전쟁 피해를 입었거나 싸운 적이 있던 유럽 여러 국가들이 나치즘의 부활이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할 공산이 크다. 독일이 통일 후 기본법에 영토를 더 확장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괜히 집어넣은 게 아닌데 '고작' 벨기에의 독일어 공동체를 흡수하자고 주변국 밑 유럽 여러 국가들의 반발에 시달리면서까지 이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독일로 돌아간다 해도, 벨기에 사회의 소수 언어 사용 집단으로서 누려온 자치권 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큰데 이게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 일례로 독일어 공동체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 다수가 독일 등지로 유학을 선택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 정책에 의해 각국 내 소수 언어로서의 독일어 모국어 화자에게는 입학에서 받을수 있는 혜택이 더 이상 유효하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2번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호한 일이다.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구성원들의 우린 독일도 아니고 왈롱도 아니고 독일어 공동체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따르면 가장 유효할만한 선택지일 수 있으나, 만약 독립국을 만들게 되면 EU에 들어있다 쳐도 특별한 산업이 없어 다른 나라들의 눈총과 각종 압력을 무릅쓰고 세금 회피처(tax haven)가 돼야 겨우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옆에는 강력한 경쟁자도 있다 독일어 공동체 내에 있는 켈미스를 수도로, 과거 1세기 정도 존재하던 중립 모레스네의 결과가 어땠는가? 다만 현대사회에서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적용시키기 무리라는 점도 있다.

3번 역시 불가능하진 않으나 가장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이다. 룩셈부르크로서는 굳이 벨기에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싶다면 독일 연방과 나치 시절 한 배를 탄 수준에 불과했던 독일어 공동체 영역보다는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사이에 껴서 중립화를 보장받는 대신 벨기에에 넘겨주게 된 벨기에 뤽상부르 주를 원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2와 3의 경우 다른 문제도 있는데, 현재 독일어 공동체는 땅이 이어져 있지 않고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어[40] 월경지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독일어 공동체의 영역을 변경하지 않은 채 2나 3을 택할 경우 두 지역을 오가려면 다른 나라(독립국이 된 왈롱이나 독일)를 거쳐가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41] 물론 유럽 통합이 많이 이뤄져서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으나 그래도 월경지가 없는 것보다는 성가신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밖에, 브뤼셀 수도권이 별도의 국가/지역으로 남을 경우 이곳의 월경지가 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으나 이것도 쉬운 선택지는 아닌 듯하다.

결론적으로 독일어 공동체 입장에서는 벨기에가 쪼개질 경우 고르기가 곤란한 선택지들만 놓이게 되는 것이므로 달가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은 자신들을 '마지막 벨기에인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참고 기사). 마지막으로 벨기에에 통합되었고, 마지막까지 통합된 벨기에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벨기에의 분할과 별개로, 벨기에 안에서 왈롱 지방과 분리된 독자적인 지역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즉, 현재는 언어 공동체로서만 존재하지 지방은 왈롱에 소속돼 있는데, 아예 지방 차원에서도 분리된 지역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8. 정치

9. 문화

10. 군사

국가의 크기가 작고 군사력도 별볼일 없어 무시당하기 쉽지만 서방 세계 기관총을 석권한 FN 미니미FN MAG를 개발한 FN사라는 걸출한 총기회사가 바로 벨기에에 있다.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르완다 내전 당시 10명의 병사들이 수상을 지키던 중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다. 군수기업으로는 장갑차의 포탑을 생산하는 CMI 그룹 산하의 CMI 디펜스가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NATO 본부가 브뤼셀에 있다.

11. 사회

11.1. 이민

인구증가율이 계속 낮아지고, 무슬림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견제하는 우익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어가 통하는 모로코 출신들이 가장 많고 그 외에 터키, 알제리 출신들도 상당하다. 이렇게 무슬림 비중이 전 인구의 5%에 달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현대적 교육을 경시하고 소득 수준도 낮아, 브뤼셀 몰렌베이크 지구처럼 게토화가 된 지역도 있다.

11.2. 인종차별

박준형이 벨기에에서 촬영 중 현지인들에게 인종차별당하는 장면이 방송에 고스란히 방영되어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영상[42] 2015년 tvN의 <가이드>[43] 방송에 배경으로 등장한 벨기에 소녀들이 카메라맨을 향해 동양인 차별적인 제스쳐를 취하는 장면이 찍힌 바 있다. 링크

관광객들의 경험담도 여럿 올라와,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차이나 타운!"이라고 외친다든가 하는 경험담은 꽤 흔하게 보이는 편이고 시비를 걸어오는 벨기에인을 중국인들이 몰려와 쫓아내주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마저 돌아다니는 판이다. 링크 물론 인터넷으로 돌아다니는 '썰'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방송 카메라 등의 실질적인 증거물이 될만한 매체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당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은 그 행위로 인해 얻는 사회적인 페널티가 적거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벨기에는 인종차별 협약을 맺고 있고, 차별금지법도 존재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그다지 엄하지 않은 편이다. 일례로 벨기에 만화 '땡땡의 모험'에 관한 논란을 들 수 있겠다. 링크

2015년 유럽의 여론조사기관 equineteurope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벨기에인의 87%가 아시아인과 직장생활이 괜찮으며, 74%가 아시아인과 연애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링크 수치만 보면 높아보이지만 간단한 페이퍼 테스트인 것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수준. 당연하게도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와 같은 전통적인 이민대국 정도의 개방도를 못 따라갈 정도거니와,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서유럽으로 한정하면 최저 수준이다.

12. 외교

12.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제국 시기인 1901년에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으나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단교되었다. 그 후 미안했는지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제일 먼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 정부로 승인, 1950년 한국전쟁 때는 룩셈부르크와 연합하여 UN군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 1961년에 외교관계를 재개하였고 1965년에 수교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H조에 속하게 되어, 세 번째[44]로 벨기에와 월드컵 대결을 펼쳤다. 그리고 여지없이 후반전에 골을 얻어맞아 패하며 2018년 5월 기준 벨기에 상대 전적은 1무 3패다. 벨기에 현지에 한국인은 824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나라 출신 줄리안 퀸타르트대한민국 방송에도 출연한다. 인천광역시 송도에는 겐트 대학교의 캠퍼스가 들어서 있다.

전라북도 임실군에서는 이곳 출신인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의 노력으로 치즈 제조업이 발달했고, 신부의 한국어 이름인 '지정환'에서 이름을 딴 피자 브랜드도 있다.

12.2. 주변국과의 관계

벨기에의 경우 프랑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는 유대 관계가 꽤 깊으며(유대 관계가 깊다고 했지 사이가 좋다고는 안했다.) 독일과는 역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야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과거사 때문에 많이 좋지는 않다. 그 외에도 영국, 러시아, 스위스, 이탈리아 등 다른 주변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2016년)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일부 영토를 돌려주거나 되돌려받는 형식으로 국경문제를 해결했다. # 이 국경은 2018년 1월 1일부터 발효가 되었다. #

좀 특이한 사항으로는 왕족 과 귀족 및 일반 국민을 포함해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네덜란드 왕가 및 중앙귀족(헤이그 및 레이던에 기반을 둔)과 결혼을 한 당사자 및 자녀의 경우 공직을 포함한 교사, 국영기업 취업등이 절대적으로 불가능 하다. 이는 과거 네덜란드 연합 왕국에서 혁명을 통해 독립한 벨기에 역사에 기반한다. 신구 헌법 모두 명시되어 있고, 본인의 성이 네덜란드 왕실 출신이 아니어도 직계 및 가까운 방계가 왕실이나 중앙귀족 출신이라면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공직, 국영기업, 교사 등 국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직종에 일체 취업 관련 행위가 엄히 금지된다.

12.3. 외교공관 관련 이야깃거리

벨기에에 설치된 외교공관 개수는 무려 183개국으로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설치된 나라로 볼 수 있다. 벨기에에 설치된 대사관 중 없는 나라는 북한, 스웨덴, 에콰도르, 바하마, 통가, 앤티가 바부다, 니우에[45], 키리바시,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 팔라우, 나우루, 쿡 제도 등 13개국만 설치되지 않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겸임국을 보면 스웨덴은 본국 대사에서, 에콰도르는 베를린 주재 에콰도르 대사가, 북한통가, 바하마런던 주재 자국 대사관 및 고등판무관 사무소를 통해 겸임하고 있다. 그 밖에도 쿡 제도는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웰링턴 주재 고등판무관 사무소가 벨기에를 비공식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쿡 제도가 추후 EU 대표부 또는 제네바 유엔 사무국 등에 마련되면 불편함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해당 출처

13. 사건사고

13.1. 플란데런 독립 페이크 뉴스속보 사건

2006년 12월 13일, 왈롱 지역의 공영방송인 RTBF에서 갑자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플란데런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는 뉴스속보를 방송한다. 평소 저녁뉴스를 진행하던 간판 앵커[46]가 진행했으며, 벨기에의 유명인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등이 방송되었기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해외에 있던 당시 왕자였던 현 국왕 필리프는 측근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하얗게 질렸다고 한다. 출장 나온 틈에 직장이 없어졌다. 그러나 이건 사실 페이크 다큐였고, 페이크 다큐였다는 사실을 방송을 시작한지 30분이나 지나서야, 방송위원회의 경고를 받고서야 자막으로 표시를 했다.

벨기에의 양 진영이 모두 분리독립적 성향이 강하다곤 해도, 아무래도 잘사는 플란데런측이 강한 편인데, 플란데런측은 왈롱과 사회보장제도를 공유함으로써 플란데런의 돈이 왈롱으로 빠져나간다고 보아왔다. 그래서 당시에 의료보험,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마저 언어권별로 분리하지 않으면 독립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왈롱 주민들은 그러려니 하고 있었고, RTBF의 한 PD가 이대로는 안된다며 왈롱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을 방책으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이다.

이는 다음날부터 벨기에의 각종 언론들에게 언론윤리를 잊은 행동이라고 질타를 받았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만들때, 기자회에서는 반발을 했고, PD의 지속적인 설득에 기자회에서도 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자막을 내보내고, 로고도 한눈에 픽션임을 알 수 있도록 할 것 등을 조건으로 참여했으나 위에서 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해당 뉴스를 진행한 앵커는 본래 자신이 진행하던 정시뉴스와 다른 시간에 할 것을 조건으로 참여했으나, 덕분에 더 속보 같아져버렸다.

왈롱 지방정부에서도 RTBF의 사장을 소환하는 등 조사를 벌였으나, '실수' 였다며 아무도 처벌하지 않았다.

13.2.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

2011년 12월 13일 벨기에의 도시 리에주에서 5명이 죽고 125명[47]이 다친 사건.

33세의 노르딘 암라니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 랑베르 광장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FN FAL을 난사한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

암라니는 로켓런쳐와 소총, 저격소총을 포함한 수십 정의 무기와 수천 개의 무기 부품, 2800여 포기의 대마초를 범죄를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48]로 2008년에 5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가 2010년 10월에 가석방되었다[49]...

사건 당일 성적 학대와 관련하여 경찰에 출두하기로 되어 있었던 암라니는 이웃집을 청소해주던 여성을 자신의 집도 청소해달라며 유인, 살해했다. 그리고는 달려나와 학살극을 벌인 것.

13.3. 안드라스 팬디 사건

헝가리의 성직자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난민 생활을 하던 안드라스 팬디라는 살인마가 자신의 친딸과 의붓딸을 성폭행하고 두 명의 전처와 자신의 자식, 의붓자식 도합 6명을 연쇄 살해하고[50] 시신을 아주 잔인하게 훼손한 사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에 같이 범행에 가담했던 딸 아그네스가 자수함으로써 그 진상이 드러났으나 당시에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잠정 종결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뒤인 2002년 마르크 뒤트루 재판이 여론에 알려져 벨기에 내에서 아동 성범죄, 살인죄에 대한 엄벌 여론이 일고 미제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적극 촉구하는 여론의 요구로 검찰이 사건 파일을 다시 열고 안드라스 팬디와 그 딸을 구속, 조사하면서 진상이 드러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안드라스 팬디는 겉으로는 훌륭한 성직자였으며 루마니아 독재자 때문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보호하는 단체의 설립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집안에서는 폭군이었고 자기 눈밖에 났거나 도망친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인물이었던 것.

결국 다섯 명에 대한 살인. 의붓딸에 대한 성폭행 및 살인미수. 친딸에 대한 성폭행이 유죄로 인정되어 안드라스 팬디는 무기징역. 딸 아그네스 팬디는 기소된 살인 및 살인 미수 모두가 유죄로 인정되긴 햇으나 자수한 점과 오랜 기간 성학대를 받으며 범행 가담을 강요당한 것이 참작되어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아그네스 팬디는 2010년 6월 가석방되었으며[51] 안드라스 팬디는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13.4. 마르크 뒤트루 사건

1990년대 중반에 벌어진 아동 성폭행 연쇄살인 사건으로 벨기에의 소아성애자인 마르크 뒤트루가 다수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소녀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감금했으며 그 중 두 소녀를 살해하고 또한 범행의 은폐를 목적으로 공범 베르나르 와인슈타인도 살해한 사건이다. 그가 다른 범죄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 아내 미셸 마르탱이 또 다른 두 명의 어린 소녀를 굶겨 죽임으로써 도합 네 명의 소녀가 피살되었으며 희생자는 총 5명에 이르렀으며 벨기에 검찰은 마르크 뒤트루를 주범으로, 아내 미셸 마르탱과 미셸 르리브르, 미셸 니울을 공범으로 기소하였다.

이후 오랜 기간에 걸친 조사 끝에 2004년부터 재판이 시작되었고 아동 4명 납치 살해. 2명 납치 및 성폭행. 공범 살해(뒤트루는 이 사건을 혼자서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등 모든 사건의 유죄가 인정되어 뒤트루는 무기징역 및 정부의 임의 처분 대상 지정.[52] 미셸 마르탱은 징역 30년. 미셸 르리브르는 징역 25년. 미셸 니울은 납치와 살인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마약 관련 행위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미셸 니울은 2006년 5월에 만기 출소. 미셸 르리브르도 2005년 10월에 피해자와 합의한 점. 살인 및 성폭행은 하지 않고 납치에만 가담한 점 등이 인정되어 가석방을 허용. 출소하였다. 미셸 마르탱은 30년 중 15년의 형량을 채운 뒤 2011년 가석방 신청을 하여 허가받고[53] 수녀원에서 남은 수감 기간 동안 격리, 감시받는 형태로 출소하게 되었다. 마르크 뒤트루는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있는데 뒤트루는 2013년 무기수의 기본 복역 형량을 채운 뒤 가석방 신청을 했다가 '죄질이 너무 나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유' 로 기각되었다. 소아성애자라 교화도 거의 불가능한 만큼 교도소에서 일생을 마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이 사건 직후 벨기에 내부에서는 사형 제도를 부활시켰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적이 있지만[54] 이는 벨기에 헌법상(제18조 연성헌법 국가라 굳이 수정 못 할 이유는 없다만)이나 유럽연합 헌법 규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13.5. 2016년 브뤼셀 테러

2016년 3월 22일 오전 8시 브뤼셀 자반템 공항과 멜베이크 지하철역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1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브뤼셀 테러 사건 참조.

13.6. 2018 리에주 테러

2018년 5월 29일에 리에주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만난 것으로 확인된 용의자가 교도소를 나오면서 경찰관 2명과 행인 3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다에시가 리에주에서 있었던 테러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거기에다 벨기에 경찰은 용의자가 수감자까지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14. 출신 인물

15. 창작물에서

홈즈 다음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탐정 캐릭터 에르큘 포와로의 모국이 벨기에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여, 주위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이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나는 벨기에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영국 총리가 독일 스파이에 의해 납치당한 사건을 맡았을 때, 영국의 요원으로부터 벨기에 국왕으로부터의 추천을 받았음을 알게 된 포와로가 경례를 올리면서 감격한 목소리로 반드시 사건을 해결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상하게도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악역들은 벨기에로 도망가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인들의 벨기에에 대한 관점인지도. 실제로 프랑스인 범죄자들의 도피처로 벨기에가 선호됐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수많은 정치범들이 벨기에로 망명 내지는 피신을 갔다. 그러다 벨기에 정부에서는 타국의 정치상황에 더이상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1833년에 '정치범 불인도법'을 국내법으로 제정했고 이듬해에 프랑스-벨기에 간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정치범의 불인도에 대한 내용을 삽입하기에 이르렀다.

카레이도 스타 - 로제타 파셀 [56]

이 외 땡땡의 모험, 스머프 등 다양한 만화를 배출한 국가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우주에서는 어떤 이유에선지 가장 심한 욕으로 설정되어 있다.

잠깐 조는 사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저런 냉전 배경의 창작물에서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미국 본토만큼은 아니지만) 수틀리면 갈려나가는 동네다. 역시 NATO 사령부의 존재 때문에...

16. 기타

  • 벨기에에서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것은 불법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는 공동체마다 다르다. 네덜란드어권은 교복 잘 입고 다닌다.

  • 벨기에 사람들은 만 16살이 되면 을 마실 수 있다. 흡연도 16살이면 된다. 원래 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들 흡연 시작. 술의 경우 맥주와 같이 도수가 낮은 경우만 16세, 도수가 높은 경우 18세이다.

  • 벨기에도 8월 15일이 공휴일이다. 물론 이 날 독립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고 그 날이 가톨릭의 성모승천대축일이라서 그렇다. 대신 9월과 10월에 공휴일이 없다.

1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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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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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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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키프로스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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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영남 지방에서 부산광역시대구광역시를 뺀 정도의 작은 크기이다.
  2. [2] 벨기에 전체의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서 .eu도 쓴다. 그리고 GeoTLD로서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도 서비스에 들어갔다.
  3. [3] #
  4. [4] 한국과 벨기에는 수교 연도를 대한제국-벨기에의 수교 연도인 1901년으로 간주한다.
  5. [5] 아무래도 한국어(표준어)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어 België를 대강 읽은 것이 정착된 표기로 보인다.
  6. [6] 외래어 음역의 경우 중국어권 국가·지역마다 완전히 다른 표기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벨기에는 정체자와 간체자 자형 차이밖에 없다.
  7. [7] 네덜란드어로는 브뤼설(Brussel)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bruoc(늪)'과 'Sella(집)'의 합성인 Bruocsella라고 한다.
  8. [8] 두 나라 모두 홍합을 자주 먹는다.
  9. [9] 혹은 '유럽 이사회'
  10. [10] UN 사무 총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EU 대통령'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한 시각이다. 또한 'European Council'은 'EU 정상 회의'로 번역해야 하고, 'The Council'은 'EU 각료 회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부분은 유럽 연합 관련 용어의 한국어 번역어가 아직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논의 필요.
  11. [11] 이 무렵에 잔 다르크를 붙잡아 팔아넘긴 걸로 알려진 귀족이 바로 이 부르고뉴 공국을 따르는 룩셈부르크 백작이다. 사실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왕실의 혈통이 있긴 하지만 영토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프랑스 왕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거의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름만 부르고뉴였지 공작은 부르고뉴 등 프랑스내 영토보다는 플랑드르 등 저지대 지방에 머무는 걸 좋아했다. 프랑스계 귀족이긴 하지만 잔 다르크를 붙잡아 팔아넘겼다고 그리 놀랄 일이 아닌 셈.
  12. [12] 홀란트, 젤란트, 위트레흐트, 겔레, 프리슬란트, 오버레이설, 흐로니언.
  13. [13] 여기에 대해서는 저지대 북부가 개신교 다수 지역이여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네덜란드의 개신교화는 독립 이후의 '결과'이지 독립의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네덜란드는 가톨릭 다수 지역이었으며 저지대에서 개신교 다수 지역은 지금의 벨기에 북부인 플란데런 지방이었다. 이 부분은 네덜란드/역사 참조.
  14. [14] 지금의 플란데런 지방의 오스트플란데런/베스트플란데런 주. 지금은 역사적 지역으로서의 플란데런을 포함한 네덜란드어권 5개 주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15. [15] 16세기 당시 안트베르펀의 주도 안트베르펀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 수입은 아메리카 대륙의 광대한 식민지에서 올라오는 수입과 동일한 수치였다. 안트베르펀이란 도시 딱 하나만 해도 이 수치인데 플란데런과 안트베르펀 주 전체는 말할 필요도 없다.
  16. [16] 이를 본 조선 말의 지식인들이 내놓았던 주장이 '한반도 중립화론'이다.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유길준은 벨기에를 언급했다. 우리의 지리적 위치는 벨기에와 같고, 중국에 조공하던 것은 터키에 조공하던 불가리아와 같다. 불가리아의 중립은 유럽 열강들이 러시아를 막기 위함이고, 벨기에의 중립은 유럽 열강들이 자국을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이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러시아를 방어할 수도,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보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17. [17] 영국에서 양털을 수입하면 플란데런에서 레이스, 천으로 가공했다.
  18. [18] 레오폴드 2세를 싫어하던 독일 제국빌헬름 2세는 신나서 열심히 비난했다. 하지만 빌헬름 2세 본인도 식민지였던 나미비아탄자니아에서 독일군에게 식민지 흑인 학살, 무력 토벌을 지시한 사람으로 역시나 남 욕할 처지가 못 되는 백인우월주의의 화신.
  19. [19] 1차대전 당시 국가의 황폐화를 각오하고 독일군에 맞서 싸워 진격 속도를 지연시키고 국토의 일부를 끝까지 사수한 점 덕분에 벨기에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존경을 받는다. 정작 최후는 등산하다 추락사... 세상 모든 영웅이 그렇게 아름답게 죽진 않습니다
  20. [20] 전황이 워낙 불리했으므로 항복을 충분히 고려할만한 상황이었으나, 연합국과 제대로 된 협의나 통보가 없었고, 심지어 자국 정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총사령관 자격으로 항복 선언을 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21. [21] 프랑스의 상징이 닭이라는 사실과 접해본다면..
  22. [22] 2015년에 변경되었다. 1991~2015년에 썼던 깃발
  23. [23] 나라의 행정 구역 단위 중 최소 단위로, 수장이나 지방 의회등의 자치 제도가 있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기초자치단체에 해당.
  24. [24] 소설 플랜더스의 개에서 플랜더스가 바로 이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25. [25] 즉 브뤼셀 시는 이 지역의 일부다. 참고로 벨기에의 법적(de jure) 수도는 브뤼셀 시 뿐이지만, 브뤼셀 수도권 전체가 실질적인(de facto) 수도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왜냐면 각종 정부 시설들이 수도권 안에서 브뤼셀 시가 아닌 지역에도 위치하고 있기 때문.
  26. [26] 벨기에 수도권 의회가 1989년에 먼저 생겼고, 1989년을 벨기에 행정구역 개편의 해로 본다. 플란더런 지역-네덜란드어 공동체 의회와 왈롱 지역의회(더불어서 프랑스어 공동체 의회)는 1995년에 구성했다.
  27. [a] 27.1 브뤼셀은 이중언어지역이기에 모든 시민이 선택에 의해/신분증 언어에 의해 반드시 둘중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야만 한다! 브뤼셀 수도권 안에서 두 언어 사용자가 뒤섞여서 살기 때문에 지역으로 구분할 수가 없다 물론 선거에 한해서 원한다면 네덜란드어권 브뤼셀 시민이 프랑스어권 브뤼셀 정치인에게 투표가 가능하다. 역도 성립한다. 하지만 유입물이나 정보를 보통 하나의 언어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서...(일부 정당의 경우 두 언어 모두 제공한다.)
  28. [28]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다.
  29. [29] 영국도 에드워드 7세 때부터 이 성의 영어식 표기인 Saxe-Coburg and Gotha를 성으로 썼으나 그의 아들인 조지 5세 때 1차대전이 터지면서 반독 정서 때문에 윈저(Windsor)로 변경했다.
  30. [30] 왕가의 문장(紋章, coat of arms)에서도 작센의 심볼을 빼버렸다.
  31. [31] 프랑스어의 벨기에 방언으로 보기도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프랑스어와 친척뻘인 개별 언어로 치는 경향이 있다. 표준 프랑스어와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기 때문. 현재 왈롱 사람들 대다수가 벨기에식 프랑스어를 사용하여 왈롱어 사용 인구가 극도로 적어졌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한 상태다.
  32. [32] 왈롱어까지 섞어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33. [33] 벨기에의 룩셈부르크 주도 원래 룩셈부르크 땅으로, 1839년 네덜란드(당시 룩셈부르크는 네덜란드와 동군 연합 상태)에서 벨기에로 넘어갔다.
  34. [34] 브뤼셀 근교의 브뤼헤가 여기에 해당된다. 브뤼헤는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서유럽의 베니스'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직물 공업의 쇠락과 도시 주변의 수로가 막혀버리는 바람에 그저 망했어요. 그래도 리즈시절이 워낙 찬란했던지라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벨기에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됐다.
  35. [35] 이 부분은 왈롱과 플란데런의 설명이 다르다. 왈롱인의 입장에 따르면 브뤼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불어를 상용하였고, 사실 현재의 네덜란드어권인 헨트도 중세때는 카를 5세가 불어와 스페인어를 상용하던 곳이다. 산업혁명으로 가난했던 플란데런의 인구들이 브뤼셀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어가 다소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36. [36] 네덜란드어 정당 둘(기독당, 자유당)에 프랑스어 정당 셋(기독당, 자유당, 사회당)이 참여했는데, 네덜란드어 자유당이 탈퇴했다.
  37. [37] 당 이름부터가 '플라밍의 이익'이다.(...)
  38. [38] (Ne)Brussels-Halle-Vilvoorde, (F)Bruxelles-Hal-Vilvorde. 알레-빌보르데 지역과 브뤼셀 수도권 지역을 합친 지역, 알레-빌보르데는 플람스 브라반트 주의 서쪽 절반에 해당한다.
  39. [39] 물론 미국은 연방국가이고 EU는 국가연합이라 성격이 똑같진 않다.
  40. [40] 현재는 오이펜 및 그 주변 지역, 벨기에령 아이펠 지역으로 쪼개져 있어서 현재 프랑스어 공동체 지역을 거쳐야 두 지역을 오갈 수 있다. 본래의 오이펜-말메디 지역은 지금보다 넓어서 이렇게 둘로 쪼개져 있지 않았으나, 현재 독일어 공동체는 그보다 적은 관할지를 가지면서 월경지가 생겼다. 오이펜-말메디 지역의 프랑스어 사용 지역이 언어 따라 왈롱으로 완전 편입된 결과다.
  41. [41] 플란데런도 월경지들이 두 군데 있긴 하다. 경계선이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네덜란드와의 국경 지대 바를러헤르토크와, 왈롱 지방을 거쳐 가야 하는 부런(Voeren) 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왈롱도 플란데런이나 프랑스를 거쳐가야 도달할 수 있는 코민 와른통(Comines-Warneton)이라는 이름의 작은 월경지가 있다.
  42. [42] 아랍계 이민자에 의한 소매치기로도 보인다.
  43. [43] 예능인이 가이드를 하는 여행 프로그램.
  44. [44] 벨기에와 대한민국은 앞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도 같은 조에서 만난 경험이 있다. 알다시피 차범근이 해임된 후 맞붙었던 1998 월드컵그러고 보니 베네룩스 3국네덜란드랑 같은 조였다에서는 유상철의 동점 골로 무승부(1-1)이었고그 덕분에 벨기에의 발목을 잡았다 1990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이 후반전에만 2골을 얻어맞으며 패(0-2)했다.
  45. [45] 니우에는 뉴질랜드의 자치령이다.
  46. [46] François de Brigode. 54세인 2017년 지금까지도 RTBF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계시다!
  47. [47] 국내 뉴스에는 4명 사망, 122명 부상이라고 말하지만 영문판 위키백과를 따른다.
  48. [48] 장물 거래와 성추행 혐의도 있었음
  49. [49] 사회에 별 위협이 안 될 것 같으면 특별한 조건 없이 가석방하는 벨기에 법. 법의 온정을 베풀었더니...
  50. [50] 드러난 것만 6명이다. 실제로는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결국 밝혀내지 못했는데 이 과정에서 벨기에 사법당국이 이런 사건을 얼마나 안이하게 처리했는지가 드러나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51. [51] 벨기에 법은 형량을 어느 정도 채우면 특별히 사회에 위협이 되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석방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52. [52] 벨기에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가 없기 때문에 가석방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데 뒤트루가 가석방된 뒤에도 정부가 임의로 다시 재수감할 수 있게 한 제도. 실제 의도는 가석방을 하지 말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53. [53] 이 때문에 벨기에 법원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사회에 더 이상 위험이 되지 않는다지만 어떻게 죄없는 아이들을 굶겨 죽인 범죄자를 사회로 내보낼 수 있느냐는 것.
  54. [54] 사실 이건 어느 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 캐나다에서도 전직 공군 대령이자 성도착자인 러셀 윌리엄스가 여성 두 명을 연쇄 성폭행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뒤 사람들은 사형 제도를 부활시켜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5. [55] 그의 창의력과 독특함이 잘 드러나는 곡 https://youtu.be/CAMWdvo71ls
  56. [56] 디아볼로 천재소녀. 벨기에 출신. 9살때부터 디아볼로 국제대회에 나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실력있는 디아볼러이다카레이도 스타 7화의 "웃음을 잃은 굉장한 소녀"로 카레이도 스타에 첫 출연했다. 처음에는 관객의 즐거움을 배제한, 기술의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디아볼로머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나에기노 소라와 디아볼로 공연을 통해 관객의 호응을 얻게되면서 자신이 처음 디아볼로 대회에 출전했을 때 즐거워했던 관객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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